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장들이 있어 끝까지 읽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어느 순간 너무 지겹다가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문장들의 힘이랄까!


"물론 넌 자신을 상냥하다고 생각하겠지!" 하고 그녀는 오랫동안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난 그녀 웃음이 그려 보이는, 그녀 생각보다 더 포착할수 없는 그 다른 부분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 그 웃음은 이런 뜻인 것 같았다.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속지 않을 거야. 네가 날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건 아무 상관없어. 난 네게 관심이 없으니까.‘
 그러나 요컨대 웃음이란 것은 그 뜻을 잘 이해했다고 확신할 만큼 그렇게 안전한 언어가 아니라고 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사실 질베르트의 말에는 애정이 넘쳤다.
 "아니, 어떤 점에서 내가 상냥하지 않다는 거지?" 하고 내가 물었다.
 "사실을 말해줘.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그렇게 해도 아무 소용없을거야. 난 설명하고 싶지 않아." 하고 질베르트가말했다. 
한순간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봐난 겁이 났고, 또 이것은 내게 또 다른 고통, 똑같이 생생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증법을 요하는 고통이었다.  - P277

"네가 나에게 어떤 슬픔을 주고 있는지 안다면, 넌 말해 줄 텐데." 하지만 이 슬픔은, 그녀가 내 사랑을 의심한다면 그녀를 기쁘게 해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녀를 화나게 했다. 그래서 난 내 잘못을 깨닫고, 다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녀가 
"난 정말 널 좋아했어.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이 ‘언젠가‘란 죄인들이 자신의 결백이 밝혀지리라고 확신하는 날이지, 어떤 신비스러운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심문받는 날은 결코 아니다.) 갑자기 용기를 내어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녀가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기에 그녀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다. - P278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비롯된 슬픔은, 비록 그 슬픔이 사랑하는 사람과 무관한 걱정거리나 일, 기쁨 가운데 끼어들어 우리 주의력이 이따금 그 슬픔으로 되돌아가려고 잠시 거기서 벗어난다 해도 여전히 쓰라린 법이다. 그러나 이 슬픔이 지금의 내 경우처럼 ㅡ 그 사람을 만날 기쁨으로 가득 찬 순간에 생겨나면, 지금까지 햇빛이 비치며 지속적으로 고요하던 영혼 속에 갑자기 저기압 지대가 나타나 성난 폭풍우를 일게 하므로, 우리는 그 폭풍우와 맞서 끝까지 싸울 수 있을지 어떨지도 결코 알지 못한다. 내 마음에 휘몰아치는 폭풍우가 얼마나 격렬했던지 난 집으로 돌아가면서 심한 충격에사로잡혀 거의 정신이 나간 채로, 뭔가 핑계를 대어 질베르트곁에 돌아가지 않고는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P278

우리 인생에서 보통 몇 번인가 부딪쳐야 하는 어려운 상황 중 하나를 나는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과 부딪혔을때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 이 기질이 바로 우리-의 사랑과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들, 또 그 여인들의 결점마저 만들어 낸다. - 우리는 나이에 따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삶은 나뉘며, 또 저울에 배분되듯 양쪽 접시에 고스란히 놓인다. 

한쪽 접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욕망, 사랑하지만 아직은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 그러나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자만심을 품으면 우리를 지겨워할지도 모르므로 약간은 혼자 내버려 두는 편이 보다 현명한 처신이라고 생각되어 지나치게 겸손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욕망이 놓여 있다.  - P279

다른 한쪽에는 고뇌가, - 국지적이고 부분적인 고뇌가 아니라 ㅡ 여인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생각을 포기하고, 우리가 그녀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걸 그녀에게 믿게 하는 걸 포기하면서 그녀를 보러 갈 때라야 진정되는 고뇌가 놓여 있다. 
만약 우리가 자만심이 놓인 저울에서는 나이와 더불어 커져 가는 나약함 때문에 의지를 소량 덜어 내고, 슬픔이 놓인 저울에서는 우리가 얻은 점점 더 심해져 가는 육체적인 고통을 추가한다면, 그때 우리를 스무 살로 데리고 가는 용감한 해결책 대신에, 너무 무거워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를 쉰 살로 내려가게 하는 다른 해결책을 보게 된다.  - P279

