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

대체로 독일 작가의 작품은 어렵게 느껴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긴 하지만 그럼에도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소설 10여권, 에세이, 시집까지 꽤 많은 책을 읽었다. 토마스 만의 작품은 처음 20대때 <마의 산>을 보다 바로 포기!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는 거다. 그래서 빠르게 포기했었는데 다른 작품이라도 읽어볼걸 하는 후회가 좀 든다.
얼마 전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에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죽음>을 번역하는 내용이 나오는거다. 그래서 다시 읽어볼 용기가 생겼다. 익숙한 지명들이 나와서 더 반갑다^^
슈바빙(헤세의고향), 트리에스테, 베네치아와 그곳의 궁전과 탄식의 다리, 잊을 수 없는 곤돌라...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과 사랑을 그린 공통점을 지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가 수록된 책이다.

이렇게 잘 읽히다니... 처음 몇 장이 문제였나
역시 다 때가 무르익어야 책도 읽히는 것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그때 마침엔진이 다시 쿵쿵거리기 시작하면서 그감정에 깊이 침잠하는 걸 막아주었다. 목적지 가까이에서 멈췄던 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 산 마르코 운하를 지났다.
그래서 아센바흐는 그 감탄스러운 선착장을 다시 보았다.
배를 타고 다가가는 사람들의 경외심 어린 눈길에 공화국이 보여주는 환상적인 건축물의 눈부신 조합이 다시 들어왔다. 산뜻하고 수려한 궁전, 탄식의 다리, 사자와 성인의 조각상이 있는 물가의 석주들, 동화 속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사원의 화려하게 튀어나온 옆면, 성문에 이르는 길과 거대한 시계. 아센바흐는 이러한 광경들을 둘러보며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역에 도착하는 것은 뒷문으로 궁궐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 P39

처음으로 베네치아의 곤돌라를 타보거나 오랜만에 곤돌라에 오르면서 가벼운 전율, 은밀한 두려움과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발라드가 유행하던 시대부터 변함없이 전해 내려온 그 기묘한 탈것은 특이하게 까만색이었다. 모든 사물 중에서 오로지 관만이 그처럼 까만색이다.
까만 곤돌라는 물결이 찰랑이는 밤에 소리 없이 범죄를 저지르는 모험을 연상시킨다. 아니, 그보다는 죽음 자체, 관대(棺臺)와 음울한 장례, 침묵의 마지막 항해를 더욱 연상시킨다.
그러한 작은 배의 좌석, 관처럼 검은색 래커를 칠하고 흐릿한검은색 천을 입힌 팔걸이의자가 이 세상 그 어느 좌석보다도부드럽고 사치스럽고 푹신하다는 걸 사람들이 알까? 아센바흐는 곤돌라 사공의 발치에 앉아 그걸 깨달았다. 그의 짐은맞은편 뱃머리 쪽에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곤돌라 사공들은여전히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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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몇 개월 전부터 유럽 대륙에 위협적인 징후를 드러낸 19XX년의 어느 봄날 오후, 구스타프 아센바흐 또는 50세 생일 이래 공식적으로 구스타프 폰 아센바흐라 불리는 작가는 뮌헨의 프린츠레겐텐 거리에 있는 집을 나와 홀로 상당히 멀리까지 산책했다. 그는 오전 내내 극도의 주의력과 통찰력,
예리하고 정확한 의지를 요구하는 까다롭고 위험한 작업에 몰두한 탓에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 P9

-제 3장

 바로 옆에서 폴란드말이 들렸다.
아직 성인이라 할 수 없는 청소년들 몇 명이 가정교사인지안내원인지 모를 사람의 인솔 아래 등나무 테이블 주변에 모여 있었다.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 사이의 소녀 세 명과 열네 살가량의 긴 머리 소년 한 명이었다.
 아센바흐는 완벽하게 잘생긴 소년의 모습에 감탄했다. 우아하게 내성적이고 창백한 얼굴이 벌꿀빛의 머리카락에 에워싸여 있었다. 오뚝한코, 사랑스러운 입, 기품 있으면서도 더없이 아름답고 진지한표정은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켰다. 한 - P49

