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눈을 떴는데 몇 시인지 모르겠다. 또 침대에서 발로 커튼을 열어젖혔다. 시험 삼아 해보았더니 아직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병석에 드러눕기라도 하면 다리로 커튼을 열 수 있는 지금의 건강을 얼마나 눈물겹게 그리워하게 될까? 그런 상상이 멈추지 않는다. 문득 다리 힘이 서서히 약해지는 과정을 차분히 느끼고 싶다는 용감무쌍한 생각이 들었다. 바지랑대와 이웃집 지붕, 건너편 맨션 너머로 맑은지 흐린지 알 수 없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느 계절인지 모르겠다. 기타카루이자와의 아침, 창을 열어 나무와 하늘, 고요한 풍경을 보고 싶다. 나뭇잎과 땅과 눈이 날마다 조금씩 변하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늦봄 새싹의 기세는 자라나는 소리가 들릴 정도다.

 

(110)

젊은 시절에는 하룻밤 자고 나면 피로가 풀렸다.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가 되자 무리하면 근육이 다음 날부터 저려왔다.

좀 더 나이 들고 보니 이틀이 지나서야 근육이 욱신거렸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한 친구는 술을 마신 이틀 후에 숙취가 생긴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노인이 아닌가. 늙으면 다들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노인이 굼뜬 건 늙어서 그렇겠거니 싶었는데 속사정이 이랬다니. 그리고 나는 익숙해졌다. 오늘의 피로는 일주일 묵은 것이다.

 

(137)

나는 아줌마다. 아줌마는 자각이 없다. 미처 다 쓰지 못한 감정이 있던 자리가 어느새 메말라버렸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서야 그 빈자리에 감정이 콸콸 쏟어져 들어왔다. 한국 드라마를 몰랐다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인생이 다 그런 거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브라운 관 속 새빨간 거짓말에 이렇게 마음이 충족될 줄 몰랐다. 속아도 남는 장사다.

 

(221)

병의 클라이맥스는 웨딩마치와 케이크 커팅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생 분량의 웃음을 그때 다 웃는다.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나는 결혼식이 늙은이의 장례식보다 가기 싫다. 결혼식은 어쩐지 애처로운 기분이 든다. 생활이란 화사한 생명과 연을 끊는 것이다. 출산은 엄숙한 행위다. 죽을 만큼 아프지만 그래도 아이가 없는 가정은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혼인 신고서를 제출해봤자 단지 같이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법적으로 인정받은 동거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본처가 맞긴 한 데다 각종 권리도 발생하니까.

생활은 수수하고 시시한 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런 자질구레한 일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화사한 마음이 생기면 불륜이며, 나 같은 할머니에게는 범죄나 다름없겠지만 요즘 사람들의 인식은 다를지도 모르다. 나는 열여덟 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부부 생활 중 몇십 년은 몹시도 괴로우리라는 것을. 하지만 고통스러워도 그 생활을 유지하는 이유는 노후 때문이다. 더 이상 아무에게도 화사한 마음을 건네받지 못하는 동지끼리 툇마루에서 말없이 감을 깎아 먹고 차를 마실 날을 위해서다.

 

(242)

몇 년이나 남았나요?”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2년 정도일까요.” “죽을 때까지 돈은 얼마나 드나요?” “1천만 엔.” “알겠어요. 항암제는 주시지 말고요, 목숨을 늘리지도 말아주세요. 되도록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럭키, 나는 프리랜서라 연금이 없으니 아흔까지 살면 어쩌나 싶어 악착같이 저금을 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재규어 대리점에 가서, 매장에 있던 잉글리시 그린의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지금껏 오기로라도 절대 외제 차를 타지 않았다.

배달된 재규어에 올라탄 순간 ,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젠 늦었구나라고 느꼈다. 시트는 나를 안전히 지키겠노라 맹세하고 있다. 쓸데없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고 마음으로부터 신뢰감이 저절로 우러났다.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큐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245)

사람은 태평스러운 존재다. 그간 실수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는 나조차도 내 인생은 썩 괜찮았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자기 편할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로 나뿐일까?

