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읽기 시작~~

궤도 -1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돌다 보면 너무 함께이고 또 너무 혼자여서 생각과 내면의 신화조차 이따금 한데로 모인다. 가끔은 똑같은 꿈도 꾼다. 프랙털들과 파란 구체들과 어둠이 집어삼킨 낯익은 얼굴들의 꿈, 감각을 강타하는 밝고 활기찬 검은 우주의 꿈. 날것의 우주는 야생이자 원시의 검은 표범이다. 사람들은 그것이 선실을 활보하는 꿈을 꾼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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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페레 공항‘을 보고 이제는 헬싱키로 간다.
헬싱키는 바다에 면한 도시이다.
헬싱키 최고의 숙소는 에어비앤비...
작가가 예약한 에어비앤비 숙소의 주인장 아리의 맛집 리스트는 나에게도 공유해주면 참 좋겠다.

˝7월의 헬싱키 날씨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름다워˝
덥지도, 춥지도 않고 화창한 날씨에 쾌청한 공기...
황홀하고 완벽한 날씨가 선사하는 반짝임을 만끽하며 헬싱키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여름엔 북유럽의 핀란드로 여행을 가야하나보다.
트램을 타고 에스플라나디 공원을 산책하고 핀란드 디자인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구경하거나 미술관, 박물관을 둘러보는 이런 코스가 걷거나 트램을 타고 모두 할 수 있다는게 너무 매력적이다!
그리고 무민을 빼놓을 순 없지~~^^*


에스플라나디 거리의 명품 매장 앞에 놓인 s 자 모양 벤치는 각자 s 자 모양의 둥글게 막힌 부분을 등받이 삼아 앉는 형태여서 서로 등을 맞대듯이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 할 수 있단다. 신기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이란 생각이 들어 그곳에 앉아 있는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상쾌한 공기, 미세먼지 따위 한 톨도 없는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신선한 볕을 즐길 수 있는, 즉 ‘완벽한 날씨‘를 기대할 수 있는 계절에 그곳에 넋놓고 앉아있는 두 사람...


세라믹 제품을 파는 아라비아 매장에서 우리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끈 건 역시 무민이었다.
매년 그 해에만 출시되는 무민 라인 머그컵이 있는데 올해의 테마는 호랑이었다. 노란 호랑이의 등 위에 무민마마가 올라타고 있는 일러스트가 무척 귀여웠다.
- P253

대체, 무민은 왜 이렇게 좋을까?
무민을 처음 좋아하게 된 건 물론 무민의 하얗고 둥•글넓적한, 특유의 귀여운 생김새 때문이었지만 원작을읽고 나서 더 겉잡을 수 없이 무민에 빠져들었고 결국은 꽤 큰돈을 들여 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전권을장만하게 되었다. 집 안에 마련해둔 내 작업실은 책상과 책장을 각각 평행한 벽에 붙여두었는데, 책장을 등지고 일하는 셈인 나는 그 이야기가 내 등 뒤에 있다는생각을 하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마음이 지치고허할 때면 「무민 코믹 스트립을 손 가는 대로 집어 보약처럼 펼쳐보곤 한다.  - P254

무민, 무민마마, 무민파파, 리틀 미이 등 무민 골짜기의 캐릭터들은 이미 유명하지만 그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들도 많다. 악당 중의 악당 스팅키, 외로움을 싫어하는 사교적인 녀석들인 니블링 같은 캐릭터들 말이다. 겨울 스포츠 중독자인 브리스크, 정신과사인 닥터해터 같은 캐릭터도 있고 이름이 따로 없는그냥 시인, 독재자, 고양이, 호랑이, 경찰서장, 등대지기도 있다. - P254

‘아카데미아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아카테미넨 서점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알바 알토가 설계한 서점으로, 스토크만 백화점 별관에 위치하고 있다. 나는 아카테미넨 서점이 스토크만 백화점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 깨닫고 엄청 놀랐다.  - P255

