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지금까지는 아주 잘 맞아떨어졌다고 해도, 앞으로 나올 관측이나 실험 결과도 만족시킨다는 보장이 없지요. 그래서 포퍼는 확실한 것은 반증밖에 없다고 했고, 또 반증을 통해 잘못된 이론을 버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과학이 진보하는 기본형식이라고 했습니다. 과학은 끝없는 추측과 반증의 과정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추측이란 확실하지 않은 가설을 제의한다는 의미입니다.


(52)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쿤은 이미 이런 충격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이 미리 만들어놓은 비교적 경직된 상자 안에 자연을 처넣으려는 노력이다.” 포퍼가 보고 화가 났을만도 한 말이지요. 자연을 인간의 선입견에 맞게 처넣다니! 자연이 보여주는 대로 따라가며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포퍼 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고 과학적 태도인데, 쿤의 주장은 정반대였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에서 먼저 틀을 잡고 자연을 어떻게 하면 그 틀에 더 잘 집어넣을 수 있는가를 연구라는 것이 정상과학입니다. 그리고 쿤은 그런 독단적이면서 체계적인 노력을 통해 정상과학은 정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빠르게 확실한 발전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87)

과학에서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 중에 영국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물리학자 켈빈 경이 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우리가 논의하는 내용을 측정해서 숫자로 표시할 수 있다면, 뭔가를 아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의 지식은 변변치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어떤 주제이건 간에 측정하지 못하고 논하는 것은 지식의 시작은 될지 몰라도, 과학적이 되려면 아직 한참 먼 것이다.”


(107)

현대물리학에서는 빛의 속도를 일정한 숫자로 정의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길이를 정의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광속을 초속 299,792,458미터라고 하면, 1미터는 빛이 1초 동안 가는 거리를 299,792,482로 나눈 것이 된다. 그렇다면 1초는 어떻게 정의할까?


(117-118)

과학의 발전과정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융합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기준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보수적 의무감과, 그러나 옛날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진보적 의무감을 동시에 소화해내야 합니다. 과학뿐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도, 정치적, 사회적 발전도 다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식은 부모보다 더 잘나고 싶어합니다. 부모도 자식이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식은 자신의 시작점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물려받은 것을 존중하며 시작하되, 더 잘해서 원점보다 훌륭하게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141)

물론 쿤도 패러다임이 바뀐다고 해서 자연 자체가 변한다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자연은 자연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패러다임은 우리 머릿속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세상이라는 것은 패러다임을 통해서 걸러져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짜 자연그 자체를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관측을 통해 자연을 알게 되는데 그 관측은 특정한 패러다임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자연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지요.


(170-171)

그러나 아직도 실재론을 버리기가 힘겹기도 합니다. 우리가 실재론자들의 주장 중 보존해야 할 것은, 과학지식은 제멋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인간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태도입니다. 과학은 인간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를 따라가는 것이라는 게 기본 입장이고, 그런 입장이 없다면 과학은 전혀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는 실재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실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오는데, 이런 해석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국판 위키백과를 보면 조금 더 명확한 정의가 나옵니다. ‘인식 주체로부터 독립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 그것을 좀 쉽게 말하면 실재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지칭한다고 봅니다. 자연은 우리의 허튼 수작을 허용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발명한다고 해도 자연이 협조를 해야 가능합니다. 자연이 협조한다든지 저항한다는 것은 은유적 표현인데, 그런 식으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실재인 자연, 그 자연이 정말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할 언어가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은유적으로 자연을 의인화해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250)

화학혁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비극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가 극에 달했던 1794, 라봐지에는 자신의 장인과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그들은 세금징수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혁명 전 프랑스 정부는 세금징수를 사영업체에 하청했었는데 그 회사가 왕과 계약을 맺어서 징수액 목표를 정했고, 그 이상의 징수액은 이익으로 챙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혁명가들이 라봐지에를 민중의 적으로 규정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고 살려두었다면 국가를 위해서도 유익한 일을 계속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서 느끼는 아이러니는, 그가 그렇게도 집요하게 죽였던 플로시스톤에 대해서도 똑 같은 평가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283)

제 생각을 단순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창조교육, 탐구교육을 시도한다고 해도, 학생들은 잘 압니다. 그 뒤에 정답이 다 버티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결국 물이 H2O라는 등의 정답으로 가야 한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정말 독립적으로 뭔가를 생각해 볼 동기를 갖기란 힘들다고 봅니다. 또 교육자의 입장에서는 창조적으로 탐구를 시킨다고 하면서도, 그 과정을 통해 학생이 정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조바심을 느낍니다.


