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청결함에 관해선 아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어느 날 내가 아빠 등을 때수건으로 밀어주고 있을 때 아빠가 말했었다. 우리가 벗겨낸 이 때는 다 어디로 갈까? 너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니? 우리 몸을 깨끗이 하느라고 우린 또 뭘 더럽히고 있는 건지.

(53)

아빠가 미리 얘기해줬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일이 닥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난 잠에서 깨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잠옷 바지가 젖어 있었고 두 손도 온통 끈적끈적했다! 이불에도 묻어 있었다. 사실상 온 사방에 묻어 있었다는 게 정확한 말일 것이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바지를 벗으면서 난 아빠가 얘기해줬던 걸 떠올렸다. 그걸 사정(射精)이라고 해. 밤사이에 그 일이 일어나더라도 겁먹지 마라. 다시 오줌을 싸기 시작한 건 아니니까. 그건 새로운 미래가 시작된다는 신호야. 놀라지 말고 얼른 적응하는 편이 나아. 넌 앞으로 평생 정자를 만들어낼 테니까. 처음엔 뜻대로 조절이 안 될 거야.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쾌감을 느끼는가 싶다가 어, 어느새 끝나버리지! 그러다 점차 익숙해지면 절제할 줄도 알게 되고, 결국엔 최선의 요령을 깨우치게 될 게다.

(140)

눈물은 자아의 배설이다. 그 엄청난 양이란! 우리는 울면서 오줌 눌 때보다 훨씬 더 시원하게 자신을 비운다. 맑은 호수에 몸을 던지는 것보다도 더 깨끗이 자신을 청소한다. 그 정화의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나면 종착역에 정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눈물로 표현된 정신은 비로소 몸과도 좋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낸 몸도 오늘 밤엔 잠을 잘 것이다. 안도의 울음을 실컷 울었으니. 이제 끝났다.

(154)

건강염려증: 몸의 상태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는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망상. 정신과 몸이 서로에게 술책을 부리는 것. 어쨌든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라 일시적인 증상의 희생자일까?

(177)

몸은 사랑의 에너지 덕을 어느 정도로나 보는 걸까. 요즘은 모든 게, 정말 모든 게 다 잘 풀린다. 직장 일에서도 지치는 법이 없다.

(188-9)

손님들 앞에서 이 세상의 여덟번째 기적이라고 자랑하며 브뤼노를 흔들어대다가, 아기를 안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것이다. 앞쪽으로 넘어지면서 바닥까지 굴렀다. 정확히 열한 계단. 난 본능적으로 브뤼노를 감쌌다. 계속 구르는 중에도 아기의 머리를 내 가슴팍에 붙이고, 팔꿈치와 이두박근과 등으로 보호했다. 난 아들을 덮고 있는 껍데기였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우린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손님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손등, 골반뼈, 무릎뼈, 발목, 등뼈, 어깨, 전부 다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다. 하지만 난 구르는 와중에도, 가슴이 파이고 배가 움츠러드는 와중에도, 브뤼노가 내 품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본능적으로 인간 완충장치로 변신했던 것이다. 브뤼노가 매트리스 싸인 채 굴렀다 해도 더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난 유도를 해본 적도 없고 낙법을 배운 적도 없는데. 부성애의 놀라운 발현?

(190)

순전히 정에 겨워 아기를 어르는 것과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어르는 것 사이엔 이런 차이가 있다. 첫번째 경우, 아이는 자신이 사랑의 중심에 있다고 느낀다. 두번째 경우엔 아이를 창밖으로 던져 버리고픈 충동을 느낀다.

(224)

흠잡을 데 없는 똥. 딱 한 덩어리뿐이다. 완벽하게 매끈하고, 모양도 반듯하다. 차지면서도 끈끈하진 않고, 냄새는 나되 악취는 아니고, 단면이 깔끔하며 균질의 갈색을 띠고 있다. 딱 한 번 힘줘서 쑥 빠져나왔다. 휴지에도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니, 이거야말로 완벽한 장인의 솜씨다. 내 몸아, 참 잘해냈다.

(267)

시선을 피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가볍게 흔든다.

: 계속 이야기해봐, 관심 있으니까.

시선은 어느 한 지점에 고정하고 손가락으로 식탁 위에서 피아노 치는 시늉을 한다.

: 그 얘긴 벌써 백 번도 더 했잖아요.

속으로 어렴풋이 미소를 지으며 시선은 테이블보에 고정되어 있다.

: 내가 말은 하지 않지만, 나도 다 생각이 있다고요.

빈정거리는 미소

: 내가 맘만 먹으면 박살을 내줄 텐데.

눈의 역할

: 눈을 돌리는 건 자기 맘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의미, 눈을 크게 뜨는 건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 눈꺼풀이 축 처지면 지쳤다는 의미……

(281)

그에 따르면 이명은 아주 적응이 잘 되는 병이라고 한다. 아니, 더불어 사는 거라고 봐야지, 그가 말을 고쳤다. 그래도 어쨌든 고요함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에티엔도 나와 마찬가지로 처음엔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와 똑 같은 비유를 했다. 꼭 내 몸이 켜진 라디오에 연결돼 있는 것 같더라고. 스피커 신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정말 달갑진 않더군.

