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책의 세계는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에서 얻은 가장 위대한 세계이다>라고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가 말했어. 엄마는 여기에 <책의 세계는 이것보다 더 거대한 꿈의 세계에 자양분을 공급한다>고 덧붙이고 싶어.”

(106)

우리가 놀라면 눈이 빠르게 깜박이잖아요. 이것은 영화의 액션 장면에 쓰이는 빠른 샷과 비슷한 원리예요. 눈을 깜박일 때 우리는 10분의 1초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휴식을 취하게 되죠. 재채기를 하면 눈이 3초간 감겼다 떠지면서 조금 더 긴 휴식이 감고 있죠. 그제야그제야 비로소 이 여백에 충일의 순간이 찾아오죠. 한 편의 온전한 가상 영화가 우리 뇌 속에서 상영될 수 있게 돼요. 우리 뇌에는 끊임없이 이미지가 필요한데, 잠자는 동안은 이미지가 사라져 버리잖아요. 그래서 이때 뇌가 이미 저장돼 있는 이미지들을 혼합해서 자신만의 영화를 찍는 거예요. 여러분, 기억하세요. 우리 뇌는 생각이 멈추는 걸 용납하지 않아요.”

(112)

“1899,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출간해요. 그는 꿈이 마법과 전혀 상관이 없는, 억압되거나 감춰진 욕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하죠. 꿈은,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자면, <무의식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꿈은 오랫동안 신비의 대륙으로 남아 있었어요. 그러다 1927, 신경 생리학자인 너새니얼 클라이트먼이 평균 90분에 걸쳐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수면의 네 단계를 발견하죠. 그리고 1959년에 미셸 주베 교수가 클라이먼트의 연구를 보완해 <역설수면>이라는 개념을 내놓아요. 몸은 완전히 마비되는데 두뇌 활동은 극도로 활발한, 수면 과정 중 아주 특이한 다섯 번째 단계죠. 안구의 움직임이 가장 뚜렷한 단계이기도 해요. 실험 대상자를 이때 깨우면 꿈을 쉽게 기억하죠.”

(202)

그는 전 인류가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통 체증도 전쟁도 시위도 파업도 사라지지 않을까? 군인들은 늦잠을 재우는 거야. 공해를 유발하는 사람들, 불평하고 짜증내는 사람들, 광신도들을 침대에 누워 나처럼 TV나 보게 하는 거야.

 덜 먹고 덜 소비하는 세상, 더 조용하고 더 차분한 세상이 될 텐데.

비록 잠은 오지 않지만 그를 보호해 주는 시트와 이불이 깔린 이 가로세로 2미터짜리 공간, 이 폭신한 침대에서만큼은 안전하게 느껴진다. 침대 밖은 전부 <위험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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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만유인력과 정확히 반대다. 이 힘은 서로를 밀어내기 때문에 산산이 부서져서 덩어리를 이루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만유인력은 당기고 암흑에너지는 밀어낸다. 즉 음과 양이다.

양 에너지는 공간을 계속 팽창시키고 있다. 팽창은 양의 기본 성질이다. 음의 성질과는 반대인 것이다. 우리의 우주 공간에 양의 힘이 존재하기 때문에 공간은 계속 팽창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점점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주가 현재 팽창한다는 것은 오래전에 이미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몰랐다.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간에는 양이 있어서 팽창하고 있던 것이다. 음 때문에 물질이 출소되듯이 양 때문에 공간이 확장되는 것이다.

 

(53)

우리의 우주는 현재 팽창하고 있는데, 이는 우주의 내면에 아직 양의 기운, 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 ☰의 기운이 다 달아나버리면 우주는 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현재의 우주는 중간 상태인 것 같다. 먼 우주는 이미 달아나버렸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서는 확장이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유의할 것이 있다. 우리의 우주는 현재 팽창 중이어서 아직 활력이 남아 있지만 다른 우주는 양의 기운이 다 달아나서 완전히 가 되어 있을 것이다.

 

(59)

옛 성인은 이 힘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말하며, 이 기운은 우주에 가득 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자연의 안에는 원래부터 양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이 기운은 어디서 온 것이 아니고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양의 기운에는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 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주 대자연은 양이 있은 연후에 존재하는 것이 된다. 자연에 가득 찬 양의 기운은 본시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존대다.

우리의 영혼은 이 기운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다.

