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외국어의 평화를 잠식하는 것은 대체로 동사라는 막강한 빌런의 공이 크다. 마치 공부를 잘해도 수학을 못하면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동사를 잘 구사한다는 뜻과 많이 다르지 않다. 우선 동사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주어가 하나인지 둘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중요하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에서 완료시제를 배울 때, ‘have+pp’라는 공식을 암기했던 사람들은 과거-현재-미래 말고도 또 다른 시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나마 경험했을 것이다. 외국어를 배울 때 고생문이 열리는 지점은 그러니까 바로 이런 순간, 시제를 배울 때다.


(72)

나는 강박적으로 모호함을 싫어하는, 융통성 없는 이 언어를, ‘어제의 세계를 기억하는 말들을, 좀더 알고 싶어졌다. 츠바이크의 작별 인사를 언젠가 독일어 원문으로 읽어보고 싶은 소박하지만 영 허황된 바람도 생겼다. 무엇보다 독일어를 공부할 때는 이 언어가 나에게 실질적인 효용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서인지, 교양이 올라가는(?) 느낌마저 든다. 대단한 대가가 되는 일 같은 건 애초에 기대할 수 없는 일, 열심히 해도 잘하기는 쉽지 않은 일, 무엇보다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매달리고 싶어지는 그런 때가 있다. 요약하면 그것이 바로 쓸데없는 일의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88~89)

정말로 스페인어는 정다운 언어 같다고 생각한다. ‘이라는가 이라는 정서, 혹은 라는 개념이 우리한테만 있는 특산품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코코>만 봐도, 거기도 있을 거 있다. 한도 있고, 정도 있고, 심지어 그 효도 있고 그렇다. 스페인어를 들으면, 정말이기 독일어는 세상 무뚝뚝하고, 프랑스어는 살짝 간질거리는 것 같고, 영어는 새삼 밍밍하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스페인어는 확실히 모음으로 끝나는 단어가 많아서인지 부드럽기도 한 느낌이다. 그래서 노래하기에도 좋은 언어인 것 같다.


(162)

그러므로 쓸 일도 없는 불어를 기억하려고 애쓰고, 뜬금없이 독일어 관사와 씨름을 해대고, 일드의 명대사를 반복하거나 스페인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중국어 성조를 외우며 고개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은 떠나지 않고, 떠난 척해보고 싶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도 같다. 키에르케고르 원서를 읽어보겠다고 무심하게 네덜란드어를 하나 마스터하신 서강대 철학과 강영안 교수님이나, 혹은 그 바쁜 스케줄에도 중국어, 영어, 일어로 유창하게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빅뱅의 승리 씨처럼 언어 감각이 탁월하거나 부지런하지는 못한 까닭에, 나의 외국어들은 대체로 그저 아장아장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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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쓰기는 분명 망각의 결과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고, 미술은 그 다음으로 중요한 방편이다. 그림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 하나가 정확히 이 동기를 설명해준다. 로마 역사가 대 플리니우스가 전해주었고, 18~19세기 유럽 미술에 종종 등장하는 주제다. 사랑에 깊이 빠진 젊은 남녀가 헤어질 순간에 이르자, 아쉬운 마음에 여자는 연인의 그림자 윤곽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여자는 기억을 잃을까 두려워 까맣게 태운 지팡이 끝으로 무덤 벽면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 선을 따라 그린다. 르노의 장면 묘사는 특히나 애절하다. 부드러운 저녁 하늘은 연인이 함께하는 마지막날이 저물고 있음을 암시한다. 양치기의 전통적 상징인 소박한 피리는 남자의 손에 무심히 쥐여 있는 반면, 왼쪽에서 여자를 올려다보고 있는 개는 보는 이게게 정절과 헌신을 일깨운다. 여자는 남자가 떠났을 때 자신의 마음 속에 남자를 더 선명하고 더 강하게 붙잡아두기 위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코의 정확한 모양, 곱슬거리는 머릿결, 둥근 턱선과 치켜 올라간 어깨는 남자가 수 마일 떨어진 푸른 계속에서 가축에 신경쓰는 동안에도 여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17)

삶에 고단할수록 우리는 우아한 꽃 그림에 더 깊이 감동하게 된다. 눈물이 나온다면 이는 그 이미지가 얼마나 슬픈가에 반응해서가 아니다. 유리병 속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국화를 그린 사람은 그의 자화상이 말해주듯, 인생의 비극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자화상은 이 화가가 어리석은 천진함 때문에 우리에게 즐거운 이미지를 보여줬을 거라는 일말의 우려를 확실히 잠재운다. 앙리 판 탱라투르는 비극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반대쪽으로 더 강한 생명력을 뿜어냈다.