(303)

분만실에서 아기를 받을 때 그들은 둘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영원히 셋이다. 반투명한 작은 손가락들, 활짝 피어오른 뺨, 토실토실한 팔과 종아리, 통통한 배, 주름, 보조개, 아기 천사의 튼실한 궁둥이, 이 빵빵한 타이어 같은 생명체는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것이다! 또 그 눈길은! 신생아들이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우릴 바라볼 때의 눈길은 어떤 말없는 신성(神性)에 속한 걸까? 이토록 검은 동공, 이토록 선명한 홍채를 가진 두 눈은 무엇을 향해 뜨고 있는 걸까? 누구를 향해 숨겨진 이면을 열어 보이는 걸까? : 앞으로 제기될 모든 질문을 향해. 채워지지 않는 이해의 욕구를 향해. 젊은 부모는 몸의 기운을 다 빼고 난 뒤 정신의 기운까지도 다 탕진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이 피곤해하는 건, 자기들의 일에 끝이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 그레구아르의 속눈썹이 닫힌다…… 그레구아르가 잠이 든다…… 아기를 침대에 눕히는 실비의 태도는 경건하리만치 조심스럽다. 이 전지전능한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처럼 보이는 놀라운 재주를 갖고 있다.

(339)

우리처럼 소심한 보통 사람들이 자기 능력으론 조금도 제어할 수 없는 기계들(비행기, 기차, , 자동차, 승강기,  롤러코스터)을 어떻게 맘 편하게 믿고 생명을 맡길 수 있는 건지! 사용자의 수가 워낙 많다는 사실이 우리의 걱정을 가라앉히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인간의 지성을 믿는다는 얘기다. 그토록 많은 능력자가 힘을 모아 이 기계를 만들었고, 그토록 많은 비판적 지성이 매일매일 그것들에 자기 몸을 맡기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뭔가. 거기다 통계학적 논거까지 덧붙인다. 목을 러뜨릴 위험은 그런 기계 안에 들어가 있을 때보다 길을 건널 때 오히려 더 크다는 식으로. 또한 운명의 힘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운명을 기계의 우연에 맡겨야 한다고 해서 속상해할 것 없다. 악의를 가졌을지도 모르는 세포 대신에 차라리 순진한 기계가 우리 운명을 결정짓도록 놔두는 게 낫다.

(458)

내 몸과 나는 서로 상관없는 동거인으로서,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살아가고 있다. 양쪽 다 집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사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그러나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를 보며, 이젠 마지막으로 펜을 들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생 자기 몸에 관해 일기를 써온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을 거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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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강수량은 땅의 단단한 정도를 결정한다. 비가 적게 오는 서양의 땅은 단단하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돌이나 벽돌 같은 무겁지만 단단한 건축 재료를 이용해서 벽으로 지붕을 받치는 벽 중심의 건축을 했다. 반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인 동양은 장마철에 땅이 물러지기 때문에 무거운 재료로 만든 벽은 쓰러진다. 따라서 가벼운 건축 재료인 나무를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나무 기둥으로 지붕을 받치는 기둥 중심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


(62-3)

벼농사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많은 물을 다뤄야 하기에 치수를 위한 토목 공사가 많이 필요하다. 물을 담는 작은 저수지인 를 만들어야 하고 모내기도 집단으로 모여서 한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저수지나 다른 사람의 땅에서 사용한 물을 내 논으로 내려 받아서 사용하고 다시 그 물을 물길을 내어서 이웃의 땅으로 전달해 주어야 한다. 벼농사에서는 농사에 가장 중요한 물을 함께 힘을 합쳐서 공동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시기를 놓치면 농사가 어려운 품종이기 때문에 노동의 형태도 집단적으로 집중해서 심고 태풍이 오기 전에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형식을 띤다. 이러한 노동의 과정을 통해서 벼농사 지역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과 집단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벼농사는 옆에 있는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지을 수 없다. 다른 말로, 이웃과 잘 지내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받는 것이 벼농사 지역에서의 삶이다. 그래서 벼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우리 할머니는 서울에 와서도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하셨다.


(64)

반면 밀 농사는 씨 뿌리는 모습부터 다르다. 벼농사를 지을 때는 함께 줄을 맞추어서 모를 심지만, 밀 농사 지을 때는 땅 위를 혼자 걸어 다니면서 씨를 뿌린다. 집단으로 모여서 일하는 경우가 적다. 밀은 맨땅에서 자라고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비가 집중호우 없이 적당히 고루 내리는 지역에서 농사짓기 때문에 관개수로를 만들 필요도 없다. 밀 농사는 벼농사에 비해서 서로 협력할 필요도 없고, 모여서 살 필요도 적다. 자연스럽게 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관개수로 토목공사를 하고 집단 모내기를 하면서 벼농사를 짓던 사람에 비해 개인주의적 성격이 만들어지게 된다. 벼농사 지역의 이혼율이 밀 농사 지역보다 매우 낮은 이유도 이와 같은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가면 자연 속에 오두막이 띄엄띄엄 있는 평온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반면, 동양의 시골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농사 방식은 마을의 풍경도 다르게 만들었다. 노동 방식이 문명의 성격을 결정지은 것이다.


(77)

기둥 중심의 건축으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건축 공간이다 보니 여러모로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한 건축으로 발전했고, 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벼농사를 지으면서 집단행동이 필요해져 사람 간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가치관이 형성됐다면, 건축을 통해서는 사람과 건축과 주변 자연환경과의 관계에 무게를 두는 디자인관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113)

바둑과 동양 건축물의 배치 모습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만약 바둑돌을 건물이나 담장으로 보고, 바둑돌이 만드는 빈 집을 마당으로 본다면, 바둑판의 돌이 놓인 패턴과 동양 건축물 배치의 패턴이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바둑돌들이 둘러싸서 빈 공간을 만들 듯이 동양 건축에서는 건물과 담당으로 둘러싸서 마당 같은 빈 공간을 만들면서 건축물이 성장한다. 혹은 검정색 돌이 건축물, 흰색 돌이 자연이라고 생각하고 보아도 좋다. 둘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패턴이 정해지고 곳곳에 빈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둑과 동양 건축의 공통점이다.


