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남성성> 박형지.설혜심 지음
이 책은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제국주의의 맥락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정의되고 작용했는가를 고찰해보는 작업이다. 다시 말하자면 대영제국의 융성기에 젠더가 제국주의의 주요 도구로 사용됨과 동시에 중대한 산물로 자리 잡게 되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이다.(15쪽)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에서 비롯되는 <빅토리아 시대>라는 말은 종종 19세기를 문화적으로 광범위하게 통틀어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1837년 18세의 나이로 즉위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6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왕위를 지켰으며, 여왕이 서거한 1901년 무렵에는 전 세계의 4분의 1이 공식적으로 여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고 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유명한 문구가 상징하듯이, 빅토리아 여왕의 집권 말기까지 대영제국은 19세기 세계의 중심축을 형성하였다.
<탈식민>이나 <제국주의>는 사실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들이다. 엘러키 보우머Elleke Boehmer와 같은 비평가는 <제국주의imperialism>와 <식민주의colonialism>을 구분한다. 보우머는 제국주의를 <한나라가 다른 영토에 대한 권한을 주장하는 것으로서, 그 권한은 무력뿐만 아니라 허식과 상징을 통해 표현된다>고 설명하며,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특히 19세기 유럽의 민족국가nation-state의 팽창과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에 식민주의는 <제국의 권력 강화와 관련된 영토의 점유, 자원의 착취 및 개발, 또한 점령한 영토의 토착민을 지배하려는 시도>로 보았다.
요컨대 보우머에 따르면 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영토에 대한 권한이나 권력을 주장하는 것이 제국주의이며, 식민주의는 그 나라에 대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일련의 실질적인 실천으로 정의된다.
역사학의 측면에서 보면 제국주의는 식민주의보다 나중에 출현한 것으로서, 더욱 일반적이면서 폭넓은 개념이다. 근대적 의미에서 식민주의는 한 독립국가가 그 국가에 속하지 않는 한 지역을 복속시키고 관리를 파견하여 그 지역 주민들을 지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한편 제국주의는 국가들 간의 종속적 관계의 성립과 유지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공식적인 영토지배를 포함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 다르다. 제국주의는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모든 힘과 행동을 포괄하는 개념이고, 거기에는 비단 식민지의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국제정치까지도 포함된다. 혹자는 식민주의를 제국주의가 변화하는 여러 단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형태인 특별한 단계로서 이해하여 식민주의를 제국주의에 귀속시켰다.
필자들은 <탈식민>에 관한 논의를 전개함에 있어, 식민주의보다 광의의 제국주의의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19쪽)
언제나 이러한 종류의 학술서들은 서문이 제일 어렵다. 하지만 역시 또 언제나 그러하듯 한 번 읽어서 어려우면 두 세 번 반복해서 읽는다. 그러면 내용 이해도 잘 될 뿐만 아니라 비로소 문체에 익숙해져 계속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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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역사학은 영국 제국주의의 위계질서가 계급과 인종뿐만 아니라 젠더 관계에 기초하고 있었음을 주목한다. 미리날리니 신하Mrinalini Sinha는 『식민주의의 남성성 Colonial Masculinity』16)에서 남성적 지배자와 여성적 피지배민의 이미지가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가를 논한다. - P24
서구식 교육을 받은 인도인들을 식민지의 관료 체계에서 배척하기 위해 영국은 <남성적인 영국인>과 <여성적 벵골인 바부 babu (영어를 쓸 수 있는 인도 관리)>라는 이분법적 정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 P25
한편 여성과 여성성을 통해 제국주의를 재조명하는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성 차별적 전통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제국주의 연구가 중심부 여성들이 식민주의에 상당히 개입했었다는 측면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여성들은 식민지 관리의 아내로서, 선교사로서, 나아가 여행자와 작가로서 제국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899년에 이르면 식민지에서 활동하는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1천 명 이상 능가할 정도에 이르렀다. 특히 최근의 연구들은 19세기 영국 페미니스트들과 제국주의 사이에 <우월감>이라는 이데올로기적 공통점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 P28
빅토리아 시대의 성적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보호받아야 하는 <연약한 성>으로 간주하자 페미니즘은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여성에게도덕적 우월성을 부여하였고, 이를 근거로 여성이 사회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P25
또한 페미니스트들은 인종적 우월성을 둘러싼 제국주의 담론을 받아들여, 인종적 순수성을 유지해야 하는 제국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적극 수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여성이야말로 사회적 진보와 문명의 대행자라는 그들의 주장은 서구의 비서구를 향한 <문명화 과정>의 도식을 그대로 따르는 제국주의 담론과 동일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19세기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들의 우월성을 담보할 수 있게 만드는 <타자>, 즉 비유럽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 내의 젠더 문제는 식민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식민지와의 관계 속에서 정립되었던 것이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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