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보자면 20대 초반의 나는 시간의 흐름을 견딜 만큼 강한 몸을 지니지 못했다. 그런이유가 왜 이런 결과로 이어지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래서나는 소설가가 됐다. - P55

회사에서 소설을 쓰면 좋은 점은? 역시 회사 책상 앞에 앉아 회사 노트에다가 회사 볼펜으로 소설을 쓸 수 있으며 다 쓰게 되면회사 봉투에 넣어 회사의 비용으로 문학잡지사에 투고할 수 있다는 점이겠다. 그저 상상할 뿐이지만, 마루야마 겐지가 불안감이감도는 회사 책상에앉아난생처음으로 소설을 쓰는 그 광경은애잔하기만 하다. 이건 고시 공부하듯이 절에 들어가 벼랑 끝에매달린 심정으로 소설을 쓰는 차원과는 사뭇 다르다. 이런 식의소설 쓰기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 P56

지루한 봄과 여름을 견디려고 쓴 소설로 나 역시 큰 상금을 받게 됐다. 뭐, 첫 소설로 엄청난 인세를 벌어들인 톨킨, 롤링, 에코,
로이 등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주머니에는 1,800만원짜리 수가 들어 있었다. 양재에서 안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주머니 속의 수표가 여간 신경쓰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1,800만원짜리 수표를 주머니에 넣고 지하철을타거나 길을 걸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런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 P61

성실한 직장인이었던 시절의 일이다. 아침에 출근하느라 지하철을 탈 때면 나는 늘 경이로움을 느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일자리가 있기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할수 있단 말인가! 가끔은 숙취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한 3년 가까이 나는 그런 경이로움을 잃지 않았다. 그 3년동안 나는 세상에는 이다지도 많은 직업이 있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글을 써야만 하는가라는 문제로 고민했었다.
아마도 소설을 거의 쓰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 고민을 할 시간이 있었던 모양이다. - P63

퇴근한 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지 매일 써내려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썼을 때쯤이었다. 컴퓨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밤하늘이 보였다. 문득, 고독해졌다. ‘나는 지금소설을 쓰고 있다. 오직 그 문장에만 해당하는 일을 나는 하고있었다. 그 소설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소설로 인해 내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그런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다 그 문장뿐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  - P66

‘벽‘이란 병이 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빠져 사는 것. 그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라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역시 사람답게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산다. 힘들고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렇게 빛나는 존재로, 또 제가 좋아하는 작가로 계속 계속 재미난 글 써 주세요!!! - P68

도착지점인 온정각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눈은 젤리 상태가됐고 비닐이 벗 겨진 양말은 축축하게 젖은 상태로 얼어가고 있었다. 나는 온정각 쪽의 길을 몰라 하마터면 인민군의 막사로 돌격할 뻔했는데,
다행히 화들짝 놀란 보초병들의 제지로 그 일을 피할 수 있었다.
가까스로 간신히, 겨우 등의 부사에 해당하는 자세로 어쨌든 결승점에 들어가고 난 뒤에야 나는 끼고 갔던 장갑 한 짝을 삼일포가는 길 어딘가에 흘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내가 독일에서사온 털장갑이었다. 눈송이가 떨어지는 온정리 야외 온천에 누워나는 독일에서 남한을 거쳐 북한 어딘가에 떨어진 그 빨간 털장갑의 기이한 운명을 한동안 생각했다. - P75

그럴 줄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말이지 대학을 졸업하고도 그렇게 할 일이 없을 줄은 몰랐다. 대기업에 응시한다고 해도 뽑아줄리 만무했건만, 그런 꿈은커녕 취직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위인이었던지라 조금 난감하긴 했다.  - P78

