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가지절임의 맛
시리아 출신의 한 시인은 가지의 외양을 독수리 발톱 사이에 있는 붉은 양의 심장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알마그로의가지는 딱 그렇게 생겼다. 알마그로 가지절임의 기본 장은 식초와 올리브유, 물과 소금.여기에 훈제파프리카 가루로 색과 향을 더한다. 가지는 아직 꽃자루를 포함하고 있는 아기상태일 때 꽃받침과 줄기까지 잘라서 쓴다. 잘 익은 가지를딴다기보다, 이제 막 생겨난 가지를 줄기째 잘라서 쓰는 셈.
이걸 삶아서 식힌 다음, 오이소박이 만들 때처럼 이등분 혹은 사등분하여 그 틈ㅇㅔ 마늘과 파프리카,
허브 등을 끼워 넣고, 절임장을 부어 열흘 정도 익혀
먹는다. 시원하고 쌈박한 이북식 오이소박이와 비슷
하다. 맥주안주로 아주 좋다. 새콤달콤 짭짤. 다른
음식에 곁들여 김치처럼 장아찌처럼 조금씩 잘라
먹어도 좋다. 그야말로 스페인 가지김치 혹은
가지절임.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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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책이 안읽히는 날이 아니고...
어젯 저녁 딸램이 갑자기 집에 먹을게 다 떨어져 건다고 엄마 반찬 이것저것 먹고 싶대서 남편과 대충 먹으려던 계획을 바꿔 마트로 출동~~
이번주 내내 차는 세워 놓다시피-왜냐하면 카페에서 기분좋게 책 보고 있는데 가만 서 있는 내 차를 긁었다고.. 하여 고치러 가고 렌터카가 우리집 주차장에, 그것도 어마무시한 7인승 모하비, 사실 내 차보다 살짝 짧지만 넘의 차라 무서움- 어쩔수 없이 살살 몰고 다녀왔다. 부드럽고 좋네~~
하룻 저녁새에 국을 두가지나 끓이고 밑반찬 두가지 하고 어젯밤에도 책이 안읽혀서 더 글로리 보기 시작했는데 새벽 두시반...
근데 오늘 아침에 딸램 전화와서 갑자기 내일 집에 온다고...ㅎㅎ
밑반찬 더 안해도 되겠다~~
졸려서 병든 닭같이 흐느적흐느적
가볍게 읽어야겠다.

오늘은 와인감별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산초 판사의 이야기부터 시작이다.
주인님을 ‘심장만큼이나‘ 좋아한단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분은 꿍꿍이라고는 전혀 모르
는 분이에요. 물항아리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죠.
누구에게도 나쁜 짓은 할 줄 모르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만 해요. 악의라곤 전혀 없어요. 어린아이라도 대낮을 밤이라고 그분을 속일 수 있다
니까요. 이런 순박함 때문에 나는 그분을 내 ‘심장만큼이나‘ 좋아하게 되었고, 아무리 터무니없는
짓을 해도 그 사람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요.˝(P114)

이 문장들은 <돈키호테> 어디쯤 나오는걸까?

엊그제 다락방 서재 올라가서 <돈키호테>를 찾아왔다. 2008년 시공사에서 초판17쇄로 발행된 책인데 크기도 크고 700페이지가 넘는다. 그 당시 이 책을 살땐-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의 여유가 생겼으니 -여유롭게 읽을수 있을거란 자신감에 차 있었다. 물론 어림도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랬는데 다시 또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욕구가 스멀스멀 또또 올라온다. 천운영의 책을 읽으면서 어쩔수없이 느껴지는 답답함 때문인데,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음식에 관한 내용이다보니 줄거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하나도 모르니까 읽는 즐거움이 반감되는 느낌?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으면 7일이면 끝나겠네
이러면서~~ㅎㅎ
중간중간 삽화도 있다.

