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영국왕립식물원을 방문했을 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런던 중심가에서 식물원까지 가려면 지하철을타고 꽤 멀리 이동해야 합니다. 복잡한 중심가를 벗어나면 지하철은 지상 구간을 지나가는데, 이때 차창 밖으로 수많은 고사리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식물원에 도착해 영국 식물학자에게 오는 길에 한국에서 먹는 고사리와 비슷하게 생긴 종을 많이 보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영국식물학자는 철로 주변뿐만 아니라 식물원 근처 공원에서도 고사리가 자라는데, 봄마다 고사리를 꺾는 아시아인이 많다고 합니다. 아시아 음식을 잘 알지 못하는 영국인들은 아시아인들이 고사리를 어디에 쓰는지 매우 궁금해 한다고 합니다. -<고사리의 4억년> - P50
고사리를 보면서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무엇인까 생각해 봅니다. 천지개벽 같은 환경 변화라도 그것에 맞춰 혁신적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힘이 필요하겠지요. 또 옛것을 간직하면서도 새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혜와 유연함이 필요하지않을까요. 그것이 우리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살고 있는 고사리가 알려주는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 P54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렇게 가기 싫던 학교를 일요일에 혼자 간적이 있습니다. 노란 은행나무 잎들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광경을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운동장에 일렬로 자라던 은행나무는매일 점점 더 노랗게 물들어 잎이 곧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일요일 저녁에 바람이 강해지는 것을 보고 얼른 학교로 뛰어갔습니다. 노을을 배경으로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는 장관을 혼자 보고있으니 함께 구경하는 이가 없어 어찌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 P58
‘부평초 같은 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나 인생을 비유하는 말인데, 옛 유행가에 종종 등장하지요. 부평초는 ‘물 위에 뜬 풀‘이라는 뜻으로 개구리밥을이릅니다. 저는 부평초가 개구리밥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알게 되었을 때 의아했습니다. 개구리밥이 정처 없이, 준비 없이떠돌아다니는 신세를 의미하는 식물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구리밥은 수생식물 중에서도 가장 작은 식물이지만, 삶의 방식은 매우 독특하고 탄탄합니다. 개구리밥이 얼마나 특별한 방법으로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면 부평초 같은 인생도괜찮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물 위를 떠도는 용기> - P69
다른 식물에서는 볼 수 없는 개구리밥의 폭발적인 번식력과 작고 간단한 구조, 독특한 생활 방식은 우리에게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개구리밥은 미래의 동물사료, 수질 오염 개선이나 이산화탄소 감소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미개구리밥은 빠른 성장과 높은 담백질 함량으로 어류나 가금류의사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시도는 다른 가축 사료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료의 일종인 바이오에탄올로 개발되었고, 높은 수질 정화 능력을 이용해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생물 정화제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 P74
식물이 살기 힘든 곳 가운데 지구에서 가장 추운 두 곳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남극과 북극입니다. 두 곳 중 식물이 더 많이 사는 곳은 어디일까요? 남극과 북극은 서로 반대편에 있지만 극지방이라 살고 있는 식물의 수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북극에는 약 1천7백 종의 다양한 식물이 살아가는 반면, 남극에는 단 두 종, 볏과 좀새풀속에 속하는 식물 한 종(데스샴시아 안타르티카 Deschampsia antarctica)과 석죽과 식물 한 종(콜로반더스퀴텐시스 Colobanthus quitensis)만이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북극은주변에 육지가 있지만 대부분 얼어붙은 바다이고, 남극은 육지이기 때문입니다. 육지는 바다에 비해 훨씬 온도가 낮기 때문에식물이 살기에 남극이 더 혹독한 환경이지요. -<이런 곳에도, 초록> - P81
식물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런 곳에도 식물이 자라고 있어?? 하고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을 못 하는 식물이지만 어려운환경에 맞게 현명하게 살 방법을 찾아낸 것을 보면 기특하다는생각마저 듭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식으로 어려운 상황과 환경을헤쳐나가고 계신가요? 열악한 환경에 맞서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과학적으로 생존법을 찾아낸 식물에게서 삶의 지혜 한자락을 얻어봅니다. -<이런곳에도, 초록> - P83
독도를 대표하는 동물이 괭이갈매기와 강치라면, 독도를 대표하는 꽃으로 해국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해국은 독도 전역에서 볼수 있고, 가을이면 그 꽃이 독도를 아름답게 수놓습니다. 해국은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바닷가 바위틈에서 자랍니다. 독도의 해국 한 줄기를 떠냈더니, 뿌리가 길게는 1미터까지 달려올라왔습니다. 바닷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척박한 땅을 뿌리로 힘겹게 붙잡고 견뎌낸 것입니다. -<그럼에도 독도의 식물> - P105
그런데 무화과나무 앞에 strangle, 즉 ‘교살하다‘ ‘목을 졸라 죽이다‘란 뜻의 단어가 붙어 strangler fig, ‘교살자무화과나무‘ 라고 불리는 식물이 있습니다. 흔히 열대우림에 사는 여러 종류의무화과속Ficus 식물들을 일컫는데, 이 교살자무화과나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열매를 먹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식물 그룹이지만, 삶의 방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교살자무화과나무는 줄기가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로, 이들은 열대지방의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들을 촘촘히 타고 올라가 꽁꽁 싸매고 결국에는 그 식물의 숨통을 조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교살자‘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지요. 줄기가 위로 곧게 자랄수 없어 이웃의 기둥을 의지해 살아가는 덩굴식물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방향을 돌려 더 가까이>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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