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서구 철학 전통에서 거울은 자기 인식의 단계이자 도구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거울을 통한 착각에 불과하다.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본다?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이 같다면 자기 복제가 아닌가. 결국 자기 시력(視歷) 수준에서밖에 볼 수 없다. 보고 보이는 것으로부터 자유. 안다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에서의 관계성이다. 인간은 자기 외부의 타자를 통해서, 나와 다른 타인을 통해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부분적으로 자기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46-47)

타인과 소통, 의미 있는 일에 몰두, 자신을 잊는 헌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움, 사랑, 솔로의 꿋꿋함, 실존의 조건…… 이런 인식이 외로움에 대한 나의 개똥철학이었다. 이런 삶도 외로움을 덜어주신 한다. 그러나 쉬운가? 김영갑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확실히 몰두할 대상이 있어서 나나 타인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외로움은커녕 약간 흥분 상태였다. 당시에는 처음 보는 사진이 너무 황홀해서인지 글이 읽히지 않았다. 사진가의 글은 별로라는 생각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51-52)

책의 좋은 점은 머리에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인데, 나는 책읽기가 아니라 책이라는 물건을 좋아하고 있다. 생계 노동 외 대부분의 시간을 책 청소와 정리로 보낸다. 책장 청소를 위해 특별 구입한 청소기로 1, 마른걸레로 2, 물수건으로 3. 주제별, 저자별, 저널별, 논문별로 분류한다. 매일 정리해도 끝이 없다. 엽서, 포스터, 문구류에 대한 집착도 있어서 그 관리도 만만치 않다. 유복은 고사하고 이사를 꿈꾸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사후 기증도 마음이 놓이질 않으니, 병이다.

<무소유>를 읽으면 뭐하나. 법정의 말대로, 제 정신도 갖지 못한 처지에 남을 가지려 하니 노예가 따로 없다.


(60)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 그럴까. “하는 일 없이 나이만 먹는구나.” 심란해하는 이들이 더 많다.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악랄한 이데올로기.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삶과 성취가 있다는 생애주기 개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질병 때문에 인생의 공백이 생긴 경우 누굴 탓하랴. 일본의 유명한 배우 와타나베 켄은 승승장구하던 시절 백혈병 진단을 받고 첫 단독 주연작을 포기했다.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재기했다.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그의 진정성과 젊은 날 투병의 영향일 것이다.


(62)

뒤처진 인생이란 결국 타인에게 뒤처졌다는 얘기인데, 다른 이들도 똑같이 뒤쳐졌으므로 덜 괴로워해도 되지 않을까. 더구나 당대 자본은 나이에 맞는 지위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지위를 초과 달성한 이들을 원한다. 어차피 웬만한 사람은 다 루저. 뒤처지지 않으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길을 잃지 않으려고 마스터플랜을 쥐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81)

지난 금요일 아침부터 겨우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이날을 기억할 정도로 올여름은 더웠다. 나만의 감식법인데 ‘8월 하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나이듦에 대한 심정을 알 수 있다. “드디어 가을이 왔다.”고 좋아하는 이들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사람이고, 올해 같은 8월이 가는 것조차 서운한 이들은 스스로 나이들었다고 생각하는사람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후자다. 인간은 원래 소통 불가능한 동물이지만 이 심정을 젊은이는 모를 것이다. 역지사지가 가장 어려운 영역은 나이 차이가 아닐까. 한쪽은 거쳐 왔고, 한쪽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완벽한 비대칭.


(91-92)

소박하게 살고 싶어서, 만사가 귀찮아서, 사람이 싫어서…… 은둔을 고민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은둔이 도피 이상이 되려면 입장이 확실해야 한다. 나의 잠정 결론. 은둔의 이유는 세상이 나를 더럽혀서가 아니다. 내가 세상을 더럽히므로 떠나야 한다. 마음이 편하다. 마음만이라도 거사(居士).