(325)

저널을 창간한 3년 후에 니콜슨은 자기 일생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저명한 의사였던 친구 칼라일과 함께 한 연구결과를 보고한 것인데, 전지를 사용한 최초의 전기분해였습니다. 볼타가 전지를 발명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따라서 실험하다가 전기의 작용으로 물이 산소와 수소로 분해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전기분해의 중요성을 현대과학자들은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는 서로 아무런 확실한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었던 전기와 화학을 연결한 것은 엄청난 결과였습니다. 결국은 화학의 진로 자체를 바꿔놓은 성과였던 것입니다. 이 연구결과를 니콜슨은 다른 데 보내지 않고 자신의 저널에 냈습니다. 그 결과가 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많은 다른 연구를 촉진했고, 이런 식으로 중요한 논문들을 상당수 게재한 니콜슨의 저널은 시시한 잡지에서 일약 가장 중요한 학술지 중 하나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저자의 글도 내용만 흥미롭다면 받는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니콜슨은 민중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운동을 벌인 것입니다.


(398)

요즘 길 찾는 네비게이션을 많이들 쓰지요. 그것은 정말 20세기 말기 과학의 기가 막힌 업적입니다. ‘전 지구 측위 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 GPS)’을 기반으로 한 것인데, 지구 주위에 많은 인공위성을 띄우고 거기서 원자시계를 돌리는 것이 기본구조입니다. 그런데 위성을 발사하고 조정하는 원리는 위에서 말했듯이, 아직도 뉴튼역학입니다. 그 반면 원자시계의 작동원리를 양자역학입니다. 게다가 그 원자시계는 상대성이론을 써서 수정해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중력장 내에서의 그 시계 위치와 또 시계가 실려 있는 위성의 운동속도에 따라 시계가 가는 속도가 달라지는데, 그것을 수정하려면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둘 다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융합된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운영되는 시스템으로부터 지구상 우리에게 현 위치를 가르쳐주는 신호가 내려옵니다. 그러면 우리는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뉴튼역학도 모르던 사람들처럼 지구는 평평한 것으로 생각하며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걷습니다. 그러니까 이는 전근대적인 관념부터 고전역학과 몇 가지의 20세기 첨단 물리학 이론까지 전부 잘 뭉뚱그려서 융합한 훌륭한 실천체계입니다.


(411)

과학의 독재도 독재입니다. 물론 과학보다 더 못한 것이 지배하는 독재보다는 낫겠지요. 하지만 과학에서부터 남들이 그렇다면 그렇고 특히 전문가나 높은 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신봉하는 태도를 키운다면, 우리의 일상생활과 정치행태에 아직도 팽배해 있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더욱 권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반면, 시민들이 진정한 독립적 과학탐구를 배우는 것은 권위주의와 이데올로기에의 맹종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교육적 효과를 이루고자 한다면 과학을 다원주의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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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한 가지 명기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재능이란 예술의 세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세계에는 헤아릴 수 없도록 수많은 직종들이 있습니다. 그 직종들은 전부 다 우리 인간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다양한 직종들에 어울리는 온갖 재능들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 다채로운 재능의 향연이 우리 인간사회의 약동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그 여러 재능들도 성공적 열매를 맺으려면 소설 쓰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가 더 보태져야 합니다.


(39)

군부독재는 강화되고, 그에 따라 분단은 고착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야기되는 현실의 모순과 시대적 갈등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작가들이 많아지면서 작품 활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황 변화에 대해 순수문학 쪽에서 참여문학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 고발문학은 문학성이 빈약하고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공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수십 년에 걸친 순수, 참여 논쟁입니다. 그 와중에 저는 작가가 되었고, 첫 작품집 <황토>의 작가의 말에 한정된 시간을 사는 동안 내가 해득할 수 있는 역사, 내가 처한 사회와 상황, 그리고 그 속의 삶의 아픔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34년이 지나 태백산맥문학관 벽면에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새겼습니다. 이것이 저의 변함없는 문학관입니다.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은 시대착오적인 유치함입니다. 이제 그런 소모적인 논쟁 아닌 논쟁은 폐기되어야 합니다. 오직 좋은 소설, 감동적인 작품이 있을 뿐입니다.


