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봄날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6
오 헨리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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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체질상 음식을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관심도 많아서 여기저기 채널을 찾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해보기도 하고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서 자주 먹어본다. 색다르면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도 식구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한 두 번 해보다 그만두는 경우도 다반사이지만 그럼에도 평소 우리 집에서 해 먹던 스타일대로가 아닌 새로운 방법을 살짝 가미해서 변형한 음식들의 반응이 좋을 때는 더없이 기분이 좋고 뿌듯해서 그 레시피대로 정착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책으로 읽게 되는 음식이야기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넘넘 궁금하고 그 맛이 어떨지 상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우리나라 음식이나 먹어본 음식이 아닌 경우에는 그 맛을 상상할래야 상상이 되지 않고, 그 음식이 이야기의 전개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는 특히 그 맛이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궁금증은 외국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누구나 겪는 현상일 것이다.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외국 음식의 메뉴판을 보면 정말 친절하게도 그 음식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인지 구구절절 친절하게 나열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소설 속에서도 뭐가 들어가고 그 재료는 어디에서 온 것이고 어떻게 조리가 되고 어떤 방식으로 숙성이 되고 등등 굳이 이런 거까지 다 써놔야 하나 싶은 것들까지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다. 어이쿠야! 내가 그걸 읽는다고 해서 맛을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재료라면야 음... 그럼 이런 맛이겠군 싶다가도 결정적으로 모르는 양념이나 향신료가 나왔다간 다시 그 맛은 미궁으로 빠지기 일쑤이고 거기에 조리법마저 구구절절 세세히 설명하는 단계라면... 다시 머리를 부여잡고 "아유 머리 아파 이게 대체 뭐람!"을 외치며 관심도는 나락으로 쳐박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곁들였을 때 내가 아는 요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너무 간단하지만 맛있게 굽기가 의외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스테이크. 지난주 코스** 갔을 때 스테이크용 고기가 넘 좋아보여서 대량 구매하게 되었다. 고기 상태가 너무 좋아서 소분하여 냉동시키기가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주말에 식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구워 먹었다. 날이 좋을 때는 밖에서 숯불을 피워 구워 먹으면 다른 양념이나 가니쉬가 거의 필요가 없고 기름장만으로도 그야말로 금상첨화지만 지금은 추워서 불 피우기 엄두가 안나 따뜻한 실내에서 구워 먹기로 했다. 별거 아니지만 그날의 레시피를 적어보자.


   "먹기 한 시간 전에 스테이크용 소고기(미국산)를 꺼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블랙페퍼를 뿌려 시즈닝해두었다가 팬을 센불로 달군 후 스테이크를 앞뒤로 돌려가며 구워준다. 이때 염도가 낮아 스테이크용 소금으로 좋다는 잘츠부르크 소금을 뿌려준다. 스테이크에서 나온 기름을 이용하여 가니쉬를 구워준다. 가니쉬용으로는 아스파라거스, 마늘, 양파, 브라운송이 등을 준비했다. 중불에서 구워 접시에 세팅하고 파슬리 가루를 뿌려준다. 소금장을 내도 좋고 쥬세페 주스티 모데나 5 메달 20 년 산 발사믹을 종지에 담아내도 좋다." 


그야말로 식구들이 순식간에 흡입을 했다는 건 말하나 마나!