(117)

서양의 문화는 양식이라는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반복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가는 형식이다. 이는 마치 체스에서 각각의 말들이 다른 형태의 규칙과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양식 혹은 규칙을 만들고 규정하기 좋아하는 것이 서양 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동양의 나무 기둥과 보를 가지는 구조 양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다만 건물은 놓인 대지의 조건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반응하면서 건물의 배치를 변화시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유기적이고 상대적인 공간을 연출해 왔다. 물론 여기에도 풍수지리 같은 보이지 않는 규칙은 존재했지만, 그 풍수지리라는 규칙도 물과 산과 사람의 상대적인 관계에 관심의 초점이 있다. 이렇듯 동양 건축은 양식보다는 상대적인 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왔다.


(153)

극동아시아 문화는 유교가 지배적이었다. 사후 세계보다는 현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땅 위에서의 현실 삶에서 충이나 효 같은 관계를 중요시했다. 기둥 구조를 써서 기둥과 기둥 사이로 주변 환경이 잘 보이는 동양의 건축은 땅과 연결되어서 집을 짓는 개미처럼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이 중요시 되는 건축의 성격을 띤다. 반면에 유럽은 이집트, 그리스, 기독교에서 공통적으로 사후 세계, 이데아의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위로부터 오는 형이상학적 원칙을 중요시 했다. 이들은 땅과는 관련 없이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 관념적으로 무에서 새로운 법칙을 만든다. 이러한 문화적인 특징은 주변의 아무런 영향 없이 내제된 법칙에 의해서 허공에 집을 짓는 벌과 비슷하다. 서양의 공간은 주변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자족적이고 자기 완결적이기 때문에 벌집처럼 기하학적인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피라미드판테온도 주변 환경과 상관없이 자족적인 법칙에 의해서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그 법칙은 수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이렇게 서양의 종교적 공간은 기하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184)

도자기에 그려진 중국식 정원 디자인과 중국 철학은 자연을 대하는 유럽인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곧바로 정원 디자인에 반영되어서 기존의 기하학적 형태의 정원 디자인에서 야생 상태의 자연으로 환원시키듯 디자인하는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 만한 정원 중 픽처레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곳은 뉴욕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가 있는 지역이 지금의 공원처럼 원래 그렇게 나무가 울창하고 시냇물이 흐르는 곳은 아니었다. 그곳의 언덕, 나무, 수 공간 등은 실제 자연을 재현해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디자인되고 건설된 것이다. 실제로 센트럴 파크의 호수는 인공 호수고 흐르는 물은 모터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공급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자연을 모방해서 자연스럽게디자인하는 것이 픽처레스크 정원 양식이다.


(240, 241)

인터넷에서 르 코브쥐이에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근대 건축의 5원칙이 나온다. 근대 건축의 5원칙은 근대 건축이라면 가질 법한 다섯가지 특징을 코르뷔지에가 정리해 놓은 것이다. 여기서 간단히 소개한다면, 1. 필로티, 2. 옥상 정원, 3. 자유로운 평면, 4. 자유로운 입면, 5. 리본 수평창이다.

그런데 사실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한 근대 건축의 5원칙이라는 것이 두 번째 항목인 옥상 정원을 제외하고 나면 다 동양의 기둥식 구조의 건축에서 보이는 디자인과 거의 똑같다.


(245)

생각은 창작아 자신이 의식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영향을 받고 진화하는 법이다.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제품들을 팔기위해서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를 비롯해서 1886년에는 에펠탑이 지어진 파리 만국박람회,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등 수많은 박람회의 국가관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건축 디자인이 교류되고 소개되었다. 이러한 문화적인 흐름 속에서 이미 서양의 문화는 다른 대륙의 문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한 거대한 시대 흐름 속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공간에 대한 생각이 서양식에서 동양식으로 점차적으로 진화해 갔을 것이다.


(310)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고속도로가 대표적인 예다. 멀리 떨어진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발전한 건축 시스템이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 같은 섬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을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일본 전통 정원의 경우, 좁은 공간을 넓게 인식되게 하려고 분절되고, 회전하고, 돌아가는 식의 장치를 만들어서 시간을 지연시켰고 그렇게 함으로써 같은 공간이라도 실제보다 더 넓게 인식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357)

건축에서 가장 변화하지 않는 것은 중력이라는 법칙이다. 많은 건축이 다양한 디자인을 하지만 태초부터 바뀌지 않는 건축의 본질은 중력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현대 건축에서는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형태의 건축물이 디자인되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파격적인 디자인은 본능적으로도 파격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항상 감동을 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랜드마크 건물은 구조적으로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들이었다. 이런 현상을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388)

한 공간에 모이지 못하면 종교는 집단 공간이 만드는 권력을 잃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염병은 종교 단체 최고의 적이다. 역사적으로 중세 때 흑사병으로 천 년 동안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졌던 교회가 힘을 잃었고, 이후 르네상스라는 인문 개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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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우리 몸은 거의 줄곧 다소 완벽하게 조화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37.2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주이다. 두통, 배앓이, 별난 멍이나 뾰루지는 모두 우리가 불완전함을 선언하는 정상적인 과정들이다. 우리를 죽일 수 있는 것들은 수천 가지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집대성한 국제 질병 사인 분류에 따르면, 8,000가지가 넘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하나를 전부 피하다가 한 가지에 걸릴 뿐이다. 우리 대다수에게는 그리 나쁜 장사가 아니다.

