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70년대 10 년 동안 젠더 구분을 허무는 소송이 잇달아 제기되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나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다. 사회는 움직였고, 법원은 반응하는 기관이다. 법원은 길을 이끌지는 못하지만 변화의 방향을 가속할 수는 있다. ㅡ2016년 9월 14일, 기업법률고문협회 (99쪽)



그러니까 말이다. "법원이 길을 이끌지는 못해도 변화의 방향을 가속할 수는 있다"는 생각을 이미 대법관이 되었던 1970년대에 했었고, 그러한 신념을 판결에 적극 도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말을 읽다 갑자기 생각하게 된건데, 우리나라의 법원은 국민의 법 감정에 맞추기는 힘들다 해도 반응은 좀 했으면 싶을 때가 요 근래에도 몇 번이나 있었다. 제발 잘 따라오기라도 했으면 싶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어제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야지 했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판결이 여럿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미국 페미니스트 법과 관련된 사건을 계속 접하다 보니 익숙한 사건명이 눈에 들어오고 두 권의 책에서 자꾸 보게 되니 의도하지 않았지만 반복 학습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2. 

리드 (대 리드) 사건에서 문제가 된 아이다호주 법은 유산을 "관리할 자격이 동등하게 주어진" 사람 중에서 "남성을 여성보다 선호해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비극적 상황에서 10 대 아들을 잃은 샐리 리드는 자신이 아들의 유산 관리인으로 지정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들의 친부가(부부는 이미 이혼한 상태였다) 뒤늦게 신청서를 냈음에도 아이다호 법원이 남성을 선호하는 주 법에 따라 친부를 유산 관리인으로 결정하자 샐리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했다. 아이다호주 법이 법의 동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샐리 리드에게서 박탈했다고 대법원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순간, 대법원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ㅡ2002년, <예일대 법과 페미니즘 저널>서문 (97쪽)


샐리 리드 사건, 그것은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만장일치 결정이었고 대법원이 법 속에 존재하는 젠더 구분을 위헌으로 판단한 역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ㅡ2016년 9월 7일, 조지타운대학교 법률센터,  리드 대 리드 사건에 대해 (97쪽)



헌법상 평등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similarly situated)"는 것이 입증되어야 하므로 WRP(여성 권리 프로젝트 Women's Rights Project)는 법적 관점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1971년 Reed v. Reed(리드 대 리드) 사건에서 WRP는 유언 집행인의 자격과 관련하여 남녀는 아무런 차이도 없으므로 유언 집행인 후보 간 언제나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하도록 정한 법률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30쪽)



리드 대 리드 사건에 대한 글은 『긴즈버그의 말』 말미에 나온 연보 및 주요사건에 또 나온다.

이 정도면 양성평등을 향한  발걸음의 첫 판결이었던 리드 대 리드 사건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리드 대 리드 사건의 판결에서 대법관들이 사건을 심리하는 동안 읽을 수 있게 샐리 리드의 변론 취지서를 작성하고 있었지만, 1970년대 젠더 차별에 맞서 싸우는 동안 이 사건을 판례로 활용한다.




3.

컬럼비아대 로스쿨에 변론 취지서를 타이핑해주는, 일을 아주 잘하는 비서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타이핑하다 보니 온통 '섹스sex'라는 단어예요. 판사님들에게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그 단어가 가장 먼저 연상시키는 그거는 아니지요? 그러니까 '젠더gender'라는 단어를 사용해보시는 게 어때요? 문법책에 나오는 근사한 단어잖아요. 연상 작용으로 정신이 산만해지지도 않을 거고요."(94쪽)



재미있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하고 시의 적절한 멋진 표현을 추천해주는 유능한 비서도 멋져서 기분 좋게 웃었다. 설마 이 비서 당연히 여자겠지!  분명히 그럴거야!



4.

