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 기록과 소서노 이야기는 일맥상통한다. , 졸본부여로 망명한 주몽이 계루부의 족장 연타취발의 둘째 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계루부의 세력 확장에 기여하고 마침내 연노부를 누르고 왕이 됨으로써 계루부 중심의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켰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연노부를 중심으로 한 졸본부여의 국호는 구려였는데, 계루부를 일으킨 주몽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 위대한’, ‘숭고한등의 뜻을 가진 고()를 덧붙여 고구려라고 했다. 부족연맹체 성격이 강했던 구려는 고구려라는 국호를 사용하면서 중앙집권적 국가인 고구려로 재탄생했던 것이다. 따라서 고구려는 주몽에 의해 처음으로 개국된 나라가 아니라 적어도 고()조선 말기부터 구려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주몽에 의해서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다시 일어섰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1-22)

<삼국사기> 13 유리명왕 31년 기록에 서한의 왕망이 고구려를 낮춰 부르며 ()구려비천한 구려라고 칭한 바 있는데, 이를 보아도 고구려의 역사는 구려를 빼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구려는 위대한 구려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당연히 고구려의 역사에 구려의 역사를 포함시켰을 것이다. 고구려 900년설은 이 같은 설정을 바탕으로 했을 때 정설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은 고구려를 고려(高麗)’라고도 쓰고 있는데, 이는 고려에 대한 영어식 표기인 Korea의 어원이다. 흔히 Korea라는 말은 왕건이 세운 고려에서 비롯했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왕건이 세운 고려조차 고구려를 계승하기 위해 그 명칭을 답습한 것이기 때문이다. ‘Korea’가 왕건이 세운 고려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어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한국의 영어식 국명인 Korea의 역사를 천 년 이상 앞당기는 결과를 낳는다.)


(37)

동이라는 말은 초기에 하나의 민족을 의미하기보다는 중국의 한()족이 자신들의 동쪽에 사는 사람들을 통칭해서 부른 명칭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렇지만 동이가 단순히 한족의 동쪽에 머무른다는 의미만 갖고 있지는 않다. 동이를  풀이하면 동방의 이()’족이란 뜻인데, ()에 대하여 중국 최초의 문자학 서적으로 후한 때 허신이 편찬한 <설문해자(說文解字)>큰 것을 따르고 활을 잘 다루는 동방의 사람들이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설명은 이족이 큰 것()를 숭상하고 활()을 잘 다루는특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이는 단순히 한족이 머무르던 곳의 동쪽에 살던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큰 것을 지향하고 활을 잘 다루는 동방 종족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4)

따라서 태조라는 묘호는 고구려가 주변국에서 종주국으로 변모한 사실을 담고 있는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고구려의 세력으로 봐서 스스로 종주국을 칭한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그것에 대해 시비를 걸지 못할 상황이었다. 때문에 고구려인들이 제6대 임금의 묘호를 태조라고 붙인 것은 그가 고구려를 재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고구려가 종주국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9)

이처럼 평양이 어떤 특정한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 시대에 도읍이 있던 곳을 부르는 일반명사였을 것이라는 박지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또한 박지원의 주장을 근거로 할 때, 고구려 영토 안에는 이미 고조선 시대부터 평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여러 지역이 있었고, 동천왕은 그 가운데 한 곳으로 도읍을 옮겼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또한 동천왕 당시 고구려는 대동강변까지 영토를 확장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동천왕의 평양이 평안남도 대동강변의 평양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동천왕의 평양과 대동강변의 평양은 전혀 무관한 것임을 먼저 밝혀둔다.


(288)

당시 백제와 고구려 사이엔 말갈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말갈은 신라와 고구려의 북쪽 변경지대에서 세력을 형성하여, 틈만 나면 쉴 새 없이 백제와 신라를 공략했다. 백제와 신라를 공략한 말갈은 일곱 종류의 말갈 중 백산 말갈로서 압록강변과 청천강 사이에 거점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고구려에 조공하면서도 한편으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백제와 신라에 압박을 가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광개토왕의 백제 원정 때에는 말갈군이 동원된 흔적은 전혀 없으며, 말갈을 통과한 기록도 없다. 다시 말해 고구려군은 말갈 지역을 통과하거나 말갈군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육로를 이용할 경우 말갈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광개토왕은 해로를 이용했던 것이다.