(80)

작가란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야 하고, 불의에 저항하면서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세계적으로 정의되고, 동의되어 왔습니다. 그건 바로 작가란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양쪽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함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지 않느냐고요? 그건 그들의 사정이죠.


(130)

그 인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일찍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그 고전적 정의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불변입니다.

한 작가의 능력은 그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개성적이고 전형적인 인물들을 창조했느냐로 판가름난다.’


(133)

작가란 무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워 그 가슴을 감동으로 채워야 하는 예술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업보를 지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학대하듯 스스로를 닦달하며 평생 긴장하고 최선을 다한 노력을 바치지 않고서는 그 업보는 풀리지 않습니다. 그걸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을까요?


(139)

제가 어느 땐가 이런 메모를 남겨둔 게 있습니다.

인생이란 때때로 더듬거리고 멈칫거리고 두리번거리고 비틀거리고 허둥거리며 홀로 걸어가는 길이다


(175)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해가며 달려가는 노정이다.’

인생이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인생이란 극본도, 연출도, 출연도 자기 혼자 도맡아 하는, 연습도 재공연도 할 수 없는 단 1회의 연극이다.’


(214-5)

이러한 객관적인 결론이 나오기 훨씬 전에, <태백산맥> 1분가 출간되고 나서 저는 얼굴 모르는 사람들의 전화를 줄줄이 받아야 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를 사람 대접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희 어머니가 책을 읽고 난 제 얘기를 들으시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얼마나 우셨는지 모릅니다. 아버지가 총살당하고 처음으로 사람 대접받은 것이니까요.”


(234)

그 또렷또렷한 글씨 한 자, 한 자에서 필사자들이 바친 정성과 노고가 얼마나 진하고 컸는지를 절절히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정성과 노고 앞에서 저는 그저 감사하고, 감동하고, 감탄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글 쓰기 잘했다는 큰 보람과 함께 삶의 가장 큰 행복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이 베풀어주는 사랑과 신뢰 중에 이보다 더 크고 무거운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100번 읽는 것보다 더 크고 더 깊은 애정이 한 번의 필사이기 때문입니다.


(298)

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백악관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들을 초청해 축하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고 인사를 했습니다. 펄 벅 여사는 한국이 무대인 소설을 쓰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케네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한국은 영 골치 아픈 나라인데, 내 생각에는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그냥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통제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펄 벅 여사는 충격으로 말을 잠시 잊었다가 이내 정색을 하고 공박했습니다. “대통령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건 마치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그때로 돌아가라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354)

제가 보기에 우리 사회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제아무리 발전한 나라에서도 유토피아란 없습니다. 유토피아란 미래 희망을 위해 만들어진 환상적 언어이지 현실적 실현성을 갖는 언어는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만족이 없이 끝없이 팽창되는 것이기에 유토피아를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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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박열은 내가 내민 쪽지를 받아들고 중얼중얼 읽었다.

첫째, 동지로서 함께 살 것.

둘째, 내가 여성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제거할 것.

셋째, 둘 중 하나가 사상적으로 타락하여 권력자와 악수하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둘 것.


(229)
요구사항은 모두 네 가지였다.

첫째, 공판정에서는 일절 죄인 대우를 하지 않아야 하며 피고라고 부르지도 말 것

둘째, 공판정에서 조선 예복 착용을 허락할 것

셋째, 자리도 재판장과 동일한 좌석을 마련할 것

넷째, 공판 전에 자기의 선언문 낭독을 허락할 것.

다섯째, 만일 이상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입을 닫고 일절 신문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결심한다.


(233)

가네코도 당당한 응답으로 재판정을 흔들었다.

피고는 국가에 해가 되는 사상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어떠한가?”

방금 그 질문은 상당히 모욕적이다. 내가 무적자로 태어나 어려서 친척들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국가와 대척점에 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학대한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면 나도 고분고분하게 순응하는 머저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사회에 어째서 대적하는가?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는가?”

국가와 개인은 어떤 계기가 있지 않아도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는 힘으로 개인을 억누르고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서 순응하도록 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234)

박열은 미리 약속한대로 자기 선언문을 낭독했다.

국가는 개인의 신체와 생명과 자유를 끝없이 침해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강도들 중에 대강도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편에 선 재판관이 공정한 판결을 할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 법정에 선 것은 재판을 받자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선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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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독도와 울릉도는 조선의 것이란 말이다!”

