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알렉스 닐슨. 네가 나한테 기회를 주지않더라도 영원히 사랑할 거야. 그런데 난 린필드로 돌아가기가 무서워. 내가 여길 좋아할지,
지루해할지, 여기서 친구를 만들 수 있을지 몰라서, 나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에 대해 아무렇게나 생각하는사람들을 우연히 마주칠까 봐 겁이 나서. 난 뉴욕에 계속 살고 싶어. 난 뉴욕이 좋고, 아마 너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너를 위해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난이렇게 대답할 거야. 모든 걸 다 포기할 수 있다고. 지금까지 내가 머릿속에 그린 것들 중 너와 함께할 새로운 삶을 위해 버리지 못할 건 아무것도 없어. 이스트 린필드 고등학교에도 갈수 있어. 오늘뿐 아니라 앞으로도 마찬가지야. (714/749)

네가 린필드에 머무를 거라면 난 지긋지긋한고등학교 농구 경기에도 널 따라갈 거야. 선수이름이 적힌 머리띠와 티셔츠를 갖추고, 선수들의 이름도 외울 거야! 아무렇게나 지어내지않고 말야! 네 아버지 집에 가서 다이어트 소다를 마시면서 비속어를 쓰거나 우리 성생활을화제에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야. 베티 할머니의 집에서 너와 함께 네 조카들을 돌봐줄거야. 벽지 뜯는 것도 도와줄 거야! 난 벽지 뜯는 걸 싫어하지만 말이야!
알렉스, 넌 내 휴가가 아니야. 내 번아웃을 해결할 해답도 아니야. 하지만 내가 위기에 빠졌을 때, 아플 때, 슬플 때, 내가 원하는 건 너밖에없어. 그리고 행복할 때면 네가 있어서 훨씬 더행복해져. 아직은 생각해야 할 게 많지만, 내가아는 단 하나는 네가 어디에 있건 거기가 내 자리라는 사실이야. 그 어느 곳도 너만큼 나에게집처럼 느껴지지가 않아, 슬플 때도, 기, 때도,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715/749)

너는 니한테 집이나 마찬가지야, 알렉스. 그리고 너한테 나도그럴 거라고 생각해."
말을 마쳤을 때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알렉스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하지만 그 밖의 다른 감정은 잘 읽어내지 못하겠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이, 어쩌면 그 반대로 소음이 (스피커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고, 머리 위 TV에서는 스포츠 아나운서가흥분한 듯 떠들고 있다) 우리 사이에 러그처럼 점점 더 길게 펼쳐지고, 나는 마치 아주 깜깜하고 맥주로 끈적끈적해진 저택의 반대편에 서 있는기분이 든다. (715/749)

그가 말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또 하나의 목소리가 말한다. 이대로 영원히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 대화가 평생 이어질지도 몰라.
지금까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와 전화 통화들이 그랬듯이.
나는 헛기침을 한다. "그래?"
그는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아주 살짝 고개를 젓는다.
"아니, 너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 뉴욕으로 간다면 그 누구보다 행복할 거야. 너와 함께 있는한, 난 행복할 거야."
또다시 눈앞에 만화경 같은 색채들이 빙빙 돌아간다. 나는 솟아오르는 눈물을 감추려고 눈을 깜박인다.
"그리고 그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해. 내 감정을 말하지 못하고 놓친 기회들, 내 마음을 들키면 널 잃을 거라고, 우리가 너무 다르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던 순간들이 빠짐없이 후회돼. (725/749)

난그저 너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다음이 두려워."
그의 목소리가 갈라진다.
"네가 날 재미없어할까 봐 겁이 나. 다른 사람을 만날까 봐, 아니면 행복하지 않은데도 내 곁을 떠나지 못할까 봐, 그리고...... 평생 널 사랑하다가 언젠가 이별해야 할까 봐 무서워. 네가죽고, 온 세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워. 네가 죽고 난 뒤 내가 침대에서일어나지조차 못할까 봐, 또 만약 우리에게 아이들이 있다면 멋진 엄마를 잃어버리고 아버지가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는 가운데 불행하게살게 될까 봐 겁이 나."
그가 한 손으로 눈가의 물기를 훔친다.
"알렉스." 내가 나직하게 입을 연다.
어떻게 그를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과거의 고통을 없애줄 수도,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줄 수도 없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내가 본, 내가 아는 진실을 말해주는 것뿐이다. (726/749)

