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쇄기에 손가락 조심....!>
어젠 우리 동네에서 자주 왕래하는 친구인 '순희 씨'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순희 씨'네는 우리 동네 원주민이고 농사를 우리와는 비교가 안되게 많이 짓는데, 애써 지은 농산물을 수시로 무시로 나눠준다. 우리 집 자그마한 텃밭을 보곤 농사 짓지 말고 자기네서 갖다 먹으라고 말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우리 아랫집 어르신네도 우리보고 텃밭 하지 말고 그냥 당신 집에서 갖다 먹으라고 하신다. 그래도 난 우리 작은 텃밭에서 나는 농산물이 가장 좋다. 서로 주신다고 하니 감사할 따름). 아무튼 어제는 '순희 씨"를 꼭 만나야만 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순희 씨'네가 김장을 담근다고 해서 그러지 않아도 언제 가서 도와줘야 하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앉아서 <신곡>을 읽다 보니 졸음이 몰려와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부재중 전화로 남편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해 보니 '순희 씨'네 남편이신 '한 회장님(남편이 활동하는 테니스 클럽의 회장님이시라 그리 부른다)'이 김장준비하면서 분쇄기를 쓰다 손가락이 절단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악 소리가 절로 났고 너무 떨리고 머리가 쭈뼛서면서 놀라고 말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순희 씨'가 어쩌고 있나였고 김장은 대체 어찌 하고 있는 건가였다. 놀란 마음에 '순희 씨'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할 지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전화를 미룰 수가 없었다. 전화를 했더니 '순희 씨'는 반쯤 넋이 나간 격앙된 목소리로 김장 속 간을 좀 맞춰 달라고 부탁하는 거였다. 알았다고 말하고 그날 따라 일찍 퇴근해 집에 와 있던 아들을 데리고 얼른 날아갔다.
서둘러 갔더니 김장은 두 시동생네와 이웃과 나눠 먹는다고 배추를 100 포기나 절여서 씻어 물을 빼고 있었고 김장 속은 정말정말 커다란 빨간 타원형 통에 거의 가득 만들어 놓았는데 간을 보니 간이 하나도 안되어 있고 무슨 맛인지 약간 느끼하면서 맵고 너무 뻑뻑해서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단 생각만 드는 거다. 그래서 새우젓, 액젓, 소금, 설탕, 생수를 좀 더 넣고 저어서 간도 맞추고 되직하게 만들었다. 사고가 났을 때 전원 코드가 끼워져 있는 걸 모르고 칼날 사이에 낀 양파 찌꺼기를 꺼내려다 잘못해서 버튼이 눌러져버렸고 순식간에 손가락 두 개(검지의 끝 마디 반이 절단 되었고 중지의 끝 살점이 뭉텅 떨어져 월욜 아침 일찍 접합 수술을 받으셨다. 아이고 주여~~!)가 순식간에 그리되어 피가 철철 나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봤는데 너무 정신이 없어 119 전화한단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옆집 친구네로 달려가 도와달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다행히 친구네 부부가 운전을 해서 '한 회장님'을 태우고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됐는데 가는 중에 뒷 좌석에서 고통스러워하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데 그 짧은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김장 속이 준비가 되었으니 정신없어 우왕좌왕하는 '순희 씨' 대신 배추를 버무리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 빠르게 버무리고 있는데 그러는 나를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내일 손님들 오면 해도 되니까 그만하라고 말하는데 나는 자꾸 찜찜한 생각이 들어 그만두기가 걱정스러웠다. 이 와중에 정신도 없는데 아픈 남편 병원에 두고 손님접대라니...(순희 씨네는 시동생네와 이웃이 김장하러 오면 식사를 접대하고 수육도 삶고 그 전 해 남은 쌀로 절편과 가래떡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말이 안된단 생각에 이 밤에라도 미리 김장을 끝내버리면 내일 손님들 통에 담아 바로 보내버리고 손님들 접대를 하지 않아도 된단 생각이 들어 나는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었다. 그러고 있는데 병원에 동행했던 옆집 친구가 김장을 버무려주려고 왔다. 그 친구(알고보니 그 친구와 나와 '순희 씨"가 동갑이어서 친구 먹기로 했다)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서 손이 빠른 그 친구와 내가 김치 속을 넣어 버무리고 '순희 씨'는 통에 넣어 두 시간이 채 못 되는 시간에 마무리를 해버렸다. 속이 다 시원했다. 대체 왜 김장은 남의 것까지 해주려고 애를 쓰는지... '순희 씨'는 이제 시동생들과 해마다 김장을 얻어가는 이웃에게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통보했다고 한다.
