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는 ‘세균‘이라는,가축이 인간에게 전파한 사악한 선물?에 대해 읽기 시작했다.다시 또 업로드 실패.. 두 줄 썼을 뿐인데...
업로드 실패 실패 실패!짜증나게 만드는 북플!
-버찌와 운하와 브리안차 길게 이어진 두 산맥 사이, 남쪽으로 흐르는 코모 호수의 그 지류는 산의 들고 나옴에 따라 모두 크고 작은 만을 이루다가 갑자기 좁아져서 오른편의 갑과 왼편의 넓은 해안 사이에서 강의 형태를 이루는데…* 이것은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유명한 작품 『약혼자들』에서도 특히 유명한 구절이다. 코모 호는 밀라노에서 북쪽으로 5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는데, 남북으로 길게 뻗은 이 호수의 남쪽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서쪽 지류 끝에 코모라는 도시가 있다. - P115
밀라노를 꼭짓점으로 두고 코모와 레코를 잇는 선을 밑변 삼아 역삼각형을 이루는 지방을 ‘브리안차‘라고 하는데, 이곳은 옛날부터 밀라노 사람들에게 일종의 동경을 넘어 경외심까지 자아내던 지역이다. 만초니가 태어났고 그의 소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왕년에는 밀라노의 귀족들이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코모의 명주실로 재미를 본 실업가들이 앞다투어 영지를 개척한 곳이기 때문이다. 브리안차는 수많은 서민이 언젠가 주인으로(하인이나 소작인이 아니라) 살아보고 싶은 고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밀라노 북쪽에 완만한 기복을 거듭하며 펼쳐진 이 일대는 롬바르디아 지방답지 않게 토양이 척박해서 이렇다 할 작물이 나지 않는다. 밀라노의 서쪽, 동쪽, 남쪽 모두 이탈리아에서 손꼽힐 만큼 풍요로운 수전지대인 데 반해 태양빛에불그레한 맨땅을 드러낸 브리안차의 풍경은 명백히 불모지로 보인다. - P116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만초니의 사람들]을 번역하면서 나는 그런 브리안차에 대한 기억을 천천히 되살렸다. 이 책은 만초니가 생전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토대로 그의 생애를 재구성한, 모리 오가이가 쓴 사전과 비슷한 형식의 수작이다. 만초니는 일본으로 치면 메이지유신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통일 시대의 건국사상을 대표하는 작가이기에 생애가 필요이상으로 신화화되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 신화를 집과 학교에서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것이다. - P118
현대 시인 움베르토 사바는 베네치아 인근 트리에스테를 "꽃을 바치기에는 너무/거친손의..... 소년"이라고 노래했는데, 중부 유럽의 영향이 짙은 이 북쪽 항구도시 트리에스테에 비해 브리안차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도시다. 트리에스테가 성마른 소년이라면 브리안차는 사람 좋고 부끄럼 많은 청년일 것이다. 두뇌회전은 그다지 빠르지 않지만 조직 내에서는 열심히 일한다. 이것이 롬바르디아 출신에 대한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의 평이다.롬바르디아 북서부를 대표하는 브리안차 사람들은 다름아닌 그런 근면성실함과 우직함 덕에, 세계에 내로라하는 견직산업을 가내수공업에서 근대적인 기업 규모로 발전시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P130
-마리아 보토니의 긴 여행 오래된 사진 한 장. 한여름 태양이 내리쬐는 제노바 기념묘지의 하얀 대리석 계단 위에서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내가 흰색투피스를 입고 희미하게 웃고 있다. 흑백사진이라 하얀 주랑 뒤로 사이프러스 몇 그루가 검게 솟아 있다. 일본을 떠난 지 사십일째인 1953년 8월 10일 아침, 이탈리아에 막 상륙한 참이었다.비에 씻긴 제노바 부두로 나를 마중나온 사람은 초면의 마리아 보토니였다. 나와 안면이 있는 일본의 지인에게서 부탁을 받아 제노바를 경유해 파리로 가는 나를 역까지 안내해줄 예정이었다.At-su-ko? 돌제 부두에 정박한 배를 눈이 부신 듯 올려다보며 묻던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 P133
그날 밤 제노바 역에서 헤어진 후 파리에서 불안한 유학생활을 시작한 내게 그녀는 친절하게도 종종 소식을 전했다. 엽서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자신의 근황이나 내가 모르는 자기 친구 이야기가 빽빽이 적혀 있었다. 유럽인의 필적에 익숙지 않아 모르는 부분은 친구에게 대신 읽어달라고 부탁했고, 어느새 나까지 그녀의 친구 몇몇을 알게 된 기분마저 들었다. - P134
내가 알지도 못하는 친구 얘기는 자세히 쓰면서 마리아는 자기나 가족에 대해서는 무엇도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 산다는 것정도는 상상할 수 있었지만, 오랫동안 그 이상은 모르고 지냈다. 두번째로 마리아를 만난 것은 이듬해 부활절 휴가를 이용한 학생 단체여행에 참가해 로마로 갔을 때였다. 그 무렵 로마에서 일하던 마리아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단체 일정이 비는 시간에 관광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짜주었다. 그중 하루는 친구집에 초대받았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당시 우리는 피차 외국어인 영어로 대화를 했는데, a friend라는 말에 나는 어떤 친구냐고 자세히 물어보지도 않고 그날 약속 장소로 나갔다. - P135
