(53)

역사적으로도 음수를 당당하게 사용하게 된 것은 영(0)보다도 훗날의 일이다. 유럽에서는 17세기가 되어서도 음수를 사용하는 것을 주저했다. 수학, 과학, 철학의 광범위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 블레즈 파스칼마저도 ‘0에서 4를 빼면 0 그대로다라도 주장했다. 또한 근대 합리주의의 원조라고 하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도 방정식을 풀고 음수가 나오면 무보다 작은 수는 없다면서 거부했다. 음수를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17세기의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였다고 전해진다.

.

(156)

1=0.99999…. 는 납득할 수 없다?

숫자를 소수로 표현하면 소수점 이하의 무한의 숫자가 늘어서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1 3으로 나누면

1÷3=0.3333333…..

와 같이 0. 다음에 3이 무한개 늘어선다. 이러한 무한 소수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2장에서 나눗셈은 곱셈의 역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3으로 나눈다는 것은 3을 곱하는 것의 역이다. 그러면

1=(1÷3)x3

이 된다. 여기서 우변을 계산해 보면

(1÷3)x3 = 0.3333333… x 3 = 0.9999999…

이 된다. 이것이 좌변과 같으므로

1=0.99999999…..

이 성립한다. 이것은 나눗셈은 곱셈의 역이라는 정의로부터 유도한 식이므로 맞아야 한다. 그러나 이 등식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 좌변의 1과 우변의 0.9999999…는 보기에서 다르므로 등호로 연결하는 것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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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또 다른 이유는 동물인 코끼리 때문이다. 그리스인에게 코끼리는 동방과 서방에만 있는 신기한 동물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기원전 326년에 인도까지 동방 원정을 갔을 때 마가다국의 군대는 6,000마리의 코끼를 몰고 나와 대치했다. 한편, 지중해 문명의 중심시 중 하나였던 이집트 서방의 카르타고에는 지금은 멸종된 북아프리카 코끼리가 있었다. 기원전 218년에 시작된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이베리아 반도에서 30마리 이상의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 공화국으로 쳐들어간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리스인들은 인도코끼이와 아프리카코끼리가 다르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동방과 서방에 같은 모양의 코끼리가 살고 있고 그 중간에 있는 자기들이 사는 곳에는 코끼리가 없으므로 동과 서는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

(223)

시라쿠사를 포위한 로마군을 맞이한 것은 고대 세계 최고의 수학자라고 불리던 아르키메데스와 그가 발명한 수많은 무기였다. 탄착점을 조정할 수 있는 투석기에는 사각지대가 없었고, 지레와 도르래의 원리를 응용한 크레인은 바다로부터 접근해오는 군함을 들어 올려 전복시켰다. 성벽으로 다가갈 수 없었던 로마군은 포위망을 풀고 일시적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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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거의 모든 교과서가 미분을 먼저 설명한 후에 그 역역산으로서 부정적분을 도입한다. 그리고 면적을 계산하기 위한 정적분은 부정적분의 차이로서 정의한다. 이러한 순서는 완성된 수학을 논리적으로 가르친다는 의미에서는 이치에 맞지만, 역사적인 발전 순서로 보면 정반대이다. 아르키메데스가 면적을 계산하기 위해 적분을 연구한 것은 기원전 3세기이고 뉴턴과 라이프니치가 미분법을 고안해낸 것은 17세기. 두 시기 사이에는 1800년 이상이나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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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

2차방정식의 해의 공식처럼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기회가 적은 수학은 의무교육으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실제로 유토리 교육이 추진되었을 때 해의 공식은 중학교의 학습지 도요령에서 빠져 있었다. 그러나 도움이 안 되는 수학도 공부할 가치가 있다. 수학에는 언어를 배운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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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수학과 민주주의는 둘 다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했습니다. 수학은 종교와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만인에게 받아들여진 이론만을 사용해서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위에서 강요하는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머리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이런 자세는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수학과 민주주의가 거의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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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주는 떨림이다. 정지한 것들은 모두 떨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한자리에서 말없이 서 있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떨고 있다. 그 떨림이 너무 미약하여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미세한 떨림을 볼 수 있다. 소리는 떨림이다. 우리가 말하는 동안 공기가 떤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의 미세한 떨림이 나의 말을 상대의 귀까지 전달해준다. 빛은 떨림이다.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시공간상에서 진동하는 것이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밖에 볼 수 없지만 우리 주위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전자기장의 떨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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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모든 원자는 마치 인간의 지문처럼 그 자신만의 독특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19세기 말 이미 이런 사실이 알려졌지만 원자가 왜 그런 독특한 스펙트럼을 갖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원자는 물질을 이루는 최소단위라고 생각되었다. 원자가 공명의 특성을 보인다면 그 안에 일종의 진동이 있다는 의미다. 그 진동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원자의 흡수스펙트럼은 양자역학이 탄생한 다음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이해는 못 해도 이용할 수는 있는 법이다. 태양광의 스펙트럼은 수소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 태양이 수소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1868년 피에르 장센은 태양광의 스펙트럼에서 지구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명을 발견했다. 결국 장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원자가 태양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헬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헬륨은 태양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헬리오스에서 온 것이다. 스펙트럼은 별에 가보지 않고도 별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려준다.

