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나는 1941년 봄에 태어났다. 2차 대전의 발발로 유럽은 이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고 미국이 곧 참전하려고 할 때였다. 세계는 뿔뿔이 갈라졌고 대혼란이 새로 태어나는 모든 방문자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그 무렵 태어났거나 그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구세계가 가고 신세계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시계가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바뀌는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은 둘 중의 어느 한 편이었다. 히틀러, 처칠, 무솔리니, 스탈린, 루스벨트-세계가 다시는 볼 수 없는 뛰어난 인물들이고 자신의 결단에 의지하는 사람들로서, 잘했든 못했든 그들 모두는 칭찬과 부와 사랑에 냉담하고, 혼자 행동을 준비하고, 인류의 운명을 주재하고,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알렉산더, 줄리어스 시저, 징기스칸, 샤를르마뉴, 그리고 나폴레옹으로 이어지는 그들은 고상한 향연을 준비하는 것처럼 세상을 개척했다. 가르마를 가운데 탔거나 바이킹 모자를 썼거나 부인될 수 없는 사람들이었고, 미개한 야만인들이 우르르 지구를 가로지르며 생각나는 대로 지도를 만들었다고 평가될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61)

내 자신의 노래를 쓰겠다는 생각이 언제 떠올랐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포크송 가사와 공통점이 있거나 가깝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낼 수 없었다. 나는 세상에 대해 느낀 것을 정의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었다. 누구라도 점차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느 날 잠에서 깨어 노래를 써야겠다고 결심하지는 않는다. 자기 곡을 많이 가진 가수이고 매일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도록 뭔가를 변화시키는 기회가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이 변화의 시작일 수 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기를 원하면서 안개 자욱한 커튼 뒤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보고 싶어 한다. 사람들이 노래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맞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삶보다 위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어 한다. 자신에게 일어났고 자신이 보았던 이상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해야 하고 고유의 언어로 나타내야 한다. 옛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마음이 앞서서 뛴다. 사물에 대해 생각할 때도 비슷한 패턴을 볼 수 있다. 나는 노래를 좋다’ ‘나쁘다로 보지 않고 오직 종류가 다른 좋은 노래들로 보았다.

 

(72)

가끔 상황이 변해야 하고, 변하고 있는 것을 안다. 샘 쿡의 노래 <변하게 될 거야(Change is gonna come)>처럼 느끼기만 할 뿐 깊이 있게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사소한 일들이 변화를 미리 암시하지만 깨닫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서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본능적으로 자유로운 것을 이해한다. 질문할 필요가 없이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마법처럼 빠르게 일어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둔한 굉음이 사라지고 그 순간이 온 것처럼, 눈이 활짝 열려서 갑자기 뭔가를 확신한 것이 아니다. 늘 낮에 일을 하던 사람이 어느날 해가 일찍 지고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과, 늦도록 일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사적으로 아는 일이다. 누군가 문을 확 열고 당신을 밀어 넣으면 당신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 가끔 특별한 사람이 그것을 깨닫게 한다.

 

(116)

뉴욕시는 춥고 모호하고 불가사의한 세계의 수도였다. 7번가에 월트 휘트먼이 살면서 작업하던 건물이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그가 참된 영혼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계속 출판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떠올렸다. 3번가에 있는 포우의 집 밖에서도 잠시 서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뉴욕은 사람의 이름이나 모습이 새겨지지 않은 블록이 없었고, 그것을 편견 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항상 새롭고, 항상 변하고 있었다. 길 위에 사람들도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167)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고 다차원으로 돌아왔다. 나도 놀랄 지경이었다. 몸이 약간 흔들렸지만 즉시 높이 날고 있었다. 이 새로운 일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어났다. 에너지의 차이가 감지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뿐이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에너지는 수많은 각도로부터 왔고,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새로운 능력을 가졌고 그것은 모든 다른 인간의 필요조건을 능가하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그것도 얻었을 것이다. 새로운 연주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30년 이상 공연을 해왔지만 그 단계에 가 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나를 새로 만들었어야 했다.

