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금 미국의 정치가들,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많은 양식 있는 시민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그들의 대통령 트럼프의 정신건강 문제이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 문제는 적잖은 고민거리가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정파적 이해관계로 볼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정신과의사협회의 규칙에 따르면, 환자에 대한 충분하고 직접적인 면접에 근거하지 않은 의학적 진단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경우에 한에서는 이 규칙을 어길 수밖에 없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지금 미국의 정신의학계에서는 꽤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군 통수권자로서 언제라도 미국과 세계를 파국으로 빠뜨려 놓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고, 대통령이 된 이후 그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온갖 상식 이하의 기괴한 언행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마땅히 국가적 비상사태로 봐야 한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이 공동으로 쓴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증례>(2017.10)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트럼프의 정신 상태를 평가하는 전문적 증언들이 공개되고 있다.

 

(12)

베이징은 이제 놀랄 만큼 잘 정비되고 공기도 깨끗한 국제도시로 탈바꿈하고 있지만, 고층 건물을 짓고, 택배, 청소원, 서비스 노동자 등으로 일하며 이 도시에 공헌해온 가난한 농촌 출신 노동자들은 쫓겨나고 있다. 석탄난방 금지도, 노동자 내쫓기도, 그로 인한 고통을 덜어줄 어떤 준비나 예고도 없이 주민들의 삶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 밖에도 베이징 시정부는 수도 베이징의 스카이라인을 밝고 맑게만든다는 명분으로 11월말부터 건물 간판을 모두 철거하는 정책을 밀어붙여, 베이징시내에서 1 4,000여 개의 간판이 사라졌고 사람들이 건물을 찾지 못해 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25)

직업대표제는 정당 중심 구역대표제로 구성된 의회제의 폐단을 다음과 같은 점에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1) 대표 수(의석 수)는 직업별 인구비례(혹은 직업단체 회원 수)에 따라 분배되므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소수의 정치에서 벗어나 다양한 각 직업 종사자를 포괄하는 진정한 다수의 정치를 할 수 있다. (2) 직업단체 단위로 대표를 선출하면 대표가 제한된 목적과 직능에 한하여 권한을 행사하므로, 의원이 포괄적 위임에 의거해 모든 영역에서 만능적 대표로 군림하는 폐단을 방지할 수 있다. (3) 유권자가 직업단체 단위로 조직되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의원과 지속적으로 만나 대의(代議)과정을 형성하고 의정활동을 감시하며 직접민주(국민소환, 국민발안 등)을 실행하기에 용이하다. (4) 각 직업 방면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의정활동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직업대표제가 구역대표제보다 민주공화의 원리에 훨씬 더 충실한 제도로 평가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47)

중국 체제의 우월성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혁명전쟁을 통해 건국한 나라이다. 중국 국가는 혁명을 지지한 인민에게 무한책임을 진다. 무한책임을 진다는 말은 설령 월급을 주지 않아도 공무원들은 정상 출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국가가 무한책임을 지는 여러한 상층구조는 어떠한 경제기초에 의존하고 있는 것일까? 국가를 대신하여 불경기에 경기를 진작하고 활황기에 조절을 할 수 있는, 국유 경제 제도만이 무한책임을 질 수 있다. 그리고 국가전략을 수행해야 하므로 당연히 효율은 낮을 수밖에 없다. 과잉 장기 독점 채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유 은행이 필요한 것이다.

 

(69)

중국이 세계를 선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한 질문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무대 위에 있고, 눈부신 경제력, 과학, 정치력과 심오한 문화를 지닌 중국이야말로 국제 무대의 한가운데에 서는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과거 아시아에서 가장 강했던 중국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처럼 식민지 개척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이 공평한 세계 경기장구축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 나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대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인들이 왕성한 창조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경제력과 권력추구를 냉정하게 절제하고, 어떻게 자신들의 전통문화가 국가와 세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78)

