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우리 온 국민이 날마다 입으로 하는 말, 읽고 쓰는 글을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 말과 우리 글로 하도록 하여

 서로 생각을 올바르게 알리고,

 서로 깨끗한 마음을 주고받고,

 저마다 하는 일을 바로 하게 되고,

 잘못된 말로 남을 속이지 않고 남에게 속지 않으며,

 어려운 말을 몰라서 세상을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어려운 말을 몰라서 죄를 짓게 되는 일이 없게 하고,

 유식함을 자랑하거나 겉치레하는 풍조와 남의 것 부러워하여 우리 것을 멸시하는 태도를 바로잡아,

 온 국민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한 마음으로 정답게 살아가는 참된 민주 통일의 나라를 세우는 바탕을 다지는 데 목표를 둔다.


(52)

말이 어려우면 그 어려운 한자말을 쓰지 말고 쉬운 우리 말을 써야 한다. 어려운 말을 쓰기 위해 어려운 글자를 배우는 바보 같은 짓을 왜 우리가 해야 하나. 더구나 한문글자를 쓰게 되면 한문글자로 된 어려운 말을 자꾸 쓰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래서 우리 말은 버림받고 죽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 말이 죽으면 우리 겨레 얼이 어디 깃들어 있을 수 있는가. 우리 말 우리 글을 없애고 우리 겨레를 죽여 없애려던 간악한 일본제국에서 해방이 된 지 53, 그동안 그대로 우리 말 우리 글 문화를 이 정도라도 꽃피워왔더니. 이제 웬일로 그 옛날로 돌아가 한문글자를 쓰고 어려운 한자말을 써서 반민주의 글문화를 만들어 교육이고 학문이고 사회생활 전체를 어지럽게 하고 나라와 겨레를 망치려고 사는 사람들이 설치게 되었는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59)

정말이지 나는 내 방에 가득 차 있는 이 책들, 그 가운데서도 지식인들, 학자들이 써놓은 책들이 싫다. 우리 글로 썼다는 이 책들이 철학이고 역사고 사회고 경제고 문학이고, 문학에서 소설이고 수필이고 시고 아동문학이고 모든 책이 잘못된 한자말, 잘못된 일본말, 일본말법, 서양말법 투성이로 되어 있다. 책이 이렇고 신문이 이렇고 방송말이 이러니 우리 말 우리 얼은 자꾸 죽어간다. 그래서 대낮에 나타난 도깨비 같은 한자말을 쓰자, 한자말을 알 수 있도록 한문글자를 쓰고 가르치자고 하는 미친 소리까지 나올 판이 됐다.


(69)

이것은 우리가 온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말과 글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 말과 글을 죽이는 한문글자를 숭배해왔기 때문이고, 한문글자로 언제까지나 이득을 얻어가지고 싶어하는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백성들을 바보로 만드는 최면술에 우리 모두가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우리는 깨어나, 우리 말과 글을 더욱 보잘 것 없이 만들고 우리 문화를 아주 싹 쓸어 없애고 우리 백성을 영원히 종살이로 묶어두려는 흉계에 맞서서 싸우기 위해 일어나야 할 때다.


(116)

그런데 우리 말과 우리 글자를 쓰자고 하는 것은 취미가 아닌가?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것은 다르다. 우리 민족이 우리 민족의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고, 우리 민족의 말을 적는 글자를 쓰자고 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밥을 같이 먹고 물을 같이 마시자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 말 우리 글은 우리가 먹는 밥이고 마시는 물이고 숨쉬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176)

왜 문인들의 글이 잘못되었는가? 삶이 없이, 방 안에서 글만 쓰기 때문이다. 책만 일고 글을 쓰니 그 글이 살아 있는 지식으로, 책에서 읽은 이론으로, 방에 앉아 떠올리는 생각만으로 글을 쓰니 그 글이 저절로 글에서만 쓰는 말로 될 수밖에 없다. 글로만 쓰는 말은 거의 모두 우리 말이 아니다. 어려운 한자말이거나 일본말, 일본말법이거나 서양말, 서양말법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잘못된 문인들의 글은 시인이란 사람들이 쓰는 시와 평론가들이 쓰는 글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나고, 소설이 그다음이고, 그래도 좀 낫다는 아동문학과 수필조차 아주 깨끗한 우리 말로 쓴 작품은 거의 없다.


