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남성성] 19세기 영국의 젠더 형성
--- 2장 타자의 몸: 인종, 성, 계급의 교차점


2장에서는 19세기 영국 남성들의 내면화된 우월성이 자본주의를 동반한 제국주의 구도 속에서
인종차별과 성적 차별의 질서를 토대로 도출되는 과정이 그들 단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철저히 대타성을 토대로 형성된 것임을 논한다. 이상적인 남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동시에 대척점에 위치한 식민지인의 전형을 만들어낸 과정이었음을 살펴보는 것이다. 
식민지인들을 생물학적인 인종주의, 피부색, 기형적인 식민지인의 몸으로 나뉘어 비교적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데,
억지로 꿰어맞춤한 듯 끝없이 이어지는 추측과 얼토당토 않은 주장들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들 유럽인이라는, 허상으로 가득한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식민지인의 <몸>을 대상화하면서 기형적이라느니 지나치게 성기가 크다느니 진화가 덜 된 원숭이라느니 괴물이라느니 하면서 급기야 그 몸을 전시하기까지 하고.... 이런 말들로 열등한 종족으로 만들려 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우월한 존재임을 과시하려 든다.

<호텐토트의 비너스>, 즉 사라 바트만의 몸을 전시하고 구경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국 실험대상으로까지 전락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은 정말로 화가 났다. 문명인을 가장한 비인간적인 유럽인들에 대한 실망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1810년 런던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 가운데 하나는 호텐토트의 비너스, 즉 사라 바트만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앞서 언급했던대로 바트만은 1789년 남아프라카의 케이프 동부엣 태어난 코이족의 일원이었는데, 1810년에 런던으로 이송되어 우리에 갇힌 채 <전시>되었다. 그녀의 명성은 <엄청나게 큰> 엉덩이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전해지지만, 사실은 엉덩이뿐만 아니라 그녀의 커다란 소음순이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당시의 관객들은 그런 그녀의 몸이 모든 코이 족의 일반적인 몸의 형태라고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1814년까지 영국 곳곳을 돌며 <괴물 쇼>에 전시되다가 사창가로 넘겨졌고, 1815년 파리로 옮겨져서 일단의 과학자들에게 집중적인 연구 대상이 되었다. 1816년 숨진 그녀의 시신은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와 앙리 드 뱅빌Henri de Blainville 등에 의해 정밀하게 해부되었다. 죽은 직후 석고로 본을 뜬 그녀의 몸 인형과 해부 후의 잔해는 1974년까지도 파리의 인간사 박물관에 전시 되었다.(108쪽)

이런 지식도 과연 필요한가! 과학의 발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우생학과 과학적 인종주의로 포장된 사이비 과학자들을 유혹하는 자연사의 대상"이었다는 지식백과의 설명이 너무 싫다. 
"200년 가까이 박물관의 '유물'이었던 그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정부와 국제적인 인권단체 등의 노력으로, 2002년 드디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평안히 잠드시길...!
    






<몸>을 둘러싼 19세기 유럽의 담론들이 말해주는 것은 어느 곳에있는 어떤 종족인가조차도 불분명함에도 그들의 <몸>이 끊임없이동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야만인〉들의 <몸>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유럽의 전통적 상응의 논리, 즉 외양과 내면이 일치한다는 가정에서 <그들>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자신들과 같은 이성적 존재, 기독교적 존재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할 수 없기에, 그들에게서는 <이성>이 아닌 <몸>을 주목하고, 이야기해야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몸>은 끊임없이거론되고, 논란이 되며, 구체적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 P109

여기서 몸을 둘러싼 제국주의의 실체는 결국 세계 구석구석의 존재에 대하여 제시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주체로서의 우월성이다.
제국주의의 중심부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해 이들 식민지를 거대한 실험 집단으로 삼아 조사하고, 관찰하며, 실험을 가동시키는 주체가 된다. 
이른바 계량화의 물결 속에서 식민지의 몸은 <객관성>이라는 것을 확보하게 하는 넓은 표본 집단으로서 동원되는 것이다. 전 세계로 그 단위가 확대된 담론 체계는 기존의 담론보다 훨씬 더 객관적인 듯 보일 수 있었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세계 곳곳의 사람들의 몸을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주체는 곧 우월성과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다른 집단을 논하는 화자는 곧 침묵하는 우주를 아우르는 권력의 중심을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누 <그들의 몸을 동원하는 것> 저체가 제국주의이자, 제국주의의 정당화 양식이다. - P109