(383)

이 같은 결과는 연개소문의 일인독재 체제가 고구려 멸망의 주된 원인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비록 그가 살아 있을 때는 국력이 안정되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했다. 그가 죽으면서 그에게 집중되어 있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조정은 권력다툼의 장으로 급변하였고, 그것이 곧 멸망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고구려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고구려의 군사력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권력다툼 때문이었다는 뜻이다. 그 누구의 의한 것이라도 독재체제는 국가를 멸망으로 이끈다는 평범한 진리를 연개소문이 진작 알았더라면 고구려가 결코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389)

중국을 통일하고 천하의 영웅호걸로 통한 이세민을 이토록 비참한 모습으로 쫓겨가게 한 안시성 성주는 불행히도 사서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와서 송준길과 박지원은 이름이 전하지 않던 이 안시성 성주를 양만춘(梁萬春)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고구려 말의 학자 이색과 이곡은 당 태종 이세민이 안시성 싸움에서 눈에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고 회군한 것으로 적고 있다. 하지만 당 태종이 눈에 화살에 맞았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주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당 태종이 안시성 싸움에서 패배하여 회군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당 태종을 물리친 안시성 성주는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도 안시성을 지키며 고구려 재건을 노렸는데, 불행히도 671 7월 안시성은 당나라 군대에 의해 함락되고 만다. 불세출의 영웅 안시성 성주가 이 때 죽었는지 아니면 그가 죽은 뒤에 안시성이 무너졌는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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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렇게 보자면 추리소설은 사회사에서 아주 유용하고도 풍부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미 1952년 윌리엄 서머싯 몸이 추리소설이 향후 사회사가들에게 매우 귀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고 콜린 왓슨은 역사가들의 과제란 추리소설처럼 대중적인 작품에서 사람들의 가치관과 태도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왓슨의 주장은 대중에 천착해왔으면서도 정작 대중의 기호에는 무심했던 학계의 엘리트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이 작업은 ‘B급 문학을 역사연구소의 소재로 활용해보는 모험적 시도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이 책이 20세기 영국의 역사, 특히 전간기(戰間期, 1차 세계대전 종결 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발발까지의 시기)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역사가로서 아주 기쁠 것이다.


(24)

애거서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동정심을 가지고 벨기에 난민들을 친절하게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다지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았고 오히려 이것저것 불평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을 본 탓에 애거서가 푸아로를 까달스러운 캐릭터로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벨기에 사람인 푸아로는 영국 독자들에게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아마도 벨기에의 존재감이 약했던 탓이리라. 실제로 어떤 학자는 당시 대중의 상상력 속에 벨기에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그저 통과하는 나라였다고 설명한다. 종종 프랑스인으로 오해받았던 푸아로가 자신이 벨기에인이라고 밝히기만 하면 언제나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갔던 것처럼 말이다.


(42)

애거서는 집을 오랜 수명을 지닌, 반드시 보존해야만 할 생명체처럼 묘사하곤 한다. 집은 주인공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내야 할 최고의 유산이다. 그런 애착을 강력한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엔드하우스의 비극>이다. 주인공 닉 버클리는 황폐해가는 엔드하우스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상속세를 내기 위해 그 집을 저당까지 잡혀야 했다. 닉은 나는 그 집을 사랑해요. 팔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사촌오빠이자 변호사인 찰스 바이스는 닉이 집에 대해 광적인 애착을 가졌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닉이 절대 유별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조차 지키기 힘들게 된 영국 중상류의 초상일 뿐이다.