 

(169)

나는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바닥은 아니었다. 계획하는 일에 진전된 것은 없었고, 그것을 예상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장르를 전적으로 나 자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육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모든 실린더가 순조롭게 작동하고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반드시 모든 실린더가 순조롭게 작동하고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반드시 새로운 청중이 필요했다. 당시 나의 청중은 내 음반을 좋아하기에는 다소 나이를 먹었고, 나를 새로운 가수로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은 전성기를 지나 있었고, 그 반응은 습관적이었다. 그들은 공연을 보러 왔지만, 참여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불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를 발견해야 하는 청중은 어제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는 청중들이었다. 내 명성은 대단했으므로 축구 경기장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색다른 졸업장을 가지고는 아무 대학에도 들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프로모터들 역시 나와 접촉하려고 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종종 불을 켜고 달려들었으며 화를 내지도 않았다.

 

(179)

노래는 꿈과 같고 우리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이상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열차의 침대칸이나 보트 위, 혹은 말 잔등 위, 어디서나 쓸 수 있다.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끔 훌륭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전혀 노래를 쓰지 않는데 그것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노래들에서, 어쨌든 외부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두를 나처럼 침울하게 만들었다 가끔 보고 듣는 것들이 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236)

우리는 삶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면서 상황을 적절하게 만들어야 한다. 음반의 목소리는 끊임없이 슬퍼하는 순교자의 목소리가 되지 말아야 했다. 나는 고집을 포기했을 때 일이 되기 시작했다. 그의 많은 감정적인 실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우리는 무슨 친척이나 되는 것 같은 감정을 느꼈다. 앞으로 올 많은 날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노래는 패배가 아니라 영광을 위해 씌어진 것이지만 이 곡들을 모두 합계를 내는 것이 내 인생의 전체 비전에 근접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아하는 일과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도 처음 듣거나 보았을 때,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곡들 중에 몇 곡이 그랬다. 나는 모든 일을 단순하고 충분하다고 가정한다.

 

(311)

포크뮤직 무대는 아담이 에덴동산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내가 떠나야 하는 파라다이스라고 말할 수 있었다. 떠나는 것이 최상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폭풍우가 몰아쳤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여권운동과 징집영장 혹은 민권운동 같은 문제들이 폭발했고 사람들은 이 문제들을 헤쳐 나가기를 꿈꾸었다. 국민적인 정신이 변했고 여러 면에서 조지 로메로 감독의 공포영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을 닮아 있었다. 길 바깥은 위험했고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몰랐지만 나는 아무튼 그 길을 따라갔다. 앞에는 번개를 가진 검은 구름이 잔뜩 낀 이상한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오해하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으나 나는 곧장 그리로 갔고 그 안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세계는 신이 주관하지도 않았지만 악마가 주관하는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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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똑똑히 봐.”

간신히 목숨을 건진 나는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그로부터 몇 분쯤 지나 아버지는 좀더 멋진 바다였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린 후 내게로 시선을 돌려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덜컥 겁이 났다. 눈빛이 굉장히 심각했다. 권투선수 시절에 오른쪽 눈꼬리에 새겨진 5센티미터 정도의 흉터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내가 우후, 하고 웃어 어떻게든 분위기를 누그러뜨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버지가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저 넓은 세계를 봐그 다음은 네가 정해.”

오로지 그 말뿐이었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 다음 미련 없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해변을 벗어났다.

 

(65)

아버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나는 주춤거리다가 왼팔을 쭉 뻗은 채 왼쪽으로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내가 다시 아버지와 마주하게 되자 아버지는 말했다.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너는 그런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늙은이같이.”

아버지는 싱긋 미소지은 후 말했다.

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 텐데.”

 

(85)

넌 맨날 소설만 읽는구나.”

나는 소설의 힘을 믿지 않았다. 소설은 그저 재미있기만 할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책을 펼치고 덮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 도구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정일이는 늘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 묵묵히 소설을 읽는 인간은 집회에 모인 백 명의 인간에 필적하는 힘을 갖고 있어.”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소리였다.

그런 인간이 늘어나면 세상은 좀 더 좋아질 거야.”