(19)

세상의 많은 예술이 단지 예쁘기만 하진 않다. 어떤 예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을 철저히 이상화해 보여준다. 이는 현대적 감수성에 훨씬 더 난처하게 다가올 수 있다. 스코틀랜드 왕립의사협회는 에든버러 뉴타운의 중심부에 서 있다. 이 건물 안에서 벌어질 법한 절차들을 상상해보라. 고결한 품위, 박식함과 온화한 권위, 전문가에게 꼭 들어맞는 얼굴, 에든버러의 의사들은 분명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리라. 이 건물은 세상에 당당한 전면을 내보이고서, 존경, 더 나아가 숭배를 요구한다. 이 건물은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


(24-25)

우리는 수많은 예술적 성취를 예술가의 승화된슬픔이라고 보고, 결국 관객도 작품을 접하며 슬픔을 승화시킨다고 본다. 승화라는 말은 화학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단단한 물질이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직접 기체로 변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예술에서 승화는 천하고 보잘것없는 경험이 고상하고 세련된 경험으로 변환되는 심리적 변형 과정을 가리킨다. 슬픔이 예술을 만날 때 일어날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27)

그림은 우리의 인간관계나, 일상의 스트레스와 고난을 직접 가리키지 않는다. 이 그림의 기능은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의 거대함을 날카롭게 의식하는 심리 상태를 일깨우는 것이다. 작품은 슬프다기보다 음울하고, 고요하지만 절망적이지 않다. 그런 심리 상태, 좀더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영혼의 그런 상태에서 예술작품을 접할 때 종종 그렇듯, 우리 앞에 놓인 강렬하고 다루기 힘든 구체적인 슬픔들은 더 잘 극복할 채비를 하게 된다.


(53)

우리의 주된 결점,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는 원인 중 하나는 우리 주위에 늘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 있다. 우리는 눈앞에 있는 것의 가치를 보지 못해 고생하고, 매혹적인 것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종종 엉뚱한 갈망을 품는다.

문제의 한 원인은 상황에 익숙해지는 우리의 능력, 즉 우리가 습관화라는 기술의 달인이라는 데 있다. 습관이란 우리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 운전 습관이 들기 전 우리는 운전대 앞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빈틈없이 의식해야 한다. 소리, , 움직임에 그리고 강철 상자를 조종해 빠르게 세상을 누비고 다닐 수 있다는 순진하고도 놀라운 경이로움에 바짝 긴장해 모든 감각을 동원한다. 이 과잉 의식 때문에 운전은 신경과민의 시금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 년을 타고 다니고 나면 점차 기어 변속이나 계기판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먼길을 운전하게 된다. 행동은 기계적이 되고, 로터리를 도는 동안 인생의 의미에 침잠할 수도 있다.


(94)

사랑은 당연히 인생의 큰 즐거움이어야 하지만, 나와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은 다음 아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연인들 사이에 오가는 잔인함의 정도는 철전지원수 저리 가라다. 우리는 사랑이 충만함의 강력한 원천이길 바라지만, 사랑은 때때로 무시, 헛된 갈망, 복수, 자포자기의 무대로 변한다. 우리는 부루퉁하거나 째쩨해지고, 성가시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고, 어떻게 혹은 왜 그런지 이해조차 못하고서 자신의 삶과 한때 자신이 좋아한다고 맹세했던 사람의 삶을 망가뜨린다.