.

(32)

현재 1초의 정의는 세슘 원자가 내는 특정 진동수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언젠가 미래에 인류문명이 멸망하더라도, 이 정의를 본 누군가는 1미터를 정확히 복구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90억 번가량의 진동을 정확히 셀 수 있어야 하므로, 엄청난 정확도로 진동수를 알고 있어야 한다. 2005년 노벨물리학상은 존 홀과 테오도어 헨슈에게 주어졌다. 이들의 업적은 정확한 진동수를 갖는 빛을 만든 것이다. 최근 이 방법을 사용하여 진동수를 19자리까지 알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서울과 뉴욕 사이의 거리를 원자 하나의 크기보다 작은 오차로 잴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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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육체는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어린 시절 죽음이 가장 두려운 상상이었던 이유다. 하지만 원자론의 입장에서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흩어지는 일이다. 원자는 불명하니까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단지 원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너무 슬플 때는 우리 존재가 원자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려보라. 그의 봄은 원자로 산산이 나뉘어 또 다른 무엇인가의 일부분이 될 테니까. 모든 것이 원자의 일이라는 말에 허무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그 순간에도 이 모든 일은 사실 원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으니 원자를 알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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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1)

미토콘드리아의 공생이 아름다움 협력일 거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세포는 자살할 수 있다. 자신에게 치명적은 결함이 있거나 심각한 감염이 일어나면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 전체를 위해 좋기 때문이다. 이때 미토콘드리아를 붕괴시키는 방법이 이용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에너지공장이니까 로봇으로 비유하자만 전원을 차단하는 셈이다. 세포 스스로가 자살을 하기도 하지만 외부에서 자살하라는 명령을 받기도 한다. 세포를 죽이는 세포자살을 결정하는 것은 핵이 아니라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다. 세포자살은 다세포생물이라는 사회조직을 유지하는 공권력이다. 쓸모없는 세포가 제때 사라져주지 못하면 생명은 유지되기 어렵다. 미토콘드리아가 없었으면 애초에 다세포생물과 같이 복잡한 생명체가 탄생할 수도 없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휴대용 에너지 유닛이 없었으면 복잡함을 유지할 에너지 공급을 할 수 없기 때문에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발전소는 원자력발전소만큼 위험하다. 미토콘드리아가 잘못되면 자유라디칼이라는 것이 생성되는데, 이것이 노화를 일으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토콘드리아와 죽음도 함께 밎아하게 된 것이다.

.

(166-167)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가지력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자연현상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신문 또는 스마트폰에서 출발한 전가지파, 즉 빛이 당신의 눈에 도달했다. 눈의 망막에 있는 분자들이 빛 때문에 변형을 일으키고, 그 결과 화학신호가 발생하고, 그것이 전기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되는데, 이 모든 것이 전자기력 때문이다. 심지어 당신의 글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뇌 속의 전기적 작용, 즉 전자기력 때문이다. 우리가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은 모두 전자기력이라. 우리 주변 대부분의 기계들이 전기를 이용하는 이유다. 전기가 예뻐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다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269-270)

과학은 불확실정을 안고 가는 태도이다. 충분한 물리적 보상이 없을 때, 불확실을 전망을 하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과학의 진정한 힘과 결과의 정확한 예측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결과의 불확실성을 인정할 있는 데에서 온다. 결국 과학이란 논리라기보다 경험이며, 이론이라기보다 실험이며, 확신시기보다 의심하는 것이며, 권위적이기보다 민주적인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이 우리 사회를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드는 기초가 되길 기원한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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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9)

하지만 내가 온 까닭을 말하고서 가겠소. 그대의

낯은 두렵지 않소. 그대가 나를 멸할 길은 없으니.

