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로의 욕망과
정의의 잣대

서울대 규장각에 남아있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의 자살과 살인을 포함한 사망 사건의 검안 기록은 572건이다. 그중 인구가 집중되었던 삼남(충청, 전라, 경상) 지방과 유랑민들이 모여들었던 황해도의 사건이 특히 많은데, 흥미로운 점은 삼남 지방의 살인이 산송 문제, 즉 묘지를 쓰는 문제로 생긴 사건인 반면 황해도의 살인은 주로 금전 문제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 P143

지역을 떠나 사인의 유형으로 분석하면 여성 폭행으로 인한 사건이 압도적으로, 뒤따르는 음주로 인한 사건의 2배가 넘는다. 터무니없이 지위가 낮았던 조선의 여성들이 그만큼 폭력에 노출되어있었다는 사실의 증거이리라. 이처럼 범죄는 시대와 사회를 닮는다. 사람의 욕망이 세상의 그것을 닮기 때문이다. - P143

그렇다면 시대와 사회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범죄 심리는 무엇일까? 사회적 갈등이 완전히 사라지면 인간의 죄도 사라질까? 실로 인간은 원초적으로 악의 본능을 지닌 존재일까? - P143

콜린 윌슨은 인간 범죄의 역사와 심리를 밝힌 책 [잔혹]에서 명쾌하고도 소름끼치는 해석을 내놓는다. ‘순수한 악‘을 예외로 한다면 일반적인 범죄의 심리는 선악을 넘어선 충동, 바로 ‘지름길‘로 가려는 경향이라고.

범죄성이란 (중략) 지름길을 택하려는 인간의 아주 유치한 성향이다. 어떤 범죄에도 ‘진열장을 때려 부수어 귀중품을 약탈‘하려는 성격이 있다. 절도범은 갖고 싶은 것을 노동에 의해서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훔친다. 강간범은 여자를 설득하여 뜻에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능욕한다. - P144

욕망하는 인간, 결핍을 채우고파 안달 난 인간은 결코 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 모른다. 콜린 윌슨의 말대로 범죄자란 ‘계속 아이처럼 행동하는 어른‘일지나, 나이를 먹는다고 모든 인간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 P144

죄가 있는 한 벌이 있고 정당한 처벌을 위한 법도 있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엄격함과 예외 없음과 신뢰야말로 법이 만인의 약속이 되는 조건일지니 진정한 법치국가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법학자들까지 발벗고 나서 수정하려 해도 번번이 오용되지만, 소크라테스 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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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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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에리카 종

평범하게 사랑하고 아이낳고 살아가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공포를 유발할 정도로 힘겨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일어난... 지금 이 시대에도 그녀와 같은 사랑의 행보를 밟는다 해도 결코 쉽진 않으리라.
그런데 이 이야기가 1970년대에 쓰여진 소설이며 미국에서 출판 당시 격렬한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대단히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읽느라 무지 고생했지만 주인공 이사도라와 남편 베넷이 조금은 쉽게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음... 딱 10 년 전 읽은 책이라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때만 해도 페미니즘에 대해 거의 백지 상태여서 그랬는지 이 작품이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었다는데 놀랐다니... 내가 더 놀랍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이라면 더 잘 읽을 수 있을텐데 집에 없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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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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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렌커

문화혁명 당시 마오쩌둥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훈시를 풍자하여 쓴 소설이다.
주인공인 인민해방군의 모범병사 우다왕과 사단장의 젊은 아내 류렌의 성애 넘치는 사랑의 이야기를 아름다우면서도 애달프게 빚어낸다.
둘의 사랑의 끝이야 말할 것도 없이 이루어지기 힘든 게 뻔하지만
상사의 부인을 위해 최선의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
그것도 인민해방군으로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으로 절묘하게 묘사한 풍자가 굉장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었다.

2015년 2월에 읽었다고 독서 기록장에 간단히 적어놓았다. 내가 읽은 건 2008년 4월에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된 거였다.
10 년도 더 지나 표지마저 똑같이 재출간했다니 ... 반갑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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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3-16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다고 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표지가 좀 그래서 구매가 망설여집니다 ㅎㅎ 이북으로라도 읽어봐야 할까요? ㅋ

은하수 2025-03-16 09:58   좋아요 1 | URL
네.. 전 추천드려요^^
근데 표지가 작품의 성격과 잘 맞기도 해요.
초판으로 사용한 표지를 계속 사용한다는게 의외긴 했어요. 리커버로 계속 바꾸는게 요즘 트렌드이긴 하잖아요.
전 익숙한 표지라 또 반가운 맘은 있었어요.변하지 않고 계속 가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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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가 품은 세계 - 삶의 품격을 올리고 어휘력을 높이는 국어 수업
황선엽 지음 / 빛의서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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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 각각의 변화 과정은 곧 우리 인류의 변화상, 세태의 변천을 보여주는 척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전도 틀릴 수가 있다는 거, 모르는 내용을 알기 위해 적극 활용해야 하지만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항상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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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사전은 모두 옳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 저승길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승길의 뜻풀이를 그대로 열명길에 옮겨서 넣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승-길[저승길]
<명사>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
≒열명길, 황천길.
저승길을 떠나다.
그들도 웅보가 양반들처럼 만장 휘날리며 꽃상여 타고 저승길 떠나는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순태, 《타오르는 강》

저승의 의미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이므로 저승길을 저승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에서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 풀이하는 것은 맞지만 열명길이 저승길과 유의어라고 해서 저승길과 똑같이 뜻풀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P290

가령 샛별, 금성, 개밥바라기, 태백성이 유의어라고 해서 그 뜻풀이를 똑같이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를 바탕으로 뜻풀이를 해야 하지요. 열명길을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 풀이함으로써 현재의 기술은 열명이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 즉 저승과 유의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 P290

<이상곡>에 등장하는 ‘열명길헤‘라는 의미 미상의 표현이 ‘열명길→시왕길→ 저승길‘이라는 오해를 거쳐 국어사전에 ‘사람이 죽은뒤에 그 혼이 가서 산다고 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풀이와함께 버젓한 용례를 가진 현대어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이제라도 사전에서 열명길을 옛말로 의미 미상이라고 기술해두는 것이 타당하겠으나 이미 현대어에 자리를 잡고 버젓이 용례를 갖추고 있으니
이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어휘력을 신장시킬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 사전을 충실히 공부하여 사라져가는 말들을 되살려 쓰려는 시도가 장려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열명길과 같은 유령어가 나타나 자리 잡는 현상도 나타나게 됩니다. - P291

사전 편찬자의 책무가 막중함을 느낍니다. 사전에는 온갖 전문적인 용어가 나옵니다. 사전 편찬자들은 모든 분야를 망라해 아는 전문가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기존 사전의잘못을 답습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겠지요.
우리는 단어의 용법이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싶을 때 사전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되 사전에서 기술하고 있다고 하여 모든 말이 다 옳다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상하다 여겨지면 비판을 할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지요.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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