그래도 25%의 생존률을 뚫고 내책 목록에서 살아남았다. 언젠가는 꼭 읽어보겠다는 욕망이 남아 있었다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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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계속 읽어나가고 있다.
위기의 시대에 장미를 심는 마음이 미래의 편에 서는 것이며 그것이 또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란 것을 믿는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거나 망각되는 것이 현대 세계를 규정하는 조건들 중 하나이다. 오웰은 북부에 가서 일터 밖의 노동계급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탄광에 내려가 석탄이라는 필수적인원자재 및 그 채취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그런 망각을 시정하고자했다. 땅속으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채굴하는 것은 과거를 현재로 끌고 오는 것이다. 광업이 너무나거대한 규모로 해온 그 과정이 지구 환경을 최상층 대기까지 바꿔놓았다. 이런 이야기는 노동 이야기로 할 수도 있지만, 생태학적 이야기로도 할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결국 황폐화라는 하나의이야기로 귀결된다. - P82

그 보고서에 따르면, 탄광에 일하러 가는 아이들은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햇빛을 볼 수 있는 때가 일요일뿐이었다. 석탄을 가지고 나오는 통로가 너무 비좁아서 상당한 거리를 기어야만 했다. 석탄 수레를 미느라 정수리가 벗어진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허리에 묶은 사슬을 다리 사이로 늘어뜨려 수레에 매고 네발로 기며 수레를 끌었는데, 사슬에 닳아 옷에 구멍이나거나 피부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오웰도 비슷한 사실을 보고했다. 그런 식으로 석탄 수레를 끌었던, 심지어 임신 후 수개월 동안에도 그 일을 계속했던 "아주 나이 든 여성 몇몇이 아직 살아 있다. 하지만 물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그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잊는 편을 택해야 할 것이다."

*갑자기 이 글을 읽다가
일제가 우리 조선 사람들에게도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생각난다.
- P92

1936년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확고한 자신감은 마치 그들의 의식 내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지층과도 같았다. 세상은 충분히 크고 우리가 무슨 해를 가하든 너끈히 회복하리라는 확신 말이다. 손상은 기껏해야 국지적인 것이며,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그 적은 부분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리라는, 항상 더 많은 것이 있으리라는 확신 말이다. 인간들은 마치 자기가 무슨 짓을 하든 어머니는 절대로 죽지 않으리라 믿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 - P103

하지만 아이는 도구와 기계와 화학적 발명을 갖게 되자 인간의 한계 이상으로 거대하고 강력해졌으며, 시스템 자체를 훼손하고 변모시키는
타격을 가하게 되었다. 그것은 전쟁이었고, 우리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식물들이 이미 해놓은 일과 화해하는 것이 과업이 되었다. -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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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이 단순히 <오웰의 장미>가 아니다.
‘위기의 시대에 기쁨으로 저항하는 법‘이라는 부제가 당당히 붙어있다. 책을 읽어 나가다보니
이 부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더 크게 와 닿는다.
솔닛은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다큐멘터리 작가와 함께 그가 심은 나무를 찾아 미국에서 영국으로 날아간다. 이 여행으로 솔닛은 작가 오웰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을 접고 그를 더 깊이 알아보기로 한다.
˝그 장미들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자,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계량가능한 실제적 결과가 없는 시간들이, 정의와 진실과 인권과 세상을 변혁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어떤 사람의 삶에, 어쩌면 모든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27쪽)



1936년 봄,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안 지 30년 이상이 지났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몇 년 전 11월의 어느 날까지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 P11

그는 이렇게 제안한다. "나무를 심는 것, 특히 오래가는 단단한 나무를 심는 것은 돈도 수고도 별로 들이지 않고 후세에 해줄 수 있는 선물이다. 만일 나무가 뿌리를 내리면, 당신이 선악간에 행한 다른 어떤 일이 갖는 가시적 효과보다도 훨씬 오래갈 것이다." 그러고는 10년 전에 자신이 심은 값싼 장미들과 유실수들에 대해, 그리고 얼마 전에 그것들을 다시 찾아 자신이 후세에 남길 조촐한 식물학적 기여를 바라보았던 일에 대해 들려준다. "유실수 한그루와 장미 한 그루는 죽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잘 자라고 있다. 도합 유실수 다섯 그루에 장미가 일곱 그루, 그리고 구스베리 덤불이 둘인데, 다해서 12 하고도 6펜스밖에 들지 않았다. 이 식물들에는 별다른 일거리도 따르지 않았고, 애초에 들인액수 이상의 비용도 전혀 들지 않았다. 심지어 거름도 따로 준 일이 없었다. 그저 이따금 주변 농장의 말들이 울타리 밖에 멈춰 섰다 지나갈 때면 양동이를 들고 나가 주워 담아 온 것이 전부였다."

