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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투쟁이라."
이런 말을 책에다 이렇게 대놓고 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의 박경석 대표를 처음 본 것이 아마도 2021년 12월 3일의 저녁 뉴스에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날 뉴스에서 본 영상은 휠체어에 타고 있는 전장연 장애인들이 지하철 승강장에 대거 등장하여 지하철의 운행이 중단되었고 급기야 바닥으로 쓰러지거나 버티는 장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끌어내는 장면들이었다. 처음 보는 장면이었는데도 그 당시 몹시 화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럼에도 또 잊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일부나마 알게 된거지만 2001년부터 지금까지 박경석 대표와 장애인들이 투쟁으로 얻어내려 하는 것들은 비장애인이 보기엔 나무도 당연하고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는 권리들이어서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이들이 그동안 다양한 의제를 놓고 투쟁을 해왔다는 것은 조금만 검색을 해봐도 여러 곳에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사실 너무 많았다. 기사가 차고 넘쳐서 다 읽을 수도 없다.
우리가 그 동안 정말 다양한 의제들을 걸고 싸워왔잖아요.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서부터 교육권 보장, 활동지원서비스 보장, 탈시설, 자립할 권리 보장, 노동권 보장 등등등. 이런 것들은 대부분 지금 당장 법이나 제도를 바꿔내고, 예산을 적절한 수준만큼 확보하는 거가 단기적 목표긴 하죠. 그런데 그게 절대로 끝이 아니에요. 이 투쟁의 의미는 사실 더 넓은 차원에서도 발견이 되는 거거든.(329쪽)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침해당하면서 살아온 장애인들의 투쟁 방식에 우리는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투쟁 방식이 불법적인 건 사실이니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결코 몰랐다. 비장애인인 나라는 사람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숱한 불법을 저지르고 비장애인들의 일상을 멈춰세우는, 출근길 지하철을 멈춰세우고 버스에 탈 수 있게 해달라며 버스 앞을 막아서는 등의 이런 극단적이고 투쟁 방식 말고 좀 더 온건하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할 수는 없는 것인지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박경석 대표의 대답은 "이렇게 합법적이고 착한 장애인들이 어딨어!"이다.
제가 한 번 물어볼게요. 능력 없다고 시설이랑 방구석에 가둬 두고서, 교육도 못 받게 하고, 노동도 못 하게 하고 사회적 관계를 다 끊어 놓는 건 폭력 아닌가요? 뭐, 잘 돌봐준다고 말만 하면 땡인 건가? 이거 말고도 그래. 장애인들 싹 다 빼놓고서, 비 장애인만 태워가는 대중교통은 폭력이 아니에요? 그 상황을 유지하는 불의한 정권은 폭력이 아닌가? 국가가 헌법의 기준을 지키지 않는 건 어떻고, 그런 국가의 행태를 방관하고서, 그냥 누가 죽어나가건 말건, 권리를 침해 당하건 말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거기에 동참해서 살아가는 것도 사실은 어마어마한 폭력일 수 있어요.(234~235쪽)
우리들의 당연한 일상, 지하철이나 버스나 자가용을 타고 출근을 하고 누군가와 만나 어딘가의 장소에서 담소를 나누고 음식과 술을 나누고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길 가다 눈에 들어오는 예쁜 장신구를 사기 위해 가게엘 들를 수도 있고 집으로 돌아올 땐 내키는 대로 택시를 탈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있는 평범한 일상. 나는 매일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일을 하는 일상을 살고 있진 않지만 2001년의 그 영상을 보면서도 충분히 부당함을 느낄 수 있었다. 끌어내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내 마음 속에 뭔지 모를 모멸감이 차오르는 기분... 그동안 내가 정말 아무 것도 알려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끝에 나도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가해자가 된 기분...
