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신성한 물건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읽는 어머니의 모습을 봐 왔죠. 어머니는바쁜 와중에도 읽을 시간을 냈어요. 가게의 벨소리에 읽기를 멈춰야 할 때면 마른행주나 다림질거리 밑에 책, 신문을 감추셨어요. 아마도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는 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저녁에는 침대에서 조금 독서를 하셨지만 아버지가 불빛 때문에 불평을 하셨죠.
어머니의 독서 욕구는 매우 폭이 넓었는데, 무엇보다 작품들의 가치 차이를 모르셨기 때문이에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줄도 모르셨고요. 좋거나 혹은 싫거나, 그게 다였죠.  - P57

물론 그것만은 아니죠. 독서에 대한 아버지의 무관심과 무심함 - 적당한 표현을 찾아보려 했어요 - 에는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있었어요. 저는 남자의 자리』에서 언젠가 아버지가 책이 너에게는 유익한 것이지만, 내가 사는 데 필요하지는 않아"라고 말씀하셨다는이야기를 썼죠. 그것은 저를 거부하는 문장이었고, 아버지와 저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커다란 격차가 있음을나타내는 문장이었어요.  - P61

 그것이죠. 어느 순간 부모와 자기 자신 사이에 혹은 어떤 때는 형제자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나는 문화적인 격차 커다란 고독과 고통의 영역의 어떤 것. 저는 그것을 16, 17살에 경험했어요. 아버지 역시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겪었을 수도 있다는생각은 하지 못했죠. 어쩌면 아버지는 제가 공부를 오래 하지 않았으면 했을지도 몰라요. 부모님과 문화적으로 분리된 자식들의 고통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더 교육받는 것, 그러므로 더 행복해지는 것, 그들보다 더나아지는 것"을 - 너는 우리보다 더 나을 거야", 저는 - P61

항상 이 말을 들어왔어요 - 최고로 바라면서 동시에 그들이 알고 있던 아이 그대로 남아 주기를, 그들과 같은 것에 웃을 수 있기를, 그들과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나오죠. 아이들을 도중에 잃지 않기를 바라는 거예요. 배우는 것과 그대로 남아 있는 것, 이중적인 제약이 있죠. 저의 고통은 제가 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어요. 나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았죠.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라면 "내가 사는 데 책은 필요하지 않아" 같은 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아버지는 그 말을 사실주의적으로 냉정하게 말씀하셨죠. ‘산다‘라는 본래의 의미로 봤을 때,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 아버지에게는 책이 필요하지 않았던거예요 아버지 안에 그런 욕구가 생기지 않았던 거죠.
- P62

M.P. : 당신에게 문학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A.E : 양면성을 가진 역할이죠. 독서는 상상의 장소였어요. 그곳에서 저는 강렬하게 살았죠. 동시에 주로 저의 세계와 정반대되는 사회적인 모델을 제공하면서 어린 시절의 현실 세계와 저를 갈라놓기도 했어요. 저는 모든 책 속에서 스스로를 완전히 비현실적으로 만들었고, 이 비현실성은 제가 지식을 획득하는 데 아주 놀라운 역할을 했죠. 단지 읽으면서 - 어린이용 서적들을 포함해서 - 라디오밖에 없었던 시절,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배우게 됐어요.
 저는 연극 공연장에도 극장에도 가지 않았죠. 책은 세상을 향한 문이었어요. 저는 저의 규범과 도덕적 룰의 많은 부분이 독서에서, 주인공과 자신의 일체화를 통해서 나온 것이라고 확신해요. 제인 에어가 그랬고, 스칼렛 오하라가 그랬죠. 다른 주인공들도 있고요.  - P63

MP. : 당신은 『제인에어』의 인물과 자신을 많이 동일시하는 것 같아요. 어머니 때문에 그 책을 읽게 되신 건가요?
A.E : 어머니예요. 어릴 적 끔찍한 중학교에 보내졌던 제인 에어와 저 자신을 심하게 동일시했던 것을 기억해요. 성인이 된 제인 에어, 로체스터 씨에 대한 그녀의 반응을 이해하는 게 더 어려웠어요. 그 책에 대해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기억하죠. 제인 에어가 마치 실제 인물인 것처럼 아주 단순하게, 행동이 바르고 똑똑하다고 말했어요. 10년 전에 그 책을 다시 읽으면서, 등장인물이자 화자인 제인이 생각하는 방식이 저에게 얼마만큼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발견하고 놀랐어요.  - P64

예술은 우리가 그것이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도 말해줘요. 그게 예술의 힘이죠. 문학의 힘이고, 영화의 힘이고, 미술의 힘이에요. 음악은 조금 더 복잡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마찬가지죠.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를 구성하는 내면의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을 모아야 해요. 저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받은 적이 없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없죠.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 P66