(135-6)

우리가 억누르고 있는 걱정거리는 생의 특별한 마지막 순간만이 아니다. 거기엔 우리가 나이를 먹고, 건강을 잃고, 시들고 쇠약해진다는 사실이 딸려 있다. 생의 현 단계는 순식간에 흘러가고, 돌이켜보면 무상하기 그지없다. 스무 살이 되면 일곱 살 때 보낸 수천 시간은 휴지 조각처럼 느껴진다. 쉰 살이 되면 이십대에 보낸 십 년 세월이 한순간처럼 덧없어진다. 삶의 문제들은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며칠, 그리고 강렬하거나 혹은 멍한 몇 시간 동안은 아주 크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모두가 사소해져 기억조차 희미한 하찮은 과거의 일이 된다.


(228)

예술에 진정한 열망은 그 필요성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술이 다루는 가치, 즉 아름다움, 의미의 깊이, 좋은 관계, 자연의 감상, 덧없는 인생에 대한 인식, 공감, 자비 등에 냉담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예술이 나타내는 이상들을 흡수한 뒤, 아무리 우아하고 의도적이어도 단지 상징적으로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가치들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의 궁극적 목표는 예술작품이 조금 덜 필요해지는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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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저는 <삼국유사>에도 그리스 신화, 로마 신화처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정말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가 시험을 위한 공부로 <삼국유사>를 접했기 때문에 몰랐을 뿐이죠.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를 비교하며 차이점을 표로 그리면서 외우느라 정작 그 이야기에는 소홀했던 겁니다. 기전체의 관찬 사서, 기사본말체의 사찬 사서 등 형식적인 내용을 공부하느라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놓친 것이죠.

(39-40)

역사는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공부입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긴 시간 안에 엄청나게 많은 삶의 이야기가 녹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절로 가슴이 뜁니다. 가슴 뛰는 삶을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과 선택과 행동에 깊이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들을 계속 만나다 보면 좀 더 의미 있게 살기 위한 고민,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힘든 세상에서도 자신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법을 배우게 될 테죠. 그게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71)

그가 조정에서 물러난 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요. 자신의 생가에 걸어 놓은 현판이죠. ‘여유당(與猶堂)’이라고 쓰인 현판인데, 얼핏 들으면 이제 좀 여유를 갖고 편하게 살겠다는 뜻인가?”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실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이

()함이여, 너의 이웃을 두려워하듯이.”

이 글귀는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고,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경계하라는 의미예요. 안 그래도 눈엣가시인데 무엇 하나라도 트집을 잡아보려는 무리가 눈에 불을 켜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사방을 경계하고 신중하게 하루를 보내라는 의미로 그런 글자를 써둔 거예요. 정약용은 매일 현판을 쳐다보면서 오늘 하루도 행동거지 하나하나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79)

마지막으로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104)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른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손을 배우죠. 역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나라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가끔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하를 호령하던 인물이 쓸쓸하고 비참하게 죽는가 하면, 사방으로 위세를 떨치던 대제국이 한순간에 지도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하니까요. 역사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비일비재합니다.

(164-5)

누군가와 처음 만나서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 역사를 화제에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상대와 나 사이에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그래서 출신 학교를 묻고, 지역을 묻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역사적 사실로 다가가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어요? 역사는 꽤 유용한 소통의 도구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서 상대와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야 하는지 고민된다면 역사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분명 같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207-8)

박상진이 판사를 꿈꾼 사람이라면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거예요. 판사라는 꿈을 드디어 이룬 셈인데 그걸 내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하지만 박상진의 꿈은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다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이게 그의 꿈이었어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판사라는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 진짜 꿈이었으니까요. 그 꿈을 향해 나아간 것뿐입니다.

(235)

이원익은 스물두 살에 과거에 급제해서 명종, 선조, 광해군, 인조 네 임금 밑에서 무려 여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인물입니다. 한 번 되기도 힘든 영의정을 여섯 번이나 했다니 그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을까 싶지요? 그런데 그는 오두막에서 일반 백성들과 다름없이 살았습니다. 영의정은커녕 양반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난했어요.