어제 꼭 만나야 했던 이유는 '순희 씨'를 내 차에 태우고 '한 회장님' 병문안을 가기 위해서였다. 자동차 운전이 안되는 '순희 씨'를 위하여 동행하기로 했던 거다. 병원에 도착해 병실 분들과 나눠 먹을 빵과 커피를 사서 병실로 올라 갔더니 며칠 사이에 정말 얼굴이 반쪽.... 넘의 남편이시지만 워낙 자주 만나니 금방 알겠더라는.... 병원에서 가장 불편한 게 뭐냐고 물어보니 머리가 너무 가렵다고 좀 감고 싶어서 저녁 때 친구 오면 부탁해야겠다고 하시길래 요즘 병원엔 미용실 의자처럼 머리 감기기 편한 곳도 있으니 친구 기다릴 거 없이 와이프가 해주면 되지 않냐고 '순희 씨' 옆구리 찔러 머리 감겨드리는 동안 기다렸다 병원을 나왔다. 나의 제안으로 병원을 나와 5 일장이 서는 용인중앙시장에 가서 점심으로 칼국수 먹고 족발 골목 가서 족발도 포장하고 김장 때 쓸 건어물도 좀 사고 구경하느라 돌아다녔는데 재밌었다. 아프신 분은 아프신 거고 우린 즐거워도 되지 않아요 순희 씨? 하면서 맑은 가을 날의 나들이를 즐겼다. '순희 씨'도 우울하던 마음 다 날아가고 넘넘 재밌었다고... 다음에 또 자기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해서 우린 당연히 또 그러기로 했다!
김장철이라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그게 또 제일 위험한 주방 기구이기도 한 분쇄기와 블렌더 칼날은 진짜 조심조심 다루기.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신곡> '지옥 편' 마무리...
지난 달 30 일부터 읽기 시작해서 아예 책상에 붙박이로 펼쳐 놓고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으려고 노력했다. 어제와 그제는 제법 탄력이 붙어서일까 집중해서 읽었더니 생각보다 잘 읽혀서 <신곡> '지옥 편'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신곡>의 '지옥 편'은 총 34 곡으로 이루어진 대서사시이고, 단테 그가 보여주는 지옥은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원뿔의 형태를 이루며 만들어진 곳인데 각 원마다 죄를 지은 영혼들이 여러 기상천외하고 흉측한 지옥 악마들에 의해 벌을 받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신곡>의 '지옥 편' 34곡은 각 3행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거기에는 수 많은 상징들과 비유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인 <아이네이스>의 인용과 "중세 유럽의 사상과 관념, 의식 세계가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있"고 벌을 받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의 삶의 궤적과 이야기들이 실감나게 펼쳐져 있어 그것들을 다 이해하며, 각 주를 하나하나 읽어가며,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을 참조해가며 읽다 보면 쉬운 듯 읽히는 글자들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때 꼭 필요하단 생각에 열심히 읽었지만 단편적으로만 기억나고 책을 찾아보니 집에 없는 거 아닌가. 언제 팔아먹었는지... 너무 아쉬웠다. 절판되었던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지난 10월에 재출간 되었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도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열린책들본이 표지 가장 맘에 들고 책 가격도 맘에 드네...^^
단테는 <신곡>의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의 총 1만 4,233 행(여기서 잠깐! '지옥 편' 34 곡은 총 몇 행이나 될까. 이러한 궁금증이 일었으니 당연히 세어봤다. 각 곡마다 3 행씩 숫자를 붙여 놓아 세어보기 편했다. 열심히 더해보니 총 4,720 행이었다. 아직 9,513 행이 남아있다. 아직 멀었구나... !)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속에 저승 세계를 놀랍도록 기하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구현해 놓았다. 읽는 내내 정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런 글을 내가 읽고 있다니...
