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천문이란 바로 때()를 알기 위한 학문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면 하늘의 시간표를 알 수 있고, 하늘의 시간표를 알면 인간의 시간표를 알 수 있다는 게 천문연구의 목적이다. 시간표를 알면 언제 베팅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즉 타이밍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자기 인생이 지금 몇 시에 와 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한자문자권의 역대 천재들이 고안한 방법이 사주명리학이다. 사주명리학이란 천문(天文)을 인문(人文)으로 전환한 것이다. 하늘의 문학을 인간의 문학으로, 하늘의 비밀을 인간의 길흉화복으로 해석한 것이 이 분야다.

 

(34)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로마의 영웅 카이사르(시저)가 제왕절개를 해서 태어난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제왕절개의 원조에 해당한다. ‘제왕(帝王)’이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도 제왕인 카이사르가 절개를 해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35)

왜 별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말인가? 운명과 별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는 것은 수천 년 동안 인류사의 대천재들이 도전했던 문제다. 성경을 보면 동방박사가 별들의 위치를 보고 예수 탄생을 짐작했다고 나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지구에서 태어났다. 당연히 지구의 영향을 받는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태어났다고 보자. 태양계의 움직임에 따라 그 영향을 받는다. 태양계 역시 은하계에서 왔다. 은하계의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인간은 전 우주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고, 태양계도 역시 은하계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 은하계도 또한 어딘가 더 큰 은하계를 중심으로 해서 돌고 있다. 시시각각 별의 위치가 바뀐다.

 

(62)

사주를 보려면 생년월일시를 만세력에서 찾아 십간 십이지의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관상은 상대방의 얼굴을 한눈에 판단할 수 있으므로 사주에 비해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필자는 관상을 돈오(頓悟, 한순간의 깨달음)에 비유하고 사주는 점수(漸修, 점진적으로 닦음)에 비유하곤 한다.

 

(87)

사주라는 하는 것은 생년월일시만 잘 타고나면 왕도 될 수 있고 장상도 될 수 있다는 신념체재다. 반대로 아무리 지체 높은 집안의 자식이라 해도 사주가 좋지 않으면 별 볼일 없다고 믿는다. 사주가 좋으면 신분이 비천해도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혁명사상이 들어 있고, 그것이 타고나면서 결정된다는 측면에서 보면 결정론이자 운명론이 내포되어 있다. 모순되어 보이는 양면이 미묘하게 배합되어 있는 셈이다. 한쪽에는 치열한 현실타파 노선이 마련되어 있는 한편, 다른 한쪽에는 운명에의 순응이 놓여 있다.

 

(217)

상응의 원리란 시간(天文), 공간(地理), 존재(人事)라는 각기 다른 세 차원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원리다. 그 좋은 예가 카오스(Chaos)이론이다.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이란 북경 상공에서의 나비 날갯짓으로 인한 파장이 캘리포니아 상공에 가서는 폭풍우로 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카오스 이론은 혼돈 현상의 이면에 특정한 질소(cosmos)가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345)

우선 <주역>은 음양에서 출발해 사상(四象), 사상에서 팔괘, 팔괘에서 육십사괘로 뻗어나가는 방식이다. 이를 수()로 표시하면 그 뻗어나가는 방식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2(음양)-4(사상)-8(팔괘)-64(육십사괘)의 방식이다. 반면에 사주명리학은 숫자로 표현하기에는 부적합이다. 육십갑자 모두를 음양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오행으로 곱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첨가되는 부분이 생년월일시라는 네 기둥이다. 그래서 사주 보기가 훨씬 복잡하다. <주역>으로 어떤 사람의 점을 쳐볼 때는 지금 당장(now and here)’만 필요하지만, 사주로 볼 때는 그 사람의 년, , , 시가 모두 필요하다.

 

(408)

역술가는 책으로 공부해서 팔자를 보는 사람이고, 무속인은 신내림으로 즉 접신(接神)이 돼 어느 날 팔자를 보는 능력이 갑자기 생긴 사람을 일컫는다. 역술에 관한 책도 다양하고 어렵다. <명리정종>, <적천수>, <궁통보감>, <서자평> 등등의 고전을 섭렵해야 한다.