중국은 전세계 석탄의 절반 이상을 소비하고, 석유는 전체 생산량의 3분의 1을 소비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의 시멘트의 60%를 소비한다. 기술분석가 바츨라브 스밀에 의하면, 2011~2013 3년 동안 중국이 인프라 건설을 위해 쏟아부은 시멘트의 양은, 미국이 20세기 전 기간 동안 도시와 항만, 도로, 열차 시스템, 공항 등을 건설하기 위해서 쏟아부은 것보다 더 많았다. 중국은 또한 목재와 임산물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하여 시베리아로부터 동남아히아, 뉴기니, 콩고, 마다가스타르에 이르는 숲들이 대규모로 벌채되었다. 중국의 이 게걸스러운 소비 덕택에 미래세대는 원시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행성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그린피스는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09년에 중국은 미국을 앞질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나라가 되었는데, 현재의 추세대로 간다면, 미국의 3분의 2 정도의 경제규모를 가진 중국이 미국의 2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83~84)

설상가상으로 중국 북부 도시들의 대기의 질을 개선하려고 시진핑 정부는 서쪽으로 산시성, 오르도스 분지, 내몽골, 기타 외딴 지역들에 광대한 석탄가스화기지들을 건설하고 있다. 이들 공장은 현장에서 석탄을 태워 전력을 생산하고, 석탄을 합성가스와 같은 액화 연료로 변환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연료는 도시로 운반되어 발전소와 공장과 자동차의 연료로 태워질 것이다. 미국의 델라웨어와 코네티컷 주들보다도 더 넓은 땅을 포괄하는 이 광대한 기지들은 지구상에서 전례가 없는 대규모 화석연료 개발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또한 합성가스와 기타 화학물질들의 생산을 위해 너무나 많이 석탄화학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므로, 그 석탄을 그냥 베이징의 발전소들에서 태운 경우보다 거의 2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를 방출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만약 이 공장들이 전면적으로 가동하게 된다면 기후는 끝장날 것이라고 말한다.

 

(85~86)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살고 있다. 임박한 전 지구적인 생태적 붕괴가 점점 더 뚜렷이 부각됨에 따라, 자본주의에 대한 지지는 도처에서 무너지고 있고, 세계 전역에서 사람들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 경제 체제를 필사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실패할지도 모르고, 그것은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인류가 그러한 길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을 거친 다음, 그리고 수천 년간의 놀라운 문명과 문화적 성취를 이룩한 다음에, 우리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기껏 300년에 불과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자신과 수많은 종()을 절멸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는 나는 믿을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지구상의 생명이 끝장나는 끔찍하게 슬픈 피날레가 될 것이다.

 

(114)

2040년이 되면 지구온난화에 의한 자연재해가 각국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킬 것이며 물과 식량을 둘러싼 투쟁이 격화될 것이다. 가뭄과 홍수 등으로 살 곳을 잃은 수백만 난민들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가로질러 상하수도 시설이 잘돼 있는 유럽 지역으로 몰려들 것이다. 수십 년에 걸친 혼란을 거치면서 유럽은 유럽의 안보에만 매달릴 것이며 세계의 문제는 워싱턴에 떠넘길 것이다. 중동지역 국가들은 더욱 약화돼 반군세력이 득세하고 식량과 물을 둘러싼 투쟁이 벌어진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혼란을 감당하지 못한 미국은 군대를 아프리카 대륙으로 불러들여 카리브해와 중미 지역에서 미국으로 몰려드는 난민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154)

공론화.

문제는 각 군마다 대상자 수를 정할 때 인구비례 기준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참여단은 서울, 경기가 47.4%였던 반면 울산은 1.4% 7명에 불과했다. 연령대도 50대와 60대가 각각 22.4%, 23.4%로 가장 많았다. 20대는 15.2%로 가장 적었다. 핵발전 위험을 가장 오래 안고 살아가야 하는 세대임에도 말이다. 이는 분명히 불공정한 일이다. 사안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배분이라는 문제의식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민참여단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이는 공론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다음번에는 보다 섬세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56)

