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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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를 향한 열망, 그것은 충의를 위한 자결... ‘제발 죽지 마!‘를 염원했지만 그것은 내 안의 열망일 뿐. 1930년대 일본 농민의 빈곤과 정치인들의 부패에 대한 봉기로서의 결단이 ‘자결‘일수 있다는데 동조할 수 밖에 없다. 이로써 혼다는 이번에도 기요아키를 지키지 못했다. 다음 편은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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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단테 알리기에리, 귀스타브 도레 그림

구매하면 가능한 미리읽기...
귀스타브 도레의 삽화가 칼라가 아니고 흑백으로
보여 살짝 아쉽지만 3행으로 이루어진 시詩의 형태여서 읽기 어렵지 않다.
아직은 상징과 내포, 은유, 중세 역사, 문화... 등의 어려운 부분이 없어 막힘없이 술술 읽힌다. 그럼에도 주석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미리읽기엔 주석이 없다!

너무도 유명한 지옥 편의 그 문장.,
˝... ...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제3곡

단테는 지옥의 문 위에 적혀 있는 무서운 글귀를 본 다음 입구 지옥으로 들어간다. 입구 지옥에는 선이나 악에도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나태한 자들이 왕벌과 파리, 벌레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아케론 강가에는 뱃사공 카론이 죄지은 영혼들을 지옥으로 실어 나르는데, 무서운 지진과 번개에 단테는 정신을 잃는다.

〈나를 거쳐 고통의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길 잃은 무리 속에 들어가노라.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였으니,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는 영원히 지속되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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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10-30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렇게 빨리 시작하시다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하수 2024-10-30 12:29   좋아요 0 | URL
구매했더니 미리읽기가 있더라구요~~^
전 먼저 걸어보겠습니닷!
ㅋㅋㅋㅋㅋ
 

... 그는 사상을 하나의 냄새처럼 기꺼이 몸에 두른 것이다. 옛날 깊고 어두운 눈을 했던, 육체적으로 지나치게 우울한 느낌을 풍겼던 청년 시절에서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가 겪은 역경, 고뇌, 무엇보다 굴욕이 지금은 가슴을 펴고 아들의 광휘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혼다가 생각하기에 이 아버지는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아들에게 맡겼던 것이 틀림없었다. 
아버지의 오랜 굴욕이, 권문에 맞서는 순결한 소년의 우렁찬 외침과 챙강거리는 검의 소리로 바뀌어. - P384

혼다는 이쯤에서 이사오에 대한 이누마의 진실한 말을 한마디 듣고 싶어졌다.
"이사오 군은, 당신이 마쓰가에를 가르쳤던 시절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던 가장 큰 꿈의 실현이라고 할 순 없을까요?"
혼다의 질문에 이누마는 "아뇨. 녀석은 그저 저의 아들일뿐입니다." 하고 잘라 말하고 기요아키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도련님은 그런 생애를 보내신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하늘의 뜻에 맞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 - P384

부모인 제게도 뜻이 있습니다. 아니, 아들 이상의 우국충정이 있습니다. 저에게 모든 것을 숨기고 일을 벌이려 하다니, 정말이지 자식은 부모 마음을 모른다는 옛말 그대로이지 않습니까.
저는 늘 앞일을 내다봅니다. 결행하기보다도, 결행하지 않고 수확을 얻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을 일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5. 15 사건 때도 감형 탄원서가 쇄도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사람들은 분명 젊고 순진한 피고를 동정할 겁니다. 그건 거의 확실해요. 그렇다면 아들은 목숨을 잃지도 않고, 오히려 경험을 쌓고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다면 아들은 평생 가도 굶을 일이 없어요. 쇼와 신풍련의 이누마 이사오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세상의 경외를 받을 테니까요." - P388

혼다는 일단 아연했다. 아연함에 이어, 과연 그게 전부일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누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사오를 처음으로 구한 사람은 아버지고 이제부터 구하려고 하는 혼다는 말하자면 이누마의 의도를 실현하는 조수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판사직도 내던지고 무상으로 이사오의 변호를 맡은 혼다의 후의를 이렇게까지 저버리는 말은 없다. 또한 혼다의 행동에 깃든 품위를 이렇게까지 모독하고 유린하는 말도 없다. - P388

그러나 혼다는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자신이 변호하려 하는 것은 이사오이지 그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더럽혀져 있어도 그 더러움이 아들에게 미치지는 않는다. 이사오가 취한 행동의 청정한 동기는 조금도 흐려지지 않는다. - P389

그렇다 해도, 눈앞에 있는 이누마의 무례한 말에 조금 울컥했어야 할 혼다가 평정을 지킬 수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밀담이니 들어오지 말라며 종업원을 내보낸 이 작은 방에서 이누마가 그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한 뒤 털 많은 손가락을 떨며 서둘러 술을 따르는 모습에서, 혼다는 이누마가 결코 말하지 않을 어떤 감정을, 아마도 그가 아들을 밀고한 가장 깊은 동기를, 즉 아들이 곧 실현하기 직전이었던 피의 영광과 장렬한 죽음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질투를 읽었기 때문이다. - P389

