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뜻한 바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거지에게 동전을 던지다가도 내일이면 그 거지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구걸할지도 모르는 삶이다. 이건 내가 한 말이아니고 밥 딜런이 그 노래에서 한 말이다. 자신이 뭔가 잘못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Like A Rolling Stone>의 배음을 지켜가는 알 쿠퍼의 오르간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런 자신이 어설프게만 느껴진다면 밥 딜런의 말처럼 ‘소리를 키우도록.‘ 때로 단순히 소리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음반에 참여한 역사적인 키보디스트가 탄생하기도 하니 말이다. - P109

그러다가 집에 돌아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옛날 카세트테이프더미를 뒤졌더니 표지도 사라지고 케이스도 없는 2집 앨범이 나왔다. 처박아 두고도 잊어버렸던 카세트테이프였다. 조심스럽게데크에 집어넣고 플레이를 누르니 이제는 누구도 찾아듣지 않는노래들이 나왔다. <Stay>라든가 <Liberty> 같은 곡들. 춤추기에는느리고 발라드라고 하기에는 빠른 곡들. F. R. 데이비즈만의
‘Greatest Hits‘, 1980년대 초반 어두운 밤만의 ‘Greatest Hits.
그리고 I see the rising sun. This is the special day‘로 시작하는 F.R. 데이비즈식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 잊혀졌던 마을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오래된외투 주머니처럼 익숙한 골목길들,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무들, 푸르디푸른 밤하늘에 검은 그림자로 선 지붕들.
잊혀진다는 것은 물론 꽤나 슬픈 일이지만, 잊혀졌기 때문에 오랫동안 그 마을은 괴기할 정도로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것이다. <Long Distance Flight>를 들으며 나는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아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잊혀진 것들은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아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읽는데 왜 눈물나지? 난 아직 잊고 싶지않은 이름들이 있는데...
노래는 들어보았다. F.R.데이비즈의 노래니까...

I see the rising sun. This is a special day. Driving my car already on my way. You‘re travelling in the night glidin‘ over the earth.
Long distance flight I think of her You‘re flyng high, high in the sky over the clouds, bright shooting star. You‘re flying high, high in the sky, You‘re coming back. - P117

다음날, 이삿짐 트럭을 타고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는 그 언덕에서의 삶이 내겐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소중한 것은 왜 지나고나서 깨닫게 되는 것일까??? - P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 don‘t like watching you go."
민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돌아선다. 민자에게 등을 보인 채로 걷는다. 민자는 내가 가는 걸 본다.
민자도 내가 가는 걸 보는 게 싫을 테지만 뒷모습을봐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도 있다. 웃으면서 돌아서는 건 나의 사랑 방식. 조금 더 쓸쓸한사람이 되기를 자처하는 건 민자의 사랑 방식. 민자는 내가 자신으로부터 멀어져서 먼지만큼 작아질 때까지 뚫어지게 쳐다본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그걸 안다. - P122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앞으로 더 가볼 수도 있었고 언제든 뒤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가만히 있을수는 없었다. 파도가 우리를 그렇게 두지 않았다. 파도에 이리저리 출렁이면서도 현희진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그런 현희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도대체얘를 어떻게 때렸을까. 이렇게 몸이 작은데 어디를때렸을까. 왜 때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눈물이나서 바다에 얼굴을 푹 담갔다. 바닷물이 내 눈물보다 짤 것이라 맘 편히 눈을 헹궜다. - P134

태초에 노래를 가르쳐준 어른들이 있었다. 노래와 그들을 번갈아보며 세상을 배웠다. 그들은 내게노래를 들려주었고 나 역시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제는 내 노래를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안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래한다. 부르면 부를수록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지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아릉ㅅ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그게 내가 먼저 노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노래가 나를 사랑할 때까지 나는 노래를 짝사랑할 것이다. 이 사랑을 계속하면서 점점 더 오래된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 P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을 펼쳐 든 당신은 노래방적인 사람인가? 아니면 비(非) 노래방적인 사람인가? 나의 경우 후자에 가깝다. 노래방에서 내 존재는 기깔나게 노래하는 친구들의 아우라에 묻히기 일쑤다. 편의상 그 친구들을가왕이라고 호명하겠다. 가왕들이 화려한 열창으로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세 평 남짓한 방을 뒤흔드는 동안 나는 소심하게 리모컨을 들고 다음 곡을 고른다.
예약 버튼을 누른 뒤엔 목을 가다듬고 다른 이의 노래를 경청하며 기다린다. - P7

