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물론 빅토리 위고처럼 하려고 들어가는 글로 1904년에 하이드리히가 태어난 도시 할레에 대해 열 페이지 넘게 묘사할 수도 있다. 아마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그 도시의 거리, 상점, 유적지, 현지 명소, 관청, 사회 기반 시설, 향토 음식, 주민과 그들의 사고방식, 정치 성향, 취향, 여가 생활에 대해 묘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다음에는 하이드리히의 집을 자세히 묘사하겠지. 덧문 색, 커튼 색, 방 배치, 거실 가운데에 놓인 테이블의 재료가 된 나무에 대해 자세히 묘사해야 할 거고.

 

(32-33)

역사소설에서 제일 억지스러운 것은 과거를 그린 죽은 페이지에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이유로 어느 정도 직접 수집한 증언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대사다. 이것은 활사법과 비슷하다. 묘사가 너무 생생해 마치 눈느오 직접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기법이다. 대화를 재구성하면 부자연스러울 수 있고 의도하지 않았던 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인위적인 기교가 너무나 뻔히 보이고 역사적 인물들의 목소리를 가로채어 되살리려는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게 된다.

 

(107)

우리는 일촉즉발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다뉴브 강의 입구에서 흑해로 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중앙유럽과 다뉴브 계곡의 모든 나라들이 베를린에서 불어온 나치의 무력 외교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으로 차례로 끌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미, 오히려 시작일 뿐입니다…..”

잠시 후 처칠은 불멸의 명연설로 마무리한다.

여러분은 전쟁과 불명예 중에 선택해야 했을 때 불명예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는 전쟁만이 남았습니다.”

 

(318)

진실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싫다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글이다.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진실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진실을 가리기 위해 적극 노력하는 천박한 인간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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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글래스는 마지막 남은 설치류의 작은 흉곽을 집어 들었다. 그는 아직도 배고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다음 날은 무리하지 않고 조금 일찍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두 군데에 함정을 파놓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주지 않자 그는 짜증이 났다. 통행이 잦은 그랜드 강 주변에서 아리카라 족과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끝장이었다. ‘그러지 마. 벌써부터 나중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오늘의 목표는 내일 아침일 뿐이라고.’

 

(294)

글래스가 걸음을 멈추고 프랑스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카이오와가 말했다. “당신이 피츠제럴드에게 계획했던 복수를 못했다는 건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게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지진 않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응시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나부끼는 깃발 소리뿐이었다.

이건 당신 생각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카이오와.”

당연히 아니겠죠. 누가 간단하다고 했습니까? 하지만 그거 알아요? 세상 모든 일엔 미진한 부분이 남기 마련입니다. 그냥 주어진 패에 만족하고 흘려버려야죠.”

카이오와가 또다시 제안했다. “나랑 같이 브라조 진지로 갑시다. 나중에 내 파트너가 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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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기후 변화를 부정한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금세 관심을 딴 데로 돌려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혹은 농담으로 넘겨 버리기도 한다. <세계 종말의 조짐이 계속 늘고 있군!>이 역시 외면의 한 방법이다.

기후 변화의 현실을 보고도, 인간은 영리한 동물이니 대기 중의 탄소를 안전하게 흡수하는 기적의 기술이나 태양열을 차단하는 마법과 같은 방법을 발명해 낼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내가 취재 과정에서 확인했던 이 같은 행동 역시 외면의 한 방법이다.

 

(33)

물론 우리는 섭씨 4도나 뜨거워진 세계의 모습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그 모습은 처참할 것이다. 기온이 섭씨 4도나 상승하면 2100년에는 해수면이 1미터, 어쩌면 2미터까지 상승할 것이고 그다음 세기에도 추가적인 해수면 상승이 일어날 것이다. 몰디브와 투발루 같은 몇몇 섬나라들이 물에 잠기고 에콰도르와 브라질, 그리고 미국 북동부와 캘리포니아,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해안 지역 상당 부분이 침수될 것이다. 보스턴, 뉴욕, 로스앤젤레스 광역권, 밴쿠버, 런던, 뭄바이, 홍콩, 상하이 등의 대도시들이 역시 침수 위기에 놓이게 된다.

 

(56)

자연이 말을 하는데 인간이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애석할 따름이다.