하늘의 기운 à 영혼 à à 육체 à 사회

 

(91)

사상(四象)은 총체적으로는 순환이고, 하나씩 보면 그 안에 음양의 작용을 보여준다. 사상은 주역의 시작이다. 음양이 먼저 있고 그다음엔 그 작용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상이 아니면 주역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음양이 원소라면 사상은 그것들이 이루는 구조다. 구조는 또한 그 안에 변화를 담고 있는 것이다. 변화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사상은 주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개념으로, 만물의 뜻은 다 여기서 나온다.

 

(142)

이로써 괘상의 의미가 더욱 새로워졌는데, 이 괘상을 가지고 우리가 사는 지구에 적용해보자. 지구의 바닥에는 땅이 있을 것이다. 저 깊숙한 바다 속이 가장 아래인 것이다. 그 위에 해령(海嶺), 즉 바닷속의 산이 있다. 그 위에 물이 있다. 이것을 바다라고 한다. 바다 위에는 대륙이 있다. 대륙은 밝다. 그 위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위를 하늘이라고 부른다.

하늘

바람

밝음

대륙

바다

바닷물

(바닷속)

(바닷속)

 

(173)

그런데 주역은 다름 아닌 뜻을 밝히는 학문이다. 뜻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니 바로 미래를 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당초 주역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주역이란 만물의 뜻을 규명하고 그것의 변화를 통해 미래를 살피는 학문이다. 공자도 주역의 괘상을 빌어 미래를 이야기한 사례가 많다. 공자는 점이라는 것도 많이 활용했는데 이는 사물의 뜻을 살핌으로써 그것에 함축된 미래를 살피고자 했던 것이다.

주역 원전은 말한다.

주역에는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는데, 팔괘는 길흉을 정한다.”

 

(177)

미래란 오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실망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미래를 미리 정해놓고 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미래가 내 생각대로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예측은 자유다. 그러나 자기의 예측을 믿어서는 안 된다. 미래가 현실로 나타나면 , 이게 미래구나. 어제는 궁금했는데……’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206)

주역에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괘상이다. 우리는 괘상을 통해 현상을 유추해내거나 혹은 현상에서 괘상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물의 뜻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해진다. 사물의 뜻을 분명히 깨달은 후에는 그것을 처세에 적용하든 인격수양에 사용하든 전쟁에 사용하든 질병 치료에 사용하든 그 사용처가 자유롭게 열려 있다. 이른바 알고 행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삶의 작용은 더욱 위대해지는 것이다.

 

(248)

다른 괘상을 보자. ䷡(뇌천대장)䷠(천산둔)이다. 각각 계층값은 같다. 하지만 괘상의 모양이 뒤집어졌다. 따라서 뜻도 뒤집어져야 한다. ䷡은 장군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괘상이고, ䷠은 엎드려 꼼짝 못하고 있는 형상이다. ䷡은 대범하고, ䷠은 쩨쩨하다. 괘상이란 제대로 관찰하면 그 내면의 의미가 서로 비교되면서 확실히 알게 되는 법이다.

이제 괘상이 눈으로 봐서 뒤집히면 그 뜻도 뒤집힌다는 것을 알았다. 이 얼마나 유용한 지식인가. 64개의 괘상 중 32개만 알면 나머지는 뒤집어서 해석하면 된다. 물론 32개를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작업량이 64에서 32로 반이 줄었다는 것에 만족하자.

 

(283)

이제는 사물을 보고 그것을 말할 때 일상 언어가 아닌 주역의 괘상으로 말하는 것이 더욱 쉬워졌다. 사물을 보고 즉각 그 뜻을 알게 되었다는 의미다. 주역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머리로만 쉽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주역의 문리가 터질 수 없다. 수도하는 자세로 필사적으로 달려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한 보람이 있다. 공자는 일생을 통해 주역을 공부했다. 이보다 더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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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어는 것 하나 기억하는 것은 없지만 끝없이, 끝없이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도 기억나는 것이 없느냐고 재차 묻자 그건 말이지, 라고 애자는 말했다.

너무 소중하게 너무 열심히 들어서 기억에 남지 않고 몸이 되어버린 거야.

?

들었다가보다는 먹은 거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 정도로 남김없이 먹고 마셔서, 일체가 되어버린 거야.

 

(57)

좋은 것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감탄하고 호들갑이지.

좋은 것들이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말 그대로 귀하기 때문이란다.

세상에 좋은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감탄하고 칭송하는 거란다.

별로 없어, 좋은 건.

그러니까 그런 걸 기대하며 살아서는 안되는 거야.

기대하고 기대할수록 실망이 늘어나고, 고통스러워질 뿐인 거야.

