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서구권에서는 붙박이별과 떠돌이별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예 다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는 붙박이별을 스타(star), 떠돌이별을 플래닛(planet)이라고 구별해 부른다. 이런 서구의 관례를 따라 스타라는 단어를 별이라고 부주의하게 번역해오다 보니 오늘날 한국에서 별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붙박이별에 국한되어 사용되곤 한다. 서구의 플래닛으로는 한자 용어인 행성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27)

플라톤은 주의 본질이 수라고 생각한 피타고라스의 영향을 받아, 순수하고 영원하며 완전한 우주의 속성이 다섯 개의 정다면체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엠페도클레스 이후 고대 그리스에는 우주가 흙, , 공기, 불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는데, 플라톤은 각각을 정사면체, 정육면체, 정팔면체, 정이십면체와 연결시켰다. 나머지 하나인 정십이면체는 신성한 영역인 우주를 채우고 있는 에테르(ether)에 대응시킨다. 이에 따라 세계는 지구를 중심으로, 그 바깥에 순차적으로 물, 공기, 불이 위치되었다.


(42)

중세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천동설에 기반한 우주관이 계속 이어진다. 중세인들도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창조한 중세인의 우주 또한 그다지 크지 않았다. 별들은 하루라도 짧은 시간 동안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했으므로, 별들이 무한한 거리에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별들이 박혀 있는 천구는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다. 다만 무한한 신의 속성을 반영하기 위해 천구 밖에는 무한한 신의 영역이 있다고 믿었다.


(51-52)

비록 원궤도를 포기하는 아픔은 있었지만, 케플러는 새로운 우주의 질서를 발견한다. 그는 관측 데이터로부터 행성의 타원궤도가 찌그러진 정도, 즉 타원의 반지름 중 길이가 긴 쪽과 짧은 쪽의 비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긴반지름과 공전주기 사이에 서로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낸다. 긴반지름의 세제곱이 공전주기의 제곱에 비례함을 보인 것이다. 이 관계는 케플러의 제3법칙으로 알려져 있고, 흔히 조화의 법치(harmonic law)이라 부르기도 한다. 타원궤도라는 추함 이면에 숨겨져 있던 신성한 하모니의 발견은 분명 케플러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63)

그중 한 명이었던 헨리에타 리비트는 주당 10.5달러라는 박봉의 인건비를 받으며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마젤란은하에 있는 1777개의 변광성 관측 자료를 분석했다. 변광성이란 빛의 세기나 밝기가 시간에 따라서 변하는 별을 말하는데, 별빛의 밝기가 이처럼 변하는 이유는 별의 크기가 팽창했다가 줄어드는 진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리비트는 이 변관성들 중에서도 세페이드 변광성이라 불리는 별들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이 변광성의 최대 밝기와 진동 주기 사이에 깔끔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진동 주기가 짧을수록 어둡고 주기가 길수록 밝았던 것이다.


(99-100)

외부 은하의 후퇴속도와 거리 사이의 상관관계는 허블의 관측 이후 오랜 기간 허블의 법칙이라 불려 왔었다. 하지만 이를 이론적으로 예측한 사람은 르메트르였고 많은 천문학자들이 르메트르에게도 합당한 크레딧을 주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결국 2018년 국제천문연맹은 이 법칙을 공식적으로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아인슈타인, 에딩턴, 허블 등 당대 학계 스타들의 그늘에 가려 과소평가 받아왔던 르메트르가 오늘날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해진다.


(125-126)

그러나 우주가 팽창하면 온도가 떨어지고 빛의 에너지도 감소한다. 이 경우 빛의 에너지는 입자들의 질량과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보다 작아진다. 즉 빛의 에너지는 더 이상 입자와 반입자를 생성할 만큼 충분히 높지 못하다. 반면 그전에 만들어진 입자와 반입자는 충동하면서 빛으로 바뀔 것이다. 물질과 반물질은 정확하게 같은 양만큼 생성되었기에, 이렇게 서로 쌍소멸하면 결국 우주에는 빛만 남게 될 것이다.


