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만든 사람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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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은미 작가의 이 소설집에 수록된「눈으로 만든 사람」,「나와 내담자」,「내게 내가 나일 그때」의 3개 단편은 '폭력 생존기' 3부작, 혹은 '친족 성폭력 생존기' 3부작(오혜진 평론가)이다. 이 작품은 물론 '정희진의 공부工夫 10 월호'를 듣고 읽게 된 거지만 평소 최은미 작가에 대해 품고 있던 나름의 평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나를 설레게 한다. 앞으로 최은미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게 될 테니까. 그리고 역시 정희진 샘의 추천은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 ㅡ배동근 님이 번역한 『고래가 가는 길』도 넘넘 멋진 작품이었지만 에세이와 학술적 고찰을 넘나드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짧은 리뷰로 갈무리 하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ㅡ 이것도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정말 나하곤 안 맞아... 이랬다면 앞으로 의심을 하게 될 테니까 나만의 감정으로 맺은 독서와 인생의 친구를 잃게 되는 거라 많이 속상했겠지!




세 단편은 친족 성폭력의 경험을 쓴 작품이라는 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세 작품이 마치 연작인 듯 겹쳐지는 부분들이 있어서 읽고 나면 각기 세 편의 작품을 읽었다기 보단 이어지는 하나의 작품을 읽은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친족내 성폭력 사건들에서 발견되는 유사점이 그런 착각을 불러오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눈으로 만든 사람」의 강윤희와 「내게 내가 나일 그때」의 유정은 각기 교사와 유명 소설가로서 직업도 다르고 성인이 된 후에 그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 전형적이지 않은데도 그러하다. 이는 여성 화자들이 통과해온 파괴적인 경험을 서술하는 방식의 동일성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개의 글들에서 일상성을 벗어나는 끔찍한 사건이 서술되고 이로 인한 고통의 양상들을 서서히 풀어나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친족 성폭력 생존기' 3부작의 경우 언어를 통하여 고통을 오히려 확장하였고, "사건 후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깊이 새겨져 있는 흔적들을 더듬어나가며 세계에 대응하는 인물의 몸을 드러낼 뿐", 섣불리 개입하거나 동일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전개 방식을 보면서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는 없다. 단지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말한 정희진 샘의 말에 결국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난 세 개이지만 하나처럼 읽히는 이 3 부작 중 「내게 내가 나일 그때」를 줄거리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기록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내가 나일 그때」는 친족 성폭력에 대해 쓴 소설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것임을 밝히고 난 후 결코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소설가 유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린 시절 고향 미산에 살던 시절의 창용이 오빠로부터 아주 오랜만에 전화를 받게 되고 유정에게 언제 한 번 고향에 놀러오라는 말을 들으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거기다 남동생 유태가 막냇 삼촌인 재상이 삼촌 - 성폭력의 가해자 - 의 소개로 미산에 땅을 계약하러 가기로 하면서 누나인 유정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는데, 유정은 어릴 적 당한 성폭력의 트라우마로 인하여 고향엔 절대 가지 않을 거라며 펄쩍 뛴다. 하지만 같이 동행하기로 하는데 고향 마을엔 가지 않고 고향 미산이 내려다 보이는 내린천 휴게소에서 창용이 오빠 가족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유태가 땅을 계약하러 간 사이 유정은 휴게소에서 창용이 오빠 가족들을 기다린다. 


내린천 휴게소는 백미터 높이의 교각 위에 세워져 있는듯 보이는데 그곳에 서면 고향 미산의 마을이 바로 앞에 보이고 허공에 구름 다리처럼 떠있는 듯하면서 비행접시 같기도 하고 야광 삼각자 같기도 한 기이한 형태의 견축물인데다, 내부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 뷰가 좋고  푸드코트, 어린이 놀이시설, 쇼핑센타 등을 갖추고 있어서 이 휴게소만 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유정은 유태가 땅을 계약하러 가고 남은 시간 동안 해바라기 센터 선생님에게 보낸 것인지 회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자를 쓰면서 요즘 자신이 힘들어하는 상황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자신이 일 년 전 이맘 때, 산문 한 편을 썼고 글이 실린 겨울호 문예지가 집 우편함에 도착하고 그러다 받은 글의 청탁 취지문에 적힌 문장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창작자로서 당신이 부딪히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유정은 자신을 가장 부딪히게 하고 굴절시켰던 것에 대해 쓰고 싶었고, 결국 자신이 썼던 산문이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담은 글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글을 쓴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유정은 이전을 생각했다. 그 산문을 쓰기 이전. 친족 성폭력 얘기를 쓴 자신의 소설이 자전적 경험을 모티프로 한 것임을 밝히기 이전. 재상이 삼촌이 전화를 하면 받고 들렀다 가라고 하면 들르기 이전."(247쪽)