내 그대에게 이르노니, 그대가 진작부터 라이오스의 살해자라 선언하고 위협하며 찾는

그 사람이 바로 여기에 있소.

그는 명목상으로는 이방 출신의 거주자이지만, 나중에는

태생부터 테바이 사람임이 드러날 테고, 그 행원에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오. 그는 눈 뜬 자에서 장님이 되고,

부자에서 거지가 되어 이국 땅을 향해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가게 될 것이오.

또 그는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버지로서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을 낳은

여인의 아들이자 남편이고, 자기 아버지와

함께 씨 뿌린 자이자 그의 살해자임이 드러날 것이오. 그러니 들어가서

이것을 따져 보시오. 그대가 만일 내 말이 거짓임을 밝혀낸다면,

그때는 내가 아무 예언술도 모른다고 떠들어 대시오.

.

(96)

아아, 필멸의 인간 종족이여.

그대들이 살아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아님을

내 얼마나 헤아렸던가!

대체 누가, 어떤 인간이

겉으로만 행복해 보이고, 그러다가

기울어 저무는 것 이상의

행복을 얻고 있는가?

, 가여운 오이디푸스여, 내 그대의,

그대의, 그대의 운명을

거울로 삼아, 그 어떤 인간도

행복하다 여기지 않으리.

.

(150)

안티고네 하지만 하데스는 그들을 동등하게 대할 것을 요구합니다.”

크레온 아니, 이익을 주는 이가 사악한 자와 같은 몫을 받을 수는 없다.”

안티고네 저승에서는 이것이 합당한 일이 될는지 누가 아나요?”

크레온 원수는 절대로, 죽었다 해도 친구가 될 수 없다.”

안티고네 저는 모두 미워하기보다는 모두 사랑하게끔 타고났어요.”

.

(157)

이는 진정, 널리 떠도는 희망이

여러 인간에게는 도움이어도,

또 여럿에게는 경솔한 생각과 욕망의 속임수이기 때문이라.

그것은, 뜨거운 불에 발을 델 때까진

아무것도 모르는 자에게 다가온다네.

누군가가 지혜를 좇아

저 유명한 말을 했다네.

신께서 그 정신을

미망으로 이끄는 이에겐,

나쁜 것도 좋은 것인 양 보이나,

그는 아주 짧은 동안만 피해 없이 지내도다.”

(162)

그러니 마음속에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품지 마십시오.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만 옳고 다른 것은 옳지 않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저 혼자만 현명하다고.

혹은 자신이 다른 누구도 갖지 않은 혀나 영혼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열어 보면 빈껍데기로 드러나는 법이니까요.

현명한 사람이라 해도, 많이 배우려 하고

자기를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선 겨울철 격류에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몸을 굽혀 가지들을 구하는지 보시지요.

반면에 저항하는 것들은 뿌리채 뽑히고 맙니다.

또 마찬가지로 배의 돛 아래 줄을 계속 당기며

바람에 전혀 굴복치 않는 사람은 결국 배가

뒤집혀, 남은 여정을 뒤집힌 의자에 앉아 항해하게 되지요.

그러니 노기를 그치고 태도를 바꾸십시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젊은 제게도 어떤 지혜가 있다면,

사람이 나면서부터 지식으로 가득한 게 단연코 으뜸이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실 그렇기는 어려우니까요. –

좋은 충고를 하는 이에게서 배우는 것도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

(180)

그러니 아들이여, 이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시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요.

하지만 실수했을 때, 한 번 잘못에 빠졌어도

치유책을 찾고 고집 부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결코 생각 없고 운 없는 사람이 아니오.

그대도 알다시피, 자만은 어리석다는 평을 빚질 뿐이오.

어쨌든, 고인에게 양보하고 죽은 이를

찔러 대지 마시오. 죽은 자를 또 죽이는 게 무슨 용기 있는 행동이겠소?

그대에게 호의를 품었기에 좋게 말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득이 되는 좋은 충고를 하면,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은 일이오.

.

(350)

그러니 만일 누가 두 날 혹은

더 많은 날들에 궁리한다면,

그건 헛된 짓이오. 내일이란 없으니 말이오,

오늘을 잘 보내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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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셜록 홈즈는 의학도가 아니었다. 나는 그 점에 관한 어떤 질문을 던져서 스팸포드의 주장을 확인했다. 또한 그는 어떤 과학 분야에서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학문의 세계에 정식으로 입문할 생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열성이 지극해서, 기묘한 범위 내에서 그의 지식은 말할 수 없이 풍부하고 정밀했으며, 그의 뛰어난 관찰력 앞에서 나는 번번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떤 뚜렷한 목적이 없다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리도 없거니와 그토록 정밀한 지식을 쌓을 리도 없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좀처럼 정확한 지식을 쌓지 못한다. 아무 목적도 없이 그토록 사소한 것들로 정신에 부담을 지울 사람은 없는 것이다.