여기서 잠깐... 내가 만약 이 잘츠부르크 소금과 주세페 주스티 모데나 5 메달 20 년 산 발사막의 맛을 모른다면.... 그러면 어땠을까. 난 어떤 생각을 할까. 소금이 다 그렇지... 혹은 발사믹이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면서 상상이 안되니 답답하지만 두루뭉실 그냥 넘어가겠지. 사실 잘추부르크 소금은 내가 생각하기에 염도만 살짝 다를 뿐 일반 소금과 별 차이를 모르겠고 발사믹은 분명 맛이 천차만별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레시피를 읽었다면 그 맛이 더 와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난 이렇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이 된 음식 이야기를 문장으로 읽을 때면 내가 그 맛을 모르고 상상할 수 없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더없이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깊이 빠져드는 나 자신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자세히 설명된 레시피나 메뉴판을 대할 때면 그 음식에서 정성과 사랑, 따뜻함, 배려가 느껴진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스테이크야 어떻게 구워도 맛있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 음식을 조리한 사람의 정성과 사랑, 배려, 따뜻함을 함께 먹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없이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 헨리의 단편집 『식탁 위의 봄날』에는 음식과 관련한 18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익히 알고 있는 「마녀의 빵」,「크리스마스 선물」,「마지막 잎새」,「경찰과 찬송가」 등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이 단편집은 오 헨리의 수많은 단편들 중에서 음식과 관련한 단편들을 가려내어 묶었다는데 특별함이 있다. 그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대도시의 냉혹하고 무정한 뒷골목에서 가혹한 하층민으로서의 삶을 견디며 살아가지만 작가의 눈에는 따뜻함이 머물러 있다. 가난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 머무는 기적과도 같은 한 순간을 그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사람들은 온기와 희망을 얻는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잠시 마음이 쉬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애정을 담아 집필했기에 더 음식이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정성을 다한 음식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일상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하그레이브스의 연기」에서 미국 남부 스타일의 줄렙(위스키에 설탕, 박하 등을 넣은 청량음료)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 대접하는 모습, 「녹색의 문」에서 며칠 간 굶어 쓰러지기까지 한 처음 만난 아가씨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나가 두 팔 가득 음식을 구해 온 젊은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굶주리고 있는 신사를 위해 식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배불리 먹이려는 마음을 담은 「추수 감사절의 두 신사 」,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복숭아를 구하기 위해 봄날의 늦은 밤거리를 헤매는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힘들게 얻은 과일의 작은 흠집」등을 읽노라면 재치있는 그 입담과 따스한 배려의 마음이 저절로 전해져 옴을 느끼게 된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길다고 할 수 있는 「식탁 위의 큐피드」는 그야말로 음식 자체가 작품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식탁에서 먹고 또 먹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남성들의 모습을 "두 발 달린 되새김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두 청년의 구애를 거절하던 메임 양이 어느 날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프의 마차를 얻어타고 같이 길을 가게 되었는데 길을 잃은데다 갑작스런 폭우에 외딴 오두막에 피신을 하게 되고 물이 빠지지 않아 며칠 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배가 너무 고파진 그녀와 제프는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며 줄줄이 음식들을 나열하는데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거 아닌가. 두껍게 썬 고기는 레어로, 프렌치프라이랑 계란 여섯 개를 부드럽게 휘저은 스크램블드 에그를 토스트 위에 얹고, 생맥주 한 잔,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와 줄리엔(잘게 썬 야채를 넣은 묽은 수프) 세 개, 팬케이크는 노릇하게, 쌀을 곁들인 작은 카레 양념 닭구이, 아이스크림이랑 커스터드 한 컵, 닭간 파이랑 토스트에 바른 콩팥 소테, 양 구이, 박하 소스랑 칠면조 샐러드, 속을 채운 올리브, 산딸기 타르트랑 옥수수 빵, 하드 소스 뿌린 사과 파이에 듀베리 파이... 이 얼마나 즐거운 대화인지... 그들이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는 끝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녀는 남자들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린다. 

익히 아는 단편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의 두 연인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대단히 자랑스러운 재산을 기꺼이 팔아버린다. 아내 '델라'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남편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시계의 줄을 장만한다. 남편 '짐'은 금시계를 팔아 아내의 아름다운 머리를 더욱 윤기나게 빗어내릴 수 있는 빗 세트를 선물한다. 서로의 선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 ....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아무도 셀 수 없을 거예요. 고기 넣을까요. 짐?" 

