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아래엔 다크서클이 드리워 있었고, 심각한 고민을안은 젊은 여자의 표지인 다른 미묘한 흔적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누가 보아도 대단한 미인이었다. 아름다운 피부에 이목구비는 섬세하고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눈은 주이의 눈과 거의 같은 상당히 감탄스러운 빛깔의 푸른색이었지만 누이의 눈이 당연히 그러해야 하듯 두 눈 사이의 거리가 좀더 멀었고, 주이의 눈만큼이나 하루종일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 눈은 아니었다. 사 년 전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녀가 졸업생 단상에서 버디를 향해 활짝 미소를 짓자 버디는 속으로 음울한 예언을 했다. 그녀가 언젠가 십중팔구 마른기침을 해대는 남자와 결혼을할 거라고. 그러니까 그녀의 얼굴에 그런 분위기도 있었던 것이다. - P161
"오빠가 하는 말 다알아. 그중에 내가 혼자 생각해보지 않은건 하나도 없어. 오빠 말은 내가 예수기도문에서 뭔가를 원한다는 거잖아. 그래서 나역시 오빠의 표현을 빌리면 사실은 소유욕이 많다는 거고. 흑담비 코트를 갖고 싶어하거나, 유명해지고 싶어하거나, 그놈의 명성 같은 걸 뚝뚝 흘리며 다니고 싶어하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런 거 다 알아! 맙소사, 도대체 날 얼마나 멍청이로 생각한 거야?" 그녀의 목소리 속 떨림이 이젠 거의 말에 방해가 될 만큼 커졌다. "알았으니까 진정해, 진정하라고." "진정할 수가 없어! 오빠가 날 너무 화나게 하잖아! 오빠는 내가 이 정신 나간 거실에서, 미친듯이 몸무게가 줄고, 베시와 레스를 죽도록 만들고, 온 집을 뒤집어엎으면서 대체 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P190
내가 기도문을 외우는 동기에 대해고민할 정도의 생각은 있다고 보지 않아?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게바로 그거란 말이야.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이번 경우는 돈이나 명성, 명예, 그런 것들 대신 깨우침 혹은 평화겠지, 내가 까다롭게 군다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기중심적이고 자기본위적이 아니란 뜻은 아니니까. 내가 더하면 더했지! 그러니까 저명하신 재커리 글래스께서 굳이 내게 그런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여기서 그녀의 목소리가 완전히 멎었고, 그녀는다시 블룸버그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눈물이, 아마도, 흘러내릴 듯했다. 이미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 P190
프래니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털들을 헤치느라 분주한 게, 그녀는 블룸버그의 털에서 벼룩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사실 울고 있었지만, 이를테면 부분적이었다. 눈물은 있었지만 소리는 없었다. 주이는 일 분 정도 그녀를 지켜보고 있다가, 딱히 상냥하지는 않지만 성가시게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말했다. "프래니, 어떻게 할까? 버디 계속 연결해볼까?"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는 계속 벼룩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녀가 주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잘 들리지 않게. "뭐라고?" 주이가 물었다. 프래니가 되풀이해 말했다. "나 시모어와 얘기하고 싶어." - P191
"이 집안 식구들은 죄다 각자의 빌어먹을 종교를 제각각 포장해서 가지고 있어." 그가 어떤 경외감도 담기지않은 어조로 말했다. "월트가 대단했지. 월트와 부 부한텐 끝내주는 종교 철학이 있었어." 그는 시가를 한 모음 빨았다. 재미있어하고 싶지 않을 때 재미있어하게 된 것을 상쇄하려는 듯이. "월트가 언젠가 웨이커에게 이 집안 식구들은 모두 전생에 수많은 나쁜 업보를 지독하게 쌓은 게 분명하다고 말한 적이 있어. 월트의 이론으로는, 종교적인 삶이란, 그리고 그 삶에 따르기 마련인 온갖 고뇌란, 신에게 이 추한 세상을 창조했다고 비난하는 뻔뻔한 인간들에게 역겨워진 신이 게워낸 토사물이라는 거야." - P195
"아직도 기도를 하고있는 거야, 응?" 그가 물었다. 그러더니 다시 몸을 젖히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고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거의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메이페어 억양으로 그가 말했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요. 글래스 양, 잠시 시간이 있으신지요." 그 말에 대한 소파로부터의 응답은 확연히 불길한 침묵이었다. "원한다면 기도문을 외워, 블룸버그와 놀든지, 담배를피워도 좋고. 하지만 오분동안은 침묵을 지켜줘 친구, 그리고가능하면 절대 눈물 보이지 않기. 오케이? 알았니?" - P197