(27)

홈즈는 말했다.

나는 인간의 뇌가 본디 텅 빈 다락방과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 방에 가구를 골라서 채워넣어야 합니다. 온갖 잡동사니를 닥치는 대로 쓸어넣는 사람은 바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다가는 쓸모 있는 지식은 밀려나오거나 다른 것들과 뒤죽박죽돼서 필요할 때 꺼내쓰지 못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뛰어난 장인은 다락방에 넣어둘 것을 고르는데 극히 조심스럽지요. 그는 요긴하게 쓰이는 연장만 고를 겁니다. 또 구색을 잘 맞춰서 순서대로 넣어두어야 하지요. 그 조그만 방의 벽이 무한정 늘어나서 무엇이든 다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입니다. 그러면 어떤 지식을 더할 때마다 전에 알았던 것을 잊어버리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실이 유용한 지식을 밀어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지요.”

 .

(71)

이것은 주홍색(비유적으로 죄악을 상징하는 빛깔 옮긴이) 연구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나 같은 사람이 예술적인 표현을 좀 쓴다고 해서 안 될 건 없을 겁니다. 삶의 무채색 실 꾸러미 속에, 주홍빛 살인의 혈맥이 면면히 흐르고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은 그 실꾸리를 풀어서 살인의 혈맥을 찾아내어 그것을 가차 없이 드러내는 것입니다.

(205)

그럴 겁니다. 어디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해 보기로 하지요. 보통 사람들에게 많은 사실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결과를 예측해 낼 수 있습니다. 즉 많은 사실을 머릿속에 입력하면 그걸 가지고 어떤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결과를 말해 주었을 때, 그러한 결과에 이르게 된 전 단계들을 마음속으로 더듬어낼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러한 능력이 바로 내가 말하는 역추리, 또는 분석적 사고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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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지구 사회는 곳곳에서 갈수록 빈발하는, 그리고 갈수록 혹심해지는 가뭄과 홍수, 태풍과 폭풍, 대규모 산불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데다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벌과 나비 등 곤충들의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수많은 종들의 멸종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북극의 빙하 외에 히말라야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그리고 안데스산맥의 봉우리에서도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빙하와 만년설을 발원지로 하는 주요 하천들에서 언제 물이 마를지 모르고, 따라서 그러한 하천의 의지해서 살아가는 세계 인구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의 운명이 갈수록 위태로워져가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기막힌 사태인데, 과학자들 중에는 이보다 더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늘에서 꽤 오래전부터 뭉게구름을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그 하늘에서 아예 구름 한 점도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단지 온난화를 초래할 뿐만이 아니라, 기류의 순환, 해류의 순환, 물의 순환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16)

강한 자는 약한 자의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이것은 하워드 진도 말했던 미국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우월성 관념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월한 자앞에서는 그보다 힘이 약하거나 열등한 처지에 있는 자는 굴복하고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저항은 보복을 각오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에서 무수한 나라들이 겪었던 일들이다.

(67)

특히 농민들의 피해는 너무도 크고 아팠다. 2014 9 29일 토지수용을 당한 홍천군 서면 동막리 정씨(53)는 조상 대대로 농사지어온 농토와 선산을 골프장 짓는 데 내줘야 했다. 묘지는 이미 사전에 훼손돼서 유골도 찾을 수 없었다. 변씨(59) 부부는 19년간 가꿔온 집과 나무 800그루와 살림살이까지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빼앗겼다. 집 앞으로 흐르던 하천도 홍천군이 사업자에게 팔아 폐천된 상태로 묻히고 있다. 변씨는 무너지는 집터에 앉아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김씨(80) 부부는 20년 전 귀농했다. 통나무집을 짓고 농토를 개간하며 가축을 길렀다. 그러나 토지수용이 재개되면서 거주지를 빼앗겨 인근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살고 있지만 형편이 말이 아니다. 백씨(59)는 골프장 공사로 인해 112마리의 돼지가 폐사했고, 최근 남아 있는 모돈 26마리도 치우지 않는다고 사업자들이 산속으로 끌고 가 가둬 놓은 상태다. 농장을 강제수용하기 위해서 주민이 불응하면 행정대집행을 통한 행위를 해야 함에도 완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이다.