(258)

역사를 공부하면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맥락이 잡힙니다.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는 늘 이기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예요.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문제란 별로 없습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의 움직임도 알고 보면 역사에서 그 문제의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더 폭넓게 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 문제의 핵심을 바라보고 해결하는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또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292)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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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가 말하려는 하는 것은, 구례가 비록 우리 현대사에서는, 피아골 공비의 이미지와 겹치는 불운한 벽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고, 당대사를 다룬 걸작 역사서가 탄생할 만큼의 정보가 오가는 물류의 교차로였다는 것이다. 무지한 미군놈들이 함부로 총구를 들이댈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 고을 한 고을마다 축적된 문명의 심도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아메리카의 산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명, 문화의 서기가, 풀 한 포기에도 자욱하다. 정유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심한 고문을 당하고도 칠천량해전의 참상을 연민하며 백의종군 하겠다고 쓸쓸한 심사를 달래며 거쳐간 곳이 구례이며(구례에 지금도 백의종군로가 남아있다. 구례군민들의 지극한 간호와 위로로 이순신은 고문의 여독을 좀 풀 수 있었다), 해방 후 지방 건준조직이 최초로 결성된 곳도 구례다.

(60)

우리가 중국의 속국인 듯한 인식을 갖게 되는 것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쿠데타사건 이후로 과도하게 조선왕조를 스스로 비하시키고, 제후국으로서의 모든 프로토콜을 엄수하게 된 이후의 사태이다. 조선왕조의 성립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성계는 고려제국에서 본다면 아웃사이더적인 인물이었고, 그의 군사쿠데타는 정통성이나 정당성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정도전이나 조준 같은 개국공신들의 인식체계를 통하여 고려말 사회를 필망(必亡)”의 혼란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공민왕의 반원 개혁정치를 잘 도와 새로운 세상을 도모했더라면, 친명이 그토록 비굴한 사대나 이념적 굴종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새로운 정권 이씨조선은 개국초기의 혼란상이나 정통성 부재의 현실, 그 모든 것을 철저히 명에 대한 굴종적 아이덴티티를 통하여 극복하려 했다.

(69)

1236년에 시작하여 1251년까지, 그러니까 16년 동안에 이루어진 이 기적 같은 대장경사업을 단지 몽골의 변화를 불심으로 극복하겠다는 종교적 신념의 한 금자탑으로 보는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 생각해보라! 6.25전쟁 때 북쪽에서 엄청난 탱크군단이 밀려오는데 그것을 대장경판각으로 물리친다!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될 성부른 말인가? 3차의 대장경조조는 제1차와 제2차의 대장경조조와의 연속선상에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몽골별의 화환(禍患)은 세계적인 대문화사업의 계기를 마련한 것일 뿐, 표면적 레토릭이 어떠한 상징적 수법을 쓰고 있든지간에 그것은 고려라는 대제국의 역량이 문화적 사업과 전쟁사업을 분리시켜 진행시킬 수 있을 만큼의 거대한 포텐셜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택도 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16년간의 제3차 고려대장경의 조조는 그 자체로써 전쟁대비사업보다도 더 막대한 재력과 인력을 소모해야만 하는 것이다.

(74)

나는 개인적으로 정도전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 직계 장손과도 친하게 지냈고, 그에 관해 책도 썼고, 강연도 많이 했다. 그리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처럼 자격 있는 혁명가를 찾기도 힘들다. 그는 맑스나 레닌과 같은 진짜 혁명가이다. 이론과 실제를 다 갖춘, 혁명을 위하여 자기의 삶을 불사른 멋진 사나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전체대의를 위해 생각을 해볼 때, 그가 저지른 오류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오류는 고려대제국의 실태와 그 가치를 근원적으로 훼멸시킨 것에 관한 것이다. <고려국사>는 용서할 수 없는, 왜곡의 사서이다. 그것이 정도전 개인의 오류로 끝났으면 다행이겠지만, 향후 조선민족의 역사 인식 전체에 너무도 끔찍한 악영향을 미쳤다.