-       빅토르 위고

 

(75)

바로 여기에 내가 생각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나는 이 강경한 이데올로그들이 정치 분야에서 행동하는 <온난화주의자들>보다 기후 변화의 중요성을 훨씬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난화주의자들은 여전히 기후 변화 대응이 점진적이며 고통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따라서 화석 연료 기업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와도 전쟁을 치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고수한다. 다음 논의로 넘어가기 전에 내 입장을 분명히 밝혀 두겠다. 세계의 기후 과학자들 중 97퍼센트의 의견에 따르면, 기후 과학과 관련한 허틀랜드의 판단은 완전히 엉터리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들이 정치와 경제에 엄청난 파급력을 미친다는 대목, 그리고 인간의 에너지 소비 형태는 물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유주의 경제의 근본 논리에도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한다는 대목에서는 이들의 판단이 정확하다 .부정론자들은 여러 가지 세부적인 내용을 왜곡하고 있지만(기후 변화론은 공산주의의 음모가 아니다. 곧 다루겠지만, 권위적인 국가 사회주의 체제는 끔찍한 환경 파괴를 자행하며 극단적인 자원 채취 활동을 강행했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 요구되는 변화의 범위와 강도를 돈 문제와 관련시켜 따지는 한, 이들의 판단은 정확하다.

 

(78)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편향이 확인된다. 적극적인 기후 과학자들의 경우 인간이 기후 변화의 주원이라고 보는 비율이 97퍼센트인 반면에, 경제 지질학자들(화석 연료 채취 산업의 상업적 이용을 옹호하는 지질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47퍼센트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진실이 지나치게 높은 정서적, 지적, 금전적 대가를 요구할 때 사람들은 부정론으로 기울기 쉽다. <어떤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 덕분에 봉급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실을 이해시키기란 어렵다> 업튼 싱클레어의 유명한 말이다.

 

(86)

환경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기후 변화가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평형 장치로 기능하면서 모든 사람을 단합시키는 계기가 될 거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기후 변화는 정반대의 기능을 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 사회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양분된다. 결국 부자들은 풍족한 돈을 이용해서 횡포한 날씨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소소한 대비책을 마련해 가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갈수록 재해 대비 능력을 잃어 가는 국가의 처분만 기다려야 할 것이다.

 

(119)

이처럼 급속한 변화가 진행되는 동안, 기후 협상과 무역 협상은 마치 평행선을 그리듯 비슷한 속도로 진행되어 2~3년 사이에 각 분야에서 중요한 협의에 도달했단. 1992년 각국 정부는 리우에서 열린 제1 UN 지구 정상 회의에 참석하여 향후 기후 협상의 토대가 될 <UN 기후 변화 협약 UNFCCC>에 서명했다. 같은 해 북미 자유 무역 협정이 체결되어 2년 뒤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1994년에는 세계 무역을 관장하게 될 기구 설립에 대한 협상이 타결되었고, 그 이듬해 세계 무역 기구가 탄생했다. 1997, 최초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교토 의정서>가 채택되었다. 2001년에는 중국이 세계 무역 기구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1980년대에 시작된 무역 자유화의 흐름은 최고조를 맞았다.

 

(161)

1970년대 초부터 말까지, 세계 전역에서 가뭄과 홍수, 극단적인 기온 변화, 산불, 폭풍 등 656건의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반면에 2000년에서 2010년까지 10년 사이에 자연재해 건수를 무려 다섯 배나 많은 3,654 건으로 급증했다. 30년 사이에 이 정도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다. 단언컨대, 이 모든 재해를 <초래한 원인>은 지구 온난화다. 기후 과학자 마이클 만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후 변화 때문에 특정한 형태의 극단적인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계는 가뭄, 강력한 허리케인, 초강력 태풍, 심각한 고온 현상의 빈번한 발생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닥치리라 예측하고 있다.>

 

(195)

독일 정부는 전국적 규모의 장기 계획을 시행하면서 에너지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업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재생 에너지 발전을 우선시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방식으로), 가격 통제를 실시하며(명백한 시장 개입이다), 잠재적인 재생 에너지 생산자들이 규모에 상관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공정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이탈에도 불구하고(혹은 그 덕분에)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환을 진행하고 있다. 독일 좌파당의 경제 정책 전문가로 에너지 전환에 열정적으로 몰두하고 있는 한스 티에 따르면, <거의 모든 예상치를 뛰어넘는 급격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환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다>.