"그럼 우리는 배를 여성형으로 부르는 사람들을 싫어한다는 것 외에도 또 하나 공통점이 생긴 거네." 내가 속삭인다.
"서로를 사랑하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야."
코를 훌쩍이던 그가 웃더니 양손으로 내 턱을감싸고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댄다. 그가 눈을감고, 우리의 호흡은 서서히 하나가 된다. 같은바다 위 두 개의 파도처럼 우리의 가슴이 함께솟아올랐다가 다시 잦아든다. (727/749)

"너 없이 살고 싶지 않아."
그가 속삭이자 나는 마치 그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의 셔츠를 단단히 그러쥔다.
알렉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그가 중얼거린다. 
"작은 싸움꾼."
그가 살며시 눈을 뜨는 순간, 가슴이 아플 정도로 두근거린다.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 어제보다 사랑하고, 내일은 더 사랑할 걸 알겠다. 그의 한 조각 한 조각을 나는 계속해서 사랑하게될 테니까.
그가 내 등을 단단히 끌어안는다. 촉촉이 젖은눈이 투명한 나머지 그에게로 뛰어들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그의 생각들 사이를 헤엄치고 싶다. (728/749)

그가 내 머리를 쓸어내리더니 아름다우리만치 차분한 알렉스다운 표정으로 내 얼굴을 살핀다. 
"넌 말이야."
"싸움꾼이라고?"
"내 집이야." 
그 말과 함께 그가 나에게 키스한다.
우리가 집에 돌아왔구나.
(72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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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곁에 없었던 것 같아서 미안해." 알렉스가 나직하게 말한다. 그는 말을 이으려는 듯입을 열었다가 고개를 젓더니 다시 입을 닫는다.
리조트에 도착하자 그는 주차를 하려고 속도를낮추었고, 내가 그를 향해 돌아앉자 그 역시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알렉스......." 다음 말을 잇기까지는 몇 초의 시간이 필요하다. 
"널 만난 뒤로는 외로운 적이 없었어. 네가 있는 한 이 세상에 완전히 혼자라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아."
그의 눈빛이 부드러워지더니 잠시 동안 그대로나를 바라본다.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해도 돼?"
처음으로 나는 농담으로 응수하지도, 냉소적인답을 던지지도 않고 싶은 기분이 든다.
 "뭐든해."
(449/749)

그는 느릿느릿 한 손으로 운전대를 돌리며 입을 연다. "난 널 만나기 전까지 내가 외롭다는 사실을 몰랐어." 그러더니 그가 다시 고개를 젓는다.
(449/749)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힘들어하실때, 난 모두가 괜찮아지기만을 바랐어. 아빠한테, 또 어린 동생들한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또 학교에서는 모두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차분하고 책임감 있고 성실한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지. 그러다가 열아홉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이렇게 살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야. 널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처음엔 난 네가 모든 걸 연기하는 줄 알았어. 화려한 옷에, 이상한 농담에."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내가 농담을 던지자 그의 입가에 벌새의 날갯짓처럼 작은 미소가 살짝 어린다.
"린필드로 처음 함께 차를 타고 갈 때 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엄청나게 많이 물어댔지. 잘 모르지만, 꼭 네가 진심으로 나를 궁금해하는 것 같더라."
"당연하지."
(450/749)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알아.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고, 이상하게 대답이 저절로 나오더라고. 가끔 난 널 만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네가 나를 발명해주기 전까지는."
두 뺨에 열기가 확 몰려오는 바람에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몸을 꿈지럭거리며 가슴 앞에 무릎을 세운다.
"난 널 발명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 아닌걸. 그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다음 할 말을 생각하는 알렉스의 턱 근육이 움찔거린다. 무게를 재보지 않고 말을 뱉는 법이없는 사람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진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아,
파피. 또 만약...... 우리 사이가 변하더라도, 넌 영영 혼자가 아닐 거야, 알았지? 내가 언제까지나 널 사랑할 테니까."
눈물이 고여 눈앞이 뿌옇지만, 눈을 깜박여 간신히 눈물을 밀어 넣는다. 
(451/749)

웬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열자 내 목소리도 차분하고 밝다. 누군가 내 갈비뼈 안에 손을 집어넣어 심장을 움켜쥐고 남모를 상처를 손가락으로 쓸어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러나지도 않는다.
"알아." 나는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나도널 사랑해."
사실이지만, 완전한 진실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느끼는 짜릿함과아픔, 사랑과 두려움을 담아낼 정도로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 순간은 지나가고, 여행은 계속되고,
우리 사이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 마치 겨울잠을 자다 굶주림에 깨어난 곰처럼, 몇 달간 잠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1초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 안에서 무언가가눈을 떴다는 사실 말고는.
(452/749)