(90)

원 지사에 대한 제주도민의 사랑은 무척 깊습니다. 그렇다면 그 깊은 만큼 원 지사는 깊이 제주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진정 제주도 사람이 무엇인지, 그 아이덴티티에 대한 깊은 감각이 없습니다. 제주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가치있게 사는 것인가에 관한 심오한 반추가 없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중앙정계로의 진출뿐이고, 그 관심을 집중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천박한 개발모델의 전위로 만드는 것이죠. 그는 제주도민의 깊은 기대와 사랑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위대한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꼭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사로서 정말 제주도를 위대하게 만들 때만이 혹 결과적으로 대선의 기회도 올 수 있는 것이지, 대통령 되기 위해 산다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 있습니까? 제주사랑이 무엇인지, 제주역사가 무엇인지, 제주비젼이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 문명이 있으면 반문명도 있어야 하고, 유위(有爲)가 있으면 무위(無爲)도 있어야 한다는 것, 선생님의 책을 젊은 날에 읽었다고 한다면, 선생님께서 그런 것 좀 원희룡에게 가르쳐 주세요. 조금만 정신 차리면 훌륭한 인물이 될 텐데 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아요. 제주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대치할 만한 스타도 없고 참 딱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애정 어린 깊이 있는 제주도사람 양 교수의 크리티칼 멘트였다.

(103)

여순민중항쟁이야말로 세계사를 선도한 조선민중의 정의감의 발로였으며, 여순민중항쟁을 빌미로 6.25동란을 위시한 향후의 모든 세계사적 비극이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났고, 우익반공파시즘의 가치체계가 설칠 수 있었는가 하며, 또 반면 우리 민중의 심오한 내성의 양심 속에서 인류사에 새로운 희망을 던질 수 있는 민주의 촛불이 켜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어마어마한 세계사적 사건을 해방 정북의 복잡하고 중층적인 인식체계로부터 접근해야만 합니다. 나는 이 접근을 시도하기 전에 여러분과 함께 다음과 진실을 외쳐야만 하겠습니다. 여순은 민중항쟁이다!

(132)

우리는 해방이라는 원점의 성격으로부터 다시 문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해방을 맞이하는 건준이라고 하는 슬기로운 주체세력이 있었고 그것은 전국의 인민위원회 조식의 구심점이 되었지만, 해방을 가능케 한 물리적 주동세력은 미국과 소련이라고 하는, 세계사의 무대를 분할하는 양대 신흥세력이었다는 것은 이미 갈파한 바와 같아. 해방의 주체가 우리민족이 아닌, 미국과 소련이었다고 한다면 이 해방정국 공백의 새로운 모델링의 결말은 이미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미국에 붙어 미국말을 잘 듣는 놈이 이남을 먹을 것이요, 소련에 붙어 소련말을 잘 듣는 놈이 이북을 먹을 것이다. 이 두 놈은 모두 토착세력이 아닐 것이고 소련과 미국에서 자기세력을 키웠거나, 소련과 미국의 지도자들에 특별한 총애를 받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141)

동아시아역사에 대하여 맥아더가 저지른 가장 큰 오류는, 인류사의 근원적 진보에 공헌할 수 있는 결정적 찬스를 놓친 죄악에 가까운 오류는 전후에 일본의 천황제를 존속시킨 것이다.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것이 미국의 일본지배를 쉽게 만들고, 동아시아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히로히토는 1945 9 27일 맥아더의 SCAP 헤드쿼터를 두 발로 찾아가 목숨을 구걸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해관계에 전적으로 부속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은 미국이 나치정권의 독일국가를 근원적으로 해체시킨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전후처리였다. 일본국가가 근원적 변화가 없이 존속하도록 하면서 몇 명의 전범만 코스메틱한 효과로 처형한 것이다.

(173)

여러분들은 해방정국에서 좆됐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나의 말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좆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8 15일부터 움츠러들었고 소리 없이 지냈다. 그런데 움츠러든 사람들은 누에의 굴신작용처럼 반드시 펼 날을 기약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촛불혁명 때문에 움츠러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좆됐다파들은 대체로 가문이 좋고 지체가 높고 지식이 많았고, 영어를 잘했고 서구유학파들이고 기독교도들이 많았다. 이들은 건준에 가담하지 않았고 건준+인민위원회세상의 형국을 불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희소식이 날아왔다. ! 미군이 온다! 드디어 미국이 입성한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 이제 움츠리고만 있을 수 없다. 기지개를 펴자! 이들은 본시 서양파들이었기 때문에 미군의 입성, 미국이 조선의 최대의 권좌를 차지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밭에서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물을 부어 연못을 만들어주는 것과 똑같았다.