19세기 <몸>을 둘러싼 담론에서 제국을 동원하는 것은 견고한 타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서 <주체>를 재정립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제국주의 유럽의 백인 부르주아 남성이라는 주체는 대타성을 통해 새로운 남성성을 추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엘리트 남성들에게 제국이란 종종 일종의 <통과의례>, <성인남자>로 인정받기 위해서 치러내야 하는 실습 과정과 같은 것이었다. - P110

여기서 <열등한> 집단은 앞서 고찰한 것처럼 기형과 불균형으로 표상되고, 그런 표상은 곧 여성적인 것과 중첩되었다. 따라서 균형잡힌 남성성의 이상은 이런 대타성 속에 창출되었고 <남성으로서 제국 지배자의 이미지는 국내에서는 여성의 권리 주장에 대한 방어책으로, 그리고 식민지에서는 식민지 종속민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 될 수 있었다. - P111

여기서 진정하게 남성적인 것은 <균형>과 <절제>라는 미덕이다. <남성적 아름다움의 정형이란 <조화>와 절제된 움직임뿐만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 딱 맞는 모든 것으로서, 어떤 것도 우발적으로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제국주의 유럽에서 시각적인 남성성의 이상이란 단순하고도 절제된 아름다움이었다. 이제 남성의 육체는 가장 완벽한 육체적 이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고양되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중심부에서는 18세기 후반에 요한 요아힘 빙켈만Johann Joachim Winckelmann이 재현하기 시작한 그리스 시대 조각상의 아름다움이 부활하면서 군살 하나 없이 고상한 얼굴과 완벽하게 균형 잡힌 남성의 몸이 육체적 이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문학 분야에서 표현되었던 다양한 남성성의 이상형인 <신사, 사제, 그리고 군인>은 궁극적으로 이러한 육체와 맞물린 <자기 절제>를 강조하는 전형들이었다. - P111

새롭게 대두된 남성상은 모든 <타자>와 확연히 구분되는 지극히 배타적인 공동체를 가상하였다.
19세기 영국의 남성성에서 수도원을 부각시키는 양상은 향후 제5장에서 논의할 퍼블릭 스쿨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이 지식의 양성소는 엄격한 규율과 배타성, 나아가 남성 사이의 동지애가 강조되는 곳이다. 제국의 지도자를 양산하는 퍼블릭 스쿨에서 형성된 남성성은 그대로 제국을 유지하는 군대라는 또 다른 남성적인 집단으로 확산된다. 여기서 강인함, 지도력, 냉철한 판단력과 자기 절제가 강한 남성상은 분명한 중심부를 형성하며, 인종, 제국, 계급, 젠더를 둘러싼 제국주의 담론 체계를 통해 공고한 지배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 P112

이런 제국주의적 남성성의 이상화된 이미지는 열등한 식민지의여성성이라는 전형과 대비되면서 극대화될 수 있었다. 따라서 사라 바트만의 명성은 제국주의의 남성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호텐토트의 비너스는 이상화된 제국주의적 남성성의 상대적 극단을 형성하는 정수였고, 여기서 만인 앞에 공개적으로 전시되어야하는 당위성이 발생한다. 검은 피부와 기형적으로 커다란 엉덩이와 소음순을 가진 그녀의 벌거벗은 몸은 수많은 관찰과 응시를 힘없이 받아내야 하는 대상이다. 
그녀의 <몸>은 <절제>와 <균형>으로 무장하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던 19세기 영국의 남성성과 가장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것으로서, 제국주의가 낳은 지극히 전형적인 <타자>의 표상이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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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은 좀처럼 죽지 않았다. 그날 밤, 그것이 나와 남편의 마지막 싸움이었다....... - P69

