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연인들>
1978년 단편집으로 출간되었다.
1960년대... 현실의 벽에 막히고 결국 순응하며 이루어질 수 없었던 노먼과 마리의 사랑의 순간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나는 잠들지 못한 채 누워서 당신 생각을 해요."  마리가 속삭였다.
"나는 당신 때문에 살아." 노먼도 속삭이며 대답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아, 정말이에요. 나는 당신 때문에 살아요. 마리는 말을 마저 끝내지 못한 채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차에 서둘러 올라탔다. 노먼의 눈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그녀의 커다란 빨간색 핸드백이었다. 둘이 다시 만나려면 열여덟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 P450

... ... ‘목욕탕‘이라는 표지판을 발견한 노먼은 그레이트 웨스턴 로열 호텔의 목욕탕은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안을 들여다보았다.
"맙소사!" 그는 이렇게 속삭이면서 1960년대를 특별한 10년으로 만들게 될 멋진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그날 이후로 그는, 2층 목욕탕을 처음 들여다보던 순간을 기억할 때마다 그 당시에 경험한 기쁨의 전율을 매번 다시 맛보았다.  - P452

그들이 힐다와 관련해서 생각해야 할 것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그는트래블와이드에서든 아니면 다른 어디에서든 큰돈을 벌 가망이 없었다. 힐다를 잘 아는 노먼은 이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녀가 최대한 많은 이혼 수당을 요구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혼을 한다면 법에 정해진 대로 힐다에게 이혼 수당을 지급해야 했다. 힐다는 장신구를 만들어 봤자 푼돈을 벌 뿐인데 그 일도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그 이유로 해가 갈수록 동상에 쉽게 걸린다거나 관절염 증세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테고, 그것도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아무 핑계나 둘러댈 것이 틀림없었다. 힐다는 자기를 버린 그를, 길든 동반자 없이 살게 만든 그를 증오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이를 갖지 못하는 억울함에 그의 외도를 물고 늘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근거없는 인과 관계를 찾아낼 테고, 비통함의 가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볼 것이 분명했다. - P454

노먼과 마리는 1월 1일 점심시간에 호텔 목욕탕으로 갔다. 그는 둘이 제대로 만난 지 1년이 되는 날을 기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노먼은 화끈한 여자일 거라고 믿었던 그녀의 첫인상을 떨쳐 버린 지 오래였다. 마리는 육감적으로 보였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겉모습 속에 숨은 그녀는 고지식하기 그지없었다. 바싹 마른 데다 관능적인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힐다 역시 외모와는 딴판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이상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마리는 목욕탕에서 이렇게 고백했고, 노먼은 이런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웠다. 그는 이 문제를 대하는 그녀의 단순함이, 결혼할 때까지 순결을 지키려는 그녀의 바람이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마리가 다른 그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다고 수없이 맹세한 만큼 둘의 첫날밤을 앞당긴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 맙소사. 사랑해요" 마리는 목욕탕에서 처음으로 맨몸을 드러낸 채 속삭였다. "당신은 정말 다정해요." - P457

그날 이후로 목욕탕에서의 밀회는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노먼은 호텔 바에서 느긋하게 걸어 나와 드넓은 1층 라운지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2층으로 올라갔다. 5분 후에 마리가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가방 속에는 집에서 챙겨 온 수건이 들어 있었다. 
목욕탕에서 노먼과 마리는 늘 속삭이며 말했고, 
사랑을 나눈 뒤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앉아 물속에서 손을 잡은 채 미래에 대해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문을 두드리며 안에서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먼과 마리가 따로 호텔 바로 돌아올 때에도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없었다. 둘이 함께 사용한 수건은마리의 가방 속에서 콤팩트와 손수건을 눅눅하게 만들었다. 
한 달 두 달 지나가던 시간은 이제 1년 2년 단위로 흘러갔다. 

노먼 브릿과 마리는 둘이 같이 싫어하는 모든 생각을 목욕탕 안에서만큼은 잊어버렸다. 그들이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목욕탕을 지배하는 것은 사랑의 기운이었으며 사랑은 육체적으로 가까워지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노먼과 마리는 그렇게 믿었다. 사랑은 정도를 벗어난 그들의 행위를 용서해 주었다. 그들은 오직 사랑 때문에 호텔 직원들의 눈을 속였고 이런 행동을 할 용기를 얻었다. 노먼과 마리는 사랑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 P459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노먼은 고객들에게 티켓을 팔거나 마리를 저녁 기차에 태우다가도 문득 우울해졌다. 시간이 더 많이 흐르면서 노먼을 사로잡은 우울함은 더욱 강렬해졌다. "당신이 곁에 없을 때 난 너무 슬퍼." 어느 날 노먼이 목욕탕에서 이렇게 속삭였다. "더 이상은 못 견딜 것 같아." 마리는 집에서 그녀의 커다란 빨간색 가방에 담아온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았다. "부인한테 말해야 돼요." 마리는 전에 없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무 늦게 아이를 낳는 건 싫어요." 그녀는 더 이상 스물여덟 살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서른한 살이었다. "이건 나한테 공평하지 못해요."