(146)

빅뱅은 우리의 미래에 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준다. 아주 먼 미래의 우주의 모습은 어떨까?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생명도, 지구도, 별도, 은하도 모두 생기를 잃고 죽어갈 것이며 결국 빛이 없는 암흑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나중에는 허무하게 죽어갈 우주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171)


태양의 밝기는 3.84x10^27와트(W). 수소 핵융합으로 이 정도의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초당 6.4x10^14킬로그램의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어야 한다. 매우 많은 양처럼 느껴지지만 태양 전체 질량은 무려 2x10^30킬로그램에 달한다. 100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태양이 지금처럼 밝게 빛날 수 있도록 유지시킬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수소 연료가 있다는 뜻이다.


(200)

우리의 핏속을 흐르는 철, DNA를 구성하는 원소들은 모두 과거 언젠가에 별 속에서 생성되었다. 별들의 먼지로 구성된 우리 몸은 별의 탄생, 별의 진화, 별의 죽음과 초신성 폭발의 과정을 기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도 만들어졌고 인체를 구성하는 원소들이 지구에 마련되었다. 우리 모두 아주 먼 과거에는 별 속에 있었다.


(250)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수렴진화는 심지어 분자단위에서도 발견된다. 외계에 생명체가 있다면 지구와 같이 탄소를 기반으로 했을 가능성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다. 탄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 중 하나이고 탄소처럼 화학적 다양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소는 없기 때문이다. 중력이 전 우주에 보편적으로 작용하는 법칙이듯, 지구에서 적용되는 화학법칙이 외계에서 다르게 적용될 이유 또한 없다. RNADNA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자들의 조합 방식에도 생명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매우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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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나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요!” 인질이 거만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모양이군!” 나는 파트리키 귀족인데다, 율리우스 집안 출신이오. 율리우스 집안 출신이란 게 무슨 의미냐고 묻겠지, 안 그렇소? 그건 내가 아프로디테의 아들을 통해 그 여신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뜻이오. 나는 집정관을 배출한 가문 출신이며, 나 역시 때가 되면 집정관을 지낼 거요. 나는 그저 평범한 원로원 의원이 아니라고! 시민관을 수여받았고…… 원로원에서는 발언권도 있고…… 원로원의 가운뎃줄에 앉고…… 내가 원로원 의사당에 들어가면 모든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준단 말이지. 심지어 전직 집정관과 감찰관까지도! 그런데 고작 은화 20탈렌툼? 내 몸값은 은화 50탈렌툼이오!”


(347)

하지만 키케로는 책상 표면이 안 보일 정도로 다양한 일감이 눈앞에 쌓여 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전광석화처럼 결정을 내리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은빛 혀와 금빛 목소리는 재치 넘치고 지혜로운 말을 쏟아냈고, 큼직하고 둥그스름하니 잘생긴 머리통은 사람들에게 고귀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때때로 키케로의 마음속 가장 어두운 한구석에 숨어 있던 눈부신 자아가 전면에 드러나기도 했다. 그 한 달 동안 키케로는 완전히 새로운 재판 진행방식까지 고안해냈다. 이것은 지금까지 로마의 소송 절차로는 불가능하던 일을 가능케 했다. 즉 배심원들에게 구체적이고 확실하며 산더미 같은 증거들을 아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변호인단이 피고인을 변호할 방도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391)

저의 성향을 잘못 분류하신 건 아니에요, 외삼촌. 지금은 거기에서 벗어났으니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저는 유피테르 대제관으로 지낸 시간이 어쩌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 경험을 통해 강해지는 법은 물론 섬세해지는 법을 배웠고, 저의 광채를 드러냈다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에선 그것을 숨기는 법을 배웠어요. 돈이나 스승보다 시간이 더 소중한 아군이라는 것을 배웠고, 제 어머니께서 저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인내를 배웠고, 그 무엇도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지금도 배우는 중이에요. 외삼촌. 결코 배움을 멈추지 않았으면 해요! 저는 루쿨루스에게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실험해보는 방식으로 배움을 이어살 수 있다는 걸 배웠어요. 한발 물러서서 어떤 일이 벌어지나 지켜보는 거죠. 안심하세요. 외삼촌. 제가 가장 위대한 부동의 원동자로서 제일 앞자리에 서게 될 날이 올 테니까요.