   "유정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그 글을 읽은 것인지, 읽었다면 누가 읽고 누가 못 읽은 것인지, 그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글로 써서 발표까지 해놓고 왜 자신은 가족들한테 정식으로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직접 말은 못하지만 이렇게 썼으니 알아서 알아채주길 바라는 것인지, 계속 모르길 바라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247쪽)


   "분명한 것은 가족들은 모두가 이전의 상태에 있고 유정 혼자 이후의 상태로 와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쓴 뒤 유정은 더이상 이전처럼 그러려니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유정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상황은 이전 그대로였다. 그 불일치가 자신을 어떻게 휘저을지 유정은 그 산문을 송고할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유정은 그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가 일단락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248쪽)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유정은 자신을 충분히 방어할 수 없는 어린 나이였고 가해자는 어른 남성(재상이 삼촌)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그 일에 원인을 제공한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일을 내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는 것도 납득하고 충분히 받아 들일 수가 있는데 "자신이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259쪽)고 "죄책감은 가까스로 넘어설 수 있어도 수치심은 아직도 거대한 벽이었다."(같은쪽)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러니까 나는 왜 이러냐구요, 선생님. 나는 왜요. 왜 나한테. 왜 나는."(259쪽) 혼자 있을 땐 끊임없이 처음으로 되돌아가면서 거대한 벽을 마주하는 기분이었고 "그때 무엇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어떻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았기 때문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258쪽) 그 곳 상담소에 전화를 하게 된다. 유정은 이제 더 이상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타인으로부터도 자신으로부터도 자신을 지켜낼 수 없었고 삼십 년 전의 시간들도, 일 년 전부터 시작된 새로운 상황도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동안 전전해온 육아 우울증과  부모 치료와 부부 상담과 만성적인 정신질환들이 아니라 어려서 받은 성학대,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마주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같은쪽)




그런데... 왜? 왜 아무도 유정에게 사과하지 않는 것일까? 가족이라면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왜 아무도. 심지어 엄마조차도 동생 유태도 재상이 삼촌도! 알았다면 알았던 대로, 몰랐다면 몰랐던 대로. 재상이 삼촌에게 당한 성폭력의 경험을 알고 있을 텐데. 유태는 왜 아무렇지 않게 재상이 삼촌을 말하고 만나고 유정에게 고향에 같이 가자고 말하는 것일까? 가족들 누구로부터도 그와 관련해서 어떠한 연락도 받은 적 없는 유정. 미투 운동이 불 붙은 듯 일어나 여성들의 언어와 폭력의 경험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말할 수 없었던 친족 내 성폭력의 문제는 여성 피해자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야기하는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 결코 쉽게 말할 수 없고 공개할 수도 없다. 결국 그 친족 내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두려움을 감수하고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가 될 지 너무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최은미 작가의 말을 잠시 요약해보자면, '친족 성폭력을 나의 경험이자 개인의 문제로만 갖고 있었는데 '가족내성폭력' 해시태그가 그 당시 트위터를 통해서 제기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걸 공적으로 발화하고 그것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계속 논의되는 장면을 보니까 나도 이것을 공적인 문제로 제기할 수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정희진의 공부 10월호, 오혜진 평론가의 말 참조함)고 명백하게 작가의 변을 밝힌 적이 있다.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듯 유정은 작가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 인물이다. 하지만 말이 넘치는 시대에 말을 하고 글을 썼는데 돌아오는 것은 침묵 뿐이다. 이것이 유정은 더 견디기가 힘들다. 창용이 오빠를 만났을 때 유정은 말한다. "내가 얼마 전에 술을 끊었거든요." ... 술을 먹으면 자꾸, 죽고 싶어진다는 유정의 말에 유태의 얼굴은 더 이상 웃지 않고 일그러진다. 유정은 휴게소의 난간을 붙잡고 서서 고향 미산을 앞에 두고 바라본다. 고향이 바로 보이지만 갈 수가 없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는 내린천 휴게소는 불안해서 조증과 극심한 울증을 동반하는 현재의 유정의 심리를 나타내는 중요한 메타포다. 유정은 지금 지독한 울증의 상태를 겪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을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유태를 자신이 얼마나 괴롭히고 싶어하는지, 얼마나 피 흘리게 하고 싶어하는지를 깨닫는다! "자신이 마침내 무너지는 그 순간에 가장 힘들어할 사람이 유태이길 유정은 바랐"(261쪽)던 것이다.  