그렇다면 무엇을 위한 필요악인가? 결국은 경제. 재개 쪽 전문가들은 핵발전이 가장 안정적이고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는 제조업 중심인 국내 산업에 큰 도움이 되며, 공사를 멈추면 원전 수출에도 지장이 생긴다고 말했다. 2조가 넘는 매몰비용도 강조했다. 안전 우려에 대해서는 신고리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이라며 전문가들을 믿으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위세를 떨친 경제성장 우선주의와 핵발전 안전 신화는 강고했다. 핵발전소 사고는 최악의 재양이고, 핵폐기물은 처리 방법이 없으며, 핵발전소 건설과 운영 과정은 도시민의 지역민에 대한 폭력이라는 명확한 사실들은 힘을 잃었다.

 

(157)

이처럼, 원전을 반대하면 원전과 동등한 전력 생산량의 대안을 요구한다. 그런 대안이 있기 전까지는 탈핵은 먼 미래의 일로 유보된다. 전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공포가 그만큼 큰 것이다. 이는 우리가 에너지가 끊임없이 공급돼야 하는 도시에서 기계 중심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송배전에서 전기 낭비를 줄이고 사용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내가 직접 체험하기 전에는 그것이 현실이 아니다. 게다가 핵발전의 폐해는 피해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실감하기 어렵다. 내가 만난 중단 입장의 시민들이 태양열발전을 하고, 농사를 짓고 벌을 치며 환경변화에 민감하고, 울산에 살다 몸이 아파 이사하고, 한수원에서 일하다 그만두는 등 자기 삶과 체험에 핵발전을 반대하는 근거가 있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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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나는 기다린다.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내 자아는 지금부터 내가 구성해야만 하는 물건이다. 연설을 짜맞춰 구성하듯이. 지금부터 내가 내놓아야 하는 것은 선천적인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인공적인 무엇이다.

 

(126~127)

우리는 기다리고, 복도의 시계는 똑딱거리고, 세레나는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 불을 붙인다. 그 사이 나는 자동차 속으로 들어간다. 토요일 아침이고 9월이다. 우리한테는 아직 자동차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사정이 나빠져서 자동차를 다 팔아야만 했다. 내 이름은 오브프레드가 아닌 다른 이름이다. 지금은 금지된 이름이라 아무도 불러주지 않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이름이란 건 전화번호와 같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나 쓸모 있는 거라고. 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일 뿐 사실이 아니다. 이름은 중요한 문제다. 나는 그 이름의 기억을 숨겨놓은 보물처럼 언젠가 다시 돌아와 파낼 나만의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 이름이 묻혀 있다고 여기고 있다. 나의 진짜 이름에는 마력이 있다. 상상할 수도 없이 아득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부적 같은 마력이. 밤마다 내 싱글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감으면 그 이름이 눈앞에 어른거미려 떠다닌다. 손에 닿을락 말락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떠다닌다.

 

(256)

대재앙 직후, 그들은 대통령을 쏘아죽이고 의회를 기관단총으로 쓸어 버렸고, 군대는 계엄령을 선언했다. 당시 그들은 이슬람 광신주의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침착하십시오. 그들은 텔레비전에 나와 말했다. 상황은 완벽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누구나 충격을 받았을 거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정부 전체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다니. 그들은 어떻게 침입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때가 바로 그들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켰을 때다. 그들은 한시적인 조치라고 했다. 거리에선 소요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밤마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지시를 기다렸다. 사태의 주범이라고 지목할 수 있는 확실한 적도 없었다.

 

(293)

밤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침이면 우리 집에서 눈을 뜰 테고 전부 옛날로 돌아가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런 일은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327~328)

그러나 단 한 사람의 여성이라도 침묵을 깨고 감히 가르치려 들거나, 남자들의 권위를 침범하려 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최초로 창조되었고, 그 다음에 이브가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담은 속지 않았지만, 여자가 속아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자비와 신성함의 길을 지켜나가기만 하면, 여성은 출산으로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출산으로 구원을 받다니, 나는 생각한다. 구시대에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 믿었던 걸까?