(117)

나는 늘 내 문제가 궁금하고 그로 인해 생성되는 삶의 화학에 골몰하는 편이다. 내게 인생의 절정, 결정적 순간은 패배 후의 복기다.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 혼돈과 의문의 시간에 바로 복기할 수 있다면! 그 깨달음의 절실함과 기쁨을 어디에 비교할까. 집약된 배움, 농축된 시간, 바둑의 복기는 요다 노리모토 9단의 휘호처럼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 다시 오지 않을 단 한번의 기회)일지 모르지만, 삶은 복기의 연속이다. 그래야 한다. 매 순간이 대국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복기는 트라우마, 집착, 후회를 가져온다. 지나간 일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154)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 권력자다. 자기 충족적 삶은 최고로 힘을 지닌 상태다. 인간은 권력 지향적이기 때문에 권력감이 없으면 외로운데, 자기 몰두형 인간은 권력에 무심하다. 사실, 이 행복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


(191)

, 참 국립국어원은 남성 페미니스트여성에게 친절한 남자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앞에 예쁜 여성에게만붙이면 완벽하네요!


(220)

말을 섞는 것은 살을 섞는 것보다 관능적인 행위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섹스보다 대화가 더 심각한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말이 통한 다음에 올 천국과 파국을 알기에, 되도록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엮이는 것만큼 재앙도 없다. 말은 물질이다. 말 한마디는 빚만 갚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게 한다. 나는 예전에 이송희일 감독의 우린 친구가 없으면 끝이잖아.”와 서울인권영화제 표어였던 나는 오류입니까?”로 몇 달 버틸 양식을 구했다.


(241)

과학자는 신이 아니다. 과학자이기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 자기 연구의 의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와 언어, 개인의 위치성을 알아야 한다. 동물들의 행위가 약육강식인지, 협력인지, 경쟁인지, 돌봄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잠깐, 백번 양보해서 여성의 모든 문제가 호르몬이라고 치자. 그것도 모두 출산력과 관련이 있다면 저출산 시대에 여성을 보호하고 지지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제나 인간 문제는 팩트여부가 아니라 팩트를 만들어내는 권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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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이 모퉁이에는 이상한 사람들, 즉 몽상가들이 살고 있습니다. 몽상가, 좀 더 자세히 정의하자면 그는 인간이 아니라, 그러니까 이를 테면 무슨 중성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대체로 다른 사람이 근접할 수 없는 구석에 정착합니다. 마치 한낮의 햇빛까지도 피하려는 듯이 그 속으로 기어드는 거죠. 그리고 일단 자신의 안식처에 숨어들면 달팽이처럼 아예 자기 구멍에 찰싹 들러붙습니다. 적어도 이 점에서 그는 생물이자 동시에 집이기도 한 저 흥미로운 동물, 거북이라 불리는 것과 유사하죠.

 

(57)

세월이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가! 그리고 또다시 묻습니다. 그래, 너는 이 세월 동안 무엇을 했는가? 너의 황금 같은 세월을 어디다 묻어 버렸는가? 살아 있었던 거냐 아니냐?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조심하라고, 세상은 점점 냉혹해지고 있어. 몇 년 더 지나면 또 우울한 고독이 뒤따를 거야. 목발을 짚고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는 노년이 찾아오겠지. 그리고 그 뒤에는 우수와 권태가 뒤따를 거야. 너의 환상 세계도 빛을 잃겠지, 그리고 꿈은 시들어 낙엽처럼 떨어지고 마침내 사라져 버리겠지…… , 나쓰쩬까! 혼자, 전적으로 혼자 남는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겠지요. 심지어 아쉬워할 것조차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잃어버린 모든 것도, 지금의 모든 것도,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어리석고 동그란 원, 그저 한낱 꿈이었으니까요!