나는 독도와 울릉도가 나의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조선의 것이라 말했다. 우리를 끌고 왔던 어부가 몽둥이로 나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진실 아닌 것을 진실이라 꾸미려면 언제나 폭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들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한 차례 더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의 섬이며, 그 섬의 바다는 조선의 바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일본인의 매는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쏟아졌다.


(103)

갑작스럽게 나는 조선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 앞에서 기죽고 싶지는 않았다. 조선에 대한 원망이 깊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조선인이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모든 걸 빼앗긴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에게 힘이 있었다면 전국을 뒤져 가져온 산삼을 그렇게 헐값에 넘기진 않았을 터였다. 초량 왜관에 머무는 일본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날카로웠다. 그들에 대한 선입견에 휩싸여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194)

조선은 몇몇의 나라가 아니라 다수 백성의 나라여야 했다. 나라는 내게 목숨까지 버리라 말하면서도 사방이 막힌 이 순간에는 나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마저 새카맣게 타버려 흐를 줄 몰랐다. 나는 버려졌다. 그 점은 억울하지 않았다. 나라가 내게 기대한 일이 없으며, 나 역시 나라에게 기대할 일이 없으니 억울할 것도 없었다. 내가 마음이 아픈 건 살아남아도 우리가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사실이었다.


(285)

우리가 가는 건 우리의 섬이고 우리의 땅임을 분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일본은 울릉도나 독도를 소유했던 번이 없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의 울진에 속해 있었지만, 저들은 근래에 와서 지들의 번에 속해 있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요. 게다가 독도든, 울릉도든 우리와 달리 일본 백성들이 거주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일본의 지난 쇼군 시절에 요나고 사람들이 울릉도에 와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도해 허가를 해준 일을 두고 자신들의 섬이라 우기고 있는 겁니다. 도해 허가를 내주었다는 사실도 웃긴 일이지만, 그런 사실을 파악했으면 강하게 항의를 했어야 하는데, 우리 조정에서는 그리 못했지요.”


(335)

*1693 9월 초, 안용복과 박어둔은 돗토리 번에서 나가사키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당시 안용복과 박어둔을 납치한 내용은 오야 집안의 문서인 <죽도 도해 유래기 발서공, 이하 발서공>과 한자로는 백기로 적는 호키주의 일을 기록한 <이본 백기지>에도 실려 있다. <발서공>에는 안용복이 에도에 갔고,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에도 막부가 안용복에 대한 조사를 끝낸 뒤 안용복에게 무엇인가를 줘서 조선으로 귀국시켰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서계로 추측된다. 두 사람이 나가사키로 후송되었을 때 쓰시마 번 사람들이 두 사람을 맞이했는데, 이때 선물과 서계를 모두 강탈당했으며 이를 쓰시마 번에서 보관하고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해석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힌다.


(369)

안용복은 영웅호걸이다. 미천한 일개 군졸로서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국가를 위하여 강적과 겨루어 간사한 마음을 꺾어버리고, 여러 대를 끌어온 분쟁을 그치게 했으며, 한 고을의 토지를 회복했으니, 부개자와 진탕에 비하여 그 일이 더욱 어려운 것이니, 영특한 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상을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에는 형벌을 내리고 뒤에는 귀양을 보내어 꺾어버리기에 주저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애통한 일이다. 울르도와 독도가 비록 척박하다고 하나, 쓰시마도 또한 한 조각의 농토가 없는 곳으로서 왜인의 소굴이 되어 역대로 내려오면서 우환거리가 되고 있는데, 울릉도와 독도를 한 번 빼앗긴다면 이는 또 하나의 쓰시마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니, 앞으로 오는 앙화를 어찌 말하겠는가? 안용복은 한 세대의 공적을 세운 것뿐이 아니었다. 고금에 장순왕의 화원노졸(花園老卒)을 호걸이라고 칭송하나, 그가 이룩한 일은 대상 거부에 지나지 않았으며, 국가의 큰 계책에는 도움이 없었던 것이다. 안용복과 같은 자는 국가의 위급한 때를 당하여 항오에서 발탁하여 장수급으로 등용하고 그 뜻을 행하게 했다면, 그 이룩한 바가 어찌 이에 그쳤겠는가? – 이익의 <성호사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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