이탈리아에 사는 동안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자국에서는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을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 고귀한 이의 저택 문이 아마도 흔치 않은 일본인 손님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설명 없이, 또는 설명해도 내가 알아듣지 못한 상황에 별안간 눈앞에서열리는 것이다. 유럽에서 아직 일본인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때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스페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건축 잡지에 나올 법한 세련된 펜트하우스에 사는 어느 귀족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미국인 제트족과 동석했을 때도 그랬고, 저명한 프랑스 학자의 연로한 미망인이 핀초 언덕 앞에 있는 미술관 같은 집으로 데려가줬을 때도 그랬다. - P136
그날도 마리아는 별다른 설명 없이 우리를 초대해준 사람은 보르게세 공작의 딸 카바차 후작부인이라고만 했다. 간명한 말투 때문에 나는 그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상상도 못하고 얼떨결에 그녀를 따라갔다. 로마의 유서깊은 지구에 있는 보르게세 궁전으로 가서 바티칸 궁전에서나 보던 거대한 문을 스탠드 칼라에 화려한 줄무늬 제복 차림의 하인이 지키는 광경을 마주하고야 비로소 이 초대가 범상치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 P136
일본으로 돌아와 몇 년간은 이상하게 생활에 여유가 없었다. 간신히 한숨 돌릴 무렵, 생각지도 않은 마리아의 편지가 왔다.여전히 깨알 같은 글자로 가득해 읽기 힘든 엽서였다. 미국에 있는 동생 집에 갔다가 호주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 호주에서 일본은 세계일주 항공권에 포함되어 있으니 한번 가보고 싶다. 재워줄 수 있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그날 나리타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더니 마리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기뻐했다. 당신도 나를 위해 제노바 역에 나와주지 않았느냐고 말하자 물망초처럼 파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곧 여든이라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며 세계여행을 결심한 이유를 거듭 설명했다. - P143
어떻게 하면 마리아가 일본에 오길 잘했다고 여길지 계속 마음에 걸렸는데 어느 날 밤, 나는 어쩌다 예의 독일 수용소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신상 이야기를 들었다. - P144
전쟁 때 마리아는 밀라노의 한 대기업에서 비서로 일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러 파르티잔 활동이 활발하던 무렵이었다.어느 날 상사가 그녀를 부르더니, 자네는 혼자 사니까 자기 친구를 좀 재워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마리아는 당연히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시절에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거라며) 그 사람을 재워주었다. 모르는 남자랑 한집에 지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내가물었다. 그 상사를 믿었으니까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 - P144
했지,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전시에는 이상한 일들이 상식처럼 되어버린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말투였다. 그 남자는 낮 동안은 항상 집에 없었는데 어느 날은 밤이 돼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날 회사로 갔더니 그 상사가 마리아를 불러서 만약 손님이 집에 남기고 간 게 있으면 몽땅 처분해버리라고 말했다. 그다음날 또 누군가가 회사에서 그녀를 호출했다. 경찰이었다. 그길로 상사와 함께 산비토레 감옥으로 연행되었다. 그녀가 재워준 남자는 파르티잔 대장이었다. 누군가 배신을 했고, 그도 마리아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날 밤 검거된 상태였던 것이다. 감옥독방에 갇혀서야 비로소 마리아는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았다.무서웠어. 그녀는 말했다. 마리아는 다른 이들과 함께 기차에 실려 독일의 (어쩌면 오스트리아였을지도 모를)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모르겠어. 그렇게 말하고 마리아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 P145