이 밖에도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1996), 그리고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1973) 사건도 양성평등과 관련 있는 판결이었다.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 사건 : 미국 연방 정부의 명문 주립대학인 버지니아 군사대학교가 여성 지원자를 받아야 한다면서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낸 사건이었는데, 긴즈버그가 작성한 판결문은 법 앞에 평등을 주장하며 평생을 싸워온 긴즈버그  경력의 최정점으로 평가 받는다.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의 판결 : 여군인 샤론 프론티에로는 남편이 피부양자 혜택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군인의 아내나 부부 수입의 절반 이하를 버는 남편만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대법원에서 변론한 첫 사건으로, 긴즈버그는 피부양자 혜택과 관련된 군대의 법령이 부당하게 임금노동자로서의 여성을 차별한다면서 수정 헌법 제 5조의 적법절차 조항을 위배한다고 주장한다. 대법원은 긴즈버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군 정책에 존재하는 성별에 근거한 구분은 젠더 차별을 인지하고 제거하기 위한 엄격한 검토 기준을 필요로 한다고 결정한다.(긴즈버그의 말, 172~173쪽) 



Rrontiero v. Richardson(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 사건에서 WRP는 군에 소속된 여성은 군에 소속된 남성과 동등한 가족 복지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법정 조언자(amicus bfief) 의견을 제출했다. 이 사건에서 연방 대법원은 군에 복무하는 남성의 아내는 모두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추정하면서 반대로 군에 복무하는 여성의 남편에 대해서는 같은 추정을 적용하지 않는 군의 가족복지제도가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브레넌 대법관은 "미국은 불행히도 길고 긴 성차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 이를 '낭만적 후견주의(romantic paternalism)'로 합리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여성들을 꽃가마에 태우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새장 속에 가두는 것이다"라고 썼다.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30~31쪽) 



2015년 진행되었던 오버게펠 대 호지스Obergefell v. Hodges 판결은 동성 커플의 결혼을 금지한 각 주의 법이 평등보호조항에 위배된다고 보았고 동성커플의 결혼을 인정한다. 긴즈버그는 다수 의견에 이름을 올림으로써 게이와 레래즈비언에게도 평등한 권리와 존엄을 인정한 기념비적인 사건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반대 진영에서도 "혼인 허가서 발급을 거부하거나, 공무원이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 허가서 발급 업무에서 회피하 수 있는 내용의 주 법률을 제정하거나, 공공시설차별금지법에 저촉되지 않고 동성커플에게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방식을 인터넷에 공유하는 등 연방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격이 시작되었다."(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242쪽) 




이러한 판결이나 법의 이론들을 하나하나 대조하면서 다시 읽기 하다 보니 뭔가 너무 재미있단 생각이 든다.  이다혜 기자가 쓴 해제를 보니까 긴즈버그가 쓴 '변론'과 대법관으로 일하며 쓴 '반대의견서'의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어보기를 권하길래 그렇게 해보고 있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목소리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세상을 바꾼 언어들을 말하고 들어보기를 원한다. 한국은 미국만큼이나 더 나아져야 할 여지가 많은 나라이고, 이상하고 불평등한 듯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헷갈리던 개념을 구체적인 언어의 형태로 만날 수 있다. 말은 힘이 세다...."(이다혜 기자의 해제의 말 중에서)



세상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여자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부러우면서도 자랑스럽고 이런 글들을 읽는 나 자신이 너무 좋다....힝....



이 책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를 계속 가지고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지만 나는 오늘 책을 반납해야 한다...ㅠ.ㅠ  벌써 이틀이나 늦어버렸고 오후엔 상갓집 갔다 장지까지 갔다와야 하니까 반납은 하염없이 늦어지겠지...  반납하고 나면 『긴즈버그의 말』 읽다 익숙한 사건명이 나올 때마다 아쉬울 거 같지만... 어쩔 수 없다고 나를 설득해 버렸다.  왜냐하면 책값의 압박에서 헤어나올 수 없고... 난 또 오늘 한국문학 2 권과 고예스카스의 2LP를 주문해버렸기 때문에...  고예스카스 들으면서 책 읽으면 또 죽이겠지!  심지어 백건우 연주인데.. 말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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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03 1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긴즈버그의 말> 펼쳤다가 두 장 읽고 덮었거든요. 인터뷰 … 가 아니더라고요? 당황했어요. 그렇지만 은하수 님 재미있게 읽으신 걸 보니 저도 다시 도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빠샤!!

