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 듣다 드는 생각

내일은 시엄니 7주기이다. 남편 손 위 누님(큰형님, 작은형님) 두 분 정말 몇 년 만에 오신대서 열심히 욕실 청소하면서 라디오 듣는데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가 나오는거다.
평소 이 음악 들을 땐 뭔가 거룩한 것에 둘러싸인듯 벅찬 감정을 느꼈었는데 오늘은 요즘 내가 읽는 책이 미국의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의 《하워드 진, 역사의 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이다보니 이 음악이 그냥 벅찬 감정으로 들리지 않는거다. 마침 어젯 밤 인디언들이 땅을 지키기 위해 벌인 전쟁 부분을 읽었으니 더 그랬다.

내 기억으로 드보르작은 1892년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인디언들의 민속음악과 흑인영가를 채집하였고 이에 자극을 받아 작곡을 하고 작품의 제목도 직접 붙였다. 1892년 쯤에는 미국이
인디언들의 땅을 ‘사유화‘라는 이름으로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땅을 훔치고 빼앗고 죽이고 좁은 구역에 몰아넣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던 시기였을텐데...
드보르작은 이런 모든 것을 다 보고 알았고 느꼈을까. 이런 거대한 슬픔의 감정을 곡에다 반영했을까? 그걸 모르겠네!

이런 심각한 글을 읽으면서도 배는 고프고
음악 틀어놓고 썬룸에 앉아 풍경보며 먹는 샌드위치도 맛있고 낫또도 맛있고. 언제나 빵과 장미는 중요한 가치이다!




1880년대에 미 의회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공유지를 해체해 사적 소유지로 만드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오늘날 일부 사람들이 찬양하는 ‘사유화‘였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디언들이 얼마나 ‘야만‘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법안을 입안한 상원 의원 헨리 도스는 체로키 족을 방문했을 당시 자신이 발견한 것을 이렇게 묘사했다.

"개인 소유의 집을 가진 가족은 하나도 없었다. 극빈자도 없었고, 달러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에는 명백한 단점이 있다. 이 사람들은 땅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땅을 차지할 수 있다...... 이웃집보다 자기 집을 더 번창하게 만들려는 적극성이 없다. 문명의 근저에 흐르는 이기심이 없는 것이다."
- P142

1933년 발표한 자서전에서 루서 스탠딩 베어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로 백인들은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백인들의 문명이 꽃피운 열매는, 때깔도 곱고 맛도 있어 보이지만, 사람을 병들게 하고 말라 죽인다. 사지를 절단하고 약탈하고 분탕질하는 것이 문명의 일부라면, 도대체 진보란 무엇이란 말인가? 감히 말하건대, 원뿔형 천막 속에 앉아서 삶 자체와 삶의 의미를 명상하고, 모든 피조물을 혈족으로 받아들이고, 우주 만물과의 합일을 인정하는 사람이아말로 자신의 존재에 문명의 진정한 정수를 불어넣는 것이다."


1. Luther Standing Bear(1868-1939). 아메리카 원주민 작가. 인디언 문화의 가치를 옹호하는 책들을썼으며, 인디언의 권리를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 P143

이렇듯 콜럼버스를 비판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은 진보, 문명, 우리가타인들과 맺는 관계, 우리가 자연세계와 맺는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콜럼버스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나 역시 이런 말을 꽤 자주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다. "당신은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콜럼버스를 20세기의 눈으로 보고 있다. 500년 전의 사건들을 우리 시대의 가치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역사적인 것이다." - P144

이런 주장은 참으로 이상하다. 잔혹 행위, 착취, 탐욕, 노예화,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 등이 15~16세기에는 다른 특별한 가치가 있었다는 말일까?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는 말일까? 콜럼버스 시대와 우리 시대에 공통적인 인간의 가치는 없을까? 콜럼버스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나 타인을 노예로 만드는 사람과 착취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권을 위해 그런 자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그런 가치의 존재를 증명해준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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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콜럼버스와 서구 문명

˝이교도에 맞서 화약을 사용하는 것은 신께 경의를 표하는 것˝,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문명화하는 것˝이 미국의 의무라고? 뭔 개소리여... 그리스도교가 문명이면 인디언들은 문명이 없었단 말인건가?
그나저나 그런 의무를 지라고 아무도 부탁한 적 없는데...ㅆㅂ 욕나오네...