노먼은 지금처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마리에게 공평한 일이 못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459

... ... 어느 날 밤, 힐다가 클럽에 간 사이에 노먼은 옷가지를 챙겨서 마리와 함께 킬번에 구해 둔 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로 갔다. 그는 힐다에게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았고,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쪽지 한 장만을 남겨 두었다.
노먼과 마리는 킬번에서 남편과 아내로 살아갔다. 그들은 화장실과 목욕탕을 열다섯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해야 했다. 이윽고 노먼 앞으로 법정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이 도착했다. 법정에 출두한 노먼은 그가 아내에게 비겁하고 비열하게 행동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힐다에게 규칙적으로 생활비를 보내겠다고 동의했다. - P465

노먼이 모든 일이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고 이야기할 때면 마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맞섰다. 1년 전쯤과 달리 마리는 더 이상 비탄에 빠져 있지만은 않았다. 그녀 역시 중압감에, 특히 리딩 집에서 그녀를 짓누르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먼은 결국 우리가 졌다고 말했고 마리는 울었다. 노먼 역시 잠시 눈물을 흘렸다. 그는 트래블와이드에 다른 지점으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고 그레이트 웨스턴 로열호텔에서 멀리 떨어진 일링으로 발령되었다. - P467

18개월 뒤 마리는 맥주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노먼이 혼자 지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힐다는 그에게 지난 일은 잊어버리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일링 집의 거실에 외롭게 앉아 있던 노먼은 힐다의 생각에 동의하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악감정은 갖지 말기로 해요." 힐다가 말했다. "서로를 속이지도 말고요. 클럽에서 만난 그 남자 있잖아요, 울워스 매장 관리자 말이에요. 그동안 그 사람이 여기서 지냈어요." 노먼은 악감정을 갖지 않기로 동의했다.
1960년대는 지나갔지만 그 떠난 자리에는 마리와 나눈 사랑의 경이로움이 남았다. 그가 마리와의 관계를 털어놓았을 때 힐다가 드러낸 멸시도, 킬번의 방 두 개짜리 더러운 아파트도, 전혀 즐겁지 못했던 리딩에서의 생활도 마리와의 사랑이 선물한 경이로움을 퇴색시키지 못했다. - P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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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내 아이의 아토피가
수천 명의 기적이 되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피어난 작은 꿈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이 된다. 간호사로 일하며 의료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정작 내 아이의 아토피 앞에서는 무력했다. 그 절박함이나를 움직이게 했다. 단 한 명을 위해 시작한 일이 수천 명의삶을 바꾸는 여정이 될 줄은 몰랐다. - P16

처음에는 작은 희망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다. 아이의 피부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시도가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왔다. 내 아이의 피부가 나아지자 소문을 들은 이웃들이 찾아왔고, 그들의 피부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 열 명... 도움받은 사람들을 통해 입소문은 꾸준히 퍼져나갔다. - P16

