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지구상에는 다른 모든 생명체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의 바이러스가 존재한다. 이제 바이러스는 생물학의 암흑 물질로 여겨지고 있다. 왜냐하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아직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특히 살균 바이러스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니 앞으로 몇 년 뒤면 지금보다 많은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02)

시겔라나 살로넬라 같은 일부 박테리아는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세균으로 분류되지만, 대부분의 장내 미생물은 유익균으로 간주된다. 유용한 비타민, 영양소 그리고 호르몬을 만들기 때문이다. 해롭거나 기생하는 미생물조차 낮은 정도의 자가면역 질환을 유도함으로써 우리의 면역체계를 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103)

박테리오파아지(또는 파아지)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종류다. ‘Bacteria(박테리아)’와 그리스어 ‘phagein(먹다라는 뜻)’이 합쳐진 이름이다. 두 단어를 합하면 실제로 박테리아 포식자라는 뜻이 된다.

박테리오파아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생물학적 개체다. 지구상에 10마리의 파아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0 31개나 붙는 숫자로, 우주에서 관측되는 별보다 많은 숫자다. 파아지를 한 줄로 쌓아놀리면 1억 광년 높이까지 올라갈 것이다.


(108-109)

간단히 다섯 단계로 끝나는 바이러스 복제

1. 침투 후 몇 초 안에 바이러스 유전자는 숙주 박테리아의 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역공을 시작한다.

2. 바이러스 유전체가 원형을 그리면서(고리화) 숙주의 DNA를 사용해 새로운 복사본을 만들기 시작한다.(복제)

3. 다음 단계로 구조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숙주의 아미노산을 이용하여 새로운 박테리오파아지의 껍질을 만드는 것이다.

4. 새로운 바이러스 구성요서(단백질과 유전체)가 조립되면서 수십 마리의 새로운 박테리아파아지로 완성된다.

5. 마지막으로 파아지는 홀린과 리신, 두 종류의 킬러 효소를 합성한다. 홀린이 박테리아 세포막에 구멍을 뚫으면, 이 구멍을 통해 들어간 리신이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먹어치운다. 두 효소가 함께 작용하여 박테리아는 터져버린다. 그 결과 수십 마리의 박테리오파아지가 주변의 체액으로 퍼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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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의 주체는 지역의 소농이다. 땅심을 북돋고, 논밭 농사와 상호 순환하는 축산을 유지하고, 지역사회 먹을거리체계를 지탱하는 원천은 소농이다. 미국 농무부가 지원하는 다국적 농기업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통상은 소농의 자치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힘은 무역이 아니라 소농이 중심이 된 지역사회 자치에 있다. 특히 새 농업통상은 여성 농민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한다. 지구의 보편적 규범으로, 여성이 생산과 유통의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 속에서 식량보장계획을 주도하도록 지지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여성 농민에게 농업 공동경영주의 법칙 지위를 보장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36)

이제 도시로의 집중과 개발은 한계에 달했다. 코로나19, 기후위기, 환경위기, 농업위기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먼저 농어촌을 돌봐야 한다. 농어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은 이러한 문영의 전환을 위한 소중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가지 않았던 길을 가도록 요구하고 있다. 농촌기본소득은 그 길의 나침반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56)

재생가능에너지를 정말 옹호한다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부터 돌아봐야 한다. 지배엘리트의 관점에서 농촌, 산촌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숲과 환경을 지배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농촌의 관점, 농민의 관점, 숲의 관점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바라보고, 다시 한번 자기 지역 에너지는 자기 지역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에너지전환을 앞당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래야 도시와 공장 곳곳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려고 애쓰게 될 것이고, 전기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전환을 앞당기는 방법이다.