(21)

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는 심지어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에 인간도 아니었던 먼 조상들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말기를, 그들 중에는 물고기도 있었다. 작고 털로 덮이고 굴속에서 살던 조상들도 많았다. 우리의 체제는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우리는 30억 년에 걸친 진화적 비틀고 다듬기의 산물이다. 아예 새롭게 시작하여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게 필요한 것들을 갖춘 몸을 지닌다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무릎과 등이 망가지지 않은 채 서서 걷고, 목이 메어 캑캑거릴 위험 없이 음식을 삼키고, 자판기에서 뽑아내듯이 아기를 쑥쑥 낳는 몸을 갖춘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서 떠다니는 단세포 방울로서 기나긴 역사를 거치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 뒤로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의 기나긴 흥미로운 사건이었지만, 꽤 영광스러운 사건이기도 했다.

(37)

우리 손가락 끝에 소용돌이무늬를 만들게 한 진화적 명령이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몸은 수수께끼로 가득한 우주이다. 몸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에는 우리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분명히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어나는 일도 아주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진화는 우연한 과정이니까. 지문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개념은 사실은 하나의 가정이다. 당신과 지문이 일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정확히 똑 같은 두 개의 지문을 발견한 사람이 아직까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43)

피부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왜 일어나는지 이유를 제대로 모를 때가 많은 또 한 가지가 바로 가려움이다. 모기에게 물렸거나 뾰루지가 났거나 쐐기풀에 찔려서라는 식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가려움도 아주 많지만,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가려움도 아주 많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독자는 조금 전까지도 전혀 가렵지 않았던 이곳저곳을 긁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그냥 내가 가려움이라는 말을 꺼내서이다. 우리가 가려움 쪽으로 왜 그렇게 암시에 쉽게 넘어가는지, 아니 뚜렷한 자극 요인이 전혀 없음에도 왜 가려움을 느끼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뇌에서 가려움을 전담하는 영역은 따로 없으므로, 가려움을 신경학적으로 연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76)

뇌의 크나큰 역설은 우리가 세계에 관해 아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는 결코 세계를 본 적도 없는 기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제공된다는 점이다. 뇌는 지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소리도 빛도 없는 곳에 있다. 통증 수용기도 전혀 없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따뜻한 햇볕도 부드러운 바람도 결코 느끼지 못한다. 우리 뇌에는 세계가 그저 모스 부호를 두드리는 것 같은 전기 펄스의 흐름일 뿐이다. 뇌는 당신을 위해서 이 밋밋하고 중립적인 정보로부터 활기차고, 삼차원이고, 감각적인 우주를 만든다. 말 그대로 창조한다. 당신의 뇌가 바로 당신이다. 그밖의 모든 것은 그저 배관과 비계(飛階)일 뿐이다.

(116)

더욱 비정상인 부위는 코이다. 포유동물은 대개 둥그스름하게 튀어나온 코가 아니라, 주둥이가 달려 있다. 하버드 인류진화생물학과 교수 대니얼 리버먼은 인간의 코와 그 안의 복잡한 굴이 호흡 효율을 높이고, 오래 달릴 때 과열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고 진화했다고 본다. 이 배치는 분명히 우리에게 딱 맞는다. 인류와 그 조상들은 약 200만 년 동안 튀어나온 코를 가지고 있었다.

(157)

한마디로 목젖은 신기한 부위이다. 우리 몸에서 가장 커다란 입구, 지나면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입구의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로 이상하게도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목젖을 잃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며, 설령 잃는다고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이하게도 이중으로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178)

적혈구는 수명이 약 4개월이다. 쉴 새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일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제법 길다. 그 기간에 몸을 약 15만 번, 수백 킬로미터를 돌 것이다. 이윽고 너덜너덜해지면 청소 세포(scavenger cell)가 수거하여 지라로 보낸다. 지라는 매일 약 1,000억 개의 적혈구를 폐기한다. 분해된 적혈구는 대변을 갈색으로 만드는 주된 요소이다.(같은 과정의 부산물인 빌리루빈은 소변을 노랗게 만들며, 멍히 사라질 때 노랗게 변하는 것도 빌리루빈 때문이다.)

(200)

뇌하수체는 종종 으뜸샘(master gland)이라고 불린다. 아주 많은 것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뇌하수체는 성장 호르몬, 코르티솔,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옥시토신, 아드레날린 등 많은 호르몬을 생산하거나 그 생산을 조절한다. 운동을 격렬하게 하면, 뇌하수체는 엔도르핀을 혈액으로 분출한다. 엔드로핀은 먹거나 섹스를 할 때에 분비되는 바로 그 화학물질이다. 엔도르핀은 아편제와 아주 비슷하다. 오랜 달릴 때면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도 이 물질 때문에 나타난다. 우리 삶에서 뇌하수체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우리가 그 기능을 대강이라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도 한참 지나서였다.

(254)

운동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덴마크에서 달리기를 하는 사람 18,000명을 조사한 연구자들은 규칙적으로 달리는 사람이 달리기를 하지 않는 사람보다 기대수명이 5-6년 더 길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과연 그 혜택이 진정으로 달리기 덕분일까? 아니면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무튼 더 건강하고 절제하는 삶을 사는 경향이 있어서, 땀을 흘리며 뛰든 말든 간데 더 게으른 사람들보다 결과가 더 낫게 나온 것일 것?

