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가옥 오리지널 8.
천선란의 장편소설 《밤에 찾아오는 구원자》
어제 읽었던 범유진 작가의 《아홉수 가위》는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였군!


수연

"뱀파이어야."

이 미친 여자의 말을 듣게 된 경위를 따지려면 아침으로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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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장미 -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
리베카 솔닛 지음, 최애리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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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6년 봄,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을 몇 달에 걸쳐 천천히 다 읽었다.  다 읽고 이 책의 목차를 훑어보며 다시 천천히 음미를 해봐도 끝까지 읽기를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조지 오웰이라는 한 작가와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를 알아가는 그 시간들이 참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거 같단 것이 내 솔직한 감정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으면서도 장미를 심었다는 그 작가가 대체 누구지? 했을 정도로 난 오웰에 대해 백지와 같이 무지했었다. 책 제목이 오웰의 장미였는데도 말이다. 이 책을 몇 달에 걸쳐 읽는 동안 리베카 솔닛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오웰의 글을, 작고 짧은 글을 통해서나마 알게 되면서(<책 대 담배>를 읽었고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되었던 건 사실이다.  조지 오웰의 글을 읽지 않고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제대로 된 독서가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된다. 그러니 조지 오웰의 책을 읽고 다시 이 책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지만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낸 것에 아주 행복~~~



  조지 오웰이 위기의 시대에 장미를 심은 일로부터 시작된 글은 지하의 진흙과 얼음, 셰일의 층을 지나 영국의 석탄산업과 기후 위기로 발전하고, 거짓으로 점철된 러시아 혁명을 지나고 ㅡ장미 예찬론자였던 사진 작가 티나 모도티는 장미를 버리고 러시아 혁명에 뛰어들었지만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ㅡ 레몬의 북방 한계선을 높이려는 거짓된 스탈린의 레몬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면서 그것이 식민지 시대의 노예 착취와 조지 오웰 가계의 노예 농장에 기반한 부의 축적과 전체주의에 대한 오웰의 작품 활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빵과 장미로 표상되는 남아메리카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 그리고 다시 미국의 장미 산업을 떠받치는 콜롬비아의 대규모 장미 공장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주제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장미의 삶이 얼마나 큰 위선과 비윤리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럴지언정... 그래서 더욱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장미를 위한 삶을 한순간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오웰이 그랬던 것처럼...



  장미는 즐거움과 여가와 자기 결정권, 내적인 삶, 물량화할 수 없는 것 등을 나타내지만, 장미를 위한 투쟁에는 때로 노동자를 압살하려는 고용주나 상사뿐 아니라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폄하하는 다른 좌익 분파들과의 싸움도 포함된다.  좌익에는 즐거움의 추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당하는데, 그리고 어딘가에는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기 마련인데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것은 비정하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청교도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은 자신의 엄격함이나 기쁨 없는 삶의 태도로 민중에게 감명을 줄 수 있을지언정 그들의 해방에 실제적으로 기여하지는 못할 것이다.(127, 장미예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이 지상에서의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오웰이 했던 말을 지키는 것, 그리고 옥타비아 버틀러가 한 말ㅡ "가능성들을 알아보고자 앞을 내다보고 경고하려 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희망의 행위이다."ㅡ들은 아직 우리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집 손바닥 정원에 지난 주 장미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돌 사이 적은 흙에 심은 나무이지만 여름에 꽃을 피울 수 있을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시간,  돌 사이사이 작년 겨울에 말라 죽은 꽃잔디를 솎아내고 다시 꽃잔디를 심고,  휑하기만 한 울타리에 덩굴장미 몇 주 가져다 심어놓고 기다리는 시간이 나에게는 오웰의 장미와 같은 시간이 아닐런지... 시간이 지나 그 꽃들이 만발하여 보기에 흡족하다면 우리집을 지나가는 이웃들도 즐겁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위기를 지나가는 방법이다. 리베카 솔닛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의 시간에 책을 썼다지만 나에겐 그런 재주는 없으니까 오늘도 난 나의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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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수 가위 안전가옥 쇼-트 10
범유진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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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는 순간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는 장점. 거기다 4편의 단편이 현실의 어두운 단면을 반영하고 있지만 그것이 나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괴이한 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시원하게 해결이 된다는 점이 아주 맘에 든다. 그래서 별 4개. 최고는 표제작인 ‘아홉수 가위‘가 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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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에서 빌런을 만났습니다.