그 다음날 오후였던가, 제비꽃 줄기는 점점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완전히 쓰러지고 말았다. 제비꽃이 완전히 죽어가는 동안,
 대학까지 졸업한 내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어떤 힘이 제비꽃의 가느다란 줄기를 꼿꼿하게 세우는 것일까? 어떤 힘이 있어 나는 살아가고 있는것일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날 밤, 내 머릿속에는뒷산에 꽂아두고 온 모종삽이 떠올랐다. 어둠 속에서 비스듬하게땅에 꽂혀 있을 모종삽, 그 모종삽처럼 살아오는 동안, 내가 어딘가에 비스듬하게 꽂아두고 온 것들. 원래 나를 살아가게 만들었던 것들. 그런 것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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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빠를 그 전해에는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뒤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낯선 사람 같았고,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은 내 세상의 많은 부분과 무관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로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두려운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바턴 집안의 식구들, 우리 다섯명-줄곧 그랬듯 정상적이지 않은 이 하나의 구조물로 내 머리 위에 떠 있고, 심지어 다 끝날 때까지 나는 그것이 거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셨을때 오빠와 언니가 어땠는지,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던 당혹감이 자꾸 생각났다. 우리 다섯 식구가 정말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우리의 뿌리가 서로의 가슴을 얼마나 끈질기게 칭칭 감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남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가족들을 좋아하지도 않았잖아." 그 뒤로 나는 더더욱 두려워졌다. - P194

지금의 내 남편은 시카고 교외에서 자랐다. 그도 극심한 가난속에서 자랐다. 이따금 집안에서도 코트를 입어야 할 정도로 집이 무척 추웠다. 그의 어머니는 정신병원을 드나들었다. "엄마는미쳐 있었어." 남편이 내게 말한다. "엄마는 우리 중 누구도 사랑했던 것 같지 않아. 엄마한텐 그게 불가능했을 거야." 그는 학년때 친구의 첼로를 쳤고, 그뒤로 첼로에 뛰어난 지능을 보였다.
내 남편은 어른이 된 뒤로 줄곧 전문 첼로 연주자로 활동해왔고지금은 이 도시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다. 그의 옷은큼지막하고 호탕하다.
그는 내가 만드는 음식은 뭐든 좋아한다. - P201

엄마는 그날 병원에서 내가 오빠나 언니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 네 인생을 봐. 너는 묵묵히 네 길을 가서 ・・・・・・ 원하는걸 이뤘잖아." 그 말은 아마 내가 이미 냉혹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 말은 아마 진심이었겠지만, 엄마가 진짜 무슨 뜻으로한 말인지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 P205

블루밍데일이 우리에게 집과 같은 이유는 이것이다. 아이들이자란 집을 떠나온 뒤로 나는 아파트를 옮길 때마다 아이들이 와서 지낼 별도의 침실을 꼭 꾸며두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딸들은 내 집에 와서 지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캐시 나이슬리도 나처럼 했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절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다른 여자들의 경우를 봐도, 아이들이 그들의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절대 비난하지 않고 내 아이들도 비난하지 않지만, 가슴 미어진다.  - P210

어느 늦은 여름날, 내가 아이들 아빠의 집에 간 적이 있었다.
그는 출근한 뒤였고, 나는 늘 제 아빠 곁에 머물렀던 베카를 보러 갔다. 그가 우리의 딸들을 병원으로 데려온, 그리고 자기 자식이 없는 그 여자와 결혼하기 전의 일이다. 나는 모퉁이 가게에갔다가 이른 아침이었다 계산대 위쪽의 작은 텔레비전으로비행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를 들이받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얼른 아파트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켰고, 베카는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내가 사온 것을 내려놓으려고 부엌으로 갔을 때 베카가 "엄마!"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번째 비행기가 두번째빌딩을 들이받고 있었고, 베카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내가 달려갔을 때 아이는 완전히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 P214

나는 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생각 한다. 그 아이의 유년기가 끝난 건그때였다고. 죽은 사람들, 연기, 이 도시와 이 나라에 가득 퍼진공포, 그 이후 세계적으로 일어난 참혹한 사건들. 하지만 나는그날에 대해 떠올릴때내 딸만 생각한다. 그전에도, 그후에도그 아이가 그런 목소리로 외친 것은 들은 적이 없다. 엄마. - P215