   "델라,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치워두도록 합시다. 지금 당장 쓰기에는 너무 좋은 것들이라서요. 당신 빗을 살 돈을 마련하느라 시계를 팔았어요. 이제 고기를 넣어도 되겠군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오 헨리는 대중적인 인기에 비해 평단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단편들의 전개가 지나치게 우연이 남발되고 있고 비극보다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탁 위의 봄날」,「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물레방아가 있는 교회」등은 모두 주인공들의 만남이 예기치 못한 우연에 의한 경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하고 있고 이러한 플롯은 '오 헨리 트위스트'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고  할 정도로 억지스러운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오 헨리의 작품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못하는 거 같다. 사실 정말 짧은 단편인데도 그 속에서 주인공들의 삶을 응원하고 있고 제발 원하는 그 사람을 빨리 만나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내 마음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때! 세라가 그토록 기다리는 월터를 어떻게든 만나기를 바라게 되고(식탁 위의 봄날), 도시에서의 외롭고 힘든 삶에 지쳐 브로드웨이의 여름 휴양지에 있는 아르카디아로 찾아온 두 젊은이 메이미와 지미 맥매너스가 꼭 이루어지길 바라게 되고(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 결정적으로 어린 딸 '애글레이아'를 잃어버리고 회한에 젖어 있던 방앗간 주인 에이브럼 신부가 체스터 양을 만났을 때 제발 그 체스터 양이 '애글레이아 양'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는 것은 정말 나도 어쩌지 못한다(물레방아가 있는 교회).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두 부녀의 극적인 재회가 정말 억지스럽고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싶지만 그럼에도 감격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음식 이야기이건 아니건 오 헨리의 단편들에는 역시 따뜻함이 느껴지고 뭔가 앞으로는 잘 될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갖게 되고 결국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에 감동하게 된다. 가끔은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행복한 결말이나 신파조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달까... 마음이 우울할 땐 오 헨리의 단편을 읽으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오 헨리의 단편들처럼 우리 현실도 이렇게 따뜻하고 낙관적인 믿음으로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좀 나아지려는지 도통 낙관할 수가 없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ㅈㅁ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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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4-12-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따뜻하게 읽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그저 편견을 벗어나게 하고, 식당 메뉴판이 연인을 연결해 주고, 자존심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과거의 주인을 돕는 뭐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했지 말입니다. 맛을 상상하지는 못했어요. 그저 스프는 따뜻하다, 고기는 단백질이고, 질기면 소화가 힘들텐데 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도 음식 맛을 상상하면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현실도 동화처럼 따뜻하면 좋겠습니다^^

은하수 2024-12-14 23:25   좋아요 1 | URL
어... 저도 요정님과 같은 생각 했는걸요. 메뉴판이 연인을 연결해주고 과거의 주인을 돕는 일도 있을 수 있지... 그게 연기일지라도 멋진 일인걸... 하구요^^
근데 저 스테이크 이야기는... 제게 좀 특별한 날이어서 ... 그날 딸램 결혼할 남친이 처음 인사 온 날이라 특히 기억에 남아 있어서 더 이 단편들과 연결이 되었던 거 같아요... 물론 어릴 때부터 음식과 관련한 소설들을 좋아하긴 했지만요... 그 맛을 알 수 없어 늘 답답해하긴 했죠. 어른이 되어 여러 향신료의 냄새와 맛을 알게 되어 좋았던 기억은 잊지 못하죠~~
 

<식탁 위의 봄날>
오늘은 평소보다 메뉴에 변화가 많았다. 수프는 더 가벼워졌고, 돼지고기가 앙트레에서 빠지고 구이 요리 가운데 러시아 순무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봄의 우아한 분위기가 온 메뉴에 다 퍼져 있었다. 요즘 푸르러가는 언덕을 뛰어노는 양은 그 활기찬 걸음걸이를 기념하는 소스와 함께 나오게 되었다. 굴의 노래가 잠잠해지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그 소리를 줄여갔다. 프라이팬은 활동을 멈추고 자비로운 그릴 뒤로 들어간 듯했다. 파이 목록은 부풀어 올랐다. 더 진한 푸딩들은 사라졌다. 소시지는 휘장을 두르고 달콤하지만 운이 다한 단풍시럽과 메밀과 함께 유쾌한 죽음에 대한 명상에 잠긴 듯했다. - P60