노래방을 장악해보지도 않은 내가 왜 노래에 관한 책을 쓰는가. 생각해보면 몹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글을 쓰지 않고우사인 볼트가 육상에 관한 글을 쓰지 않고, 우리 엄마 복희가 요리에 관한 글을 쓰지 않듯, 가왕들은 노래에 관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잘하는 것을 잘하느라 바쁘다. 작가들은 예외다. 작가들은 글에 대한 글을 토할 정도로 많이 쓴다. 심보선이 말하길 시란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것이랬다. 그렇다면 나에게글이란 한 네다섯 번째로 탁월한 내가 첫 번째로 탁월한 친구들을 생각하며 쓰는 것이다.  - P8

이 일을 계기로 이노우에는 악단의 시간과 노고와 비용을 절약하고자 자동 반주 기계를 발명하기에 이른다. 그 기계의 이름이 바로 ‘가라오케‘다.
‘비어 있음‘, ‘가짜‘라는 뜻의 ‘가라‘와 ‘오케스트라‘를 이어 붙인 합성어다.
즉, 가라오케란 가짜 오케스트라 기계를 뜻한다. 직접 연주하기 귀찮았던 이노우에가 세계 최초로 만든 발명품이다. 그는 돈 벌기도귀찮았는지 이 혁신적인 기계를 만들고도 특허를 내지 않았다. 덕분에 유사 상품이 대거 제조되었고 가라오케 문화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 P14

그러나 향자는 어느 대화 중에도 "지랄" 한마디를 치고 들어올 줄 알았고 빨리 걸으면서도 결코 넘어지는 법이 없었고 갑자기 마이크가 쥐어져도 긴장하지 않았다. 정박을 잘 타는 사람이 엇박을 못 탈 수는있어도 엇박을 잘 타는 사람이 정박을 못 탈 수는 없었다. 엇박적인 사람이란 정박과 엇박 모두를 가지고노는 이를 뜻했다. 향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노래 교실의 다크호스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할머니(향자 씨) 의외의 능력자시구나!
이런 할머니 따라 노래교실 다닌 전력이 있고 할아버지 노래방 기계를 어린시절부터 봐왔으니 슬아 작가님 이 책 쓸 자격 충분해요^^ - P22