요즘 나는 가을에 우리의 작은 집을 둘러싼농장에서 해가 지던 장면을 이따금 떠올린다. 어디를 봐도 지평선이 보여, 내가한 바퀴 빙 돌면 지평선도한 바퀴 원을 그렸다. 해는 등뒤에서지고, 눈앞에 펼쳐진 하늘은 그 아름다운 변신을 멈출 수 없다는듯 은은한 분홍빛을 자아내다 슬며시 푸른 기운을 띤다. 이윽고지는 해에 가장 가까운 땅이 한 줄 오렌지색 선을 그리는 지평선을 배경으로 어두워지다 거의 컴컴해진다. 하지만 돌아서면 땅은 여전히 부드러운 형체를 희미하게 드러내며 몇 그루 나무와흙을 갈아엎고 간작 식물을 심은 고요한 들판을 보여주고, 하늘은 머뭇거리다, 머뭇거리다 마침내 완전히 어두워진다. 그런 순간에는 영혼도 조용히 지켜볼 것만 같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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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읽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느낌이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갈수록 감정이 고조되면서 멈출수가 없게 된 것이다.
페이지를 다 기억하고 싶어서 열심히 남겨본다.



세라 페인이 말했다. 자신의 글에 약점이 보이면 독자가 알아내기 전에 정면으로 맞서서 결연히 고쳐야 해요. 자신의 권위가서는 게 그 지점이에요. 가르친다는 행위에서 오는 피로가 얼굴에 가득 내려앉았던 그 강의 시간 중 하나에서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엄마가 사랑한다는 말을 절대 할 수 없을 거라는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 P157

남편이 그날 말고도 나를 보러 왔었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내가 기억하는 건 그날이라 내가 쓰는 것도 그날에 대해서다. 이건 내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우리를 지나쳤던 숱한 늪지와 풀밭과 신선한 공기와 눅눅한 공기 나는 그런 순간들을 쥐고 있을 수도 없지만 다른 사람들 보라고 펼쳐 보일 수도 없다. 하지만 이 말은 할 수 있다. 엄마가 옳았다. 내 결혼에 문제가 생겼다. 내 딸들이 각각 열아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떠났고, 우리는 둘 다 재혼했다. 우리가 결혼해서 같이 살 때보다 내가 그를 더 사랑한다고 느끼는 날도 있지만, 그건 생각만이니 쉬운 것이다. - P171

그가 나를 보러 병원에 온 그날, 우리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않았다. 아마 그의 아버지가 스위스 은행 계좌에 그의 앞으로 적지 않은 돈을 남겨둔 사실을 알게 된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의할아버지가 전쟁 때 돈을 많이 벌어 스위스 은행에 적지 않은 돈을 맡겨두었는데, 윌리엄이 서른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 돈이 갑자기 그의 것이 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나중에, 집에 돌아간뒤에 알았다. 윌리엄은 그 돈이 어떤 돈이고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며 기분이 묘해졌을 것이고, 그는 자기 감정을 쉽게 말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니 나와 함께 침대에 그냥 누워 있었을 것이다. - P172

제러미.
나는 제러미가 게이였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가 아팠던 것도 몰랐었다. 그렇게 안 보였어, 남편이 말했다. 제러미는 그런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어. 이제 그는 가고없다-그는 죽었다. 내가 입원해 있던 동안에 죽었다. 나는 끊임없이 울음이 나왔다. 흐느껴 우는 조용한 울음이었다. 내가 건물 앞 계단에 앉아 있으면 베카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이따금 크리시는 내 옆에 앉아 내 어깨를 제 작은 팔로 감싸안아주었다. - P177