 

(203)

원자력 발전소 시설은 오히려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과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 사안의 긴박함을 고려하면 원자력 에너지보다 재생 에너지를 늘리는 것이 훨씬 빠르고 경제적이다. 제이콥슨은 이렇게 말한다. <원자력은 결코 탄소 배출로부터 자유로운 에너지가 아니다. 원자력 지지자들이 무슨 말로 현혹하더라도 이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라늄을 채굴하고 운송하고 정련하는 과정,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가 투입된다. 원자력 발전소 한 기를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소요되는 10~19년 동안에는 줄곧 더러운 화석 연료를 생산한 전력이 소모될 것이다. (이에 비해 풍력 발전소 건설에는 일반적으로 2~5년이 소요된다.>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진정한 재생 에너지 시대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원자력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이 빙하와 극지의 만년설은 계속 녹아내릴 것이다. 게다가 지구의 모든 사람 앞에는 더 위험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255)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지구와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들 앞에서 스스로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계의 주인 혹은 운전자가 아니라 이 세계를 구성하는 취약한 일부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면 상당한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 문명적 도전의 깊이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호주 정치학자 클리브 해밀턴이 말했듯이, 기후 변화와 관련한 이런 진실에 대면하게 되면 <인간과 지구 사이에 권력 관계가 우리가 지난 3백 년 동안 생각해 온 것과는 정반대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69)

환경 운동이 이처럼 정치적 소심함을 보이는 이유는 앞서 논의한 주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강력하고 매력적인 자유 시장 논리가 환경 보호 운동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그 지적인 생명력을 깔아뭉갰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과학계가 도출해 낸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강한 고집 역시, 인간이 지구의 손아귀에 있는 게 아니라 지구가 인간의 손아귀에 있다는 문화적 담론의 위력을 키워 준다. 바로 이 담론 때문에 우리는 상황이 아무리 악화된다 해도 최후의 순간 우리를 구해 줄 동아줄(시장과 억만장자 사업자와 천재적인 과학자가 동시에 활약하는 최고의 조합)이 나타나리라 확신하고, 그걸 기대하면서 화석 연료를 찾아 점점 더 깊은 곳까지 지구를 파헤치는 것이다.

 

(367)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성층권에 에어로졸을 주입하는 방안을 일단 시작하면, 중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만에 하나 중단했다가는 일종의 차양막을 쳐서 인위적으로 억제해 놓았던 온도 상승 효과가 한꺼번에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와, 인간이 점진적으로 적응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강렬한 햇빛이 지표면을 습격할 것이다. 동화에 나오는 마녀 이야기를 떠올려 보라. 부당한 방법으로 얻은 마법의 묘약을 마시면서 젊음을 유지하던 마녀가 묘약의 공급이 끊기는 순간 젊을 잃고 쭈그렁 할머니로 변하는 꼴이다.

 

(407)

환경주의 저술가 케네스 브라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이 우리를 구할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지금의 세대는 이 망상에 의지해 다음 세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모든 자원을 제멋대로 탕진하고 있다. 이런 생각은 문명 세계로 하여금 환경 재앙을 향한 확고부동한 행진을 계속하도록 만드는 안정제다. 이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을 가로막는다. 현실적인 해결책은 인간 행동은 변화시키는 힘겨운 활동 속에 있다.> 게다가 그러한 망상은 한술 더 떠서 <만에 하나 지구 공학이 실패하더라도 옮겨 갈 곳이 있다>며 우리를 안심시킨다.

 

(492)

공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 보자. 세계 보건 기구 WHO는 위험한 대기 오염 물질 초미세 미립자의 안전 기준을 평방미터당 25마이크로그램 이하로 정하고, 3백 마이크로그램을 초과하면 위험 수준이라고 경고한다. 2014 1월 베이징의 발암 물질 농도가 671 마이크로그램을 기록했다. 흔히 구할 수 있는 마스크로는 호흡기 질환이나 8세 미만 아이들의 폐암 발생을 예방할 수 없다. 한편 상하이는 대기 중 미립자 농도가 평방미터당 450 마이크로그램을 넘어서는 경우 자동적으로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휴업에 들어가고 연주회와 축구 경기 등 대규모 옥외 집회가 취소되도록 비상조치를 도입했다. (베이징에는 이런 제한 조치가 마련되지 않았다.) 공산당 고위 공무원이었다가 지금은 은퇴한 첸 지핑은 2013 3월 대기 오염이 중국의 사회 불안을 조성한다는 점을 시인했다.