스완 부인은 그녀의 ‘차‘를매우 중요시했다. "늦은 시각이면 언제라도 제가 있으니 차를 드시러 오세요."라고 남성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독창성을 드러내고 매력을 풍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영어식 억양으로 발음하는 자기 말에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미소를 곁들였는데, 그러면 상대는 마치 그 말이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며 주의를 요하는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일이라도 된다는 듯 경건한 태도로 그 말에 답례하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 P292

여기에는 앞서 말한 이유 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었으며 그 때문에 스완 부인의 살롱에서 꽃들은 단순히 장식적인 특징만을 띠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대와는 무관한, 어느 정도는 오데트가 과거에 보냈던 삶과 관계가 있었다. 유명한 화류계 여자로서 많은 시간을 정부를 위해 살았으며, 다시말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집에서 보냈으므로, 이 점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살도록 했다. 
정숙한 여인 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건, 그래서 그 정숙한 여인에게 중요하게 보일수 있는 물건들은 화류계 여인에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의미를 띤다. 
그녀 일과에서의 정점은 사교계에 나가려고 옷을 입을 때가 아니라, 남자를 위해 옷을 벗을 때다. 외출복을 입을 때와 마찬가지로 실내복이나 잠옷을 입어도 우아하게 보여야 한다. 다른 여인들이 보석을 과시할 때 그녀는 진주의 내밀함 속에 산다. 
이런 삶이 은밀한 사치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드디어는 그에 대한 취향, 다시 말해 거의 비타산적이라 할수 있는 취향을 부여한다.  - P292

스완 부인은 자신의 사치스러운 취향을 꽃에 쏟아부었다. 그녀의 안락의자 옆에는 파르마 바이올렛*이나 마거리트 꽃잎을 띄워 놓은 커다란 크리스털 수반이 놓여 있었는데, 이 수반은 그 집에 도착한 손님 눈에 그녀가 좋아하는 일, 이를테면 자신의 기쁨을 위해 혼자 차를 마시다가 방해를 받았다는 듯 보이게 했다.


*파르마 바이올렛: 다년생 제비꽃으로 보라색 겹꽃을 피우며 향기가 은은해서 향수로 쓰인다. 이탈리아 🇮🇹 의 도시 파르마를 대표하는 꽃이다. - P293

1월 1일 내내 시계는 시간마다 울렸지만 질베르트의 편지는 오지 않았다. 나는 뒤늦은 연하장 또는 연말 우편물의 혼잡 때문에 늦게 도착한 연하장 몇 통을 받았던 터라 1월 3일과 4일까지도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희망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날 동안 나는 무척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내가 질베르트를 단념했다는 사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진지하지 않으며, 여전히 새해가 되면 그녀의 편지를 받을 거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준비할 시간을 가지기도 전에 그 희망이 고갈된걸 보면서, 나는 마치 두 번째 모르핀 약병을 쥐기도 전에 손에 쥔 병을 모두 비워 버린 환자마냥 괴로워했다.  - P319

질베르트의 쨍긋한 얼굴을 보는 짧은 순간에 비해, 그녀가 우리의 화해를 위해 할 시도며, 심지어는 우리 약혼까지 제안하는 모습을 내가 꾸며내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상상력이 미래를 향해 끌어가는 이 힘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사실 과거로부터 길어 온 것이다. 질베르트가 어깨를 추켜올리던 모습을 보았던 아픔이 조금씩 지워져 갈수록 그녀의 매력에 대한 추억, 그녀를 내쪽으로 다시 오게 하고 싶었던 추억도 조금씩 작아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런과거의 죽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미워한다고 믿었던 여자를 실은 아직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머리 모양이 멋있다든가 안색이 좋다고 말할 때면 그녀도거기 있었으면 싶었다.  - P347