정일이는 그렇게 말을 이으며 다정하게 미소를 띤다. 그러면 나는 왠지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8)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보다 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구.”

 

(232)

아버지는 멍한 시선으로 앞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죽어버린 삼촌을 생각했다. 일본에서 북조선까지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이면 갈 수 있을까? 두 시간? 세 시간? 나는 비슷한 시간에 한국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북조선에는 갈 수가 없다. 뭐가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깊은 바다가? 넓은 하늘이? 인간이다. 돼지 같은 놈들이 대지 위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자기 영역을 주장하면서 나를 몰아내고 삼촌을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믿을 수 있겠는가?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세계가 놀랄 만큼 좁아진 이 시대에 불과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장소에 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북조선 땅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으스대다 썩어갈 놈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261)

상관없어. 너희들이 나를 재일이라고 부르든 말든, 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불러. 너희들, 내가 무섭지? 어떻게든 분류를 하고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안심이 안 되지? 하지만 나는 인정 못해. 나는 말이지, ‘사자하고 비슷해. 사자는 자기를 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지. 너희들이 멋대로 이름을 붙여놓고 사자에 대해서는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을 뿐이야. 그렇다고 흥에 겨워서 이름 불러가며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봐. 너희들의 경동맥에 달겨들어 콱 깨물어 죽일 테니까. 알아, 너희들이 우리를 재일이라고 부르는 한, 언제든 물려죽어야 하는 쪽이라구. 분하지 않냐구. 내 말해두는데,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갈 거야. 이 나라에 그런 게 없으면, 너희들이 바라는 바대로 이 나라를 떠날 것이고, 너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지? 너희들은 국가니 토지니 직함이니 인습이니 전통이니 문화니, 그런 것들에 평생을 얽매여 살다가 죽는 거야. 제길. 나는 처음부터 그런 것 갖고 있지 않으니까 어디든 갈 수 있어. 언제든 갈 수 있다구. 분하지? 안 분해……? 빌어먹을,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지. 빌어먹을,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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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기차가 떠났다니 <기차는 8시에 떠나네>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이 노래는 몇 해 전 텔레비전 연속극의 주제음악으로 쓰인 후 널리 알려졌고, 애절한 가사와 가락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아련한 파문이 일게 했지요. 가사를 우리말로 번안해서 어느 가수가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배경을 하는 학생 있나요? 이 노래는 그리스의 테오도라키스의 작품인데 그는 민주화되기 전인 1960년대 그리스 독재 정권에 저항하던 음악가입니다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기차가 떠나도록 오지 않는 연인, 아마도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연인을 기다리던 여인의 애달픈 마음을 그린 노래인데 사실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라 오지 않는 연인은 민주화 운동가를 상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 음악의 상징이던 김민기 선배, 그리고 그의 노래 <아침이슬>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김민기를 아는 학생은 있나요? 최근에 독일의 문화훈장이라 할 영예로운 괴테메달을 받았지요. 우리나라 전체의 명예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15)

특히 1863년에 집필한 <20세기의 파리>라는 작품은 그(쥘 베른)가 출판을 꺼려서 잊혔다가 1989년에 발견되어서 흥미를 끌었습니다. 집필 수 무려 131, 그가 타계한 지 89년이 지나서야 출간되었는데 자동차, 고층건물, 고속열차, 복사기, 인터넷을 연상하는 통신망 등이 등장할 뿐 아니라 대기오염, 인간의 소외 등과 함께 과연 물질문명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적 시각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53)

이처럼 물질을 뜨겁게 하면 빛을 냅니다. 물질이 에너지가 높아지니까 빛이란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때 빛이 완전히 파동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거동이 있습니다. 여기서 자세히 논의할 수는 없지만 파길이별로 내비치는 빛의 세기를 맞출 수 없고 빛의 전체 에너지가 무한히 커지게 되는 따위의 문제가 생깁니다. 플랑크는 빛의 파동이 아니라 알갱이처럼 에너지를 지닌다고 생각해서 이러한 문제를 멋지게 해결했고, 이에 따라 양자역학의 창시자라 인정을 받게 됩니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빛전자 효과(광전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쇠붙이에 빛을 쬐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말하는데, 쇠붙이에 묶여 있던 전자가 빛을 받으면 에너지가 높아지니까 묶임을 끊고 도망 나오는 겁니다. 그것을 빛전자라고 하는데 나오는 거동을 보면 빛을 파동이라고 생각하면 설명할 수 없는 성질이 있습니다.