없이 순수하게 완벽한 모습은 유일무이하게 개성적인 매력을 발산해 자연에서도 조각 예술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성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남매들을 보살피고옷을 입히는 관점이 명백히 대립되는 게 눈에 띄었다. 세 여자아이 중 맏이는 이미 어른이 다 된 것 같았는데, 다들 하나같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옷차림이 근엄하고 정숙했다. 소녀들은 수녀복처럼 아무런 장식 없이 밋밋하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청색 옷을 입고 있었다. 일부러 몸에 맞지 않게 재단한 듯 싶었으며 흰 옷깃만이 유일하게 밝은색이었다. 이런 복장은 어떤 식으로든 몸매에 대한 호감을 일깨우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방해했다. 머리에 매끄럽게 꼭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얼굴을 더욱 수녀처럼 공허하고 무표정하게 보이도록 했다. 어머니가 소녀들을 그런 식으로 꾸민 게 분명했다. 그런데 소녀들에게는 바람직하다고 여긴 듯한 교육적인 엄격함을 소년에게는 적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정다감한 애정만이 소년의 존재를 결정지은 게 분명해 보였다. 감히 소년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에 가위를 댈 엄두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 P50

소년은 유리문을 지나 식당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조용히누나들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걸음을 내딛는 상체의 자세, 무릎의 움직임, 흰색 구두를 신은 발의 동작이 무척 우아하고 경쾌했으며 유연하면서도 당당했다.
 테이블로 가는 길에 두번 고개를 돌려 홀 안을 둘러보고는 어린애답게 수줍어하며눈을 치켜떴다가 내리뜨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다. 소년은 부드럽게 녹아드는 말투로 나지막이 한마디 웅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 아셴바흐의 시선에 소년의 옆얼굴이 정확히 보였고, 아셴바흐는 진실로 신적인 인간의 아름다움에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깜짝 놀랐다. 그날 소년은 블라우스 스타일의 흰색과 파란색 줄무늬 상의를 입고 있었다.  - P56

좋아, 좋아! 이따금 예술가가 빼어난 걸작 앞에서 열광과 황홀함을 표현하듯 아센바흐 역시 전문가답게 냉정하게 인정했다. 그리고 계속 생각을 이어갔다. 이곳에서 나를 기다린 건 분명 바다와 해변이 아니었어. 네가 이곳에 있는 한 나도 여기있겠어! 하지만 아셴바흐는 종업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을 가로질러 넓은 테라스를 내려갔다. 그리고 곧장 잔교를 건너 호텔 손님들을 위한 전용 해변으로 향했다.  - P57

소년은 바다와 직각을 이루는 오두막들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이좋게 즐기는 러시아인 가족을 보자마자 짜증스러운 경멸의 먹구름이 소년의 얼굴을 뒤덮었다. 이마가 침울하게 흐려지고 입이 삐쭉 올라가고 분노로 입술이 일그러지면서 볼까지 이지러졌다. 눈썹이 심하게 주름지는 바람에 눈이 움푹 들어간 듯 보이고, 그 아래에서 증오의 표현이 심술궂고 음울하게 뿜어져 나왔다. 소년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한 번 더 위협적으로 뒤돌아보고는 격렬하게 뿌리치듯 어깨를 돌려 적들을 등졌다.
일종의 배려하는 마음에서였는지 아니면 깜짝 놀라서였는지는 몰라도 존중심과 수치심 같은 것이 아셴바흐로 하여금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 P60

 "타지우! 타지우!" 소년은 해변으로 돌아왔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물살을 가르며 달려왔다. 저항하는 물을 두 발로 첨벙첨벙 내젓자 거품이 일었다. 남성이 되려는 문턱에 있는 사랑스러우면서도 냉담하고 생기 넘치는 형체가 곱슬머리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가녀린 신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 깊은 하늘과 바닷속에서 나타났다. 자연으 - P63

로부터 솟아나서 자연을 벗어났다. 그 광경은 신비적인 상상을 일깨웠다. 형식이 생겨나고 신들이 탄생한 태초의 시학과도 같았다. 아셴바흐는 눈을 감은 채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그 노래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여기가 참 좋아서 여기 머물러야겠다고 재차 마음먹었다. - P64

 아셴바흐는 소년을 쳐다보지 않고 책을 몇 쪽 읽었지만, 소년이 거기 누워 있으며 고개만 살짝 오른쪽으로 돌리면 그 경탄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걸 거의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마치 휴식을 취하는 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거기 앉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일에 열중하면서도 거기 오른쪽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고귀한 인간의 형상에 줄곧 주의를 기울였다. 스스로를 희생하며 정신 속에서 아름다움을 낳는 사람이 아름다움을 소유한 자에게 느끼는 감동적인 애정, 아버지처럼 자애로운 애정이 아셴바흐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뭉클하게 했다. - P64