(240)

바로 며칠 전에 어느 일간신문에서, <애국가>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윤치호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신문은 윤치호가 자신이 지은 <애국가>를 손수 붓으로 써서 윤치호 작사라 해놓은 것을 사진으로 공해했다. 이래서 지금까지 누가 지었는지 확실히 몰랐던 <애국가> 작사가가 윤치호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윤치호라면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로 우리 민족을 배반한 사람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를 노래가 없어서 하필이면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가 지은 노래를 의식 때마다 불러야 하나? 지금까지는 몰라서 불렀지만, 그 사실을 안 다음에는 부를 수가 없다.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내 감정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281)

아무튼 밖에서 들어오는 말을 모조리 다 버리고 순 우리 말만 쓸 수가 없는 것은 옛날에도 그랬지만 더구나 요즘은 그러하다. 어떤 이가 무슨 말이든 다 우리 말로만 쓰기를 고집해서 어설픈 말을 만들어내거나 일반 사람들도 모르는 옛말을 쓰는데, 이런 사람은 우리 말을 살리는 일에 도움이 조금도 안 된다. 남들이 쓰지 않는 말을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고, 뒤집어보면 어려운 외국말을 써서 가지가 유식함을 자랑하는 것과 똑 같은 심리에서 그렇게 한다고 볼 수 있다. ‘도로이라 하고, ‘차로찻길이라 하고, ‘계곡골짜기라 하는 것은 옳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앉는 걸상, ‘의자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날틀이라거나 학교를 배움집이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303)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글쓰기로 이뤄져 있고, 글로 움직이는 글 세상이 되어 있다. 헌법을 비롯한 모든 법이 글로 되어 있고,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 글로 적혀서 그 표적을 남긴다. 관공서의 모든 일이 글로 시행되고, 모든 정보가 글이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글이다. 학문이 글이고, 문학도 바로 글이다. 모든 종교의 경전과 교리가 역시 글이다. 언론은 말인데, 말이 곧 글이다. 옛날에는 글이 말을 따랐지만 이제는 거꾸로 말이 글에 끌려나는 판이 되었다. 세상에 글 아닌 것이 없고, 글이 전부다 .그래서 글이 잘못되고 글이 병들면 모든 자리가 잘못되고 병드는 것이다. 글은 바로 쓴다는 것은 모든 자리에서 그 맡은 일은 올바르게 하는 것이 된다. 감사원에서 감사문장을 바로 쓴다는 것이 감사라는 일을 올바르게 하는 일로 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글을 바로 쓰는 일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사회를 바로잡는 가장 으뜸가는 일, 밑뿌리가 되는 까닭이 이러하다.


(310)

방송인들이여, 책에서 말을 배우려고 하지 말라! 학생들이여, 제발 방송을 멀리하라! 책도 보기는 해야 하겠지만 그 속에 빠져버리지는 말라!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는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이 말을 잡아먹고 사람을 집어삼키는 것이 아주 엄연한 현실이다! 말은 언제나 삶 속에, 자연과 어울린 삶 속에 있는 것이다.

쉬운 말 하는 사람은 마음도 고와요!


(386)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 잣대는 결국 삶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물론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은 참고가 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삶을 키워가는 데 참고로 삼아야 하는 것이지 그것만 따라가려 하고 거기에 기대어서는 그만 자기 것을 잃어버린다. , 그것만이 사람을 사람으로 되게 하고, 자기를 자기 자신으로 되게 하는 길이다. 이래서 삶을 가꾸는 글쓰기는 아이들을 참되게 키우는 교육에 될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다시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387)

사람이나 문학을 보고 생각하는 바탕을 저울이나 잣대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람의 눈이나 생각의 잣대(저울)과 실제 어떤 물건을 재고 다는 잣대와 저울이 다른 점은, 물건을 재고 달고 하는 자나 저울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것들이 아주 기계처럼 똑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지만, 사람의 삶에서 나온 생각의 잣대나 저울은 사람마다 다른 체질과 삶과 세상 탐구에서 가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다른 개성이 있고 나타내는 모양이 다르다. 그러면서 사람마다 가진 그 생각이 반드시 충돌하거나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착하고 올바른 것이면 그럴수록 서로 어울리고 서로 채워주는 것으로 되고, 그래서 모두가 공감하는 것으로 된다고 보아야 옳다. 문학에서 글쓰기 공부를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착하고 올바른 좋은 생각,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잣대를 얻기 위한 삶을 가꾸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451)