무대에서 노래하는 건 어떤 기분이냐는 질문에프레디 머큐리는 대답했다. "관객들이 듣고 있고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면 틀리려고 해도 틀려지질 않아. 늘 내가 꿈꾸던 사람이 되어 있거든.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어." 그 대답은 나를 너무 놀라게 한다. 나라면 정확히 반대로 대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듣고 있고 모든 관심이 내게 쏠리면 안 틀리려고 해도 꼭 틀려버려. 나는 내가 꿈꾸던 사람이 아니라는걸 알게 돼. 그게 너무 두려워."

~~~~맞아 맞아. 내 말이 ...
슬아 작가님 말이 곧 내말이라니까...ㅠ
난 완전히 비노래방적 인간이구나 싶어 아쉽긴 해도 순응하며 잘 산다 ㅎㅎㅎ - P42

" 이어질 순서는 축가입니다. 축가를 불러주실분은 ‘일간 이슬아‘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계신이슬아 작가님이십니다."
그 순간 ‘일간 이슬아‘가 부끄러웠다. 이슬아도부끄럽고 부끄러운 이슬아를 무려 일간으로 발행한다는 것도 부끄럽고 신랑 신부와 하등 상관 없는 나의 프로젝트가 이 결혼식에서 잠시나마 언급된다는것도 송구스러웠지만 나는 돈을 받은 프로이기 때문에 동요하지 않고 무대에 섰다. 과거의 무대들이 힘을 모아 허리를 펴주었다.  - P55

얼마 후 나의 친구 요조를 만나 이 이야기를 전했다.
"울 엄마가 친구들이랑 이문세 콘서트 다녀왔는데 히트곡만 불렀는데도 두 시간이 넘었대. 두 시간으로도 모자랄 만큼 히트곡이 많았대."
차를 마시며 잠자코 듣던 요조가 말했다.
"내가 왜 공연하는 걸 무서워하는지 알겠어."
왜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난 히트곡이 없잖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깔깔댔다.  - P60

복희는 말하고 했다. 너는 이미 다 자란 채로 태어난 것 같았다고. 모든 걸 알아서 해서 키울 태 품이 별로 들지 않았다고. 그래서인지 복희와 나는 오래전부터 친구였다고. 초등학교 때 수업이 끝나면 두발 자전거를 각자 몰고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우리의 옷자락을 흔들던
봄바람을 지금도 기억한다. 배를 채우고서는 페달을 나른하게 굴리며 아파트 단지로 돌아왔다. 그 길에 종종 같은 반 친구의 엄마들을마주쳤다. 엄마들은 우리를 보며 어쩐지 작은 탄성을질렀다. "너무 부러워!" 마침 그들은 모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들이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열 살의 나와 서른다섯 살의 복희가 숱 많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어떤 실랑이도 없이 자전거 타는 모습이 얼마나 좋아 보였을지 이제는 알겠다. 그때부터 우리는 같은 드라마를 보고 같이 노래방에 다녔다.

~~~여기서의 복희는 슬아 작가의 엄마다.
우리딸은 나를 이름으로 부르진 않는다.^^
나도 엄마에 대한, 이런 친구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로망이 아주 강렬하게 있었다.
언제나 퉁명스럽고 대화가 대단히 안되는, 만나면 부딪치는 엄마를 가진 나의 몇 안되는 로망이다!
딸램이 스물여덟살이 되도록 나의 가장 소중하고 어여쁜 친구는 우리 딸이다(이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내가 소망하던 강력한 소망. .. 혹은 로망에 80%이상 근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우리 딸램과의 관계에 대체로 만족한다.
오늘도 난 용인 양지에서부터 차를 몰고 마포까지 와서 딸래미의 퇴근을 기다리고 있다.
아~~~ 좋아라!
이렇게 어여쁜 친구를 두 달만에 만나다니.. - P76

『아무튼, 노래』를 쓰면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 속 문장을 가슴 한쪽에 품고 있었다. "세상은 볼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하다." 우주와 빛과 소리와 진동에 대한 그 은유에 나는 매료되었다. 노래 역시 보이지 않는 떨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도 얼핏 아름다운 은유처럼 느껴졌으나청인들의 사회에서만 유효한 은유일 것이다.


~~~떨림과 울림!
이리 멋진 말을 발견해내시는 작가님들도 너무나 멋지다. 이런 글을 읽으며 딸램 기다리고 있으니 난 또 넘넘 행복하구나! - P94

나는 너의 친구우우우야~ 워어어어-살아 있는 사람이라곤 오직 우리 둘뿐인 장례식장 2층에 내 음성이 울려 퍼졌다.
나는 너의 - 여엉원한 노래야아-거기까지 부르고 나니 어쩐지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이러려고 부른 게 아닌데. 분명 웃기려고 시작했는데.
나는 나는 나는 나는 너의 기쁨이야.….
주책맞게 목이 메었다.
진심으로 너의 기쁨이 되고 싶어서였다.
가사들이 입 밖에 나오자 모를 수 없게 되었다.
이게 얼마나 커다란 우정의 노래인지 불러보기 전엔진짜로는 알 수 없던 마음이었다. 하마와 나 사이에마지막까지 남을 문장이 그 노래에 있었다. - P104

찬희의 또 다른 노래인 <아들>이라는 곡에서 나는 길고 긴 사랑을 본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혹은 아빠의 아빠의 아빠로부터 전해 내려와서 딸의 딸의딸 그리고 아들의 아들의 아들까지 이어질 마음 같은것. 눈썹에 사랑한다는 말을 품고 미지의 아이를 기다리는 그리움 같은 것. "울려 퍼져라 오 소년의 고함아 인디언 함성처럼"이라는 가사는 점점 더 커져가며반복되는데, 이 외침은 미래를 향한 절절한 외침처럼들린다. 영문도 모른 채 사랑받았던 사람만이 이런고함을 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너무 좋았어서 되풀이하고 싶은 사람만이 이런 노래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찬희가 진짜로 어떤 마음이었을지는.