식물도감이 배달되어온 날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열 살이었고, 식탁에 앉아 완두콩을 까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깐 완두콩 한 알을 집어 살피더니휙 집어 던졌다.
"사람들이 참 양심이 없어. 겉만 그럴싸하지 안은 다 썩었네."
엄마는 신경질을 내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는눈치를 보다가 거실로 갔다. 식물도감이 택배 박스안에 든 채 방치되어 있었다. 내가 1년을 졸라도 사주지 않던 것을, 동생이 가지고 싶다고 하자마자 집에 들였다. 나는 도감 중 한 권을 집어 들어 펼쳤다.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 이파리를 쫙벌리고 있는 작은 식물, 파리지옥이었다.  - P7

-아주 작은 날갯짓을 너에게 줄게

날개를 묶는다. 매일 아침 나와 동생은 서로의 날개를 묶어 준다. 깃털 끝에 강력 테이프를 붙여 등에 접착하고 그 위에 보호대를 차면 준비 완료다.
어릴 때부터 해온 일이지만 보호대 안에 날개를 밀어 넣을 때의 답답함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보호대 때문에 등에 살찐 것처럼 보여."

이지는 몸에 딱 붙은 교복 상의를 잡아당기며 투덜거렸다. 이지의 날개는 내 것보다 약간 더 크다.
깃털도 더 풍성해서, 보호대를 차면 거의 티가 나지않는 나와는 달리 동생의 등은 약간 불룩해진다. 날개를 묶을 때마다 나와 동생 중 누구 한 명이 힘을이어받게 된다면 이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힘을 담기에 내 날개는 너무 작다.

힘. 날개를 가진 두 사람 중 한 명만이 힘을 이어받는다. - P39

-아홉수 가위

아홉수다. 아홉수인 해에는 재수가 없다는 말을한 번도 믿은 적 없지만, 그런 셈 치고 싶다. 그렇지않으면 스물아홉 살 생일에, 술도 마시지 않은 맨정신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앉아 있을 리가 없다. 뭐가 문제일까. 나는 침대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벽에 설치된 행거를 바라봤다. 빨래건조대 겸 옷걸이로 쓰는 흰색의 길쭉한 봉에는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 P67

-어둑시니 이끄는 밤

지금보다는 조금 옛날에 말이야. 한 소년이 있었어. 소년은 세상이 온통 새까맣던 날 태어났어. 그렇게까지 예쁘고 완벽한 깜장은 존재하지 않을 것같은 밤이었지. 그 밤에 잠들어 있던 어둠은 소년의울음소리에 깨어났어. 소년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어둠은 소년이 나쁜 것을 보지 못하게 해 주겠노라 마음먹었어. 그래서 소년의 밤을 어둠으로 감쌌지. 예쁘고도 완벽한 깜장을 선물해 주려고 그러니깐 어둠을 무서워하지 마. 소년이 어둠을 무서워하면, 그 마음이 어둠 안의 귀신을 불러낼지도 몰라.
힘내. 한 발자국만 더 걷자. - P103

그런데 네가 어둠 안에서 처음 길을 잃었던 날 말이야. 밤 10시가 되도록 집을 못 찾아왔던 그날, 처음으로 어둠이 무섭더라. 어둠이 내 동생을 삼켜 버리면 어쩌나 싶어서.

희재야. 너도 알게 될 거야. 너를 해치는 어둠도있지만 보호해 주는 어둠도 있다는 걸. 그걸 구분할수 있어야 해. 무서워서 도망만 치면 구분할 수 없게 되어 버려. 어둠과 마주 볼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해. - P131

••• 어둑시니는 그때부터 말이야. 소년의 친구가 되었어. 소년이 밤에 길을 헤매기라도 하면 제대로된 길을 알려주었어. 내가 너에게 해 주듯이 소년은 어둠을 마주 보며 어른이 되어 갔지. 희재야. 형이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해?