은하수 2023-07-03 13:14   좋아요 1 | URL
처음에만 그래요~~
뒤로 갈수록 공감되면서 아는 내용이 나오니 급 재밌어졌어요!
꼭 읽으세요~~^^

유수 2023-07-03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긴즈버그의 말>만 읽었을 때는 뿌옇던 것들이 <긴즈버그의 차별 정의>와 같이 읽었을 때 구체화되고 법리이해나 제 상식의 구멍들이 조금씩 채워지면서 독서가 재밌어지더라고요. 은하수님 이 리뷰를 읽으니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도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생각이 듭니다! 교차해서 읽으신 기록 남겨주셔서 잘 보고 가요.

은하수 2023-07-03 13:18   좋아요 2 | URL
<긴즈버그의 말>만 읽을 땐 잘 이해 안됐을거 같아요
그래서 ‘말‘만 있어서 첨엔 당황스러웠거든요. 다행히 뒤로 갈수록 아는 판결이 나오고 그러면서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와 비교하니 급 재밌어졌거든요~~ 저도 <긴즈버그의 차별 정리> 찾아봐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23-07-03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저도 이 두 권을 다 읽었습니다.^^
<긴즈버그의 말> 재밌었어요.
은하수 님 리뷰 읽으니 다는 기억나진 않아도 저도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를 읽으면서 줄곧 긴즈버그 대법관의 판례나 노력했던 내용들이 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은하수 2023-07-03 20:56   좋아요 2 | URL
나무님 읽으신거 저도 봤죠~~^^
모든 판결이나 사건이 다 중복되는건 아녀도 아는 내용이 또 반복적으로 나오니까 재밌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긴즈버그의 말> 재밌게 읽고 있답니다. 두 책이 다 넘넘 좋아요^^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 페미니스트 법 이론
낸시 레빗.로버트 베르칙 지음, 유경민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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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결국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우리 여성들에게 희망이 있다. 여성 교육은 부단히 이어지고 넓어지고 계속 변화하면서 성장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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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02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 완독 축하합니다!!

은하수 2023-07-02 11: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도서관 연체일자와 맞바꾸기로 한 보람이 있어요~~^^

건수하 2023-07-02 1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 완독 축하드립니다 ^^

은하수 2023-07-02 14:56   좋아요 1 | URL
ㅎ~~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초집중 독서 했네요~~^^
 

6장~ 8장 중에서
6장 결혼과 가족 중에서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판결문을 집필한, 현대에 가장 존경받는 법학자 중 한 사람인 리처드 포스너 판사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8장 페미니스트 법 이론과 세계화˝ 섹터에서는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 나도 동의할 수 밖에 없겠다.

˝한 소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곧 한 가족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현대에 가장 존경받는 법학자 중 한 사람이자 연방 제7항소법원 판사인 리처드 포스너는 이에 대해 매우 재치 있고 정곡을 찌르는 논평을 남겼다.
Baskin v. Bogan(배스킨 대보건) 사건의 만장일치 판결문을 집필하면서 그는 인디애나와 위스콘신 주를 대리하는 변호인단이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법률을 정당화 할 "그럴듯한" 설명조차 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P239

포스너 판사는 예기치 못한 임신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 두 사람을 법적으로 결속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성애자 커플은 동성 커플과 구별된다는 주 변호인단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되받아쳤다. 
"이성애자는 술기운에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고 그 보상으로 결혼을 허락받는다. 동성애 커플은 원치 않은 아이가 생길 수 없고, 그 대가로 결혼을 할 권리를 부정당한다. 이것이 납득이 되는가?"  - P240