알렉스는 손으로 잠시 내 팔을 위아래로 쓸어주지만 그럴수록 더 심한 울음이 터진다. 내가힘들어할 때 누군가 잘해주면 자꾸 눈물이 난다. 그가 나를 가슴에 기대게 하더니 등에 양손을 두른다.
"혹시 돈을 내고 헬리콥터라도 불러서 타고 내려가야 하는 걸까?" 내가 내뱉는다.
"우리 그렇게 높이 올라온 건 아닌데."
"농담 아니야. 다리에 힘을 아예 실을 수가 없어."
"이렇게 하면 되지. 내가 널 안아 올려서 아주천천히 등산로를 따라 내려갈 거야. 아마 중간중간 아주 많이 널 내려놓고 쉬어야겠지만. 그런데 또 나를 시비스킷(대공황 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전설적인 경주마의 이름-옮긴이)이라고 부른다거나 귀에 대고 ‘더 빨리! 더 빨리!‘ 외치는 건 절대 금지야."
(455/749)

내가 그의 가슴에 안긴 채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바람에 알렉스의 티셔츠에 온통 젖은자국이 생긴다.
"그리고 이게 전부 내가 너를 안고 산길을 1킬로미터 걸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너의 작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난 정말 엄청나게화낼 거야."
"1에서 10까지 중에 어느 정도로?"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한 발짝 물러서서 묻는다.
"최소한 7이지."
"너 진짜, 진짜 좋은 사람이다."
"버터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고 완벽하다는 뜻이겠지?" 그는 장난스레 대답하더니 양발을 넓게 벌리고 선다.
"준비됐어?"
"준비됐어."
(456/749)

그러자 알렉스 닐슨이 나를 품에 안아 올리더니 그대로 빌어먹을 산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런 완벽한 사람을 내가 발명할 수 있을 리 없다.
(457/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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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취약한 분야가 물리, 화학, 지구과학 등등이다. 그나마 조금 나은 과목이 생물이었다. 생물 영역이니까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
설명을 아주 쉽게 해주셔서 이해가 잘 된다.
이제 겨우 시작이지만서두!!

생물이 왜 죽는가를 알아보기 전에 생물은 왜 탄생한건지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해 주신다. 친절도 하셔라.. 과학이라면 젬병인 나에게 딱이다.
이러다 훅~~ 어려워지는건 아니겠지.?




자, 물리학과 화학이 나오고 나서 드디어 신입 학문인 ‘생물학‘이 등장합니다.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당연히 생물학이 성립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도대체 생물은 왜 탄생한 걸까요? - P27

왜 지구에서 생물이 탄생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생명탄생 순간을 실제로 본 사람도없고, 재현 실험을 통해 인공적으로 생물을 만드는 일도 성공한 적이 없기에 상상해볼 수밖에 없지요. 그럼 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봅시다.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한 이유로서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태양(항성,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과의 적당한 거리를 가장 주된 이유로 꼽고 있습니다. 물이나 생물의 재료인 유기물이 얼지 않고, 그렇다고 그걸 다 태워버릴 정도로 너무 뜨겁지 않을 만큼의 알맞은 온도가 생명탄생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그림 1-3). - P27

이러한 항성과의 적당한 거리를 전문 용어로 ‘해비터블존habitable zone (생존 가능 영역)‘이라고 합니다. 태양계 밖에 있으면서 해비터블 존에 자리한 혹성 중 하나가 2020년 4월에 NASA가 발견한 ‘케플러 1649c‘입니다. - P28

케플러 1649c는지구에서 약 300광년 떨어진 항성 주변을 도는 혹성입니다.
이 혹성이 항성으로부터 받는 빛의 양은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양의 75% 정도인데 얼음이 아닌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크기도 지구의 1.06배라서 중력도 적당합니다. - P29

다만 항성과의 거리와 온도의 관계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항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혹성도 그 내부에 뜨거운 열원이 있다면 부분적으로 얼음이 녹아서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온도가 유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예가 토성 주변을 돌고 있는 위성 엔셀라두스입니다. 엔셀라두스는 얼음으로 뒤덮여 있지만, 토성 주변을 돌 때 토성의 인력으로 조수간만처럼 형태가 변합니다. 그때 암석이 서로 부딪쳐 마찰열이 발생해서 부분적으로 얼음이 녹습니다. 여기에 지열까지 더해져서 부분적으로 따뜻한 지역이 생깁니다. 어쩌면 이곳에 세균 같은 작은 생물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P29