이 진검승부(眞劍勝負)란 말은 일본어사건이나 일본 역사책을 찾아볼 것도 없이 그 옛날 일본의 무사(사무라이)들이 서로 원수가 되었을 때, 마치 서양사람들이 권총으로 서로 쏘아 죽이는 판을 벌이듯이 진짜 일본칼로 마주서서 사생결단을 내던 야만스런 풍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째서 이런 말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자꾸 쓰이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471)

본래 일본말에는 우리 말에서 받침에 해당되는 말소리가 없어서 부드럽고 곱기만 하지 힘찬 소리를 낼 수 없다. 그래서 자기 생각이나 주장을 힘차게 내세우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매김씨(관형사)로 만드는 토씨(조사) ‘’()만을 자꾸 써서 이름씨(명사)를 줄줄이 꿰어놓자니 답답할밖에 없다 .이러던 터에 ()이란 말이 나오니까 이 말소리 테끼’ ‘테키가 힘찬 받침소리가 효과가 나서 ' 대신에 이 말은 너도나도 하고 다투어 쓰게 되었다. 그러니까 일본사람들이 이 테키’()란 말이 자기들 말에서 모자란 점을 채워주는 말로 꼭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말에는 예사소리와 된소리, 열린소리와 닫힌소리, 부드러운 소리와 힘찬소리가 고루 있기 때문에 조금도 이런 말을 꾸어다가 쓸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을 쓰면 도리어 우리 말에서 닫힌소리나 거친소리가 더 많아져서 말이 사납게 되고 어설프게 되고 만다.


(513-514)

이 축제란 말은 일본말이고 일본사람들이 하는 행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사람들은 마쓰리’(祭り)라고 하여,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신령을 맞아들여 음식물을 차려 위로하고 비는 한편으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떠들썩한 판을 벌인다. 그래서 무엇을 축하하거나 기념하거나 선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행사를 가리킬 때도 마쓰리’ ‘오마쓰리라 하고, ‘祝祭란 말도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다. <일본말 사전>에도 祝祭축하하고 제사하는 것” “축하는 제가라고 풀이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제사를 지낼 때 조용하고 엄숙한 마음과 태도로 지내는 것이지, 노래하고 떠들고 춤추는 일은 없다. 노래하고 떠들고 춤추는 것은 굿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거나 춤추거나 잔치판을 벌리는 것을 일본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 축제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되었고, 얼빠진 짓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우리말 사전>에도 축제란 말을 올려놓고 축하의 제전” “축하하고 제사지냄이라 풀이해놓았으니 한심한 일이다.


(601)

부른다를 입음꼴(피동형)로 만들어놓은 불린다란 말은 경찰서에 불려갔다.” “어느 학생이 교무실에 불려 갔다고 할 때 말고는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 말로 바르게 쓰는 말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글을 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예사로 쓰고 있다. 다음에 들어놓은 보기글은 좀 양이 많은데,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많이 오염되어 있는가를 알리고 싶었고, 또 혹시 어쩌다가 이런 글에서는 이대로 써야 하지 않겠나싶은 경우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싶어 눈에 띄는 대로 적어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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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리는 여태껏 영웅으로 간주되어 왔지만 실상은 그런 찬사를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 관해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우리는 콜럼버스가 했던 일에 대해서 영웅답다고 생각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 땅에 도착해서 황금을 찾기 위해 광란의 폭력을 휘두른 게 그가 했던 일인데 말이다. 왜 우리는 앤드루 잭슨이 인디언들을 살던 곳에서 내몬 일을 영웅답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시어도어 루즈벨트를 영웅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그는 미국-스페인전쟁을 일으켜서 스페인 세력을 쿠바에서 축출했지만, 그것이 실상 쿠바의 통제권을 빼앗기 위해서 했던 일인데 말이다.