 

(336)

옛날 우리의 사고 방식을 돌이켜 보면 낯설기만 하다. 손만 뻗으면 뭐든 가능할 것처럼 생각했다. 우연이라든가 한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한없이 뻗어가는 우리 삶의 경계를 마음대로 빚고 수정하는 일을 영원히 계속할 수 있을 것처럼, 우리는 믿고 생각했지.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다. 루크는 내게 첫 남자가 아니었고, 어쩌면 마지막 남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얼어붙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시간 속에, 허공 한가운데, 그때 그 나무들 사이에 떨어지는 모습으로, 그렇게 정지해 죽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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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데이터의 진정한 위력은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추동한다는 데 있다. 데이터가 이렇게 많고 평등하게 공개되는 세상이니 점점 정보에 대한 허세, 내가 다 알아라는 으스댐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는 강요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서울대 수석합격자가 아무리 예습 복습만 잘하면 누구나 서울대 갈 수 있다고 겸손하게 말해도 데이터와 통계는 이미 우리에게 서울 강남구 출신의 서울대생이 강북구 출신의 21배에 이른다는 냉정한 현실을 말해준다.

 

(87)

그래서 데이터가 필요하다. 내 말을 믿지 않는 상사를 설득하기 위해서도 데이터는 필요하고, 내 감이 타당한지 검증하기 위해서도 데이터가 필요하다. 회사에는 발설자 책임주의라는 게 있기 때문에, 매출 올릴 방안을 마련하라고 회의할 때 누구라도 입을 열면 그 사람이 사업 주체가 되곤 한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가 데이터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면? 만에 하나 말한 대로 되지 않으면 발설자 혼자 책임져야 한다. 그러니 무책임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머릿속 상상으로 만든 고객과 시장과 컨셉을 검증도 하지 않고 아이디어라고 풀어내는 것은 훗날 내 목을 티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을 풀어서 먹고 살던 세상은 가고 있다.

 

(161)

마케터로서 내가 바라보는 시장의 핵심 타깃은 2049, 젊은 층이다. 반면 적어도 나 같은 마케터가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는 계층이 있다. 50대 이상 남성이다. 오죽하면 50세 이상을 겨냥한 프로그램에는 광고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으니까. 소비를 할 뿐, 아내가 사주거나 점원이 권해주는 대로 산다. 마케터는 구매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이나 아이들, 젊은이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원하는지 아는 기업이 성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기업 구성원들의 밥줄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의사결정을 CEO가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CEO들 중 상당수는 하필이면 시장의 욕구와 괴리된 그들, 50대 이상 남성이다.

 

(178)

내가 하는 일은 데이터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데이터는 수단일 뿐,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마음이다. 인간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온갖 것을 보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는 데이터가 가장 풍부하고 유용한 수단이기에 데이터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이틀마다 생겨나는 데이터의 양이 5엑사바이트, 0 18번 붙는 규모다. 하루에 생성되는 한국어 트윗이 500만 건에 이르며,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 많은 것들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 결과를 가지고 경영관리, 프로세스 관리, 품질관리, 재고관리, 브래드관리, 인사관리 등 기업의 전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213)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객관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내가 당신 어머니는 말야라고 험담하는 말이 불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시야를 높여 조감(鳥瞰)하듯 바라보면 그 사람도 피해자다. 아내가 한국 문화의 관습의 피해자로서 일시적으로 폭발하는 것이니,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내를 안아주는 것이 현명하리라. 이렇게 객관화해보면 상대방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상대방에게 연민이 생기고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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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일본은 섬나라이면서도 해군이 아닌 육군이 일으킨 나라입니다. 육군이라는 게 너 죽고 나 살기로 대거리를 해야 하는 군대입니다. 바다에서 싸우는 해군과는 적과의 거리가 다릅니다. 해군은 배가 깨지면 지는 거지만 육군은 손으로 찌르고 칼로 베어서 상대를 죽여야 합니다. 일본제국주의를 이끈 주도세력이 육군이었기에 또 바다가 아니라 육지로 기어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조선의 고통이 거기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97)

원자폭탄은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연쇄적 핵분열을 통해 발생하는 에너지의 파괴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원폭 에너지의 50퍼센트는 충격파를 만들며 폭풍으로 변한다. 2.5킬로미터 안에 있는 모든 목조건물이 산산조각 나고 2층 벽돌건물이 무너지며 불이 붙었다. 철골 건축물은 지붕이 날아가버리고 철교의 상판은 뒤틀렸다. 폭심지에서 15킬로미터 밖의 건물 유리창까지 부서져내렸다.