그 무렵 많은 사람들이 내게 초대 의사를 표해 왔는데 귀찮아서 모두 거절했다. 집에서는 내가 아버지를 따라 공식 만찬에 가지 않는다고 한바탕 언쟁이 벌어졌는데, 그 만찬에는 봉탕 부부가 그 무렵 아직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조카딸 알베르틴과 함께 참석하기로 했었다. 
이처럼 우리 삶의 여러 시기는 서로 겹치곤 한다. 지금은 사랑하지만 언젠가는 아무 상관도 없을 여인 때문에, 현재는 상관이 없지만 앞으로 사랑하게 될여인을 건방지게 거절한 것이다. - P347

그때 그녀를 만나는 데 동의했다면 조금 더 일찍 사랑에 빠졌을 테고, 그러면 현재의 고통을 줄이고 다른 고통으로 바꾸었을 텐데. (이건 사실이다.) 내 고통은 조금씩 변할 것이었다.  - P348

난 12시쯤 개선문에 도착했다. 거리 입구에서 망을 보며, 겨우 몇 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였지만 스완 부인이 집에서나오는 작은 길모퉁이를 지켜보았다. 이미 많은 산책자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가는 시각이어서 남은 사람의 수는 많지 않았으나 대부분 멋쟁이 신사들이었다. 
갑자기 산책로 모랫길 위로 가장 아름다운 꽃, 정오에만 피는 꽃처럼 화려한 스완 부인이 뒤늦게 천천히 나타나 그녀 주위에 언제나 다른 옷차림의 꽃을 피웠는데, 특히 그녀의 연보랏빛 옷차림이 기억난다. 또 자신의 광휘가 가장 절정에 달하는 순간, 부인은 드레스에 흩뿌린 꽃잎들과 같은 뉘앙스의 커다란 파라솔 실크천을 기다란 꽃자루 위에 들어 올리며 펼쳤다.  - P363

이 그녀를 둘러쌌다. 오전에 스완과 스완 부인의 집으로 그녀를 보러 왔거나 길에서 만난 클럽 회원 네댓 명이었다. 굽실거리는 검은색 또는 회색 무리가 거의 기계적인 동작으로 스완부인 주위에 움직이지 않는 틀을 만들어, 혼자만이 강렬한 눈빛을 한 이 여인에게 흡사 창가에 다가가 밖을 내다보는 듯한, 이 모든 남자들 사이에서 앞을 내다보는 듯한 인상을 안겨주었으며, 그리하여 그녀를 부드러운 빛깔 속에 드러내면서 연약하지만 겁이 없는 마치 다른 종류의 인간, 미지의 인종, 거의 투사와도 같은 힘을 가진 인간의 출현처럼 솟아오르게 했다. 이런 힘 덕분에 그녀는 혼자서도 그 수많은 수행원들과 필적할 수 있을 듯 보였다.  - P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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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다양성이란 바로 현실의 예기치 못한 요소들의 충만함 속에, 모든 기대 밖에 솟아 나온 푸른 꽃들로 가득한 작은 가지속에, 이미 꽉 찬 봄의 울타리 속에 있으며, 반면 다양성에 관한 순전히 형식적인 모방은(우리는 문체의 다른 모든 성질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추론할 수 있다.) 공허하고 획일적이며 다시 말해 다양성과는 가장 반대되는 것으로, 이런 모방은 거장들의 작품에서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독자에게 모방자들의 다양성이 있는 듯한 환상을 주거나 그 기억을 떠올릴 뿐이다. - P222

그리고 그가 어떤 지성의 도움을 받아서든(내가 그를 보충할 수 있는) 내 지성을 이해하려고 애쓰는건 전혀 바라지도 않았는데, 나는 내 지성을 외부 진실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그 자체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어리석은 사람들과 다른 건강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고, 나는 이런 어리석은 자의 건강관리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256

"좋은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우리친구 스완이라네." 하고 베르고트가 말했다. 내가 그분이 아프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네, 창녀와 결혼한 남자가 아닌가. 그의 아내와 만나기를 원치 않는 부인네들이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한 남자들의 뱀을 쉰 마리나 날마다 삼켜야 하는 모욕을 감수하고있다네. 뱀들이 그의 입을 비트는 게 보이네. 어느 날 그가 집에 돌아오거든 한번 주목해서 보게나. 누가 집에 있는지 보려고 눈썹을 찌푸리는 걸 볼 수 있을 테니." 하고 말했다.  - P256