(232-3)

4*3은 결코 무장봉기가 아니다. 억눌린 민중이 소총 몇 자루 가지고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을 민중항쟁의 핵심적 사태로 인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항쟁의 가냘픈 호소일 뿐이다. 그들을 결코 무장대라고 불러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무장대가 되려면 무력을 계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나, 월맹의 호치민과 같이 지속적으로 무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4*3사태 이후의 토벌이라는 것은 무장 대 무장의 전쟁이 아니라, 그냥 정부병력의 민간학살일 뿐이다. 4*3의 의미를 침소봉대할 수 없다. 산으로 피신 간 사람들은 무장투쟁을 위해 간 것이 아니라, 단지 학살을 피하기 위한 도피였을 뿐이다.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다. 또한 사가들이 오해하는 거대한 오류 중의 하나가 무장대의 무장봉기남로당과 관련시키는 것이다.

(239-40)

박진경의 도민학살을 견디다 못해 그의 암살을 기획한 것은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였다. 그리고 그 거사에 동조한 양회천 이등상사, 신상우 하사, 강승규 하사, 배경용 하사, 이정우 하사(입산 미체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의 이름도 같이 기억되어야 한다. 문상길 중위는 충청도 사람으로 육사 3시다. 3중대장이었으며 독실한 기독교이었다. 그의 최후진술은 다음과 같다.

이 법정은 미군정의 법정이며, 미군정장관인 딘 장군의 총애를 받던 박진경 대령의 살해범을 재판하는 사람들로써 구성된 법정이다. 우리가 군인으로서 자기 직속상관을 살해하고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음을 결심하고 행동한 것이다. 재판장 이하 전 법관도 모두 우리민족이기에, 우리가 민족반역자를 처형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을 가질 줄로 안다. 우리에게 총살형을 선고하는 데 대하여 민족적인 양심 때문에 대단히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법정에 대하여 조금도 원한을 가지지 않는다. 안심하기 바란다. 박진경 연대장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갔고, 수일 후에는 우리가 간다. 그리고 재판장 이후 모든 사람들도 저세상에 갈 것이다. 그러면 우리와 박진경 연대장과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저세상 하느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인간의 법적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느님의 법적은 절대적으로 공평하다.”

(294)

이 미군정의 미곡수집령이야말로 1946년 전국적인 10월봉기의 주요 원인이었으며 제주 4*3과 여순민중항쟁의 가장 근원적인 요인이다. 이것은 남로당의 정치적 공작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남로당은 그러한 대중동원조직체계나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다. 그것은 몇몇 지식인들이나 지식인 반열에 들고 싶어하는 허영끼 있는 인간들의 픽션에 불과했다. 민중에게 절실한 것은 오직 이지 공산이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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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6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

물론 인간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이 문제가 아니었던 때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너무도 지나친 데다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니, 세계적 차원으로 눈을 돌리면, 부의 격차는 경악할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세계의 최상위 부자 1%가 세계 전체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0%가 그만큼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이 수준까지 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언론 지면에서도 우리는 부유층이라는 말 대신에 초부유층(super-rich)이라는 말에 자주 접하게 되었다.


(6)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화석연료와 광물자원이 무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는 어마어마한 양의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매일같이 대량으로 소모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지탱하지 못하는 경제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러한 경제시스템을 그만둘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연장하고 확대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고 있다. 애초에 말도 안되게 불합리한 틀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진보니 발전이니 번영이니 하는 말로 떠받들어오다가 마침내 지금과 같은 파국 직전에 내몰렸음에도, 여전히 미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1)

석유가 현대 경제의 핵심 요소라는 점을 고려할 때, 왜 세계경제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논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는지, 우리는 이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에 근거하여 추리해볼 수 있다. , 그 이전까지 꽤 잘나가던 세계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둔화하기 시작한 것은 결국 석유의 EROEI 하강 현상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이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책략으로 도입된 것이 바로 신유주의 논리였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45)