 

(115)

그러니까 나쓰쩬까, 너는 내가 모욕의 응어리를 쌓아 두리라 생각하는가! 내가 너의 화사하고 평화스러운 행복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게 할 것 같은가, 너를 신랄하게 비난하여 너의 심장에 우수의 칼을 꽂을 것 같은가, 너의 가슴이 비밀스러운 가책으로 고통받고 행복의 순간에도 우울하게 고동치도록 만들 것 같은가, 네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제대(祭臺)를 향해 걸어갈 때 너의 검은 고수머리에 꽂힌 저 부드러운 꽃 중에 단 한 송이라도 나로 인해 구겨져 버리게 할 것 같은가…… ,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과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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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4-04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백야!! 너무 좋아요^^

bookholic 2022-04-05 00:02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39)

산업문명 초기에 전체 육지의 14퍼센트에 불과했던 인간의 서식지가 77퍼센트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수치가 모든 상황을 말해주는 것 같다. 지구 일부를 점유하는 조건 아래 지구와 균형을 유지하던 종(, species)으로서의 인류가 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 되자 모든 병리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 인간 중심적 행성화(anthropocentric planetization)라 부를 수 있고, 기후변화는 그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53)

지구 시스템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비선형적으로 작용한다. 환경의 비선형 변화가 갖는 위험은 현재 물리적으로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나갈수록 증가한다. 어느 부분에서 언제 티핑 포인트에 도달해 재앙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가령 기온이 1.5도를 넘을 경우, 빙하가 녹아서 전 지구적으로 해수면이 높아질 뿐 아니라 산악지대 영구동토층이 녹아서 매장되어 있던 온실가스가 방출될 수 있다. 결정적인 위험 요소다.


(83)

정신이라 유기체들이 뇌와 고등신경계를 발달시키기 오래 전에 시작된, 생명의 복합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지적이 중요하다. 자연도 정신적 존재다. 정신은 생명 현상의 한 측면이다. 정신이란 살아 있음의 정수다. 생명계의 조직 원리들은 그 본질에 있어 정신적이다. “생명의 모든 수준에 있는 물질 내부에는 정신적인 것이 존재한다.” 카프라는 베이트슨이 생물학이 인간과 자연의 공통점에 주목해서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을 처음으로 극복했다고 평가한다.


(115)

지구법학은 생태위기에 답하기 위해 창안된 새로운 패러다임의 법학이다. 지구법학은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지구와 인간의 상호 증진적 관계를 지향하는 지구 중심적 패러다임 전환을 추구하면서 다듬어졌다. 산업문명과 근대법이 생명과 자연을 취급하는 생각과 방식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세계관과 법 제도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123)

우리는 수십억 년의 시간 동안 만들어졌다. 그리고 1 2,000년 가까운 홀로세 기간에 적정 기후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100년도 안 되는 눈 깜짝할 새에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지금의 기후위기와 전염병을 우리 책임 밖의 일이라 할 수 없다. 기술이 해결해주리라고 쉽사리 낙관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새롭게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우주적 시간이다. 이 깊은 시간 속에서 먼 우리에게까지 이르는 역사적 사건들의 해석과 미래의 지침을 발견해 나가야 한다.”


(128)

생태대는 토머스 베리와 브라이언 스윔이 <우주 이야기>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지구 및 지구 공동체와 상호 증진하는 관계의 시대로 진입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생태대를 뜻하는 ‘EcoZonic’은 그리스어로 집을 의미하는 ‘oikos’와 살아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zoikos’의 합성어이다. 생물의 집’ ‘생물의 집’ ‘생명 공동체(지구 공동체)’라는 뜻이다. ‘생태(Eco)’생물(Zoe)’의 합성어는 통합적이고 생물학적인 용어다.


(171)

지구와사람은 학교를 목표로 한다. 만나서 배우고 가르치고 교류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지구와사람은 처음부터 학술 교육 문화의 세 영역을 미션으로 설정했다. 문화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작업을 통해 학습과정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하지만 대학 수준의 교육기관이 아니라 아주 작은 규모의 모임에서 이런 목표를 추구하며 운영해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자주 한계에 부닥쳐왔다.