내가 이 단편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고 문제적이라고 생각한 말은 이것이었다. 바로 유태의 이 말...!


"누나는 한 번이라도, 소설보다 먼저, 가족들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265쪽)

"누나한테 누나 소설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같은 쪽)

유정이 이 말을 들었을 때 유태가 말하는 소설이 자신의 모든 소설을 말하는 것인지 작년의 그 산문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유정이지만 자신의 소설들로 인해서 가족들이 가해자가 되고 다치는 것을 결코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대체 어떤 정신 머리를 가진 자식이면 저딴 말을 할 수가 있는 건가 싶어서 너무 너무 화가 난다. 남자라서 그런 일을 안 당해봐서 모르는 건지, 알려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너무 오래된 일인데 아직도 그러는 게 이해가 안되는 것인지 도통 그 가족들의 무반응을 용서할 수가 없는 거다. 유정의 모든 소설을 읽었다면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인데. 고향 마을에 같이 가자고 전화하는 사이라면, 최소한의 애정을 가진 누나라고 생각한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을텐데, 단지 누나가 신경질적인 성격이어서 주위 친척들과 소원한 관계를 맺는 거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넌 동생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다. 나였다면... 이런 동생이어서 이런 엄마여서 인연을 끊어버리고 말았을까? 혼자 극심한 고통 속에 남겨지는 것은 또 얼마나 두렵고 끔찍할까. 유정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새삼스럽게 사과를 받고 싶은 것도 아니다. 유태를 계속 보고 엄마를 계속 보고, 단톡방에 올라오는 조카 사진을 보고 웃고, 딸 소은의 소식을 전하며 "몇 달에 한 번이라도 둘러앉아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264쪽) 유정이 두려운 것은 가족들을 안 보게 되는 것, 무언가를 체념한 채로 가족들을 보면서 그런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것이고, 유정이 원하는 것은 어떤 분열도 겪지 않고 제정신으로 가족들을 계속 보는 것이다. 하... 정말 너무 어렵지 않나. 그러니 유정은 극심한 정신질환을 겪으면서도 가족들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엔 자기 자신의 몸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만다.




동생 유태의 저 말을 들었을 때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오로지 여기에 서 있을 수가 없다는 생각만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버틸 수 없다고,이제 더 이상 한 방울의 기력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낀다. 반병의 와인만으로도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자신을 오래도록 파먹고 있던 그 마음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유정은 알았다. 그래서 "알고 있어서, 유정은 계속, 계속, 소리조차 나지 않아서, 계속, 가슴을 쳤다."..."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채로, 계속, 가슴만 내리찍었을 뿐인데, 찍어버렸을 뿐인데,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찍어버렸을 뿐인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리고..."(269쪽) 유정의 이상 상태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창용이 오빠의 아내, 베트남에서 온 디엔 씨였다. 머나먼 이국에서 행복을 꿈꾸며 떠나왔지만 나이차도 많이 나고 한국 여자들처럼 세련되지도 교육을 잘 받은 것도 아니면서 한국말 좀 할 줄 안다고 한국 여자들처럼 사치나 부리려고 한다는 타박을 받으면서 삶을 견디고 있는 디엔 씨. 가부장적인 분위기의 창용이 오빠네 가족을 보면서, 유정과 디엔은 서로에 대해 잘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억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본 것이었다. 디엔 씨는 차를 타고 떠나면서 쓰러지는 유정을 낚아채 듯 차에 태워 미산에 있는 자기의 집으로 데려온다. 