그때의 나에겐 남편이 다시 살아날 경우 남편과 나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행복의 결핍은 눈앞에 있는 남편의 생명의 결핍과 거의 동일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보려고 할 때, 남편의 불확실한 삶보다는 확실한 죽음으로 치환하는 편이 더 쉬워 보였다. 남편이 붙잡고 있는 순간순간의 생명에 거는 나의 희망은 곧 그의 죽음을 바라는 것과 같았던 것이다………….  - P69

그런데도 남편의 육신은 여전히 살려고 한다. 나를 배반하려 한다……………. "고비인지도 몰라." 하고 의사가 희망을 내비쳤다……………. 또다시 질투의 기억이 떠오른다…………. 오른손으로 감싼 료스케의 얼굴 위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내 왼손은 몇 번이나 그의 입에서 산소호흡기를 떼어내려 했다. 
간호사는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 밤공기가 차가워진다. 창문 너머로 신주쿠 역의 심야 신호등과 밤새도록 떠도는 광고등 불빛이 보인다. 기적 소리와 희미한 바퀴 소리와 질주하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한데 뒤섞여 대기를 날카롭게 찌른다. 나는 털실로 된 숄로옷깃에 스며드는 찬바람을 막았다.....  - P69

지금 산소호흡기를 벗겨도 모를 것이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간의 눈 이외의 목격자를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두 손으로 산소호흡기를 바꿔들면서, 나는 동이 틀 때까지 그러고 있었다... 실행하지 못했던 건 어떤 힘에 의해서였을까?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나의 사랑은 오로지 그 사람의 죽음을 원했다......이성일까? 역시 아니다. 내 이성은 목격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겁먹은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장티푸스 감염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내가......! 아직도 나는 그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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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식민지의 영국인: <퍼포먼스>로서의 남성성

식민지 영국 남성의 남성성에 대한 심리를 잘 보여준 두 작품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어둠의 심연>을 들어 설명을 한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읽진 않았지만 예전에 오마 샤리프가 주연한 영화로서 티비에서 자주 방영해 본 기억이 남아있다. 아무튼 읽으면서 머릿 속에 <어둠의 심연>이 떠올랐는데 다음 페이지에 바로 나와 역시... 하며 읽었다.




... 식민 담론으로서 이상적인 제국주의자의 이미지를 먼저 식민 지배자가, 그리고 나중에는 흉내내기를 통해 피지배자가 차례로 모방한다는 점에서 식민 모방은 이중의 행위라 볼 수 있다. 한편 실버만의 이중 모방은 식민 피지배자를 모방의 원형 대상으로 간주하는 자기지시적인(自己指示的, self-referential) 성향의 이론으로서,
모방의 대상과 방향에서 기존의 개념과는 크게 대조된다. 이 이론에서도 근본적으로 원주민들은 영국인 식민 지배자를 모방한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영국인들을 모방하는 그 순간, 이미 영국인도 피지배자인 원주민의 행위를 모방하고 있다는 것이다. - P67

로렌스 T. E. Lawrence의 자전적 소설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에 대한 논의에서, 실버만은 흉내내기에 대한
자신의 이론적 비틀기에 관해 설명하며, <아라비아에서 로렌스는 자신의 이미지를 [아랍인들에게] 재생산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그들의 태도, 풍습, 의상 등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한다. 로렌스는 아랍인보다도 더 아랍인처럼 되고 싶어한다. 만일 아라비아 의상을 갖춰 입고자 한다면, 최고의 것을 선택하라고 그는 조언한다. 이어서 로렌스는 <유럽인들이 아랍인들의 게임에서 아랍인들을 거꾸러뜨리며 승리를 거두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2) <유럽인들이 아랍인들의 게임에서 거둔 아랍인에 대한 승리>는 마치 지상 최고의 목표인 것처럼 여겨지며, 로렌스의 흉내내기 역시 그런 의도를 숨기고 있다. 실제로 <만약 그들(아랍인]을 능가할 수 있다면, 당신은 완벽한 성공을 향해 한층 진일보한 것>이라고 로렌스는 기술한다. 로렌스는 <스스로에게 역할 모델의 위상>을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아랍인들이 그를 모방하게 되면서, 로렌스는 아랍인으로
가장한 채 그들의 지도자가 된다. - P67