17. 새로운 역사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점점 더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는 파괴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민중운동이 어떻게 부자와 권력층에게 위협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우리는 그들을 권좌에서 물러나게도 할 수 있다. 게다가 권력자들이 다른 사람을 위해 준비해 놓은 피고석에 그 자신들을 앉힐 수도 있다.》(181)



군사 정복에서는 언제나 여성이 잔혹한 취급을 당한다. 쿠네오라는 이름의 한 이탈리아인 귀족은 초기 성적 접촉을 기록해 뒀다. 쿠네오가 ‘제독‘이라고 언급한 이는 콜럼버스다(스페인 군주와 맺은 협정 가운데 하나가자신을 제독으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쿠네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우 아름다운 카리브 여인을 붙잡았다. 제독은 그 여자를 내게 준다고 말했고나는 즐기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나는 욕망을 실행에 옮기고 싶었지만 그 여자는 원하지 않았고, 나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방식으로 내게 손톱을 들이댔다. 그러나 난 그런 행동을 보자마자, 밧줄로 그 여자를 마구 때렸다. ......마침내 우리는 합일(合一)에 다다랐다.

... - P127

몇몇 선생님들은 불필요하게 아이들을 겁주지 않으면서도 실제 일어난 역사의 진실을 왜곡 없이 들려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다 자란 아이들조차도 여전히 진실을 듣지 못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앞서도 밝혔지만, 나는 대학원을 다닐 때에도 내가 저학년일 때 들은 콜럼버스 신화를 반박하는 정보를 보지 못했다. 모든 연령의 독자들이 내게 충격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미뤄 볼 때, 내 경험이 전형적임이 분명하다. - P131

성인용 책인 <컬럼비아 백과사전>을 보면, 매우 길게 약 1000단어로 된콜럼버스 항목이 있다(나는 1950년판을 갖고 있지만, 모리슨의 전기를 포함해 당시까지의 모든 관련 정보가 들어 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콜럼버스와 부하들이 저지른 잔혹 행위를 언급한 문구는 찾을 수 없다. - P131

1986년판 《컬럼비아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콜럼버스에 대한 언급은 몇몇 있지만, 콜럼버스가 원주민에게 한 짓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아메리카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할애된 몇몇 쪽에서도, 당대의 신학자들이나 오늘날의 역사가들 사이에서 당시의 원주민들 처우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적혀 있을 뿐이다. 《컬럼비아 세계사》의 한 구절을 통해서,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이 ‘균형 잡힌 접근법‘의 특징을 잡아낼 수 있다. - P132

인디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라는 왕실과 교회의 결정, 신대륙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 인디언들을 보호하려는 몇몇 스페인 사람들의 시도는 매우 두드러질 만큼 복잡한 풍습, 법, 제도를 낳았다. 이 때문에오늘날까지도 역사가들은 아메리카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수행한 구실에관해 상반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어떤 점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이 질문을 놓고 학술적 논쟁이 무성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소름 끼칠 정도로 인디언들의 수를 감소시킨 것은 의심할 나위 없이 잔혹 행위, 과로, 질병이었다. 최근 계산에 따르면, 1519년에 멕시코에는 인디언들이 약 2500만 명이 있었지만, 1605년에는 그 수가 100만 명을 약간 넘길 정도였다. -1986년판 《컬럼비아 세계사》
- P130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카리브 해와 태평양까지 뻗어 간 미국의 새로운 팽창주의는, 미국인들이 자신들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니 괜찮다는 식으로 용납됐다.  - P136

‘진보‘와 ‘문명‘이 가져다준 이득들, 그러니까 기술, 지식, 과학, 보건, 생활수준 등의 발전을 부정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진보는 좋지만 인류는 그것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이다.
인류에게 끼친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과 기술상의 통계 수치 변화만 측정해, 진보했는지 안 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러시아를 강력한 산업국으로 만들었다는 이유로 스탈린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러시아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까?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는데도? - P140

그런데 우리는 이 거대한 산업상의 진보를 위해 인류가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는 배우지 못했다.