~~~ 영문을 모른 채 사랑받았던 사람만이..

이 문장이 마음에 들어와 콕 하고 박히네요 - P113

휴게소에서 우리는 운전대를 바꿔 잡는다. 장시간 밤 운전은 피곤하니까. 찬희는 운전을 쉬며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는다. 웃기에도 울기에도 애대한 일들이다. 그런 일들 앞에서는 그냥 웃는 게 좋다. 웃고 나서 찬희가 습관처럼 말한다. "모를 거야,
누나는." 무슨 일인지 다 말해놓고선 꼭 그렇게 마무리한다. 우리 사이의 유행어 같은 거다. 얼마나 우스웠는지 얼마나 서러웠는지 얼마나 앞이 캄캄했는지누나가 어떻게 다 알겠느냐는 푸념이다. 그럼 나는한순간에 모르는 누나가 되어 웃는다. 웃으면서 똑같이 대꾸한다. "모를 거야, 너도." 그럼 걔가 한 번 더응수한다. "아니, 누나는 진짜로 모를 거야."우리는서로가 얼마나 모르는지 강조하며 웃는다. 몰라도 괜찮다는 듯이 웃는다. 나는 그 순간이 "넌 내 마음 다알잖아." 같은 말을 주고받을 때보다 더 좋다. 그냥우연히 남매가 되었을 뿐이다. 가족이어도 다 알 수가 없다.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는 나랑 너무 닮은 미지의 타인이다. 모르면서도 너무 애틋한 타인이다.

~~~ 너무 애틋한 타인
나랑 너무 닮은 미지의 타인!

하나는 보고싶고, 멀~~리 있지만 볼수 있는!
하나는 보고 싶고, 멀~~~~~~~~~~리 있지만 볼수 없는!
너무 보고 싶다
아이씨 눈물 나
나의 눈물 포인트

가버린 동생에게 바침. - P1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발 여자가 나에게 침을 뱉고는 내 다리로 몸을 던져 물어뜯으려들었다. 나는 권총으로 너무 세지 않게 그녀의 머리를 내리친 다음 일어나려 했다. 여자가 내 다리에서 굴러떨어지더니 부리나케 두 팔로 나다리를 한꺼번에 얼싸안았다. 나는 소파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사랑에미쳤는지 두려움에 미쳤는지 둘 다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힘센 여자인지, 아무튼 힘이 대단했다. - P106

누군가가 말했다. "브로디?"
브로디가 대답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두 발의 총성이빠르게 이어졌는데 소리가 좀 답답했다. 총구를 브로디의 몸에 들이대고 쏴버린 모양이다. 그가 앞으로 쓰러지며 문짝에 부딪쳤고 그의 체중때문에 문이 쿵 닫혀버렸다. 그는 문짝 가장자리를 따라 스르르 미끄러졌다. 그의 두 발이 카펫을 뒤로 밀어냈다. 왼손이 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팔이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머리는 여전히 문틈에 낀 상태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은 아직도 콜트 권총을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단숨에 방을 가로질러 달려가서 브로디를 조금 당겨놓고 문틈으로 빠져나갔다. - P118

가이거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사라졌던 중국 태피스트리 두 점을 엑스자 모양으로 겹쳐 피투성이 중국풍 상의를 가려놓았다. 엑스자밑에는 검은색 파자마를 입은 두 다리가 가지런히 놓인 채 뻣뻣하게굳어 있었다. 두 발에는 두툼한 펠트 밑창이 달린 중국식 슬리퍼를 신겼다. 엑스자 위로는 두 팔을 올려 손목을 교차시킨 후 손바닥이 아래로 가도록 두 손을 어깨에 걸쳐두고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입은 다물었는데 콧수염이 가짜 수염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두 눈을 감겼지만 완전히 감기지는 않은 상태였다. 유리 의안이 불빛을받아 희미하게 반짝거리며 나에게 윙크를 던지는 듯했다.
자나는 시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보나마나얼음처럼 차갑고 널빤지처럼 뻣뻣하겠지. - P125

"그러니까 먹은 간밤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신고하지 않았고, 오늘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셨고, 그래서 저녁때 가이거의 애인 녀석이 두번째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얘기로군요."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제 입장도좀난처했습니다. 잘못한 점은 있지만 의뢰인을 보호하려 했을 뿐이고 그 애송이가 브로디를 노릴줄은 전혀 몰랐으니까요." - P132