 오래 걸을수록 바다 공기가 시로코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혐오스러운 상태가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상태는 아셴바흐를 흥분시키는 동시에 지치게 만들었다. 곤혹스럽게도 땀이 줄줄 흘렀다. 눈이 침침해지고 가슴이 답답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피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아셴바흐는 북적거리는 상가 골목을 피해 다리를 건너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는 걸인들이 괴로울 정도로 달라붙었으며, 운하의 역겨운 냄새가 숨 막혔다.
베네치아의 안쪽에는 사람들에게 잊혀서 마법에 걸린 듯한분위기의 장소들이 있다. 그런 곳들 가운데 하나인 조용한 광장에 이르러 아셴바흐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깨달았다. - P66

체류지를 한 번 더 옮기는 의미를 살리려면 즉각 움직여야 했다. 아센바흐는 체류지를 옮기기로 결정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가까운 곤돌라 선착장에서 곤돌라를 타고 미로처럼 엉킨 칙칙한 운하를 따라갔다. 사자 조각상이 양쪽에서 엄호하는 운치 있는 대리석 발코니 아래를 통과하고, 미끌미끌한 성벽 모퉁이를 돌고, 슬퍼하는 듯한 궁전의정면을 지났다. 궁전 정면은 산 마르코로 이어졌으며,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물에 커다란 회사의 간판들을 비추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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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장소 - 프랑스 현대문학의 거장 아니 에르노와의 인터뷰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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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진정한 장소는 글쓰기이다. 34 년간 살고있는 세르지의 서재에서 글을 쓴다는 그녀. 작가의 말로 작품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왜‘에 대해 듣고 나니 내가 아직 읽지 않은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어떤 작품이라도 읽을 수 있을 듯함! <얼어붙은 여자>부터 읽어야지. 궁금증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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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바꿔나가기 위한 멋진 출발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마르크스의 평생의 신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만 중요한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혁명가들에 대해서도 중요한 말을 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에 혁명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자기 자신부터 혁명해야 한다고 말이다. 마르크스는 교조주의자들, 강경론자들, 피퍼나 스탈린 같은 사람들, 인민위원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치료제를 주기도 했다.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
세계를 바꿔 나가기 위한 출발로는 멋진 생각 아닌가.

*원래는 테렌티우스(Tereentius, 195~59 B.C.)라는 아프리카 노예 출신의 극작가가 한 말이다.
"호모 숨: 후마니 닐 아 메 알리에눔 푸토."(Homo Sum : humani nil a me alienum puto) 전체를 해석하면,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마르크스는 이 말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 P98

기독교도와 마르크스주의자의 대화에 관해서 그동안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런 대화가 의미가 있으려면, 신과 마르크스는 죽었지만 요사리안은 살아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자, 이제는 ‘신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진의는 이것이었다‘ 같은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왜냐하면 우리가 논쟁하는 동안에도 세계는 돌아가고 있고, 우리가 책을 출판하는 동안 다른 이들은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너무도 많은 살육 임무를수행했는데도 우리를 다시 그 일에 내몰고 있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힘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Yossarian.《캐치-22》의 주인공. ‘피아노사‘라는 가상의 섬에서 근무하는 미 공군 대위다. 전쟁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못해, 군대에서 빠져나오려고 갖가지 방법으로 정신이상자 행세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괴짜이거나 미치광이들이다.

*Catch-22. 미국의 작가 조지프 헬러(Joseph Heller)가 196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미 육군 항공대 소속 조종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풍자가 가득한 이 소설은 반전 소설의 걸작으로 꼽힌다. - P104

마르크스주의 의미에서, 유물론적 접근법은 요구를 하기보다는 제안을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의 행위와 생각에 모두 영향을 끼치려면, 그 행 - P102

위와 생각 뒤에 가려진 상황적 조건을 찾아봐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의미에서, 변증법적 접근법은 상황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우리의 평가 자체가 그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우리가 두 눈과 두뇌에 한계가 있는 피조물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거나 지각한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사건의 표면 밑에는 서로 경쟁하는 경향이 흐르고있다. - P103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했던 말 중 가장 유용한 것은 그 사회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언급이다. 즉, 마르크스는 생산이 전 세계적인 사회적 과정이 될 만큼 복잡해져 합리성이 요구되는 시대인데도, 우리의 체제는 놀랍도록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 체제가 불합리한 이유는 무엇을 생산하고 무엇을 생산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인간의 필요가 아니라 기업의 수익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해에 7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어 현재와 미래의 시체들을 생산하는 데, 어마어마한 경제적 · 군사적·정치적 · 심리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 P114

 우리는 한 해에만 대략 200억 달러를 홍보,광고, 판촉에 쓴다. 우리는 너무 많은 차, 너무 많은 고속도로, 너무 많은 사무용 빌딩을 짓고, 너무 많은 담배, 너무 많은 술, 너무 많은 가전제품을 생산한다. 