(68)

흥미롭게도 병역법은 자녀가 있는 홀아비와 보호 직업군(혹은 예비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징집에서 면제해주었다. 보호 직업군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는 직업군으로 성직자, 의사, 교사, 열차기관사, 농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2차 세계대전기에는 징집면제보다 더 강한 병역배제의 개념이 적용되어 채탄, 조선업 등 특정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은 설사 자신이 원할지라도 군 복무를 할 수 없었다. 농업 역시 보호 직업군이었는데, 농부뿐만 아니라 농업을 공부하는 학생도 징집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서는 농과대학에 입학하지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153-154)

그렇다면 애거서가 제일 좋아했던 교통수단은 기차였을까? 아니다. 애거서는 스포츠카 광팬이었다. 애거서는 자동차에 열광했다. 어린 시절 파리에 갔을 때 처음으로 자동차를 보고 위대한 기계시대의 선구자를 접하게 되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자기집은 부자가 아니었기에 마차도 없었고 자동차는 꿈도 꾸지 못했다. 결혼 후 만삭으로 런던의 버스정류장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닐 때는 단 하루라도 차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자서전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길게 적을 만큼 자동차는 애거서에게 정말 소중한 어떤 것이었다.


(170)

흥미롭게도 애거서는 영국인이 가진 민족적 우월성을 의식하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을 작품 속에서 비꼬기도 했다. ‘섬나라 근성같은 단어를 콕 짚어 쓰면서 말이다. <비둘기 속의 고양이>에는 그런 애거서의 인식이 잘 표현된 대목이 있다. 먼 나라를 다녀온 섯클리프 부인은 영국에 올 때마다 비가 내려서 우울하기 짝이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딸 제니퍼는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영어로 얘기하고, 정말 맛있는 차와 버터나 잼을 바른 빵, 제대로 된 케이크가 있는 곳에 돌아와 좋기만 하다고 대답한다. 섯클리프 부인은 난 네게 그 섬나라 근성이 좀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면박을 준다. 집에 있는 것이 그토록 좋으면 그 먼 페르시아만까지의 여행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면서 말이다. 또 있다. <벙어리 목격자>에서 푸아로가 영국인들은 영국인 의사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의사들이라고 믿고 있죠. 섬나라 근성이에요라는 부분 말이다.


(205)

마녀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지식을 통해 일상사의 궂은일을 해결해주는 존재였다. 전쟁터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생사를 점쳐주고 너무나 미운 사람을 해코지할 방법을 알려주며, 짝사랑의 상대가 자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미약을 주기도 했다. 원치 않은 임신으로 배가 불러올 때 그것을 중단시킬 비밀스러운 약초를 주는 것도 마녀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움직이는 손가락>에는 그런 습속을 넌지시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동네에서 마녀로 불리는 클리트 부인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약초를 뜯으러 나가는데 일부러 동네 사람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마플은 은근슬쩍 그리고 아마도 어리석은 처녀들은 그녀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으려 할 테지요?”라고 내뱉고야 만다.


(218)

미시사는 1970년대 서구 곳곳에서 거시사에 대항하여 나타나기 시작한 연구방법론이다. 거시사는 서구의 근대가 만든 역사서술로, 대개 국가를 중심으로 한 역사다. 그렇기에 국가 권력의 중심축이던 정치와 경제를 그 핵심에 놓는다. 그런데 일군의 학자들이 기존 권력이 억압했던 주변적 요소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즉 지배층이 아닌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거시사가 국민 일반의 공통점을 주목했다면 미시사는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행위, 동기, 전략 등을 찾아보려 했다. 미시사가들은 그런 작업이 탐정의 실마리를 찾는 것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일까. 애거서의 추리소설에는 미시사를 설명할 수 있는 단초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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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무세이온은 일종의 연구소 같은 곳으로, 지중해 방방곡곡과 중동 등지에서 모인 다양한 학자, 물리학자나 수학자 들이 각종 시인, 문인과 어울리면서 다양한 학술 활동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지금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거기서 살았지만, 공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수학하던 때에 유클리드에게서 배웠다고도 합니다. 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굉장히 많은 과학적 지식을 습득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클리드라는 인물이 실제 존재했는지도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확인하기는 어렵겠지요. 당대 수많은 학자가 교류했던 무세이온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기념하는 현대 도서관이 2002년 이집트 정부와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98)