 

(122)

무섭지 않아? 하고 소라가 묻습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 영향을 주고 그 아이가 뭔가로 자라가는 것을 남은 평생 지켜봐야 한다는 거…… 계속 걱정해야 하는 뭔가를 만들어버린다는 거…… 무섭지 않아? 하고 말입니다. 나나는 무섭지. 아직은 실감이고 뭐고 부족하지만, 무서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지만 모르니까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어. 각오하고 있어. 각오가 필요할 정도, 라고 생각하면 조금 비장해지지만 그래도 각오하고 있어. 실은 얼마큼 각오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도대체 뭘 각오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라서 자신감 같은 것과 더불어 호흡마저 희박해지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각오하고 있어 그래도 나름,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160)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 제대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해.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도 몰라. 오히려 그런 것쯤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돼. 안 그러면 잊어먹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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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범주란 결국 만물을 다루는 이론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세상 모든 것을 설명(규명)할 수 있는 이론을 알 수 있다면, 이로써 최상의 지혜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우리가 찾고자 하는 목표다. 이미 우리의 선현들은 많은 연구를 거듭하여 그 윤곽을 밝혀놓았다. 이제 우리는 그러한 이론들을 점검해볼 때가 온 것이다.

 

(28)

오행을 인체에 적용해보자. 모든 동물은 같은 종류의 장기를 가지고 있는데 심장, , 신장, 비장, 간장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람이나 호랑이나 염소, 황소, 돼지, 늑대, 고양이 등 모든 동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아마 저 먼 우주의 동물이라 해도, 지구의 동물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오행 범주에 해당하는 장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심장은 화, 폐는 금, 신장은 수, 비장은 토, 간장은 목이다. 이는 동물이 만들어질 때 처음부터 오행을 사용해서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개미나 파리도 심장이 있고 악어나 황소도 심장이 있다. 이는 만물이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강력한 증거ㅓ가 아닌가?

 

(38)

범주란 애매하면 안 된다. 단순하고 분명해야 모든 것을 적용할 수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식은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범주는 실제 물질에서 빌려오지 않는 개념 설정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물질은 오히려 이 개념을 빌어 설명하는 게 더욱 분명하다.

 

(49)

주역은 오늘날에 와서는 중국의 고대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계를 연구하는 최고의 지침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주역을 모르면 세상을 모른다. 부베 신부의 첫 깨달음이 바로 이것이었다. 융이나 아인슈타인, 보어 등도 주역을 알고자 했던 이유가 바로 세상의 지혜를 찾고자 함이었던 것이다.

 

(98)

4가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만 강약이 다르다. 은 움직이는 것과 아닌 것이 있다. 잡다한 사물에 직접 뛰어들어서는 보이지 않는다. 한발 물러나서 사물끼리 비교하면서 접근해야 한다. 이미 비교할 매뉴얼은 충분히 갖추어진 셈이다.

한 번 더 적용을 해보자. 사업의 시작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다. 목표를 가지고 움직여가기 때문이다. 태어남이란 무엇인가? 이다. 삶의 강력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죽음은 이다. 모든 것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은 무엇인가? 이리저리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다. 은 결실을 얻는 상태다.

 

(127)

자발적이라는 것은 제멋대로, 아무 이유 없이, 우연히, 그냥, , 자유롭게 생겼다는 뜻이다. 이것을 주역에서는 양이라고 하는데, 모든 것은 양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다. 양은 다른 말로 천()이라고 하는데, 천은 역시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법칙은 천 이후에 생겨났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아닐 때는 평등했는데, 양이 생기고 불평등해지고 말았고, 그것을 다시 평등하게 만들려고 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음은 양을 없애거나 또는 도와줌으로써 평등하게 하는 작용이다. 양이란 이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가려는 성질을 말한다. 즉 대칭성 파괴인 것이다.

 

(130)

이 대목은 주역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것을 모르면 주역의 세계로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다시 살펴보자.

à 하늘 같은 어떤 것

à 땅 같은 어떤 것

à 불 같은 어떤 것

à 물 같은 어떤 것

à 바람 같은 어떤 것

à 우레 같은 어떤 것

à 연못 같은 어떤 것

à 산 같은 어떤 것

 

(141)

이제 팔괘가 완전히 만들어졌다. 과정도 분명하다. 이것을 노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음효 또는 양호를 말하는데, 1개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1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상은 2개의 효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2라고 말하는 것이고, 팔괘는 3개의 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3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하늘이 일, 땅이 이, 사람이 삼(天一, 地二, 人三).”