이처럼 오래전부터 자기를 환대해 왔던 친구들의 손님에게 하는 베르고트의 악의적인 말투는 스완네 집에서 매 순간 그들과 함께했던 그의 애정 어린 말투만큼이나 내게는 낯설게 느껴졌다. 예를 들어 나의 고모할머니 같은 분은 베르고트가 스완에대해 했던 것 같은 다정한 말들을 우리 중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일부러 불쾌한 말을하셨다.  - P256

"지금 한 말은 나와 자네만 아는 거라네." 우리집문앞에서 헤어지며 베르고트가 말했다. 몇 해 후였다면 나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사교계 사람들의 의례적인 말로, 험담가는 매번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거짓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내가 그날 베르고트에게 했어야 하는 말도 그런 종류였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전부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며 사교적인 인물로 행동하는 순간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의례적인 말투를 알지 못했다. 한편으로 그런 경우내 고모할머니 같았으면 "다른 사람에게 되풀이하는 게 싫다면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라고 답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비사교적인 사람들, 즉 ‘호전적 사람들‘의 대답이다. 그러나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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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고트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납작한 달팽이 코에 턱수염, 거기다 땅딸막한 몸에 과도한 실망을 안겨준 독특한 발성법까지.
무엇하나 작품과 어울리는 외형이 아니다보니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뿐더러 작품에 대한 매력도 반감되고 말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외모에 대한 환상이 있기 마련인지라 심하게 감정이입된다.


스완 부인은 며칠 전에 "몇몇 사람들끼리 하는 작은 회식"에 식사를 하러 오라며 내게 편지를 써 보냈다. 그런데 그날 온 사람은 무려 열여섯 명이나 됐고, 그들 가운데 베르고트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스완 부인은 여러 손님들에게 한 것처럼 내 이름을 ‘호명했고‘, 갑자기 내 이름 다음에 방금 내 이름을 부른 것과 같은 방식으로(마치 우리가 단지 서로를 소개받는 데 만족해하는, 오찬에 초대받은 단 두 명의 손님이라는 듯이) 그 온화한 백발 ‘시인‘ 이름을 발음했다. 
베르고트라는 이름은 누군가가 나를 향해 발사한 권총 소리처럼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려고 인사했다. 내 앞에서 총 한방이 발사되고 그 연기 속에서 비둘기가 날아가는데도 프록코트 차림으로 멀쩡히 서 있는 마술사처럼, 젊고 투박하며 키가 작고 다부진 체형에 근시이며 코가 달팽이 껍데기 모양으로 붉은, 검은 턱수염 남자가 인사에 답했다 - P215

나는 죽을 듯이 슬펐다. 왜냐하면 지금 재가 되어 버린것은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은 처량한 늙은이만이 아니라, 그의 쇠진한 성스러운 몸 안에 내가 머물게 할 수 있었던 거대한 작품의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부러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해 전당처럼 축조해 놓았던 그 몸, 그러나 내 앞에 있는 납작코와 검은 턱수염을 가진 이 키 작은 남자의 혈관이나 뼈, 신경 마디로 채워진 땅딸막한 몸 어디에도 그런 아름다움을 위한 자리는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 P215

나 자신이 마치 종유석처럼 천천히 섬세하게 한 방울 한 방울 그의 책들이 지닌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축조했던 베르고트 전체가, 지금 달팽이 껍데기 모양 코를 보존하고 검은 턱수염을 활용해야 하자 그런 베르고트는 단번에 더 이상 아무짝에도 쓸모가없게 되어 버렸다. 마치 우리에게 제시된 요소를 불완전하게읽고 또 그 총계가 어떤 숫자로 나타나야 하는데도 그런 사실은 고려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 결국에는 그 답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처럼. - P216

코와 턱수염은 내게 베르고트라는 인물을 완전히 다시 구성하도록 강요하면서도 일종의 활기찬 자기만족 정신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생산하며 분비하는 듯 보여 그만큼 불가피하고 거추장스러웠는데, 이는 어떤 점에서 공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신은 내게 잘 알려진 책들을 통해 널리 퍼져 있던 그런 온화하고 성스러운 지혜가 깊숙이 배어든 지성의 유형과는 아주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그의 책에서 출발했다면 이 달팽이 껍데기 모양 코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홀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코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나는 베르고트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았으며, 결국에는 바쁜 엔지니어의 정신 상태에 이르게 될 것만 같았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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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데리다 : 개념의 탈구축
이항 대립의 탈구축이라는 새로운 사고법을 제시한 것이 자크 데리다(1930~2004)이다.