(304)

문제는 당시의 흡연자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지만-1940년대 말에는 미국 성인 남성의 80퍼센트가 피워댔다-폐암에 걸리는 사람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비흡연자들 중에서도 폐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흡연과 폐암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아주 명확해 보였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이 아주 많은데 그중 일부만 죽는다면, 그 죽음을 한 가지 원인 탓으로 돌리기가 어렵다. 폐암의 증가가 공기 오염 때문이고 본 전문가들도 있었다. 도로 포장용 아스팔트의 사용 증가가 원인이라고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307-8)

딸국질은 가로막이 갑작스럽게 경련하면서 수축하는 현상이다. 그럴 때 후두가 놀라서 갑자기 닫히면서 딸꾹 하는 소리가 난다. 딸꾹질이 왜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딸꾹질 세계 기록은 아이오와 주 북서부에 살던 찰스 오스본이라는 농민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는 67년 동안 계속 딸꾹질을 했다. 딸꾹질은 1922년 오스본이 도살하기 위해서 무게가 130킬로그램인 돼지를 들어올리려고 할 때 시작되었다. 무엇인가 딸꾹질 반응을 촉발했다. 처음에는 1분에 약 40분이나 딸꾹질이 나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1분에 20번까지 줄어들었다. 그는 거의 70년 동안 약 43,000만 번 딸꾹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0년 여름, 갑자기 수수께끼처럼 딸꾹질이 멎었고, 그는 다음해에 세상을 떠났다.

(356)

모든 동물은 잠을 자는 듯하다. 선충과 초파리 같은 아주 단순한 동물들조차도 꼼짝하지 않는 시간이 있다. 필요한 수면 시간은 동물에 따라 크게 다르다. 코끼리와 말은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잔다. 그들이 왜 그렇게 조금 자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른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훨씬 더 많이 잔다. 포유동물 중 수면 챔피언이라고 여겨지는 동물은 세발가락나무늘보로서, 하루에 20시간까지도 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수면 시간은 포획된 개체들을 연구한 결과이다. 즉 주변에 포식자가 없고 달리 할 일도 없는 개체들이었다. 야생 나무늘보는 하루에 10시간 남짓 잔다. 즉 우리보다 엄청나게 더 많이 자는 것은 아니다. 특이하게도 몇몇 조류와 해양 포유류는 한 번에 뇌의 절반씩만 잘 수 있어서 반쪽이 쿨쿨 자는 동안 다른 반쪽은 깨어 있다.

(370-1)

우리가 하품을 왜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아도 엄마 뱃속에서 하품을 한다. (딸꾹질도 한다.) 혼수상태인 사람도 하품을 한다. 하품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흔하게 접하는 것이지만, 하품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몸에 지나치게 많이 쌓인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일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와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인지를 설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차가운 공기를 머리로 집어넣어서 졸음을 조금이라도 쫓는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하품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운이 샘솟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 어떤 연구도 하품과 활력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 적이 없다. 심지어 하품이 피로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사실 하품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은 밤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처음 2분 동안이다. 가장 푹 쉬었을 때 말이다.

(481)

이런 건강의 차이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연령대에 걸쳐서 나타난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세계의 다른 부유한 국가들에서 태어나는 아이보다 유년기에 사망할 확률이 70퍼센트 더 높다. 부유한 국가들 중에서 미국은 의학적 건강의 거의 모든 척도에서 최저 수준이거나 그 근처에 놓인다. 만성 질환, 우울증, 약물 남용, 살인, 십대 임신, HIV 감영 면에서도 그렇다. 낭성섬유증 환자도 미국보다 캐나다에서 평균 10년을 더 오래 산다. 아마 가장 놀라운 점은 이 모든 불행한 결과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시민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부유한 백인 미국인들도 다른 나라들의 비슷한 사외, 경제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서 열악한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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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그의 첫아들이 트리어에서 1818 5 5일에 태어났다. 이 아이는 할례도 받지 않았고, 루터교 의식에 맞추어 세례를 받지도 않았다.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유대인 전통에 따라 자기 아버지의 이름과 트리어의 제사장이었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크스 하인리히 모르데차이라고 이름 지었다. 카를 마르크스가 태어난 것이다. 바로 그해에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부터의 세계>, 메리 셀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출간했는데, 이 두 책은 25년 후 젊은 마르크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게 된다.


(59)

마르크스는 자기 책과 서류 들을 아무도 정리하지 못하게 했다. 겉보기에는 무질서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으며, 그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책이나 공책을 언제나 힘들이지 않고 찾아냈다. 대화를 하는 가운데도 그는 종종 자기가 막 인용한 글귀나 숫자를 책에서 찾아 보여주려고 말을 멈추곤 했다. 그는 자기 작업실과 일체를 이루었고, 책과 서류는 마치 그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복종했다.”


(119)

그러니까 파리는 제네바, 브뤼셀, 런던과 더불어 중부 유럽 전체, 특히 독일에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망명객들의 피난처였다. 망명객들은 정치적인 검열이나 경찰의 박해를 피해 파리로 온 사람들이었다. 그중에는 재단사 빌헬름 바이틀링처럼 스위스를 거쳐 파리로 온 은행가의 아들인 루트비히 베르나이스와 요제프 바이데마이어가 있었고, 당시 유명한 독일 시인이었던 게오르크 헤르베그처럼 프로이센에서 직접 온 사람도 있었다.