하지만 엄마가 몸져누웠다. 이번에는 내가 시카고에 있는 병원에 가서 엄마의 침대 발치에 앉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내게준 것을 엄마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내 곁을 지킨 그 며칠 동안잠도 자지 않고 주의깊게 돌봐준 엄마의 그 한결같음을 돌려주고 싶었다.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아빠가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도와주러 온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이 낯선 사람의 눈빛에서읽지 못했다면 나는 아빠를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빠는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내가 느꼈던-어쩌면아빠가 느꼈던 분노는 그게 어떤 것이었건 간에 더는 우리와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아빠에게 느꼈던 역겨움도 이제는 남아 있지 않았다. 병원에 있는 아빠는 죽어가는 아내를 둔 늙은 남자일 뿐이었다.  - P189

"그만 가주면 좋겠구나." 엄마는 조용히 말했는데, 목소리에화난 기색은 없었다.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을 느꼈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더럭 겁이 났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 떠나면 다시는 엄마를 볼 수없을 거예요. 우리가 같이 지내면서 힘들기는 했지만 나보고 가라고 하지 말아요.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 P190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요. 엄마. 그렇게 할게요. 내일 가면 돼요?"
엄마가 나를 쳐다보았는데 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엄마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그러더니 엄마가 조그맣게 말했다. "지금가줄래, 얘야, 제발."
"오, 엄마ㆍㆍㆍㆍㆍㆍ"
엄마가 조그맣게 말했다. "위즐, 제발."
"엄마가 보고 싶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데 울음이 터지려했다. 나는 엄마도 견디기 힘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 엄마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렇겠지."
나는 허리를 굽히고 엄마의 머리에 키스했는데, 엄마는 병이든 뒤로 침대에만 누워 있어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내 물건을 챙겼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밖으로나가려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주춤주춤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 사랑해요!" 내가 소리쳤다. 나는복도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엄마 침대 가까이에 서 있었기 때문에, 분명 엄마는 내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기다렸다. 대답도,
어떤 소리도 없었다. 나는 엄마가 내 말을 들었을 거라고 혼잣말을 한다. 나는 여러 번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그렇게 해왔다. - P191

아빠는 장례식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해했다. 이해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올 사람들이 있을텐데요." 내가 말했다. "엄마한테 바느질 일을 맡긴 사람들도 있었고, 올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아빠는 고개를 젓기만 했다. 장례식은 없을 거라고, 아빠가 말했다.
정말로 엄마의 장례식은 없었다.
이듬해 아빠가 폐렴으로 돌아가셨을 때도 장례식은 없었다.
오빠가 아빠를 병원에 모셔가려고 했지만 아빠는 못하게 했다. - P192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아빠를 보았고, 긴 세월 가보지 않은 그 집에 머물렀다. 나는 그 집이 그 집의 냄새가 그 집의 작은 크기가 무서웠고, 아빠는 몹시 아프고 엄마는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가버린 것이다!
"아빠" 내가 침대 위 아빠 옆에 앉아 말했다. "아빠, 오, 아빠,
미안해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또 했다. "아빠, 아빠, 정말 미안해요. 미안해요. 아빠." 그러자 아빠가 내 손을 꼭 쥐었는데, 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피부는 아주 얇았다. 아빠가말했다. "루시, 너는 늘 착한 아이였어. 늘 참으로 착했지." 아빠가 내게 이 말을 했던건 확실하다. 이건 확실하지 않지만, 그때언니는 방에 없었을 것이다. 아빠는 그날 밤에 돌아가셨다. 새벽세시였으니 다음날 아주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편이더 맞겠다. 아빠 옆에는 나 혼자였고, 그 갑작스러운 침묵의 소리가 들린 순간 나는 일어서서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그만해요! 그만해요. 아빠!"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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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3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껴 읽기!

스트라우트 작가의 매력
에 빠지셨군요.