주 변호인단은 수 세기를 이어온 전통에 호소했지만 이 주장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포스너는 

"좋은 전통도 있고, 식인 문화, 전족, 순장 등 나쁜 전통도 있으며, 좋고 나쁨과 관계가 없는 전통(핼러윈에 사탕을 얻으러 장난을 치며다니는 풍습)도 있다. 전통이 제아무리 오래되었건 그 자체로는 차별의 적법한 근거가 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연방법원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입법기관의 결정을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대해 포스너는 또 한 번 명언을 남긴다.

 "민주적인 의사 과정에서 상처 입은 소수자들은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다.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헌법이다." - P240

Baskin v. Bogan 판결의 내용은, 포스너 판사가 약 20여 년 전 한 학술지에 "사법부가 조심성 없이 행동"하는 예로 결혼을 재정의하는 것을 들었던전력이 있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 
(최근 포스너 판사에게 이에 대해 질문을하자 그는 일을 해오면서 그의 견해가 "아주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며 덧붙이기를 "당신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주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번 입장을 정하면 무조건 관철하는 판사로부터 재판 받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 P240

교육은 흔히 개발도상국의 희망으로 불리며, 그 정서는 특히 소녀들과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성의 문해율이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다. 또한 많은 나라의 여성들은 땅을 소유하거나 재산을 상속할 수 없다. 이들은 신용거래를 하거나, 상점을 운영할 수 없다. 이들은 또한 가족이나 공동체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여기에 악순환이 있다. 여성은 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이들을 공적 영역에서 제외하는 것은 쉽게 정당화된다. 또한 여성은 공적 영역에서 제외되어 있으므로 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 P304

그러나 학교는 개인적인 성취의 관문 그 이상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소녀들의 교육은 "가정 내에서 그리고 세대를 걸친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소녀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은 노동인구를 거의 두배로 늘릴 뿐만 아니라, 빈곤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 P305

교육받은 여성들은 또한 늦게 결혼하며 더 작고 건강한 가정을 가진다. 이들은 의료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한다. 출산율을 낮추면 생태 자원에 대한 부담이 경감되고, 그 자원에 대한 국가 및 부족 간의 갈등이 줄어든다. 
이렇게 여학생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중앙아프리카와 중동과 같은 분쟁 지역에서 정치적 안정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 P305


가장 좋은 점은 여학생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이 선순환을 영속시킨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소녀들은 자라서 그들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고 쓰기를 가르친다. 그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그들이 대학에 가도록 격려하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부업을 한다. 물론 교육받은 남성들도 이러한 방식으로 기여하지만, 여성들은 단연코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한 소녀를 교육시키는 것은 곧 한 가족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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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다양한 현대 페미니스트 법 이론들이 당연히 줄줄이 계속 나온다.  

읽다 보니 내가 이 책을 굳이 다 읽어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슬그머니 일어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관련법들이 어떻게 정비되어 있는지 궁금해지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그래서 또 검색을 해보게 되고 뭔가를 알게 된 듯도 하지만(?) 검색을 하면서 읽어나가는 것은 너무도 지루하고 더딘 작업이고 사실 어떤 법 이론이나 법에 대한 설명은 읽었는데 안 읽었습니다... 가 되어버린다. ㅠ.ㅠ

뭔 말이야 대체... 인용 되었다거나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되었다거나 관련법을 회피하려는 시도였다거나... 판단했다거나....  상소 허가 신청을 기각했다거나...  예외를 상정했다는데 어떤 예외를 상정했다는 건지...  아무튼 이런 말들이 기나긴 문장 속에서 무수히 나온다.  이해하며 읽어나가기가 어렵다. 내가 아무리 문과여도 법은 교양 과목으로도 한 적이 거의 없어서(한 번은 있었나?) 이해가 잘 안되고 한 번 읽어서 이해가 안되니 두 번, 새 번 읽기도 부지기수였다.  딴 짓하다 돌아와 읽으면 또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다.  리뷰 쓰는 거 진짜 싫은 나도 지금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차라리 머리가 덜 아픈 느낌이다.