나는 싱글벙글 씨에게 부탁했다.

요 정도 크기의 문어 덩굴무늬 접시 다섯 장만 찾아다 줄래?”

죽는 날까지 좋아하는 물건을 쓰고 싶다. 예쁘고 세련된 잠옷도 잔뜩 샀다.

보고 싶은 DVD도 착착 사들였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남자는 모건 프리먼이다. 아들한테 모건 프리먼은 맨날 좋은 사람 역할로 나오네라고 말했더니 저 녀석이 악당 역이면 정말로 무섭다고. 저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말이 정답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3~16)

여기가 광화문이다.

             - 김해자

 

유모차도 오고 휠체어도 왔다.

퀵서비스도 느릿느릿 중절모도 왔다.

촛불을 들고 실업자도 잠시 실업을 잊고 왔다 누군가는 오늘도

굳게 닫힌 일터를 두드리다 왔고 누군가는 종일 서류더미에 묻혀 있다 오고

장사하다 오고 고기 잡다 오고 공부하다 오고 놀다 오고 콩 털다 오고 술 마시다 왔다.

 

우리가 이렇게 광장에 모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기울어가는 대한민국호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만 있지 않겠다와 더이상 가만두지 않겠다는 뼈저린 다짐이다.

기울어가는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불의한 명령을 응징하기 위해서다.

내가 든 촛불은 불의와 탐욕과 거짓이 일용할 양식인 자들에게

더이상 우리의 주권을 맡기지 않겠다는 명예선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국민이 곧 나라의 주인이므로.

어느 누구도 누구보다 높지 않으므로.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대통령은 하던 짓을 계속할 것이고

의원들은 그냥 팔짱을 낀 채 아무 법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그들도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더 뻔뻔하게 빼앗아갈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기억나지 않는다모른다만 아는 파렴치범들에게 면죄부를 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군대를 불러 국민에게 총구를 돌릴지도 모른다.

 

광장과 공용의 마당을 빼앗긴 민중에게 남은 것은 골방의 한숨과 눈물뿐,

우리는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광장을 이 작은 촛불 한 자루로 탈환했다.

50 100 150 200 250만 점점더 많은 촛불이 광장에 켜지고 있다.

빛이 사방을 덮어 그 빛이 세상 곳곳으로 퍼진다는 광화문(光化門),

빛을 밝혀 좋은 방향으로 화해해간다는, 여기가 바로 광화문이다.

촛불 들고 당산나무를 도는 산골과 밤을 밝히는 시장통과

대구 부산 광주 영월 보령 목포 흑산도 진도 거문도...

우리가 먹고 살고 사랑하고 만나고 모여 있는

지금 이곳이 바로 빛이고 광화문이다.

 

누가 대통령이어도...

지금 내 옆의 어느 누구도 저들처럼 무책임하고 무능하진 않을 것이다.

(아파트가 그렇게 남아돈다는데... 집을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까?)

보통사람인 국민 누구도 저들처럼 살아가는 어려움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다들 공부들을 많이 했다는데... 일자리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합니까?)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저들처럼 몰상식하고 파렴치하진 못할 것이다.

이게 지도자입니까? 이게 땅에 발을 디딘 사람 맞습니까? 이게 나라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모여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땅에 발을 대고 상식으로 빚은 팔을 휘두르며

양심으로 걸어와 우리 옆에 앉는 보통 인간의 얼굴이다.

대통령 하나 갈아치우자고 우리는 여기에 모이지 않았다.

당도 대통령도 우리의 절대희망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대통령도 정당도 모른 채

즐겁게 밥 먹고 평화롭게 일하고 사랑하며 살아도 되는 세상이다.

좋은 세상이라면 왜 알아야 하는가,

공기처럼 바람처럼 빛처럼 생명을 주는 것들은 다 소리도 형체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있을 건 있어야 하고 없어야 할 것은 없애야 한다.