 

(58)

농촌 없는 사회란 상상할 수도 없다. 농촌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면, 그 사회는 망할 것이다. 농민이 있어야 농촌이 살지만, 농촌이 살 만한 곳이 되지 못하면 농민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농촌, 농민, 농업은 서로 떼래야 뗄 수 없다. 그리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농촌-농민-농업의 가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한반도에서 식량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곡물자급률이 20%대에 머무르는 사회에서 정치와 언론이 이렇게 농촌-농민-농업을 홀대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102)

농사를 대규모로 짓고 농사짓지 않고 착취하는 수탈계급이 생기면서 인간 문명은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농사를 바라보는 저의 관점은 이중적이 되었습니다. 농업문명은 지주-소작인 계급문명으로 변질되더니 약탈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자급 중신의 농사문명이 교환 중심의 농업문명으로 바뀐 건 동력 기계와 자본주의가 출현하면서 결국에는 농업이 산업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 지식인들과 아류들이 말하는 직선적 역사발전 단계설이란 결국 탐욕과 착취를 무한 추구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쌓아올린 바벨벨탑입니다.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역사가 종식된 지상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지요.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는 모래성을 허물고 흙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108-109)

한 스위스 수녀님이 20대 때 우연히 한국에 오게 되었답니다. 1970년대 초였는데 서울의 판자촌에 가게 되었던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여남은 명 되는 동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 먹는 장면을 보았다고 해요. 이 수녀님이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고, 또 감격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고 싶다고 결심을 하고 고아들, 집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거두면서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답니다. 그리고 은퇴를 해서 충청도 어디 시골에 가서 혼자 살고 계셨는데, 그 당시에 기자가 찾아가서 인터뷰를 했어요.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이야기, 지금 살고 있는 이야기를 기자가 들었는데, 그분이 굉장히 화가 나 있더라는 거예요. 한국이 너무 달라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곳으로 와서 살지 않았다, 지금 한국은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니라 돈만 아는 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한국이 이렇게 사나운 사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걸 제가 신문에서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요.

 

(114-115)

20세기 초에 미국 농무성 토양관리국장으로 있던 프랭클린 H.킹이라는 사람이 조선, 일본, 중국, 만주를 둘러보고 난 뒤에 돌아가서 <4,000년의 농부>라는 책을 썼어요. 동양에 가보고 탄복했다, 동양 사람들이 굉장히 지혜롭게 토양을 관리하더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깜짝 놀란 게 뭐냐면 인분을 거름으로 쓰는 거였어요. 서양 사람들은 가축분뇨를 퇴비로 쓴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임분을 쓴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런데 인구가 많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분을 농사에 쓰지 않고 강이나 바다에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물, 바다 다 오염됩니다. 동양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 옛날부터 이것을 삭혀서 발효시켜가지고 도로 농토로 넣어줬어요. 그렇게 해서 농토가 지력이 고갈되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가 작물을 키워서 먹으면 그만큼 땅에 있던 양분이 뺏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거예요. 이 순환을 4,000, 아니 만 년 동안 계속하니까 땅이 보호가 되는 거죠. 게다가 논농사는 수전(水田)입니다. 표토가 날아갈 일이 없어요. 그리고 논은 기후도 조절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대형 댐 한 10개 이상의 물 저장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논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116)

저는 밥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밥이 어디서 나오는가. 이 밥을 지키기 위해서 농민들이 어떻게 고생하는가. 하늘과 별과 바람과 비가 땀과 결합해서 종합 예술품으로서 쌀이 나오는 거잖아요. 일찍이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밥 한 그릇을 제대로 알면 만사를 안다 그랬는데, 하나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압축하고 있는 말이 공양인 거예요. , 하늘과 농부와 별과 바람과 비가 결합해서 하나의 제물이 되어서 나를 모시는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밥 먹는 시간이 한없이 거룩해집니다. 쌀 한 알 한 알 씹으면 희열이 생깁니다. 나한테 희생되겠다고 온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뭐 쌀 아껴라, 밥풀 함부로 버리지 마라,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겠죠. 자연히 경건해지니까요. 해월 선생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그랬습니다. 만물의 관계는 이천식천이다. 하늘이 하늘을 먹여 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말한 하늘은 모든 생명을 말하는 거예요. 하늘의 도움 없이, 하늘의 정기 없이는 어떤 생명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게 없어요.

 

(207)

2015년 여름 인권사회학자 조효제 교수는 칼럼 기후변화, 절체절명의 인권’(<한겨레>, 2015 8 19)에서 기후변화를 가장 심각한 구조적 폭력이며 “21세기 인권침해의 주범 중 주범이라 확신한다며, 기후변화가 인권에 주는 끔찍한 함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불면의 밤을 뒤척여야 정상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인권침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설정되는 관계만을 인권문제로 파악하는 기존의 인권담론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시스템적, 구조화된 인권문제는 배제된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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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1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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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1 0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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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산악파는 열이면 열 모두 사형에 표를 던졌고, 평원파의 38퍼센트가 그들과 함께 찬성표를 던진 반면, 오로지 14퍼센트의 지롱드파만이 시역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코뱅 당원들 중 가장 결연한 자들 눈에는 지롱드파의 이 신중함이 위태한 이 시기에 비난받아 마땅한, 위험한 계산일 뿐이었다.