미래에 일자리 없는 세계는 오는 것일까? 사실 일자리 없는 세계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그런 세계로 한 걸음씩 들어가려 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이런 세계를 만들려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누군가가 인공지능에 돈을 대고 있고 또 누군가가 이 미래를 정해진 미래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인공지능이 일자리 없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그런 세계를 만들려 노력하며 이것이 필연적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없이도 경험과 상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간을 여전히 필요로 하며, 로봇은 환경을 통제하는 인간의 노력이 있어야 비로소 능력을 발휘한다. 이런 현실을 두고서도 마치 기술적 대량 실업이 예정된 미래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개발을 누가 주도하고 있는지, 인간의 쓸모없음이라는 내러티브를 누가 생산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예의주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 없는 세상에 인공지능도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 없는 미래, 인간이 더는 필요 없어진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


(89)

그때 인간의 활동이란 정치다라는 따위의 사고는 지식인 특유의 도착된 사고라는 게 명확해질 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국제적 차원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도, 혹은 지역의 차원에서도, 그리고 최소의 경우 촌락공동체나 마을회의에서도, 다양한 인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일정한 질서를 가져오는 장치이며 기술이다. 그것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사람에게 생의 충일감과 보람을 주는 것도, 극히 소소하나마 개인에게 허용되는 안심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사람으로서 태어나 실재(자연)과 교감하고, 함께 살아갈 동료를 찾아내는 것은 정치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사람 사이의 진정한 사귐에 정치가 깊숙이 들어오는 것이야말로 악이다. 정치란 일상의 인간관계 속으로는 들어오지 말아야 할 필요악이다. 정치에는 계산이 붙어 있지만, 사귐에는 계산은 필요 없다. 필요하지 않다기보다 계산이 들어오면 사귐은 죽어버린다.


(145)

중국의 지금과 같은 발흥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1990년에서 2017년 사이에, GDP 903%나 성장했다. 세계의 최대 은행 4개는 이미 중국의 것이 되었다. 경제분석가 매케스가 말하듯이, “갑자기, 모든 글로벌한 사태는 중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돼버렸다. 발칸반도의 커져가는 불안정한 상황이건, 짐바브웨의 쿠데타이건, 혹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내정치이건, 모든 게 중국과 관련되고 있다.” 이는 획기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저 세계의 작은 고립된 부분의 사람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174)

측정 결과는 예정된 성화 릴레이 경로에서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극히 높은 수준의 세슘-137이 검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으로부터 거리가 멀수록 방사능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가장 먼 도쿄도 내의 세슘-137 방사능은 다른, 후쿠시마 원전에 보다 가까운 지역들과 비교해서 가장 낮았다. 따라서 도쿄 샘플의 세슘-137 방사능이 인체의 방사선 피폭량을 정량적으로 추계할 때의 기준으로 사용되었다.


(178)

축구 훈련 시설은 물론, 남자 야구와 여자 소프트볼, 성화 릴레이 등, 올림픽 행사의 상당 부분은 일본정부가 원자력 비상사태를 선언한 지역에서 행해진다. 이것은, 선수들과 일반인들에 대해서, 일본 이외의 세계의 모든 다른 경기시설에 존재하는 피폭 기준보다 20배나 높은 수준의 방사선 피폭이 합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과학아카데미가 밝힌 대로 방사선에 있어서는 역치(유해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기준치)가 따로 없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위험성을 평가한다면, 올림픽에 참가는 선수들이 방사선 관련 질환에 걸릴 위험도 20배나 더 증가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


(183)

결론은 이렇다. 일본정부는 올림픽에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면서도 제염 비용을 감축하기 위해서 16만 명의 후쿠시마 피난민들을 마치 실험동물처럼 취급하고 있다. 피난민을 재차 오염된 지역에 귀환하도록 강제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세계인들더러 믿으라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지한 과학자들이 이 피난민들에 대한 방사선 영향을 정확히 조사하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올림픽에 투입되고 있는 수십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은 후쿠시마 제1원전 재해 때문에 주거지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들이 지금 귀환을 강제당하고 있는 오염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집과 일자리와 새로운 공동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189)

이 올림픽은 역사상 최대, 최후의 눈가리개이다. 이런 눈가리개는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는 주어진 자신의 본래의 신체로, 스스로의 인생을 살고 싶다. 아이들이 원기 있게 웃는 얼굴로 뛰어노는 내일을 되찾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온갖 장애물을 넘어서 서로 손을 잡고 힘을 합쳐야 한다. 난 이 올림픽을 용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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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16: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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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0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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