왠지 브레이크 걸 수 없
는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하수 2022-11-03 17:10   좋아요 2 | URL
네~~^^
이제 다 읽어가는데... 넘 아까워요
뭔가 이야기가 계속돼도 될거 같은..
그런 느낌이예요
우리의 삶이 계속되듯이요^^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 - P60

‘벽‘이란 병이 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빠져 사는 것. 그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라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역시 사람답게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산다. 힘들고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 힘든 일을 견디지 못하고 싫은 마음을 얼굴에 표시내는종류의 인간이다. 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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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서른다섯 살이 됐다. 앞으로 살 인생은 이미 산 인생과 똑같은 것일까? 깊은 밤, 가끔 누워서 창문으로 스며드는 불빛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게 불분명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가살아온 절반의 인생도 흐릿해질 때가 많다. 하물며 앞으로 살아갈 인생이란. - P17

나도 어려서 그 일을 모두 봤다. 어머니가 건강하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의 바로 그 문장을 쓸 때, 비록 자기는 울지 않은 것처럼 짐짓 아버지 얘기만 했지만 이덕무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덕무의 어머니 반남박씨가 돌아가신 것은 이덕무의 나이 스물세살이 되던 1765년의 일이다. 모친상을 당하여서는 수질상복을입을 때 머리에 두르는 짚에 삼 껍질을 감은 둥근 테)과 요대를 풀지 않고 조석으로 슬피 우니 이웃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귀를 가렸다고 연암 박지원은 벗 이덕무를 기리는 글에 썼다.  - P22

하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앉혔더니 고분고분히 앉는 것이었다.
조금 달려보니 소리를 지르고 연신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로와 부딪히는 바람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내친 김에멀리까지. 그러니까 우리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논둑길까지 달렸다. 정말 아름다운 여름이었다. 햇살을 받은 이파리들은 초록색그늘을 우리 머리 위에 드리웠고 바람에 따라 그 그늘이 조금씩자리를 바꿨다. 금방이라도 초록색 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면서 나는 "열무와 나의 두번째 여름이다"라고 혼자 말해봤다. 첫번째 여름을 열무는 누워서 보냈고 두번째 여름에는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초록색 그늘 아래를 달렸다. 세번째 여름은 또 어떨 것인가? 지금 내가 가진 기대 중 가장 큰 기대는 그런 모습이었다. - P25

고향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하는 신세가 된 나 역시 그처럼유배됐다고 생각했다. 매일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출퇴근하다보니 바닷가에 나와 앉아 물을 그리워하는 눈을 거둬 물고기를 들여다보며 『현산어보』를 쓰는 정약전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현산어보』란, 그 책에 등장하는 각종 물고기들의 생김새와 생태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다. 뭘 그리워했던 것일까? 나처럼 화려한 서울의 일을? 혹은 앞으로 자신이 할 일들을? 혹시흑산도에 갇힌 몸이 아니라 자유로운 자신의 영혼을? - P27

유배 16년 동안, 겨우 몇 권의 책만 낸 정약전 그가 뭍이 아니라 아우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그 그리움을 잊으려고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집을 떠나고서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사랑은 물과 같은 것인가. 그 큰사랑이 내리내리 아래로만 흘러간다. 그런 줄도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 집을 떠나고 어린 새들은 날개를퍼덕여 날아가는 것이다. - P29

봄을 기다릴 때, 내가 읽는 책들은 주로 시집들이다. 봄에 읽는시의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당시다. 시인들이란 모자란 것,
짧은 것, 작은 것들에 관심이 많은 자들이니 계절로는 덧없이 지나가는 봄과 가을을 지켜보는 눈이 남다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가을에 당시를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을에는 뭔가를기다릴 일이 없으니까 책을 들여다보는 일은 없는 것이다. 당시라면 내게는 임창순 선생의 [당시정해]다. 소리내 읽다 보면 입에서 향기가 날 것 같다. 세상 살아가는 데 그런 향기 입에 담고 친구와 술 마시는 일보다 윗길인 일이 없다. - P35

아마도 같은 해 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전화를 걸어소설가 김소진 선배가 암으로 죽었으니 문상가자고 말했다. 절대로 가면 안돼!‘라는 문장이 온몸으로 육박해왔다. 왜 가면 안되는데?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그 느낌에 반항하듯 나는 장례식장을 찾아 책 날개에 실린 사진을 확대해놓은 영정에 두 번 절한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간 앓았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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