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자》 로베르트 발저/배수아옮김

<프리츠>,<그거면 됐다!>, <설강화>를 읽었다.
단편이라고 하기도 힘들 정도로 짧고..
거기다 소설이라기보다 에세이라고 말하는게 더 어울리는 글들이다.
잠시 시간 내서 읽기에 딱 좋다.

작년 가을 끝자락에 ‘설강화‘를 알게 되었다.
작은 정원이지만 키워보고 싶은 꽃과 나무는 넘치는데 다 심을 여력이 안되니 매일 검색하고 구경하고... 그러다 마음을 접게 된 것이 ‘설강화‘였다. 겨우내 쌓인 눈 밑에서 피어보지도 못하고 얼어버릴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강화‘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 같다. 올핸 눈이 녹는 양지에 심어보고 싶다.
설강화는 1월의 탄생화이다!

그동안 기온이 높아 눈이 거의 녹았었는데...
오늘 펑펑 눈이 내려 또 쌓이고 있다.
해가 닿지 않는 응달은 아직 다 녹지도 않았었는데
또 쌓이고 있다.
얼른 나가서 염화칼슘 뿌리고 왔다.






나는 설강화를 보았다. 정원에서, 그리고시장으로 가는 한 농부 아낙네의 마차에서.
그 자리에서 당장 한 다발을 사고 싶었지만,
곧 저리도 여리고 섬세한 존재를 원하기에는 나라는 인간이 너무도 우악스럽고 투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여쁜 설강화는 세상 모두가 사랑하는 것의 도래를 최초로 알려오는 수줍은 사자이다. 누구나 다 봄이 오리라는 느낌을 사랑한다.

... 설강화여, 너희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아직도 겨울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안에는 봄이 깃들어 있다. 그들은 지나간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당돌하고 쾌활한 새로움을 품고 있다. 그들은 추위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곧 따스함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은 눈(雪)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초록과 파릇하게 돋는 새싹을 말한다. 그들은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그들은 말한다. 아직도 그늘과 높은 산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지만 양지바른 곳에는 이미 눈이 녹고 있다고. 
황량함이 다 지나가려면 한참 더 남았다. 사월은 아직 너무 멀다. 그러나 소망은 결국 승리할 것이다. 따스한 온기가 세상 구석구석에 스며들 것이다.

꿋꿋하게 참고 견뎌라. 좋은 날은 그다음에 오리라. 좋은 날은 항상 우리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인내심이 장미를 피운다. 최근에 설강화를 보았을 때, 나는 이런 훌륭한 옛 격언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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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유산 1 비꽃 세계 고전문학 1
찰스 디킨스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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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텔라를 향한 열망 때문에 신사가 되고 싶은 ‘핍‘은 어느날 의문의 사람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으면서 꿈을 이룰 기회를 얻는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고 믿어주었던 매형 ‘조 가저리‘를 창피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라나 괴롭다. 과연 ‘신사‘란 무엇일지 답을 찾아 2권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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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한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
<젬파하 전투>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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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 A 아씨는 다른 말로 하비셤 아씨란다, 선생. 아씨는 나에게 ‘가저리 씨, 당신은 핍 군과 서신을 주고받겠지요?‘ 하고 물었지. 너에게 
편지를 한 번 받은 적이 있어서 나는 ‘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할 수 있었지. (자네 누나랑 결혼할 때는, 선생, ‘네, 그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A 아씨에게는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어.) 그러니까 A 아씨가 ‘그렇다면 에스텔라가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번 만나겠느냐고 물어보세요‘ 하고 말하더군." - P341

나는 매형을 쳐다보는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이유 가운데에는 매형이 찾아온 이유를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조금은 있기를 나로선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 P341

매형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계속 말했다.
"이제 나는 자네가 앞으로 잘 지내며 계속 번창해서 훨씬 높은 자리에 오르길 바랄 뿐이네."
"설마 지금 떠나려는 건 아니죠, 매형?"
"아니, 그럴 거네."
"그럼 다시 와서 점심을 들 거죠, 매형?"
"아니, 안 그럴 거네."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 사나이 마음에서는 ‘선생‘이란 용어가 모두 사라지는 가운데 매형이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 P342