(26)

우리는 포와탄(인디언 추장)이 했다는 말에서 자기 영토에 침입한 백인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나는 우리 부족 그 누구보다도 평화와 전쟁 간의 차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사랑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을 무력으로 빼앗으려 하는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먹을 것을 제공한 우리를 파멸시키려 하는가?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찌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경계하는가? 우리는 무기도 들지 않았고, 당신들이 예의를 갖추어 대한다면 원하는 것도 기꺼이 내줄 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들과 함께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에 조용히 생활하면서 영국인들과 웃고 즐기며 동존과 도끼를 교환하는 것이, 영국인들을 피해 도망쳐 숲 속에서 도토리나 풀뿌리 등을 먹고 추적을 당하며 춥고 불안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29)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은 야생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 아니었다. 유럽과 다를 바 없이 번화한 곳도 있었다. 인디언들은 고유의 역사와 법률, 문학이 있었다. 그들은 유렵인들보다 훨씬 훌륭한 평등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과연 진보라는 말에는 그들의 사회를 파멸시켜도 될 명분이 충분히 있는 것일까? 인디언들의 이러한 운명은 정복자나 지배자들의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한 무언가가 역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74)

하지만 토머스 제퍼슨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그런 봉기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여겼다. 그는 이따금 일어나는 작은 반란들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정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약이기 때문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75)

1935년 역사학자 찰스 비어드가 발표한 헌법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접한 사람들은 분노했다. 찰스 비어드가 헌법 작성을 위해 모였던 55인에 관해 연구한 결과 그들 대부분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사체업자들이었고 대부분은 변호사였다. 그들은 현재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경제 시스템을 유지해줄 강력하고 중앙집권적인 연방정부를 만들 필요성이 있었다. 찰스 비어드는 여성, 흑인, 계약 노동자, 빈민들의 헌법 작성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힘없는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 헌법에 반영되지 않았음을 밝혔다.


(120)

에이브러햄 링컨은 경제적인 요구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공화당과 정치적 야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는 뛰어난 화술로 도덕적인 차원에서 열정적으로 노예제에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동시에 그는 노예제 폐지론이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여 정치적으로도 신중을 기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제가 옳지 못한 제도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흑인들이 백인들과 동등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가 생각했던 가장 좋은 해결책은 흑인 노예들을 해방시켜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144-5)

사회주의란 농장, 광산, 공장과 같은 모든 생산 수단들이 국가 또는 국민 전체의 소유가 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이는 공동 이익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사적 이익을 추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더 치밀하게 사유재산 자체와 재산에 근거한 계급 구분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물건이 모든 사람의 소유이며,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즘은 정부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무정부주의였다.


(205)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아리안이나 노르딕이라고 불렀던 백인 게르만 민족이 다른 민족들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민족우월주의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틀림없이 미국의 흑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군대는 인종별로 분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혈액은행조차도 백인의 혈액과 흑인의 혈액을 따로 보관했다. 혈액은행의 시스템을 만든 흑인 의사 찰스 드루는 혈액 분리에 반대하여 해고당했다.


(241-2)

여성운동에서 최초이면서 최대의 영향력을 갖는 저서는 베티 프리던이라는 중산층 가정주부가 쓴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였다. ‘신비라는 것은 사회가 여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즉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아내로, 어머니로서 살아가는 데 완벽하게 만족하는 여성상을 의미한다. 그런 이미지에 맞추어 살기 위해 여성들을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 베티 프리던은 여성이 남성들처럼 자아를 찾고 자신이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만의 일을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88-9)

빌 클린턴은 자신이 내린 결정들이 미국 국민의 여론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실시한 여론조사는 미국인들이 사람들 모두 건강보험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국민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원했으며, 정부가 빈민들과 집 없는 사람들을 돕고, 군사 예산을 감축하고,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공화, 민주 양당에는 이런 일을 추진하는 정치가가 없었다.

미국인들이 여론조사에 나타난 대로 행동했다면 어땠을까? 국민이 독립선언서에 적힌 대로 모든 사람들의 생활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단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사려 깊고 인간적인 방식으로 부를 분배하는 경제체제의 요청이 될 것이며, 젊은이들이 탐욕을 숨긴 채 성공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을 배우지 않는 문화를 의미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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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우리의 작은 도시에서는 기후 때문인지 이 모든 것이 이곳 사람들은 권태로워하고, 습관이라도 가져보려고 애를 쓴다. 우리 시민들은 열심히 일을 하지만, 그것은 대개의 경우 부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거래에 특히 관심이 많고,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무엇보다 사업에 몰두한다. 물론 단순한 기쁨에 대한 흥미도 없지 않아서 여자와 영화, 해수욕을 좋아한다. 그러나 매우 합리적인 사람들이어서 이런 쾌락들은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을 위해 아껴두고 주중의 다른 날에는 돈을 많이 벌려고 노력한다. 저녁에 퇴근하면 일정한 시간에 카페에서 모이거나 늘 같은 대로를 산책하고, 아니면 집에 가서 발코니에 자리잡는다. 젊은이들의 욕망은 격렬하고 짧은 데 반해, 나이든 사람들의 취미 생활은 공굴리기 모임이나 친목회 회식, 큰돈을 걸고 카드놀이를 하는 동호회 정도에 한정되어 있다.