<신곡>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다. "1300년 봄 서른다섯 살의 단테는 어두운 숲속(인간의 죄악과 타락을 상징한다고 함)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햇살이 비치는 언덕(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을 상징한다고 함)으로 올라가려 하는데, 표범, 사자, 암늑대가 길을 가로 막는다. 그때 베르길리우스(로마 시대의 위대한 시인이며 로마의 건국 신화가 담긴 위대한 서사시 『아이네이스Aeneis』 를 남긴 그를 단테는 정신적 스승으로 여긴다)가 나타나 언덕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다른 길, 즉 저승 세계를 거쳐 가야 한다고 말한다." 단테는 산 자의 몸으로 베르길리우스의 영혼과 지옥, 연옥, 천국 등의 저승을 1주일 동안 차례로 여행한다는 줄거리이다. 그 중 나는 현재 '지옥 편'을 막 읽었을 뿐이고...
귀스타브 도레의 그림은 '지옥 편'에 총 75 점이 수록이 되어 있다. 도레의 그림이 아니었다면 난 상상력의 한계를 겪으면서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애를 먹었을 거 같다. 각 곡마다 보통 2~3점 정도의 그림이 수록이 되어 있어 각 지옥의 모습을, 그리고 형벌을 받는 영혼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 어찌나 생생하고 섬뜩하고 무서운 그림들인지.... 이 그림들도 역시 감탄사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지옥'편'에서의 지옥은 모두 9 개의 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지옥의 원의 둘레마다, 그리고 원을 이루는 여러 구렁과 구역마다 다른 죄를 지은 영혼들이 벌을 받는 흉측한 모습들이 그려진다.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는 것이야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1/3 쯤 읽었을 때 어떤 죄를 지었길래 이런 무서운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지 적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보니 커다란 공책의 한 면을 채우고도 남을만큼 다양했다.
지옥의 첫째 원인 '림보'에서는 죄를 짓지 않았고 덕성있는 삶을 살았으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거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가는 곳을 시작으로 음란함과 애욕의 죄(둘째 원), 탐식의 죄(셋째 원), 재물의 낭비 또는 인색함의 죄(넷째 원), ...분노와 불화의 죄, 불타는 관 속에서 벌 받고 있는 이단의 죄를 지은 영혼들, 기만의 죄,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자신의 육체와 재산에 폭력을 가한 죄, 신성에 폭력을 가한 죄(자살자들), 남색의 죄, 돈놀이꾼(넷째 원 ~ 일곱째 원), ... 뚜쟁이와 유혹자들, 아첨꾼들, 돈을 받고 성직이나 성물을 거래한 죄, 점쟁이들,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탐관오리들, 위선자와 도둑들, 사기와 기만을 교사한 죄, 온갖 수단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화폐를 위조한 자들(여덟째 원), 그리고 지옥의 마지막 아홉째 원에는 가족, 친척, 조국, 동료, 친구, 은혜를 배신한 영혼들이 벌을 받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단테는 예수를 팔아먹은 유다, 카이사르를 배반하고 그를 암살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마르쿠스 브루투스, 카시우스 등의 배신자들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마왕 루키페르(루키페르는 하늘에서 쫓겨나기 전에는 뛰어난 용모의 천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흉측하고 무서운, 빨간색, 노란색, 까만색으로 된 세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몸은 꽁꽁 얼어붙은 코키토스 호수 속에 잠겨 얼어붙어 있다) 앞에 던져 놓았다. 하지만 열거한 수많은 죄목들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하지 않는 사람이 이 우주에 한 명이라도 있긴 할까? 나도 예외는 아닌 듯하여 무섭긴 하다. 착한 행실과 회개하고 뉘우치면 상쇄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 엄청 단순한 사람인 거 같단 생각도!
북플로 이 많은 글을 썼다 백을 누르는 바람에 다 날려 먹고 다시 썼다. 대책 없는 내 손꾸락!!!!
우리 인생길의 한 중간에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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