이런 원리는 학교 교육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수학의 기본 개념을 조심해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깊은 생각 없이 효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방법을 보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해진 형식을 따라 저절로 푸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니까요. 수학의 학습은 피아노 연주 같은 면이 있습니다. 기초 기술을 습득하면 반복 훈련을 해야 하고, 그게 익숙해지고 나면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말입니다. 흔히 수학 공부에서 암기가 중요한가 원리 파악이 중요한가 하는 질문에 제가 늘 둘 다 중요하다고 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명료한 사고가 반드시 원리를 아는 사고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124-125)

규칙의 기계적인 적용만 이용해서 하는 작업을 보통 알고리즙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을 거의 동일시하죠. 알고리즘은 아주 단순한 단계의 축적으로 이루어진 명령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 보는 것들이 아주 오래전 기록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기원전 2500년경 바빌로니아에 원시적인 나눗셈 알고리즘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곱셈 알고리즘, 최대공약수 알고리즘, 소인수분해 알고리즘 등을 생각할 수 있죠. 알고리즘이라는 말 자체는 중세 이후 16시기경까지 유럽 대학에서 수학 교재로 널리 사용되던 책 <복원과 대비의 계산>을 쓴 알 콰리즈미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185)

세상에 대한 이론을 만드는 일에는 명제를 분석하는 것과 생성하는 것 모두 필요합니다. 여기서의 생성은 앞서 이야기한 명제의 합성과 논법의 적용을 둘 다 포함합니다. 이론가들이 원하는 완벽한 이론이란 분해와 생성 과정이 어디선가 만나는 경우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이론은 없고, 궁극적으로 가능한지도 불분명합니다.


(323)

그런데 이런 화학적 작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더라도, 그냥 보면 희미한 빛을 시간을 들여 관철하면서 그 구성 성분을 분석해 이 분포도를 만들면, 그 빛이 별에서 나온 건지 은하계에서 나온 건지 금방 구분이 되겠죠. 또 각 원소가 발하는 빛의 파장이 서로 다르므로 별 안에 원소가 어떻게 배합되어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멀리서 오는 굉장히 다양한 빛의 정보를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테크닉은 성분 분석입니다. 파장의 분포도를 세밀하게 분류하다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분포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겁니다. 모르는 물체가 등장한 것이니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주에 사는 새로운 시스템의 발견은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353)

크세나키스는 작곡할 때 확률론을 굉장히 많이 사용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피아노 곡을 쓸 때 먼저 88개의 음 가운데 이 곡에서 이 88개의 음을 다음과 같은 분포로 사용하겠다정한 뒤 작곡을 하는 겁니다. 가령 는 전체 음의 12%가 나오고, ‘ 14%, ‘ 37% 나오게 하는 식으로 분포를 정한 다음 작곡을 하는 거죠. 음뿐 아니라 박자, 화음, 시간 등의 음악적 요소들을 물리적인 입자와 유사하게 여기는 작곡철학과 관계 있습니다. <확률의 작용>이라는 곡에서는 맥스웰 볼츠만 분포를 많이 사용했는데요, 이는 이상 기체 안에 있는 입자들의 속도 분포를 말합니다. 이를 작품에서 선율의 속도 분포에 사용한 것이죠.


(406)

우리 눈에 안 보이는 것 같지만 핵과 전자 사이, 원자와 원자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광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광자의 압력 때문에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적당한 설명인 듯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손으로 만지는 것이 귀로 듣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물체가 손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빛 때문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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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4)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56)

일요일, 자리에서 일어난 폴은 문 아래 편지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거에는 푸른 쪽지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던 속달우편으로, 그녀는 실제로는 그 편지가 시적으로 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맑은 11월의 하늘에 다시 나타난 태양이 그 순간 그녀의 방을 따뜻한 빛과 음영으로 채웠던 것이다. ‘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게서 온 편지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분명 그 후에도 그런 질문을 받았겠지만 대답 같은 걸 한 적이 없었다. 이런 상황, 삶의 이런 단계에서 누가 대답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그녀는 과연 브람스를 좋아하던가?