*여기에서의 ‘그‘는 당연히 조지 오웰이다.
- P18

나는 나무 심기에 관한 그의 에세이를 「오웰 독본The OrwellReader」이라는 제목의 큼직하고 볼썽사나운 페이퍼백으로 읽었다. 책장 모서리가 수없이 접힌 그 책은 내가 스무 살 무렵 한 중고서점에서 싸게 사서 여러 해를 두고 뒤져가며 샅샅이 읽은 것이었다. 그 책을 통해 나는 그의 에세이스트로서의 문체와 어조를, 다른 작가들이나 정치나 언어나 글쓰기에 대한 견해들을 알게 되었다. 워낙 젊었을 때 탐독한 책이라 나 또한 에세이스트가되어가는 암중모색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족했다. 1945년에 발표된 우화 『동물농장은 어린 시절에 만났는데, 처음에는그것을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고 충실한 말(馬] 복서의 죽음을 슬퍼했을 뿐 그것이 러시아혁명이 스탈린주의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알레고리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 P20

 "사과나무도 100년은 너끈히 산다. 그러니까 내가1936년에 심은 콕스 사과나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열매를 맺을것이다. 참나무나 너도밤나무는 수백 년을 살면서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후에야 마침내 목재로 켜질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조림 사업으로 사회에 대한 모든 의무를 다할수 있다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뭔가 반사회적인 행동을할 때마다 일기장에 적어두었다가, 적당한 계절이 오면 땅에 도토리를 하나쯤 묻어보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 에세이는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사소한 것에서 중대한 것으로 이 경우에는 한 그루 사과나무에서 과오에 대한 보상과후세를 위한 유증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그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나는 글쓰기 방식을 잘 보여준다. - P21

정원의 나무들은 없어졌지만, 나이절을 만나고 나무 그루터기를 돌아보고 사진들을 보고 나자, 그들은 오웰이 심은 장미들은 아마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나는 화들짝놀랐고, 과일나무에 대한 실망이 갑자기 흥분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관심이 일었다. 우리는 다시 정원으로 나갔고, 그곳에는 
그11월의 날에도 멋대로 자란 커다란 장미 두 그루가 꽃을 피우고있었다. 한 그루에는 연분홍 꽃봉오리가 조금 벌어져 있었고, 다른 한 그루에는 거의 새먼핑크 빛깔의 꽃이 피었는데, 꽃잎들의밑동은 금빛이었다. 따져보면 여든 살은 되었을 이 나무들은 왕성
하게 살아 있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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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부터 몰아서 읽어버렸다. 항상 중간이 넘어가기 힘든데... 일단 올해는 책 반납하기 전에 꼭 읽기로 생각했으므로 새해 첫날부터 어길수 없으니 끝까지 읽어야했다.
중간이후부턴 긴장감에 책장이 아주 날개 달린듯 휙휙 넘어간다.
반납을 해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이 곧 다가올 것만 같은 공포스러움이 팽배해 있으니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책장이 휙휙 할수 밖에 없었다.
끝까지 읽기를 너무 잘했다!
중간쯤 읽었을땐 아...뭐 이런... 말아버릴까 했는데 추천한 이유가 있겄지 하는 믿음을 가지고 가보자 한것이 적중한거다.
다음에 읽어도 끝이 어땠는지 가물가물하지는 않겠다.^^

그날 밤, 대화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왜 우리가 바르샤바를 떠나지 않는가 하는 질문으로 끝났고, 우리 모두는 다소 비슷한 대답을 내놓았다. 나는 쇼샤를 떠날 수 없었다. 하이들은 셀리아 없이는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삼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혼자 달아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로드의 부유한 산업가들 몇몇은 1914년 러시아로 도주했지만 삼 년 후 볼셰비키들에게살해되었다. 하이믈은 나치의 박해보다는 여행하는 데 따르는 번거로움을 더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 P348

 셀리아는 다음과같은 얘기를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아직 남아 있다면 단 하루도 이곳에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내 아버지뿐아니라 어머니와 할머니도 내 나이에 죽었어요. 실제로는 그보다도 더 젊어서 죽었죠. 근데, 나는 무기력이라는 힘으로버티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 내가 낯선 땅에 가 어떤 호텔 방이나 병원에서 아파 누워 있고 싶지는 않아요.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어요. 낯선 공동묘지에서 휴식하고 싶지는 않아요 - P348

 죽음이 두려웠던 때도 있어요. 누가 내앞에서 그 단어를 말하는 것도 참을 수가 없었죠. 신문을 샀을 때에도 부고란은 재빨리 건너뛰었죠. 어느 날 내가 더 이상 먹지도, 숨을 쉬지도, 생각을 하지도, 책을 읽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이너무도 끔찍해 삶의 그 무엇도 즐겁지가 않았어요. 그러다가점차 죽음이라는 관념에 대해 편하게 느끼기 시작했죠.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죽음은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되었고, 심지어는 나의 이상이 되기까지했죠. 
오늘 신문을가지고 들어온 나는 재빨리 부고란을 펼쳐 보았어요. 누군가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으면 그가 부러워요.
 