그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뜨겁게 했다. 전신 아토피로 유치원도 못 다니던 아이가 드디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는 소식, 전신 화폐상습진을 이겨내고 뽀얀 피부를 되찾아 전신사진을 자신 있게 보내온 아이의 모습, 부은 발 때문에 늘 슬리퍼만 신던 가장이 처음으로 구두를 샀다는 기쁜 소식들이 이어졌다. 수영장은 꿈도 꾸지 못하다가 마침내 가족과 물놀이를 다녀왔다는 아이의 이야기, 방 안에만 갇혀 있던 청년이 건강을 되찾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소식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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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지>
열세 살의 토리지는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소리에 걸맞게 푸딩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회색교복과 기숙사 넥타이는 언제나 정성스럽게 매듭지어져 있었으며 검정 구두도 언제나 윤이 났다. 반쯤 웃고 있는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한쪽으로 비딱하게 기울인 채 교실에 앉아있는, 좀 독톡한 면이 있는 아이였고, 따돌림을 당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이 짜증이 날 정도로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였다. 운동도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이상한 질문을 던져서 반응을 이끌어낸 것에 혼자 즐거워하는, 아무튼 여러모로 이상한 아이였다. 하지만 토리지는 정말로 순진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모두 인정하게 되었다.
윌트셔와 메이스 해밀턴, 그리고 애로스미스는 토리지와 나이만 같을 뿐 모든 면에서 달랐다. 세 명 모두 금발에 몸은 말랐고 이목구비는 또렷했다. 복장은 단정치 못하게 입었고 기숙사 넥타이도 되는대로, 구두의 끈도 마구잡이로 묶고 다녔다. 운동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해력도 뛰어난, 어른들이 보면 호감을 나타내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이 셋과 토리지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 지 생각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세 사람이 학창시절 저질렀던 행동으로 인해,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만행은 숨기면서... 토리지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능멸하고 경멸하면서 가족들끼리 모일 때마다 입방아를 찧어대고 모든 사람들이 만나보지도 못한 토리지를 싫은 사람으로 치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셋의 행동이 가족들과 자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폭로되면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어. 토리지." 애로스미스가 말했다.
"가드 하비에 대한 네 생각은 옳았어, 애로스. 신부복을 입고 있었지만 가드 하비는 뼛속까지 게이였어. 올드 프로스티도 마찬가지였고."
"그만요!" 메이스해밀턴 부인이 소리쳤다. 그녀가 느끼던 당혹감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변하고 있었다. 메이스해밀턴 부인은 남편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은 당장 어떻게 좀 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과 그의 두 친구는 가드 하비에 대한 토리지의 폭로에 잠깐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학창 시절의 기억이 단숨에 밀려와 그들을 덮쳤다. 기숙사, 식당, 흘끔거리던 눈과 편지, 경당 뒤에서 이루어지던 만남. 가드 하비가 동성애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터무니없는 농담으로 시작된 소문에 진실이 담겨 있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다닌 학교에 널리 퍼져 있던 위선과 통하는 면이 있었다. - P403

"사실 가드 하비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닐 거야. 나는 요즘사람들이 말하는 퀴어야." 토리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설명했다. "나는 남자들하고 성행위를 한단다."
"그만해, 토리지!" 애로스미스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잘 익은 딸기색이 되어 있었고, 그의 번들거리는 눈은 분노로 흔들렸다.
"오늘 밤에 초대해 줘서 고마워, 애로스. 우리 모교는 나 같은 졸업생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해야 돼." - P404

메이스해밀턴 부인과 윌트셔 부인 그리고 세 남자가 동시에 말하기 시작했다. 애로스미스 부인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떠들썩하게 취한 반면에 자기는 조용히 취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토리지가 한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어린 시절의 남편은 한때 그녀에게 보여 주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성적 욕구를 지녔던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더 이상 그녀에게 성적 욕구를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이제 자라서 어른이 되었을 남자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올드 프로스티는 <굿바이 미스터 칩스>의 주인공인미스터 칩스 같은 사람이었다고 남편은 여태껏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는 세인스버리 메이저나 가드 하비에 대해서는 들어 본적이 없었다. - P404

애로스미스의 큰아들 역시 당혹스러운 상황을 의식하고 있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와 같은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아이는 이제 막 밝혀진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있었다. 아이는 일찍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을,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들이 학창 시절에 다•른 남자아이들과 열정적으로 사귀는 모습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이 같은 사실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 아이는 헉하고 숨을 내쉬고 싶었다. 이제 막 밝혀진 사실은 저녁 내내 아이의 얼굴에 번져 있던 미소를 단숨에 앗아갔다. - P406

"그래, 나는 그만 가는 게 좋겠어." 토리지가 말했다.
메이스해밀턴 부인이 조바심을 내면서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남편이 서둘러 토리지를 보내거나 적어도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메이스해밀턴은 잠자코 있었다. 메이스해밀턴부인은 직접 나서서 말할 작정으로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을 바꾸었다. - P407

"피셔는 목재 사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토리지가 말했다. "가엾은 피셔는 벌써 죽었거든요. 그래서 우리의 멍청한 교장이 그날 조회를 열었던 겁니다. 메이스해밀턴 부인."
"조회요?" 메이스해밀턴 부인은 사무적이면서도 분노가 어린 목소리로 말하고 싶었지만 마음과 달리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물었다.
"아무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조회가 열렸었죠. 
가엾은 피셔가 아버지농장의 헛간에서 목을 맸거든요." 토리지는 이렇게 말하더니 애로스미스를 돌아보았다. "사실 내가 이 소식을 들은 건 가드 하비한테서야. 가엾은 피셔는 편지를 남겼지만 부모님이 전해 주지 않으셨어. 그건 너한테 쓴 편지였어, 애로스미스."
애로스미스는 테이블에 기댄 채 여전히 서 
있었다. "편지라고? 나한테 쓴 편지?"
"또 편지를 썼던 거지. 피셔가 왜 자살한 것 같아, 애로스?"
토리지는 애로스미스에게 그리고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둘러앉은 모두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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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전쟁터가 되어버린 몸들