 

(404~405)

이날 단 한발의 원자폭탄에 의해 24만명으로 추산되던 나가사끼 인구 가운데 7 4천명이 그해 연말까지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그들의 죽음을 사몰(死沒)이라도 표현한다. 시신조차 찾을 길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무너져내린 시가지의 폐허 속에 매몰되거나 한순간에 타버려 가루가 되어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 비극적인 수치 안에 2만여명의 조선인 피폭자가 포함된다. 사망 1만명에 부상자 구조활동을 위해 투입되어 2차 방사능 피해를 입은 1만명의 징용공들을 합친 숫자이다.

나가사끼에서 원폭으로 죽어가야 했던 징용공들은 우연과 필연이 교차되는 속에서 죽음을 맞았던 것이다. 그때 거기 있었다는 우연과 미쯔비시의 수많은 군수공장이 포진한 나가사끼에 끌려온 징영공이라는 필연이 교직하면서 만들어낸 나가사끼 조선인 피폭자의 죽음은 그토록 허무하고 무구하다.

 

(413)

나를, 저 일본사람들을, 아니 우리 모두를 이렇게 내몰리게 한 것은 무엇일까. 전쟁, 일본이라는 나라, 그리고 저편에 B29를 번득이며 폭탄을 쏟아붓는 미국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든 것이 우리를 죽이고 불태우고 절멸시키고 있다. 대가리가 꼬리를 물어뜯으며 짓씹어 제가 제 몸을 죽이는 꼬락서니다. 이 혼돈을 어떻게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468)

여기서 흘러간 날들이여. 나가사끼는 나에게 조국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잊지 않으리라. 나가사끼는 나에게, 나라가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나가사끼에서의 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걸 이처럼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 거다. 이제 돌아가서, 젊은 아이들을 가르치자. 내 나라 글, 내 나라 말, 내 나라 풍습과 역사를 가르쳐서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나라가 있음을, 아니 되찾아야 할 조국이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겪은 고난을 가르치고 기억하게 할 거다. 어제를 잊은 자에게 무슨 내일이 있겠는가. 어제의 고난과 상처를 잊지 않고 담금질할 때만이 내일을 위한 창과 방패가 된다. 어제를 기억하는 자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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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어디 그뿐이랴. 오랜 역사가 서려 있지 않은가. 지상은 말없이 생각했다. 그놈들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거치면서 땅에서만 분탕질을 쳤던가. 그때도 돌아가는 배에는 비단 같은 물자에 도자기 만들 흙까지 실려 있었다. 거기다가 석공과 도공 같은 사람들끼리 실어가지 않았나. 선조 임금 때 그렇게 당하고도 3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조선은 또 똑 같은 짓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여기 끌려와 있는 것도 그때와 끈이 닿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더 원통하다. 우리는 왜 지난날에서 배우려 하질 않는가. 왜 이다지도 과거를 잘 잊어버리는가.

 

(298)

1938년 가을 수사에 착수한 상록회 사건에 대해 경찰은 <사건기록>에서 상록회는 일본의 국체를 변혁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상록회 사건, 이름하여 춘천공립중학교 학생의 민족혁명운동사건 검거에 관한 건 1939 3 25일 경성지방법원 춘천지청으로 송치될 때까지 졸업생과 재학생 137명을 조사, 검거, 구속하였다. 결국 증거로 제시된 총 147점의 압수품과 함께 법원으로 송치된 상록회원 38명의 피의자 가운데 12명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가운데 백흥기는 수감 중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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