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엄격함 X 소설적 상상력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알 수 없는 아홉개의 글.
저자는 일상의 작고 빛나는 순간과 삶과 죽음이 균형을 이루는 순간을 동시에 포착한다.
그리고 마치 과학을 탐구하듯 한 사람에게 일어난 가장 끔찍한 트라우마를 집요하게 기억하고, 미처 기억이 닻지 않는 곳에선
상상력을 발휘해, 영원히 잊지 못할 이야기로 재탄생시킨다.
사랑하는 반려견의 죽음, 불타는 건물에 갇힌 남자, 암 투병 끝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여자, 그리고 죽어가는 친구와 배신한 남편을
마주한 채 공포와 격투를 벌이며 지난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리는 이야기까지.
기억의 엄격함과 소설적 상상력을 결합한 대담한 도전 앞에서 이 이야기들의 장르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 날개의 소개글에서 발췌)
처음 만나는 작가인 조앤 비어드.
조 앤 비어드Jo Ann Beard는 미국의 에세이스트, 소설가, 시인,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며 현대 산문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가, 에세이 장르를 혁신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 진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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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은 한 권의 책에 소설과 에세이를 동시에 싣는 파격적인 결정으로, 작품에 깊이와 다양성을 더하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아가 어떤 작품이 소설이고, 어떤 작품이 에세이인지 구별하기 힘들만큼 경계를 넘나드는데 성공해, 시그리드 누네즈, 조너선 프랜즌, 제프 다이어 등 최고의 작가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소개글만 읽어도 관심이 간다. 편히 읽을만한 소재의 단편들이 아님에도 왜 제목은 그렇지 않은지 궁금하다.
마지막 밤
식사 중, 아니면 식사 직후였던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그녀는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하더니 멈추질 못했다. 부엌에서도, 차 안에서도 동물병원 진료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벽에 기대어 서서 그녀와 함께 바닥에 앉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울고 있었지만, 의사는 못 본 척했다. - P15
"저한테 부탁하신 적 있죠." 의사는 파일을 훑어보며 말했다. "때가 된 것 같으면 말해 달라고요."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뇌에 일종의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무언가가 자랐거나 변형되었거나, 우선 증상이 더 심해지는지 하루이틀 정도 지켜보죠. 하지만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의사는 말을 멈췄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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