사진가들은 아이들의 사진에도 디지털 수정을 가한다. 벌어진 치아나 흐트러진 머리칼은 아이의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특징을 포착한 것이라기보다, 인화하기 전에 바로잡아야 할 오점이다. 아이들은 점점 더 어린 나이에서부터 몸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예전에 유년기란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마음껏 꿈꿔도 좋은 마법의 공간이었지만, 이제 그런 공간은 사라졌다. 마치 훗날 아이가 수술로 외모를 다듬을 날을 예기하기라도 하듯이, 사진에 찍힌 아이의 모습을 컴퓨터로 다듬는다. - P174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의 시각적 역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가질 수 없다. 과거를 돌아보면, 자기 몸이 아니라 남들이 자기에게 바랐던 몸이 보이는 것이다. - P175

여성 유명인들의 공식사진도 마찬가지다. 점점 더 가는 허리, 더 큰 가슴, 풍만한 엉덩이 근육질 몸매를 뽐내도록 손질된 그들의 몸은 사람들의 시야를 가득 채우고,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재구성한다. 이제 우리는 지나치게 깐깐한 색안경을 낀 채 자기 외모를 평가하고, 자신의 흠을 객관화하여 바라본다. 얼룩덜룩한 피부색, 완벽하게 그어지지 않은 눈썹, 충분히 도톰하지 않은 입술, 너무 넙데데하거나 긴 코, 또렷하게 솟지 않은 광대뼈, 진한 속눈썹으로 둘러싸이지 않은 눈 등등, 우리 몸의 결함은 끝도 없다. 결함으로 간주되는 문제들 각각에는 화장이든 수술이든 알맞은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고난이나 억압이 아니라 자신을 개선할 기회로 여겨진다.
- P175

로레알(L‘Oréal)이나 니베아(Nivea) 같은 성공한 화장품회사들의 연간 성장세는 14퍼센트다. 그들은 점점 더 어린 고객들에게로 시장을 넓힘으로써 성장세를 높일 수 있었다. 덕분에 요즘은 여섯살밖에 안된 여자아이들도 화장을 하면서 논다. 11~12세가 되면 여러 상표에서 나온 다양한 립스틱과 블러셔들의 색깔이름을 알고, 자기만의 보물상자에 화장품 몇가지를 담아둔다. - P176

남성들도 물론 화장품회사의 표적이다(남성용 마스카라도 있다). 하지만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여주는 것은 이제 막 근대에 진입한 나라들이다. 중국에서는 화장품 사용과 서구식 화장법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고, 그것들은 서구화를 매끄럽게 밟아가는 과정인 것처럼 여겨진다. 화장품회사들이 광고와홍보에 지출하는 예산의 20~25퍼센트는 화장이 의무라는 것을강조하는 일에 투입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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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두 제국의 도시 이스탄불'에서는 이스탄불의 테오도시우스 성벽과 골드 혼, 아야 소피아, 오스만 건축의 결정체 블루 모스크를 둘러보았고, 크루즈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돌마바흐체 궁전과 톱카프 궁전을 보았고 보스포루스 대교 아래를 지나기도 했다. 수상 버스 페리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맞은편 아시아 지역으로 가는 여행을 따라가 보았다. 그 사이에도 여러 개의 모스크를 둘러보고 있다. 




유럽 여행을 다니다보면 처음엔 어떻게든 그 도시의 성당과 교회 이름을 기억하면서 다니지만, 나중엔 도시 따로 카톨릭 성당 이름 따로 마구 섞이고 섞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스탄불에도 이슬람 모스크가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많은 모스크를 만나다 보면 나중엔 이름이 헷갈리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벌써부터 들었다. 아직 다녀오지도 않았는데 걱정부터 하다니... 