(180)

인간은 지구가 낳은 의식이다. 지구의 이야기 속에서 아주 천천히 걸어나왔다 두 발로 서서 뒤뚱뒤뚱 무거운 머리를 천천히 흔들며, 두 손으로 쉴 새 없이 만지고 만들며 진화를 되돌아봤다. 이런 인간이 어느 날 눈이 멀었다. 지구의 생명체들이 죽어 지구에 묻히고 수십억 년의 세월을 거쳐 석유와 석탄 화석이 되었다. 인간은 화석을 파내어 탕진했다. 검고 끈끈한 화석이 얼굴을 뒤덮고 눈을 멀게 했다. 인간은 마음을 잃었다. 진화의 긴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이대로 가면 인간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가이아는 살아 있다. 눈을 잃어가면서 침묵하는 지구.


(184)

ESG라는 용어는 1992년 설립된 UN 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2004 6월에는 UN 글로벌콤팩트와 국제금융공사(IFC, International Finance Corporation), 스위스 정부가 공동으로 발의한 이니셔티브 누가 이기는가(Who cares wins)’에서 공식적으로 제안했다고 알려져 있다. UN 글로벌콤팩트는 20개 대형 금융 기관과 함께 기업들의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특히 주주들의 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그리고 거버넌스 측면의 사안을 관리해야 한다고 밝히며 ESG의 의미를 정의했다.


(188)

지구헌장과 현재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 혹은 ESG 논의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자가 성장의 한계를 명백히 하고 자연과의 공존에 유의해야 한다는 생존조건을 명확히 한 데 반해, 후자는 우리 사회경제의 전체적인 한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현재 한국사회에는 탄소중립, 즉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 에너지를 더 이상 쓰면 안 된다는 인식은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거대한 가속의 GDP 성장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이 가져올 미래 경제구조의 변화에까지는 아직 고민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211)

겸손은 반성적 자아가 충만한 상태다. 겸손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인간만이 정신적 존재라고 생각하며 우주와 지구를 물질에 불과하다고 업신여기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을 넘어 이들에게서 내가 비롯되었고, 지구의 지질시대 안에 내가 출현해서 살고 있다는 삶의 연속성과 거대한 통합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세계관은 거시적이면서도 가치에서는 인류의 겸손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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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50)

피의 사도이자, 밤의 군주이며, 내밀한 침실에서 쉬는 이들의 잠 속에 침입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무덤으로 돌아갈 숙명을 지고 있음에도 죽을 수가 없다. 이 금제 앞에서는 반 헬싱 박사의 작전들도 힘을 잃는다. 작가가 직접 쓴 소설의 결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십자가와 마늘도, 드라큘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는 각종 패러디와 우화들도,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 법칙들의 엄정함도 마찬가지다. 드라큘라 백작은 이 모든 수법을 물리치고 반드시 돌아온다. 소설가와 영화 제작자들이 아무리 드라큘라라는 이름 대신 온갖 가명을 지어내도, 앤 라이스와 스테프니 메이어가 아무리 새로운 모험을 상상해내도, 막스 슈레크, 벨라 루고시, 톰 크루즈가 그의 외모를 아무리 다양하게 재구성해도 그의 존재는 그대로다. 우리는 드라큘라 백작이 이 암울한 시대에 필수 불가결한 괴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65)

영혼을 파는 행위가 온 세상이 들썩거릴 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던 옛날에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이기든 지든 간에 그의 업무 자체는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영혼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나머지 사람들이 송유관 건설 계약이나 상원 의원석 같은 하찮은 것들을 얻기 위해 매일같이 영혼을 팔고 있으니, 메피스토펠레스의 과업은 역설적이게도 과거보다 훨씬 팔고 있으니, 메피스토펠레스의 과업은 역설적이게도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진 셈이다. 우리가 영혼을 하찮은 것과 맞바꾸다 보면 영혼의 가치도 하찮아지게 마련인데, 천부적 고리대금업자인 메피스토펠레스는 귀중한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파우스트는 지식이나 사랑이 아니라 금전적 이득, 리얼리티쇼 초대권, 인터넷상에서의 유명세 등을 추구하니, 메피스토펠레스가 이윤을 내는 데 필요한 만큼의 영혼을 사들이려면 열 배는 더 많이 일해야 할 듯싶다.