아랍인보다 더 아랍인처럼 된다는 것은 분명 문제의 여지가 있다. 아랍인에게 동화되지 않은 순수한 <로렌스>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로렌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아라비아의 영향력에 대한 감수성을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1910년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로렌스는 자신이 아라비아의 환경에서 받은 인상을 사진 찍기 원리를 통해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그는 자신에게 투사된 모든 대상들을 검은색과 흰색으로 인화하는 민감한 감광 필름으로 스스로를 비유한다. 실버만이 지적하듯, 로렌스는 전통적으로 여성과 식민 피지배자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이라고 일컬어지는 지점에 스스로의 위치를 정한 것이다. 문제는 그가 강력한 제국주의자의 이미지와는 상치되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의도성이 결여된 영국 백인 남성으로서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지배자의 정체성을 지닌 채 그 공간에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 P68

무엇보다 원주민들은 실버만이 지적하고 있듯, <항상 본래 모습으로 귀환하는 속성, 즉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상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로렌스는 궁극적으로 원래 자신과는 다른 모습과 위치에 머물고 만다. - P68

필자의 견해로는 <아랍인보다 더 아랍인처럼> 되고자 하는 로렌스의 흉내내기 전략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권력에 대한 실패를 감추기 위한 방어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랍인과 자신 사이에 거리 두기에 실패한 로렌스는 유럽인으로서 흉내내기의 원형 모델이 되어 아랍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붕괴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아라비아의 낯선 환경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 P69

19세기 영국이 인도에서 제국주의적인 권력과 존재의 전형을 확립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이를 위한 퍼포먼스 모델은 강력한 남성성을 외부로 발산할 수 있는 방법을 토대로 한다. 오히려 타자에게 동화되고마는 우를 범한 로렌스와 달리, 성공한 식민 지배자는 자신과 원주민 사이에 거리를 두는 모방 거부 성향을 가진다. 
이상적인 제국주의자가 되지 못한 로렌스의 실패는 이미 19세기를 지나 20세기초를 살았던 그의 시대적 변화에도 원인이 있다. 19세기 말에는 제국주의 전략에 치명적인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로렌스 자신이나 조셉 콘라드 Joseph Conrad의 「어둠의 속 Heart of Dareness」에 등장하는 커츠의 예에서 드러나듯, 식민 사업의 <실패>나 원주민과의 동화, <원시로의 회귀going native>를 그린 소설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 P69

19세기 중반 식민지 인도에서 제국주의의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던 영국인들은 정체성과 행동, 자기 재현 전략을 규정하고 구성하는 방식에서 성 역할에 따른 퍼포먼스에 의존하였고, 이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영국 남성들의 남성성과 제국주의자로서의 우월성은 반복되는 퍼포먼스를 통해 식민 주체에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대단히 성공적이고 지배적이어서 제국주의를 통해 새로이 구성된 그들의 정체성은 본질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 P69

한편 남성으로서, 그리고 제국주의자로서 그들이 채택했던 가면을 쓴 퍼포먼스들은 여성과 원주민에 의해 또 다른 가면을 쓴 퍼포먼스를 일으켰다. 
리비에어가 가면극으로서의 퍼포먼스로 규정했던 여성성과, 바바의 식민 흉내내기는 근본적으로 억압받는 자를 중심으로 한 퍼포먼스이자 모방이다. 

하지만 필자의 주장은 이른바 피지배자가 모방할 수 있었던 표준이자 모델로서의 영국 남성 제국주의자들의 정체성이 결코 고정되거나 불변하거나, 영속적이지 않으며, 반복과 강화로써 구성된 퍼포먼스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결국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다움을 갖추게 되는 리비에어의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들 역시 그들의 각본대로 남성성을 연기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원주민들의 모방 대상이 되는 제국주의자들 역시 권력의 가면을 쓰고 자신들에게 합당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백인 남성 중심의 인종 담론과 성의 지배 담론은 결코 분리된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가부장적인 성 담론은 항상 다른 권력의 위계질서를 구성하는 구심점 역할을 해왔고, 이 두 지배 담론의 행위는 영국 남성이 인종적, 성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수행하였던 동일한 성격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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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01-10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라비아의 로렌스, 어둠의 심연 둘 다 보지 않았는데 그 둘을 들어 설명한다니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은하수 2025-01-10 08:14   좋아요 0 | URL
걱정 마세요~~ 1장 끝부분에 잠깐 나오구요.
그동안 읽으신 영미문학만으로도 충분하십니다. 쉽게 이해하실 거예요~~^^
 