*저는 글을 쓰는 여자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글을 쓰면서 그런 자각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며,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돌려보내지는 것이 고통의 원천이자 특히 저항의 원천이기 때문이죠. 여성들은 항상 숨겨진 남성 패권주의의 존속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성들의 정체성으로 되돌려 보내졌어요. 2000년대에 여성으로 사는 것이 1950년대에 여성으로 사는 것과 다르다고는 해도 이 지배는 계속되어 왔고, 문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여성의 혁명은 일어난 적이 없죠. 여전히 해야 할 일이에요. - P69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저의 첫 번째 모델은 제 어머니였어요. 저를 키우는 방식, 세상을 사는 
방식, 열정적인, 무슨 일이든 누구든 자신에게 강요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방식에 있어서 그랬죠.
 어머니는 저에게 집안일을 도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없었죠. 가게 일도 마찬가지고요. 15, 16살부터 겨우 이부자리만 정리하면 됐죠. - P70

저는 제가 받아 온 교육과 [제2의 성]이라는 이 이중의 영향이 1968년 이후에 널리 퍼졌던 여성 문학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저를 대비시켰다고 생각해요. 저는 누군가 자신의 몸으로, 여성의 몸으로 쓴 것을 읽고 들었죠. 저는 제가 글을 쓸 때, 피부와 가슴과 자궁으로 쓴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러나 머리로, 그것이 전제로 하는 의식과 기억과 단어에 대한 투쟁으로 쓰죠! 단 한 번도 자, 나는 글을 쓰는 여성이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저는 글을 쓰는 여성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죠. 그러나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요. 이 역사는 피임과 낙태의 자유가 있기 전이며, 출산에 속박된 최악의 역사였죠. 세상에서, 일상에서 여성들이 경험한 것들은 남성들의 그것과는 달라요. - P71

사실상, 한 여성에게 난관은 -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지 않지만 - 여성 자신의 경험을 쓰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관철시키는 것이죠. 더욱이 인정받는 교육되어온 문학은 - 그러니까 본보기로 삼는 - 95%가 남성적이며, 오늘날에도 출산과 같은 여성 특유의 경험들은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반면에, 전쟁과 여행처럼 남성적인 경험에 속하는 글쓰기의 주제들은 대단히 인정받고 있어요. - P72

그렇다고 해도 제 생각에 글쓰기에서 효력을 나타내는 차이는 성별보다는 사회적 본성인 것 같아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사회적인 출신이 결정짓죠. 서민 출신 혹은 그 반대로 특권층일 때,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아요. 그것은 분명히 글쓰기에 있어서 여전히 가장 강력한 구성요소로 남아 있죠.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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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이런 꽃 저런 꽃💐

한 장, 한 장... 천천히 읽어나간다.
찬장새, 철쭉, 왜가리, 너구리, 진돗개 까부리, 똥 냄새 나는 은행나무, 고양이 띵가, 이름은 멋진데 하는 짓은 먹보에 똥싸개에 잠꾸러기인 웃는 개 바람이, 매화나무, 코스모스, 나리꽃, 호박꽃 이런 저런 꽃이
어우러져 아무 생각없이 읽고 있다.
이윤엽의 판화 그림도 하나 하나 다 우리집 휑한 벽에 걸어 두고 싶네!

작가가 들려주는 속내가 갑자기 친근감가고 정겹게 느껴진다.
난 속없이 읽고 있는데 작가가 갑자기 자기 마음을 들려준다. 약간의 위트를 가미해서~~


텅 빈 마음

요즘 예술이 안 돼.
예술가인데 예술이 안 돼.
예술 알지?
마음 속에 있는 걸 표현하는 거 말이야.
근데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나 봐.
심각해.
예술가는 이럴 때 제일 힘들어.
신나게 이것저것 막 그리고 싶은데
마음 속에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그릴 수가 없잖아.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누구라도 만나서 얘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이런 일, 저런 일도 했다면
마음속이 꽉 찼을 텐데.

봄엔 어울려야겠어.
텅 빈 마음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꽉 채워야겠어.
그런 바람을 표현한 거야.

나 예술가 맞지?
(1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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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11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판화도 정겹고 이야기도 정겹네요. 예술가도 이렇게 봄이라고 마음을 채운다는데, 저도 봄바람을 허파에 잔뜩 넣고 이야기들을 채우고 싶어요. 그렇다고 제가 예술가가 되지는 않겠지만 예술가만큼 마음은 풍요로워질듯요.