(418-419)

저는 지금 제가 느끼는 것 이상의 슬픔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슬픔의 비극이죠. 우리는 늘 자신의 슬픔이 타인의 슬픔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여러분께 먼저 고백하고 싶은 점은, 제가 자신의 권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차갑고 냉철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겠죠. 저는 한때 킨나의 딸과 이혼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명령에 불복하기로 한 거죠. 저의 개인적인 이득과 뒤따르게 될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와 이혼하라는 술라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여러분께 이미 슬픔의 비극에 대해 한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 비극은,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한 번도 깨닫지 못하는 비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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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자네한테는 적이 끊이지 않을 테니까. 복수의 여신들이 가련한 오레스테스를 늘 따라다녔듯, 질투가 자네를 늘 따라다닐걸. 질투 혹은 선망, 뭐가 됐든 남이 가진 것을 탐하는 마음. 누군가는 자네의 아름다운 용모를 선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체력을, 누군가는 훤칠한 키를, 누군가는 출생을, 누군가는 지력을 탐내겠지. 자네가 더 높이 오를수록 질투도 더 커질 거야. 자네는 어디서나 적에 둘러싸이고 친구는 없겠지. 남자건 여자건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될 거야.”

카이사르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 말을 들었다.


(219-220)

내 뜻을 오해하는군. 나는 지금 현실적인 공직이 아닌 야망에 대해 얘기하고 있네. 카이사르 자네는 스스로 완벽하길 원해. 자네를 불완전하게 만들 일은 어느 무엇도 일어나선 안 돼. 자네는 지금 그 소문이 부당해서 신경을 쓰는 게 아니야. 자네가 괴로운 건 그 소문이 자네의 완벽함을 손상시키기 때문이야. 적절한 시기에 모든 면에서 모든 방식으로, 완벽한 명예, 완벽한 출세, 완벽한 전력, 완벽한 명성. 그리고 자네가 스스로에게 완벽을 요구하듯 자네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완벽을 요구할 거야. 완벽에서 벗어난 자는 사정없이 내치겠지. 생득권에 대한 내 집착이 날 갉아먹었듯, 완벽함에 대한 집착이 자네를 갉아먹을 거야.”


(291)

당신 타고난 성격대로 해요. 그냥 붙잡고 해치워버려요.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신경쓰며 머뭇거리다간 상황이 제멋대로 돌아가기 일쑤예요. 그러니까 고민하지 말아요.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걱정하지 말고요. 그러다 일을 그르쳐요.”


(315-316)

두려워. 너무 두려워! 죽는 게 이렇게 두려울 거라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어. 이건 숙명이야. 피할 수 없어. 곧 있으면 끝난다. 그리고 나는 다시는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겠지. 나는 아무도 아니게 된다. (). 그 운명에는 고통이 없다. 꿈조차 꾸지 않는 무지(無智)의 운명. 영원한 잠. 왕관 대신 놀라의 풀잎관을 쓴 로마의 왕이었던 나,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사람들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다. 그것이 유일한 불멸의 길이다.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에서 기억되는 것. 나는 회고록을 거의 마쳤어. 다 쓰지 못한 분량은 겨우 한 권 정도다. 그 정도면 미래의 역사가들이 나에 대해 판단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영원히 죽이고도 남지.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회고록을 쓰지 못하고 죽었어. 나는 썼어. 그러니 내가 이길 거야. 내가 이겼어! 지금까지 내가 거둔 모든 승리 중에 가이우스 마리우스에 대한 승리가 내겐 가장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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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13)