원시 지구는 지금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갓 생성되었을 때만 해도 용암과 황산 가스 같은 것들이 분출되고, 우주에서 강한 방사선과 자외선 등이 쏟아져서 도저히 생물이 살 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 P29

다만 그 상태는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데는 가장 적합한조건입니다. 그 결과, 다양한 유기물이 생성되어 축적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유기물은 생물을 형성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물질입니다. 대표적으로 단백질의 재료인 아미노산이 있고, 핵산(DNA, RNA)의 ‘씨앗‘ 즉 원재료 역할을 하는당과 염기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들 물질은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좋은 장소, 즉 해저나 화산처럼 고온이면서 땅속으로부터 물질이 끊임없이 공급되는 장소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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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물 댄 논 바라보며 썬룸에서 책📖 을 읽는다. 물을 잔뜩 대놓은 논에 오리들이 꽤 많이 날아온다. 정말 꽥~~꽥~~~ 이러고 논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책 읽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게 된다.
작년엔 물 대 놨어도 오리 한마리 안왔었다. 집 앞에 바로 내려다보이는 이 논은 재작년까지 삼밭이었다. 삼을 캐내고 다시 논으로 돌아온건데 첫 해여서인지 오리들 사이에 소문이 안났었나보다.~~^^
올핸 어느날부터 오리들이 날아다니길래 주인이신 어르신께 ˝오리 풀어놓으신 거예요?˝ 여쭈었더니 아니라고 하셨다. 어느 날 날아온거라고 그러시는거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시끄러워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종일 새소리가 도시에 살때보다 정말 크게, 그리고 여러 새소리가 어우러져 합창하듯 들린다. 새들이 바쁘게 날아다니는거 보니 지금이 집짓고 짝짓기 하는 철인가보다 생각하게 된다.
오리 뿐만 아니라 물까치, 참새, 박새, 까마귀, 비둘기도, 심지어 밤엔 부엉이?, 그리고 미안하게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 소리도 가까이서 들린다. 특히, 물까치는 그 자태가 어찌나 멋지신지... 우리집 울타리에 놀러오는데 하늘색 몸 색이 정말 근사하다. 밤이 되면 새소리는 잦아들고 물 댄 논에서는 개구리 소리가 높은 데시벨을 기록하지 않을까 싶게 스테레오로 들린다. 저녁 먹고 데크에 나갔던 남편이 그걸 녹음해서 가족 단톡방 올렸는데 볼륨 조절 안해도 될 정도여서 순간 크게 하하하하 웃고 말았다.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읽고 싶어 e-Book으로 구입했다. 쪽수가 많아서 좋다~~
다락방님께 ‘땡투‘더라는 사족을 ...

-프롤로그
5년 전 여름

휴가를 떠났을 때 당신은 그 누구든 될 수 있다.
좋은 책이나 멋진 옷과 마찬가지로, 휴가는 당신을 지금과는 다른 버전의 당신으로 만들어준다.

일상이었다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맞춰 고개를 까닥이는 것조차 창피했겠지만,
밴드가 스틸 드럼을 연주하는 가운데 꼬마전구로 장식한 테라스에 서 있다면 어느새 그 누구못지않게 온몸을 흔들어대겠지. (8/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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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21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저도 아직 사두고 안 읽은 책을 은하수 님이 먼저 읽고 계시군요!! >.<

은하수 2023-04-21 13:08   좋아요 0 | URL
앗, 진짜요?
전 이미 읽으신줄 알았어요^^
근데 이 책 문체가 이상하게 다락방님 생각나게 해요~~ 먼저 잘 읽어보겠습니다^^
 

목 관통상을 입고도 살아났고 목소리에도 이상이없었다니 신의 도우심이 아니었을까
그 와중에 들것에 실려 가면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니... 참 뭐라해야 할지 말이 안떠오른다.

아쉽게...
왜 별점은 반이 안될까?
난 이 작품에 별 4개 반 주고 싶은데...