은하수 2023-03-11 21:42   좋아요 2 | URL
판화 하나하나 다 스토리가 있어서 시를 읽고나면 다 갖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혼자 감춰두고 보는 것보단 책으로 나와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느낌을 주는게 좋겠지요.
시를 읽을 때마다 굳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뒤로 갈수록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네요.
다음 챕터는 그러네요. 처음 가볍게 시작했던 마음이 점점 무거워져요..ㅠ.ㅠ
역시 예술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란 생각이 턱 와서 박히네요^^

모나리자 2023-03-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텅빈 마음에 예술가의 고뇌를 느낄 수 있네요. 그래도 그렇게 심각한 느낌은 안들고 위트 느껴져요. 너무 행복하면 예술이 안된다는 말도 있던데...판화 그림도 소장하시는 은하수님도 예술 감각 키워가실 같아요.^^

은하수 2023-03-12 13:06   좋아요 1 | URL
제가 예술가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이런 생각에 웃음이 나네요^^
뭔가 배고프고 갈급한 마음이 있어야 예술도 되고 스포츠도 되고 노동 운동도 되고 그런 걸까요?
오늘 아침 WBC 야구 보며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막상 소장하려고 하면 뭐를 골라야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빈 벽으로 비워두게 되네요
선택을 한다는게 이리 어려워요^^
 

  지난 번 아니 에르노의 책을 읽을 땐 아버지가 한편으론 몹시 난폭한 분이었나 보다 싶었는데 - 왜냐하면 칼을 들고 어머니를 위협하는 내용을 봤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론 딸과 여행도 가시는 다감한 분이셨고 - 사실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이 반대였던 거다.
  아버지는 온화하고 어머니가 질투할 정도로 딸을 편애 하셨으며, 어머니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셔서 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 애쓰셨고(따귀를 때리는 등) 아버지는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내셨으며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셨고 심지어 딸과 둘이 버스를 타고 여행도 가셨다.
그럼에도 작가는 어머니에게서 인생의 더 많은 부분을 배우고 의지하고 믿었던거 같다. 그리고 배움은 짥았지만 교육열은 높아서 책 읽기에 관한 한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고 어머니 자신도 책읽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이런 일화를 작가의 입을 통해 들으니 프랑스의 어머니도 한국의 어머니와 다르지 않게 엄청난 교육열을 가지고 계셨으며 그것만이 신분 상승의 유일한 기회라는 것을 인지하고 계셨단 것에 감사함을 가질 수 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도 <사나운 애착>의 비비언 고닉의 어머니도 딸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바로 설 수 있도록 격려하셨고, 본인들은 인지하지 못하셨겠지만 페미니스트의 길을 실천하신 분이었던 거다.  정말 놀라운 분들이시다.


A.E : 제 부모님들은 전통적인 모델에 전혀 속하지않는 분들이셨죠. 정확히 그 반대였어요. 아버지는 여성스럽다고 일컬어지는 장점을 갖고 계셨고, 어머니는 남성적이었죠. 아주 일찍부터 부모님의 관계를 그렇게느꼈어요. 아버지는 온화하셨고 저와 노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어머니는 그것을 질색하셨어요. 아버지는 매우 유쾌하셨고 아이들을 좋아하셨죠. 어린 시절 내내 극성맞은 아빠 역할을 맡으셨어요. 제가 아플 때는 아버지가 책을 ‘리제트‘ 이야기를 읽어 주셨죠. 저를 자전거에 태워서 학교까지 데려다준 것도, 저를 데리러 학교에 왔던 것도 아버지였고요. 어머니는 무섭고 매우 권위적이셨어요... 어머니가 곧 법이었죠. 그러니까 저는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가 아니라 어머니가 하라는대로 행동해야 했죠. - P39

 어머니는 독서를너무 좋아하셔서, 그녀에게 독서의 연장 선상은 자신이 직접 글을 쓰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곧바로 학업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활하는데 직업이 필요하다고 덧붙이셨죠 물론 「빈 옷장」은 어머니가 바라는 저의 책은 아니었을 거예요! 화자의 이름이 드니즈이지만, 어머니는 행간을 아니 모든 문장의 행을, 제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읽어 내셨죠. 어머니는 제가 불법 - P50