존엄은 다르다. 존엄은 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이면서도 개인의 공적 생활의 모든 규정 요인들로 확장된다. 정의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표현이 있는 것이다. 존엄은한 사람의 장엄함영광의 정도라고 할까? 존엄은 개인이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의 지도자로서 무엇인지를 요약한다. 존엄은 개인의 자존감, 온전함, , 지성, 행동, 능력, 지식, 지위, 사람으로서의 가치의 총합이다존엄은 사람의 죽음을 넘어서기에, 사람이 죽음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 이것이 가장 올바른 정의다. 존엄은 사람의 물리적 존재의 멸실에 대한 승리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바로는 폼페이우스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술라에게 중요한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존엄이다. 술라는 미트리다테스를 무찌를 거라고 말했다. 옛날의, 전통적인 형태로 공화국을 재건하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술라는 말한 대로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존엄이 손상될 테니까. 사회적인 추방과 공식적인 오명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존엄은 없었다. 따라서 술라는 자기 바깥에서 자신의 약속을 이행할 힘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약속을 이행했을 때 그는 만족할 것이다. 그때까지 술라는 쉴 수 없다. 쉬지 않을 것이다.


(284)

술라는 이제 자기 손아귀에 들어온 로마를 좋아하지도, 이상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가가 너무 컸다. 또한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그가 가장 갈망한 것은 평화와 여유, 온갖 성적 환상의 충족과 머리가 빙빙 도는 폭음, 관리와 책임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없었는가? 로마 때문에, 의무 때문에, 그토록 많은 임무들을 마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내려놓는 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술라가 말을 타고 텅 빈 대경기장을 따라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해야만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일을 해야만 했다. 그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325-326)

저장 선반과 헛간, 저장고와 저장실에 스민, 그곳들이 가득차 있기를 바라는 페나테스라는 신들이 있었다. 항해중인 배들과 교차로들을 모으고 무생물 물체들의 목표의식을 유지시키는 힘들은 라레스였다. 나무들이 바르게 생각하도록 하는, 가지와 잎은 위쪽으로, 뿌리는 아래쪽으로 뻗도록 하는 힘들이 있었다. 물을 달콤하게 하고 강이 높은 곳에서 저멀리 바다까지 아래로 흐르게 하는 힘들이 있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행운과 복을 주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보다 덜 주며, 또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힘은 포르투나였다. 그리고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라 불리는 힘은 다른 모든 힘들의 총합이자, 사람들에게는 불가사의하나 힘들에게는 논리적인 방식으로 그 힘들을 한데 묶는 결합조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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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이렇게 보면, 코로나19는 단지 경제의 외생변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진보와 발전으로 여겼던 경제성장에 내재한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이제는 성장신화의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우리를 깨우는 죽비소리다. 결국, 바이러스 재난의 근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극복할 것은 바이러스가 아닌 우리 자신이고, 싸울 것은 사람과 자연을 희생하여 성장을 거듭해온 탐욕의 경제다. 코로나19는 현상으로는 질병의 문제지만 근본으로는 자연과 경제 문제다. “우리는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프란치스코 교종, <찬미받으소서>). 기후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문제다(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코로나19를 질병으로만 접근하면 이 바이러스 감염병이 가리키는 문제의 본질과 근원을 놓치고 결국 문제해결에 실패할 것이다.


(24)

성장은 언제나 큰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탈성장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적은 것이 많은 것이고, 단순한 것이 좋다고 말한다. 탈성장을 세상을 보는 또다른 시각이다. 소유와 소비, 경쟁과 독점, 효율과 이윤, 통제와 지내, 무한한 욕구가 성장을 나타낸다면, 단순과 절제, 협력과 나눔, 환대와 보존, 돌봄과 공생, 자족과 충분함은 탈성장을 가리킨다. 탈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태도는 더는 성장할 수 없다는 좌절에서 비롯된 강요된 선택이 아니다. 이러한 태도도가 좋은 삶에 필수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자발적 선택이다. 탈성장은 우리 각자의 내면의 성찰과 변화를 요청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변화는 우리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절제는 탈성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 차원의 덕()이다. 절제의 내면화로 탈성장에 조응하는 단순하고 검약한 생활양식이 가능해진다.