나는 여행하면서 서점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하는데비록 읽을 수 없는 언어더라도 소설 코너와 사회학 코너를 살펴보곤 한다. 그리고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책 한권을 산다. 뜻을 모른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언어와 문장이 들어 있는 좋은 기념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뭘 살까 고민하다 「핀란드인의 악몽」새 시리즈를 하나 샀다. 이번 시리즈는 내향형 핀란드인을 보여주는 핀란드 속담을 다룬 책이었다. 예진이느 아이들에게 줄 어린이용 무민 그림책을 샀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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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와 친구 예진의 15 년 만의 리유니언 핀란드 여행의 시작은 교환학생으로 와서 6 개월 간 머물렀던 쿠오피오이다. 쿠오피오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핀란드의 중남부 지방에 위치한다. 짧은 기간 머물렀었지만 추억이 잔뜩 서린 대학도시를 방문하고 그시절의 친구도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그 시절의 친구가 아직 그 도시에 남아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도시가 탐페레이다(지도를 보니 핀란드의 남서쪽 지역에 위치해 있고 쿠오피오보다 더 남쪽이다).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마지막 단편으로 수록되었던 <탐페레 공항>을 가기 위해서였다. 단편 <탐페레 공항>을 쓸 당시 작가는 그 작은 공항을 가본 적이 없었고 친구 예진의 이야기를 듣고 단편을 구상했다고 한다. 여러번 다시 쓰고 다시 또 고치고 하면서 여러 문학상에 출품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실망을 거듭했었는데, 마침내 첫 단편집의 마지막 단편으로 수록이 되었고 독자들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하는 작품이 되었다. 상상으로 그려낸 공항의 이미지와 실제 공항의 모습이 놀랍게도 마치 공항을 실제로 보고 썼던 것처럼 서로 교차하는 듯한 경험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리고 친구의 작품을 읽고 작품 속에서 그려진 것처럼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메고 와 셔터를 눌러주는 그 마음, 또 그 짧은 시간 동안의 감동을 위해 친구의 작품집을 짠~~ 하고 캐리어에 챙겨 넣어온 그 마음... 작가의 친구 예진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너무 따뜻하다. 입가에 내내 미소가 머문다.


<탐페레 공항>은 읽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단편집 찾아서 다시 읽어봐야겠다. 내 방엔 없는데 다락방 서가에 있으려나...




택시가 탐페레 공항 앞에 도착했고, 기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머무를 거냐고 물었다. 오래 기다려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30분이라고 말하자 택시기사는 공항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택시에서 내렸다. - P209

공항이라기보다는 버스터미널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규모의 1층 건물. 마침내, 내 눈앞에 탐페레 공항이있었다. 십여 년 전, 처음 소설 쓰기의 매력에 빠졌을무렵 미완성의 한글파일을 열어두고 구글맵으로 이리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보고 또 봤던, 그 공항이.
공항 앞 주차장에는 오가는 차량도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평생 꽤 많은 공항을 다녀봤고 이것보다 더작은 공항에 가본 적도 한두 번은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이 없는 공항에 와본 건 처음이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아예 없었다. 나와 예진이, 그리고 공항 앞 나무 벤치에 앉아 대기 중인 택시기사뿐이었다. - P209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이걸 이고 지고 왔지."
예진이가 한국에서부터 챙겨온 DSLR 카메라를 꺼냈다. 인천공항에서 내가 대체 이 무거운 걸 왜 가져왔느냐 묻자, 예진이는 탐페레 공항 앞에서 나를 휴대폰 카메라가 아닌 DSLR로 제대로 찍어주고 싶다고 했다. - P210

"작가님, 여기 서봐요."
나는 예진이가 시키는 대로 공항 건물 앞에 섰고 예진이가 셔터를 눌렀다. 나도 예진이의 카메라를 건네받아 예진이를 찍어주었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소설 속 진ㅇ면이랑 완전히 똑같아졋ㅇㅅ다. - P210