 

(540)

하지만 지구 상에서 손꼽힐 만큼 가난하고 각종 권리를 체계적으로 박탈당해 온 사람들에게 기후 변화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구원자가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우리는, 정작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원주민들이 힘들게 따낸 권리를 이용하기만 하고 그들에게 아무런 보답을 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관계 역시 또 다른 착취가 아닐까? 탄소 상쇄 제도와 관련한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환경>을 명목으로 내세운 새로운 관계가 결국은 예전의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는 대단히 많다.

 

(614)

인간이 개입하지 않으면 다양한 식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뒤섞여 자라나며, 다년생 식물이 생명을 이어 가듯 해마다 자신이 종자를 퍼뜨리고 뿌리를 더욱 깊게 뻗는다. 다양한 식물들이 뒤섞인 채 원래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토양은 건강과 안전성, 비옥함을 유지한다. 식물의 뿌리가 토양을 굳건하게 잡아 주기 때문에 식물이 뿌리내린 토양은 그렇지 않은 토양보다 빗물을 훨씬 더딘 속도로 안전하게 흡수하고, 섞여 자라는 서로 다른 식물들이 서로 다른 기능을 통해 토양의 산출력을 강화할 뿐 아니라(콩과 식물과 토끼풀 같은 일부 식물들은 생장에 필수적인 질소 유지 기능이 탁월하다), 해충과 침입성 잡초를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619)

실로 인간은 놀라운 회복력을 가진 존재, 어떤 역경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역경을 헤치고 살아갈 능력과 아드레날린이라는 소중한 선물,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기회라는 호사를 허용하는 수많은 생물학적 중복성을 타고났다. 지구의 바다나 대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존과 번성이 동의어가 아니듯, 생존과 행복 역시 동의어가 아니다. 앞서 보았듯이, 수많은 종들에게 생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양분을 공급받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생태계에 관용의 사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관용이 무한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절히 주의하고 관리하면 우리는 놀라울 만큼 유연하게 구부러지고 펴진다. 그러나 고장이 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도, 우리를 지탱하는 사회와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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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153)

홍범도는 봉오동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뒤인 1920 7월 주민 환영식에서 부하들에게 당부했다. 그의 동포애와 무인의 풍모를 살피게 한다.

나는 국권회복에 뜻을 둔 지 이미 10년의 세월이 지났으며, 공연히 독립의 의군을 일으켜서 한족의 독립을 절규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그간 고국의 산천을 떠나서 타국의 산천에 유리곤빙하여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 동포로부터 금곡의 의연을 받은 것이 참으로 심대한 바 있다. 이제 만일 우리들의 소지(素志)가 좌절되거나 일본 내지 세계 각국의 조소의 대상이 되면 반드시 이것이 우리들의 마음으로부터의 고통스러운 바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의군을 위하여 금곡을 제공하고 자기의 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동포는 우리들에 대하여 독립의 미명을 빙자한 강도단이라고 하여 우리를 버릴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천지에 몸을 둘 곳이 없기에 이를 것은 불을 보는 것처럼 분명한 일이다. 우리들 독립의군의 일단(一團)은 일의 성,불성을 논하지 않고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소지 관철에 분투함으로써 한족 독립을 최후까지 힘을 다하여 외쳐, 죽은 후에야 그쳐야 한다는 것을 항상 부하에게 훈시하고 있다.”

 

(184)

장세윤 박사는 청산리 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가 아닌 홍범도라는 주장을 편다.

 

홍범도 부대는 김좌진 부대와 같이 청산리 전쟁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어떤 면에서 청산리 독립전쟁의 주역은 북로군정서 부대가 아니라 오히려 홍범도와 그를 중심으로 한 여러 독립군 부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로군정서 군대가 독립군의 단위부대로서는 가장 큰 규모이며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추고 있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군과의 전투 직전에 수백 리에 이르는 길을 강행군하여 이동하였고 도착 직후는 심한 식량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홍범도 부대는 9월 하순 가장 먼저 청산리 일대에 도착하여 훈련과 식량조달 등 적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청산리 전쟁의 ‘3주역이라 할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각기 다른 행보를 걷다가 청산리에서 연합군 지휘자의 위치에서 일제와 싸워 대첩을 이루었다.

 

(283-284)

다음은 카자흐스칸 크즐오르다 시 문서보관서에 소장되어 있는 홍범도 관계문서철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직업 : 혁명가

이 사람에 대해서는 독자를 사로잡는 책을 쓸 수도 있고(실제로 이런 글이 <레닌기치>에 나오고 있음), 훌륭한 전기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즉 이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말하게 하자는 것과 독자들로 하여금 빨치산의 대열에 들어 있는 사람이라는 짧은 구절의 이면에 깔려 있는 의미를 스스로 되새기게 하자는 것이다.