 

(417)

공자도 오십에 천명을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다고 본다. 그만큼 자신의 운명을 알기는 어렵다. 운명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미리 알아본들 어떤 효과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희랍의 철학자 세네카가 한 말이 있다. “운명에 저항하면 끌려가고, 운명에 순응하면 업혀간다.” 어차피 가기는 가는 것인데 끌려가느냐, 아니면 등에 업혀서 가느냐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이를 뒤집어보면 운명을 미리 알면 강제로 질질 끌려가느냐, 등에 업혀서 가느냐의 선택은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끌려가는 것보다는 업혀가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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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궁극의 지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자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여 마지막에 반드시 얻게 될 삶에 대한 이해. 그 궁극의 지식은 몇몇의 책에서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의 오해와 노년의 오만과 무수한 시행착오와 상실과 고통과, 그 속에서도 기어코 피어나는 작은 행복과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손과 깊은 눈동자와 내면의 고요, 그것들 속에서 우리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얻을 것이고,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삶이라는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33)

세계는 언제나 자아의 세계. 객관적이고 독립된 세계는 나에게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해석한 세계에 갇혀 산다. 이러한 자아의 주관적 세계, 이 세계의 이름이 지평(地平),horizon’이다. 지형은 보통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말하지만, 서양철학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 자아의 세계가 갖는 범위로 사용한다.

 

(43)

인생이 생각보다 살아가기 어려운 것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테다. 혼자 살아가는 것이었다면 나의 계획과 전망과 실행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겠지만, 실제 세상에는 나의 세계 전체를 뒤흔드는 타인이 있어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만다. 그것을 간신히, 간신히, 수습해가면 결국 나의 삶은 누더기가 되어 있을 것이다.

 

(82)

명심해야 한다. 내가 첫 단추를 제대로 꿸 가능성은 전혀 없다. 객관적으로 말해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믿고 싶지 않다. 대신 이렇게 믿고 싶다. 나는 인생의 중간 어딘가에서 힘들기도 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할 테지만, 인생 전체의 큰 틀에서 본다면 분명 운이 좋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128)

나이가 든다는 건 다행이다. 어린 날의 들뜸과 격정은 가라앉고, 섬세함은 무뎌지고, 무거움은 가벼워진다. 죄책감은 줄어가고, 헛된 희망은 사라지고, 안타까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인가, 나는 다만 고마웠다. 연인의 불안을 나누어 지고 젊고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해준 그녀에게 다만 고맙다고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에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무거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무엇이 그리 무겁다고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사람처럼 엄살을 부렸던 것일까. 운명이라거나 의무라거나 책임이라거나, 그런 것들은 생각처럼 슬픈 것이 아닌지도 모르는데.

 

(149)

진리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다. 진리의 반대말은 복잡성이다. 거짓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쉽게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 안에 진리가 섞여 있을 경우, 혹은 진리 안에 거짓이 섞여 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쉽게 제거하지 못한다.

 

(149-150)

그래서 의심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믿고 있다 하더라도, 너무나 오랜 역사의 전통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의 크기가 너무나 압도적이라 하더라도 당신이 심리적 위안보다 진실의 이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의심해봐야 한다.

 

(162-163)

나는 자본주의가 생각보다 괜찮은 체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자본주의가 나의 생산자로서의 지위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특정 분야의 노동자라는 제한된 역할의 만족하라. 네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라. 나는 이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놀지 못하고 관계 맺지 못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다만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169)

언어의 불완전성, 언어의 태생적 한계. 어쩌면 이러한 부족함이 자유와 즐거움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책과 시를 읽는 이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유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나에게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개입하고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203)

꿈은 매일 우리를 가르친다. 아무것도 없음을. 실체도, 기반도,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삶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꿈은 또 다시 이어질 것이고, 우리는 다시 한 번 허구의 세계 속에서 휘둘리고 마음 쓰는 가운데, 이곳에서의 허망함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테니 말이다.

 