(41-42)

장 봉 생탕드레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혁명에 지쳐 있습니다. 부자들은 혁명을 싫어하며, 가난한 자들에게는 빵이 부족하고, 비난해야 할 것은 우리라고 사람들은 그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기력을 북돋우려고 우리는 모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체들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빵이 없지만 곡물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곡물을 꼭 쥐고 놓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살 길을 긴급히 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혁명을 완수하도록 우리를 돕기 원한다면 말입니다......

방데와 그 인근의 도에서 생긴 혼란이 아마도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위험한 것은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 자유에 대한 신성한 열정이 질식되어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138)

뤼오가 결론지었다. “얼마나 이상한 국가인가. 모든 일에서 극단을 달리다니! 프랑스는 왕을 숭배했다가, 마지막 왕을 죽였다. 가톨릭 신앙의 멍에 아래 기꺼이 숙이고 들어갔다가, 막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중간 조치는 전혀 모른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은 무엇일까? 비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녕, 나의 친애하는 친구여, 더 보지 않으려 내 눈에 띠를 맨다네……”


(155-156)

전에는 신권을 가지고 있던 왕이, 왕비가, 1788년 자유를 위해 일어났던 바르나브가, 마르세유 대표자들과 함께 1792 8 10일 튈르리 궁 공격에 나섰던 바르바루가, 브리소가 그들의 머리를 창문에 내놓았다면, 그들처럼 널빤지 위에 굴러떨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고 할 수 있는 이가 누구겠는가?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외쳤다.

사람들이 나에게도 역시 공포의 생각을 심으려 했으나, 위험이 나에게 뭐 그리 중요한가? 나의 생명은 조국의 것이고, 내 심장은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나무랄 것도,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는 일이 될 것이다.”


(170)

혁명 정부의 동력은 덕이며 동시에 공포입니다. 덕이 없으면 공포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공포가 없다면 덕은 무력합니다.”

기요틴은 사람들을 고결하게 만드는 기계와 같은 것이었다.


(208)

구체제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국내 통관세 세무 관리 노릇을 한 징세 청부인 스물일곱 명을 죽였다.

그들 중에는 위대한 화학자 라부아지에도 있었다.

루이 16세의 누이인 마담 엘리자베트도 죽였다.

이는 복수의 살인이었다.

그렇게 공화국을 정화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제안하에, 보클뤼즈와 부슈뒤론의 연방주의자들왕당파들의 재판을 위한 인민위원회를 오랑주에 창설했다. 이 위원회는 사형 332건을 선고했다.


(263-264)

뤼오가 썼다. “, 혁명에서 각 개인의 열정은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 열정들은 가장 활발한 이들을, 이 혁명을 그 목적에 이르도록 이끌 능력이 가장 많은 이들을 사형대로 보낸다. 열정에 빠져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이들은 사형 집행인의 손으로 서로를 죽이고,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약화하며, 인류 역사의 이 놀랍고 숭고한 모험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268)

캉바세레스가 말을 이어 갔다. “우리의 불행도, 우리의 잘못도 서로에게 비난하지 맙시다. 혁명은 이루어졌습니다…… 혁명은 희생자들을 대가로 요구했으며, 운명이 뒤집혔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건들 각각에 대한 조사를 허락할 것입니까? 건물이 완성되면, 장비를 처분하는 건축가는 협력자들을 부수지 않습니다. 인민과 국민공회가 하나를 이루는 한, 자유의 적들의 노력은 우리 발아래 숨이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324)

나폴레옹이 형 조제프에게 썼다. “나는 삶에 큰 애착이 없으며, 큰 애정을 갖고 삶을 바라보지도 않고, 항상 전투 전야의 마음 상태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죽음이 한가운데 있을 때 걱정이나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계속된다면, 형님, 나는 결국 지나가는 마차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성은 종종 이런 것에 놀랍니다. 그러나 이는 이 나라의 도덕적 광경과 습관적 우연이 나에게 만들어 놓은 경향입니다.”