‘나 진짜 탐페레 공항에 와 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누구에게인지 모를 자랑을했다. 그리고 이내 뒤돌아 조금 더 걸어 입구로 다가갔다. 비행기 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자동문이 양옆으로움직이며 스르륵 열렸다. 드디어 탐페레 공항 안으로들어설 수 있었다. 전면의 벽이 전부 유리였고 그 너머밝은 하늘과 활주로가 보였다. 안쪽 역시, 정말 작다! - P211

소설을 쓸 당시에는 건물의 외관만 구글맵으로 참고했을 뿐, 공항 내부는 내가 상상해서 묘사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그려보았던 것과 정말 비슷했다.
백야의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통유리창, 보안검색대등 출입국 수속 시설 등을 제외하면 카페 겸 레스토랑하나와 키오스크 몇 대가 전부였다.
그 모든 것들이 닫혀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마저 소설과 똑같았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저가항공사의 비행기를 타느라 새벽 시간에 도착했다는 설정이라서 아무도 없는 공항을 묘사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서 있는 이곳 역시 소설 속 탐페레 공항처럼 모든 것이 닫혀 있었다. 건물 전체에 직원이며 손님이며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치 이곳은 소설을 쓰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공항 혹은 촬영용 세트장 같았다. - P211

내가 예진이의 말을 곱씹는 동안 예진이가 메고 있던 크로스백에서 또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짠, 이것도 가져왔지."
"미치겠다."
웃음이 터졌다. 예진이는 「탐페레 공항」이 실린 내소설집까지 야무지게 챙겨온 거였다. 예진이의 짐이 오버차지될 뻔한 이유가 다 있었다. 같은 계획형이라지만 체력이 있는 계획형과 없는 계획형의 짐 싸기 방식은 조금 달랐다. 체력이 있는 쪽은 잠시라도 필요한건 일단 다 싸가고 본다. 체력이 부족한 쪽은 무거운 짐, 부피가 큰 짐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해 보이는 건 다 챙기되 실제로 쓸 만큼만 계산해서 챙겨온다. - P213

그런데 예진이는 이미 읽은 책, 읽지도 않을 책을 단지이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챙겨왔다. 게다가 인터넷서점에서 사은품으로 준 책 표지를 입힌 무지 노트는 왜 챙겨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노트는 대체 왜.....?"
"음, 나 여기다가 일기? 같은 거? 쓸까 하고......."
그 말을 할 때 예진이 얼굴에 떠오른 머쓱한 미소가 말해주듯, 당연히 일기는 단 한 자도 쓰지 않았고, 무거운 무지 노트는 그 상태 그대로 새것인 채 지구에 탄소 발자국을 남기며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운명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하는 예진이의 표정과 그걸 귀여워하고 아끼는 내 마음을 꼭 어딘가에 글로 남겨두고싶다고 생각했다. - P214

넌 일기 같은 거 쓰지 마. 내가 써줄게.
나도 일기를 쓸 줄은 모르지만 어떻게든 남겨줄게.
나만의 방식으로,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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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세번째 단편인 <셰리>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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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날들》 조 앤 비어드 지음

지난달부터 책이 안읽히고 집중이 안된다.
왜 그런건지 명확하게는 모르겠는데 그런 상태다.
생각해보면 하나의 이유는 아닌, 복합적인 이유이지만 일단은.. 소설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매일 운동을 다녔더니 체력의 한계가 오기도 해서 평소라면 책을 읽었을 시간에 졸고 있는 날이 많아져서이기도 하고...
튀르키예 여행 직전에 감기에 걸렸었는데 여행최적기라는 5~6월에 비바람 몰아치고 강풍에 기온도 오르락내리락 널을 뛰고 그래서 감기는 나을 줄 모르고 악화된 상태로 귀국해 일주일을 골골대며 앓았다. 지독한 감기의 여파로 몸무게도 쑤욱 빠지고 만나는 사람마다 피골이 상접했다는 걱정스런 인사를 들었다.