(109)

에너지전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은, 독일은 다른 나라들처럼 원자력에 목을 매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베를린 소재의 싱크탱크 에코연구소의 창립자이자 전 소장인 안드레아스 크레머에 의하면, “독일인들은 자신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선한 행동을 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생각하고 있다.

(123-124)

잘 알려진 것처럼, 빌 게이츠 자신은 아무것도 발명한 게 없습니다. BASIC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어떤 대학의 수학 교수 몇 명이 만든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운영시스템은 어떤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만든 것이었는데, 빌 게이츠가 그것을 5만 달러에 샀어요. 그는 소프트웨어를 특허화해서 제국을 건설한 겁니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열린 WTO 첫 회의는 그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어요. 그 때문에 모든 IT기업이 인도로 옮겨 온 것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인도의 실리콘밸리 된 것은 인도의 저임노동을 이용함으로써 기업들이 매년 400억 달러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빌 게이츠를 위한 아웃소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의 화폐 거래를 불법화하고, 오로지 디지털을 통한 지불 방식만을 강요함으로써 엄청난 돈을 벌게 된 것은 빌 게이츠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한 디지털경제에 필요한 모든 소프트웨어에 대한 임대료와 특허사용료를 취득하기 때문입니다.

(127)

그게 오늘의 비극이죠. ‘1%의 현금제조기가 너무도 힘이 세져서 실제로 아주 강력하게 정치기구를 통제하고 있는 게 오늘의 세계 상황입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미국의 선거에서는 페이스북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트럼프의 최측근 참모였던 스티브 배넌이 관여하는 정치컨설팅 회사)에 고객들의 신상정보를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증오의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대통령을 갖게 되었죠. 여성들에 대한 증오, 흑인에 대한 증오, 무슬림에 대한 증오,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 말입니다. 증오의 기계로는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1%가 우리의 하나됨을 파괴하고, 우리의 결속을 파괴하는 분할통치를 획책하는 동안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저 1%는 우리가 하나의 인류이며, 우리가 지구의 권리와 우리의 식량과 물과 생계에 대한 기초적 권리를 위해서, 그리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울 때 우리가 강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136-137)

   - 이영광

나도 몰래 불쑥 튀어나오던 말

모멸과 비굴의 얼굴로 엎드려 빌게 만들고

회사를 때려치우게 하고

이혼장에 서명하게 하던 말

뱃속에 담고 있으면서도 한 번

만져본 적 없는 내장 같은,

그 말을 대체 무슨 생각으로 했을까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평생이 다

갈 것 같던 말

생각 없이 뱉어져,

생각들을 모조리 중지시키던 말

생각 없는 말 속에 숨은 생각의 악귀가

심어준 것 아닐까 싶던 말

생각보다도, 깊은 생각보다도 더 어두운 내장 속

단 하나의 꺼진 가로등처럼

웅크렸던 말

엎질러진 물 같던 말

반드시 다시 주워 담아야 하는

엎질러진 물 같던 말

날벼락에 맞아 불난 집 같던

태우다가는, 잿더미에 혈혈단신으로

꽂혀 있게 하던 말, 그런 말을

기다리고 있다 몇 번이다 날 죽인

파괴와 끝장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또 죽어보려고,

잿더미보다 더 쓸모없는 백지 앞에서 장난처럼

생이 장난이 된 사람처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생은 장난이다

장난이고말고

(190)

오늘날 곰(자연)을 인간과 동등하게 대하는 일은 거의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그만큼 신화의 세상으로부터 아득히 먼 길을 떠나왔기 때문이지. 대칭성의 시소는 한쪽으로 너무 기울었어. 파우스트가 보여주듯, 인간은 자신들만을 위한 복락의 뉴타운을 건설하기 위해 거침없이 바다를 메웠지, 그때 끝없이 반복되는 영원한 신화의 시간으로서 파도 또한 사라졌지. 역사가 승리했고, 신화가 패배했어. 회귀 대신 전진이 있을 뿐이야. 신화와 역사, 자연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던 통로 같은 것도 진작 사라졌지. 그 통로를 자유롭게 오가던 샤먼도 권위를 잃었고 말이야. 우리 시대의 주술사인 시인들에게 마지막 산소공급을 기대해보지만, 글쎄,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통로는 미세먼저로, 플라스틱으로, 핵으로, 탐욕으로, 투기자본으로, 게다가 너무 많은 정보로 시시각각 메워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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