 (78)

20세기 초에 조지 버나드 쇼는 돈 후안에 대한 희곡에서 자신만의 슈퍼맨을 창조했다. 쇼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정치적 역량을 키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로 망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 오래된 대안들이 실패하는 바람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채택하게 된 제도다. 독재주의는 유능하고 자비로운 전제군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패했다지만, 인구 전체가 유능한 투표자여야 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쇼의 친구이자 적수였던 G.K. 체스터턴은 슈퍼맨에서 더 깊은 진실을 알아차렸다. 비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연약함이 그것이다.


(86)

돈 후안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유혹자이고, 유혹자라기보다는 수집가이며, 수집가라기보다는 저격수에 가깝다. 돈 후안과 일견 유사해 보이는 다른 바람둥이 인물들은 명확한 목적에 따라 애정 행각을 벌인다. 대개는 <위험한 관계>의 혐오스러운 발몽이라든지 사드의 우화에 나오는 음흉한 주인공들처럼 사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돈 후안은 다르다. 그의 행각에는 동기가 완벽하게 결여되어 있다. 이 유명한 바람둥이가 육체적 쾌락을 누리기는 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123)

이 치정 모험극을 읽다 보면 우리가 현실 세계라고 생각했던 곳이 도리어 꿈같음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눈은 두 귀보다 더 많은 진실을 봅니다.” 양소유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직후 귀신 행세를 하는 어느 미녀에게 속아 넘어간다. 그 미녀는 나중에 진짜 사람이었음이 밝혀지지만, 무엇을 무엇으로 속인 것인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아가씨가 귀신인지, 귀신이 아가씨인지 말이다. 이후 그녀가 양소유에게 설명하기를, “사람과 귀신의 길은 각각 다르지만 사랑은 그 둘을 합칠 수 있지요.”라고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진실은, 감각적 세계는 비실재적이고 영혼의 세계야말로 실재적이라는 것, 전자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오로지 후자야말로 의미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145-146)

고대인들은 괴물들과 교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존재에 책임감을 느꼈다. 미노타우로스는 파시파에의 욕정 때문에 태어났고, 인어들은 뱃사람들이 금단의 영역을 넘어가지 못하게 막으려고 생겨났다. 역사학자 폴 벤느는 당연히 고대인들은 신화를 믿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다고 그들이 신화를 진실이라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진실이란 권력을 향한 의지로부터 우리를 갈라놓은 얇은 막 같은 집단적 자기만족이다.”


(237)

책은 네모를 지식으로 안내하고 인류 공통 경험의 견본들을 보여주었지만, (독서가들이라면 알다시피) 책이란 한 권이든 1 2천 권이든 간에 읽는 사람이 선택한 길만을 비춰줄 수 있다. 책은 독서가에게 어떤 의무적인 목표를 정해줄 수도, 심지어 특정한 방향을 강요할 수도 없다. 훗날 베른은 <신비의 섬>에서 자신의 아나키스트 주인공이 환멸 속에서 패배를 인정하는 이야기를 썼다. “고독, 고립…… 이런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슬픈 일이로구나. 나는 혼자만의 삶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던 탓에 죽는구나!” 네모는 고통스러워하며 토로한다.