그런데 집, 학교, 병원은 충분히 세우지 않는다. 기업의 세후 소득 총액은 한 해에 4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 액수는 한 해에 3000달러를 버는 모든 가구의 소득을 7000달러로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액수다. 신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학 범주에 관한 이론적 토론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얼마나 낭비적이고 불합리하며 부당한지를 미국인들에게 명확히 알려 줄 방법이다. - P114

 군사 전투에서 게릴라전은 압도적으로 집중화된 군사력에 맞서기 위해 생겨났다. 아마도 우리에게는 대중사회에 알맞은 정치적 게릴라 전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전술을 통해 진부한 삶의 방식을 뚫고 이곳저곳에 자유의 영토를 만들어,
그곳을 저항의 중심지이자 본보기로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급진주의가 가장 철저히 생각하고 실행해야 하는 것은 이런 조직화, 압박, 변화, 공동체 건설의 기술이다. 새로운 종류의 혁명을 수행하려면 활력과 재치의독창적인 조합이 필요하다. - P117

행동이란 면밀히 계획하고 숙고의 숙고를 거듭한 끝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하기를 원하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만을 위한 여지도 남겨 둬야 한다. 너무도 쉽게 무력감을 느끼는 시대에는 실존주의가 그랬듯이 행동할 자유를 강조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실존주의자들이 자유와 결정론을 놓고 벌인 논쟁은 공허할(즉, 학술적일)뿐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나 오늘날의 억압적인 환경에 무지해서 자유를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옥죄는 이런 압력뿐 아니라 주변 장애물들과 벌일 전투에는 이미 정해진 것이 별로 없음을 실존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행동하기 전까지, 우리는 결코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저항이 심각할지 그렇지 않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의 행동에 대 - P117

한 반발이 클지 작을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행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가 어떤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의 행동이 우리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못 바꿀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중요하다. 그런 변화는 조금씩 누적될 테고, 또 다른 수많은 행동이 더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폭발하지 않을까? - P118

자유에 대한 실존주의적 강조 말고도, 우리는 책임에 대해 말해야 한다. 자유를 느끼는 만큼, 우리는 책임도 느껴야 한다. 우리 시대에는 자유뿐 아니라 책임까지도 못 느끼게 만드는 것들이 존재한다. 지금 시대의 삶은 너무나 복잡하다. 게다가 분업에 따라 기나긴 일괄 조립라인 앞에 서 있다 보면, 어느새 불행이 다가와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너무나 뒤엉켜 있어서 추적하기가 불가능하다. 모든 이에게 책임이 있고, 동시에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로움을 느끼고자 한다면, 반드시 책임도 느껴야 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해서 말이다. 과거나 어떤 보장도 없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서 있는 현재에 대해서 말이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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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3-14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진 신조네요^^

은하수 2023-03-14 14:13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저도 이 말 넘 멋져서 기억하고 싶더군요.
연결의 세상이니까요^^
 

아이디어는 사물의 확실함을 가진 강렬한 추억에서 나오고, 돌처럼 그것들이 느껴져야 비로소 글로 분출이 된다는 것. 그래서 늘 구체적인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 경험한 것만 쓸 수 있다는 것.

글을 쓰면서 느끼는 강력한 감각, 진짜 삶, 탐구의 시간, 있어야만 할 장소, 이르러야 할 완벽한 상태. 이런 감각은 대체 어떤 것일까? 너무 궁금해!

[세월]을 다시 읽는다면 이젠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책 읽기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다.~~



MP.:『남자의 자리』 그리고 당신의 다음 작품들이놀라운 점은, 늘 구체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거예요.
A.E : 20년 전에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제는 추상적인 것, 물질적인 형태가 없는 것들은 문제가 있어 보여요. 추상적인 것이 구체적인 이미지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죠. 저는 저를아이디어로 이끄는 내면화된 시각적인 이미지, 또 현실의 이미지만을 가지고 글을 쓰거든요. 아이디어, 아이디어는 먼저가 아니죠. 그것은 나중이에요. 예를 들 - P88

자면 아이디어는 정말 사물의 확실함을 가진 강렬한 추억에서 나와요. 추억은 사물이에요. 단어도 사물이죠. 돌처럼 그것들이 느껴져야 해요. 어느 순간이 되면 페이지에서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야 하고요. 만약 그 상태가 되지 못한다면 저에게 이 단어와 문장이라는 물질은 적합하지 않은 것, 근거가 없는 것이 되죠. 이 모든 것은 상상의 세계에 속해 있어요. 물론 글에서의 상상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고요. 저는 글을 쓴다는 것이 강바닥에 있는 돌을 꺼내는 일과 같다고 생각해요.
바로 그거죠. - P89