이런 얘기만으로도 상당히 놀랍지만, 마리아의 긴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폴리 공항에 내리자 관악대가 나와 국가를 연주했다. ‘영웅‘은 이렇게 맞이하는구나 싶어 순간 긴장했지만 물론 그녀를 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공화국의 대통령이 마침 같은 날 나폴리에 도착했던 것이다. 대통령 이름을 듣고 마리아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페루초 파리, 밀라노 레지스탕스 지도자이자 그녀와 산비토레 감옥에서알고 지낸 사이였다(여기서도 마리아는 ‘친구‘라는 표현을 썼다), 비행기에서 내린 대통령은 그녀를 보고 달려와 꼬옥 껴안았다. 그리고 마리아는 대통령이 보내준 군용기를 타고 로마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생애 최고의 날이었겠네요. 내가 말하자 마리아는 정말 근사했지. 하며 뺨을 붉혔다. 그렇게 로마로 가서 카바차 후작부인이 속한 그룹에서 일하게 되었다. - P148
-프로슈티 선생님의 파스콜리 프로슈티 선생님의 가르침은 물론이고, 내가 공부할 무렵에는푸른 전원에 둘러싸여 있던 페루자에 수업 내용에 등장하는 19세기 시인들이 즐겨 노래한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것도 이들이내 안에 깊은 궤적을 남긴 이유일 터다. 페루자의 언덕을 해원처럼 둘러싼 들판을, 19세기의 문호(그에게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이 말의 장대한 울림이 잘 어울린다) 조수에 카르두치의 유명한 서정시에 나오는 뿔이 크게 휜 하얀 소떼가 느긋하게 일구고 있었다. 나중에 로마로 유학 갔을 때 몇 번 움브리아나 토스카나 지방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밭에서 흰 소를 보면 아아, 이탈리아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P37
토스카나를 노래한 카르두치의 시에 비해 19세기 낭만파 시인자코모 레오파르디의 시에 나오는 전원 풍경은 움브리아의 풍경에 좀더 가깝다. 레오파르디는 움브리아와 경계를 접한 마르케지방의 레카나티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에는 가본 적 없지만 페루자나 아시시의 언덕에서도 그가 시에서 노래한 굽이치듯 이어지는 첩첩한 산들이 그려내는 경치가 쉽게 상상된다. 레오파르디의 시에는 이 지방에서 매일 흔하게 접하는데도 마음 깊은 곳을움직이는 풍경이 자주 나온다. - P38
대학교 점심시간이면 시끌벅적한학생식당을 피해 빵과 햄을 사들고 그런 언덕의 올리브밭에 혼자앉아 있곤 했다. 올리브나무 그늘에는 사료로 쓰이는 콩과 풀이무성했고, 보라색 분홍색 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어느 날 밤친구에게 이끌려 포르타 산탄젤로라는 오래된 성문 바깥에 있는전망대 비슷한 곳에 간 적이 있다. 달도 없는 어두운 밤이었는데사방에 반딧불이가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엄청난 수에 압도되어쫓아갈 엄두도 못 냈던 기억이 난다. "큰곰자리별이 가만히 빛 - P38
나고"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시 「추억」에는 창가에 서서 멀리 밭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나 산울타리에 핀 꽃 위를 날아다니는 반딧불이에 소년 시절을 추억하는 시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같은 시에 나오는 표현 "향기로 가득한 가로수길"은 하숙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수길의 보리수 꽃향기와 맞아떨어진다. - P39
파리에서 페루자로 온 날 작은 마을 전체에 떠도는 이 향기를 맡고 목이 멘다는 게 이런 걸까, 생각했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곳에 피어 있던 이 꽃의 향기는 기억 속에서 점점 응축되고 일종의 상징이 되어, 설령 마법을 써서 1954년 6월 30일의 페루자로돌아간다 해도 같은 향기를 음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향기는, 한낮에 역에서 택시를 타고 도착한 피오렌초 디로렌초 거리의 캄파나가 앞에 서서 3층 창문으로 내다보는 아주머니에게(당시에는 그때가 이탈리아인들의 낮잠 시간인 줄도 몰랐다) 파리에서 배워온 이탈리아어로 떠듬떠듬 자기소개를 하던 나를 포근히 감싸주었고, 그날 저녁 대학교에 학생 등록을 하러 가던 길에도, 저녁식사 후 스쿠터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설치곤 했던 내침실로 들어갔을 때도 가득 서려 있었다. 이렇게 레오파르디의 "향기로 가득한 가로수길"은 이탈리아어를 막 배우기 시작한 나를 단단히 붙들고 안으로 야금야금 스며들었던 것이다. - P39