1장 페미니스트 법 이론/  2장 페미니스트 법학 방법론/  3장 직장, 임금, 그리고 복지/  4장 교육과 스포츠/   5장 젠더와 몸까지 읽었다.  

1장의 법 이론들은 다양하기도 하고 정말 지루하다. 하지만 대충이라도 숙지를 하고 가야 다음 내용들에서 그나마 이해가 되므로 꼭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문화 페미니즘, 지배이론, 반본질주의, 레즈비언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실용주의 페미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등등...  이러한 현재의 법 이론들은 같은 이론 내에서 한 가지 쟁점을 놓고도 서로 다르게 반응하기도 하고 충돌하는 경우도 많지만 끊임없이 변화를 겪으면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다만 페이퍼를 쓰기 위하여 이러한 이론들을 다시 읽고 싶지는 않다.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그냥 이러한 이론들이 있었고 대충 어떤 이론들인지만 알고 그냥 넘어가는 걸로 한다. 왜냐하면 다른 플친님들의 훌륭한 페이퍼가 이미 있으므로....(간단하면서 설명을 아주 잘 해놓으셨다!  단발머리 님, 감사합니다~~)

하하하.  궁금할 땐 나도 다른 이웃님의 글을 참고 하는 걸로 ... 

2장 페미니스트 법학 방법론인데 1장에서 다루었던 페미니스트 법 이론의 부속물이며, 여성 운동가들의 철학이 무엇이든간에 널리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다양한 설명이 있다지만 (1)가부장제의 가면 벗기기, (2)맥락추론, (3)의식고양이라는 3 가지의 기본적인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얼마 전 맥락추론의 중요성에 대하여 멋지게 페이퍼를 쓴 플친님의 글을 읽었다. 영화 러브 & 데스를 예로 들어 책보다 더 설명을 잘 해놓으셔서 아주 유용했단 생각이 들었다.  누구였지?? 미미 님이었다. 

궁금하면 북플 검색하기...ㅎㅎㅎ(잊어버리니까 적어놓자. 나에게 친절하기^^)




사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5~8장이 아닐까 싶다.

5장 젠더와 몸/   6장 결혼과 가족/   7장 섹스와 폭력/   8장 페미니스트 법 이론과 세계화로 구성이 되어 있다.

나는 오늘까지 5장 젠더와 몸을 읽었을 뿐이고 6장을 시작을 했지만 책은 오늘 5시까지 도서관에 반납을 해야한다.

다시 상호대차 신청해서 나에게 오려면 또 한참의 시간이 걸릴테니까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5장에서는 낙태와 대리모 출산, 그리고 포르노 그래피 법 이론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낙태와 관련해서는 1973년의 Roe v. Wade(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낙태 법안이 어떤 식으로 약화되어 왔는지, 그리고 낙태를 하기 위하여 가난한 여성들이나 유색 인종, 청소년들이 어떤 고난을 겪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게 되고, 그 반대로 낙태법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진영이 주장하는 이론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낙태를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책에서는 "부분 출산(Partial Birth)" 낙태와 약물에 의한 낙태의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해 놓았다.  여기서 쟁점이 되는 방법은 "부분 출산(Partial Birth) 낙태"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 용어는 의학서적에서는 "무손상 확장 추출술(D&X)"이라는 용어로 언급이 되어 있을 뿐이고 낙태 반대론자들이 만들어낸 용어라는 것으로서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 방법이라고 한다. 시술 과정 중에 태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산모의 자궁 경부를  확장시키고 사산아를 모체에서 꺼내기 전에 태아의 두개골을 와해시키는 방법이다. 태아에게 뇌손상 등의 이상이 있거나 임부에게 위험을 야기할 경우에 사용되지만 전체 낙태 시술의 1% 만이 이 방법이 시행된다.  하지만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수술 장면을 이용해서 부분적으로나마 낙태의 잔인함을  설파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미국 국민은 낙태에 관해서 양가적인 감정이 병존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감정은 미국 국민에 국한하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거나 없거나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 남성일지라도 같은 감정일 수 있다.  나 자신조차도 초기 임신 단계에서 낙태할 권리를 지지하면서도 낙태를 하는 방법에 대하여 읽을 때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그것이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서 ...  그러면서 오래 전 보았던, 낙태 수술할 때 자궁 안에서 자기를 잡으러 다가오는 수술 도구를 피해 도망가는 태아의 움직임이 오버랩 되었다.  내가 본 영상이 혹 'D&X'라고 하는 그 영상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면서 그냥... 낙태를 해야만 할 상황에 처하는 여성이 없거나 정말 극소수이기를 소망하는 거 외에는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었다. 