(241)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세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특히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보편적 기준일 것이라고 믿지만, 세계는 그렇게 보편과 특수로 나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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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출판이나 회화 분야의 특정 예술가들은 태아처럼 한정된 공간에서 활약한다. 그들의 제한된 주제는 사람들에게 당혹감이나 실망감을 줄 수도 있다. 18세기 신사 계급의 연애, 돛 아래서의 삶, 말하는 토끼, 조각된 토끼, 뚱뚱한 사람을 그린 유화, 개 초상화, 말 초상화, 귀족 초상화, 비스듬히 누운 누드, 백만 점쯤 되는 예수 탄생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성모승천, 과일 그릇, 화병 옆에 나이프가 놓여 있거나 놓여 있지 않은 네덜란드 빵과 치즈. 어떤 이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산문을 쓰는 일에 헌신한다. 과학 분야에서도 누구는 알바니아 달팽이에, 누구는 바이러스에 인생을 바친다. 다윈은 따개비에 팔 년을 바쳤다. 그리고 현명한 만년에는 지렁이에 헌신했다. 힉스 입자라는, 어쩌면 하나의 사물이라고조차 할 수 없을 그 미세한 것의 연구에 수천 명이 생애를 바쳤다. 호두껍데기에 갇혀 5센티미터 크기의 상아판 속, 모래 한 알 속 세상을 보라. 가능한 것들의 우주에서 모든 문학, 모든 예술, 인간 노력이 점 하나에 불과한데 그게 왜 안되겠는가. 게다가 이 우주조차 무수히 실재하는 가능한 우주들 중에서 점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96)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어. 사랑이 식고 결혼이 무너지면, 그 첫 희생자는 정직한 기억이지. 과거에 대한 온당하고 공정한 회상. 그건 너무 불편하고, 현재를 지나치게 비난하니까. 실패와 슬픔의 연회장을 떠도는 옛 행복의 유령이지. 그래서, 난 망각의 바람에 맞서 진실의 작은 촛불을 켜고 그 빛이 얼마나 멀리까지 닿는지 보고 싶어.

 

(223)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지면 내가 얻는 건 무엇일지 나는 다시 자문한다. 그들은 파멸할 수도 있다. 그럼 난 트루디를 갖게 될 것이다. 나는 그녀가 감옥에서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가 더 나은 대우를 받는다고 말하는 걸 들어왔다. 하지만 감옥에 가면 나는 내 생득권이자 모든 인간의 꿈인 자유를 잃을 것이다. 반면 클로드와 어머니가 팀워크를 발휘한다면 간신히 위기는 모면할 것이다. 그럼 그들은 나를 버릴 것이다. 어머니는 없지만, 나는 자유로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편이 나을까? 전에도 몇 번 해본 고민이고, 늘 같은 신성한 지점에, 원칙에 입각한 유일한 결론에 이른다. 나는 물질적 안락을 포기하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동안 너무 오래 갇혀 있었으니까, 나는 자유를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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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0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즐친 이어가길 바라며, 복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17-12-31 01:0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munsun09님 덕분에 좋은 책도 많이 알게된 것 같아요.. 2018년에도 부탁드리고요... munsun09님도 행복한 2018년 되시길....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43)

이쯤 되면 답이 나왔죠? 복습할 시간을 확보하려면 학원에 보내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아이가 스스로 자기 학습을 관리하는 능력을 초등학교 때 어느 정도라도 길러줘야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학원에 보내는 것보다 가정에서 복습 지도를 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드립니다. 선행학습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선행학습이 필요 없고, 또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세 번째로 강조하고 싶습니다.

 

(65)

운전은 습관에 따라 해도 되지만, 수학은 하나하나 머리를 회전시키면서 사고를 해야 합니다. 똑같은 작업을 단순하고 지루하게 반복하는 식의 연산 학습은 머리를 나쁘게 할 뿐입니다. 한마디로 시간낭비입니다. 더욱이 이로 인해 아이들은 수학을 아주 지루한 과목, 쓸데없는 과목으로 여기게 됩니다. 이래서야 연산 훈련이 아이에게 득이 될 게 없겠죠.

 

(79)

이처럼 초등학교 때 배운 개념은 중*고등학교 때 다 쓰이게 돼 있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구구단은 물론이고, , 비율, 넓이 같은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비율 개념은 미분으로 연결되죠. 하지만 아이들은 미분을 비율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비율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데다 중학교 과정 내내 비율 개념이 계속 나왔는데도 미분은 미분일 뿐 이를 비율 개념과 연결시킬 줄 몰라요. 그저 공식으로만 외우려 들죠. 그러면서 교사가 이를 이적하고 들면 짜증부터 냅니다. ‘문제만 잘 풀면 되지 왜 자꾸 개념을 물어?’ 싶은 거죠.

 

(103)

우리나라 같은 영어 환경에서는 조기 교육이 아닌 적기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게 영어사교육포럼이 내린 결론입니다. 영어를 무조건 일찍 시작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국어가 어느 정도 됐을 때, 이해력이 어느 정도 발달하고 동기 부여도 어느 정도 됐을 때 영어 교육을 시작하는 게 좋다는 거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어 교육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 정도면 적절한 시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요. 영어사교육포럼이 몇 년째 적기 교육을 주장했더니 조금씩 변화하는 것들도 보입니다. 영어 학습지로 유명한 한 사교육 업체도 요즘에는 영어는 조기 교육이 아니라 적기 교육입니다.”라고 광고하고 있더라고요(청중 웃음).