하숙하던 캄파나가에서는 가끔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테라스로 나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보내곤 했다. 이상하게도 생각나는 것은 오직 달 없는 밤의 광경뿐, 어두운 테라스에서 캄파나 부인, 장남 잔카를로, 로마로 시집간 둘째딸 릴리와 가정부 레티치아가 집안일, 보리와 포도의 올해 작황, 이웃집 얘기 등을 끝없이 늘어놓았다. 나는 알아듣기도 하고 못알아듣기도 하면서 아래층 뜰의 재스민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 P47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언덕 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저멀리 바다 건너에는 베수비오 화산이 보인다. 아버지에게 받아 오랫동안 간직했던 엽서의 흑백 풍경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유럽 여행을 하던 아버지가 보내온 것이다. 나와 여동생 앞으로 온데다 한집에 사는 아버지가 엽서를 보냈다니 신기하고 기뻤던 기억이 난다. 어딘가에넣어두고 잊고 있다가 다시 찾기를 반복했는데 언젠가부터 아예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버리지는 않았으니 지금도 서랍 어딘가 오래된 편지에 섞여 있을 것이다. 엽서 뒷면에는 아버지의각지고 반듯한 글씨로 큼지막하게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 라는말이 있단다"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말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잊어버렸다. - P53
저녁 무렵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앞에 화려한 톨레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것이 나폴리의 코르소였다. 불이 환히 밝혀진 가게들, 오렌지와 무화과를 산더미처럼 쌓아올리고 등잔과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등롱을 매달아놓은 노점들, 이런 수많은 불빛으로 거리 전체가 마치 별이 뿌려진 커다란 강물처럼 보였다. 거리 양쪽에는 높은 집들이 이어져있고, 창문마다 발코니가 딸려 있었다. 건물 모퉁이를 빙 둘러가며 발코니를 달아놓은 곳도 있었다. 그런 발코니에 남자와 여자들이 서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즐거운 사육제가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여겨질 정도였다. - P57
또 어느 날은 가까스로 도서관에서 일을 마치고 오후 세시가지나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샐러드 재료를 사러 온 나에게 아주머니가 "어머, 아직 점심을 안 먹었어요?" 하고 놀라는 표정으로묻더니 "그럼 우리랑 같이 먹지그래요?"라며 권했다. "차린 건별로 없지만, 마침 먹고 있던 참이니 앉아서 한술 뜨고 가요." - P67
아주머니가 가리킨 가게 한구석에서는 그녀의 아들이 나무상자 위에 식기를 늘어놓고 익힌 토마토와 달걀로 만든 간단한 요리를 묵묵히 떠먹고 있었다. 알게 된 지 고작 한 달, 남이나 다름없는 외국인을 이런 소박한 식탁에 불러준 아주머니의 마음이고마워서 나는 사양하면서도 눈물이 나올 뻔했다. 나폴리의 근사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북부 도시에서는 십여 년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따뜻한 환대였다. 밀라노가 현대적이고 나폴리는 전근대적이라는 식의 너무도 안이한 설명은 진짜 모습을 전해주지 못한다. - P67
학교 일로 바쁘기도 하고 끊임없이 핸드백에 신경써야 하는인파 속에 섞이기가 내키지 않아서 도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뒤에도 나의 나폴리 관광은 지지부진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스파카나폴리에는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고색창연한 금세공점과정체 모를 고물상(그리고 기막히게 맛있는 산딸기 타르트를 파 - P69
는 제과점 스카투르키오)들 사이로 유서 깊은 관광지가 많았다.14세기 데카메론』을 쓴 보카치오가 일했다는 은행 (지금도 버젓이 영업중이며 내가 나폴리에 도착한 다음날인가 건물 지붕을 뚫고 도둑이 들었다는 기사가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나중에 대학교 월급을 받으러 그 은행에 가야 했는데 다행히 동료 교수가 함께 가주어 안심했다)이나 18세기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가 살았던 집 등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에 있었다. - P68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는 아버지의 말은 뜻밖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오십 년 전 관광객으로 이 도시를 방문한 아버지의 나이는 나폴리에 일자리를 잡고 반년이나 생활한 내 나이의 딱 절반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도 딸도 각자의 관점에서 이 도시를 이해하고, 이 도시를 사랑하며, 저마다의 ‘나폴리를 보고죽‘을 수 있게 되었다. 귀국이 머지않은 무렵, 한 친구가 아버지의 엽서 속 경치와 같은 곳으로 나를 데려가주었다. 그곳에는 사진과 똑같은 소나무가 있었고, 나폴리 만 너머로 베수비오 화산이 특유의 웅장한 산기슭을 펼쳐 보였다. 소나무가 고사하면 다시 똑같은 나무를 구해와 심는다고 그 친구는 말해주었다. - P75