[제국주의와 남성성]
제1장 식민지의 영국인: <퍼포먼스>로서의 남성성


1. 남성성과 퍼포먼스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역사와 영국적 남성성의 형성 관계를 살펴보는 이 책에서 본 장은 먼저 식민지 인도에서 영국 남성의 행동과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최근 인문학의 연구들은 정치적 또는 역사적 운동의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개인의 역할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접근들은 특히 거대한 정치적 변화 속에서 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서 나타나는 심리 현상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P39

하지만 인도를 향한 영국의 식민 지배 욕망은 대단히 강렬했으며, 이를 위한 식민이데올로기 담론의 생산과 유지는 매우 체계적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식민 전략은 인도에 있는 영국인들에게 식민 통치에 부합하는 제국주의자가 되도록 강요하였다. 즉 장교, 상인, 의사, 성직자와 같은 영국 개개인들은 제국주의의 정치적, 사회적 정책들이라는 좀더 큰 틀 속에서 그 정책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P40

인도에 있던 영국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영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도록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하고, 영 제국의 이미지 강화에 부합되는 범주나 규범적인 행동의 기대 수준에 맞춰 자신의 태도를 적절히 결정해야 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인종과 계급 또는 성 정체성에 대하여 그다지 뚜렷한 자의식이 없던 영국 소년이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곧 자신이 영국 백인 남성이며 동시에 지배 엘리트계급의 일원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 P40

샤이어스가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가부장적 남성성을 남성 권위의 추락과 권력의 불안정에 대한 상쇄 반응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인도에서 나타난 영국 남성성 역시 1857년 인도 항쟁 이후 식민지에서 영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제국의 권위가 추락하게 된 사실에 따른 반동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권력자가 권력을 상실했을 때 유발되는 심리 현상에 대한 이 이론은 인도에서 제국의 권위를 위협받게 된 영국인들을 논의하는 데 유용하다. 영국인이 인도에서 지배집단으로서의 엘리트 이미지를 유지하려면 그러한 목적을 위해 구성한 남성성을 통한 <퍼포먼스>가 필수적이었다. 
동시에 이러한 남성성은 곧 영 제국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자아개념과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영국 남성성>은 그 자체로서 <퍼포먼스>였으며, 그 퍼포먼스는 19세기 인도에서 영 제국의 위상이 변화하면서 가장 극명하게 실천되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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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09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아직 시작 안 했는데 올려주신 문장들이 무척 흥미롭네요. 저도 얼른 달려봐야겠어요!

은하수 2025-01-09 15:32   좋아요 1 | URL
얼른 시작하세요~~~
저도 이제 막 1장을 읽은 참이라...
근데 문학작품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어둠의 심연>을 예로 들어주니 정말 이해가 쏙 되면서 재밌어지네요^^.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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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투쟁이라."

이런 말을 책에다 이렇게 대놓고 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의 박경석 대표를 처음 본 것이 아마도 2021년 12월 3일의 저녁 뉴스에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날 뉴스에서 본 영상은 휠체어에 타고 있는 전장연 장애인들이 지하철 승강장에 대거 등장하여 지하철의 운행이 중단되었고 급기야 바닥으로 쓰러지거나 버티는 장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내는 장면들이었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는데도 그 당시 몹시 화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또 잊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일부나마 알게 된거지만 2001년부터 지금까지 박경석 대표와 장애인들이 투쟁으로 얻어내려 하는 것들은 비장애인이 보기엔 나무도 당연하고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어서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이들이 그동안 다양한 의제를 놓고 투쟁을 해왔다는 것은 조금만 검색을 해봐도 여러 곳에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사실 너무 많았다. 기사가 차고 넘쳐서 다 읽을 수도 없다.