낙태를 했다는 것을 약간의 의심을 하긴 했지만 이전에는 절대 알지 못했죠 - 확신하셨어요. 당연히 카페 겸 식료품점을 알아보셨고요 그러나 그 책을 읽고- 하룻밤 만에 다 읽으셨던 것 같아요. 그날 저녁 늦게까지 어머니의 방문 밑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거든요.
-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죠. 전혀 말씀이 없으셨어요. 저도 어머니께 묻지 않았고요.
제가 보기에, 어머니는 그것이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 가깝게, 보복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태도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저와 싸우지 않아도 되는 합리적인 태도요. 우리 두 사람 모두, 순수 소설인 것처럼 행동했죠. 저도 그렇게 제 책을 소개하려고 했어요. 그 책이 나왔을 때, 어머니는 이브토에서 멀리 떨어진 안시에서 살고 계셨어요. "당신인 걸 알아봤어요"
라고 말할 이웃들도 손님들도 더는 없었죠. 그러니까 사회적으로 문제가 덜 했던 거죠 저는 어머니의 반응을 그렇게 분석하고 있어요. 자식의 책에 대한 부모들의 태도는 부분적으로는 그들이 상상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에 달려 있죠.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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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안개의 풍경 스가 아쓰코 에세이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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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 아쓰코의 에세이를 읽으며 친구들과 갔었던 이탈리아 여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두살 터울로 고만고만 모인 친구들이지만 제일 큰언니와 막내의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8명이 경비를 모아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 것은 코로나로 난리가 나기 전인 2018년 봄이었다. 북부의 피렌체, 로마, 밀라노, 당시 한창 핫했던 친퀘테레와 피사, 아씨시 등의 소도시 여행, 그리고 남부의 나폴리로 가서 레몬과 오렌지 가로수가 아름답던 소렌토, 카프리섬과 폼페이를 둘러보고 베네치아까지 그야말로 이탈리아를 북에서 남까지 싹 훑는 일주 여행이었다. 어렵게 어렵게 겨우 날짜를 맞춰 여행 전날까지 다들 바쁘게 출근했다 떠나게 된 여행이라 그야말로 하늘을 날 듯한 기분이었다. 그 전의 여러 나라를 며칠 만에 찍고 찍고에 지쳐 있던 터라 - 그렇다고 그 여행들이 나쁘진 않았다. 시간을 내기 어려운 입장에서 겨우겨우 맞춰 가는 여행인지라 한국을 벗어나고 직장과 가정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했으니까 - 이번엔 여유롭게 한 나라만 선택을 해보자는 의견에 따라 선택된 여행지였던 것이다. 물론 패키지의 특성상 '여유로운'이란 있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역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과정들이 바쁘게 이어졌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준비만 되어있다면 되는 여행이었고 거기다 우리 손으로 밥을 안하지 않니? 너무 좋아 이러면서 마냥 신이 나 있었고 즐거워했다. 날씨도 너무너무 좋았고 다양한 국적의 엄청난 관광객을 보는 것도 좋았던, 그야말로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좋은 여행이었다.

  물론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이 책 스가 아쓰코의 <밀라노, 안개의 풍경>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인생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스가 아쓰코가 이탈리아의 로마로 유학을 간 것은 1958 년이었고, 밀라노에서 코르시아 서점을 운영하던 페피노(주세페 리카)를 만나 결혼한 것은 1960 년이었다. 결혼을 하여 밀라노에 정착을 하였고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망 이후 일본으로 돌아오기까지의 13년이란 시간 동안 이탈리아에 머물렀다. 그녀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 시기는 여학교를 졸업하면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기였고, 해외여행조차 쉽게 하기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다.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 상황도 어려웠고 스가 아쓰코도 유학을 떠나기 전 몇 년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어려운 시기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자 유학을 감행하고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을 하여 정착을 하려 마음 먹었던 그 저변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약해진 마음은 그녀가 더 이상 밀라노에 머물지 못하고, 1971년 일본으로 돌아오게 한다. 그녀는 일본으로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이탈로 칼비노, 안토니오 타부키, 그리고 이 책에도 소개되어 있는 움베르토 사바 등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였고, 1989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만초니가의 사람들> 번역으로 피코 델라미란돌라(이탈리아의 철학자) 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작품을 쓰는 것은 아니었다. 1990년 <밀라노, 안개의 풍경>이 처음으로 발간이 되고 이후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베네치아의 종소리>,<트리에스테의 언덕>,<유르스나르의 신발>등의 주옥같은 에세이들이 연달아 발간이 된다.


  "순수한 시간만 따지면 육십 평생에 십삼 년은 그다지 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보낸 십삼 년은 내 안에 지울 수 없는 궤적을 남겼다. 이십대 말에서 사십대 초, 인생의 한창때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의 한창 때, 동양에서 온 젊은 여자의 시선으로 보았던 이탈리아의 일상들, 그리고 긴밀하게 맺었던 인간 관계와 도시의 모습들은 뭔지 모르게 아련하기도 하면서 마음 속에 피어나는 쓰라림과 고통을 동반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작가가 그 시절에 느꼈을 사랑과 행복,  좌절과 외로움, 고통의 순간들을 모두 이 한 권의 책 속에 풀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차오르는 밀라노의 안개와 남편 페피노와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 그리고 만난 지 얼마되지 않은 젊은 동양 여자에게 밥을 권하는 친절한 나폴리 야채 가게 아줌마, 아무렇지 않게 등장하는 어머어마한 귀족 가문의 식사 초대, 그리고 트리에스테의 바다, 관광객이 모두 빠져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베네치아 사람들의 무표정한 일상, 파르티잔(빨치산, 레지스탕스)대장을 숨겨주었다 독일의 수용소에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돌아온 '레지스탕스의 영웅' 마리아 보토니의 인생 이야기는 결코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시간을 나에게 선사해주었다. 