 

(322)

먼저 혼돈이론, 더 일반적으로는 비선형동역학의 성격부터 다시 강조하지요. 상대성이론은 시공간 개념을 수정했고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이라는 방법을 바꿨습니다. 각각 기존의 서술 기반이나 양식을 대체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정확한 의미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돈은 고전역학의 기반이나 양식 따위를 대체한 것이 아니라 고전역학 자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어요. 자연을 기술할 때 그동안 전제하고 있던 생각, 곧 자연현상은 결정론적이고 예측할 수 있다는 믿음이 타당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말하자면 양자역학처럼 고전역학 자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역학 안에서 기존의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거지요. 이에 따라 물리학 내부에서 보면 혼돈이론은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만큼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는지의 문제도 논란이 있어요. 물론 결정론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전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지만 패러다임이라는 측면에서 명백하다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352)

통계역학이란 많은 구성원들로 이뤄진 뭇알갱이계를 거시적 관점에서 다루는 이론 체계입니다. 이러한 뭇알갱이계로서 다양한 고체와 액체 등 응집물질, 특히 생명현상을 보이는 생체계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결국 정보와 엔트로피에 결부되어 있지요. 따라서 통계역학은 바로 엔트로피와 정보를 다루는 물리학의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소개한 모든 것이 정보라는 말처럼 21세기에는 자연을 해석하는 데에서 정보와 엔트로피가 핵심적 구실을 하리라 여겨지며, 통계역학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정보기술, 나노기술, 생물기술 등 현대 기술은 대부분 통계역학과 양자역학이 바탕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354)

일상에서 흔히 에너지 위기라고 말하는데 에너지란 없어지지 않으므로 에너지가 부족하다’, ‘에너지가 비싸다등의 말은 엄밀하게는 옳지 않은 표현입니다. 문제는 에너지가 아니라 엔트로피입니다. 에너지를 사용하면 엔트로피가 증가합니다. 에너지 자체를 소비해 버리는 것이 아니고 쓰기 좋은 형태에서 쓰기 나쁜 형태로 바꾸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엔트로피를 증가시키지요. 다시 말하면 전체의 전보를 일부 잃어버리는 셈입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하는 목적도 정보를 얻으려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여러분의 엔트로피는 줄어들지만 환경의 엔트로피는 늘어날 겁니다. 아무튼 이러한 정보와 엔트로피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499)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원자력이란 말을 넣어서 원자력발전, 원자력문화재단 등으로 부르지요. 가만히 보니까 좋게 보이려는 건 원자력이라고 하고, 뭔가 나쁜 얘기를 하려면 핵이라는 말을 씁니다. 농담 같지만 정부와 언론, 모두 그런 것 같습니다. 예컨대 북한이 핵 개발을 한다고 말하지 원자력을 개발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똑 같은 건데 느낌이 다르지요.뭔가 나쁜 느낌을 주려 할 때 핵이라고 하는 듯합니다. 핵 발전소가 아니라 원자력발전소인데 나쁜핵폐기물이 나오면 안 되겠지요. 그렇다고 원자력 폐기물이라 하면 원자력도 나쁘고 위험한 것으로 들리니 방사성폐기물이란 말이 적당하겠네요. 이런 것을 보면 현대사회에서 기술의 문제가 많은 경우에 정치적 문제와도 깊이 연결됨을 할 수 있습니다.

