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표현해 보자. 나는 강의실에서, 파티(그녀는 파티에서 늘 일찍 자리를 떴다) 때 건너편에서, 수많은 점심 식사 자리에서 EF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나의 친구였고,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존재와 모범 때문에 나의 뇌는 기어를 바꾸었고, 나는 자극을 받아 세계 이해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나는 그녀가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 공책들을 읽었고, 그녀가 나에게 남긴 책의 모든 연필 자국을 살폈다. - P289

하지만 아마 이 모든 만남과 대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억- 기억도 결국은 상상력의 기능 가운데 하나다- 은 수사학의 비유와 같고 과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살아 있는 비유지만, 어쨌든 비유.
아마도 내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깨달았으니, 멈출 때가 되었다. - P290

그녀 자신은 어떤 것도 운에 맡기는 일이 거의 없었음에도, 내 생각으로는, 나에게 자신의 문학적 찌꺼기에 대한 책임을 넘김으로써 재미있는 방식으로 바로 그 일을 했다. "재미있는 방식으로"ㅡ그래, 그녀에게는 아이러니를 멋지게 구사하는 재치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291

그녀가 반쯤 지워버린 자취를 좇을 에너지나 관심이 나에게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운이었다. 또 내가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책‘을 재구축할 시도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도 운이었다. 내가 그녀의 삶을 재구축할 시도를 하느냐 마느냐- 그녀는 예상도 하지 못했을 텐데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 운이, 우연이 자기뜻대로 하게 놓아두는 것. 나는 지금까지 쓴 것을 서랍에 넣어두고, 어쩌면 그 옆에 EF의 공책들도 놓아둘 것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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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여자들에게 : 엉망인 여성해방론
다나카 미쓰 지음, 조승미 옮김 / 두번째테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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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있는 나‘와 ‘세상 어디에도 없을 여자‘를 기어코 찾으려는 몸부림에 엉망이 되어버린 우리 여성들에게 50 년 전의 다나카 미쓰가 보내는 힘찬 언어들에 정신이 번쩍 든다. 진짜 자유 해방이란 여성의 위대한 잠재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 엉터리 같은 적당함에 함몰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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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1-26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완독하느라 고생하셨고 축하드립니다!!

은하수 2024-11-26 10: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넘 좋은 책입니다.
선정해주신 다락방님께 감사해요~~~!
정말 안목이 탁월하심을 제가 새삼 느꼈답니다.
 

IV.자식을 죽인 여자와 여성해방

여자가 자연에 좀 더 가깝다고 보는 근거는 여자의 비생산적인 가치관, 사고방식이 문명이라는 것에 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의 비생산성은 여자의 존재 자체가 총체적인 것에, 여자가 남자처럼 사고를 기계적으로 분리하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남자는 이론(말)으로 총체성을 획득하려 하나, 여자는 그 존재 자체가 총체성을 갖고 있다.... - P205

여자를 중심으로 유지되던 과거 원시공동체에서도 인간이 우주를 가는 아폴로 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자의 안정도에는 변함이 없다. 요즘 경박하게 떠들어대는 ‘여성 상위 시대‘와는 아무 상관없이, 여자는 본래 여성 상위로 살아왔다. 삼종지도로 인해 어디에도 안주할 곳 하나 없이 궁지에 몰려 살던 시대에서조차도 여자는 강한 모습으로 불안정하고 교활한 남자들을 품으며 견디고 살아왔다. 우리 여자들은! - P207

흔히 여자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한다. 체제와 반체제의 정점인 존재, 혹은 그 접점 너머에 있는 여자를 어느 편이 데려갈 것인가에 따라 앞으로의 세상이 결정될 것이다. 여자의 안정성을 장점으로 한다면 급진적인 힘이 될 것이고, 여자의 보수성을 발휘하게 한다면 지배 체제의 기반이 될 것이라 본다. 강함도 보수성도 아주 조그만 계기, 상황으로 서로 뒤집힐 수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 같다.

_____<변소로부터의 해방> 중에서 - P207

여자의 생리 구조는 여자의 강함, 총체성의 원천일 수 있다. 단 그러려면 창조 활동으로 연결된 삶이 필요하다. 이런 전제 조건은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안기는 것 이외에 자아를 확인할 터전을 가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욕구만 갖고 있다면, 어떤 직업을 갖든 아무리 급진적이든 간에 여자는 아이를 낳는 기계로 ‘물화한 자궁‘이다. 