루 모스크의 정식 명칭인 술탄 아흐메트 자미 -여기서 '자미Camii'는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Mosque'의 튀르키예 말이다 - 신성하고 우아한 쉴레이마니예 자미, 쉠사 파샤 자미, 예니 발리데 자미, 아틱 발리데 자미, 미흐리마흐 자미 등등의 이름도 어려운 모스크들이 줄줄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가 '모스크'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되는 둥근 돔과 미나레트라는 건축양식을 완성시킨 저 위대한 건축가 '미마르 시난'은 셀주크 튀르크 건축양식에 비잔틴의 건축양식을 혼합하여 오스만의 고전 건축양식을 창조했다. 특히 그에게 있어 아야 소피아는 창작의 근원이자 넘어서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아야 소피아가 오늘에 이른 것은 시난의 노력 덕분이라고 한다. 아야 소피아는 건축학적 문제로 끊임없이 보수를 해야했는데 거대한 돔의 하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시난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돔의 하단 측면에 거대한 버트레스(버팀벽)를 만들어 횡압력을 막았다. 지금도 아야 소피아에서 시난이 보수한 버트레스를 볼 수 있단다. 시난은 세 명의 술탄을 섬기면서 학교, 병원, 목욕탕, 다리, 수로 등 약 300여 개 이상의 건축물을 건설했다 하니 그야말로 놀랄만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 98 세까지 장수한 덕택에 50여 년을 현역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셰흐자데 자미, 쉴레이마니예 자미, 셀리 미예 자미 등이 시난의 작품이었다. 미마르 시난의 영묘는 쉴레이마니예 자미의 북쪽 끝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이스탄불 여행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아나톨리아 여행에 나선다. 아나톨리아는 오늘날의 튀르키예에 속하는 거대한 반도를 말한다. 우리가 세계사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한다면 '소아시아'라고 하는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며, 로마 제국 시기에 아나톨리아 반도 서부 지역에 아시아 속주가 설치되면서 아시아와 아나톨리아가 구분되게 되었다. 아나톨리아의 어원은 그리스어 단어 '아나톨레'에서 비롯되었는데 '아나톨리'는 그리스어로 '해가 떠오르는 방향', 즉 '동쪽'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스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해가 떠오르는 방향이었으니 그럴만 하다. 역시 '떠오르다'는 뜻의 라틴어 'Levare'에서 유래한 '레반트'나 'Oriens'에서 유래한 '오리엔트'의 경우와도 일맥상통한다. 위치상 북쪽에는 흑해, 서쪽에는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 남쪽에는 지중해와 접하고 있다(나무위키 참조). 머릿 속으로 대략적 위치를 그려보면서 기억하려고 노력해 본다.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흑해를 바라보았고 보스포루스 해협의 세 번째 다리인 야부즈 술탄 셀림 대교를 건너 아시아 대륙, 아나톨리아로 넘어갔다. 아나톨리아의 여러 문명을 간직한 도시들을 차례로 여행할 건데 먼저 에게 해의 이즈미르부터 남부 지중해의 안탈리아, 중부 대평원의 콘야, 아나톨리아의 고원 앙카라까지 이르는 여정이다. 

나도 벌써 설렌다. 내가 하게 될 여행은 이와는 반대인데 먼저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다음 날 바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카파도키아로 날아간다. 다음날부터 콘야, 아피온, 안탈리아, 파묵칼레, 이즈미르를 보고 마지막 이틀은 이스탄불 관광에 나서게 된다. 

한참 만에 읽게 되었지만 또 아쉽기만 한 게....  유럽의 도시 기행이라면서 제대로 된 사진이나 지도(?) 한 장 없는 불친절한 이 책의 아쉬운 구성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건지... 작가 혼자 가슴 벅찬 여행을 마치고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생각 끝에 일일이 검색해 가며 읽다 보니 진도는 한없이 더디게 나간다. 책소개를 제대로 읽지 않고 무작정 선택한 내 잘못이 크다...

1부 마지막 페이지에 딱 한 번 맘에 드는 구성이 있었다. 






P.S. : 실비아 님이 댓글로 알려주신 <다시, 아나톨리아의 도시를 가다>는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를 통해 아나톨리아의 흔적을 전하는 포토 에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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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2025-04-14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나톨리아의 도시를 만나다>를 읽었습니다. 전 외국처럼 글만 따라가는 걸 좋아해서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근데 <다시, 아나톨리아의 시간 속으로>를 출간했더군요.
사진 한 장 없다는 말씀을 하시길래 알려드려요^^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618218

-출판사 책소개 :
아나톨리아의 도시를 만나다》가 역사와 문명에 대한 서사를 친절하고 자세하게 담았다면, 《다시, 아나톨리아의 시간 속으로》에서는 사라진 문명과 남아있는 도시의 모습을 오가며 사진을 통해 시적 여운을 전한다. 포토에세이를 통해 아나톨리아에 남아있는 흔적을 만나고, 그 역사와 문명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인문에세이가 도와줄 것이다.

은하수 2025-04-14 17:32   좋아요 0 | URL
실비아 님 감사합니다^^
서사와 시적 여운을 주는 각 두 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 거였군요.
그걸 모르고 불평을...
참고해서 잘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