흑인 노예들의 노동이 어떻게 목화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는지, 열두 살에 공장에 들어와 스물 다섯에 죽은 어린 소녀들의 노동이 어떻게 방직 산업 발전시켰는지,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 속에서 말 그대로 죽도록 일한 아일랜드인과 중국인 이민자들이 어떻게 철도를 건설했는지, 파업을 벌인 이민자들과 본토 노동자들이 경찰에게 두들겨 맞고 방위군들에게 체포돼 가며 어떻게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했는지, 도시 빈민가에 사는 노동계급의 어린아이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며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얼마나 일찍 죽었는지 등을 배우지못했다. 이 모든 것이 ‘진보‘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 P141

콜럼버스의 원정이 야만에서 문명으로의 전환이었는가? 콜럼버스가 상륙하기 전에 이미 수천 년 넘게 이룩돼 온 인디언들의 문명은 무엇인가? 라스카사스 같은 이들은 인디언 사회의 특징인 공유와 관용의 정신, 공동체 생활, 미적 감수성, 남녀평등 등에 경탄했다. - P141

북아메리카의 영국인 식민지 개척자들은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에 걸쳐살던 이로쿼이 족의 민주주의에 깜짝 놀랐다. 미국 역사가 게리 내시는이로쿼이 족의 문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동부 산림지대에서는 법령이나 규정도, 보안관이나 경찰관도, 판사나 배심원도, (유럽 사회의 권력기관인) 법정이나 감옥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의 경계선은 명확하게 존재했다. 각자의 자율성을 무척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이로쿼이 족은 옳고 그름은 엄격히 구분했다."
- P141

콜럼버스 이야기, 더 나아가 전통적인 역사의 모든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우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고 언론의 자유를 훼손한다는 비난을 흔히 받는다.
 참으로 기이하다. 생각의 폭을 넓히고 새로운 책, 새로운 접근법, 새로운 정보,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낡은 이야기와 표준적인 역사의 수호자들이 아닌가. 그들은 ‘자유시장‘을 믿자고 주장하면서도, 온갖 사상이 존재하는 자유 시장은 믿지 않는다. 오직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 시장만 믿을 뿐이다.
물질적 상품에 관해서든 생각에 관해서든, 그들은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사람들이 지배하는 시장을 원한다. 그들은 새로운 생각이 시장에 유입된 탓에, 사람들이 지난 500년의 ‘문명‘ 동안 너무도 많은 고통, 너무도 많은 폭력, 너무도 많은 전쟁을 야기한 사회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1960년대의 신좌파들이 시작해 1990년대 유행한 일종의 언어 순화 운동. 인종, 민족, 종교, 성별 등과 관련돼 차별이나 편견이 포함되지 않은 표현을 쓰자는 운동이었다. - P149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른바 문명의 혜택에서 제외됐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현재를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단순한 일이지만, 우리가 애써서 성취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곧 다음 세기에 들어서게 될 우리에게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다가올 세기가 뭔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다가올 세기가 미국이나 서구, 백인이나 남성, 또는 또 다른 국가나 집단의 세기가 아니라, 그저 인류를 위한 세기가 되기만을 바란다면 말이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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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역사가의 역할








14. 콜럼버스와 서구 문명

매우 현명했던 조지 오웰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달리 말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들이 우리의 역사를 쓸 수 있다. 그리고 만약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우리의 미래까지 결정할 수 있다. 콜럼버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P121

그리고 자신의 스페인 후원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 쓴 편지에서, 콜럼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사람들은 무척 순진하고, 정직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너무나도 아낌없이 팍팍 나눠줍니다. 어떤 물건을 달리는 부탁을 받았고 만약 그 물건을갖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부탁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남을훨씬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지요.
- P123

일반적으로 콜럼버스를 설명할 때 거듭 강조되는 점은 콜럼버스의 종교적 감정, 원주민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열망, 성경에 대한 경외심이다. 그렇다, 콜럼버스는 신(God)에게 관심이 있었다. 다만 황금(Gold)에관심이 더 갔을 뿐이다. 단지 알파벳 하나만 더 추가된 저 단어에 말이다.
이 알파벳이 콜럼버스의 행동을 결정했다. 그렇다, 자신과 형제, 그리고MED부하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히스파니올라 섬 전역에 콜럼버스는 십자가를 세웠다. 그러나 섬 전역에 교수대도 세웠다. 1500년까지 340개의교수대가 세워졌다. 십자가와 교수대, 이것은 치명적인 역사적 병치다. - P124