첫째로 명기할 사항은 직업:직업적 혁명가라는 사실이다. 이 사람은 그와 같이 긴장, 걱정, 궁핍 그리고 위험으로 가득 찬 생을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삶은 노동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을 남김없이 불사르겠다는 위대한 목표와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고 증오할 줄 아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홍범도의 자서전과 그에 대한 조회사항들에서 발췌한 것을 다음과 같이 공개한다. 이 서류들의 원본은 러시아 사회주의연방(원동) 국립중앙문서보관소와 톰스크에 보관되어 있다.

 

붉은 전위대 및 붉은 빨치산 조회서 제05606

성명 : 홍범도

난해, , : 1868 8 27

민족 및 출생지 : 조선 사람, 조선 평양

사회 신분 : 무산 농민

교육 : 일반, 군사, 전문-독학

직업 : (전문) 혁명가

연금 생활 시작 연도 : 1929

당 가입 및 당증번호 : BKll(6)no No,57842(소련공산당(볼세비크) /베제 578492)

가족 사항:부인, 리인복 60

1919-1920년 사이 빨치산 부대에 소속되어 있었음

1921-1922년 사이 위와 같음

포상 회수 및 내용 : 무기 및 돈. 1922년 모스크바에서 금화 100루블 포상 받음

일반 교육 및 정치 교육을 받기 위해 다년 학교 : 정치 학교

서명 : 홍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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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럼에도 선거제도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선거로만 대표자를 뽑아서 의회를 운영하는 제도만으로는 옳게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이 아니고, 갈수록 많은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근년에 들어 세계적으로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생각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 숙의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형태가 바로 시민의회인 거죠. 그러나 당분간은 선거제도와 추첨제가 같이 가야 되지 않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국회를 없앨 수는 없잖아요. 현재의 국회가 무슨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너무나 뿌리가 깊으니까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은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부터 혁파해서 비례대표제를, 최소한 독일 수준 정도까지라도 확대하는 게 긴급한 과제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시민의회에 대해서도 생각을 계속하면서 그 실현 방안을 열심히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27)

저는 우선 지역정당이 우리나라에서 허용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지금 5개 지역에서 1,000명씩 당원을 모집해야 (전국)정당 설립이 가능한데, 이런 정당 설립 요건을 완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역정당을 허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역의 풀뿌리 조직에서 정치에 도전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지겠죠. 시민들이 참여하고 의견을 상시적으로 계속 올릴 수 있는 단위들을 강화해야 될 것 같아요. 지역정당을 허용한다는 건 이중 당적도 허용한다는 거죠. 지역적으로는 어느 당, 전국적으로는 어느 당, 이렇게 이중 당적도 가능해야 됩니다. 그럼 여성주의든 동물권이든 이슈별로 다양한 정당이 만들어질 수 있고, 선거 때도 이런 정당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할 수 있겠죠. 이런 정치생태계가 가능하도록 선거법과 정당법을 바꾸기 위해서 저는 시민의회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55)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의 실천이 단 한 가지 절차에 매달리는 일은 별로 없었고, 오로지 선거에 집착하는 근대적 관행은 역사적으로 볼 때 예외적인 것이다. 베르나르 마냉은 근대혁명들과 더불어 정치의 장에서 제비뽑기가 왜 사라졌는지, 의문을 최초로 제기하였다. 그의 대답은 두 개의 관찰에 근거했다. 첫째, 근대 공화국의 창설자들은 선출된 귀족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원했다. 따라서 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민주주의적 방법이라고 말한 무작위 선출 방식을 거부한 것이다. 둘째, 자연법사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동의의 이론이 너무나 광범하게 퍼져 있어서 공식적으로 시민들에 의해 승인을 받지 않은 정치적 권위는 어떤 것이라도 정당성을 갖는 게 어려워 보였다는 점이다.

 

(61)

불편부당성

네 번째, 광범한 역사적 경험에 토대를 둔 무작위 선정 미니-퍼블릭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는 그 불편부당성이다.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 전문가들, 조직화된 이해관계자들은 특정한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강한 경향성을 갖고 있다. 그와 반대로, 무작위 선정 방법은 옹호해야 할 어떠한 이해관계도 갖지 않은 비당파적 인물들을 고르게 포함하고 있고, 그들은 토의 및 숙의 절차에 의해서 공공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판단을 내리도록 장려된다. 이 점은 환경문제나 미래세대의 삶의 조건을 보전하는 문제를 포함한 장기적인 현안들을 다룰 때 특히 높은 가치를 갖는다.