(53)

몇 가지 사례만 보고 전염병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고, 예방책을 잘 세우면 그것으로 충분하겠지. 알고 있는 사실들에 집중해야 했다. 마비와 탈진 증세, 눈의 충혈, 구강 오염, 두통, 사타구니의 명울, 극심한 갈증, 정신착란, 전신에 돋는 반점, 몸안에서 느껴지는 찢어질 듯한 통증, 그리고 마침내는이런 것들에 이어서 어떤 문장이 리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의학서적은 이런 증상들을 열거한 뒤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맥박이 실낱같이 약해지고 무의미한 몸짓을 하고는 사망한다.’ 그렇다. 이런 증상들이 모두 나타난 후에 환자는 한낱 실에 매달린 형국이 되고, 그들 중 4분의 3-이것은 정확한 수치였다-은 죽음을 재촉하는 그 미미한 몸짓을 서둘러 해버리는 것이다.


(82)

그 사이에도 봄은 주변 교외 지역으로부터 시장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인도를 따라 늘어선 꽃장수들의 바구니에서 수천 송이 장미꽃들이 시들어가면서 풍기는 달콤한 향이 온 시내에 떠돌았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전차는 러시아워에 여전히 만원이었고, 낮에는 텅 비고 더러웠다. 타루는 그 작달막한 노인을 관찰했고, 노인은 고양이들에게 가래침을 뱉어댔다. 그랑은 수수께끼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 저녁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코타르는 쳇바퀴 돌 듯 맴돌았고, 수사검사 오통 씨는 여전히 자신의 동물원을 이끌고 다녔다. 늙은 해수병 환자는 콩을 옮겨 담았고, 신문기자 랑베르도 가끔 눈에 띄었는데 태연하면서도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게다가 전염병도 수그러드는 듯했다. 며칠 동안 사망자 수는 십여 명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수가 급격히 늘었다. 사망자 수가 다시 삼십 명 선으로 늘어난 날, 베르나르 리외는 도지사가 건네준 전보 공문을 읽으며 이 사람들이 겁을 먹었군요.”라고 말했다. 전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89)

그래서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던 감정, 더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미 말했듯이 오랑 시민들은 단순한 열정의 소유자들이다)에서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했다. 배우자를 전적으로 믿어온 남편들이나 연인들은 자기들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랑을 가볍게 여기던 남자들은 다시 성실해졌다.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머니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들들이 기억 속에 자꾸 떠오르는 어머니의 얼굴의 주름살 하나에도 염려하고 후회했다. 완벽할 정도로 갑작스러운데다 언제 끝날지 예견할 수도 없는 그 이별에 망연자실한 채, 우리는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토록 멀어진 존재,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삶 하루하루를 다 차지해버린 존재에 대한 추억에 저항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이중의 고통-우리 자신의 고통 그리고 집에 없는 사람들, 즉 자식, 아내 또는 연인이 겪는 고통을 상상 속에서 함께 겪고 있었다.


(95)

사실 냉정을 잃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시민들의 생각은 자기들이 기다리는 사람에게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고뇌에 빠져 있는 가운데, 그들은 사랑의 이기적인 성격 덕분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고, 페스트를 생각할 때도 페스트 때문에 이별이 끝도 없이 계속될까봐 염려스럽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전염병이 한창일 때도 그들은 건전한 여유 같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침착함으로 착각했다. 절망감 때문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불행에도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그들 중에서 누가 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대개의 경우 그 병을 조심할 여유조차 없었다. 유령 같은 존재와 나누던 기나긴 마음속 대화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그는 지체 없이 대지의 가장 무거운 침묵에 내던져졌던 것이다. 그가 뭔가를 할 시간적 여유는 전혀 없었다.