우리가 탄핵하는 것은 해방 후 내내 심판도 단죄도 받지 않은 거짓과 비리,

민주주의를 짓밟고 고문하고 죽이고도 출세와 이권을 챙긴 불의한 관료,

우리가 탄핵하는 것은 해방 후 내내 국민들 고혈을 짜낸 탐욕스런 재벌,

아아 나스닥이여, 그들은 머잖아 붙잡고 울 나라조차 팔아먹으리라.

연민과 분배와 정의가 얼어붙은 사이

농촌은 해체되고 청년들은 미래를 빼앗기고 노동자들의 삶은 망가졌다.

부와 권력이 세습되는 동안 가난과 공포와 불안도 대물림되었다.

공부하고 노력하고 열심히 일해도 미래는커녕 오늘 하루를 기약할 수 없다.

이 모든 세습을 탄핵하라

우리가 든 촛불은 새로운 주권의 역사를 여는 첫 장,

이 촛불은 몽땅 쓸어서 가진 자들 아가리에 처넣은 얼굴 없는 귀신들에게

더이상 수저를 올리지 않겠다는 각성의 빛,

이 촛농은 먹고사느라 나 몰라라 했던 통회의 눈물,

힘없는 자에게 힘 있는 자 적이 되는

이 모든 억압과 불평등을 불 싸지르기 위하여

만인이 만인에게 적이 되고 분노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만인이 만인에게 친구가 되고 위안이 되는 세상을 위하여.

 

한 사람이 촛불 밝혀 한 사람이 더 밝아지고,

두 사람이 촛불 밝혀 두 사람이 더 따뜻해지고,

천 사람 만 사람의 촛불로 우리 모두가 환해지도록.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갈 세상을 위해, 민주주의 만세!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낮지 않은, 민주주의여 만세!

 

 

(27~28)

시스템 개혁의 4대 과제

(중략)

첫째,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서 엉터리 선거제도를 갖고 있으면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국회가 제대로 구성되어야 제대로 된 입법이 가능하다. 재벌개혁이든 검찰개혁, 행정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이든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중략)

둘째, 선거제도 개혁을 전제로, 시민이 참여하는 개헌을 해야 한다. 시민이 참여하려면 2017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조기 대선 이전에 개헌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하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된다. 시민이 참여하는 개헌 절차에 대해서 합의하는 것은 가능하고, 필요하다.

(중략)

셋째, 재벌개혁을 해야 하고, 검찰, 사법, 행정 등에 만연한 특권, 기득권 구조를 깰 필요가 있다. 이번에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은 재벌로 드러났다. 재벌들은 그동안 뇌물, 로비 등의 음성적인 방법으로 국가의 의사결정을 왜곡시켜왔다. 이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략)

넷째, 중앙집권구조를 깨는 획기적인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개혁이 필요하다. 결국 권력은 수평적으로도 분산되어야 하고, 수직적으로도 분산되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잘해보려고 하는데 중앙정부가 그것을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한편 지방분권이 지방자치단체장의 권력만 강화시켜주는 결과가 되지 않으려면, 지방자치단체의 만주화도 필요하다.

 

(58)

헌법은 우리가 지켜야 될 법이라기보다 우리(국민)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선언하는 법이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헌법에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헌법은 전문가의 영역에서 국민들의 손으로 넘어와야 되는 거예요. 너무 오랫동안 저 사람들이 권한문서를 가지고 마치 자기들에게 권력이 있는 것처럼 국민들을 속여왔고, 사람들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삼아왔단 말이에요. (그러나)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것은 국민만이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저들이 거꾸로 이용해왔던 헌법의 정신이 제대로 사용되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에요. – 김제동

 

(157)

1990년대 동안 식량부족과 비타민 결핍증이 발생했지만, 몇 년 후 쿠바인들은 유기농 야채를 더 많이 소비하고 육류를 더 적게 소비하게 됨으로써 훨씬 거 건강해졌다. 특히 농장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건강이 극적으로 개선되었다고 보고했다. 살충제와 제초제에 대한 노출이 훨씬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연료부족 현상은 재생가능에너지를 개발하는 쪽으로 이어졌다. 지금 쿠바에는 1만 개의 풍력발전기가 가동 중이고, 태양에너지 분야가 성장중이다. 바이오매스 전력시스템은 현재 이 나라 전력수요 중 거의 15%를 감당하고 있다. 또한 고립된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수백 개의 소규모 수력발전시설이 운영 중이다. 사실상 쿠바의 모든 설탕공장은 지금 사탕수수 찌꺼기를 이용한 전력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다. 시골 지역에서는 이제 태양열 오븐이나 기타 적정기술을 흔히 볼 수 있다.