그럼에도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도 하고 얼마 전 책도 구입했다. 물론 잘 읽히진 않는다. 책읽기도 체력이 필요하단걸 깨달았다. 이제 내몸은 젊지 않다. 잘 챙기자!

조 앤 비어드의 《축제의 날들》에 수록된 단편 <워너>를 읽고 있다. 주인공 이름이 ‘워너‘이다.
한밤중,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잠든 다세대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워너는 이 건물 5층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시끄럽게 소리치는 사람들의 외침에 잠에서 깨어난다. 워너가 사는 집 세 개 층 아래에서 불이 난 것이다.

˝캔털루프 멜론색의 일출, 줄무늬 소들, 데어리 퀸(아이스크림가게), 검은 플라스틱 산을 이루는 엄청난 쓰레기와 개 오줌 냄새를 제외한 모든 것들. 하지만 그날 밤은 그렇지 않았다. 어두운 거리는 춥고 상쾌했다. 모퉁이를 돌아 워너가 사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1991년 12월 19일 자정이 되기 직전, 바로 그 세기말적인 주택에서 또 다른 뉴욕다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벽 속 아주 깊은 곳, 워너가 사는 집 세 개 층 아래에서, 천으로 감싼 전선의 잔가지가 지글거리더니 마치 꽃망울 터지듯 피어나버린 것이다.˝(22쪽)

색다르고 새롭게 읽히는 문장들에 마음이 간다. 긴박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게 분명한데도 문장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다. 슬로우로 보여주는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빠르게 읽을 수 없었다.
˝비명소리와 연기 냄새˝ 목숨을 걸고 불과 연기를 피해 탈출해야 하는데 느닷없이 지금 여기에 이 순간들이 왜 필요한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기억‘들이 파고든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천천히 읽으면서 문장에도 집중하라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마침내,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9 년을 함께 산 고양이 ‘투‘를 왼팔에 끼운 후 반대편 건물의 창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날 밤 마침내 잠든 워너는 마치 심해 바닥까지 
1패덤씩 천천히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선이 마침내 점화되어 건물 위로 화염을 올려 보내기 시작했을 때, 워너는 아마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어둠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을 향해 손을 뻗기엔 그를 짓누르는 물의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 P23

아주 희미하지만 익숙한 향기가 났다. 어릴 적 오리건 숲속에서 캠프파이어를 할 때 맡았던 냄새였다. 따뜻한 커피, 축축한 양말, 무릎 위에 활을 놓고 그루터기에 앉은 채로 얼어붙은 워너.
"사슴은 말이야." 누군가가 말했다. "적어도 두 가지 감각을 이용해 확실한 위험 상황인지 판단한다. 시각, 청각, 후각 중 두 가지를 함께 쓴다는 거지. 그래서 확신이 없으면 그냥 거기 그대로 서있는다더라." - P25

시간은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워너의 방은 코딱지만 했고 비좁았다. 천장에 달린 전구 때문에 고문실처럼 값싸고 선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는 창가로 가는 길에 전구의 줄을 당겨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창틀을 들어올리려고 애썼다. 여닫이창 위쪽에 달린 환풍기 때문에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 환풍기 창살 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잡아당겨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화염처럼 그를 집어삼키려 하는 공황 속에서 끄떡 않는 환풍기를 뜯어내려 하는 자기 모습이 잠시나마 짐승같이느껴졌다.
그는 손을 놨다. 팔이 힘없이 떨어졌다. - P26

이제 입자들 사이에 산소는 전혀 없는 듯했다. 아무것도 나올게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산소가 생명이라면 무산소는 죽음일 테고, 연기는 독이 섞인 무산소였다.
멈춘 채로 숨이 막혀오는 바로 그 순간, 또 다른 생각이 불현듯 터져 나와 소용돌이치는 검은 기둥에 창백하게 걸렸다.
뛰어내려야 했다. - P36