-12장

아침 5시, 흉벽 한쪽 구석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침 5시는 늘 위험한 시간이었다. 동이 트면서 해를 등지게 되기 때문이다. 흉벽 위로 머리를 내밀면 하늘을 배경으로 머리 윤곽이 뚜렷이 드러났다. 나는 보초들에게 교대 준비를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어떤 느낌이 왔다. 아주 생
(462/652)

생하게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무척 어렵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폭발 한가운데 서 있는느낌이었다. 크게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빛이 번쩍거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청난 충격을 느꼈다. 통증은 없었다. 아주 격렬한 충격만 느꼈을 뿐이다. 전극에 몸이 닿았을때의 느낌과 동시에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짓눌리고 움츠러들어 무(無)로 변해버리는 느낌이었다. 앞에 있던 모래주머니들이 엄청난거리로 멀어졌다. 아마 번개에 맞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 아닐까. 나는 즉시 총에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굉음과 섬광 때문에 바로 옆의 소총이 오발되어 맞은 줄 알았다. 이 모든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다음 순간 나는 무릎이 꺾이면서 쓰러졌다. 머리가 땅에 부딪히면서 꽝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463/652)

나는 다행히도 다치지 않았다. 멍하고 어찔어찔한 느낌이었다. 매우 심하게 다쳤다는 의식은 있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통증은 없었다.
나와 이야기를 하던 미국인 보초가 앞으로달려 나왔다. "이런! 맞았나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으레 있음 직한 소동이 일어났다. "들어 올려! 어디를 맞은 거야? 셔츠를 열어 봐!"등등. 
미국인은 내 셔츠를 찢기 위해 칼을 달라고 했다. 내 호주머니에 칼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꺼내려 했다. 순간 오른팔이 마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통증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모호한 만족감을 느꼈다. 아내가 틀림없이 기뻐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늘 내가 부상당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야 큰전투에서 전사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순간 갑자기 어디를 맞았는지,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궁금해졌다. 아무것도 느끼지 (464/652)

못했지만, 총알이 몸의 앞쪽 어딘가에 맞았다는 것은 의식하고 있었다. 말을 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희미하게 꺽꺽거리는소리뿐이었다. 그러나 다시 시도를 하자 어디를 맞았냐고 물을 수 있었다. 목이라고 병사들이 말했다. 들것 담당자인 해리 웹이 붕대와 함께 응급 치료 때 쓰라고 준 작은 알코올 병 하나를 가져왔다. 병사들이 내 몸을 들어 올리자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뒤에 있던 스페인 병사가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알코올 기운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엄청나게 따가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는 상쾌할 정도로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병사들은 나를 다시 눕혔고, 누군가가 들것을 가져왔다. 총알이 목을 관통했다는 것을 안 순간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총알이 목 한가운데를 관통하고도 살아남은 사람이나 (465/652)

짐승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입 가장자리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동맥이 날아갔구나.‘ 나는 생각했다. 경동맥이 잘렸을 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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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음을 예상한 시간이 2분은 되었을 것이다.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런 시간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것도 재미있다는 뜻이다.
처음 떠올린 것은, 다분히 관습적이게도, 아내였다. 두 번째 떠오른 것은 세상 (생각해 보면 결국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세상이었다.)을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격렬한 분노였다. 나는 그 감정을 매우 생생하게 느낄 만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이 터무니없는 불운에 격분했다. 얼마나의미 없는 일이냐! 전투도 아니고 이 염병할 참호 한 귀퉁이에서 순간의 부주의 때문에 죽게되다니! 나는 또 나를 쏜 사람 생각도 했다. 어떻게 생겼을까. 스페인 병사일까, 외국인 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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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까. 나를 맞혔다는 사실을 알까 등등. 그에대해서는 분노를 느낄 수 없었다. 그가 파시스트였다면 나도 그를 죽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러나 만일 그 순간에 그가 포로가 되어 내 앞에 끌려왔다면 잘 쏜 것을 축하해 주기만 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정말로 죽어 가고있었다면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467/652)

병사들이 막 나를 들것에 올려놓았을 때 마비되었던 오른팔이 풀리면서 엄청나게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쓰러지면서 팔이 부러진줄로 알았다. 그러나 이 통증 때문에 안심이 되는 면도 있었다. 죽어 갈 때 감각이 더 예민해지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점차 정상적인 감각들을 가지게 되었다. 어깨에 들것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고 있는 가엾은 병사들한테 미안하기도 했다. (467/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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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4-21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그래픽노블로 스치듯.보았던.에피소드인데.덕분에 자세히 읽어보았네요

은하수 2023-04-21 08:03   좋아요 0 | URL
저도 꼭 이 부분을 남기고 싶더라구요. 목에 관통상을 입고 후송되는 과정에 느끼는 모든 감정이 잘 녹아있어서 읽을때부터 기억해 두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