(253)

그러나 오늘날 독자들 중에는 모험으로 가득한 <서유기>의 세계에서 카프카의 악몽 같은 음울한 부조리성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관료제에 대한 풍자라고 해도 그것은 실존주의적인 의미에서 이해된다. 즉 위에서부터 내려온 규칙과 규정,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따라야 하는 법에 우리 존재가 얽매여 있다는 문제의식 말이다. 사오정의 동료들은 요괴와 신과 왕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사이비 군사 전략을 동원하지만, 사오정이 제시하는 해결책들은 이성적이고 윤리적으로 반응하는 것만이 최선의 생존 전략임을 알려준다. 그는 도덕군자연하는 이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위로가 아니라 올바른 것을 정직하고 강직하게 추구하는 기개를 전해준다. 사오정의 세계관에 입각해서 보면, 겉보기에 올바른 것이 실은 악으로 가는 길일 수 있고, 약하게만 보이는 것이 알고 보면 올바르고 참된 길일 수도 있다(돈키호테도 이와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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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헤밍웨이는 한 장소에 붙박인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4대륙 20여개 나라에 삶의 흔적을 남겼고, 창작도 온갖 도시의 온갖 호텔을 옮겨 다니며 했다. <태양은 다시 뜬다>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팜플로나가 배경이고 스위스에서 마감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와 베네치아가 배경이고 마조레 호숫가의 호텔에서 쓰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의 전장이 배경이고 쿠바의 아바나에서 주로 쓰였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가 배경이고 <노인과 바다>는 쿠바의 아바나가 배경이다. 한 여성에게 머물지도 않았다. 그는 네 명의 여성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애인들도 적지 않았다. 그는 결혼과 이혼을 반복할 때마다 굵직한 작품들을 써 발표했다.


(67)

1920년대 문학을 말할 때 가장 널리 이야기되는 것이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 어쩌면 이 이름이 그 뒤를 잇는 여러 세대론의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이후로 1950년대의 비트족’, 1960~1970년대의 히피족이 뒤를 잇는다. 잃어버린 세대라는 이름을 탄생시킨 것이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뜬다>였다. ‘잃어버린 세대는 그의 창작이 아니었지만, 그가 소설에 써서 유명하게 되었고 그를 비롯한 몇몇 작가를 일컫는 공식적인 세대 이름이 되었다.


(104)

헤밍웨이가 대화문을 쓸 때 현실성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소설이고 따라서 극한 상황에 처한 군인들이 내뱉는 욕설과 비속어 ‘cocksucker’가 등장한다. 결국 저급한 단어들이 문제가 되어 보스턴에서 <무기여 잘 있거라>가 금서 목록에 오른다. 편집자 맥스 퍼킨스는 출판사 사장에게 이런 편지를 섰다. “삶에서든 문학에서든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게 헤밍웨이의 원칙입니다.”(<헤밍웨이 vs. 피츠제럴드>) 피츠제럴드는 검열 소식을 듣고 레마르크의 전쟁소설인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구해 헤밍웨이에게 보내준다. 당연히 그 소설에서도 군인들은 욕설을 내뱉는다. 남성들뿐인 전장의 막사에서 군인들이 조곤조곤 우아하게 존댓말로 대화한다면 그것만큼 어색한 장면도 또 없을 것이다. 결국 헤밍웨이와 맥스 퍼킨스는 한동안 설전을 거듭하다가 비속어를 빼기로 한다.


(106-107)

난 늘 빙산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 밑에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는 않는 부분입니다. 작가가 모르기 때문에 뭔가를 생략하면, 그때는 이야기에 구멍이 생겨요. (…) 하지만 알고 있는 그런 것들이 수면 아래의 빙산을 만드는 겁니다. - <헤밍웨이의 말> 57~59


(118-119)

김욱동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다. (1) 헤밍웨이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억제한다. 감정을 억제하기에 오히려 그의 문제에는 힘과 박력이 있다. (2) 헤밍웨이는 글을 쓸 때 낱말 하나도 무척 주의를 기울여 선택하였다. 좀 더 구체적이고 감각적일뿐더러 충격적이고 투박한 성격이 강(한 토착어를 주로 사용했다). (3) 헤밍웨이는 되도록 형용사나 부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4) 헤밍웨이는 무엇보다도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된 평서문을 즐겨 구사한다. 주어와 동사의 관계로 이루어진 단문을 즐겨 쓴다. 또한, 단문과 단문을 등위접속사로 대등하게 연결하는 중문을 주로 사용한다. (5) 반복법을 구사하기도 한다. 단순히 반복한다기보다는 의미를 조금씩 보강하는 점층법을 구사함으로써 주술적 효과를 노린다. (6)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는 그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헤밍웨이를 위하여> 296~298)