더욱이 더 큰 문제가 있다. 창조활동을 바라며 자아를 추구하는 여자의 자기 응고 방식은 남자처럼 서랍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그 흐트러진 서랍을 계속 고집하면서 자기 응고를 시도할 수 있을지가 문제가 된다. 여자의 총체성은 자아의 확산을 버티는 가운데 되살아난다.

그러니까 서랍 속에 있는 것을 전부 뒤집어 꺼낸 상태로 버티면서 여자는 자신을 총체적인 존재이자 자연의 일부로 만들 수 있다. - P209

한 여자의 몸에는 확산하는 (마음이 흐트러지는) 자아 즉 자신 속에 있는 자연을 계속 고집하는 것이 있기에 자기 응고력이 따라올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이런 예감은 ‘생각하는 자궁의 복권‘과도 같이 자연의 생명력과 여자를 하나로 만드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되풀이할 무수한 만남 속에서 여자는 늘 새롭게 될 수 있고 늘 되살아날 수 있는 존재이다. 그 원천은 여자의 자궁과 자연, 그 공포, 그 생명력에 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게 있어서 인간이 그나마 조금은 제대로 살 수 있다고들 하는데, 이런 말은 자연의 생명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것 같다.  - P211

내가 지금 말한 공포는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성추행범을 보고 느끼는 두려움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의 자궁에 있는 자연에서 비롯된 두려움이다. 그래서 모임에서 "항문 섹스를 할 때 무서우니 아프지 않우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강연자한테 떼를 쓰며 묻던 남자들의 엉터리 같은 소리, 그런 적당함이 싫다. - P212

중절, 출산, 또 매달 하는 생리 때마다 나의 자궁과 그 두려움을, 그 자연을, 그 생명력을 공유해야 하는 여자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자연에게 묻고 있는 그런 존재이다. 
여자는 자연과 호응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희망하는 진짜 자유 해방이란 무엇일까? 말할 나위 없이 숨겨진 천재성을, 위대한 잠재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다. 이 말은 외적인
압박이든 지식의 부족이든 자기 발전에 방해가 될 모든 것을 먼저 없애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 외적인 압박이나 지식의 부족이 완전히 방해가 된다고도 할 수 없겠다. 그러나 역시 발전의 바탕이며 주가 될 것은 나 자체. 천재성의 소유자, 천재성이 깃든 왕궁인 바로 나다. 우리가 들떠 있을 때, 숨겨진 천재성이 밖으로 나온다. 내면에 숨겨둔 천재성을 위해 우리는 스스로희생해야 한다.

히라쓰카 라이초《태초에 여자는 태양이었다元始, 女性太陽》(1971년) - P212

‘여자에게서 여자들로‘ 향하는 길은 먼저 스스로 자신의 자궁과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먼저 나와 만나야 한다. 남자의 문화, 즉 다른 경쟁자들과 경쟁하는 가운데서 자아를 찾을 수밖에 없게끔 하는 그런 문화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첫째 조건이다. 나의 자궁에 깃든 자연, 그 생명력과 자신을 하나가 되게 한다는 것은 풀 한 포기와 내 목숨을 걸고서 마주했던 옛 선조들의 그 모습 그대로 한다는 것이다. 

내가 품고 있는 모든 것을 걸고 즉 나의 서랍을 모두 다 열어 놓은 채로, 내가 있는 상황이나 자연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다. 그런 중에 자신을 확실히 찾을 수 있다. - P214