잔인함은 배가됐다. 라스카사스는 병사들이 장난삼아 인디언들을 찌르고, 아기들의 머리를 돌에 내던지는 것을 봤다. 인디언들이 저항하면스페인 사람들은 말, 장갑판, 단창, 장창, 소총, 석궁, 잔인한 개 등 온갖살인 장비를 갖추고 그들을 사냥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소유한 물건을사용한 인디언들은 참수형이나 화형을 당했다. 인디언들은 사유재산이란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고 자기 소유물을 아낌없이 베풀었는데 말이다.
다른 목격자들이 라스카사스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도미니크파의 수도사 집단은 1519년 스페인 군주에게 청원해 스페인 정부가 중재에 나설것을 바랐다. 이 수도사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포악함, 가령 아이들을 개에게 던져 잡아먹히게 놔두고, 여성 포로가 낳은 갓난아기를 정글에 버려 죽게 놔두는 상황을 말했다.
- P126

가장 큰 희생을 낳은 것은 질병이었다. 원주민들에게는 면역성이 없는장티푸스, 발진티푸스, 디프테리아, 천연두 같은 질병을 유럽 사람들이달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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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3-03-1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진실한 것이 역사이고, 되묻지 않으면 역사는 잊혀진다. 누군가의 말이지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은하수 2023-03-19 22:34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세요 차트랑 님! 되묻고 기억하고... 우리가 꼭 해야할 일이라 생각됩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6
토마스 만 지음,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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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과 <토니오 크뢰거>는 여러면에서 토마스 만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투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직접 체험했거나 내면의 갈등, 작가로서의 고뇌와 매 순간 선택해야만 하는 대립된 요소들을 마치 옷감을 짜듯 정교하고 치밀한 언어들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독일 뤼베크의 유서 깊고 부유한 사업가 집안 출신 아버지는 유능하고 근면, 건실한 성품을 지녔고, 어머니는 브라질계 출신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분이었다. 이렇게 상반된 기질의 부모님에게서 성실한 시민정신(아버지)과 예술적인 감성(어머니)을 물려받은 토마스 만은 두 작품의 주인공인 아셴바흐(베네치아에서의 죽음)와 토니오 크뢰거에게 그대로 적용하며, 작품 속에서 중요한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등장한다. 그러나 두 작품의 주인공들의 이러한 성향의 최종 도착점은 같지 않아서 더 매력이 있다.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것에 나도 찬성일세.




   아셴바흐는 "50세 생일 이래 공식적으로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라 불리는"  즉 귀족의 칭호를 얻은 명성 높은 산문 작가이자 시인, 소설가, 논문 작자이다. 슐레지엔 지방의 군청 소재지에서 고위 법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조상 대대로 법관, 장교, 행정관료로서 왕과 국가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어머니는 보헤미아 지방의 악단 지휘자의 딸인데 성급하고 감각적이며 열정적인 기질을 지녔다. 성실하고 냉철하며 열정적이고 충동적인 그의 성향은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자신을 포장하고 관리하여 명성을 얻는데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만든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재능을 꽃 피우고 최고의 예술가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극도로 엄격한 규율이 필요했다.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인내하고 업적을 쌓고 다시 인내하면서 명성을 위해 나아가는 삶이었으며, 극도로 정신적인 소모를 필요로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품위를 잃지 않아야만 하는 삶인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의 평생동안 즐거움이라곤 누려보지 못하였고 학자 집안의 아가씨와 결혼하여 딸을 낳고 잠시 행복하였으나 지금은 아내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딸을 결혼하여 홀로 살고 있는, 초로의 작가인 것이다. 어느 날, 느닷없는 계기로 여행 욕구에 사로 잡힌 아셴바흐는 잔신의 인생에서 조금은 즐거움과 행복을 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남쪽의 베네치아를 최종 기착지로 하는 여행을 떠난다. 베네치아 리도섬의 호텔, 그곳에서 열네 살 가량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케 하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소년 타지우를 보게 된다. 그의 삶에 찾아온 최상의 예술적 아름다움!