(406)

보나파르트가 결론에서 말했다. “나에 대해 말하면, 나는 여러분에게 휴식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에게 준 신뢰를 정당화했으며,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의 영광을 획득했습니다……. 신의 없는 의도를 나에게 돌리려는 중상모략은 허망한 노력이 될 것입니다. 시민으로서 나의 경력은 나의 군 경력과 마찬가지로 하나며 단순한 것이 될 겁니다……”


(486)

그가 말했다. “시민 총재들이여, 나는 이 칼을 오로지 공화국과 그 정부의 보호를 위해서만 뽑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493-494)

보나파르트가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들은 내가 그대들에게 그렇게 빛나는 모습으로 남겨 놓았던 이 프랑스를 가지고 무엇을 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남겨 놓았소! 나는 전쟁을 재발견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승리를 남겨 놓았소! 나는 그 반대를 발견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이탈리아로부터 수백만 남겨 주었소! 나는 어디서나 약탈의 법칙과 빈곤을 발견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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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무엇을 원하시오? 나는 업무에 짓눌려 있고, 겨우 스무 살일 뿐이오. 모든 것이 나를 어지럽히고 있소.” 모르파에게 루이가 말했다.

오직 결정을 내리는 것만이 그 혼란을 멈출 것입니다. 지연하는 것은 일들을 쌓이게 하고 심지어 망치기까지 합니다. 미룬다고 해서 일들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하나에 대해 결정하는 그날에 또 다른 하나가 생겨날 것입니다.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 전하의 운명이 될 영원한 풍차입니다.” 모르파의 대답이었다.


(80)

시작된 계획을 포기한다면, 연약함과 불행의 연속에 대해 모든 이들과 제가 예견하는 바를 전하께 아무리 반복해서 말씀드려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하, 내부의 혼동에 전쟁의 어지러움이 덧붙으면 어떻게 될까요…… 조용한 바다에서도 방향타를 유지하지 못하는 손이 어떻게 폭풍우의 영향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생각과 의지의 그런 변덕스러움, 연약함 뒤에 항상 따라오는 경솔함이라는 습관을 가지고 어떻게 전쟁을 견뎌 낼 수 있을까요?

튀고르의 문장 하나가 루이 16세의 마음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159)

국민의회

루이는 이 단어를 되뇌고, 앞에 높인 팸플릿과 그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그는 마치 심연의 가장자리에서 서둘러 그 속으로 내던져질 준비가 된 듯이, 현기증에 사로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그의 육체가 망설임과 그 위로 덮쳐 오는 두려움을 동시에 표현하듯이 앞뒤로 비틀거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190)

바스티유가 함락되었다. 카니발의 외침을 질러 대며, 창끝에 머리들을 달아 내돌리고 있었다.

반란이야.” 루이 16게가 둔탁한 목소리로 우물우물 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혁명입니다.”


(221)

우리를 나누는 계급이 이제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입니다.” 노트르담에서 파리 국민방위대의 깃발을 축성하며, 포셰 신부가 선포했다.


(338)

로베스피에르는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평민 출신입니다. 정의와 인류와 자유에 대한 사랑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열정의 하나입니다. 열정이 지배적일 때는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황금이나 명예에 대한 갈증과 같은 다른 종류의 열정들에 자기 영혼을 열었을 때는 그것에 영광과 정의와 인류와 백성과 조국, 모든 것을 제물로 바칩니다. 이것이 인간 마음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범죄와 정직함 사이에, 폭군과 인류의 은인 사이에 존대하는 차이점의 전부입니다.


(401-402)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1789년의 혁명을 취소하는 새로운 혁명이다. 왕정을 폐지하고, 민주공화정을 만들기로 결심한 듯하다. 이것은 신이 허락하실 때 빠져나오게 될 악과 불행의 연속이 될 것이다…… 주여, 웬 변화란 말입니까! 1715 8 10, 죽기 며칠 전에 루이 14에게 전하, 칠십칠 년 후에는 프랑스 왕조가 파괴될 것이며 프랑스에서 부르봉가의 치세는 끝날 것입니다. 전하는 이 고대 왕조의 끝에서 세 번째 왕이십니다.’라는 말을 전했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470)

악을 치료하기 원하는가? 마침내 확실한 진보를 원하는가? 정의롭고 싶은가? 언제나 근원으로 돌아가시오! 루이 16세를 그의 범죄에 대해 재판하시오. 그에게 능욕을 당한 온 나라에 그의 인신을 통해 보상하시오. 루이의 끔찍한 배우자를 재판하시오. 그녀의 악행과 중죄는 폭군들의 마음을 탐색하는 데 가장 잘 단련된 상상력조차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오!