내가 자살하지않는 첫 번째 이유는 하이믈 때문이에요. 나는 그와 함께 가고 싶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죽음은 한꺼번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안타까워요. 그것은 천천히 음미해야 하는 값비싼 포도주와 같아요. 자살하는 사람은 한 번에 죽음으로부터영원히 벗어나고자 하죠. 하지만 그렇게 바보가 아닌 사람들은 죽음의 맛을 즐기는 법을 배우죠."
- P349

나는 아침 식사도 하지 않은채 호텔을 나왔다. 룸 서비스를 하는 여직원이 나를 볼 것이고,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나는 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했다. 나는 일정한 행선지도 없이 길을 걸었다. 내 다리는 나를트레바카가에서 극장 광장으로 데려가 주었다. 
이번에도 바르샤바에 머물게 되면 나치의 손에 떨어지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두렵지 않았다.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고, 베티의 희곡을 읽고, 그녀와 얘기를 나누느라 피곤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를 나무랄 수 있는기회를 주었고, 그에 따라 우리의 작별은 덜 근엄할 수 있었다. - P364

 그 전까지만 해도 자유의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그날 아침에는 인간이 내 손목시계의 태엽장치나 접시의 가장자리에내려앉은 파리만큼의 선택권밖에는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똑같은 힘이 히틀러와 스탈린, 교황, 구르의 랍비,지구의 중심에 있는 분자 하나, 은하수에서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성운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맹목적인 힘인가? 아니면 뭔가를 볼 수 있는 힘인가? 그것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사소한 게임을 끝낸 후 죽게끔 운명지어져 있었다.
- P366

 유대인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여느 때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프르즈세호드니아 가에 있는 환전소에는 달러에 대한 즐로티의 가치를 고시하고 있었다. 암시장에서는 달러를 환전할 경우 몇 페니를 더 지불해주었다. 유대교 학당에서는 학생들이 탈무드를 공부하고 있었다. 하시디즘 학당에서는 하시디즘의 주제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문득 내가 이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골목과 건물과 가게와 얼굴들 모두를 기억 속에 새기려고 노력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사람 역시 교수대로 가는 길에 세상을 그런 눈으로 볼 것 같았다. 나는 행상들과 짐꾼들, 시장에서 일하는 여자들, 심지어는 마차에 묶여 있는 말에게까지도 작별을 고했다. 나는그들 각각에게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표정을 보았다.  - P367

13년이 지나갔다. 뉴욕에서 나는 이디시어 신문사에서 받는 봉급으로 이천 달러를 저축했다. 영어로 번역될 소설의선인세로 오백 달러도 받았다. 나는 런던과 파리, 그리고 이스라엘을 여행했다.  - P375

"이 커피는 구정물 같군. 자네를 못 본 게 얼마나 됐지? 13년? 그래, 구월이면 정확히 13년이 되지.
쇼샤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지?"
"우리가 바르샤바를 떠난 이튿날 죽었어요."
"죽었다고? 길에서?"
"그래요, 라헬[야곱의 두번째 아내이자 요셉의
어머니]처럼요" - P380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어, 아무것도. 소식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전해지지 비알리스톡과 빌나에 우편배달부와 심부름꾼이 된 유대인들이 있었어. 그들이 국경을 넘어 아내들에게 편지를 갖다주었지. 하지만 자네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렸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1946년에 자네가 살아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지. 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뮌헨으로 갔는데 누군가가 그곳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주더군. 그것을 펼치자 자네 이름이 있더군. 자네가 뉴욕에 있다고 했어.
뉴욕에는 무슨 수로 가게 되었지?"
"상하이를 통해서요."
"누가 신원보증을 선 건가?"
"베티 기억하죠?" 
"그럼! 아무도 잊지 않았네."
"베티는 기독교인인 미군 중령과 결혼했어요. 그가 신원보증서를 보내줬죠."
"그녀 주소를 알고 있었던 건가?"
"우연히 알게 되었죠."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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