대리모(Surrogacy) 출산에 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용어 정의를 간단히 하자면 [대리모 약정, 혹은 계약 임신은 "유상인 경우를 포함해, 타인에게 인도하기 위해 아기를 만들기로 하는 합의"를 말한다.]  

오늘날 대리모 약정은 보통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를 취한다. 첫 번째 형태에서는, 계약자 부부가 "대리모"라고 불리는 다른 여성을 모집하는데, 이 여성은 수정란을 착상시키고 태아를 품고 있다가 출산한 후 그 아기를 계약한 부부에게 넘겨줄 것이다. 정자는 계약자 부부의 남편이 제공하므로, 그가 유전적이자 법적인 아버지가 된다.  계약자 부부의 아내는 아이와 유전적 연관이 없으며, 아이의 법적인 어머니로 간주된다. 아이와 법적 관계가 없도록 의도되는 대리모는 유전적 어머니가 된다. [이는 "대리(surrogate)"라는 용어를 다소 부정확한 호칭으로 만든다.] 대리모의 두번째 형태는 "임신 대리모(gestational surrogacy)"라고 불리며, 체외수정과 관련이 있다.  이 방식에 따르면, 이 수정란(잠재적인 배아)은 계약자 부부가 제공하는 난자와 정자를 이용하여 실험실에서 형성되고 수정란은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되며, 대리모가 태아를 품은 후, 출생 시, 그 아기를 계약자 부부에게 인도한다.  이 삼각관계에서, 계약자 부부의 남편은 아기의 유전적, 그리고 법적 아버지가 된다. 계약자 부부의 아내는 유전적, 그리고 법적 어머니가 된다.  때로, "임신 대리모"라고 불리기도 하는 대리모는 자녀와 유전적 또는 법적 연관성이 없게 된다.(214~215쪽)




이러한 약정은 법률적 자문을 맡은 변호사, 알선 기관, 난임 클리닉 등에 의하여 정교하게 계약과 출산의 과정이 이루어지고 매년 1,600명 이상의 아기들이 임신 대리모를 통해 태어나고 있으며 엘튼 존과 데이비드 퍼니시, 지미 팰론과 낸시 조보넌, 니콜 키드먼과 키스 어반, 리키 마틴(싱글 파더) 등 다수가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미 법원도 대리모 제도에 관하여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고심을 하고 있는데 매우 최근까지도 이 주제에 관한 법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리모 사건의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 베이비 M(M: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음을 빗대어 미스테리) 사건과 Johnson v. Calvert(존슨 대 칼버트) 사건인데 두 사건 모두 대리모와 관련된 삼각 관계하에서 부모의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필요로 한 사건이었다.  