(106-107)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라고 대답하며 그는 요란하게 절하는 시늉을 했다.


(133)

알다시피 나는 경솔한 사람이 아냐. 나는 스물다섯 살이야.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살진 않았지만, 앞으로 당신이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아. 당신은 내 인생의 여인이고,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한 사람이야. 나는 알아. 당신이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신과 결혼하겠어.”

난 서른아홉 살이야.” 그녀가 말했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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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치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의 전신인 치클론A는 수십 년 전 캘리포니아 오렌지 살충제로 뿌려졌으며 멕시코인 수만 명이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몰래 탑승한 기차의 이를 구제하는 데 쓰였다. 객차의 나무판은 고운 파란색으로 물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아우슈비츠의 벽돌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색깔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안화물의 진짜 기원은 1782년에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다.

 

(42)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 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48)

일반적인 항성의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예측대로 완만하게 휘어졌으며 항성 본체는 마치 해먹에 누운 두 아이처럼 함몰부 중앙에 떠 있었다. 문제는 거성이 연료를 다 써버려 붕괴하기 시작할 때처럼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일어났다.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에 따르면 그런 경우에는 시공간이 단지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다. 항성이 짜부라들어 밀도가 계속 커지다보면 중력이 너무 세지는 바람에 공간이 무한히 휘어져 스스로를 감싸고 만다. 그 결과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영영 단절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이다.

사람들은 이를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153)

아인슈타인이 1905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주장했을 때 다들 그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비판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빛은 비물질적이니 이런 기이한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물질은 고체 아닌가. 그들은 물질이 파동처럼 행동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빛과 물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국 물질의 입자는 작은 금알갱이와 같아서 한정적 공간에 존재하며 세상에서 그 하나의 장소만을 점유한다. 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물질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앞쪽으로 발사된 물체는 장애물에 부딛히면 뒤로 튕겨져나가 특정한 점에 떨어진다. 이에 반해 파동은 드넓은 바다의 물처럼 끝없는 수면을 따라 뻗어 있으며 이런 식으로 동시에 여러 위치에 존재한다. 파동은 바위에 부딪히면 바위를 에돌아 제 길을 같다. 정면으로 마주친 두 파동은 서로 상쇄하여 소멸할 수도 있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진행할 수도 있다.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바닷가의 모든 장소를 동시에 때리지 않으면서도 여러 장소를 때린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현상은 본질 면에서 대립하고 모순되며 행동 면에서 상반된다. 그럼에도 드 브로이에 따르면 모든 원자는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이자 입자이며 때로는 파동처럼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한다.

 

(200)

이 새로운 파동역학의 중요성을 감히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은 빌라 헤어비히 요양원에서 슈뢰딩거의 골머리를 썩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파동 함수가 실재에 대해 실제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 중 하나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론이다. 인류가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하고 우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 기이한 구석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당신이 나를 적용하명서 생각하는 세상과 같지 않다고.” 슈뢰딩거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에 열중했으며 어딜 가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216-217)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새 개념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근거를 적어둔 종이를 꺼내 건네자 보어는 눈밭에 앉아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 동안 보어는 말없이 계산을 검토했으며, 다 끝나자 일어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추위를 떨치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보어는 이것이 실험적 한계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냐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253)

전 세계를 장악한 스마트폰 뒤에는, 인터넷 뒤에는, 신과 같은 연산 능력이라는 가슴 벅찬 약속 뒤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양자역학은 우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양자역학의 역설과 모순을 감당할 수 없다. 양자역학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론 같아서 우리는 유인원처럼 그 주위를 뛰어다니고 만지작거리고 노리개로 쓸 뿐 결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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