"핍, 오랜 친구, 인생살이에는 다양한 구분이 있다고 말하고 싶네. 어떤 사람은 쇠를 다루고 어떤 사람은 양철을 다루고 어떤 사람은 황금을 다루고 어떤 사람은 구리를 다루지. 인생살이에는 이런 구분이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오늘 실수가 있었다면 모두 내가 잘못한 거야. 자네와 나는 런던에서 만나면 안되는 사람이야. 우리만 아는 은밀한 공간 밖에서는, 친구들이 이해하는 공간 밖에서는 만나지 말아야 할 관계. 앞으로 자네는 이런 옷차림으로 나를 두 번 다시 못 만날 텐데, 그건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서로 올바른 자리에 있길 바라기 때문이야. - P342

나는 이런 옷이 안 어울려 대장간과 주방과 습지를 벗어나는 것도 안 어울려. 내가 대장간 옷차림으로 손에 망치를 들거나 파이프를 - P342

든 모습은 지금만큼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 거야. 
가령 네가 나를 보고 싶어서 집으로 찾아와 대장간 창문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거기에서 대장장이 조가 불에 그슬린 앞치마 차림으로 오래된 모루에 망치질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본다면 지금처럼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겠지.
나는 끔찍하게 우둔하지만, 오늘 여기에서 내린 결론이 올바르길 바란다. 그러니 너에게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길, 오랜 친구, 우리 핍.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길!" - P343

ㅈ내가 매형에게서 티끌 하나 없는 위엄을 발견한 건 착각이 아니었다. 이런 말을 하는 동안 매형 옷차림도 더는 이상하지 않았다. 하늘이 내린 의상 같았다. 하지만 매형은 나에게 다가와서 이마를 살짝 매만지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밖으로 급히 쫓아가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매형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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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제로 일한 첫날부터 기운이 하나도 없고 
나중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도제 계약이 끝날 때까지 매형에게 그런 느낌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일 뿐이다. 당시를 돌이켜보면내 가 나를 다행스럽게 여길 수 있는 건 그것 하나밖에 없다. - P167

이야기를 계속하다보면 나오겠지만,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모두 매형 덕분이다. 몰래 도망가서 
군인이나 뱃사람이 안 된 건 내가 충실해서가 아니라 매형이 충실해서다. 내가 불만을 꾹 참으며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건 내가 성실해서가 아니라 매형이 성실해서다. 상냥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할 도리를 다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옆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으며, 따라서 내가 도제로 일할 때 좋은 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하며 순박하게사는 매형 때문이지, 불만이 가득한 채 다른 생활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나 때문이 아니다. - P168

당시에 내가 원한 게 무언지 지금 이 순간에 누가 알겠는가? 당시에 하나도 모르던 내가 인제 와서 무얼 알겠는가? 당시에 끔찍하게 두려워하던 건 내가 유별나게 더럽고 천박한 모습으로 일하다가 눈을 문뜩 뜨니 대장간 나무 유리창 한곳에서 바라보는 에스텔라가 보이는아주 불행한 순간이었다. 까만 얼굴에 까만 손으로 아주 거칠게 작업하는 모습을 결국엔 에스텔라가 발견하고 의기양양하게 깔볼 거라는 두려움에 나는 끊임없이 시달렸다. - P168

"비디, 나는 신사가 되고 싶어."
그러자 비디가 대답했다.
"아, 내가 너라면 그러고 싶지 않을 거야. 그런다고 행복한 건 아니거든."
"비디, 나는 신사가 되고 싶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
내가 아주 엄숙하게 말하자, 비디가 물었다.
"네가 잘 알겠지. 핍. 하지만 지금 현재가 훨씬 행복하지 않니?"
"비디, 나는 지금 현재가 조금도 행복하지 않아. 내가 하는 일도 지겹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지겨워. 도제계약을 맺은 이후로 어느하나 마음에 안 든다고 엉뚱한 소리 그만해."
- P199

"내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면, 마음을 다잡아서 어릴 때 절반만큼만 대장간을 좋아할 수 있다면, 나에게 훨씬 바람직하겠지. 그러면 너랑 나랑 매형도 더는 바랄 게 없겠지. 도제 수련을 마치면 매형하고 동업할 수도 있고, 어른이 되면 너와 사귈 수도 있고, 서로 완전히 다른 관계를 맺고서 이렇게 화창한 일요일이면 바로 여기 강둑에 나란히 앉을 수도 있겠지. 그러면 나는 너에게 아주 잘할 거야, 그치, 비디?" - P200

