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꽃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자갈 비탈에서도 톨 틈에서도

어떤 눈길 닿지 않아도

<녹슨 빛깔 이파리의 알펜로제 라이어 쿤체>


(15)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헙을 걸자.’

<눈풀꽃 루이스 글릭> 중에서


(17)

고마워, 내 심장

나를 다시 잠에서 깨어나게 해 주어서.

비록 오늘을 일요일.

안식을 위해 만들어진 날이지만

내 갈비뼈 바로 아래에서는

영원한 휴식 전의 분주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

<일요일에 심장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중에서


(20)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휴식을 취했으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하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배우며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더 깊이 귀 기울여 들었다.

어떤 이는 명상을 하고, 어떤 이는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춤을 추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그림자와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치유되었다.

무지하고 위험하고 생각 없고 가슴 없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지구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하고 위험이 지나갔을 때

사람들은 다시 함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잃은 것을 애도하고,

새로운 선택을 했으며

새로운 모습을 꿈꾸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치유받은 것처럼

지구를 완전히 치유해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렀다 키티 오메라> 중에서


(23)

기다려라

너무 일찍 떠나려 하지 말라.

너는 지쳤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지쳤다.

하지만 누구도 완전히 지치진 않았다.

다만 잠시 기다리며 들어 보라.

머리카락에 깃든 음악을

고통 안에 숨 쉬는 음악을

우리의 모든 사랑을 실처럼 다시 잇는 음악을

거기 있으면서 들어 보라.

지금이 무엇보다도 너의 온 존재에서 울려 나오는

피리 소리를 들을 유일한 순간이니.

슬픔으로 연습하고, 완전히 탈진할 때까지

자신을 연주하는 음악을.

<기다려라 골웨이 카넬> 중에서


(30)

아이들에게 날개를 주리라.

하지만 스스로 나는 법을 배우도록 내버려 두면서.

노인들에게는 일깨워 주리라.

죽음은 노년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망각과 더불어 온다는 것을.

<꼭두각시 인형의 고백 조니 웰치> 중에서...


(32)

웃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우는 것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에 휘말리는 위험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과 꿈을 사람들 앞에서 밝히는 것은

순진해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랑을 보상받지 못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사는 것은 죽는 위험을,

희망을 갖는 것은 절망하는 위험을,

시도하는 것은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위험들 자넷 랜드> 중에서


(43)

나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당신의 나무가

얼마나 높이

올라갈 수 있는지.

다른 누군가가

당신을 잘라 버리는 게 두려워

당신 스스로

꼭대기를 자르는 일을

멈추기만 한다면.

<무제 타일러 노트 그렉스>


(53)

나는 언제나 궁금했다.

세상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있으면서

새는 왜 항상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새와 나 하룬 야히아>


(72)

당신이 하는 일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남겨 두는 일이 문제다.

해 질 무렵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그것이다.

잊어버린 부드러운 말

쓰지 않은 편지

보내지 않은 꽃

밤에 당신을 따라다니는 환영들이 그것이다.

<하지 않은 죄 마거릿 생스터> 중에서


(108)

그녀는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판단을 내려놓았다.

머리 주위에 무리 지어 모여드는 선택들의 합류 지점을 내려놓았다.

자신 안의 망설임 위원희를 내려놓았다.

모든 옳아 보이는 이유들을 내려놓았다.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머뭇거림 없이, 걱정 없이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려놓았다 새파이어 로즈> 중에서


(115)

날마다 고양이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가장 따뜻한 지점과

먹을 것이 있는 위치를 기억한다.

고통을 안겨 주는 장소와 적들,

애를 태우는 새들,

흙이 뿜어내는 온기와

모래의 쓸모 있음을.

마룻바닥의 삐걱거림과 사람의 발자국 소리,

생선의 맛과 우유 핥아먹는 기쁨을 기억한다.

고양이는 하루의 본질적인 것을 기억한다.