 

(178)

보장소득을 권리로서의 노동, 시민권과 연결한 고르츠가 고유한 의미의 무조건적 기본소득 아이디어로 나아가는 과정에는 지식사회혹은 인지 자본주의혹은 비물질적인 것에 대한 인식이 놓여 있다. <노동의 변모-의미의 추구>(1988)에서 고르츠는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은 현대의 발명품이라고 전제한 뒤, 현재 경제는 더 이상 모두가 노동할 필요가 없으며, (그 필요는) 점점 더 적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 노동사회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노동은 더 이상 사회통합의 기초로 기능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심하게 말하면 사기이다. 고르츠가 보기에 현실적인 정책은 모두가 일하는 양을 줄이게 될 노동의 재분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가 빠졌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자고로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을 얻으려면 지금, 단어의 정의에 입각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 베이스가 갖춰져 있어야만이 가능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1바이올린이 없거나, 관악기가 없거나, 북이 없거나, 트럼펫이 없거나, 그 밖에 다른 악기가 갖춰져 있지 않은 오케스트라는 있습니다. 하지만 베이스가 없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결국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콘트라베이스가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다른 악기들보다 월등하게 중요한 악기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서슴없이 말씀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18)

이 악기는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이렇게 많은 속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음을 끄집어내어 들을 수가 없을 뿐이지요. 음악의 속성상 그렇다는 겁니다. 현악기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우는 더구나 더 그렇지요. 그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마음속에 온 우주를 품고 있는 듯이 자로 잴 수 없을 만큼 넓은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런 속성을 다 밖으로 표출해낼 수는 없지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건 그 정도로 해두고.

현이 네 개면 이렇게 됩니다. - - - .

(26)

콘트라베이스는 인간이 악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이한 악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속성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악기이기도 합니다. 여기 좀 보세요. 저는 여기 우리 집에 사방 벽과 천장과 바닥에 방음판을 다 붙여 놓았습니다. 문은 이중으로 만들었고, 이중문 사이는 비어 있지 않도록 속을 꽉 채워 놓았습니다. 창틀의 틈을 완전히 밀봉시킨 창문에는 특수 이중 유리로 된 유리창을 끼워 놓았습니다.

(51~52)

그럴 때면 저는 이 녀석을 저쪽에 있는 등받이 의자 위에 올려 놓고, 활은 그 옆에다 놓고, 저는 여기 이렇게 안락의자에 앉습니다. 그렇게 해놓은 다음 저는 이것이 아주 볼품이 없는 악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께서도 이것을 한번 봐주시기 바랍니다. 한번 자세히 봐주십시오. 꼭 살이 피둥피둥한 아줌마 같지 않습니까. 엉덩이는 축 처졌고, 허리 부분은 잘록하지도 못한 것이 위쪽으로 지나치게 길게 뽑아 올라져서 도대체가 못마땅합니다. 게다가 가늘고 축 늘어져 곱사등이 같은 어깨 부분 좀 보십시오. 정말 못 말립니다. 이렇게 외모가 엉망으로 보이게 된 원인은 콘트라베이스가 음악 역사상으로 보면 일종의 잡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랫부분은 큰 바이올린과 같고, 윗부분은 커다란 저음 4현금 겜브와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콘트라베이스는 이제까지 발명된 악기 가운데 가장 못생기고, 거칠고, 우아하지 못한 악기입니다. 악기의 돌연변이지요. 종종 저는 이것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톱으로 토막을 내고 싶기도 하고, 잘게 부숴 버리고 싶기도 합니다. 잘게 가루를 내거나, 톱밥처럼 만들어 목재를 가스로 바꾸는 기계에 집어 넣거나….. 아무튼 결판을 내고 싶기도 합니다. 제가 이 악기를 사랑한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녀석은 연주하기도 무척이나 까다롭습니다. 반음을 세 개만 내려고 해도 손가락을 쫙 펴야만 하거든요. 겨우 반음 세 개를 가지고 말입니다.