(128)

마르크스는 머리말을 썼다.

사고하며 고통받고 있는 인류와 핍박당하며 사고하는 인류는 사고할 줄 모르고 소극적으로 즐기기만 하는 속물들의 동물적 세계에서는 당연히 참을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사고하는 인류로 하여금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의식을 갖게 하고 고통받는 인류와 결합할 수 있게 할수록, 자기 뱃속에 품고 있는 결실은 더욱 완벽하게 태어날 것이다.”


(142)

그의 노동은 분리되고, 바깥에 존재하며, 그와 독립하여 낯선 존재가 되며, 하나의 자율적인 힘으로 그에 맞선다. 그가 사물에 투여한 생명은 그에게 맞서며, 적대적이고 낯설게 된다. 노동은 고단함이며, 그의 정신을 황폐화게 만들고 몸에 상해를 입히는 고통이며, 그의 활동은 고뇌처럼 보이고, 그의 생활은 인생의 희생처럼 여겨진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모든 노동은 고통이라고 생각했다.


(146)

공산주의란 인간 스스로 인간의 본성을 실질적으로 획득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적소유의 폐지와 모든 의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며, 이러한 의미가 인간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공산주의는 해방이다…… 이로써 필요나 사용권은 이기적인 성격을 버리고, 자연은 그 순수한 유용성을 버린다. 그 유용성은 인간적인 유용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소외된 노동자는 인간에게 유익한 것을 만들면서 노동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스스로 완전히 인간적이 된다.


(152-3)

훨씬 뒤에 엥겔스는 그들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내가 1844년 여름 파리에 있는 마르크스를 방문했을 때 우리는 모든 이론 분야에서 서로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한 것을 확인했고, 그래서 우리의 협력은 시작되었다. 마르크스는 나와 같은 견해에 도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견해를 <프랑스-독일 연보>를 통해 유포했다. 요컨대 부르주아 사회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국가가 아니라 국가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이 부르주아 사회라는 견해였다. 경제적인 조건과 그것의 발전에서 출발해 정치와 경제의 역사를 설명해야지, 그 반대로 해서는 안 된다.”


(196)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전년도에 나열한 열두 조항을 열 조항으로 압축하고, 역사적 유물론에 관하여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설명을 시도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빈곤화로 내몰린 계층, 당시 사람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근본적으로 환상이 없는 계층으로 나타나 있는 최초의 글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었다. 나이는 서른이 채 안 되었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브뤼셀에 망명해 사는 젊은 독일 철학자가 쓴 이 글은 비종교적인 글 가운데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유포된 글이다.


(261)

엥겔스 추종자들이 후에 두 사람을 동등한 반열에 올려 놓으려 애썼지만 엥겔스는 자신이 마르크스 천재적인 지적 능력을 타고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엥겔스가 그토록 싫어한 공장의 사장 역할을 떠맡기 위해 런던을 떠나면서 포기한 것 중에는 저자가 되는 것도 포함되었다. 요컨대 엥겔스의 결단은 자기가 알고 있는 한 유일한 저자인 마르크스에게 돈을 대주기 위해서였다. 자본주의의 요새에서 트로이 목마가 된 엥겔스는 마르크스에게 자신의 이론적 연구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마르크스와 함께 토론하기 위해 빈번히 런던에 왔다. 두 사람은 그때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교환했고, 그것은 20년 간 지속되었다. 사상사에서 그와 같은 희생의 예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후로도 없을 것이다. 엥겔스는 마르크스 때문에 아무리 힘든 처지에 놓여도 그는 결코 마르크스를 문제 삼은 적이 없었다.


(275-6)

현대사회의 계급의 존재나 그들 간의 투쟁을 발견한 공로는 나에게 있지 않다. 나 이전에 오래전부터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계급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언급했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그것에 관한 경제적인 분석을 행하였다. 내가 새로 한 것이라고는 첫째, 계급의 존재는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발전 국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둘째,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진다는 것, 셋째, 그 독재 자체도 모든 계급의 폐지와 계급 없는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형성한다는 것 등을 논증한 것에 불과하다.


(345)

그 보잘것없는 원고가 끝이 났네. 하지만 보내지를 못했네. 우송을 하고 보험을 들 파딩(1961년에 폐지된 영국 화폐로서 4분의 1 페니에 해당했다-옮긴이)이 없기 때문이지. 그런데 보험은 꼭 들어야 하네. 왜냐하면 다른 복사본이 없거든. 그러니 월요일까지 약간의 돈을 보내주었으면 하네. 부탁하네.”

그러고 나서 그는 후에 아주 유명해진 다음 문장을 냉랭하게 덧붙였다.

이렇게까지 돈이 없으면서도 돈에 대해 글을 쓴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네! 돈에 관해 쓴 작가들 대부분은 자기들의 연구 주제와 사이좋게 살았지.”


(411)

런던에서는 마르크스의 이중 생활이 계속됐다. 낮에는 공식적으로 인터내셔널의 독일 통신 서기장으로, 유럽 전역의 수십만 노동자와 피고용인, 지식인을 곧 집결시키게 될 정치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로 활동했다. 밤에는 20년 전에 시작해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한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아직 1장밖에 출간하지 못한 대작을 집필했다. 그는 <자본론>으로 명명할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공헌할 생각이다.