(138)

그 늙은 경비원은 타루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 차라리 지진이면 좋겠어요! 지진은 한번 흔들리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으니까요사망자와 생존자를 세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잖아요. 그런데 이 망할 놈의 병은! 그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병을 앓게 한다니까요.”


(142-3)

새벽이면 아직 인적 없는 도시에 산들바람이 분다. 밤의 죽음과 낮의 고통 사이에 있는 그 시간에도 페스트도 잠시 쉬고 숨을 돌리는 것 같다. 가게의 문은 모두 닫혀 있다. 그러나 그중 몇 곳에 붙어 있는 페스트로 인해 폐점이라는 게시문은 다른 가게와 달리 이 가게의 문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신문팔이들은 조느라 뉴스를 외쳐대지는 않지만, 길모퉁이에 등을 기댄 채 몽유병자처럼 신문을 가로등 앞으로 내밀고, 잠시 후 첫 전차 소리를 듣고 깨어나면 도시 전역으로 흩어져 페스트라는 글자가 도드라진 신문들을 내밀고 다닐 것이다. ‘가을에도 페스트가 유행할 것인가? B교수는 부정적으로 대답.’ ‘페스트 발생 94일째, 사망자 124.’


(212)

재앙만큼 보잘것없는 것은 없고, 큰 불행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런 불행을 겪은 사람들은 페스트 치하에서 보낸 끔찍한 날들을 화려하고 잔혹한 커다란 불길처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발아래 놓인 모든 것을 짓밟아버리는 끝없는 답보 상태로 기억하는 것이다.


(213)

우리 시민들, 적어도 이별로 인해 가장 고통받았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졌을까? 익숙해졌다고 말하면 그것은 결코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헐벗음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페스트 발생 초기만 해도 그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뚜렷이 기억하고 그리워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과 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이 행복해했던 어떤 날, 이런 것들은 모두 분명하게 기억났지만, 그들이 그 사람을 다시 그려보는 바로 그 순간에, 또 이제는 그렇게도 먼 곳이 되어버린 그 장소에서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그 시기에 그들은 기억력은 있었지만 상상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페스트가 둘째 단계로 접어들자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지만, 얼굴에 살이 없어져 마음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과 관련해 초기 몇 주 동안에는 환영만 상대한다고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그후에는 추억 속에 간직해온 희미한 색깔마저 잃어버림으로써, 환영도 예전보다 살이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기나긴 이별을 겪자 그들은 전에 누렸던 친밀감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고, 언제라도 손을 얹을 수 있었던 존재가 어떻게 그들 곁에 있을 수 있었는지도 더 이상 상상하지 못했다.


(214-5)

직업이 있는 사람들은 페스트와 보조를 맞춰, 꼼꼼하긴 하지만 생기라곤 전혀 없는 태도로 일을 해나갔다. 모두 겸손해졌다. 처음으로 헤어진 사람들은 헤어져 있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이 쓰는 말투를 쓰기도 하고, 자기들의 이별을 전염병의 통계수치와 연결해 검토해보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고통을 집단적 불행과 완강히 분리해 생각해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억도 희망도 없이 현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사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현재로 변했다. 페스트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나눌 힘을, 심지어 우정을 나눌 힘조차 앗아갔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사랑에는 어느 정도 미래가 요구되는데, 우리에게는 순간들만 남은 것이다.


(218)

어쨌든 이 도시에서 이별한 사람들이 처해 있던 정신 상태를 정확하게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남녀가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동안 나무 한 그루 없는 도시 위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 자욱한 황금빛 석양을 다시 한번 영원히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 자욱한 황금빛 석양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당시 도시의 일반적인 언어였던 차량 소리와 기계 소리가 사라진 가운데, 아직 해가 비치는 테라스 쪽으로 올라오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발소리와 둔탁한 목소리가 빚어내는 거대한 웅성거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겁게 덮인 하늘에서 들리는 재앙의 휘파람 소리에 리듬을 맞춰 수많은 구두창들이 고통스럽게 미끄러지는 소리, 저 끝없고 숨막히는 제자리 걸음 소리가 온 시가지를 차츰 가득 채우며 당시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랑을 대신했던 맹목적인 고집에 저녁마다 가장 충실하고 가장 음울한 목소리를 부여했던 것이다.


(245)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치 있는 대상은 이 세상에 없어요. 하지만 나 역시 이유도 모른 채 사랑하는 것을 돌보지 않고 있죠.”