     우리가 그 동안 정말 다양한 의제들을 걸고 싸워왔잖아요.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서부터 교육권 보장,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탈시설, 자립할 권리 보장, 노동권 보장 등등등.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 당장 법이나 제도를 바꿔내고, 예산을 적절한 수준만큼 확보하는 거가 단기적 목표긴 하죠. 그런데 그게 절대로 끝이 아니에요. 이 투쟁의 의미는 사실 더 넓은 차원에서도 발견이 되는 거거든.(329쪽)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침해당하면서 살아온 장애인들의 투쟁 방식에 우리는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투쟁 방식이 불법적인 건 사실이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결코 몰랐다. 비장애인인 나라는 사람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숱한 불법을 저지르고 비장애인들의 일상을 멈춰세우는,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세우고 버스에 탈 수 있게 해달라며 버스 앞을 막아서는 등의 이런 극단적이고  투쟁 방식 말고 좀 더 온건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박경석 대표의 대답은 "이렇게 합법적이고 착한 장애인들이 어딨어!"이다.


    제가 한 번 물어볼게요. 능력 없다고 시설이랑 방구석에 가둬 두고서, 교육도 못 받게 하고, 노동도 못 하게 하고 사회적 관계를 다 끊어 놓는 건 폭력 아닌가요? 뭐, 잘 돌봐준다고 말만 하면 땡인 건가? 이거 말고도 그래. 장애인들 싹 다 빼놓고서, 비 장애인만 태워가는 대중교통은 폭력이 아니에요? 그 상황을 유지하는 불의한 정권은 폭력이 아닌가? 국가가 헌법의 기준을 지키지 않는 건 어떻고, 그런 국가의 행태를 방관하고서, 그냥 누가 죽어나가건 말건, 권리를 침해 당하건 말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거기에 동참해서 살아가는 것도 사실은 어마어마한 폭력일 수 있어요.(234~235쪽)




우리들의 당연한 일상, 지하철이나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출근을 하고 누군가와 만나 어딘가의 장소에서 담소를 나누고 음식과 술을 나누고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길 가다 눈에 들어오는 예쁜 장신구를 사기 위해 가게엘 들를 수도 있고 집으로 돌아올 땐 내키는 대로 택시를 탈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있는 평범한 일상. 나는 매일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일상을 살고 있진 않지만 2001년의 그 영상을 보면서도 충분히 부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끌어내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 뭔지 모를 모멸감이 차오르는 기분... 그동안 내가 정말 아무 것도 알려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끝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가해자가 된 기분...




그 동안 거의 1년을 일주일에 두 번 씩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물 속이 너무너무 무서워서 좀 극복을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언젠가 파타야 여행 갔다 수영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영을 즐기는 외국인들을 보며 부러웠던 기억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 1년 가까이 다녔지만 일주일에 두 번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나를 앞질러 가는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속상하기도 하고... 1월부턴 매일 해보자 싶어 등록을 했다. 문제는 내가 차가 있지만 화,목만 사용을 한다는 점. 어쩔 수없이 나도 엄마인지라 출퇴근이 약간 불편한 아들에게 3 일 간 차를 양보하고 있다는 것이 매일 수영의 걸림돌이었다. 아침엔 좀 이르지만 아들이 주민자치센터에 내려주고 가고 끝나면 부랴부랴 씻고 나와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안 그럼 1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오니 이런 점이 불편하다. 하필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동권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한데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 일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에겐 약간 불편한 경험이긴 하지만 충분히 즐겁게 이어갈 수 있다. 문득 버스를 타고 다시 생각한다. 저상버스이긴 하지만 장애인 휠체어는 어찌 타는 건지... 저상이긴 하지만 장애인 휠체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타려면 뭔가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 그런 시설이 되어 있는 건지,  혹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면... 장애인 활동 지원가가 늘상 도움을 주고 있는지... 저 턱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의자들과 높은 단차의 좌석 배치는 과연 장애인들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인지... 버스 창밖을 내다보면 참... 한숨이 나온다. 가끔 정말 절실하게 너무 걷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도시 외곽의 우리 동네는 마땅히 안전하게 산책을 하거나 걸을만한 공원도 정비된 개천변도 없다. 그럼에도 걸으려면 걸을 수는 있지만 군데군데 가다보면 느닷없이 인도가 없다!!! 좁디좁은 인도는 전봇대가 떡 하니 길을 막고 있다. 이러면 휠체어 타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닐 수가 없지 않나?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나는 그동안 장애인들이 활동 지원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장애인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장애인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최소한의 교육은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을 받고 있는 줄 알았다. 거기다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너무도 먼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장애인들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단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박경석 대표가 말하는 정도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왜 길에서 그동안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지만 요즘은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도 정말 많은데 왜 내 눈엔 안 띄는 건지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까? 장애인들도 분명 사람이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말 정말 최소한으로다가 이동권조차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고 웃고 떠들고 함께 하는 일조차 힘들고 심지어 이런 이동권조차도 보장이 되지 않으니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더더구나 힘이 들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니 당연히 노동을 할 수도 없고 자립을 할 수도 없다. 장애인도 사람인데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하고 싶지 않겠는가. 시설에서 한방에 여러 명이 기거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정책이 수립되고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란 것도 없이 단체 생활을 해야만 하고 이러니 자립이니 탈시설이니 하는 의제를 두고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말이다. 모든 것이 안되는 첫째 이유는 바로 돈!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고 그러니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정말, 목숨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걸까. 