(142)

헤밍웨이는 삶의 경험도 많고 어디 한군데 머무르지 않는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단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단편적이고 단조로웠다. 그런 여성들과 그 자신의 반영인 남성 주인공들은 대개의 경우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무르익은 밀고 당기는 연애 과정은 짧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내 내면의 모든 곳이 뒤집혀버렸다.”(<무기여 잘 있거라> 126)라고 말하면서 프레더릭은 캐서린과 병실에서 다짜고짜 사랑을 나눈다. 이런 관계에서 언제나 더 많이 사랑하고 그래서 더 순종적이게 되는 편은 항상 여성이다. 캐서린은 프레더릭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체온까지 멋지군요. (…) 당신 체온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무기여 잘 있거라>, 139) 프레더릭이 당신은 나의 착한 여자야.”라고 하지 캐서린은 난 정말 당신의 여자예요.”(<무기여 잘 있거라>, 205)라고 답한다. 주인공 남며 간의 이런 식의 대화는 헤밍웨이의 거의 모든 소설들에서 반복된다.


(163)

이제 막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의 헤밍웨이의 눈에 여성들은, 비난을 퍼붓고 남성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비쳤을 수 있다. 그의 남근중심주의는 어쩌면 어머니 그레이스가 덜 강압적인 양육 방법을 썼다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그를 썼다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그의 소설에서 일관되데 나타나는 순종적인 여성상도 정도가 덜했을지 모르고, 현실적인 성격의 여성들이 다채롭게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여자란 정복하고 통제해야 할 존재인 동시에 남성성을 무력화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는 무서운 존재였”)<섹슈얼 트라우마>, 237)던 것이다. 그의 눈에 비친 여성이 그런 존재였다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여성을 억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에 대한 증오를 여성 일반에 투사해, 실생활에서든 문학으로든 여성을 억압하려 했다면 그것은 헤밍웨이의 잘못이다.


(222)

하지만 헤밍웨이가 무슨 이데올로기적인 확신이 있어서 참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시즘, 자유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가 뒤섞여 이데올로기의 각축장 같았던 스페인 내전에서 그는 어느 이데올로기도 공식적으로 두둔하지 않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그는 로버트 조던의 입을 빌려 자신에게 정치적인 입장이 없을 강조한다. 그의 참전은 다큐멘터리 해설에서 보듯 감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는 이미 스페인이 배경인 책을 두 권 펴냈고 거의 해마다 스페인에 놀러가고 있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도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 이야기가 나온다.


(274)

내가 보기에 이 점이 헤밍웨이의 삶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비행기 사고도, 자살도, 이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들의 연속선상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그는 말하자면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똑 같은 행위를 다시금 반복했고, 비슷한 위험한 상황을 반복해 만들었다. 보통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낚싯대를 타고 나갔다가 한 번 큰 부상을 입었으면 또다시 낚싯대에 오르기를 꺼려할 것이다. 전장에 나가 다리에 200개가 넘는 파편이 박혔다면, 전쟁은 소문만 들어도 치라 떨릴 것이다. 술에 취해 차를 운전하다 사고를 냈으면 다시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생 낚싯배를 타고 청새치를 쫓아다녔고, 늙어서도 주먹질 싸움을 그치지 않았으며, 알려진 것만 전쟁에 다섯 번 참전했고 음주 운전을 멈추지 않았다.


(285)

헤밍웨이는 죽기를 욕망했다. 죽음은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의 원인이었고, 그가 쫓아다닌 위험한 장소들은 죽음에 그를 가까이 데려다주기는 하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는 욕망의 틀린 대상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갖가지 사고와 질병, 비행기 사고, 자살까지 이어지는 그의 기나긴 육체적 고난의 연보는 이렇게 해서 연속성을 얻게 되고 조금이나마 이해 가능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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