(67~68)

음악은 사실 어떤 의미로 해석해 보면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했을 겁니다. 정치나 역사와는 반대되는 성격을 띠는 것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음악을 아주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적인 영혼과 정신에 따라 본질적으로 구성된 결정체 말입니다. 그러므로 동양이든 서양이든, 남아프리카이든 스칸디나비아 반도이든, 브라질이든 수용 군도이든지 간에 한결같이 어느 곳에서든 음악은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음악은 형이상학이니까요. 형이상학이라는 말 아시지요. 실제적인 존재 이상 혹은 그 이면, 다시 말하면 시간과 역사와 정치와 빈곤과 부귀와 삶과 죽음 그 이면의 것들을 말하는 겁니다. 일찍이 괴테는 음악은 영원하다라는 말한 바 있습니다. <음악은 지극히 지고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이해력도 그것과 같은 수준에 있을 수가 없고, 그것은 모든 것을 통치하며, 어느 누구도 감히 그것을 말로 설명하려는 용기를 갖기 못할 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 말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

불에 익힌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동물성 단백질 섭취가 훨씬 용이해졌고 이 또한 뇌 발달에 크게 기여합니다. 그런데 더 의미 심장한 변화는 인가니 불을 사용하면서 뇌가 더 커질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2}

덕의 원래 의미는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된 가장 순수하게 정제된 마음의 상태라고 했지요. 그래서 덕은 지식의 대상이 아닐 삶의 향기와 힘을 발산하는 동력으로 회복돼야 합니다. '이 있어야 인간은 지식의 저장고가 아니라 지혜의 발휘자로, 도덕을 연구하는 자가 아니라 도덕을 실천하는 자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에서 일상적으로 민주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겁니다.

(71)

인간이 인간만의 능력으로 건립한 그 길을 바로()’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만의 능력이란 믿음의 힘이 아니라생각하는 힘'을 말해요. 인간은 이제 천명을 따르지 않고 도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이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에게 익숙한 도를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도의 출현은 바로 중국 문명에서 최초로 터져 나온 인간의 독립선언이에요. 도의 출현 이전에 중국인이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개의 중심축은 이었습니다. 도가 출현하고 나자 이제 중국인들은 세계와 관계하고 세계를 해석하며 또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두 개의 중심축을 새롭게 갖게 됐으니 그것이 바로 도와 덕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道德)’은 바로 이 도와 덕을 붙인 말이지요.

(77)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알면, 이는 추하다.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다고 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알면, 이는 좋지 않다.

<중략>

노자는 여기서 특정한 기준을 정하고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집중하고 통일돼야 한다고 보는 공자 식의 문명을 반대할 뿐이에요. 여기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안다(美之爲美)”는 것은 정해진 미, 정의된 미, 이미 공감대가 형성된 미에 동조한다는 것입니다. “좋다고 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안다(善之爲善)”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정해진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공통의 본질적 특성을 기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합의한 아름다움입니다. 그것은 보편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특성에 기반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합의해야 할 것 혹은 동의해야 할 것으로 강요됩니다.

(86)

노자는 이런 연유로 공자와 다른 방식으로 객관성, 투명성, 보편성이 확보된 질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공자는 천명론을 극복하고자 자신만의 도를 건립하면서 인간 세계, 인간의 내면성으로부터 인사이트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주관성이라는 틀을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버렸습니다. 반면 노자는 인간을 완전히 벗어납니다. 우리 밖에 펼쳐진 자연에서 인사이트를 구하지요. 자연에는 주관성이나 가치가 개입되어 있지 않은데, 노자는 이를 천도무친(天道無親)’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자연의 질서에는 더 친하게 여기고 덜 친하게 여기는 구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어떤 주관적 가치도 개입시키지 않고 아주 평등하게 대할 수밖에 없지요. 이런 의미에서 자연 질서는 매우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103~104)

無名 天地之始

무는 이 세계의 시작을 가리키고

有名 萬物之母

유는 모든 만물을 통칭하여 가리킨다.