 

(155)

예전에 한국을 방문한 핀란드인 교장과 한국 교사들이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가 한국 교사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선생님들은 굉장히 헌신적이다. 아이들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수고한다. 부모님들도 대단히 헌신적이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그 사교육비를 다 대고 있더라. 그런데 여러분이 심리학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마음을 살폈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욕심은 많은데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강의 앞부분에서도 얘기했지만, 아이들을 교육시키려면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해야 한다는 겁니다.

 

(166)

미국이 빠른 속도로 강대국이 된 데는 건국 초기부터 도서관을 중요하게 여긴 힘이 컸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작성한 제퍼슨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우리가 민주국가를 선포하고 건립했는데, 플라톤의 말처럼 민주정치라 중우(衆愚)정치로 빠지면 안 된다. 민주정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배움이 있어야 한다.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곳은 도서관이다.”

 

(183)

저는 존 F. 케네디의 이 말을 참 좋아해요. “배움이 없는 자유는 굉장히 위험하고 자유가 없는 배움은 헛되다(Liberty without learning is always in peril and learning without liberty is always in vain.” 배움이 없는 자유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배움이 없는데 자유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위험한 짓을 너무 많이 하죠. 반면에 자유가 없는 배움은 헛됩니다. 오히려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하죠.

 

(264)

자존감 못지않게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자기효능감입니다. ‘나는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어라는 자세를 갖게 하는 게 바로 자기효능감이죠. 이런 자기효능감을 키워주려면 집안일을 돕게 하는 등 어려서부터 가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나아갈 때 불안해하지 않도록,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지 않는 것도 필요하죠.

이렇게 보면 아이가 초등학교 시기 부모라는 존재는 정말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은 아이들에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고요. 필요할 때는 조언을 하면서, 아이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줄여야 하겠죠.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아이를 내팽개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고요. 아이가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기술을 충분히 기를 수 있게끔 의미 있는 인생 경험도 많이 하게 해줘야 할 것입니다. 물론 초등 시기뿐 아니라 다른 모든 시기에도 이런 부모 역할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한 가지, 여기서 많은 부모님들이 놓치곤 하는 게 아이에게 내면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주는 일인 것 같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줬다 뺏었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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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6)

그런 날 말구 내 말을 듣소. 물론 상대적이긴 하지만 그건 자본론도, 과학적공산주의 건설 이론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독재 이론이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무기가 자본이라면 우리가 사는 사회주의의 무기는 프롤레타리아독재이기 때문이오. 프롤레타리아독재! 그게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 도시 사람들은 누구나가 토영삼굴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요. 그런데 당신은 피살자 유가족이라는 그 밑자리 하나만을 믿구 너무도 천진스레 살고 있소. 일단 그 독재에 걸리는 날엔 피살자 유가족이 다 뭐겠소. 당신은 전설 속의 어비는 알아도 현실 속의 어비는 너무도 모르며 살고 있단 말이오.”

 

(76)

면상이 온통 털 속에 묻힌 마르크스와 매섭게 입을 다문 김일성의 초상화였다. 그 두 붉은 유령은 지금 한경희에게 분명 이렇게 호령하고 있었다.

나가라믄 찍소리 말구 나갈 거지 무슨 허튼 생각이야. 이게 내 도시지 네 도신 줄 아니?”

 

(76~77)

한경희는 돌연 우들우들 온몸이 떨려왔다. 9월의 밤 냉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삶을 부지하자면 벌써부터 알고 있어야 했을 무섭고도 무서운 그것이 불시에 가슴에 콱 실려와서였다. 도시에 널려 있던 100만의 인원을 사십오 분 안에 광장으로 끌어들였던 그것이 무엇이었던지도 이제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만약 남편이 지금 또 당신은 저기 저 마르크스의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이 뭔지 아오?”하고 물어준다면 한경희는 보다 학술적으로, 그리고 보다 진지하고도 뼈저리게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줄 것이었다.

 

(108)

전영일의 새끼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며 ---!” 외쳐댔던 그 신념, 그 기대가 한갓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실망과 회오의 괴로움을 이 세상 무엇에 비길 수 있었으랴! 하여 누구를 탓할 수도 원망할 수도 없는 뼈저린 상실의 아픔을 안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부대껴야 했을 설용수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결국 도끼산장이라는 말은 안전부 선로공들이나 느티나무에 가해진 폭언인 것이 아니라 자가당착에 빠진 설용수라는 인간의 자기규탄의 부르짖음이었던 것이다.

 

(144)

당신이 놔주고 간 이튿날 아침에 보니 저것들이 다시 날아오지 않았겠어요. 그래 조롱을 다시 달아주었더니 저렇게…”

길들었구나!... 불쌍한 것들!”