줄지어 선 젊은 피고인들 중에서도 특히 아름답고 늠름하고 맑은 이사오의 눈을 향해 혼다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건소식을 들었을 때 더할 수 없이 어울린다고 느꼈던 그 부릅뜬 눈이 새삼 이 자리에 걸맞지 않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 P447

‘아름다운 눈이여,‘ 하고 혼다는 외쳤다. ‘맑게 빛나며 늘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그 삼광 폭포의 물을 갑자기 맞는 것처럼 이 세상 것이 아닌 비난을 느끼게 하는 젊은이의 무쌍한눈이여. 뭐든 말해라. 뭐든 정직하게 말하고 마음껏 상처를 받아라. 너는 이제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알아야 할 나이다. 뭐든 말하면 나중에 너는 ‘진실은 누구도 믿어 주지 않는다‘라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교훈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그 아름다운 눈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이다.‘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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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오와 흰 옷 행렬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혼다는 왜인지 자신이 이 어스레한 들판에 그려지는 그림에서 튕겨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발길을 조금씩 논 쪽으로 옮겨 볏단 사이를 나아가며 행렬에서 멀어졌다. 지극히 중요한 어떤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사오의 모습은 이제 선명하게 보였고, 그 가슴에 붉은 구슬 목걸이처럼 걸려 있는 나무 열매 같은 것도 알아볼 수 있었다. - P310

혼다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지금 거부할 수 없는 힘이 힘이 다가와서 자신의 이성을 때려  부수려 하고 있었다. 그 힘의 긴박한 숨결과 날갯짓이 벌써부터 느껴졌다. 예감이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사람이 자신의 죽음, 혹은 가까운 이의 죽음의 예감에 휩싸이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310

"큰일이군. 총까지 들지 않나, 가이도 선생님이 말한 대로야. 너는 난폭한 신이야. 틀림없어."

이 말을 들은 순간, 혼다의 기억이 비로소 무자비하게 명확한 형태를 띠었다. 지금 의심의 여지 없이 눈앞에 되살아난 것은 1913년 여름의 어느 밤, 마쓰가에 기요아키가 꾸었던 꿈의 광경이었다. 그 특이한 꿈을 기요아키는 꿈 일기에 자세히 적었고, 혼다는 바로 지난달에 그것을 다시 읽었다. 그 내용이 구석구석 생생하게, 혼다의 눈앞에서 십구 년이 지난 지금 이 세상의 일부가 된 것이다.
기요아키가 이사오로 환생했음을 설사 이사오는 모를지라도 혼다는 이성의 힘을 모조리 동원해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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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하라는 말하자면 이 나라의 땅과 피와는 관계가 없는 지성의 악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닌지, 이사오는 구라하라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데도 그 악만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P280

오직 영국과 미국만 신경 쓰며 일거수일투족에 색기가 스미고 낭창한 허리로 걷는 것 외에는 재주가 없는 외무성 관료, 사리사욕의 악취를 풍기고, 땅바닥의 냄새를 맡으며 먹이를 찾아다니는 거대한 개미핥기 같은 재계인들. 스스로 부패덩어리가 된 정치인들. 출세주의의 갑옷을 두르고 딱정벌레처럼 꼼짝 못 하게 된 군벌. 안경을 쓰고 축 늘어진 하얀 구더기같은 학자들. 만주국을 첩의 자식 보듯이 하며 벌써부터 이권다툼에 손을 뻗는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빈곤은 지평선의 아침노을처럼 하늘에 비쳐 든다. - P281

구라하라는 이런 비참한 풍경화의 한가운데 차갑게 놓인하나의 검은색 실크해트다. 그는 무언으로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고 그것을 찬양했다. - P281

서글픈 해, 희고 쌀쌀맞은 태양은 한 줄기 빛의 은혜도 주지 못하고, 그럼에도 아침마다 근심스럽게 떠올라 하늘을 돌았다. 그것이야말로 폐하의 모습이었다. 태양의 기쁜 얼굴을 다시금 우러러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 P281

그렇다면 순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암살자 명단에서 구라하라만을 제외하는 것? 아니, 그러면 내가 불쌍한 효자 아들이 되기 위해 일국의 독을 못 본 척하고, 폐하를 배반하고, 나아가 자신의 진심을 배반하는 꼴이 된다. - P282

생각해 보면 구라하라를 잘 모를수록 이사오의 행위는 정의에 가까워지는 셈이었다. 구라하라는 되도록 멀리 있는, 추상적인 악이어야 했다. 은혜와 원한은 물론이고 살아 있는 그에 대한 애증마저 희박한 곳에 비로소 살인이 정의가 되는 근거가 존재했다. 그는 그저 멀리서 그 악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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