 

(514)

우리 일상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발전하면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훨씬 빠르게 처리해 주니까 효율이 높아져서 우리의 삶이 더 편해지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반대에 가깝습니다. 나도 직접 느끼고 있는데 교수도 컴퓨터가 발전할수록 점점 살기 힘들어집니다. 옛날이라면 이 정도 하면 되는 일인데 컴퓨터 때문에 훨씬 많인 해야 합니다. 더 해야 하는 일을 컴퓨터가 알아서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만큼 컴퓨터를 작동해야 하므로, 실제로 노동 강도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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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특히 우리 사회에는 극도의 실용주의가 만연해서 과학의 존재 이유가 실용성이라고 왜곡되어 있어 안타까운데, 이는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기본 교양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과 현대사회의 발전에는 과학적 사고, 곧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와 함께 자유로운 상상력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문학과 과학, 예술, 사회와 삶 등에 대한 폭넓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대학에서뿐 아니라 고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이른바 문과, 이과를 구분하는 교육제도는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5)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는 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산업화, 이들과 사회와의 밀접한 상호작용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아니면 파멸의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인은 막중한 시대적 사명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서 과학에 대한 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과학의 올바른 활용을 위해서 과학은 사회 전체의 공유물이 되어야 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과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과학 지식이 아니라 편협한 실증주의를 넘어서서 진정한 합리주의로서의 과학적 사고를 뜻하는 것이며 최근 우리 사회를 볼 때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27)

이와 관련해서 자연과학은 사실 공학보다 인문학에 더 가까운 편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현실적으로 과학이 공학, 기술과 깊은 관련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문학, 철학, 예술 등 인문학과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학의 단과대학 편재에 문리과대학이 있지요. 실제로 널리 알려진 외국 대학의 경우 대부분 문리과대학이 대학의 중심을 이루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에서는 문리과대학을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으로 나눴지요. 우리나라 대학 중에는 심지어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을 묶어서 이공대학을 만든 곳도 꽤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이는 학문의 본질에 비춰 볼 때 타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30)

물론 교양이 없어도 생물학적삶을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연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이해가 없이는 현대인과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없고 주체적 삶을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양이란 단순한 치장이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소양이고 능력입니다. 특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미래를 건설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32)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들은 렙톤과 하드론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원래 렙톤은 가벼운 알갱이이고 하드론은 무거운 알갱이라는 뜻이지만, 렙톤이라고 반드시 가벼운 건 아니지요. 렙톤은 6가지 종류가 있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전자와 중성미자가 있습니다. 하드론에 속하는 것으로는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다양한 야릇한 입자들이 있습니다.

 

(44~45)

과학에서는 이렇게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여러 지식들을 묶어서 하나의 체계로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물리학에서 가장 두드러지며, 이 때문에 물리학은 다른 자연과학과 구분되지요. 물리학은 바로 보편지식 체계를 추구하는 학문이고, 다른 자연과학은 대부분 특정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생물학이나 천문학, 지구과학 등 특정지식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은 현상과학이라고 불리는 반면, 보편지식을 추구하는 물리학은 이론과학이라고 합니다. 요즘 생겨난 천체물리, 화학물리, 지구물리, 생물물리 같은 것들은 각 과학 분야에 특정지식들을 보편적 체계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56)

물리학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더 보편적인 이론 체계라는 것도 아름다움의 범주로 생각할 수 있지요. 특히 자연현상을 해석할 때 대칭이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자연현상은 기본적으로 물질이라는 실체가 일으킨다고 상정했지요. 물질은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있고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여러 가지 자연현상을 일으킨다고 전제합니다. 다양한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원들 양성자, 중성자, 전자 등 을 기본입자라고 하는데 그런 기본입자에도 놀라운 대칭성이 있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도 놀라운 대칭성이 있다고 지적했지요.

 

(68)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과학적 사고라든가 과학적 구조라든가 하는 것들은 자연과학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학이 과학의 전형으로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자연과학의 정의에서 자연사회로 바꾸면 사회과학이 되고, 따라서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학문도 과학이라고 지칭하지요.

 

(92)

앞에서 강조했듯이 과학자도 인간이고 과학은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에, 사회의 여러가지 관념 체계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사성이 없을 수는 없겠네요. 그러나 반대 면도 있습니다. 자연과학은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자연이라는 아주 강력한 구속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현상의 관측을 통해서 적어도 어림이라는 일관성, 일치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강력한 구속 조건입니다. 그것이 자연과학이 다른 분야와 완전히 다른 특별한 형식을 갖게 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결국 두 가지 면이 다 있습니다. 강력한 구속 조건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한 가질 결정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거기에 사회적 요소가 개입할 여기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할 텐데 그회가 되면 얘기하지요.