M.P. :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당신은 프루스트와 비슷한 건가요?
AE. : 네, "진짜 인생, 마침내 드러난 밝혀진 인생, 실제 경험의 결과로 나온 유일한 인생은 바로 문학이다" 라는 프루스트의 문장은 저에게 자명한 이치죠.
 드러난, 밝혀진 인생, 이 표현이 중요한데, 사람들이 이 문장을인용하면서 자주 잊더라고요. 문학은 인생이 아니에요. 문학은 인생의 불투명함을 밝히는 것이거나 혹은 밝혀야만 하는 것이죠. - P103

철학자 클레망 로세는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지 마세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저의 내면을 보는 것 같진 않아요. 기억 속을 들여다보죠. 이 기억 속에서 사람들을 보고, 길을 봐요. 말을 듣고, 이 모든 것들은 저의 외부에 있죠. 저는 카메라일 뿐이에요. 그저 녹화를 하는 거죠.
글쓰기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 기록되었던 것들을 찾으러 가는 데 있어요. 텍스트를 쓰는 거죠. 그러나 가끔 언제 어떻게 글이 끝이 났으며, 언제 어떻게 써진 것인지 스스로 물을 때가 있어요. - P109

M.P. :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으세요?
A.E. : 저는 머릿속에 글에 대한 계획이 없으면, 혹은 계획이 너무 모호하면 진짜 삶을 살지 못해요. 탐구의 시간이라고 하지만 진짜 삶은 아니죠. 진짜 삶은 제가 책 안에 있을 때, 그것을 끝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예요. 그때는 정말 사는 것 같아요. 잘 사는 것 같죠. 잘산다는 것은 머릿속에 늘 책을 생각하면서 사는 거예요. - P110

 모든 게 책과 연관되어 있죠. 책을 쓰는 것과 현실 세계와의 지속적인 관계요. 사실상 저에게는 그 둘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이, 글을 쓰기 위한 기다림이죠.
[세월』같은 책은 문자 그대로 저를 사로잡았어요.
그러니까 몇 년 동안 글에 갇혀 버렸죠. 그렇지만 제약의 느낌은 전혀 아니었어요. 오히려 반대로 이 영향력이 강력한 감각을 나오게 했죠. 제가 있어야만 하는 장소에 있었던 거예요. 책이 끝나지 않는 한 항상 바꾸고 고칠 것이 있으며, 이르러야 할 일종의 완벽한 상태가 있어요. 그것에 이르는 것이 숙제이죠. 이 숙제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요? 저도 몰라요. - P111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죠. 그것은 하나의 상태예요. 의식의 상태, 이전처럼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특별한 상태이죠. 가끔은 스스로에게 물어요. 내가 전에는 어땠었지? 이 의무감이, 이 욕망이 없었을 때는? 그런데 그게 언제일까요? 스무살 때부터 이 욕망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 욕망을 죽인 적도 있었죠. 『얼어붙은 여자』를 쓰고 난 후처럼, 더는 글을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이제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아요. 어쩌면 그게 더 나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 P117

움직이게 하는 것, 다르게 보게 만드는 것은 형식이죠. 이전의 형식, 미리 설정된 형식으로는 다르게 볼 수없어요.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는 공산주의에 영향을 받은 현실주의 문학이 있었죠 - 예를 들자면 앙드레스틸 - 전혀 멋을 부리지 않은,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스스로 금지한 문학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에 프루스트는, 샤르댕에 관하여 엘스티르처럼",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단념할 때만
그것을 다시 만들 수 있다"고 썼죠. 우리는 우리가 존경하는 작가들과 다르게 써야만 해요. - P137

이제는 같은 구멍을 파고 있는 느낌이에요. 제 책들은 모두 다르지만 하나로 모스는 무엇인가가 있죠. 그것들을 모으는 것이 무엇인지, 제 책들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제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책에 대해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언젠가 프라하에서 열린 컨퍼런스가 끝날 때 즈음에 저를 초대했던 문화 고문관의 발언에 놀란 적이 있어요. 그는 "그녀는 자신의 책에 대해 전혀 말할 줄 모르는 군요"라고 말했죠.
분명 그의 말이 옳았을 거예요.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이 저에게는 어려워요. 특히 호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더어렵죠.

 글쓰기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조금 더 잘할 수 있어요. 만약 누군가가 저를 최후의 참호로 몬다면, 그래도 스스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느끼는 곳은 역시 거기이니까. 저만의 진정한 장소이죠.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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