그 동안 거의 1년을 일주일에 두 번 씩 수영을 배우러 다녔다. 물 속이 너무너무 무서워서 좀 극복을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언젠가 파타야 여행 갔다 수영장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영을 즐기는 외국인들을 보며 부러웠던 기억이 있어서 용기를 냈다. 1년 가까이 다녔지만 일주일에 두 번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나를 앞질러 가는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속상하기도 하고... 1월부턴 매일 해보자 싶어 등록을 했다. 문제는 내가 차가 있지만 화,목만 사용을 한다는 점. 어쩔 수없이 나도 엄마인지라 출퇴근이 약간 불편한 아들에게 3 일 간 차를 양보하고 있다는 것이 매일 수영의 걸림돌이었다. 아침엔 좀 이르지만 아들이 주민자치센터에 내려주고 가고 끝나면 부랴부랴 씻고 나와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안 그럼 1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한다.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오니 이런 점이 불편하다. 하필 이 시점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동권이라는 말조차도 생소한데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버스를 타는 일상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에겐 약간 불편한 경험이긴 하지만 충분히 즐겁게 이어갈 수 있다. 문득 버스를 타고 다시 생각한다. 저상버스이긴 하지만 장애인 휠체어는 어찌 타는 건지... 저상이긴 하지만 장애인 휠체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타려면 뭔가가 더 필요해 보이는데 그런 시설이 되어 있는 건지, 혹은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라면... 장애인 활동 지원가가 늘상 도움을 주고 있는지... 저 턱이 어마어마하게 높은 의자들과 높은 단차의 좌석 배치는 과연 장애인들에게 최소한의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인지... 버스 창밖을 내다보면 참... 한숨이 나온다. 가끔 정말 절실하게 너무 걷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 도시 외곽의 우리 동네는 마땅히 안전하게 산책을 하거나 걸을만한 공원도 정비된 개천변도 없다. 그럼에도 걸으려면 걸을 수는 있지만 군데군데 가다보면 느닷없이 인도가 없다!!! 좁디좁은 인도는 전봇대가 떡 하니 길을 막고 있다. 이러면 휠체어 타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닐 수가 없지 않나?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나는 그동안 장애인들이 활동 지원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장애인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장애인이라도 대한민국 국민이니 최소한의 교육은 당연한 권리로서 보장을 받고 있는 줄 알았다. 거기다 노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너무도 먼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장애인들도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단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박경석 대표가 말하는 정도의 노동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왜 길에서 그동안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많지만 요즘은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도 정말 많은데 왜 내 눈엔 안 띄는 건지에 대해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그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까? 장애인들도 분명 사람이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말 정말 최소한으로다가 이동권조차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누군가를 만나 관계를 맺고 웃고 떠들고 함께 하는 일조차 힘들고 심지어 이런 이동권조차도 보장이 되지 않으니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더더구나 힘이 들고 교육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니 당연히 노동을 할 수도 없고 자립을 할 수도 없다. 장애인도 사람인데 개인적인 공간을 확보하고 싶지 않겠는가. 시설에서 한방에 여러 명이 기거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정책이 수립되고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개인의 사생활이란 것도 없이 단체 생활을 해야만 하고 이러니 자립이니 탈시설이니 하는 의제를 두고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거 아닌가 말이다. 모든 것이 안되는 첫째 이유는 바로 돈!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고 그러니 항상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정말, 목숨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걸까.
우리가 일상을 멈춰 세우면서 싸워온 건요, 바로 이 일상의 당연함이라는 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이 사회에다가 딱 하고 보여주기 위한 거예요. 그 일상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서 그냥 살아 가는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죠.(235쪽)
저는 노동이 궁극적으로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건 결국 자기를 둘러싼 관계를 계속 변화시키는 과정이죠.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이 일을 통해서 자기 존재를 분명히 다시 확인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기 확인이란 건 곧 이 사회가 중증장애인이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죠. 그 사람의 존재부터 해가지고, 이 사회의 조건에 대해서까지 다시 생각을 해보게 만드는 거야.(180쪽)
직접행동이란 건요, 언제나 정세를 잘 파악해야 해요. 어디서 투쟁을 할 건지 장소를 계속 같이 탐색해가야 하는 거야. 지금 이 지하철로 내려가야 할 때인지, 아니면 시청을 점거할 때인지, 광장에서 집회 신고 내고 집회를 할 것인지, 이런 것들. 선거철 되면은 선거철에 맞게 행동을 조직해야 하고, 어떤 법 통과시켜야만 하는 때는 뭘 해야 하고 이런 것들 있잖아.(208쪽)
이렇게 세상을 들여다보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진짜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요,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은 진짜 말 그대로 장애인이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런 거예요. 사실은 우리 주변 곳곳애 있는데, 완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게 만드니까 아예 신경도 안 쓰게 되는 거지. 감각한다고 해봐야 기껏해야 동정과 시혜를 발휘할 대상쯤으로만 감각하는 거 아닌가? 제가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거는 동정과 시혜 베푸는 사람들한테나 따뜻함의 감각을 줄 뿐이지, 장애인의 존재와 목소리 자체를 감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께네 이것도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을 해봤자 여전히 일종의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 상태인 거야. ... (315쪽)
장애인 운동을 하면 할 수록 더 어렵고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는 것을 박경석 대표의 글을 읽을 수록 실감할 수 있었다. 대표 본인조차도 장애를 입기 전의 봉사활동과 장애를 입은 후 복지관 직업훈련 과정에서 이 사회에 이렇게나 많은 장애인이 있었다는 거에 놀라고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을 감각하는 수준이 아예 달라졌다고 말한다. 또 자신이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겪을 때 자신보다 중증인 사람이 흔치 않던 시절인데 경증인 사람들도 다들 차별을 겪고 있었다고 말한다. 노들야학에서 본격적인 장애인 활동을 하다 보니 뇌병변장애인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은 또 경증인 사람과 완전히 다르단 점, 경증인 이들의 욕구와 사회와의 갈등 양상도 지체장애인과 어머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뇌병변 장애인과 비교해보면 진짜 또 빙산의 일각!