 

(96)

따라서 물질을 이루는 여러 단계를 생각할 수 있는데, 그중 어느 단계의 구성단위를 다루는지에 따라 물리학을 분류합니다. 양성자, 중성자, 전자 따위의 기본입자, 곧 렙톤, 하드론, 쿼크, 게이지입자 따위를 다루는 분야를 입자물리라고 합니다. 그런 기본입자들이 모여 원자핵을 형성하지요. 원자핵의 구조라든가 상호작용을 다루는 분야는 핵물리학이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에 원자핵과 전자가 함께 원자를 만들고 원자가 몇 개 모여서 분자를 형성하는데, 이러한 원자나 분자를 다루는 분야가 원자분자물리지요. 그리고 이런 원자나 분자가 엄청나게 많이 모여야 비로소 우리가 시각이나 촉각, 미국 등 감각기관으로 경험하는 물질이 됩니다. 그런 물질을 응집물질이라고 부르고, 이를 다루는 분야를 응집물질물리라고 합니다.

 

(122)

제대로 된 의미에서 근대화가 늦어지고 어쩌면 거의 불가능해진 것이 식민지에서 기인했는데 그걸 거꾸로 식민지가 근대화를 촉진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글쎄요, 어떻게 판단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아마도 친일이 친미로 이어지면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대를 이어가며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근대화란 무엇인지, 개발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지 정확히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자연과학의 의미부터 완전히 오도하고 왜곡하고 있어요.

 

(154)

양자역학은 작은 세계, 일반상대록은 거대한 세계에 적용되니까 서로 배치되고 따라서 합쳐야 하는 경우가 없을 것 같네요. 그러나 일반상대론은 중력을 기술하는 이론이므로, 작지만 중력이 중요한 세계를 기술하려면 양자역학과 일반상태론을 합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게이지입자로서 중력알이나 검정구멍이 대표적 경우인데 양자중력이라 부르는 이러한 이론 체계는 아직 만들지 못했습니다.

 

(185)

그러면 자동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이라는 것이 나오게 됩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주는 여러 가지 결과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해 있을 때보다 길이가 짧아지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됩니다. 또한 질량은 늘어나서 무거워지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질량이 에너지와 같다는 결론이 얻어지지요. 이게 바로 핵에너지의 원리입니다. 핵폭탄이나 핵 발전이 다 여기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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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쓸데없는 말>은 알베르의 삶을 이루는 한 축이다. 살아오면서 열정에 휩싸여 바보 같은 일에 뛰어든 게 모두 몇 번이나 될까? 그 답은 어렵지 않다. 좀 더 충분히 생각해 볼걸, 뒤늦게 후회할 때마다 그랬다. 보통 알베르는 그의 후한 마음과 순간의 실수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긴 하지만, 그의 성급한 약속은 비교적 사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것이다.

 

(287)

어린 루이즈는 마스크들로 에두라르의 시름을 잊게 해주었다. 또 알베르만큼이나 부지런해 개미처럼 지방지들을 모아다가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의 나아진 기분, 아직은 너무 미약하여 드러내기를 삼가는 이 나아진 기분은 바로 이 신문들, 아니 이 신문들이 떠오르게 한 어떤 생각들 덕분이었다. 하루하루 지남에 따라 아주 깊은 곳에서 흥분이 솟아오르는 게 느껴졌고, 생각하면 할수록 이 흥분이 어린 시절 캐리커처나 변장이나 말썽 같은 못된 짓을 준비할 때 느끼던 그 희열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소년기의 그 환호작약하고도 폭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없었지만, 그의 뱃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돌아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는 머릿속으로도 감히 이 <기쁨>이라는 단어를 선뜻 발음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순간적이고 신중하고 간헐적인 기쁨이었다. 그가 조각조각 떠오른 생각들을 대략 올바른 순서로 정리하는 데 성공했을 때, 정말 믿을 수 없게도 그는 현재의 에두아르를 잊어버리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에두아르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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