세라의 손가락이 여름 시냇물의 소인들처럼 춤을 추었다.
각각의 항목마다 정확하게 길이에 따라 제 위치에 놓고 코스 요리들을 타자로 쳐나갔다. 디저트 바로 위로 야채 목록이 있었다. 당근과 강낭콩, 토스트 위에 얹은 아스파라거스, 다년생 토마토, 옥수수, 옥수수콩, 라이머콩, 양배추, 그리고...... - P60

<식탁 위의 큐피드>
얘깃거리도 줄고 분위기도 점차 가라앉아갔어. 메임이 다시 상황을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바꿀 방법이 없었지. 나는 뭘 먹고 싶은 생각뿐이었어. 해시 브라운 포테이토와 햄의 환각에 시달렸지. 계속해서 속으로 생각했어. ‘뭘 먹어야 할까, 제프? 웨이터가 오면 뭘 주문하지.‘ 메뉴판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다 고르고, 그 요리들이 나오는 상상을 했지. 아주 배고픈 사람들이라면 다 그럴 거야. 먹는 것 말고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게 된다니까. 불멸이나 국제 평화 같은 문제 대신 부러진 바퀴다리가 달린 작은 테이블과 가짜 우스터소스와 커피 얼룩을 덮은 냅킨이 제일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려. - P235

나는 거기 앉아서 스테이크를 어떤 식으로 먹을까, 버섯을 곁들일까. 크리올풍으로 먹을까를 놓고 나 자신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어. 메임은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조용히 앉아 있었지.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어. ‘감자는 홈프라이드로 해주세요. 팬에 해시 브라운 포테이토를 바짝 구워서 수란 아홉 개랑 같이 줘요.‘ 주머니 속에 땅콩이나 팝콘 알갱이라도없나 샅샅이 뒤졌지. - P236

음식 생각에 온통 푹 빠져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럴 뜻은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상상 속의 웨이터한테 큰 소리로 말해버렸지 뭐야. ‘두껍게 썰어주시고 굽기는 레어로 하고, 프렌치프라이랑 계란 여섯 개를 부드럽게 휘저은 스크램블드에그를 토스트 위에 얹어서 주세요.‘

- P237

메임이 재빨리 고개를 휙 돌렸어. 눈을 반짝이더니 갑자기 미소를 짓더군.
그녀가 말했어. ‘저는 미디엄으로요. 줄리엔히고 세 개 같이 주세요. 생맥주 한 잔하고, 팬케이크는 노릇하게 구워주시고 이 인분 주세요. 오, 제프, 근사하지 않아요! 저는 감자튀김 반 개, 쌀을 곁들인 작은 카레 양념 닭구이, 아이스크림이랑 커스터드 한 컵이랑, 그리고......?
내가 말을 끊었지. ‘천천히 해요. 닭간 파이랑 토스트에 바른 콩팥 소테, 양 구이랑........
메임이 흥분해서 끼어들었어. ‘오, 박하 소스랑 칠면조 샐러드, 속을 채운 올리브, 산딸기 타르트랑 또…………….
‘계속해요. 튀긴 호박, 달콤한 우유를 곁들인 뜨거운 옥수수빵도 서둘러서 줘요. 하드 소스 뿌린 사과 파이하고 듀베리파이도 잊지 말고......? - P237