 

(81)

그렇다면 최근 우리가 경험한 말이 안되는 것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째서 말이 안되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이 안되는 것들의 실체는 국가-재벌 복합체라는, 일종의 중독시스템이다.

중독시스템이란 무엇인가? A.섀프의 <중독사회>에 따르면, 중독시스템이란 중독행위를 조장하면서도 또 그에 의존해 지탱되는 폐쇄적 체계로, 그 작동방식은 각종 중독 과정과 구조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중독행위들이다. 쉽게 말하면, 전체 사회시스템이 마치 마약중독자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정점에 국가-재벌 복합체가 있고, 그 주변에 국회, 사법, 행정, 검찰, 언론, 대학 등이 동반 중독자로 아첨, 순종을 하며 예스맨이 된다. 이 패턴은 사회 전 영역에서 재현된다. 직장, 학교, 가정, 심지어 종교기관이나 시민사회단체들도 중독과정 속에 움직인다. 독선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리더(또는 보스)가 돈중독, 권력중독에 빠져 속물적으로 움직이며 갈수록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추구한다. 리더는 물론 구성원들도 모든 걸 통제 가능하다고 믿고 만물을 이분법으로 보며, 만사가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 지향적으로 움직인다. 구성원 대부분은 일중독과 소비중독, 관계 중독에 빠져 있으며, 애국심과 애사심, 부단한 경제성장을 절대시한다.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면 부인으로 일관하고, 오히려 그를 제거하거나 금세 순치해 그 수족으로 만들어버린다.

 

(96)

이는 1920 1 8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도산 선생의 임시정부 첫 신년사에서부터 언급된, 제법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황제가 없소? 그렇지 않소. 대한나라의 과거에는 황제는 1인밖에 없었으나 금일은 2,000만 국민이 모두 황제요, 제군 모두가 황제요. 황제란 무엇이요? 주권자를 이름이니, 과거의 주권자는 유일했으나 지금은 제군이 모두 주권자외다. 주권자가 유일했을 때는 국가의 흥망은 1인에 달려 있었으나 지금은 국민 전체에 있소. 정부의 직원은 노복이니 이는 정말 노복이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나 다 제군의 노복이외다. 그러므로 군주인 국민은 그 노복을 선하게 인도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고 노복인 정부직원은 군주인 국민을 섬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오.”

 

(141)

소련에 속지말고/미국놈 믿지말고/되놈은 되나오고/일본은 일어나니/조선사람 조심하세.”

100여 년 전 조선반도에서 불렸던 동요다. 유럽에서 17세기 베스트팔렌조약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근대적 주권국가 개념이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요원하다 국가와 민족은 분단되어, 남쪽은 주권을 스스로 반납하며 그 대가로 강대국 전략경쟁 불바다에 섶을 지고 뛰어들고 있고, 북쪽은 주권을 과잉 행사하며 강대국의 전략경쟁에 빌미를 주고 있다 한반도에서 새로운 백 년은 근대적 주권 개념을 21세기에 맞게 구현하는 지혜를 요구한다. 그런 지혜야말로 21세기를 다른 백 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출발점은 100여 년 전 불렀던 동요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194-195)

이들 중에서 정약용이 누구보다 사랑했던 제자는 황상이었다. 황상은 아명이 산석(山石)이고 호는 치원(巵園)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된 이듬해인 1802 2월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황상이 그가 머물고 있던 주막으로 찾아오면서 시작되었다. 황상의 성품을 단박에 알아본 정약용은 황상이 양반이 아니어서 과거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시를 짓도록 권면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그에게 주었다.

- 내가 산석(황상)에게 문사(文史)를 닦도록 권하니 그는 머뭇거리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 둔하고, 둘째 막혀 있고, 셋째 미욱합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공부하는 자에게는 세 가지 큰 병통이 있는데 너에게는 하나도 없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는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 짓는 재주가 좋은 것으로 이는 부화(浮華)란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것으로 이는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다. 대저 둔하지만 집요하게 뚫어내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질 것이고, 막혔지만 잘 소통시키는 사람은 흐름이 거세질 것이며, 미욱하지만 잘 갈고 닦는 사람은 빛이 날 것이다. 뚫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은 무엇인가. 근면함이다. 근면함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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