(418-9)

좋아하는 미덕은? 단순성. 남자에게서 좋아하는 미덕은? . 여자에게서는? 약함. 당신의 주요한 특징은? 고집.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나네트를 바라보는 것. 당신이 가장 혐오하는 결점은? 굴종. 당신이 가장 쉽게 용서하는 결점은? 속기 쉬움.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투쟁하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불행은? 굴복하는 것. 당신이 좋아하는 시인은? 아이스킬로스와 셰익스피어. 당신이 좋아하는 산문 작가는? 디드로. 당신이 좋아하는 경구는? 인간적인 것은 그 어느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당신의 좌우명은?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할 것. 당신이 좋아하는 색깔은? 빨강. 당신이 좋아하는 이름은? 예니와 라우라.”


(513)

마르크스는 목표에 도달한 듯 싶었다.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유럽에서는 아직도 코뮌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을 때 마르크스는 갑자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언론에 의해 절대 권력자로 여겨지면서 그는 유일한 다국적 정치조직의 정상에 자리했고, 그의 이름을 내세운 정당과 비밀집단이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에서 생겨났다. 코뮌의 마지막 무렵에 쓴 그의 마지막 <인터네셔널에 보내는 담화>는 서방의 모든 언론이 언급했고, 전 세계의 기자들이 그와 인터뷰하려고 몰려들었다. 독일의 수십만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읽은 <공산당 선언>은 이제 프랑스어, 러시아어, 영어로 번역되었고,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자본론>도 마찬가지였다.


(538)

함부르크의 출판사에서 개정판 제1권이 출간되었을 때, 마르크스는 자기보다 아홉 살이 많은 다윈에게 한 부를 보냈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표현>이라는 책을 막 출간한 터였다. 마르크스는 다윈에게 보내는 증정본에다 충심의 숭배자라고 표현한 헌정사를 써 넣었다. 다윈은 자신은 그 책을 읽을 만한 능력이 없지만 책을 고맙게 받겠노라는 정중한 편지를 보내왔다. 다윈에게 보낸 마르크스의 책은 104페이지까지만(전체 804페이지) 페이퍼 나이프로 잘려 있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 다윈은 마르크스가 352, 385, 386페이지에서 제 차례 언급한 자신의 저서에 관한 부분은 보지 못한 것이다.


(559)

이상한 인연이다. 이 시기에 마르크스는 리사가레의 책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을 끝마쳤다. 이 책의 번역자로 제의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거부하고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것이다. 그는 딸이 좋아하고, 그녀를 충심으로 사랑하는 듯이 보이는 그 남자와 딸이 결혼할 수도 있다고 체념했다. 하지만 예니는 그 프랑스 남자에 대한 생각을 절대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예니는 의견이 서로 다른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 문제로 부딪치곤 했다.


(568-9)

독일에 실망한 마르크스에게 러시아는 일정의 집착, 또는 새 희망의 초점이 되었다. 그는 자주 러시아의 민중주의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그의 책을 번역한 니콜라이 프란체비치 다니엘손과 구에르만 알렉산드로비치 로파틴, 그리고 표트르 라브로비치 라브로프가 그의 상태였다 .니콜라이 콘스탄티티노비치 미하일로프스크와 베라 자술리치 같은 아주 극단적인 혁명가들도 마르크스의 자문을 구하러 왔다. 자술리치는 경찰청장인 트레프포 장군을 암살했는데 러시아에서 방면되어 영국에 와 있었다.


(583-4)

몇몇 친지들이 예니를 묘지까지 동반했다. 엥겔스가 추도사를 했다. 라우라와 엘레아노르, 예니헨과 샤를롱게 등과 함께 있던 라파르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독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그녀의 평등의식은 그 누구보다 철저했다. 그녀에게 사회적인 차이와 구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기 집과 식탁에 노동복 차림의 노동자들을 맞이할 때면, 왕족에게 대할 때와 똑 같은 예의와 배려를 보이며 맞이했다. …… 그녀는 마르크스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고, 극도로 헐벗은 날들에도 자신이 선택한 것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592-3)

314일 오후 3 15,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생각을 멈추었습니다. 그를 혼자 둔 것은 겨우 10분이었는데, 돌아와보니 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안락의자에서 마지막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의 죽음은 유럽과 미국 프롤레타리아의 투사들을 위해, 그리고 역사과학을 위해 측량할 길 없는 손실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정신이 떠나면서 남긴 공백을 곧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다윈이 자연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인간 발달에 관한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 게다가 마르크스는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움직임과 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부르주아 사회를 이끄는 법칙도 발견했습니다. …… 이 두 발견만으로도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는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 둘 중 하나만 이룩한 사람일지라도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모든 영역들을 아주 많이 연구했고, 그 모든 영역들 중에서 피상적으로 연구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하다못해 수학에 대해서까지 그는 발견의 업적을 이룩했습니다. 그는 과학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이룬 업적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과학은 역사의 원동력, 혁명의 힘이었습니다. 힘들게 예측한 결과를 담은 이론적 법칙을 발견하는 기쁨을 넘어서서 그는 산업에서의 혁명적 변화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 왜냐하면 그는 우선 무엇보다도 혁명가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필생의 사명은 자본주의 사회와 그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모든 국가 제도를 무너뜨려서, 현대 프롤레타리아를 해방시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롤레타리아가 해방될 수 있는 조건을 처음으로 정의 내린 사람은 마르크스였습니다. 투쟁은 그의 기본 요소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끈질기게,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성공을 거두며 투쟁했습니다. …… 마르크스는 당대에 가장 미움받고 모략을 가장 많이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주의 정부들도 공화주의 정부들도 그를 유배시켰습니다. 부르주아들, 보수주의자들 또한 민주주의들이 모두 그에 대항하려고 단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극단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광산부터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미국에서 수백만 혁명 동지들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눈물 흘리는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에게 많은 반대파가 있기는 했어도 개인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608)