(28)

돌연변이는 보통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2~3개의 단백질의 머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해서 인간 세포에 정박하여 침입할 수 있게 된다. 해마다 생산되는 백신은 바로 그곳을 표적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단백질들의 줄기들은 안정적이고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바로 이 변하지 않는 줄기들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여러 해 동안 지속될 수도 있는 모든 바이러스 변종에 대해 전부 면역력을 갖게 하는 범용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사실상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연구는 존재하지만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거대 제약회사들은 범용 백신을 개발하거나 제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36)

나는 자본주의가 대다수 인류에게 소득을 만들어주고, 일자리와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을 제공하고, 화석연료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고, 생물학의 발전을 공중보건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우리 시대의 문명적 위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위기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독립된 별개의 문제가 아닌 복잡한 하나의 총체적 위기로서 보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의 초자본주의는 인간 종의 생존에 필요한 생산력의 진보를 막는 절대적인 족쇄가 되었다.


(45)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의 지구 평균기온보다 약 1℃ 올라간 현재의 수준에서도 우리는 이미 너무나 큰 규모로 지구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어서 어느 때고 걷잡을 수 없는 폭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험에 처해 있다. 더욱이 이 메커니즘은 대단히 복잡해서 우리는 그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 상태가 이어진다면 보수적인 추정으로도 80년 내에 지구 평균 기온이 3~6℃ 상승한다는 것이다. 최소로 잡아도 16년 이내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2℃ 뜨거워진 지구도 인간 종에게는 극히 위험한조건이다. 역치라고 하는 3~4℃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인류 문명의 핵심적인 기반시설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전지구적인 산업의 확장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조건도 만들어냈다. 산업활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함에 따라서 인간은 야생 동식물과 자연 서식지를 침범하였고, 수많은 미지의 질병을 갖고 있는 동물들이 인간 주거지와 더욱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이미 수십 면 동안 이번 세기에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필연적으로 창궐한 것이라고 경고해온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104)

인류의 당면 위기 중 하나인 기후위기를 넘어서려면 탈탄소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처한 위기 중 하나는 생물종 멸종이다. 2000년부터 매년 약 650ha의 산림이 사라졌고(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과 비슷한 규모), 100종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게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의 설명이다. 지구 전체 동식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런 속도라면 지난 1,000만 년의 평균 멸종 속도보다 수십, 수백 배 빠르다. 원인은 도시화 등 인간의 토지이용 변화와 그에 따른 동식물의 서식지 감소가 압도적이다. 이어서 식물 채집과 사냥, 그리고 기후변화가 세 번째 위협요인으로 꼽혔다. 자칫 6,0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뒤 처음으로 지구가 대멸종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156)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통용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당연한 듯이 쓰이고 있는 건강권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이후이고, 현재도 모든 국민이 차별 없는 건강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건강권이란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선언적이라 실제로 구체화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건강권 중 일부인 공평한 의료접근성의 실현조차 건강보험 역사가 40년이 넘은 현재에도 요원하다. 하물며, 모든 시민을 위한 건강 유지 증진 정책은 항상 부수적이고 우선순위에서 떨어진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제공 체계는 해방 이후 민간에 맡겨져 거의 방치되어왔고, 건강보험 등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비효율과 상업성으로 인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의료 공공성이 매우 취약한 범주에 속한다.


(179-180)

1800년까지는 누구나 이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선거대의제는 민주주의의 정반대라고 생각되었다. 그것에 그리스에서 전래된 용어로 이름을 붙인다면 올바른 명칭은 선거 과두정이 될 것이며, 그 뜻은 우리가 우리를 통치하도록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통치이다.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이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 민주주의자를 자처한다는 발상이 생겨난 것은 1800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였다. 그 뒤로는 이 잘못된 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혁명가, 신층 중간계층, 지식인, 학자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1920년경에 이르면 그것은 사회 일반에 수용되기에 이른다. 즉 선거대의제가 민주주의라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182~184)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

민주주의는 가장 공평하다. 즉 법 앞에 평등하다. 공직자는 추첨으로 임명되고, 권력에는 책임이 지워지고, 모든 질문은 열린 토론에 붙여진다.(<역사>, 3 80 6)