  "스가 아쓰코가 밀라노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서유럽은 역사상 인간 정신이 가장 고상하게 발현된 시기였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신분, 학력, 피부색, 국적, 나이, 빈부 너머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빛, 목소리, 마음에 직접 가닿는다. 사람을 그야말로 사람으로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 자연스러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잊게 한다."(송태욱, 번역가)


  바쁘게 쫓기듯 쓸려다니는 패키지 여행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할 진짜 얼굴을 보는 경험, 도시의 진면목과 그 곳 사람들과의 마음이 담긴 교류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너무도 꿈 같기만 한 먼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가 인생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늘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베네치아에 대하여 쓴 '무대 위의 베네치아'에 깊이 공감하게 된 것이다. 여행자로서 보았던 풍광은 그대로인데 나는 그때도 '나는 단지 스쳐가는 여행자일 뿐이구나!' 하는 감정이 너무도 선명하게 들어서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방문으로 내가 베네치아를 이해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아주 없진 않으나, 특히 베네치아에서는 물 위에 뜬 둥지 같은 도시의 매력에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이 작은 섬이자 도시는 판단 기준이 그간 방문한 도시들과 크게 달라서 뭐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솔직히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렇다고 베네치아가 폐쇄적인 도시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찾아갈 때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을 발하며, 지금껏 알고 있던 것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매력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방문자를 놀라게 한다."(198면)


  "관광 안내서를 따라 미술관과 성당을 방문하고, 산 마르코 광장의 비둘기에 압도되기도 하고, 메르체리에라는 좁디 좁은 중심가 양쪽을 장식한 눈부신 쇼윈도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때로는 리알토 다리 난간에서 몸을 내밀어 쉴새없이 오가는 곤돌라와 수상버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한 기분이 내 안에 계속 남았다. 아직 베네치아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200면)


  "한 해가 저물어 가던 12월에 모임이 있어 베네치아를 찾은 적이 있다. 관광객이 없는 계절의 베네치아는 처음 보았다. 참석자들은 아침 여덟시 반 행사장에 도착하라고 해서 나는 여덟 시쯤 호텔을 나섰다가 신기한 광경에 맞닥뜨렸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아침이었고, 얼어붙은 공기 속에 안개가 자욱이 끼어 코앞의 가구점 쇼윈도도 가물거렸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호텔과 옆 건물 사이로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만한 좁은 골목이 있고, 그곳을 통과하면 대운하의 수상버스 선착장이 나올 터였다. 그 골목으로 접어들려는 참에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출근하는 듯 보이는 남녀들이 호텔 앞 광장을 바쁘게 지나쳐갔다. 내가 놀란 것은 그 무리 속 여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돌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걸음을 재촉한다는 사실이었다. 여름날 귀를 간질이던 높고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옷차림. 대부분 검은색이나 진녹색의 긴 망토를 두르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있었다. 나는 몇 년 전에 본 루칠라의 옷차림을 떠올렸다. 그때 다소 무대의상 같다고 느꼈던 그녀의 옷차림은 베네치아 여자들이 매서운 겨울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려 고안해낸 무장이었던 것이다. 연극의 계절은 지난 지 오래지만 그녀들은 등장인물임을 잊지 않고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어쩐지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겨울의 베네치아 여자들에게 눈길을 빼앗긴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2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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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3-10 13: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018년 이탈리아를 가보셨으면 비교적 최근에 다녀오셨네요. 저는 2012년에 갔다와서 어느덧 까마득한 기억입니다^^ 패키지 여행은 국내에서만 온종일 관광버스타고 다녀본 적은 있습니다. 해외는 늘 뚜벅이로 제가 스케줄 짜서 갈 곳을 정하는 편이라...ㅎㅎ 다시 이탈리아를 가볼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어느 곳이든 해외를 여기 저기 다니는 것은 별로라... 한 나라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역시 좋았던 것 같고요^^;
관광자로서의 시각은 역시 현지인의 시각과는 분명히 다르겠죠. 한달 정도 지내면 모를까!ㅎㅎ

은하수 2023-03-10 16:38   좋아요 3 | URL
모임 친구들과 갈때가 제일 좋더라구요~~
그러니 다들 시간 억지로 쥐어짜듯 가느라 고생인데 그래도 안간단 말 안하고 잘 따라와요 다들 무던한거 같아요 그래서 모임이 오래됐어도 유지가 잘돼요^^
패키지는.. 뭐랄까 항상 급하게 먹는 밥처럼 금방은 포만감 있는데 돌아서면 허전한..다른 음식을 부르는 갈급함이 있어요 저도 천천히 뚜벅이로 스케줄 짜서 정말 머무르는 여행을 하고 싶어요 전 영원히 여행자의 시선이라는게 아쉬워요 이탈리아 또 가세요~~~꼭이요^^

scott 2023-03-10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은하수님 이탈리아 여행지 알차게 둘러보셨네요(아씨시는 이탈리아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
소렌토 카프리섬까지 일주일동안 숨가쁜 일정이 였네요
이탈리아 주요도시는 한달동안 살아도 턱없이 부족😄
담번엔 시칠리아 꼬옥 가보세요😄