다음 날 새벽, 잠에서 깬 유정은 방 밖으로 나와 마당에서 저만치로 보이는 교각 기둥을  올려다본다. 유정은 동네를 산책 하면서 경기북부 해바라기 센터의 선생님을 처음 만났던 날을, 진술녹화실 테이블에서 문서 작성이 이루어졌던 첫 시간을, 정확하진 않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4학년 여름방학 이후였던 것 같다고, 가해자의 이름을 직접 적은 것도, 너무도 익숙하고 낯선 그 이름을 적었던 그 시간을 시간이 아무리 지나고 환갑 쯤이 되더라도 자신이 처음 센터에 전화했던 2019년 10월 4일, 그 가을을 기억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신호가 가고 네, 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어떻게 찾아와야 하는지 적힌 웹 발신 문자를 받던 과정 모두가, 자신에게 얼마나 절실한 응답이었는지를" 기억하게 될 거라고...! 




마침내 유정이 고향 미산 마을에 단단히 발을 디딘 것도 너무 좋았고 그 매개자가 오히려 억압받고 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가지고 당당하게 헤쳐나가는 베트남 여성 디엔 씨여서 더 좋았고, 어젯밤의 음주로 정신을 못차리고 뒷자석에 널브러진 채 자고 있는 유태를 태우고 돌아가는 길에, 맑은 정신으로 운전석에 앉아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리며 힘차게 출발하는 그 모습에서 한층 단단해진 유정이 마침내 '내게 내가 나일 그때'를 향해서 출발하는 것 같아 또 좋았다. 결국 나의 상처는 그 누구도 대신 아파할 수 없고 내 스스로 일어설 수 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유정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표제작인 「눈으로 만든 사람」과 「나와 내담자」,「내게 내가 나일 그때 」 3 작품이 '친족성폭력 생존 3부작'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가 바로 피해 여성들이 피해자로서 전형적이지 않고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일 것이고 그래서 읽고 나서 마냥 가슴이 답답하지 만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작품을 앞으로 계속 계속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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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파스칼 키냐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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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말한 파스칼 키냐르의 문장에 빠져 단번에 읽어 버렸다. 침묵과... 이별과... 상실, 그리고 음악音樂과 시詩의 무심함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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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4-12-04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키냐르 책...4권까지는 미친듯이 빠져서 읽었는데...
5권 넘어가니, 경향이 넘 비슷.. 별로인 작품도 있고...세상의 모든 아침은 키냐르 책 7권 읽은 바로...평타
최고는 은필한 생..이었습니당~~

은하수 2024-12-04 17:27   좋아요 0 | URL
오....! 키냐르 작품을 많이 읽으셨네요~~~^^
전 키냐르 책은 처음인데 너무 짧고 절제되어 있는 언어들로 쓰여져 잇어...
솔직히 아직은 뭐라 평가를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절제된 언어 속에 인생의 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한 두 작품 더 읽어보게 될 거 같아요
 

《로버트 카파》 X 김경훈, 아르테 클래식클라우드

책 보며 졸고 있다가 깜짝 놀랐네!
이 야심한 시각에 기습적으로 계엄령 선포해서 잠못 이루게 만들고 국민들의 불안감만 증폭시켜놓고선 오로지 국민들의 안녕과 행복을 말하는 대통령을 어떻게 믿으라는건지...
정말 역사의 한페이지 속에 들어와 있다는 실감이 확 난다. 이대로 대통령 임기를 끝내고 나면 이 대한민국이 어찌되어 있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다소 어이없는 공화군의 실상은 《카탈로니아 찬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총알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 소총 하나만˝을 배급받은 정도가 아니라 그 소총마저 지급받지 못한 국제여단 병사들과 번갈아 쏘아야만 했다고 해서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정예병으로 훈련된 프랑코의 군대는 독일, 이탈리아로부터 막대한 무기 지원을 받고 있었고, 반대진영인 공화군과 국제여단 소속의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았던 오합지졸의 싸움은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던거 아니겠는가 말이다. 거기다 스페인을 공산화하려는 러시아의 획책에 속수무책이었으니 그 혼란이야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고 그 어이없는 전쟁에 죽어나는건 결국 힘없는 국민들이었을건 불을 보듯 뻔한 이치!

그나마 조지 오웰은 버마에서 경찰 근무 경험으로 총이라도 쏠 줄 알았지만 그 외의 많은 국제여단 소속 병사들에게 있는 건 오직 ‘열정‘뿐.
애초에 싸움이 안된다.