그래, 어둠은 소년을 사랑해.

형은 너를 사랑해.

잊어버리면 안 돼. 절대로.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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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글 《책 대 담배》에서 읽었던 문장들을 여기 리베카 솔닛의 《오웰의 장미》에서 만났다. 심지어 작가도 ˝내 오랜 신조가 되어 준 문장˝이라며 글을 이어 나간다.
작가들에게 있어 ˝예술적 글쓰기˝란 그리도 중요한 논제인가보다.

명징성, 정직성, 정확성, 진실성 같은 것들이 오웰에게는 심미적 가치들이요 즐거움이었다.



그런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흔히 시사하는 시각적 미려함과 반드시 비슷할 필요가 없다. 1946년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는 그런 문제 전반을 다룬 글이다. 글을 쓰는 몇 가지동기 중 하나로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 P306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그에 상응하는 단어들과 그 적절한 배열이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지각.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미치는영향이나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과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놓쳐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 

그도 젊었을 때는 "결말이 불행하고, 자세한 묘사와 매혹적인 비유로 가득한, 그리고 어느 정도 소리를 위해 택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화려한 구절이 가득한, 거창한 자연주의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런 화려함에대한 애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따분한 책들을 쓰고 화려한 문구나 의미 없는 문장,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빠져 있었던 것은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있던 때였다." - P307

윤리적 목적이 심미적 수단을 첨예하게 한다는 점을 그는 분명히 한다. 그를 무의미에서 구해낸 것은 정치였다.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나는 장식적이거나 그저 묘사적인 책들을 썼을지도, 그리고 내 정치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거의 의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시사 논설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사 논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심미적 요구나 즐거움이 없는 일도 아니었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하게하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우선적인 관심사는 사람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 P308

뒤이어 내 오랜 신조가 되어준 문장들이 나온다. 

"하지만나는 책을 쓰는 일도, 그저 좀 긴 잡지 기사를 쓰는 일도, 그것이 또한 심미적인 경험이 아니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 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의 눈에는 무관하게 보일 대목들이 많다는 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살아서 정신이 멀쩡한 한, 나는 줄곧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땅의 표면을 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들과 쓸데없는 정보 조각들에서 즐거움을 맛볼 것이다."

무관하게 보일 만한 것이란 일련의 즐거움들과 개인적인 열심들이다. 마치 ‘빵과 장미‘에서 장미처럼 말이다.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이란 많은 사물에 대한 폭넓고 길들여지지 않은 흥미, 특히 뒤이은 문장에 나오는 땅의 표면에 대한 사랑 같은 것일 터이다.) - P308

명정성, 정직성, 정확성, 진실성 등이 아름다운 것은 그런것들 가운데서 비로소 대상이 진실하게 재현될 수 있고, 앎이 민주화되고, 사람들이 힘을 얻고, 문들이 열리고, 정보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계약들이 준수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런 글은 그 자체로 아름다우며, 그 글에서 흘러나오는 것에서도 아름답다. - P309

오웰의 작품에는 더 인습적인 종류의 아름다음 바다의 숲에서 영국의 초원에 이르는 자연 경관, 그 모든 꽃들과 두꺼비의 황금빛 눈알에 이르기까지도 있다. 
하지만 윤리와 심미성이 별개가 아닌 이 아름다움, 진실과 전일성의 언어적 아름다움이야말로그가 자신의 글쓰기에서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핵심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런 아름다움은 언어와 그것이 묘사하는 것 사이,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 한 공동체나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종의 온전함이요 유대감으로 작용한다. - P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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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4-11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저는 이 책의 제목을 오월의 장미라고 알고 있었을까요. 오늘에야 은하수님 글 보고 알았어요. 오월이 아니고 오웰이라는 것을요. 이 책 다른 알라디너분들도 페이퍼에 올리신 책인데.. 그때도 오월로 보였어요 ㅠㅠ

은하수 2023-04-11 20:50   좋아요 0 | URL
ㅎㅎ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한번 각인되어 버리면 계속 그리 보이잖아요?~~
다른 플친님들도 이 책 좋았단 분이 많으시더라구요
저도 오늘 마무리했는데...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오월의 장미도 근데 잘 어울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