그밖의 기억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마음속으로 내보낸다.

그래서 고양이는 우리보다 더 깊이 잔다.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면서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들보다.

<고양이는 옳다 브라이언 패튼>


(138)

인생은 짧다, 비록 내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하겠지만.

인생은 짧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더 짧게 만들었다.

천 가지나 되는 달콤하고 경솔한 방식으로.

천 가지나 되는 달콤하고 경솔한 방식을

내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할 것이다.

세상은 적어도 절반은 끔찍한, 이조차도

실제보다 적게 어림잡은 것.

비록 내 아이들에게는 이것을 비밀로 하겠지만,

새들이 많은 만큼 새에게 던져지는 돌도 많고

사랑받는 아이들이 많은 만큼 부러지고,

갇히고, 슬픔의 호수 밑으로 가라앉는 아이도 있다.

인생은 짧고, 세상은 적어도 절반을 끔찍하며,

친절한 낯선 이들이 많은 만큼

너를 파괴하려는 자도 많을 것이다.

<좋은 뼈대 매기 스미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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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그런 거야, 친구.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거지. 현재의 사회구조가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든가, 나처럼 자신이 부당한 우위를 누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기꺼이 누리든가 말이야.”

아니, 만일 그것이 정당하지 않다면, 자네는 그 혜택을 기꺼이 누릴 수 없을걸. 적어도 난 그렇게 못할 거야.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잘못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니까.”


(126-127)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는 걸까? 그녀는 살고 싶은 거야. 어쩌면 나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몰라. 그녀가 모스크바로 날 찾아온 그 끔찍한 시절에 내가 그녀의 말을 들은 것이 과연 잘한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어. 난 그때 남편을 버리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어야 했어. 어쩌면 난 정말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과연 지금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난 그를 존경하지 않아. 그가 필요할 뿐이야.’ 그녀는 남편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를 견디고 있지. 과연 이것이 더 나은 걸까? 그때 난 아직 사랑을 받을 수 있었어. 내게도 아직은 아름다움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계속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거울을 들어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손가방에는 작은 손거울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꺼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부와 덜컹덜컹 흔들리는 사무원의 등을 보면서, 그녀는 만약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뒤를 돌아보면 자신이 부끄러울 것 같다고 느껴 거울을 꺼내지 않았다.


(328)

그는 그녀에게 전보다 더 싸늘했다. 마치 그녀에게 굴복한 것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듯. 그래서 자기에게 승리를 안겨 준 그 말, 바로 내가 얼마나 절실하게 끔찍한 불행을 느끼는지,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무서워하는지라는 그 말을 떠올리며, 그것이 위험한 무기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두 번 다시 그것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 그들을 묶는 사랑과 더불어 모종의 투쟁을 일으키는 사악한 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가 그의 마음에서 몰아낼 수 없는,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서는 더더욱 몰아낼 수 없는 사악한 영이……


(329)

사람이 익숙해질 수 없는 환경은 없다. 특히 주위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갈아가는 것을 볼 때는 더욱 그렇다. 석 달 전만 해도 레빈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다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생활, 그것도 자신의 수입을 넘어선 생활을 하면서, 술에 취해(그로서는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한때 아내가 사랑한 남자와 꼴사나운 우정을 나누고, 더욱더 꼴사납게도 타락한 여자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여자의 집을 찾아가고, 그 여자에게 마음을 뺏겨 아내를 슬프게 한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친 데다 밤에 잠도 못 자고 술까지 마신 탓으로 깊고 편안하게 잤다.


(452)

그래, 난 몹시 불안해. 그리고 이성이 인간에게 부여된 것은 인간을 불안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러니 난 벗어나야 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저 모든 것을 보는 게 끔찍하기만 한데, 촛불을 꺼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어떻게 끄는 거지? 저 차장은 왜 승강용 발판을 뛰어다니는 걸까? 저 객실에 있는 젊은 사람들은 왜 소리를 지르지?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말하고 무엇 때문에 웃는 걸까? 모든 게 진실이 아냐. 모든 게 거짓이고, 모든 게 기만이고, 모든 게 악이야!’