은하수 2023-03-10 16:40   좋아요 2 | URL
다녀오고 보니 이탈리아 소도시만 골라 다시 또 가고 싶더라구요 아씨시 피사 친퀘테레 이런 작은 도시들이 사실 더 기억에 남았어요
시칠리아 무라노섬 이런 곳들 정말 다시 꼭 가고 싶네요^^

transient-guest 2023-03-10 1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세계는 거의 대부분 책과 그 외의 것들에서 얻은 간접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언젠가 은퇴가 가까이 오는 시절에 세상을 돌아보는 것이 꿈입니다 깊은 사색의 글 잘 읽고 갑니다 같은 책을 읽고 비슷한 아련함을 느꼈으나 표현이 따라가지 못한 기억이 나네요

은하수 2023-03-10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엥.. 무슨 그런 말씀을요
저도 표현이 서툴러서 맘 속에 있는 말 제대로 못한걸요
사실 리뷰 쓰다보면 하고싶은 말 생각나는 추억들이 너무 많은데 매번 표현의 한계에 부딪쳐 포기하거든요^^
전 은퇴 시기엔 애들도 없으니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할 줄 알았어요^^
어디서 툭 돈이 좀 떨어져주면 가능할까요?^^*
 

-반짝이는 바다 앞 트리에스테

유학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목에 끌려서 『새, 거의 산문으로』라는 사바의 시집을 사 읽은 적이 있다. 쉬운 이탈리아어로 썼구나란 생각은 했지만 사실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결혼한 상대가 알고 보니 둘도 없는 사바의 팬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나에게 사바가 왜 위대한지 그 비밀을 조금도 설명해주지 않고 시집만 차례로 건넬 뿐이었다. 그렇게 사바의 이름과 함께 트리에스테라는 지명이 내 안에서 좋은 와인처럼 숙성해갔다. - P158

어쩐 일인지 남편은 유대인에게 늘 깊은 애정을 보였다. 아마 성서에 나오는 그들의 고단한 운명과 유랑에 공감해서일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중 반나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유대인을 숨겨준 세대에게 그런 애정은 치열한 삶의 한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정치에는 어두웠지만, 어쩌다 유대인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친구를 보면 끈질기게 반론을 펴곤 했다. 그가 죽은지 이틀째인가 또다시 중동전쟁이 발발해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바다건너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으 - P161

니 이탈리아인들도 방관할 수 없는 사태였다. 페피노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슬퍼했을까, 친구들은 말했다. 다시 몇 달이 지나남편과 친했던 유대교 랍비로부터 페피노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스라엘의 어느 언덕에 올리브 묘목 한 그루를 심었다는 편지를받았다. 그런 남편이었으니 유대인 사바를 애틋해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 P162

남편이 죽고 두번째 맞는 여름, 트리에스테를 방문할 기회가생겼다. 생전에는 끝내 함께 가지 못한 도시로 일본에서 온 손님을 안내하게 된 것이다. 현대 조각의 선구자인 마르첼로 마스케리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트리에스테의 고지대 소나무 숲속에 있는 그의 집은 농가풍의 하얀 벽이 눈부셨다. 아틀리에도 소박하고 심플했으나 본질적으로 고급스럽고 모던한 모양새였다.
그날 밤 마스케리니는 친구들을 불러 우리에게 파티를 열어주었다. 향기로운 소나무 아래 아르헨티나인 기타리스트가 자기 나라식 바비큐를 차려주었다. 북국의 긴 황혼이 지고 드디어 밤이 오자 다함께 집안으로 들어가 세상 사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 P167

이튿날 소나무 숲속 조각가의 집에서 택시를 타고 여름 태양이 눈부시게 비치는 언덕길을 달려 역으로 향하면서 나는 다음에는 혼자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뭘 하겠다는 생각 없이 그저 트리에스테의 길을 혼자 걸어보자, 부두에 서서 트리에스테의 바다를 바라보자…
베네치아로 가는 기차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깎아지른 낭떠러지 길을 달렸다. 창 너머 멀리 아래쪽에는 하얀 파도가 바위에부서지고, 여기저기 돛단배가 흩어진 사바의 눈처럼 파란 바다가 한없이 펼쳐져 있었다. 호메로스, 조이스, 그리고 사바가 사랑한 율리시스의 바다가 여름 햇살 속에 반짝이고 있었다. - P169