"우린 거기 있었어. 거기 있었지. 내 말 들어봐, 친구, 넌 아주 훌륭했어. 내가 훌륭하다고 말할 땐 정말 훌륭한 거야. 빌어먹게 엉망진창인 공연이었는데 네가 잘 지탱해줬지. 바닷가재처럼 벌겋게 그을린 관객석의 인간들도 그건 알았을 거야. 그런데 지금 네가 연극과는 영원히 끝이라는 얘기가 들리네. 난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얘기가 들린다고. 그 시즌이 끝났을 때 네가 돌아와 장광설을 늘어놓던 걸 기억하고 있어. 아, 프래니, 너 정말 사람짜증나게 하지! 미안하지만 넌 그래 넌 연기라는 직업 세계에 용병들과 도살업자들이 득실득실하다는 빌어먹을 놀라운 발견을 했다고 했어. 내 기억에 너는 심지어 모든 좌석 안내원들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어. - P248
도대체 뭐가 문제냐, 친구? 네 뇌는 어디에 있는 거냐? 괴물로 키워지는 별난 같은 교육을 받았다면, 적어도 그걸 사용해야지, 써먹어야지. 지금부터 최후의 심판일까지 계속 예수기도문을 외울 순 있겠지만, 종교적인 삶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 거리두기라는 걸 깨닫지 못하면, 네가 평생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있을까? 거리 두기, 친구, 오직 거리 두기. 욕망에서 자유롭기. ‘모든 갈망을 멈추기‘ 그런데 네가 정말 염병할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말이다. 애초에 배우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욕망한다는 것이다. 왜 네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내가 다시 얘기하게 만드는 거지? - P248
어느 시점에선가 빌어먹을 이 생애에서든 저 생애에서든, 뭐든-너는 배우 혹은 여배우가 되기를 갈망했을 뿐 아니라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어했어. 넌 이제 어쩔 수 없는 배우야. 네 갈망의 결과에서 그냥 걸어나올 수는 없는 거야. 원인과 결과, 친구,원인과 결과라고.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네가 할 수있는 유일한 종교적인 일은, 연기야. 원한다면, 신을 위해 연기하고, 원한다면 신의 배우가 되어봐.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게 또 있겠어? 원한다면, 적어도 노력은 해봐. 노력하는 건 괜찮잖아." 잠깐 짧은 침묵이 있었다. "그렇지만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친구. 네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고 있거든. 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이 빌어먹게 경이로운 세상에서재채기할 시간이라도 얻는다면 운이 좋은 거야." 다시 한번 더 짧은 침묵이 있었다. - P249
"나는 배우가 어디에서 연기를 하든 개의치 않아. 여름 공연일 수도 있고, 라디오일 수도 있고, 텔레비전일 수도 있고,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있고, 가장 잘 먹고, 가장 보기 좋게 햇볕에 그을린 관객들이 있는 빌어먹을 브로드웨이 극장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난 네게 엄청난 비밀을 말하려 해. 듣고 있는 거니? <거기엔 시모어가 말한 ‘뚱뚱한 여자‘가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어.> 거기엔 너의 터퍼 교수도 포함되어 있어, 친구. 그리고 그와 같은 종류의 인간 수십 명도. 어딜 가도 시모어의 ‘뚱뚱한 여자‘가 아닌사람은 없다고 모르겠니? 그 빌어먹을 비밀을 아직 모르겠어? 모르겠니, 내 말을 들어봐, <그 ‘뚱뚱한 여자‘가 정말 누구인지 모르겠니?>………… 아, 친구. 아, 친구, 그건 바로 그리스도야. 그리스도라고, 친구."
환희, 그것은 분명 환희였고, 프래니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전화를 잡고 있는 것, 그것도 두 손으로 잡고 있는 것뿐이었다. 거의 삼십 초 남짓 다른 말이,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었다. 그때 들려왔다. "이제 그만 끊어야겠어, 친구." 전화기가 거치대에 다시 놓이는 소리가 들렸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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