이튿날 아침, 달걀과 베이컨을 먹으며 조간신문 세 부를 모두 읽어보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신문기사는 여느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진실에 접근했다. 화성과 토성 사이의 거리랄까. 셋중 어떤 신문도 ‘리도잔교 자동차 자살 사건‘의 운전자 오웬 테일러를 ‘로럴 캐니언 이국풍방갈로 살인사건‘에 결부시키지 않았다. 어떤 신문도 스턴우드 가족이나 버니 올즈나 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웬 테일러는 ‘어느 부잣집 운전사‘였다.  - P143

"지금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어." 그가 말했다. "수배 전단을 뿌려놨지만 성과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고 리건은 우리가 아는 액수만 쳐도만오천 달러나 갖고 있네. 여자 쏙도 얼마쯤 가져갔을 테고 장신구까지 따지면 목돈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언젠가는 돈이 바닥날 거야. 그때 가면 리건이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거나 차용증을 쓰거나 편지를 보내겠지. 둘이 낯선 도시에 가서 다른 이름으로 살겠지만 취향은 여전할테니까. 결국 경제제도권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네." - P151

이제 나만 남았다. 나는 살인 사건을 덮어두고 스물네 시간 동안 증거물을 은닉했지만 체포되지 않았고 머지않아 오백 달러짜리 수표지 받게 되었다. 이럴 때는 그저 술이나 한 잔 더 마시고 이 모든 난장판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제일 현명한 행동이련만 뜬금없이 에디 마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때 라스올린다스에 들를 테니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현명한 놈이다. - 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천천히 차를 몰며 어떤 생각을 곱씹었다. 간밤에 나는 차고를 살펴보지않았다. 가이거의 시신이 사라졌지만 굳이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개입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시신을 처리하는 좋은 방법은 일단 차고로 끌고 가서 가이거의 차에 싣고 로스앤젤레스 곳곳에 널린 호젓한 골짜기에 내다버리는 것이다. 며칠 또는 몇주 동안 발견되지 않을 테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가이거의 차 열쇠가 있어야 하고 범인이 두 명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수색범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시신이 사라졌을 때 가이거의 열쇠는 모두 내 주머니 속에 있었으니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미처 차고 안을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다. 차고는 문을 내리고 맹꽁이자물쇠를 채워놓은데다, 내가 차고 앞을 지나는 순간 울타리너머에서 뭔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 P78

나는 브로디에게 다가가서 자동권총을 그의 옆구리에 들이대고 그의 주머니에서 콜트 권총을 끄집어냈다. 이제 밖으로 드러난 권총은 모두 내가 차지했다. 전부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브로디에게 한 손을내밀었다.
"내놔."
그가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겁먹은 눈빛이다. 그는윗주머니에서 두꺼운 봉투를 꺼내 건넸다. 봉투 안에는 현상한 원판과유광사진 다섯 장이 들어 있었다.
"정말 이게 다야?"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봉투를 윗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 P107

누군가가 말했다. "브로디?"