본질주의적 실체관에 익숙한 우리가 이 구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무는 천지의 시작이댜라고 해놓으면 천지가 에서부터 시작되었다거니 천지가 로부터 발생했다고 이해하기가 쉽지요. 그런데 이는 잘못입니다. 동양 철학을 가까이하려면 한자를 신중하게 다루는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자는 시대마다 의미를 더하거나 변형시켜 진화해왔기 때문입니다.

선진 시대의 철학을 이해하려고 하면서 요즘 나오는 한자사전의 가장 앞에 기록된 뜻만을 가지고 덤비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는 요즘 이해로 보면 당연히 시작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지만, 노자는 라는 개념을 비롯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자가 말하는 비롯됨이란 없는 데사 갑자기 생겨나는 게 아니라 의지해서 같이 가는 겁입니다.

(133)

모차르트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피터 월리가 쓴 <철학가게>에는 다음과 같은 모차르트의 말이 나와 있습니다. “음악은 음표 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 안에 있다.”

(181)

인간 존재의 근거가 이성 대신에 욕망으로 설명되면서 우리의 현대는 시작됩니다. 이성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존재하여 공통의 비율과 공통의 계산력을 사용하지요. 그래서 집단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인간을 욕망의 존재로 이해하면서 인간에게는 점점 물질(육체)이 더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욕망은 집단보다는 개별자에게 더 분명히 확인되죠. 육체성을 통해서 인간은 각자가 됩니다. 그래서 세계는 이제 집단적 통합보다는 개별적 주체들의 자율적 융합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할 것입니다.

현대에서는 세계를 해석할 때 사유보다는 무시되었던 경험이 새롭게 부각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 같습니다. 사유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시대에서 경험이 부각되는 시대로, 정신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던 시대에서 육체 혹은 욕망이 새롭게 조명되는 시대로 이행하는 것이죠. 집단에서 개별로, 보편에서 특수로, 본체에서 현상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194)

해를 해만으로 보거나 달을 달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달을 해와의 관계 속에서, 해를 달과의 관계 속에서 보는 것이지요. 해를 해로 보고, 달을 달로만 보는 것은 해와 달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지요. 분리된 것으로서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을 ()’라고 합니다. 반면 해와 달을 상호 연관 속에서 인식하는 것을 ()’이라고 하는데, 달과 해가 존재적으로 따로따로 분리된 두 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루는 한 벌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죠. 해와 달을 동시에 포착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입니다. 이것이 노자의 통찰입니다.

(205)

도가사상에는 광이불요(光而不耀)’화광동진(和光同塵)’과 같은 표현들도 있습니다. ‘광이불요빛을 발하지만 눈을 부시게 하지는 않음을 의미합니다. 외부의 것들을 제압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절제와 그 절제가 빚어내는 탄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말이지요. ‘화광동진자기 빛을 다른 흙먼지들과 함께 펼쳐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버림을 의미합니다. 빛이 난다 함은 하나의 방향으로 무엇인가가 드러나는 겁니다. 대립면의 긴장을 품은 사람은 하나의 빛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구슬처럼 빛나지 않습니다. 그 대신 돌처럼 소박하지요.

(242)

노자는 <도덕경> 41장에서 대기면성(大器免成)’을 말합니다. 즉 큰 그릇은 특정한 모습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뜻이죠. 큰 그릇은 특정한 모습으로 굳지 않고 그냥 너덜너덜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로 읽어도 됩니다. 그런데 보통은 이 구절을 대기면성으로 읽지 않고, ‘대기만성(大器晩成)’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새기죠. 이런 말도 할 수 없는 말은 아니지만, 적어도 노자의 의도가 반영된 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기면성이라는 구절 앞에는 정말 큰 사각형에는 모서리가 없다(大方無隅)”고 기록되어 있고, 그 뒤에는 정말 큰 음에는 소리가 없고, 정말 큰 형상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구절들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245)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일을 그르치는 지름길입니다. ‘내 아들을 반드시 의사로 만들어야겠다는 부모의 선의(善意)가 탈을 내잖아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치자가 어떤 신념을 고집하는 한, 그 신념으로만 세계를 해석하게 되어 그 신념을 집행하는 것을 진리를 행하는 것으로 자처하게 되어 버립니다. 선의 확신에 빠져버리는 것이죠.