-철도원의 집

아버지가 철도원이었던 남편의 가족은 로마-밀라노 본선이 밀라노 중앙역으로 들어오기 직전의 오르막길에 있는 선로 옆 철도관사에 살았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시어머니는 네 아이를 키운 그 공동주택을 떠나지 않았다. 기차는 제방 위를 달리고 선로와 집 건물 사이에는 정원이 있어 포플러 가로수를 심고 화단도 꾸며놓았지만, 이른 아침 화물열차의 삐걱거리는 바퀴 소리는 머리 바로 위에서 울리는 듯했다.
잠자리에서 아득한 기적 소리를 들으며 상상에 빠지는 장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첫머리에도 등장한다. 최근에 읽은 미국 작가 폴서루도 매력적인 현대판 오디세이 [그레이트 레일웨이 바자] 도입부를 위해 동부의 도시에서 보낸 소년 시절 침대에서 듣던 먼 기차 소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차디찬 겨울날 아침 내가 잠자리에서 들었던 화물열차의 삐걱거림은 좀더 불길하고 가망 없이 느껴져, 갓 시작된 결혼생활에 대한 불안을 부채질했다. - P174

오래전 피에트로 제르미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철도원>에 대해 쇼노 준조가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1956년 작품이지만 나는 그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이탈리아에 정착한 해가 1958년이니 이미 일본에서 봤을 법도 한데, 그 시절에는 외화가 일본에서 개봉하기까지 아마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특히 이탈리아로 가기 전 이삼년은 영화관에 갈 여유도 없이 살았으니 놓쳤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토록 영화를 좋아하던 남편과 이 영 - P186

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니 의외였다. 훨씬 전에 나온 비토리오데시카 감독의 <밀라노의 기적>은 도쿄에서도 봤고 그후 유학생활을 한 파리에서도 본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 영화의 무대가 시댁 옆을 달리는 기찻길 건너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폭격을 당했는지 아니면 그저 변두리인 탓인지 전후 몇 년간 거기에는 온통 가건물뿐이었다고 한다. 내가 밀라노에서 처음 세든 아파트도 그 지역에 있었는데, 남편에게 들으니 당시 집주인은 폐품 수거로 번 돈으로 땅을 사들여 지금 같은 부자가 되었단다. 그런 이야기를 몇 번 했는데도 <철도원>이라는 영화는 화제에 오르지 않았다. 쇼노 준조의 글은 인간 냄새가 나는 좋은 영화라는 대목밖에 기억나지 않지만, 언젠가 꼭 보고 싶다고 줄곧생각해왔다. - P187

영화를 보고 나는 남편이 죽고 이십 년이 넘도록 왜 이 영화를보지 않았을까 의아할 지경이었다. 영화 속 대사들은 하나같이 그 기찻길 옆 집에 살면서 배우고 들은 내 이탈리아어의 원점에 있는 것들이었다. 쇼노 준조의 글을 읽은 무렵에 (남편이 죽은 지 오 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 익숙한 밀라노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온 무렵일 것이다) 이 영화를 봤다면 아마 나는 온몸이 녹아내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으리라.
 영화 초반부에 술 취한 주인공이 밤중에 귀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가족들이 다들 나갔는지 사방이 캄캄하다. 그 순간 내 안의 누군가가 아, 스위치는 왼쪽에 있는데, 하고 말하며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철도관사는 어느 곳이나 방 배치가 비슷했고 영화에 나오는 아파트도 밀라노-로마 본선의 선로변에 있는 시댁과 판박이였다. 남편이 그 영화 이야기를 하지 - P188

않은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시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잠깐 누워 있겠다 하고는 그길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불과 이삼년 후 나온 이 영화를. 남편은 필시 볼 수 없었으리라. - P189

- 무대 위의 베네치아

몇 년 전 여름휴가때 토마스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이탈리아어로 읽었다. 젊은 시절 때 이와나미 문고판으로 읽은 기억이 있는 이 작품을 다시 한번 집어든 것은 아름다운 장정 때문이었다.
 갈색에 가까운 어두운 보라색 상자에 든 심플하고도 고급스러운 장정이 인상적인데, 타자기와 컴퓨터로 잘 알려진 올리베티사가 크리스마스에 자사 직원과 단골 고객에게 증정한 이탈리아어판이다. 이탈리아의 올리베티사에서는 매년 홍보부에서 까다로운 기준으로 엄선한 작가에게 삽화를 의뢰해 아름다운 단행본을 제작한다. 이탈리아 작품도 있고 외국문학도 있는데, 거의 기존 텍스트를 사용하지만 종이 종류에서 레이아웃까지 디자인에 엄청나게 공을 들인다. 나도 운좋게 몇 권 구해 소 - P193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처음 읽은 젊은 시절에는 그저 뇌의근육(이런 것이 있다면 말이지만)을 써서 내용을 이해하기 급급했기에, 이 책 역시 누구나 알 만한 줄거리밖에 머리에 남지 않았다. 게다가 비스콘티의 영화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여러 사람 - P194