여기도 저기도 결국 죽어나는건 힘없는 국민들...
이래서 위정자를 잘 뽑아야 하는거다.


낭만이여 안녕

카파가 다시 찾은 스페인 내전은 더 이상 낭만적인 전쟁이 아니었다.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군대에 상대가 되지 못한 공화군과 국제 여단의 패색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또한 서구 사회가 공화군 측에 부여했던 자유의 십자군이란 이미지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 P190

스탈린의 비밀 지령을 받고 온 듯한 러시아의 의용군들은 공화군 측의 승리보다도 스페인에 공산주의 국가를 설립하고자 하는것에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공화군 진영에서는 무자비한 군력을 휘두르는 비밀경찰들에 의한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스페인에 이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과 불안에 휩싸이게 됐다. - P190

훗날 『1984』와 『동물농장』을 쓰게 되는 조지 오웰 역시 이러한 의혹과 불안에 휩싸였던 이들 중 하나였다. 식민지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경찰로 근무하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폐해를 몸소
목격한 뒤 제국주의를 혐오하여 무정부주의자가 된 무명의 작가조지 오웰에게 스페인 내전은 이론을 현실의 운동으로 확장시킬수 있는 현장이었다. 

스페인의 공산주의 정당인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POUM) 의용군에 배속된 조지 오웰은 총알도 제대로 나가지 않는 소총 하나만을 들고 아라곤 전선에 배치받았다. 의용군의 조직은 매우 엉성했으며 보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장교에서 사병까지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았으며 계급으로 인한 차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 P190

전투다운 전투는 하지 못한채 추위와 굶주림으로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전쟁이었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 헌신한다는 순수한 이상과 희생정신으로 뭉쳐 있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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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X 김경훈, 아르테클래식 클라우드

오늘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이고 파렴치한 비상계엄령의 선포를 목도하였다.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버젓이 내려놓고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말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


‘그래, 이제 카파가 옆에 없어도 난 내 몫을 오롯이 해낼 수있어‘
아마도 당시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 마드리드에서 송별회를 합시다. 삼페인이 준비되어 있를 합시다 있어요."
그러나 이러한 만족과 안도의 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퇴각 중이던 공화군 탱크가 운전병의 조종 미숙으로 타로와 일행이 타고 있던 차량의 측면을 들이받았다. 육중한 탱크의 충격에 타로는 튕겨나가면서 복부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사고를 당한 타로는 곧 야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타로의 내장기관은 심하게 훼손됐고 수술을 마친 의료진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타로가 통증을 덜 느끼도록 다량의 모르핀을 놓아 주는 것밖에 없었다. - P177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사고를 당한 후에도 타로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의식이 또렷한 만큼 타로는 고스란히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직감하며 타로는 의사에게 프랑스에 있는 카파와 「수아르」의 편집장에게 전보를 쳐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자신의 카메라가 괜찮느냐고 계속 물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를 간호했던 간호사가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웠다고 회상했던 타로는 다음 날 새벽, 세상을 떠났다. - P177

파리에 있던 카파는 신문을 통해 사랑했던 연인의 죽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카파는 파리에서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갈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페인에서 타로와 함께 취재한 사진들을 「수아르」에 넘겼고 남은 사진들은 다른 잡지사에도 판매할 수 있었고 제법 괜찮은 돈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잡지사로부터 일감, 즉 취재 의뢰를 먼저 받아야 했어서 카파는 스페인행을 지체하고 있었다. 
조만간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 타로와 재회하는 것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카파에게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진 것이었다. - P178

프랑스의 「뤼마니테L‘Humanité」에는 ‘프랑스 기자 타로, 브루네테 전투에서 사망‘이라고 실렸다. 타로가 세상을 떠나고 하루가 지난 뒤였다. - P178

타로를 혼자 스페인에 남겨 놓고 오면서 절대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며 타로와 마지막 여정을 함께했던 앨런에게 타로를 보살펴줄 것을 부탁하고 왔던 카파에게 타로의 죽음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다가오는 8월 1일은 타로의 생일이었고, 예정대로 타로가 26일 스페인을 떠났다면 그 둘은 파리에서 재회하여 사진기자로서 우뚝 서게 만들어준 스페인에서의 성공을 자축하며 멋진 생일 파티를 함께 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로는 시신이 되어 파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 P178