1985년 윌리엄과 엘리자베스 스턴은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와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서 화이트헤드는 윌리엄 스턴의 정자를 인공수정하여, 그 결과로 생긴 태아를 임신하고, 그 아이를 스턴 부부에게 인도하는 데 동의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스턴 부부는 화이트헤드에게 1만 달러를 지급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화이트헤드는 아기를 포기하는 것을 거부했고, 본명은 멜리사인 아기 "베이비 M"에 대한 권리를 갖기 위한 소송이 이어졌다. 법원은 결국 스턴 부부의 편을 들었지만, 계약의 강제집행을 명령하지는 않았다.(218쪽)




1988년 결정된 베이비 M 사건은 대리모 계약의 유효성에 대한 최초의 판결이었고 이후 법원은 대리모 계약이 공공 정책에 반해 무효라고 판시하였으나 대리모인 화이트헤드의 정서적 안정에 의문을 품고 결국 아이는 스턴 부부가 주 양육자가 되었다.  화이트헤드는 면접 교섭권을 부여받았다.  최초의 판결이었던 만큼 사람들의 관심도 지대했던 모양이다. [BABY M]이라고 하는 TV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서도 비디오로 제작이 되어 유통이 되었다고 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로 경제력이 약해진 여성들에게 대리모는 "생식 노동을 시장 자산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제공(216쪽)"하고 있으며, 계약자 부부보다 가난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대리모들이 권리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익명의 "자궁 대여자들"이라는 하위 계층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지위를 낮춰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217쪽)는 비판론자들의 여러 주장들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미국은 유상 대리모 계약을 위한 합법적 시장이 존재하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라서 대리모를 찾고 있는 유럽, 아시아, 그리고 호주의 부유층 부부들을 끌어들이고 있고 여러 법적인 문제들을 야기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문제인 것은 거금의 대리모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미국인 커플들이 경제적으로 절반의 비용만 지불하면 되는 동남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인도로 몰려가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특히, 규제가 심하지 않은 인도의 대리모 시장은 좌우 양쪽의 비평가들로부터 자궁의 현대판 식민지화라는 비난을 받아왔다."(221쪽)




"생식 노동, 자궁 대여자들, 유상 대리모, 자궁의 현대판 식민지화" 이런 용어들은 언제까지라도 언제라도 익숙해지고 싶지가 않다.  결국 또 돈이 문제인 거다.  정말 돈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왜 꼭 항상 언제까지나 힘 없고 무지한 여성들에게만 닥치는 것인지... 심지어는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는 여성임에도 가정의 생계를 위하여 여러 번 대리모가 되고 그 돈으로 가족이 살아간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더라는 말도 있지만 아직 안죽어봐서 모르겠고 ... 천국은 하늘에 있는 거고 이 세상은 지옥이 분명하단 말이 맞는 거 같다.  요즘 티비만 틀면 나오는 뉴스 속에서 들었던 영아 살해 기사도 그렇고... 지 아기를 낳아서 죽여놓고 또 버젓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탄원서도 자필로 써서 언론에 공개하는 정신머리라니... 이 책을 보면서 생각이 참 많아진다.




책을 읽고 나면 늘 생각하는 거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알게 된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미국의 사례들이어서 모르던 내용들이 많았고 새로운 지식을 알아간다는 즐거움도 컸지만 역시 이 한 권의 책을 읽어서 알게 된 지식과 경험을 통하여 나의 사고가 확장이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적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나의 사고의 기조를 확실히 세울 수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와 다소 동떨어지는 법령들을 대하면서 사실 어느 한 쪽의 주장으로 나의 생각이 움직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여러 이론들을 대하면서 역시 어렵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소신있는 정치적 견해를 확립하는 것은 역시 섣불리 이루어져서는 안되고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못하는 중립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내 스스로가 썩 맘에 차지는 않지만 비판적인 시각은 계속 유지해가면서 좀 더 많은 책을 읽어보아야겠단 생각은 변함이 없다.  책도 어렵고 소신을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어느 날엔가는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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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7-02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도 어렵고 소신을 세우기도 어렵다는 마지막 구절 와 닿습니다.
하지만 그 소신이 명확해지려면 또 우리는 읽어봐야겠죠?^^
읽으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은하수 2023-07-02 11:43   좋아요 2 | URL
참고 읽은 보람은 분명하게 남겨주는 책이었습니다
감사해요~~

저도 계속 읽어가겠습니다.
이웃님들 책 읽는거 보며 자극 받는 시간들이 행복하네요~~!
 