브로디가 대답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두 발의 총성이빠르게 이어졌는데 소리가 좀 답답했다. 총구를 브로디의 몸에 들이대고 쏴버린 모양이다. 그가 앞으로 쓰러지며 문짝에 부딪쳤고 그의 체중때문에 문이 쿵 닫혀버렸다. 그는 문짝 가장자리를 따라 스르르 미끄러졌다. 그의 두 발이 카펫을 뒤로 밀어냈다. 왼손이 손잡이를 놓치는 바람에 팔이 바닥에 털썩 떨어졌다. 머리는 여전히 문틈에 낀 상태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은 아직도 콜트 권총을 움켜쥐고 있었다. - P117

"싸움은 관두는게 좋을걸. 넌 쓸데없이 힘만 낭비해서 탈이야."
그래도 그는 싸우고 싶어했다. 사출기로 쏘아올린 전투기처럼 돌진하여 다이빙
태클로 내 무릎을 노렸다. 나는 옆으로 살짝 피하면서그의 목을 붙잡아 겨드랑이에 끼었다. 그가 발에 힘을 주고 힘차게 땅을 긁으면서 두 손으로 내 급소를 공격했다. 나는 그의 몸을 빙글 돌리며 더 높이 들어올렸다.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움켜쥐고 오른쪽 골반을 그에게 밀어붙이며 잠시나마 무게 균형을 유지했다. 희미한 달빛 아래 뒤엉킨 채 길바닥을 긁어대고 헐떡거리며 안간힘을 쓰는 우리 모습은 마치 기괴한 두 마리 짐승 같았다. - P122

가이거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사라졌던 중국 태피스트리 두 점을 엑스자 모양으로 겹쳐 피투성이 중국풍 상의를 가려놓았다. 엑스자밑에는 검은색 파자마를 입은 두 다리가 가지런히 놓인 채 뻣뻣하게굳어 있었다. 두 발에는 두툼한 펠트 밑창이 달린 중국식 슬리퍼를 신겼다. 엑스자 위로는 두 팔을 올려 손목을 교차시킨 후 손바닥이 아래로 가도록 두 손을 어깨에 걸쳐두고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아두었다. 입은 다물었는데 찰리 채 콧수염이 가짜 수염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두 눈을 감겼지만 완전히 감기지는 않은 상태였다. 유리 의안이 불빛을받아 희미하게 반짝거리며 나에게 윙크를 던지는 듯했다.
나는 시신을 건드리지 않았다. 아주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보나마나얼음처럼 차갑고 널빤지처럼 뻣뻣하겠지. - P125

이튿날 아침, 달걀과 베이컨을 먹으며 조간신문 세 부를 모두 읽어보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신문기사는 여느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진실에 접근했다. 화성과 토성 사이의 거리랄까. 셋 중 어떤 신문도 ‘리도잔교 자동차 자살 사건‘의 운전자 오웬 테일러를 ‘로럴 캐니언 이국풍방갈로 살인사건‘에 결부시키지 않았다. 어떤 신문도 스턴우드 가족이나 버니 올즈나 내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웬 테일러는 ‘어느 부잣집 운전사‘였다. 할리우드 경찰서의 크론재거 반장이 관할구역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두 건을 해결한 공로를 독차지했는데, 두 사건의 발단은 가이거라는 사람이 할리우드 대로에 위치한 서점 뒷방에서 통신사업을 하다가 수익금을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로디가 가이거를 사살했고 그 보복으로 캐럴 런드그런이 브로디를 사살했다. 경찰이 캐럴 런드그런을 구금했다. 런드그런은 범행을 자백했다. - P144

그것으로 용건이 끝났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웃 커피숍 냄새가 검댕과 함께 날아들었지만 시장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무실에 둔 술병을 꺼내 한 잔 마시며 자긍심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 P154

이제 나만 남았다. 나는 살인 사건을 덮어두고 스물네 시간 동안 증거물을 은닉했지만 체포되지 않았고 머지않아 오백 달러짜리 수표지 받게 되었다. 이럴 때는 그저 술이나 한 잔 더 마시고 이 모든 난장판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 현명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제일 현명한 행동이련만 뜬금없이 에디 마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때 라스올린다스에 들를 테니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정말이지 내가 이렇게 현명한 놈이다. - 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