마르크스가 구상하고 구축한 인생은 자기를 열정적으로 만드는 활동과 초조하게 만드는 글쓰기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론을 투쟁의 도구로 만들었다. 그이 정치경제학은 헐벗은 자들, 핍박당하는 자들, 모욕당하는 자들의 항거 도구로 쓰였다. 그는 정신의 힘을 믿는 유물론자였으며, 경제는 역사의 기반이며 행동이 이론보다 먼저라고 생각하는 철학자였다. 그리고 인간을 신뢰하는 비관론자였다. 곧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이론을 왜곡해 태도를 흉내 내려 애쓰면서 이론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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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시다시피 <공산당 선언>은 평생의 혁명 동지였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함께 쓴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정치 팸플릿입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참가한 <공산주의자 동맹> 조직의 출범 선언문으로 1848 2월에 발표되었습니다. 19세기에 등장해 20세기 내내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산주의 운동의 사상적 배경이 매우 잘 요약되어 있지요. 공산주의에 대한 선호와는 별개로, 왜 공산주의 운동이 탄생했으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33)

현대 부르주아(자본가) 계급은 갑자기 하늘에서 툭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아오른 것이 아닙니다. 서양 중세 사회 내부에서 상공업의 씨앗이 태동(“봉건사회 내부의 혁명적 요소”)해 발전해나가는 긴 과정의 산물입니다. 소비재의 생산에 증기기관과 기계가 도입되고, 아메리카의 발견’(적절한 단어는 아닙니다만)으로 세계시장이 형성되며, 새로운 동력원을 이용한 철도 및 증기선의 등장으로 운송 비용이 극적으로 줄어들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세력이 바로 상공업자들인 부르주아 계급니다.

(45)

중세 시대를 그리워하는 반동주의자는 모든 것을 돈으로만 따지는 자본주의에 염증을 느끼며 중세 시절 기사들의 무용담이나 전쟁 이야기를 동경했겠지요. 그런데 기사와 귀족이 무용담을 떨치고 전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농노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농노를 착취해 생계를 해결하면서 나태하고 게으르게살 수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 무용담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부르주아 계급은 기존 봉건사회의 노골적인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무너뜨렸습니다. 모든 봉건적 권위를 파괴한 것이지요. 그리고 모든 인간 관계를 순수한 금전 관계로 바꾸었습니다.

(71)

앞서 봉건사회가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하게 된 과정을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과 갈등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곧바로 우리 눈앞에 동일한 모순과 갈등(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일어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본주의사회 내부에서도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의 모순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본주의사회 내부에서 다른 사회로의 변화 가능성을 포착한 것이지요.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공황입니다.

(79)

한편,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인건비 이상을 벌 수 있을 때만, 그래서 자신이 보유한 자본을 증식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만 노동자를 고용합니다. 노동자는 예전의 노예처럼 자신의 몸 전체가 예속되지는 않지만 하루 24시간 중 일부(“한 조각씩”)를 자본가에게 판매합니다. 이렇듯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노동자 역시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일 뿐이며, 결국 노동력의 판매 여부(고용 여부)는 전적으로 시장의 상황 변화에 달려 있습니다.

(109)

의무교육의 도입은 부르주아 계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복잡한 기계장치로 가득 찬 공장에 모여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한 치의 오차 없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문자 해동 능력 및 업무 지시를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지식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준비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로 의무교육입니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획득한 지식과 교양을 활용해 부르주아 계급에 맞설 무기를 만들어냅니다. 부르주아가 가르쳐준 글자로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책과 유인물을 쓰고 함께 읽습니다. 부르주아가 가르쳐준 과학과 합리성을 응용하여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197)

좀 맥락이 다른 예기이지만, 러시아나 동유럽에 존재했던 현실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추구했던 모습과 다르게 변질되었으므로 그 체제는 엄밀하게 보았을 때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아직 지구에서 구현된 적이 없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아마도 현실 사회주의를 가짜 사회주의로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진짜 사회주의를 방어하고 옹호하려는 의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진짜와 가짜를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일까요? 안타깝지만 현실은 언제나 복잡합니다.

(217)

하지만 여전히 자본가 계급에게 권력의 추가 크게 기울어 있으며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몇몇 복지국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나라에서 공공 부문에 비해 시장의 영향력이 여전히 큽니다. 1 1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1만원 1표의 냉혹한 시장에서는 거대한 부를 지닌 자본가가 유리할 수밖에 없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쓰던 시절에 비해 사회가 진일보한 것은 명백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멉니다.

(309)

부연하자면 사회민주주의와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와의 차이도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사회민주주의는 자본가 계급에게서 세금을 걷어 서민들을 위한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는 정책을 추진합니다. 일종의 부의 재분배 정책이지요.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바로 그 지점이 최종 목표지입니다.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는 단순히 조세 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적 소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개혁(혁명)을 추동합니다. 이를 프롤레타리아 계급 스스로의 힘으로 실현하려는 것이지요. , 사회민주주의와는 최종목표가 다른 것입니다.

(310)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질서를 폭력적으로 전복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다. 지배계급들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프롤레타리아가 공산주의 혁명으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다. 그들에게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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