(253)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덜고 또 덜어내면 무위의 지경에 이르는구나.

덜어낸다는 것은 이미 내면에 들어 앉아서 지배력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약화시킨다는 뜻이죠. 즉 그런 것들을 약화시키고 또 약화시키면 무위에 이르게 됩니다. ‘무위란 아무것도 안하는 게 아닙니다. ‘무위란 세계와 관계할 때 기존의 견고한 틀이나 방식에 갇힌 상태가 아님을 뜻해요. 이미 있는 신념, 이념, 가치관을 무시하고 자신이 주인이 돼서 자신이 고유하게 생산한 자신만의 문제의식으로 세계와 직접 관계하는 겁니다. 세계를 볼 때 기준을 갖고 보지 말라는 겁니다. 이론을 가지고 문제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안으로 직접 침투해 들어가는 태도가 무위입니다.

(254)

無爲而無不爲

무위를 실천해봐라, 그러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을 말할 때, 노자의 시선은 절대 무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바로 무위를 지나 무불위에 가서야 멈추지요. 노자의 시선이 닿고 싶어 하는 곳은 바로 무불위의 지경입니다. 노자가 무위를 강조한 이유는 무불위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노자는 현실을 초탈하려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현실적 성취를 매우 중시했던 철학자입니다. 세상 속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간 철학자였죠.

(258)

사람들은 세계와 어깃장 나는 데서 방황합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합니다. 세계의 변화는 사람에 맞추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계는 감정이 없이 그저 변할 뿐입니다. 사람이 세계와 어깃장 나지않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할 일은, 세계가 자신에게 맞추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세계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고정되어 있거나 일정한 틀을 고수하고 있다면, 변화하는 세계에 맞추는 일은 불가능하죠.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세계에 유연하게 맞출 수 있으려면 무위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새로운 사건이 생길 때나 새로운 정책을 결정할 때, 혁신에 성공하는 나라는 항상 새로 전개될 패러다임에 맞는 판단과 결정을 합니다. 반대로 혁신에 실패하는 나라들은 항상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설계하지요. 바로 유위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변합니다. 움직입니다. 누구도 이를 부정할 수 없지요. 우리의 판단, 우리의 행동은 항상 변화하는 세계와 함께해야 합니다.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과 함께하라는 것이 무위가 강조하는 핵심입니다.

(272)

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겪은 여러 시행착오들 때문에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자식에게는 세 가지만 해주면 될 것 같아요. 첫째,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 예뻐 보이질 않습니다. 자식의 꿈과 희망을 존중하고 믿어야 합니다. 둘째, 자식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식이 아닌 자식의 성공이나 출세를 사랑해선 안 됩니다. 성적이 올라가면 더 예뻐하고, 성적이 떨어지면 덜 예뻐진다면 아마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가지고 온 성적표를 사랑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셋째, 기다려줘야 합니다. 간혹 실패하더라도 기다려줘야 해요. 실패를 통하지 않고는 배울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눈앞의 작은 실패들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학습장을 잃게 됩니다. 믿고 사랑하고 기다리기. 다만 진심으로. 여기서 가정의 행복이 나오고 창조적 성휘가 이루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9)

어째서 사람들이 자장면, 스파게티, 낙지볶음같이 맛난 음식들을 제쳐두고 휘발유, 유리, 신문지, 톱밥 따위를 먹고 있는 걸까. 인간은 아니 모든 생물은 자신이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단 한 번에 알아낸다. 그것을 가르시아 효과(Garcia Effect)라고 한다. 그러니까 가르시아 효과에 따르면 한두 번 재미로 톱밥이나 유리를 먹을 수는 있지만 곧 ! 이것은 인간이 차마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 나는 인간이므로 인간의 본분을 지켜야지하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정상적인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인간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식료품을 규정하는 이 세계의 상상력을 전복시키고 일대 충격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믿거나 말거나> 같은 프로그램에 한번 출현해보려고?