플라톤(기원전 428~348)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 승리하여, 몇 사람은 처형되고 또 몇 사람은 추방되고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통치권력이 동등하게 분배될 때 민주주의가 성립된다.(<국가>, 8)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추첨으로 공직을 임명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선거로 선출되는 것은 과두정치였다.(<정치학> 4, 1294a)

키케로(기원전 104~43)

통치권이 한 사람에게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군주제라고 부른다. 특정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통치권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귀족정이라고 부른다. 통치권이 민중의 손에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국가론>, 1, 41, 42)

엘리엇(1490~1546)

도시와 자치령은 전 시민의 합의에 의해서 통치되었다.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믿을 만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보유한 미덕과 지혜로써 공공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가장 뛰어난 시민을 추방하거나 죽이는 일이 흔했다. 이런 통치방식은 그리스어로 데모크라티아(Democratia)’, 라틴어로 포퓰라리스 포텐티아(Popularis Potentia)’, 영어로 평민에 의한 통치(rule of the commonalty)’라고 불렸다.(<위정자론>)

알투시우스(1557~1638)

민주주의는 그 본성상 자유와 평등한 존경을 요구한다. 평등한 존경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존재한다. 시민들은 번갈아가며 통치하고 복종한다. 모두가 똑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 사적 삶과 공적 삶이 교차하며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함께 결정하고 개인은 언제나 순종한다.(<정치학>, 39, 61>

홉스(1588~1679)

통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군주제는 단 한 명이 통치권을 갖는 경우이고, 데모크라시는 민회에 통치권이 있는 경우이며, 귀족정은 임명되었든 선출되었든 아무튼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되는 일부 특정 사람들로 구성된 기관이 통치권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리바이어던>)

몽테스키외(1689~1755)

공화국에서 민중이 주권을 갖고 있으면 그것은 민주주의다. …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의 방식이다.(<법의 정신>, 22)

루소(1712~1778)

추첨의 의한 선발은 그 본성이 민주적이다라고 몽테스키외는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 그러나 나는 이미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상(理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선거의 추첨을 결합할 때, 군사직위처럼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자리는 선거를 통해 임명해야 한다. 추첨은 사법관 같은 경우에 적합하다. 양식이 있고 정의롭고 정직한 것으로 충분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우 말이다. 잘 구성된 국가에서는 이러한 자질은 모든 시민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사회계약론>)

시에예스(1748~1836)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법을 제정하고 공무원을 직접 임명한다. 우리의 계획에서는 시민들은 대체로 직접 대리자를 선발한다. 따라서 입법행위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것은 대표제가 된다.

버크(1729~1797)

[‘민주주의를 묘사하면서] 여기서는 모든 공무 혹은 공무 전반을 민중이 직접 개인적으로 처리했고, 법은 민중 자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공무원이 직무에 소홀한 점이 있었을 때에는 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OO경에게 쓴 편지)

메디슨(1751~1836)

민주주의에서 민중은 모여서 직접 통치한다. 공화국에서 민중은 대표자들과 대리인들을 소집하여 통치를 위탁한다.


(228)

이제 지방분권균형발전이라는 구호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분권은 권한을 단순히 넘겨받은 것 이상의 자치에 근접해야 하고, 균형발전은 기업과 기관 이전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니 그런 구호는 이제 폐기됨이 옳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하면 세상이, 삶의 질이 더 나아지나. 그것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지향이 없다. 발전이라는 것이 서울과 똑같아지는 것을 뜻함인가. 도시화되는 것을 뜻하는가. 서울의 복제품을 여기저기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제 균형발전이라는 용어는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체적인 언어로, 지방분권이라는 용어는 자치와 자급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말로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성장과 발전 대신,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잘되는 놈만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의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부분을 착취해 성장하고, 경쟁과 도태로 거르는 방식이 아닌 협동과 연대의 방식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역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행정체계와 시장체계에 예속되지 않고 관계가 이들을 제어하고 부릴 수 있는 새로운 지역사회가 건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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