(455-456)

그녀는 성호를 그었다. 십자가를 긋는 친숙한 동작이 그녀의 마음속에 처녀 시절과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을 뒤덮고 있던 암흑이 찍어지고, 일순간 과거의 모든 눈부신 기쁨과 함께 삶이 그녀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 두 번째 객차의 바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바퀴와 바퀴 사이의 중간 지점이 그녀와 나란히 온 바로 그 순간, 그녀는 빨간 손가방을 내던지고는 어깨 사이에 머리를 푹 숙인 채 객차 밑으로 몸을 던져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러고는 마치 곧 일어날 자세를 취하려는 듯 경쾌한 동작으로 무릎을 땅에 대고 앉았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시가 한 짓에 몸서리를 쳤다. ‘내가 어디에 있는 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야? 무엇 때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켜 고개를 뒤로 젖히려 했다. 하지만 거대하고 가차 없는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를 떠밀고 그녀를 질질 잡아끌고 갔다.’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그녀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왜소한 농부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철로 위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불안과 허위와 슬픔과 악으로 가득 찬 책을 읽을 때 그 옆에서 빛을 비추던 촛불 하나가 어느 때보다 밝은 빛으로 확 타오르더니, 이전에 암흑 속에 잠겨 있던 모든 것을 그녀 앞에 비춰 보이고는 탁탁 소리를 내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영원히 꺼지고 말았다.


(500)

그때는 진리를 알았는데 지금은 잘못 알고 있다니,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그 문제를 차분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모든 것이 산산조각으로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그때 착각을 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때의 정신 상태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데다, 그것을 약점 탓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그 순간을 더럽히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과 고통스러운 갈등을 겪으며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정신을 팽팽히 긴장시켰다.


(509)

추론은 그를 의심으로 이끌었고 그로 하여금 무엇을 해야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깨닫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갈 때, 그는 자신의 정신 속에서 두 가지 가능한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 좋은지 어느 것이 나쁜지 판단하는 완전무결한 재판관의 존재를 계속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 그 즉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자기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식할 가능성을 전혀 깨닫지도 보지도 못하면서, 그러한 무지 때문에 자살을 두려워할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생에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일정한 길을 굳건하게 개척해 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540)

민중이란 말이 너무 애매해서 말이야.” 레빈이 말했다.

읍 서기들, 교사들, 어쩌면 1000명의 농민 가운데 한 명은 그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알지도 몰라. 하지만 미하일리치 같은 나머지 8000만 명은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엇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표명해야 않을 뿐 아니라 무엇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표명해야 하는지 최소한의 개념도 갖고 있지 않아. 그렇다면 우리가 무슨 권리로 그것을 민중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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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 자신이 민중과 함께 살고 있고 그의 모든 이해관계가 민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민중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자신과 민중 안에서 어떤 특별한 성질이나 단점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을 민중과 대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오랫동안 주인으로, 중재자로, 특히 조언자로(농부들은 그를 신뢰하여 40베르스타 떨어진 곳에서도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다.) 살아왔으면서도 민중에 대해 어떠한 민중을 사랑하느냐는 질문만큼이나 그를 난처하게 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민중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인간을 안다고 말하는 것과 똑 같은 것이었다. 그는 모든 종류의 인간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그 가운데에는 그가 훌륭하고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농부들도 있었다. 그는 인간들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특징을 찾아 그들에 대한 이전의 견해를 바꾸고 새로운 견해를 확립하였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그 반대였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생활과 대조하여 시골을 사랑하고 찬미한 것과 똑같이, 민중에 대해서도 그가 좋아하지 않는 계급의 사람들과 대조하여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사람 일반과 대조되는 무엇으로 파악했다. 그의 체계적인 이성 안에서는 민중의 생활에 대한 일정한 형식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형식은 민중의 생활 자체에서 어느 정도 끌어낸 것이기도 하지만 주로 대조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 그는 민중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그들에게 공감하는 태도를 결코 바꾸려 하지 않았다.