     우리가 일상을 멈춰 세우면서 싸워온 건요, 바로 이 일상의 당연함이라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이 사회에다가 딱 하고 보여주기 위한 거예요. 그 일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서 그냥 살아 가는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죠.(235쪽)




     저는 노동이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건 결국 자기를 둘러싼 관계를 계속 변화시키는 과정이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이 일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분명히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기 확인이란 건 곧 이 사회가 중증장애인이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죠. 그 사람의 존재부터 해가지고, 이 사회의 조건에 대해서까지 다시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거야.(180쪽)




     직접행동이란 건요, 언제나 정세를 잘 파악해야 해요. 어디서 투쟁을 할 건지 장소를 계속 같이 탐색해가야 하는 거야. 지금 이 지하철로 내려가야 할 때인지, 아니면 시청을 점거할 때인지, 광장에서 집회 신고 내고 집회를 할 것인지, 이런 것들. 선거철 되면은 선거철에 맞게 행동을 조직해야 하고, 어떤 법 통과시켜야만 하는 때는 뭘 해야 하고 이런 것들 있잖아.(208쪽)




     이렇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진짜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요,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은 진짜 말 그대로 장애인이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런 거예요. 사실은 우리 주변 곳곳애 있는데, 완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게 만드니까 아예 신경도 안 쓰게 되는 거지. 감각한다고 해봐야 기껏해야 동정과 시혜를 발휘할 대상쯤으로만 감각하는 거 아닌가? 제가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거는 동정과 시혜 베푸는 사람들한테나 따뜻함의 감각을 줄 뿐이지, 장애인의 존재와 목소리 자체를 감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께네 이것도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을 해봤자 여전히 일종의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 상태인 거야. ... (315쪽)





장애인 운동을 하면 할 수록 더 어렵고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박경석 대표의 글을 읽을 수록 실감할 수 있었다. 대표 본인조차도 장애를 입기 전의 봉사활동과 장애를 입은 후 복지관 직업훈련 과정에서 이 사회에 이렇게나 많은 장애인이 있었다는 거에 놀라고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감각하는 수준이 아예 달라졌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겪을 때 자신보다 중증인 사람이 흔치 않던 시절인데 경증인 사람들도 다들 차별을 겪고 있었다고 말한다. 노들야학에서 본격적인 장애인 활동을 하다 보니 뇌병변장애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또 경증인 사람과 완전히 다르단 점, 경증인 이들의 욕구와 사회와의 갈등 양상도 지체장애인과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뇌병변 장애인과 비교해보면 진짜 또 빙산의 일각! 

그러니까 그동안 감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어마어마하게 다가왔고 2010 년 경부터 발달장애인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중증이면서도 탈시설한 장애인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면서 이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매번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될 수 밖에 없단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의 반복 또 반복... 그런데 청각, 시각 장애인은 또 다르고... 