 

(162)

주역에서 시간은 양으로 분류된다. 양이란 저 먼 곳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저 먼 곳이 바로 양이기도 하다. 이에 관한 것은 뒤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이다. 지금은 시간이 먼 곳에서 발생하여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에만 주목하면 된다. 이곳은 음이다.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공간이 음이다. 양이란 음이 있으면 그것을 파헤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시간은 현재를 향해서 오고 있는 것이다. 공간은 시간의 힘을 얻어서 미래를 향해 작용을 시작한다. 우주에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현상도 없어진다. 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이 있으면 공간이 있고 공간이 있으면 시간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시공(時空)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이는 시간과 공간이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둘을 절대로 떼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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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2-15 1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의 책에 대한 사랑과
자녀분들에게 이야기해주시는 열정은
항상 절 채찍질합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18-02-16 00:27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야말로 북프리쿠키님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알게 된 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설명절 되시고, 늘 책과 함게 행복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22)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옷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그는 슬론에게서 시선을 떼어 강의실 안을 둘러보았다. 창문으로 비스듬히 들어온 햇빛이 동료 학생들의 얼굴에 안착해서, 마치 그들의 안에서 나온 빛이 어둠에 맞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한 학생이 눈을 깜빡이자 가느다란 그림자 하나가 뺨에 내려앉았다. 햇빛이 뺨의 솜털에 붙들려 있었다.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카니즘에 감탄했다.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박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했다.

 

(55)

스토너는 이틀 동안 수업에 나가지 않고, 아는 사람들과 한 마디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 내내 작은 방에 틀어박혀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조용한 방과 책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바깥세상에서 멀게 들려오는 학생들의 고함소리, 벽돌로 포장된 길에서 따각따각 빠르게 마차가 달리는 소리, 시내에 열 대 남짓한 자동차의 단조로운 엔진소리 등이 아주 가끔씩 그의 의식 속으로 들어올 뿐이었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자신에게 내놓을 것이 거의 없다는 생각, 내면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 또한 거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68)

그는 한동안 문간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아가씨의 부드럽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그녀 주위에 모여 웅성거리는 손님들의 목소리보다 높이 솟아올랐다. 그녀가 고개를 드는 순간, 갑자기 스토너와 눈이 마주쳤다. 색이 연하고 커다란 눈이 내면에서 우러나온 빛으로 반짝이는 것 같았다. 스토너는 조금 혼란스러워 문간에서 뒤로 물러나 응접실로 방향을 돌렸다. 벽 앞에서 빈 의자를 발견한 그는 그곳에 앉아 발밑의 카펫을 바라보았다. 식당 쪽은 보지 않았지만 가끔 아가씨의 시선이 자신의 얼굴을 따스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252)

모든 사람이 이 의문이 이토록 비정하게 다가오는지 궁금했다. 이 의문은 슬픔도 함께 가져왔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신이나 그의 운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반적인 슬픔이었다.(그의 생각에는 그런 것 같았다.) 문제의 의문이 지금 자신이 직면한 가장 뻔한 원인, 즉 자신의 삶에서 튀어나온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나이를 먹은 탓에, 그가 우연히 겪은 일들과 주변 상황이 강렬한 탓에, 자신이 그 일들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탓에 그런 의문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는 보잘것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배운 것들 덕분에 이런 지식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우울하고 역설적인 기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심지어 그에게 이런 지식을 알려준 배움까지도 무익하고 공허하며, 궁극적으로는 배움으로도 변하지 않는 무()로 졸아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272)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은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276)

그녀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정숙하고 말고요!" 그녀는 조금 차분해져서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숙함을 던져 버릴 이유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정숙해 보이는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가끔 내가 세계 최고의 헤픈 여자가 된 것 같아요. 헤프지만 열정적이고 신실한 여자. 그 정도면 정숙해 보이나요?"

 

(289)

어느 날 저녁, 그러니까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캐서린이 조용히 말했다. 마치 멍하니 다른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이었다. ", 우리가 앞으로 다른 것을 결코 누릴 수 없게 된다 해도, 이번 주의 기억은 남아 있을 거예요. 너무 소녀 같은 말인가요?"

"그것이 소녀 같은 말이든 아니든 상관없고." 스토너는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사실이니까."

"그럼 말할래요."  캐서린이 말했다. "이번 주의 기억은 우리에게 남아 있을 거예요."

마지막 날 아침에 캐서린은 오두막 안의 가구들을 정돈하고, 천천히 세심하게 청소를 했다. 그리고 그동안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벽과 벽난로 사이의 틈새에 끼워놓았다. 그녀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우리 물건을 하나 남겨두고 싶어서요. 이곳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남아 있을 만한 물건으로. 바보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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