(30)

, 철학에 관한 이야기는 그쯤 해.” 그가 말했다. “모든 시대를 통틀어 철학의 주요 과제는 바로 개인의 이해와 공공의 이해 사이에 놓인 필연적인 연관을 찾아내는 것이지.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내가 너의 비교를 바로잡아 줄 필요가 있다는 거야. 자작나무 가지는 누가 꽂아 둔 게 아니라 심거나 씨를 뿌려서 얻은 거야. 그러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해. 자신의 제도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 그런 민족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고, 그런 민족만이 역사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


(77)

상관없어요. 어쨌든 당신네들은 자신의 사랑이 무르익거나 선택을 기다리는 두 여자 사이에서 저울질을 끝내면 청혼을 하잖아요. 하지만 여자에게는 누구를 선택할지 묻지 않아요. 물론 다들 여자가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라죠. 하지만 여자에게는 선택권이 없어요. 그저 .’, ‘아니오.’라는 대답만 할 수 있죠.”


(122)

그들은 그가 지난 8년 동안 내 삶을 얼마나 숨 막히게 했는지, 내 안에 살아 있던 모든 것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몰라. 그들은 몰라. 그가 단 한 번도 나를 사랑이 필요한 살아 있는 여자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그들은 그가 항상 날 모욕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했다는 것을 모르지. 내가 노력하지 않았나? 온 힘을 다해 내 삶의 정당성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던가? 내가 그를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할 수 없을 때, 그때는 아들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하지만 때가 온 거야. 난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난 살아 있는 여자야. 내게는 죄가 없어. 하느님은 날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그런 여자로 만드셨어. 이제야 그걸 알겠어. 그런데 지금 도대체 이게 뭐야? 남편이 날 죽이거나 그를 죽이기라도 한다면, 난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아냐, 그는……


(217)

하지만 난 당신이 무엇에 놀라는지 잘 모르겠군요.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뒤떨어진 민중이 자기들에게 낯선 모든 것에 저항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유럽에서 합리적인 농업이 가능한 것은 민중들이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나라도 민중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게 전부예요.”


(218)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학교가 민중에게 자신들의 물질적 상태를 개선하도록 돕는다는 겁니까? 당신은 학교와 교육이 민중에게 또 다른 필요를 느끼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상황만 더욱 나빠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민중은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테니까요. 덧셈, 뺄셈, 교리문답 같은 지식이 무슨 수로 민중들의 물질적 상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준다는 건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8)

레빈은 자신이 최근에 진심으로 생각하던 바를 말했다. 그는 모든 것에서 죽음이나 죽음으로의 접근만을 보았다. 하지만 그가 계획한 일이 그의 마음을 더욱 사로잡았다.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에게는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어둠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일이 이 어둠 속에서 그를 이끌어 줄 유일한 끈이라고 느끼며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붙잡고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297)

그게 어때서? 난 지금도 계속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 죽을 때가 되었다는 건 사실이야. 이 모든 게 다 무의미하다는 것도. 자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난 나의 사상과 일을 너무나 소중히 여기고 있어. 하지만 자네도 한번 생각해 봐.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전체는 아주 작은 혹성에 핀 작은 곰팡이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세상에 무언가 위대한 것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사상이나 일 같은 것 말이지! 이 모든 건 모래알에 불과해.” 레빈이 말했다.