비디가 가만히 있다가 차분하게 물었다.
"신사가 되고 싶은 건 아가씨에게 앙갚음하고 싶어서니, 아가씨에게 사랑받고 싶어서니?"
"나도 모르겠어." 내가 우울한 어투로 대답하자, 비디가 다시
 말했다.
"그러고 싶은 이유가 아가씨한테 앙갚음하는 거라면 내 생각엔 --물론 네가 훨씬 잘 알겠지만 그 말에 조금도 신경을 안 쓰는 게 훨씬 의연하고 좋은 방법 같아. 그리고 아가씨 사랑을 얻는 거라면,
내 생각엔 - 물론 네가 훨씬 잘 알겠지만 그런 아가씨에게는 사랑을 얻을 가치가 없는 것 같아."
- P201

"우리 약간 더 걸을까, 아니면 집으로 갈까?"
나는 약간 더 걷자고 하고 우리는 그렇게 하는데, 여름날 오후가 여름날 초저녁으로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편이 시계가 멈춘 방에서 촛불에 의존하고 ‘이웃거지 만들기‘ 카드놀이를 하며 에스텔라에게 경멸당하는 편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건강하단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머리에서 에스텔라 생각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저택에 대한 기억과 환상을 모두 몰아낼수만 있다면, 내가 현재를 즐겁게 받아들이면서 일할 수만 있다면,
그 일에 몰두하며 보람을 찾을 수만 있다면, 나로선 더할 나위 없이 좋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비디가 아니라 에스텔라라면 나는 훨씬 비참한 심정일 거란 사실을 내가 확실히 모르는지도 마음속으로 물었다. 하지만 그걸 확실히 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 "너는 정말 어리석은 놈이야, 핍!" 하고 한탄하는 소리가 속에서 저절로 나왔다. - P203

재거스 변호사가 다시 말하더니, 무언가를 용서하겠다는 듯, 두눈을 감고 매형에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젊은이에 대한 말을 하겠소. 내가 전할 말은 젊은이가 상당한 유산을 받게 된다는 사실이오."
매형과 나는 숨을 훅 들이켜며 서로를 쳐다보고 재거스 변호사는 손가락을 옆으로 뻗어서 나를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본인은 상당한 유산을 받게 될 거란 사실을 
젊은이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소. 게다가, 재산을 현재 소유한 의뢰인은 젊은이가 현재의 생활반경에서, 바로 이곳에서 지금 당장 벗어나 신사다운, 한 마디로 상당한 유산을 받을 젊은이다운 교육을 받길 원한다는 사실 역시 전달하라는 지시도 받았소."
마침내 꿈이 실현되었다. 하비셤 아씨가 상당한 재산을 넘겨줄 거란 엉뚱한 환상ㅈ이 현실로 확실하게 나타난 것이다. - P215

"자, 핍 군, 이제부터 하는 말은 모두 자네에게 하는 말이네. 자네가 명심할 건, 첫째, 나에게 이런 일을 맡긴 의뢰인은 자네가 핍이란 이름을 끝까지 사용하길 요구한다는 사실이네. 상당한 유산을 남기는 조건치곤 내용이 아주 간단하니, 자네 역시 이의는 없을 거라고 나는 장담하네. 하지만 이의가 있다면 지금 말하도록 하게."
ㅈ나는 심장이 너무 빠르게 쿵쾅거리고 귀에서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너무 심하게 일어난 나머지, 이의가 없다는 말을 더듬더듬 간신히 뱉어냈다.
"나도 없을 거로 생각했네! 자네가 명심할 건, 둘째, 핍 군, 자네에게 크나큰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밝힐 때까지 이름을 완벽한 비밀로 삼길 원한다는 사실이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의뢰인이 자신 입으로 이름을 직접 말하고 싶어서 그런다는 정도네. 언제 어디에서 그럴지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네. 앞으로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일 거야. 그러니 자네는 앞으로 나와 대화하는 가운데 그사람이 누군지 곰곰이 생각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이름을 암시하거나 언급하면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명심해야 하네. 머리에 뭔가 짚이는 게 있어도 그냥 머릿속으로 묻어두게. 이런 걸 금지하는 이유는 원래 목적과 아무런 관계가 없네. 무엇보다 중요하고 엄중한 이유일 수도 있고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네. 이것 역시 자네가 파고들 문제는 아니야. - P216

곧이어, 매형은 바로 밑 문가에서 파이프를 태우고 비디도 옆에 함께 서서 차분한 대화를 나누는데, 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이 다정한 어투로 내 이름을 언급하는 게 한 번 이상씩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리가 제대로 안 들리기도 하는 데다 더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창가를 물러나 침대 옆에 하나뿐인 의자에 앉았다. 놀라운 행운이 찾아온 첫날 밤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너무나 슬프게 몰려들었다. 
그렇게 외로운 건 생전 처음이었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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