주체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카파는 타로의 관이 묻히는 파리의묘지에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브레송은 자신의 친구 카파가그처럼 슬픔에 빠져 있는 모습을 이전에도 이후에도 보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그는, 카파는 타로의 죽음 이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 P180

한편 그녀에게는 전쟁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종군 사진기자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그리고 그녀가 브루네티에서 남긴 훌륭한 사진들은 타로가 카파 없이도 온전히 자립할 수 있는 보도사진가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진과 그녀의 죽음은 이만 오천 명의의 공화군 측 사상자가 나온 당시의 전쟁의 생생한 증거가 되기도 했다. 아름답고 젊은 여성의 사명감과 용기가 엿보이는 죽음은 새로운 전설의 탄생이 되었다. - P183

게르다 타로는 파리의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오스카 와일드, 프루스트, 발자크, 쇼팽 등의 저명한 인사들의 무덤이 있는 페리 라쉐즈의 한편에 그녀의 작고 가냘픈 몸만큼이나 조그만 타로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 P183

타로의 무덤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당신의 무조건적인 투쟁은 아무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프랑스어와 카탈루냐어로 쓰인 비문이 있고,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카파와 함께 있누 타로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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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언론사 소속의 사진기자Staff Photogjournalist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이었던 당시에 언론사들은 사진 에이전시를 통하거나 프리랜서 사진가로부터 필요한 사진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곳에 앙드레 프리드먼이 비집고 들어갈 곳은 많지 않았고 설사 일이 주어지더라도 인지도가 거의 없는 그에게 주어지는 사진 원고료는 언제나 적었다. - P120

이러한 현실을 간파한 타로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게 된다. 그것은 바로 제대로 된 회사를 차린 뒤 앙드레의 사진을 유명한 사진기자의 사진으로 속여서 더 비싼 값의 원고료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리콘 밸리의 수많은 창업자들이 차고에서 PC를 가져다 놓고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듯 타로와 카파는 사무실 겸 숙소로 사용할 수 있는 파리의 작은아파트에서 카메라와 암실 장비와 타자기를 가져다 놓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 P121

그리고 이 회사에는 암실 기사인 앙드레 비서이자 영업 업무를맡은 게르다 타로. 그리고 미국에서 온 유명한 사진가 로버트 카파씨가 근무하고 있었다. - P121

"미국에서 온 사진가 로버트 카파. 이름만큼이나 세련된 사진을 촬영하시는 이분은 무척 바쁘시답니다. 언제나 파리의 취재 현장에서 사진으로 특종을 잡아내시느라 바쁘시지요. 그러니 그분을 만나시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로버트 카파씨가 촬영한 사진은 유능한 암실 기사 앙드레가 언제나 완벽하게현상 인화를 한답니다. 그리고 바쁘신 로버트 카파 씨를 대신해앙드레 군이 사진을 배달해 드리고 사진 원고에 대한 충실한 설명도 해드릴 겁니다. 그는 로버트 카파 씨의 수족 같은 사람으로 카파 씨가 촬영한 사진들에 대해서는 카파 씨만큼 잘 알고 있거든요. 사업에 대한 연락은 저 타로에게 주세요. 불어와 독일어 그리고 스페인어도 할 수 있는 제가 여러분들께 언제든지 응대해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사진에는 저 타로가 깔끔하게 타이핑한 충실한 캡션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 P121

그런데 로버트 카파는 누구일까?
물론 로버트 카파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타로의 주도로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로서 사진 원고료를 더 받아내기 위한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거짓으로 시작된 가공의 인물이 나중에는 앙드레의 자아와 완벽히 일체화 되어 앙드레가 로버트 카파가 되지만 말이다. 타로와 앙드레가 이러한 가공의 사진가의 이름을 로버트 카파라 지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 P122

카파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진가가 된 뒤 1947년 미국의 라디오에 출연한 카파는 당시 자신이 찍은 사진을 두 배 되는 가격으로 팔기 위해 유명한 미국인 사진기자 행세를 했고, 미국 사람이름처럼 들리는 로버트 카파를 생각해 냈다고 본인이 직접 토로한적이 있다. 또한 영화광이었던 카파가 당시의 유명한 할리우드의감독이었던 프랭크 카프라의 이름에서 카파를 따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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