(512)

레빈이 결혼한 지도 석 달이 지났다. 그는 행복했지만, 그 행복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는 걸음걸음마다 예전의 공상에 대한 환멸과 예기치 못한 새로운 매력을 발견했다. 레빈은 행복했다. 그러나 일단 가정생활에 발을 들여놓자, 그는 걸음걸음마다 그 행복이 그가 상상하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걸음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행복하게 떠다니는 보트를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그 보트에 몸소 앉았을 때 느꼈음 직한 것을 경험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한시도 잊지 말고, 발아래에 물이 있다는 점, 노를 저어야 한다는 점, 익숙하지 않은 손으로 하면 아프다는 점, 보고만 있을 때는 쉬울 것 같지만 그것을 직접 해 보면 무척 즐겁기는 해도 굉장히 힘들다는 점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던 것이다.


(520-521)

그는 러시아에서 빈곤이 발생한 것이 토지 소유의 불평등한 분배와 그릇된 경향 때문만이 아니라, 최근 러시아에 변칙적으로 보급된 외국 문명, 특히 도시로의 집중을 초래한 교통망과 철도, 사치풍조의 심화, 그로 인해 농업이 쇠퇴할 정도로 발전한 공업 및 신용 대출과 그 동반자인 주식 거래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 국가에서 부()가 정상적으로 발전할 경우, 이 현상들은 농업에 상당한 노동이 투입된 이후에야, 농업이 올바른, 적어도 일정한 조건에 이른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될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국가의 부는 균등하게, 특히 부의 다른 싹들이 농업을 앞지르지 않는 한에서 성정해야 할 것 같았다. 또한 교통망도 농업의 일정한 상태에 따라 그에 상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러시아의 그릇된 토지 이용을 고려할 때 경제적 필요고 아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생긴 철도는 아직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그것에서 기대되는 농업의 조성을 가져오는 대신 농업을 앞지르고 공업과 신용 대출의 발전을 초래함으로써 농업을 저지할 것 같았다. 그래서 동물의 한 기관의 편향적이고 지나치게 빠른 발달이 전체적인 발달을 저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부의 전반적인 발전에 있어서 신용 대출, 교통망, 공업 활동의 강화유럽에서는 시기적절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겠지만 농업의 정비라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를 제쳐 둔 채 그저 러시아에 해악만 끼칠 것 같았다.


(524)

하지만 불만에 찬 사람이 자신의 불만에 대해 다른 누군가를, 특히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탓하지 않기란 어려운 법이다. 레빈의 머리에도 어렴풋하게나마 그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그 무엇도 그녀의 탓일 수는 없다.) 그녀가 받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경박한(‘그 멍청한 차르스키, 그녀가 그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나도 알아.’) 교육 탓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래, 집에 대한 관심(그녀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을 제외하면, 자신의 몸치장을 제외외하면, broderie anglaise를 제외하면, 그녀에게는 진지한 관심이 전혀 없어. 나의 일에 대해서도, 농사에 대해서도, 농부들에 대해서도, 그녀가 상당한 재능을 보인 음악에 대해서도, 독서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단 말이야.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완전히 만족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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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

 - 로마서 12:19


(13)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99)

이것 봐.” 스테판 아르카지치가 말했다. “자네는 매우 순순한 사람이야. 그건 자네의 미덕이자 결점이기도 하지. 자네는 순수한 성격이라 인생 전체가 순수한 현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자네는 공무(公務) 활동을 경멸해. 자네는 행위와 목적이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또 자네는 한 인간의 활동이 언제나 목적을 갖기를, 사랑과 가정생활이 언제나 일치하기를 바라지. 하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해. 인생의 변화, 인생의 매력, 인생의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기 마련이야.”