도쿄의 겨울은 건조하지만 아주 드물게 일 년에 한 번이나 될까 싶은 정도로 안개가 끼는 날이 있다. 밤에 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안개가 끼어 있으면 아. 내가 아는 냄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십 년 넘게 살았던 밀라노의 풍물 중 무엇이 제일 그리우냐고 물으면 나는 곧바로 ‘안개‘라고 답할 것이다. - P9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내가 살던 무렵만 해도 밀라노 사람들은 런던의 안개 따위 밀라노에는 명함도 못 내민다며 자부심이 대단했고, 런던을 잘 아는 이탈리아 친구들도 그 사실을 인정했다. 해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11월이 되면 눅진하고 정겨운 잿빛 안개가 찾아든다. 아침에 눈을 떠바깥 차 소리가 어쩐지 먹먹하게 들려오면 아, 안개인가 싶다. 눈 오는 날의 고요한 분위기와도 다르다. 아침이 되면 안개에 젖은 매연이 자동차 몸체에 착 들러붙는다. 그런 날이 며칠씩 이어지다보니 겨울에는 아무리 세차를 해도 소용이 없다. 밀라노 차는 더러워서 어디를 가나 금세 알아본다며, 사람들은 그런 일로도 은근히 안개를 자랑한다. - P10
저녁 무렵 창밖을 내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안개가 자욱이 깔리곤 한다. 창에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이 눈 깜짝할 사이 자취를 감추고, 끝내 굵은 줄기까지 짙은 안개속으로 사라진다. 가로등 밑을 생물처럼 달려가는 안개를 본적도 있다. 그런 날에는 몇 번이고 창으로 달려가 짙은 안개 너머를 내다본다. - P10
여성주의 인권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같은 근대적 개인, 근대적 주체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주장과 동시에, 기존 인권 개념의 기준 자체에도전한다. 양성 평등이 누구 중심의 평등인가는 언제나 논쟁거리이다.정의(justice)로서 평등한 인권은 같아짐(same)이라기보다는 공정함(fairness)을 추구하는 것이다. 양성 평등한 인권은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양성 평등은 남성이 여성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했다. 여성은 ‘공적 영역‘으로 진출했지만, 남성은 그만큼 ‘사적 영역‘으로 진출하지않았다. 결국 이러한 남성 중심의 같음을 의미하는 ‘양성 평등‘ 이념은, 여성들에게 임금 노동과 가사 노동의 두 영역에서 이중 노동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P179
같음의 기준이 남성의 경험에 근거한 것일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음을 주장해도 차별받고 다름을 주장해도 차별받는다. 이것이 소위 ‘차이와 평등의 딜레마‘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과의 차이를 주장하면 남성 사회는 그것을 차별의 근거로 삼고, 같음을 주장하면 사회적 조건의 다름은 무시한 채 남성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양성 - P179
평등을 "여자도 군대 가라", "숙직해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함의 시각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에만 머물지 않고, 조건의 평등, 더 나아가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남성과 여성의 화장실이 5:5의 비율로 있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지만,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사회적·역사적 상황을 고려하면, 기회의 평등은 평등이라고 할수 없다. 임신, 생리, 옷 구가 남성과 다르고 유아를 자주 동반하기때문에, 여성의 화장실 사용 시간은 남성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5:8 정도의 비율로 여성 화장실을 넓게, 많이 만드는것이 실질적이고 공정한 평등 정책이다. - P180
이 같은 인권, 평등 개념의 재구성은 성별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두 발로 걷는 비장애인에게 동일한 조건에서 달리기 경쟁을 하라는 것은 평등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우리 사회에서 ‘평등‘은,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과 같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적 강자의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지, 평등이라고 볼 수 없다. 인권운동은 사회적 약자에게 인권의 개념이 확대 적용되는 것을 넘어, 기존의 인권 개념을 문제시, 재구성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인권의 운동‘ 과정이기도 하다. 인권운동은 인권 개념의 운동을 낳고, 동시에 새로운 개념은 인권운동을 발전시킨다. - 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