(32)

나는 혜성의 충돌, 기상이변, 한 미치광이에 의해 잘못 눌러진 원자폭탄의 발사, 공기전염되는 치명적 바이러스의 출현, 인공지능과 기계문명의 가공할 발전 등등의 이유로 인해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질서 때문에 스스로 종의 역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도대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마친 인류가 이백 년 전에 만들어낸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인간사회의 이곳저곳을 빨아먹고서 이제 인류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괴물로 자라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일까?

(79)

현대인은 아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요. 전기가 발명되고 매머드 도시가 등장한 이후로 현대의 밤은 일종의 교란상태에 빠져 있죠. 게다가 자본주의가 선물한 최고의 유산은 바로 불안이에요. 보험, 증권, 부동산, 주식…… 현대 경제는 불안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알다시피 불안은 숙면의 최고의 적이에요. 그리고 불면은 다시 불안을 만드는 악순환이 진행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내적으로 외적으로 늘 불안한 겁니다. 반대로 원시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영적인 존재였죠. 해가 떠 있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이었고 해가 지고 나서는 꿈을 꾸고 쉬는 시간이었어요. 그러니까 신의 섭리에 따르면 삶의 반은 일하고 나머지 반은 꾸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밤에는 잠만 자자는 얘긴가요?”

(200)

이 우주적 가르침에 따르자면 한 개체가 감지할 수 있는 시간의 사이클이란 언제나 자신의 시간단 하나뿐이다. 우리에게 이해심이 부족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애당초 이해란 걸 할 수가 없다. 번개돌이는 달을, 달은 토끼를, 토끼는 번개돌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더 빨리 늙어가고, 누군가는 더 빨리 배가 고프고, 누군가는 더 빨리 사랑했다가 더 빨리 식어버리고, 또 누군가는 그토록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졌다며 밤새 죽을 듯이 울고 난 다음날 새로운 남자와 또다시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늘 하는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너는 나를 왜 사랑하지 않느냐. 어떻게 사랑이 변하냐. 내가 너희만할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어쩌자고 이따위냐? 같은 말뿐이다.

(201)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삶의 방식 이외에도 아주 많은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리 얼토당토않고 무모해 보여도 그것은 그들이 이 세계를 견디기 위해 나름대로 고안한 필연적인 질서라는 것을 모른다. 모르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우리는 충고를 한다.

이봐, 이제 프리셀은 그만두고 좀더 생산적인 일을 골몰하는 게 어때?”

내가 프리셀을 빼앗아버리면 그는 아마 자살해버릴지도 몰라하고 말하면 사람들은 농담하지 말라는 투로 피식 웃는다. 하지만 정말이다. 프리셀 이외에 이 지루하고 막막한 세계를 견디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는 정말로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릴지도 모른다.

(269)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공포를 혹은 공포의 환상을 물리적인 세계에서 실제로 만난다. 환상 속의 악어는 실제로 사람을 물어죽이고, 삼십 센티미터 높이의 계단에서 떨어지면 온몸이 바스러진다. 그들은 악어를 상상해서는 안 된다. 악어를 상상하면 악어는 곧장 진짜 악어로 바뀌고 그들을 공격한다. 그러면 이제 본격적인 악순환이 시작된다. 환상 속의 악어를 실제로 만난 환자는 더 무섭고 강력한 악어를 상상하게 되고, 그러면 이빨이 더 커지고 몸이 더 부풀어오른 거대한 악어가 그들을 공격한다. 처음에는 살을 할퀴고, 두번째는 발가락을 물어가고, 세번째는 다리 전체를 물어가고, 결국에는 그들을 잡아먹어버린다.

이제 다시 물어보자. 당신은 아직도 침대 밑에 있는 악어가 가짜 악어라고 생각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