(115)

세상에는 모든 행운을 두루 갖춘 경쟁자를 만났을 때 그 즉시 상대방의 장점을 모두 외면하고 단점만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그 행복한 경쟁자에게서 무엇보다 그에게 승리를 안겨 준 장점들을 발견하려 하고 가슴이 저리도록 아픈데도 그에게서 좋은 점만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레빈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228)

그만! 그만하세요!” 그녀는 이렇게 소리치며, 그가 탐욕스럽게 쳐다보는 자신의 얼굴에 엄한 표정을 지으려고 헛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차가운 기둥을 잡고 승강구에 올라 재빨리 객차의 연결 통로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작은 통로에 멈춰 선 채 방금 전 있었던 일을 곰곰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비록 자신의 말도, 그의 말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짧은 순간의 대화로 그들이 무섭도록 가까워졌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녀는 이러한 사실레 놀라면서도 행복을 느꼈다.


(305)

당신은 정말로 모르십니까? 내게는 당신의 삶의 전부라는 걸. 난 평온이란 걸 모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줄 수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 사랑……, 그렇습니다. 난 당신과 나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당신과 내가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에게든 당신에게든 평온 따위 있을 것 같지 않군요. 내 눈에는 절망과 불행, 아니면 행복, 그것도 커다란 행복의 가능성만 보일 뿐입니다. 그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요?” 그는 입술만 움직여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마땅히 해야 할 말을 찾기 위해 이성의 힘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 가득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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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24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1,2,3 권을 최근 지인에게 선물했어요. ㅋ

bookholic 2020-11-24 23:38   좋아요 1 | URL
워낙 유명한 작품이지만, 두께와 고전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멀리 했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읽어 보니 흡입력이 대단한 책이더군요.. 왜 고전이 되었는지 알겠네요...
진작 읽어 볼 것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도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11)

하루에 45분만 할애하면 피아노 실력뿐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런던 교육학과 교수인 수잔 할람이 진행한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악기를 배우면 절제력, 자신감, 집중력, 문제해결 능력, 언어능력, 문학, 수학 능력뿐 아니라 개인적인 행복감도 높아진다고 합니다. 악기 연주는 기억력과 조직 관리 기술을 향상시키고, 신체 조정 능력을 강화하며,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호흡기관을 건강하게 해줄 뿐 아니라 자신과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하죠. 음악 연주는 뇌 신경을 강화하거나 새롭게 신경을 자극함으로써 뇌 활동을 효과적으로 증진시키며, 이 효과는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합니다.(더 설명이 필요 없겠죠?) 지능 지수를 고려한다고 해도 결과에 큰 차이는 없습니다. 설령 여러분이 완벽한 바보라도 (본인 이야기인 것 같으면 손들어 보세요) 여전히 피아노를 배움으로써 좀 더 원만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45)

우리의 목표는 멈칫거리거나 리듬에서 벗어나지 않고 모든 음을 부럽고 고르게 치는 겁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거예요. ‘죽느냐 사느냐…’처럼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지한 독백을 읊으면서 강세를 들쑥날쑥하게 둔다고 생각해 보세요. 대사 자체가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죠. 연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왼손 첫 음은 출발점이므로 분명하게 쳐야 하지만, 나머지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것이 좋습니다.


(64)

보통 음악성은 원래 타고나는 것이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저도 그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높은 수준을 언급할 때 한해서입니다. 저는 음악성이 인간의 기본적인 성질 중 하나이며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음악적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의견 또한 동의합니다. 노래나 어떤 음악을 들을 때 특별한 느낌이 든다면 내재한 음악성이 있다는 뜻일 거예요. 당신도 이제 그걸 밖으로 표현해볼 시간이 온 겁니다.


(71)

바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악기를 연주하기는 쉽다. 제대로 된 타이밍에 정확하게 건반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악기가 알아서 할 것이다.’ 조금은 무심한 말일 수도 있지만(그래요, 사실 무책임하기는 하죠), 여러분들이 바로 바흐가 한 말의 증거입니다. 시간을 들여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재대로 된 타이밍에 제대로 된 건반을 누를 수 있게 되었잖아요? 진짜 연주가 시작된 겁니다. 정말 놀라운 목표를 달성한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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