국민공회 의원들이여! 프랑스 인들에게 당신들이 그들의 행복을 원한다는 것을 알려 주시오! 유럽 국가들에게 같은 대가를 치를 때에야 동일한 행복을 누릴게 될 것임을 알려 주시오! 정의와 인간적 신중함에 따라 이 사악한 종족을 추방하시오! 그들 모두 영원히 자유의 땅에서 사라지게 하시오! 브루투스라면 타르퀴니우스가()의 친족이나 친구나 어떠한 동맹자도 로마에 남기지 않을 것이오!”


(483)

생쥐스트가 외쳤다. “행복하지 않은 인민에게는 조국도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약 공화국을 세우기 원한다면, 인민들을 부패시키는 불확실과 빈곤 상태에서 그들을 끄집어내는 데 전념해야 합니다…… 빈곤이 대혁명을 탄생시켰고, 빈곤이 이것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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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이처럼 프랑스인은 토착민인 리구리아족과 이베리아족에 켈트족, 로마인, 프랑크족이 혼합되어 형성된 민족이다. 여기에 오늘날에는 세계 여러 나라 특히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지역에서 수많은 이민자들이 유입되어 프랑스인의 구성은 더욱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실로 프랑스는 유럽의 인종 용광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79)

그 과정에서 그들은 백작이라고 불렸고, 그들이 소유한 영지는 백작령이라고 불렸다. 몇 개의 백작령을 합한 대영주들도 나타났는데, 그들은 후작 혹은 공작이라고 불렸다.

이 시기 프랑스는 여러 개의 백작령과 공작령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프랑스 동부에는 강력한 부르고뉴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루아르 강 북부에는 프랑드르 공국이, 서부에는 로베르 르 포르 공국이 있었고, 이 두 개의 공국 사이에는 카롤링거 왕조가 노르만족에게 양도한 노르망디 공국이 있었다. 이런 지역을 다스리는 백작과 공작들은 상위 군주로서 왕을 섬기긴 했지만, 각자 가지의 영역을 다스리는 독립된 세력이었다.


(266)

그러나 그것 역시 일부 지역에 국한되었다. 전체적으로 18세기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계몽사상이나 정치에 무관심했다. 그렇다면 대혁명 이후 그들이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계몽사상의 영향 때문이라기보다는 1775년에서 1789년 사이에 악화된 사회적 대립과 경제적 침체의 결과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그들의 혁명적 행동은 정치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항거였다.


(291-292)

정통주의 해석의 역사학자들, 예를 들면 올라르와 마티에, 르페브르, 소불, 미슐레 등은 프랑스 대혁명을 근대 시민 사회를 탄생시킨 시민혁명으로 본다. 그들에 따르면 대혁명에 의해 절대군주제가 타도되고 대의제가 정착되었으며 합리적 계몽사상이 사회전반에 확립되었다. 그리고 대혁명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소규모 생산자들에게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줌으로써 자본주의가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대혁명은 봉건적 특권 사회를 평등한 시민 사회로 전환시킨 사회혁명이었다는 것이 정통주의 역사학자들의 견해이다.

그러나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은 정통주의 역사학자들의 견해를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신화적 해석이라고 비판한다. 실제 그들이 보기에 프랑스 대혁명은 정치, 사회, 경제, 사상에 걸쳐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사회 혁명은 아니었다.

수정주의 해석은 영미 역사 학자들에서 먼저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프랑스 역사학자들의 폭넓은 지지도 받고 있다. 수정주의 해석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코반이었다. 그에 의하면 18세기 프랑스 사회에는 영주제의 잔재가 남아 있긴 했지만 혁명적 부르주아가 타파했다는 봉건제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도 않은 봉건제를 타파하고 혁명을 일으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국민의회 의원들의 직업을 분석한 결과 혁명을 일으킨 세력은 부르주아 본래의 의미인 자본가들이 아니라 대부분 관리와 자유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주아 혁명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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