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풍경
내가 태어난 곳은 제주시 노형동 외곽에 자리 잡았던 ‘함박이글‘이라는 이름의 자연 부락이었다. 그곳은 정부 수립 당시 4.3 토벌군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잿더미로 변했던 300여 부락들 중 하나였다. 재앙에 회진이 되었던 그 마을들은 훗날 주민들의 손에 의해 대부분 재건되었으나 그러지 못하고 영영 폐촌이 되어버린 곳들도 더러 있었다. 내 고향이 바로 그러한 곳이었다. 잔인무도한 권력의 손이 그 장소를 먹칠해서 지도상에서 영원히 지워버린 것이다. - P123
한때 탑알 매립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이 맹렬히 벌어졌고, 객지에서 생활하는 나도 그 운동에 가담해 목소리를 보탠 바 있다. 하지만 자본과 자본주의적 인간들의 무차별 공세 앞에는 도무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 P128
그리하여 나는 고향을 잃었다. 오래전 군軍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에 의해 나의 태생지인 함박이굴은 주민들의 떼죽음과 함께 지상에서 사라져버렸고, 제2의 고향 역시 그 이채로운 현무암 바위들과 선반물의 매몰과 함께, 그리고 수많은 바다 생물의 떼죽음과 함께 두꺼운 콘크리트 층에 덮여 영영지워지고 말았다. 내가 살던 동네도 사주관상을 보는 점집들의 밀집 지역으로 변해버려 옛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 P128
자본은 과거를 소비해버린다. 자본이 휩쓸고 가는 곳에는 더이상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앞만 보고 무조건 내달리는 일직선의 진화론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무한 질주의 자본에게 자연이란 소비되기를 기다리는 일시적 존재에 불과하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찾아갈 때면 어쩔 수 없이 상실감에 빠진다. 고교졸업과 함께 그 섬 고장을 떠난 이후, 나의 삶을 인도해준 것은유년이란 과거와 자연의 빛이었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그시절, 나의 유년은 자연 속의 삶, 자연의 일부로서의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그 유년의 자연이 파괴되어 없어져버린 것이다. 버치 기여 파괴 - P129
야만적 선동의 추악함
"야만성의 역사가 없는 문명의 역사는 없다"고 발터 베냐민은 말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구가해온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참혹한 유혈의 세기이기도 했다. - P197
비명에 간 그 죽음 가운데 서럽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래도 제일 애통한 것은 아무 방어 능력 없는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한 경우일 것이다. 한 사회를 생물학적으로 멸절시키려 했던 제노사이드의 사례들은 문명의 가면을 쓴 야만의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우슈비츠, 난징, 히로시마, 킬링필드, 르완다, 동티모르, 보스니아의 학살과 국내 사건으로는 제주 4.3이 그 목록에 들어간다. - P197
얼어붙은 바다
후진국에 있어서 자유란 민중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위정자의 이데올로기로 전락되어 있다. 즉, 안정과 성장을 구실 삼아 자유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수호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것이다. 이 ‘수호하는 자유‘란 진열장에 박제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민중이 목숨을 바쳐야 함을 뜻하고 소수 특권층의 자유를 위해 대다수의 자유가 유보되어야 함을 뜻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유가 오히려 위정자의 통치무기가 되고 있음을 본다. - P228
민중이라는 바다는 그 위에 한 정권이라는 배를 태울 수도 있지만 풍랑을 일으켜 그 배를 뒤집어엎을 수 있는 무서운 잠재력도 있다는 경구가 있다. 후진국의 민중이라는 바다는 지금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 얼어붙은 바다를 누가 각성시키는가? 저 한겨울의 결빙을 도끼로 깨뜨리고 싱싱하게 살아 있는시퍼런 민중의 바다를 드러내는 작업을 누가 하는가? 셸리와바이런이 해주지 않는다. 오늘날 후진국에는 그런 낭만적인지성은 없다. 그들은 늘 어둡고 괴롭고 어눌하다. 그건 그들이 항시 체포의 위협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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