V. 신좌익과 여성해방

I장에서 진짜 속내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썼다. 체제의 가치관에 알랑거리고 싶은 자신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자신이다.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자기 모순 속에서 살아 있는 인간인 나를 변증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두 가지 상반된 속내가 서로 ‘내가 진짜 나‘라고 주장한다면 필연적으로 우리는 엉망인 상태인 자신을 겪게 될 것이지만, 그 엉망인 상태 가운데 바로 우리의 내일을 풍부히 품어 낼 수 있다. 그런뜻에서 나는 "자신의 어둠은 자신의 어둠일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어둠은 부조리한 것이니 체념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체제의 가치관에 따르고 싶지 않은 자신이란, 그 고통과 어둠에서 이끌어 낸 자신이다.
왜냐하면 고통을 느끼고 알면서 그 고통에서 체제의 가치관(빛)을 바라본다면, 체제의 가치관이 얼마나 빈약한지,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또 체제의 가치관을 좇아 봤자 자신이 죽 헛돌 수밖에 없음을 싫어도 이제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 P253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을 두고 감탄한 남자들에게서 내가 느낀 불편함, 나는 그 불편함을 필사적으로 지적하려 했고, 할 수 있는 만큼 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모든 것이 사실로 증명되고 말았다. 적군파의 탄생과 궤를 같이한 나의 여성해방운동. 그래서 나는 "그들이 애벌레가 나비로 되는 식으로 어느 틈엔가 제멋대로 과오를 키울 만큼 키우고,
심지어 반복해서 과오를 저질러 버렸다."라고,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들은 ‘나비에서 애벌레‘로 되면서 생명의 가능성을 변증법적으로 후퇴시켰다. 그들이 후퇴하는 모습을 눈치챘으면서도 그들에게 그저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만 했을 뿐인 나.
그래서 나는 남의 일처럼 적군파 그들의 과오를 논할 수가 없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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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이야기》 F. 스콧 피츠제럴드/빛소굴

지난 주 우리집 김장을 끝내고 엄마, 딸램네 배추, 동치미, 파김치 실어다주고 목요일엔 아랫집 어르신 댁 김장 도와 드리고 왔다. 이로써 올해 김장도 잘 마무리가 되었다.
김장 마무리 기념으로 남편과 강원도 양양으로 1박 2일 여행 가는 길~~
평창 지나 정선 진부령 지나는데 저 앞쪽 산으로부터 구름이 올라온다 싶더니 쨍한 하늘인데 약한 눈발이 날렸다. 지금은 대관령 터널 지나는 중인데 비가 내리는 건가? 분간이 안되게 강풍을 동반한 빗방울이 내린다.
산꼭대기 올랐으니 암것도 안오면 그게 이상한거지..ㅠㅠ
어... 또 금방 해가 났네~~^^
뭐야~~~ 이러면서 웃어 버렸다.

빛소굴에서 세계문학전집이 출간되었다.
1권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 《바질이야기 》, 2권은 헤밍웨이의 《닉 애덤스 이야기》이다. 단편집은 보통 하나의 단편이 표제작이자 단편집의 제목이 되는데 이번 《바질 이야기》는 그와 달리 사춘기 소년 바질 듀크 리의 모험과 달곰쌉쌀한 성장기를 그린 연작소설집이다.
언뜻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한 장편작가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피츠제럴드의 생계를 책임진 것은 160 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이었다고 한다.
달곰쌉쌀하다니 즐거운 여행길에 가볍게 읽어도 좋지않을까 싶어 가방에 넣어왔다.

다시 하늘이 쨍해졌는데 저 멀리 보이는 산과 바다 위엔 먹구름이 뚜렷이 자릴 잡고 있다. 오후에 강원도는 비소식이 있던데...


그런 파티

1
파티가 끝난 후 도도한 스티븐스 두리에이 한 대와 1909년형 맥스웰 두 대가 빅토리아 한 대와 함께 도롯가에 대기 중이었다.
사내아이들은 쾌활한 소녀들을 가득 실은 스티븐스가 부르릉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서너 명씩 짝지어 줄줄이 거리를 걸었다. 왁자지껄한 
무리도 있고, 말없이 생각에 잠긴 아이들도 있었다. 남들에게 뒤질세라 숨 가쁘게 주변 세상을 흡수하며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을 경험하는 열 살과 열한 살의 그들에게도 잊지 못할 오후였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는 10~11세의 아이들이 키스 게임을 한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그런 파티>를 거절했다. 그러자 피츠제럴드는 주인공의 이름을 바질 듀크 리에서 테런스 R. 팁턴으로 수정하여 단독 작품으로 팔려 했지만, 이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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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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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는 말, 그리고 누군가의 친절을 받아들이면 최대한 깊숙이 스며들게 하고... 그러면서 남은 어둠의 골짜기는 혼자 간직하며 나아가는 주인공들, 에이미와 이저벨, 그리고 지금도 조난당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세지... 뭉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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