그러니까 그동안 감각하지 못했던 존재들이 어마어마하게 다가왔고 2010 년 경부터 발달장애인을 본격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중증이면서도 탈시설한 장애인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면서 이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매번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일들이 계속 반복이 될 수 밖에 없단 걸 깨닫게 되는 과정의 반복 또 반복... 그런데 청각, 시각 장애인은 또 다르고...
이들이 다들 속도도 다르고 정치 성향도 다르고 욕구도 다르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도 다르기 때문에 운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도 다 다를 수 밖에... 장애인이니까 하나다! 하고 뭉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알아가면서... 그럼에도 지지고 볶고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원해가면서 뭉치게 되는 과정을 또 하나하나 겪으면서 조금씩 이루어내는 박경석 대표의 구심점 역할은 지금도 끝난 게 아니라는 거다. 비장애인이었다가 사고로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되고 필연적으로 장애인 운동을 하게 된 것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말하는 박경석 대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 거를 계속 고민하는 그는 비장애인도 장애인들과의 관계 안에서 당사자가 될 수 있고 장애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란 것을 계속 고민하는 한에서는 이 사람들의 입장이나 의견이란 것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유튭에서 가끔 보는 #도깨비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상이 있다. 은탁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교실에 삼신 할머니(이 엘리아)가 새빨간 정장과 구두를 신고 풍성한 목화 꽃다발을 들고 등장한다. 무심한 담임은 졸업생들을 축하해주라며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들어오게 하는데 사고무친 은탁인 누구의 축하도 받지 못한 채 쓸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새빨간 정장을 입은 삼신 할머니가 은탁이를 꼭 안아주며 너 점지할 때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러곤 돌아서서 담임에게 다가가 말한다. "아가, 더 나은 스승일 수는 없었니? 더 빛나는 스승일 순 없었어?" 그 뒤에 무심한 담임은 참회의 울음을 터뜨린다. 설화에서도 삼신할머니가 꾸짖으면 바로 눈물이 나온다고 한다. 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별로 없다는 댓글을 읽은 것이 생각나는데...
나는 이 대사를 들을 때마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되새긴다. 너무 어이없을 수도 있는 여러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든다. 삼신 할머니에게 우리도 분명 꾸지람 들을 거라는 생각도! 이 세상 누구나 삼신 할머니가 점지하실 때 행복하셨을 거다. 그래서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모두 다 더 없이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 옆에서 이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는데 무감각하면 안되는 거라고. 그 사람들도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 우리가 바꿔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뭐 언제까지 따뜻하게 감싸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만 하면서, 자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도 돈 남으면 대강은 좀 돌봐줄까 이럴 건데요. 그래선 안 되겠죠. 자본주의적인 노동 생산성 기준으로 무능력하다고 버려지는 사람들, 약해지는 사람들, 늙어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노동의 관계를 새로 맺어가지고,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관계 맺어 갈 것인가, 이런 거를 국가가 잘 지원을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거야.(186쪽)
중증장애인들에게 최우선 적용되는 권리중심공공일자리 같은 거를 시작으로 해가지고 공적 차원에서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일자리, 권리를 생산하는 일자리들을 많이 만들어놔 봐. 물론 임금도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주고, 그러면은 모두가 나이 들어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의미 있게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 취급 안 당하면서.(187쪽)
활동가가 버티려면 일단 운동이란 게 지속 가능 해야 하죠. 그런데 이 지속가능성이란 건 절대로 우리 투쟁이 당장 어떤 성과를 냈는가에만 집중했을 때는 잘 마련이 안될 거예요. 성과가 전부라고 하면, 우리 투쟁 요구 관철 안 되면 좌절해서 관두고, 관두고 해버릴 거 아냐. 저는 당연히 성과도 중요하지만은 그게 당장 안 되더라도 조직 과정에서 고작 한두 명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나가게 된 거, 그 사람들의 존재가 거리의 정치 과정에서 조금씩 전환되는 거에 더 큰 의미를 둬야 한다고 봐요.
저는 장판을 넘어서 지금도 거리에서 열악한 상황 견뎌가며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잘 버텨주길 바라요. 그 버티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무리 비루하고 작아 보여도 사실은 그게 엄청 소중한 거란걸 같이 깨달아 가면서요. 진짜 아래로부터의 정치란 건 이미 당신들이 꼴아박고 있는 그 거리에서 어마어마하게 이뤄지고 있는 거고, 사회와 정치의 근본적인
저는 장판을 넘어서 지금도 거리에서 열악한 상황 견뎌가며 아래로부터의 조직화에 힘쓰고 있는 많은 활동가들이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잘 버텨주길 바라요. 그 버티는 과정 하나하나가 아무리 비루하고 작아 보여도 사실은 그게 엄청 소중한 거란걸 같이 깨달아 가면서요. 진짜 아래로부터의 정치란 건 이미 당신들이 꼴아박고 있는 그 거리에서 어마어마하게 이뤄지고 있는 거고, 사회와 정치의 근본적인 변혁의 씨앗이라는 것도 바로 그 작은 데서부터 발아할 수 있는 거니까요. 여기만이, 사회에서 목소리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진지예요.(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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