사랑은 감추려야 감출수가 없는 것인가보다. 그것이 지금 막 피어난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더욱!

˝많은 은밀한 관계들이 이런 식으로 침묵과, 질문의 부재와, 되짚지 않는 문장과, 작정하고 선택한 평범한 단어, 너무 평범해서 엉뚱해 보이는 단어에 의해 발각된다.˝

˝어쨌든 루실과 앙투안의 웃음을, 그 행복한 표정을 처음 보는 누구라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들이 마음 놓고 서로를 바라보며 설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 얼마간의 순간을 어쩌면 오만하게 누렸다.˝

˝어쩌면 오만하게 누렸다.˝
이 문장이 진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모두를 속여가며 사랑한 이 둘은 지금 얼마나 짜릿할까...

한심한 윌리엄의 어리석고 무분별한 짓거리에 얼마간 다시 온화해진 클레르가 루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어쩌면 이 당돌한 어린애에게 사교계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침묵하는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해줄 시간이었다. 루실은 앙투안에게 눈을 치뜨며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다는 듯한, 차분하고 안심하는 미소였다. ‘안심하는‘은 정말이지 정확한 표현이었다. 여자가 남자와 친밀하지 않을 때 절대 지을 수 없는 표정의 미소.
‘그런데 대체 언제, 얘들이 언제 그럴 수 있었지?" 클레르의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가만, 마른에서 저녁 식사를 한 게 사흘 전이었어, 그땐 아니었지. 오후 시간이 분명해.
파리에선 이제 아무도 밤에 섹스하지 않으니까. 모두가 대체로 너무 지쳐 있잖아. 더구나 얘네는 각자 애인이 있고 말이야.
그렇다면 오늘?‘ 그녀는 코를 치켜들고서 두 눈을 빛내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 P83

어떤 여자들한테는 호기심에 의해 추동되는 광기 어린 열정으로, 그들에게서 쾌락의 흔적을 찾아내려 애썼다. 이를 알아차린 루실이 무심결에 웃음을 터뜨렸다. 바짝 다가와 있던 클레르의 얼굴이 뒤로 물러났다. 후각이 발달한 포인터의 표정으로 ‘난 다 알아, 다 이해한다고‘ 라고 하듯 보다 덤덤하고 온화한 얼굴로 바뀌었으나, 불행히도 두 사람에게 전달되진 않았다.
왜냐하면 앙투안은 루실이 웃는 것에, 그녀가 이튿날 같은 시간에 그의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 뒤 노곤해진 채로 그에게 왜 웃었는지 설명할 걸 자기가 아는 것에 기뻐하며, 루실을 바라보고 그녀와 함께 허심탄회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 P83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왜 웃어요?‘라고 묻지 않았다. 많은 은밀한 관계들이 이런 식으로 침묵과, 질문의 부재와, 되짚지 않는문장과, 작정하고 선택한 평범한 단어, 너무 평범해서 엉뚱해보이는 단어에 의해 발각된다. 어쨌든 루실과 앙투안의 웃음을, 그 행복한 표정을 처음 보는 누구라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들도 이를 막연하게 짐작했고, 볼디니가 선사한 이 막간의 시간을, 그들이 마음 놓고 서로를 바라보며 설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이 얼마간의 순간을 어쩌면 오만하게누렸다.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클레르나 다른 이들의 존재가그들의 기쁨을 배로 증폭시켰다. 그들은 젊어진 기분, 거의 어려진 기분이었다. 금지된 무언가를 저지르고도 아직 처벌받지 않은 아이들이 된 기분이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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