들에게 회자되면서 나 역시 어느새 이 작품을 잘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원래 토마스 만의 작품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크뢰거」 정도만 읽고 계속 손대기를 미뤄왔는데, 얼마 전 여름휴가 때 아니타로가 번역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읽고 이 독일 작가의 위대함에 눈뜨게 되었다. 독일 북부 뤼베크에 사는거상 가족의 이야기가 아마도 토마스 만 특유의 (즉 내가 읽을수 없는 원문의) 단단하고 중층적인 문체를 살린 근사한 이탈리아어로 펼쳐졌다. 중세 대성당을 직접 보는 듯 그때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동했다. 그러한 특질, 특히 원문의 문체를 독자에게 여실히 전해주는 아니타 로의 번역도 충격이었다. - P195

그러나 이 첫번째 방문으로 내가 베네치아를 이해했다면 거짓말이다. 비슷한 경험이 아주 없진 않으나, 특히 베네치아에서는물위에 뜬 둥지 같은 도시의 매력에 곧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이작은 섬이자 도시는 판단 기준이 그간 방문한 도시들과 크게 달라서 뭐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설명할 수 있게 되기까지 솔직히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베네치아가 폐쇄적인 도시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찾아갈 때마다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을 발하며, 지금껏 알고 있던 것이 일부에 불과하다는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매력은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나 방문자를 놀라게 한다. 수면에 반짝이는 석양빛이 끊임없이 물결에 부서지듯, 늘 한정된 시간 속에 나타나 느닷없이 보는 이를 덮치지만 같은 경험을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베네치아는 그런 아름다움을 조금씩 드러냈다. - P199

아무리 한지네 일행과 함께라지만 알베로니의 펜션에서 보내는 시간은 못 견디게 지루했다. 이삼일 지나자 나는 더이상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매일 아침 버스와 연락선을 갈아타며 베네치아로 나갔다. 관광안내서를 따라 미술관과 성당을 방문하고,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에 압도되기도 하고, 메르체리에라는 좁디좁은 중심가 양쪽을 장식한 눈부신 쇼윈도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했다. 때로는 리알토 다리 난간에서 몸을 내밀어 쉴새없이 오가는 곤돌라와 수상버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무언가 부족한기분이 내 안에 계속 남았다. 아직 베네치아의 진짜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 P200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배경을 이 도시로 설정한 토마스 만의 후각은 옳았다. 그 숨막히는 여름이야말로 관광객이 흘러넘치는 베네치아의 무대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섬‘이기에 이미 완결되어 있는 베네치아는 ‘무대‘가 됨으로써 이중의 완결성을 획득한다. 토마스 만은 배겨이 지닌 이런 완결성을 이야기와 주인공의 완결성으로 연결한다. - P207

그러나 환상의 시간은 언젠가 어쩔 수 없이 현실로 회귀한다.
터무니없는 꿈을 현실과 맞바꾸며 살아온 베네치아는 어느새 소리없이 다가온 멸망이라는 운명의 무게를 느끼고 문득 진심 어린한 숨을 토해낸다. 언젠가 호텔방 머리맡에서 들었던 은밀한 물소리도 그런 순간에 나온 베네치아의 혼잣말이었는지 모른다.

한 해가 저물어가던 12월에 모임이 있어 베네치아를 찾은 적이 있다. 관광객이 없는 계절의 베네치아는 처음 보았다. 참석자들은 아침 여덟시반 행사장에 도착하라고 해서 나는 여덟시쯤 호텔을 나섰다가 신기한 광경에 맞닥뜨렸다.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추운 아침이었고, 얼어붙은 공기 속에 안개가 자욱이 끼어 코앞의 가구점 쇼윈도도 가물거렸다. 하지만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안개가 아니었다. - P207

호텔과 옆 건물 사이로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날 만한 좁은 골목이 있고, 그곳을 통과하면 대운하의 수상버스 선착장이 나올 터였다. 그 골목으로 접어들려는 참에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한사람, 또 한 사람, 출근하는 듯 보이는 남녀들이 호텔 앞 광장을 바쁘게 지나쳐갔다. 내가 놀란 것은 그 무리 속 여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돌바닥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걸음을 재촉한다는 사실이었다. - P208

 여름날 귀를 간질이던 높고 떠들썩한 웃음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옷차림. 대부분 검은색이나 진녹색의 긴 망토를 두르고 무릎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 있었다. 나는 몇 년전에 본 루칠라의 옷차림을 떠올렸다. 그때 다소 무대의상 같다고 느꼈던 그녀의 옷차림은 베네치아 여자들이 매서운 겨울 추위로부터 몸을 지키려 고안해낸 무장이었던 것이다. 연극의 계절은 지난 지 오래지만 그녀들은 등장인물임을 잊지 않고 등을 곧게 편 채 각자 맡은 무대를 찾아가듯 말없이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어쩐지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겨울의 베네치아 여자들에게 눈길을 빼앗긴 나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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