*이항대립 dichotomy: 논리학에서 두 개념이 모순 또는 대립의 관계에 있는 것. 또 개념을 그렇게 둘로 나누는 것. 안과 바깥, 남자와 여자, 주체와 객체, 서양과 비서양. 이분법.
**탈구축 deconstruction: 사물을 ‘이항대립‘, 즉 ‘두 개념의 대립‘에 의해서 파악하여 좋고 나쁨을 말하려는 것을 일단 유보한다는 것.


까마득한 시간 속에 <철학개론>이라는 교양과목 수강한 적이 있었다는 생각이 났고, 이항대립이라는 개념을 들어본 듯도 한데... 현대철학보다는 고대철학부터 개괄적으로 설명해놓은 책이었다고 생각된다. 고대부터 훑어내려오다 현대쯤 오면 지쳐서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어지던 ...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다.
이 책은 ‘입문을 위한 입문‘이라는 말로 시작이 됐는데 다 건너뛰고 현대철학으로 바로 들어가도 어쨌든 다소 어렵고 익숙한듯 생소한 용어와 작가들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던, 이분법, 레비스로스, 빠롤, 본질 등등-이 등장하지만 입문용으로 아주 쉽게 쓰려했다는 느낌이 온다.

데리다, 들로즈, 푸코의 탈구축, 현대사상의 원류인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 그리고 정신분석과 현대사상에서는 라캉과 르장드로, 현대사상을 만드는 방법, 포스트-포스트구조주의, 부록으로 현대사상 읽기에서 현대사상을 어떻게 잘 읽을수 있을지에 대한 작가의 견해 내지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다.
현대사상을 눈꼽만큼이라도 알게 되는 초초기초를 닦을 수 있을까 기대하며 읽고 있다.~~^^




크게 말해서 이항대립에서 마이너스라고 여겨지는 쪽은 ‘타자‘쪽입니다. 
**탈구축의 발상은 불필요한 타자를 배제하고 자신이 흔들리지 않고 안정되고 싶다는 생각에 개입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가장 가까운 상태이고 싶다는 생각을 흔드는 것입니다.
"내가 내게 가장 가까운 상태이다"라는 것은 철학적인 표현일 수도 있는데, 그것이 곧 동일성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내부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에 반해 데리다의 탈구축은 외부의 힘에 몸을 열자고,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다"라는 갑옷을 찢어 버리고 타자가 있는 세계 쪽으로 몸을 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 P49

반대로 말하면 사람이 어떤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은 ‘용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단의 허락과 그것이 배제하는 것에 대한 비판은 일을 하고 사회를 움직여야 한다는 현실성에서 균형을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어떻게 하느냐에 원리적인 해결책은 없습니다. 케바케로(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그때그때의 경우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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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2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 어려워보이지만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후훗. 사야지~

은하수 2023-07-12 09:27   좋아요 0 | URL
생각보단 이해가 되더라구요~~ 정말 입문을 위한 입문이라 작가가 쉽게 쓰려노력했다는게 느껴진다니까요.. ^^ 도움이 될거 같아요!
 

엘리사는 호아킨 안디에타의 품에서 단 한 번도 완벽하게 행복을 느껴 보지 못했으면서도, 어떻게 몸과 마음을 다 바쳐 그를 사랑할 수 있었는지 수천 번도 더 넘게 자기자신에게 되물어 보았다. 그리고 그건 첫사랑의 환상으로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가 짐을 풀기 위해 자기 집에 왔을 때 그녀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그 나머지는 본능에 따랐을 뿐이었다. 단순히 강한 힘에 이끌렸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7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옛날에 일어났던 일이었다. 그 당시 그녀의 심정이 어땠는지 그에게서 뭘 봤는지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의 마음이 그곳에서 멀어졌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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