워너는 어떻게 할 지 처음부터 끝까지 고민했다. 그러나 더는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드레날린이 머리끝까지 솟구친 상태였다. 워너는 투를 왼팔에 끼운 후 상체를 최대한 바짝 붙여 안전하게 고정하고는, 오른손 관절을 아래로 향하게 한다음 열린 창문의 나무 창틀 위에 놓았다.
워너는 투에게 말했다.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러고는 한 번에 올라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발가락이 창틀을 휘감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창틀 위에 발가락이 올라오긴 했지만 제대로 휘감지는 못한 상태였다. 발가락이 창틀을 완전히 휘감은 후, 워너는 도약했다.
워너의 두개골은 나무를 부러뜨렸고, 창문 유리는 기다란 단검 모양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무릎 높이까지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워너의 무릎은 돌로 된 창틀에 착지했고, 몸은 낯선 이의 아파트 안 침대까지 통과해 들어갔다. 모든 방에 불이 켜져 있었던 만큼 환하게 빛났다.

놀랍게도 이제 모든 것은 삽시간에 지나가는 영화 장면처럼 빨리 감기 됐다. 이쪽에서 보니 오렌지빛의 붉은 블라인드는 조잡하게 짜여 있었고, 바닥으로 떨어진 램프는 하얀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올록볼록한 이불은 끈적하게 워너의 어깨에 달라붙었다.
두려움과 난처함이 섞인 워너의 외침이 울렸다.
"아무도 안 계세요?" - P38

새벽 5시의 응급실에는 개미 한 마리 없었다. 뚜렷한 침묵이 지나간 후, 여덟 명의 사람들이 워너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를 찔러대고 만져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구급대원은 워너가 불타고 있던 건물에서 불이 나지 않은 다른 건물로 뛰어 들어간 덕분에 스스로 목숨을 구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동요했다.
"뉴스에 제보해야겠네요. 의사가 말했다.
"아뇨." 워너는 그중의 누군가를 쳐다보는 대신 그저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처나 치료해주세요."
젊은 레지던트는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일한지 꽤 오래됐다. 극한의 상황들을 겪어봤다. 안 좋은 상태의 환자들을 봤다. 머리에 총을 맞은 환자도 봤다, 기타 등등. 응급실에실려 온 환자에게 무슨 얘기까지 들어봤는지 상상도 못 할 거다.
"하지만 당신 얘기가 가장 놀라워요."
레지던트는 감탄했다. 프로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 사람 좀 여기서 내보내주세요." 워너가 말했다.
의료진은 차가운 소독제로 워너의 얼굴을 닦아줬지만, 얼굴을 뺀 나머지 몸은 여전히 그을음과 흙과 말라붙은 피로 뒤덮여 있었다. - P44

워너는 자신이 유리로 만들어진 듯 실체가 없고 거미줄처럼 얇고 가볍게 느껴졌다. 여전히 약에 취해 있었지만 충분치 않았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잇몸까지 아팠다. 고통이 사라지려면 오래 걸릴 터였다. 중환자실과 중간 치료실 복도의 길이보다,
소리를 잔뜩 키운 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수염 난 남자들로 가득한 병동 복도의 길이보다 더 긴 시간일 터였다.  - P56

본질적으로 구조적인 듯한 통증과 잔류 통증은 일종의 날것 그대로의 강제적인 행복처럼 수개월 동안 워너를 괴롭힐 터였다. 그가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완벽히 분리될 수 있을 때까지. 두개골 위쪽에 가해진 타격으로 인한 이명은 오래도록 워너 안에서 덜커덩거리며 잠시라도 워너가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을 혼동하게 두지 않을 터였다. - P57

2주 후, 건물 관리인 프랭크는 워너를 데리고 건물 뒤쪽으로 가서 화재의 잔해를 헤치고 건물 사이 틈으로 들어갔다. 워너는 무릎을 꿇고 프랭크가 발견한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폐쇄된 출입구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고양이는 몇 미터나 되는 자갈과 잔해를 뚫고 안전한 장소까지 자기 몸을 끌고 가 그곳에서 죽었다. 워너는 회색과 갈색 띠를 이룬 꼬리를 알아보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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