<녹색의 문>
여자가 차분히 그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 "제가 쓰러졌지요?" 그녀가 말했다. "누군들 안 그렇겠어요? 사흘을 꼬박 굶고 어떻게 되나 보세요."
루돌프가 소리쳤다. "뭐라고요! 금방 돌아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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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중국을 걷다 - 이욱연의 중국 도시 산책
이욱연 지음 / 창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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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중국 여행은 하고 싶지 않지만 책은 읽을 수 있잖아 하는 맘으로 읽었다가 무색해짐. 역사, 문학, 문화, 정치적 사건들과 어우러진 중국인들의 평범한 일상과 거리와 맛있는 음식과 술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중국의 도시를 사랑했던 우리의 작가들과 안중근 의사는 잊지 말아야 할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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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고난을 대하는 한가지 삶의 철학

위화<인생>
... 크게 보면 뺄셈의 연속이지만 그 중간에 덧셈도 있었다. 물론 뺄셈은 컸고, 덧셈은 작았다. 그래서늘 적자였다. 삶은 결국 고난으로 귀결되었다. 이렇게 보면 그의 삶은 불행했다. 하지만 행복학 전문가들이 말하지 않는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는 한두차례 큰 행복을 겪는 것보다는 크기는 작아도 작은 행복을 여러번 겪는 게 더 낫다고! 주인공은 큰 불행을 겪었지만 삶의 순간순간 작은 행복도 많았다. 그런 작은 순간순간의 행복에 즐거워하고 그것을 즐겼다. 이런 그의 삶의 태도야말로 행복론 교과서에서 말하는 행복 찾기의 전형적인 예다. 그는 반복된 고난 속에서도 순간순간 삶의 작은 행복에 기뻐하고, 그 행복의 순간을 기억하면서 고난과 불행을 견뎠다. - P214

운명을 친구로 삼는 삶의 철학
그런데 소설에는 이런 행복학 교과서 차원만이 아니라 고난과 불행을 대하는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주인공의 태도가 들어 있다. 원망 없이 비극의 삶을 대할 수 있는 주인공만의 사고방식이 있다. 이런 주인공의 사고방식은 중국의 많은 독자가, 심지어 작가 위화조차도 주인공을 진정한 중국인의 상징이라고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중국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나 사고방식, 즉 삶의 철학이나 인생관과 관련되어있다. 예고 없이 언제 삶에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이나 절망에 대응하는 마음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그 삶의 철학으로 들어가보자. - P215

중국인의 삶의 철학을 가장 잘 압축하여 보여주는 고사성어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새옹지마塞翁之馬란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날 뜻밖에 생긴 말이 행운을 가져오기도 하고
불행을 가져오기도 한다. 우연히 말이 생긴 것은 행운. 그 말을 타다가 아들이 다친 것은 불행. 그런데 아들이 다쳐서 전쟁터에 나가지 않게 되었으니까 이건 또 행운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행운과 불행이 교차한다. 인생에서 좋기만 한 일도 없고,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그것은 마치 달과 같다. 달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처럼 행운과 불행은 늘 인생이란 하나의 원에 같이 있고, 다만 어느 순간 밝은 면이 커지기도 하고 어두운 면이 커지기도 할 뿐이다. - P216

더구나 그런 행운과 불행은 내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처럼 행운과 불행이 오고 간다. 그러니 인생의 행운에 자만하거나 도취하지 말 것이며, 불행에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라는 게 새옹지마 고사의 교훈이다. 중국인이 때로는 운명론자이고 때로는 비극 앞에서도 낙관과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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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삶의 경계와 허상을 넘는 욕망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리운 한국인, 아빠가 해준 음식이그리운 중국인,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문화적으로 보면, 한국 남자나 중국 남자나 다 공자의 후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속한 남자다.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난 것일까? 중국 남자도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를 무시하고, 부엌일은 여성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통 시대는 물론이고 근대 시기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 남자와 같았다.  - P102