이들이 다들 속도도 다르고 정치 성향도 다르고 욕구도 다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도 다르기 때문에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다 다를 수 밖에... 장애인이니까 하나다! 하고 뭉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알아가면서... 그럼에도 지지고 볶고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원해가면서 뭉치게 되는 과정을 또 하나하나 겪으면서 조금씩 이루어내는 박경석 대표의 구심점 역할은 지금도 끝난 게 아니라는 거다. 비장애인이었다가 사고로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고 필연적으로 장애인 운동을 하게 된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박경석 대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 거를 계속 고민하는 그는 비장애인도 장애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당사자가 될 수 있고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 것을 계속 고민하는 한에서는 이 사람들의 입장이나 의견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유튭에서 가끔 보는 #도깨비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상이 있다. 은탁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교실에 삼신 할머니(이 엘리아)가 새빨간 정장과 구두를 신고 풍성한 목화 꽃다발을 들고 등장한다. 무심한 담임은 졸업생들을 축하해주라며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들어오게 하는데 사고무친 은탁인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새빨간 정장을 입은 삼신 할머니가 은탁이를 꼭 안아주며 너 점지할 때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러곤 돌아서서 담임에게 다가가 말한다.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수는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순 없었어?" 그 뒤에 무심한 담임은 참회의 울음을 터뜨린다. 설화에서도 삼신할머니가 꾸짖으면 바로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별로 없다는 댓글을 읽은 것이 생각나는데... 

나는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되새긴다. 너무 어이없을 수도 있는 여러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든다. 삼신 할머니에게 우리도 분명 꾸지람 들을 거라는 생각도! 이 세상 누구나 삼신 할머니가 점지하실 때 행복하셨을 거다. 그래서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다 더 없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 옆에서 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무감각하면 안되는 거라고. 그 사람들도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우리가 바꿔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뭐 언제까지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만 하면서, 자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도 돈 남으면 대강은 좀 돌봐줄까 이럴 건데요. 그래선 안 되겠죠. 자본주의적인 노동 생산성 기준으로 무능력하다고 버려지는 사람들, 약해지는 사람들, 늙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노동의 관계를 새로 맺어가지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관계 맺어 갈 것인가, 이런 거를 국가가 잘 지원을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거야.(186쪽)


중증장애인들에게 최우선 적용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같은 거를 시작으로 해가지고 공적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일자리, 권리를 생산하는 일자리들을 많이 만들어놔 봐. 물론 임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주고, 그러면은 모두가 나이 들어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 취급 안 당하면서.(187쪽)


활동가가 버티려면 일단 운동이란 게 지속 가능 해야 하죠. 그런데 이 지속가능성이란 건 절대로 우리 투쟁이 당장 어떤 성과를 냈는가에만 집중했을 때는 잘 마련이 안될 거예요. 성과가 전부라고 하면, 우리 투쟁 요구 관철 안 되면 좌절해서 관두고, 관두고 해버릴 거 아냐. 저는 당연히 성과도 중요하지만은 그게 당장 안 되더라도 조직 과정에서 고작 한두 명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게 된 거, 그 사람들의 존재가 거리의 정치 과정에서 조금씩 전환되는 거에 더 큰 의미를 둬야 한다고 봐요.

저는 장판을 넘어서 지금도 거리에서 열악한 상황 견뎌가며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잘 버텨주길 바라요. 그 버티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무리 비루하고 작아 보여도 사실은 그게 엄청 소중한 거란걸 같이 깨달아 가면서요. 진짜 아래로부터의 정치란 건 이미 당신들이 꼴아박고 있는 그 거리에서 어마어마하게 이뤄지고 있는 거고, 사회와 정치의 근본적인

저는 장판을 넘어서 지금도 거리에서 열악한 상황 견뎌가며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잘 버텨주길 바라요. 그 버티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무리 비루하고 작아 보여도 사실은 그게 엄청 소중한 거란걸 같이 깨달아 가면서요. 진짜 아래로부터의 정치란 건 이미 당신들이 꼴아박고 있는 그 거리에서 어마어마하게 이뤄지고 있는 거고, 사회와 정치의 근본적인 변혁의 씨앗이라는 것도 바로 그 작은 데서부터 발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여기만이, 사회에서 목소리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지예요.(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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