명철은 한마디 한마디 씹어 뱉듯 중얼거렸다.

삐쫑삐쫑 삐쪼르릉…” 종달새가 다시 우짖었다. 마치 명철에게 당신도 길들었기에 그렇게 그냥 돌아왔죠하고 반박이라도 하듯이

그래, 나 역시 지척도 천리 밖으로 살아야 하는 조롱 속의 짐승인가보다! 조롱 속의 짐승!’

 

(178)

옛날 어느 곳에 열 길 울타리를 빽빽이 둘러친 한 동산이 있었다우. 거기선 늙은 마귀가 수천의 종들을 거느리구 있었구요. 한데 놀라운 건 그 동산의 열 길 울타리 안에선 언제나 웃음소리밖에 들려나오는 것이 없었다는 거였어요. 사시절 하하호호 하고 말이지요. 그건 바로 늙은 마귀가 자기의 종들한테 다 온통 웃는 마술을 걸어놓았기 때문이었다나요. 왜 그런 마술을 걸어놓았냐구요? 그야 물론 종들을 학대하는 자기 죄행을 가리우구 우리 동산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합니다 하는 속임수를 쓰기 위해서였지요. 그러자고 다른 동산 사람들이 넘볼 수도, 드나들 수도 없게 열 길 울타리두 쳤던 거구요. 그러니 글쎄 생각 좀 해보시우. 그 동산 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디가 아프거나 슬퍼서 엉엉 울어도 그것이 하하호호 하는 웃음소리만 되어 나왔으니 세상에 그처럼 악한 마술이 어디 있고 그처럼 무시무시한 동산이 또 어디 있겠수.”

 

(197-198)

조희 첫 시기는 몰랐으나 하루이틀 지나면서부터 사람들은 자기들의 조문회가 은밀히 기록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루에 한 번 조문은 누구나 지키는 철칙으로 되었을뿐더러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조문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내 인구 50여만 명이 시당으로부터 인민학교에 이르기까지 단위별로 꾸려진 수백 개의 조의장들에게 그렇게 꽃을 꺾어 들이다 보니 꽃밭의 꽃이 남아날 리 만무했다. 학교와 직장들에서는 인원을 뽑아 야생화 채취를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 단위에 하루 동안 필요한 만큼의 꽃을 따들여야 하는 것이 꽃 채취에 동원된 사람들의 하루 책임량이었다. 아이 어른들이 산과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계절이 계절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사고가 빈번했다. 아내의 근심이 공연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홍영표의 입에서는 그냥 모진 말만 튀어나왔다.

 

(207)

글쎄 제가 부모님 앞에서 다짐했으니 그와 결혼할 생각까지는 안 합니다. 그러나 이성 간이 아닌 인간적인 사랑만은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난 솔직히 말해 모든 면에서 뛰어난 처녀인 그가 기를 못 펴고 사는 데 대한 동정심을 금할 수가 없어요. 그의 아버지의 죄라는 게 뭡니까. 김정일이 후처를 한 사실을 말했다는 그 하나뿐이 아닙니까.”

 

(209)
이런 쓰레기나 가지고 물어들이고 받아들이며 사람들을 억압, 통제하려 드는 자들이 말입니다. 진실한 생활이란 자유로운 곳에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억압,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구요. 얼마나 처참해요. 지금 저 조의장에선 벌써 석 달째나 배급을 못 타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어요. 꽃을 꺾으려고 헤매다 독사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애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201)

그게 아버지의 정 소원이라면! 하지만 백 번을 쏘아도 죽이지 못할 겁니다. 인간다운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은 저의 욕망만은!”

 

(261)

왜 자진해서 벽돌집 시녀가 됐던가 말야!”

간판에 속아서였지, 나처럼. 속엔 독재의 칼을 품고도 겉으로만 평등이요, 민주주의요, 역사의 주인이요, 지상낙원 건설이요 하는 허울 좋은 그 간판에 속아서 말야.”

 

(270)

북한식 사회주의 경제제도의 문제점, 출신 성분으로 구분되는 인류 최악의 연좌제로 신음하는 북한 주민의 대변자로 자신의 역할을 설정한 반디는, 북한 주민들이 실제 겪고 있는 고통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아픈 사연들을 하나하나 수집하여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두었습니다. 각종 사연들이 담긴 소문들과 실제 벌어졌던 사실들을 기초하여 모든 것을 자신의 작품들에 담기 시작하였습니다. - <출간의 부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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