그런데 사회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나서 달라졌다.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를 두고 긍정적. 부정적 차원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남녀관계 차원에서 보자면 마오쩌둥 사회주의 시대는 가부장 문화를 단절하고, 남녀관계를 새롭게 세운 시대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을 제공하는 한편, 가사노동, 육아노동 부담을 줄였다. 밥도 공동 식당에서 먹거나 사다 먹어서 집에서 밥할 일이 없어졌다. 마오쩌둥 시대에 지은 아파트의 주방이 손바닥만 한 것은 이런 때문이다. 탁아소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출근할때 아이를 직장 탁아소에 맡기고, 퇴근할 때 찾았다. 심지어 아이를 일주일 동안 맡기는 시스템도 있었다. 여성이 사회적 노동에 참여하는 것은 보장되어 있지만, 밥하고 아이 키우는 부담이 여전하다면 여성은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오쩌둥 시대 중국은 여성의 가사와 육아 부담을 줄여주는 시스템을 마련하면서 여성의 지위가 확연히 달라지는 계기를 맞았다. - P103

여기에 가부장인 남자의 경제권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남녀관계에 변화가 일어난다. 자녀의 결혼 같은 집안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이 가부장의 손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직장의 장에게로 넘어갔다. 노동 점수에 따라 집에 필요한 물자를 배분하고, 돈을 줄 때도 집안 단위로 가부장에게 주는 게 아니라 집안 식구 수에 따라 배분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 P103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우리 정부가 코로나 생계지원금을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장이 아니라 집안의 가장 통장에 넣어준 것을 떠올리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쉽다. 권력은 결국 경제권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마오쩌둥 시대에 가장이 지닌 경제권과 집안 의사 결정권이 해체되었고, 이게 가부장제 해체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 P104

남녀의 경계가 그렇듯이, 삶을 나누는 경계란 한 걸음만 깊이 생각해도 알 수 있는 참 부질없는 허상이다. 대개 인간의 삶에 놓인 수많은 경계는 현실과 대상을 관념으로 재단하고 나누어서 생긴다. 달에게는 어둠과 밝음이 원래 자신안에서 하나인 채로 있는데, 인간의 눈은 그것을 상현달과 하현달로 나눈다. 원래 하나이고 분절할 수 없는 현실과 대상을 원래대로 보고 인정하는 게 아니라 관념의 눈으로 나누고, 그것을 질서로 만들고, 심지어 그 질서에 가치와 우열을 부여한다. 그러한 관념의 질서는 당연히 허상이다.  - P104

여름철 산둥의 농촌은 붉은 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많은 수수는 식재료와 사료, 술을 만드는 데 쓴다. 붉은수수밭의 세계에 살던 순종 인간에게 고량주는 단순한 술이아니라 잠자는 야성을 깨우고 원시적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도화선이었다. 그래서 고량주를 마실 때 첫잔은 으레 한입에털어넣어 가슴에 불을 질러야 한다. 소설에서 붉은 수수밭공간에 사는 사람은 남녀를 불문하고 다들 술을 잘 마신다.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여성도 이곳에 시집와서는 독한 고량주 반병은 너끈히 마신다. 소설의 언급에 따르면 술은 이들을 의협심이 넘치게 만들고,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도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한다. 이들에게 술은 억압된 야성의본능과 원시적 충동을 불러일으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게하는 마법의 액체다. - P162

인문여행에는 자연경관을 찾는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인문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문의 한자 뜻풀이는 사람의 무늬(人)다. 사람의 무늬는 슬쩍 봐서는, 겉을 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보이고,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있어야 느낄 수 있다. 그래야 건물과 거리 풍경 속에 새겨진 사람의 무늬가 보인다 - P177

정신승리법은 아큐만이 아니라 누구든 사용한다. 그것은 정신승리법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방어 기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방어 기제로는, 유쾌하지 않거나 불안을 가져오는 일에서 도피하거나 부정하는 것,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게 그것을 투사하거나 전이하는것, 그리고 합리화하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아큐도 이런 자기방어 기제로 정신승리법을 잘 사용한다. 이렇게 보자면 정신승리법은 자기를 보존하고, 힘들고 상처 입은 삶을 회복하는 방법의 하나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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