(276)

시간이 지나면서 식량 보급 문제가 악화됨에 따라 또다른 걱정거리들이 생겨났다. 거기에 투기까지 끼어들어, 부족한 생활필수품들이 일반 시장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렸다. 그 결과, 가난한 가정은 무척 괴로운 상황에 놓인 반면, 부유한 가정은 부족한 것이 거의 없었다. 페스트가 가져온 공평성이 효과를 발휘해 시민들 사이에서 평등이 강화될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기심 때문에 페스트는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의의 감정만 심화시키고 말았다. 물론 죽음이라는 완전무결한 평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런 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논리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식량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다면 자신들이 떠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구호가 퍼져나가 벽보로 나붙기도 하고, 도지사가 지나갈 때 소리 내어 외치기도 했다. “빵 아니면 공기를.” 이 풍자적인 구호를 계기로 데모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곧 진압되었다. 그러나 그 심각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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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그래유시가 말했다. “여기서 핫도그를 먹고 집에 가서 폴리오에 걸려 죽었다고 이제 모두 무서워서 오지를 않아. 말도 안돼. 핫도그 때문에 폴리오에 걸리는 게 아니야. 핫도그를 수천 개는 팔았는데 아무도 폴리오에 걸리지 않았어. 그러다가 아이 하나가 폴리오에 걸리니까 모두들 이러는 거야. ‘시드네 가게에서 파는 핫도그 때문이야, 시드네 가게에서 파는 핫도그 때문이야!’ 이건 삶은 핫도그야. 삶은 핫도그로 어떻게 폴리오가 걸려?”

(81)

그래, 처음부터 우리 삶을 유지시켜준 대체 불가능한 발전기를 찬양하는 것-파란 하늘의 몸에 홀로 틀어박혀 있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저 황금의 눈과 매일 현실로서 만나는 것을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이 하느님은 선하다는 공식적 거짓말을 억지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죽이는 냉혈한 살인자 앞에 굽실거리는 것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존엄을 위해서도, 인간성을 위해서도, 가치를 위해서도, 하물며 여기서 도대체 무슨 지옥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매일매일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나았을 것이다.

(156-7)

그때 갑자기 허비와 앨런, 뉴어크에서 여름을 보내는 바람에 죽은 아이들이 떠올랐고, 그 아이들을 인디언 힐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기 때문에 꽃처럼 피어나는 같은 또래의 실라, 필리스와 비교하게 되었다. 그가 이 원기 왕성한 아이들과 함께 여름 캠프의 이 시끄러운 유원지 같은 곳에 안락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동안 프랑스 어딘가에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제이크와 데이브도 있었다. 그는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환경의 힘 앞에 이렇게 무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기 어디에 하느님이 개입하고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왜 한 사람은 손에 라이플을 쥐여 나치가 점령한 유럽에 내려보내고 다른 사람은 인디언 힐 식당 로지에서 마카로니와 치즈가 담긴 접시 앞에 앉아 있게 하는가? 하느임은 왜 위퀘이크의 한 아이는 여름 동안 폴리오에 시달리는 뉴어크에 놓아두고 다른 아이는 포코노 산맥의 멋진 피난처에 데려다놓는가? 이전에는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에서 자신의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던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왜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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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주말 외출을 자제하기 시작할 즈음,

집에서 아이들과 뭘할까 하다가

시작한 <겨울왕국 2> 영화 대본 공부.

처음 시작할 때는 끝까지 할 거라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겨울왕국 2>를 끝냈는데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이젠 코로나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

주말에 원없이 외출하는 날이 와서,

다음 영화 대본 공부는 끝까지 못하고 중단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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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05-25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좋네요!!!!
맨날 팝캐스트만 듣느데
아이들과 대본공부도하면서 영화 들어야겠어요~
:-) 좋은 밤 되세요~

bookholic 2020-05-25 00:40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겨울왕국2를 워낙 좋아해서 끝까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초딩 2020-05-25 0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본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밑줄 친 대본이요
만드신건지...

2020-05-25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5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로 인해 많은 가족들이 함께 할 시간이 늘었지만, bookholic님 가족만큼 유용하게 시간을 보낸 가족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bookholic 2020-05-25 22:34   좋아요 1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가족은 더 할 거라 생각됩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