  "아셴바흐는 완벽하게 잘생긴 소년의 모습에 감탄했다. 우아하게 내성적이고 창백한 얼굴이 벌꿀빛의 머리카락에 에워싸여 있었다.  오뚝한 코, 사랑스러운 입, 기품 있으면서도 더없이 아름답고 진지한 표정은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상을 연상시켰다. 한 없이 순수하게 완벽한 모습은 유일무이하게 개성적인 매력을 발산해 자연에서도, 조각 예술에서도 그에 버금가는 셩공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49)


  한 평생을 바쳐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위로 위로 명성을 쫓아온 아셴바흐에게 천생적으로 완벽한 타지우의 모습은 불가항력의 마력을 발휘하는 힘이 있었을 것이다. 아셴바흐는 곧 이 소년에게 한없이 빠져든다. 눈으로는 소년의 모습을 쫓고, 소년의 가족이 베네치아로 외출을 하면 그 뒤를 쫗아다니며 그의 모습을 단 한순간도 보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지경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평생을 자신을 채찍질하며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예술적 성공만을 바란 이 초로의 작가는 자신의 안에 있는 정열을 어쩌지 못하고, 고통스런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혼자만의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리도에 머무른 지 사 주째,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는 주변에서 몇 가지 심상치 않은 사실을 인지헸다. 첫째는 성수기인데도 호텔의 손님 수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줄어드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독일어가 점점 들리지 않게 되더니 아예 자취를 감추고, 종내는 식사할 때나 해변에서 낯선 언어만이 귀에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셴바흐는 자주 찾아가는 이발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당혹스러운 말을 듣게 되었다. 이발사는 잠시 머물다가 방금 떠난 독일인 가족 이야기를 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아부하듯 덧붙였다. "손님은 여기 머무르시는 걸 보니 질병이 두렵지 않으신가보죠."  아쎈바흐는 이발사를 쳐다보았다. "질병이라니요?" 그러고는 되물었다. 수다를 떨던 이발사는 입을 다물고 일에 몰두하며 아셴바흐의 질문을 못 들은 체했다."(99)


  그렇다. 베네치아에 몰아닥친 전염병, 콜레라가 상선을 타고 시리아로부터 베네치아에 들어온 것이다. 당국은 그것을 감추고 있지만 이미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바로 베네치아를 떠날 수 있었지만 아셴바흐는 소년의 가족에게도 전하지 않았고, 자신도 결국 소년의 가까이에 남기로 결정한다.


  작가가 설정한 두 상반된 성격은 여기서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일까. 냉철하고 근면 성실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던 아버지의 근성은 어디로 가고 열정에 휩싸인 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 결함과도 같은 어머니의 성격을 승리자로 만드는 것인가.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선택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셴바흐의 인생은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미 다 이루지 않았는가. 작가로서의 삶은 그에게 기쁨보다는 고통을 그리고 남은 육체를 모두 소진하는 여정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는 이미 그것이 너무 힘든 지경에 이르러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단 한번 최상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는 황홀한 이 순간을 그만 단념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렇기 때문에 아셴바흐는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몸을 던져 획득한 황홀한 그 사랑에 함몰될지라도 다시 돌아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비극으로 끝날 것을 알았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것이다!




  토니오 크뢰거는 영사의 아들이며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상회의 검은색 상호가 큼직하게 찍힌 곡물 자루들이 마차에 실려 거리를 지나는 걸 매일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잣집이다. "훤칠한 키에 눈빛이 푸르고 신중한 토니오의 아버지"와 "아버지가 예전에 지도상의 아주 아래 쪽에서 데려왔기 때문에 시내의 다른 여자들과는 젼혀 다르게 생긴"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어머니라는 설정은 상반된 두 부모님이라는 토마스 만의 배경을 투영한 자전적 성향을 지닌 주인공이다. 토니오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고, 공책에 자신이 쓴 시를 감춰다니는데 이러한 예술을 지향하는 자세는 사실 아버지의 고향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반적이지 않은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니오는 예술성에 대립되는 일반적인 삶을 살고 싶어하고 동경한다. 그가 한스 한젠과 잉게보르크 홀름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일반 시민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스는 선원들이 입는 짧은 재킷 차림이었는데, 세일러복 상의의 넓은 푸른색 옷깃이 어깨와 등의 재킷 위로 나와 있었다. 토니오는 허리띠가 달린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한스는 검은색의 짧은 띠가 달린 덴마트 선원 모자를 쓰고 있었고, 밝은 금발이 모자 아래로 빠져나왔다. 한스는 무척 잘생긴 데다가 체격이 근사했다.  어깨가 넓게 벌어졌고 허리는 늘씬했으며, 양미간이 넓고 강철색 눈은 예리한 빛을 발했다.  그런데 토니오의 둥그런 털모자 아래 얼굴은 갈색이었으며, 남쪽 나라 사람들처럼 윤곽이 아주 뚜렸했다. 눈꺼풀이 두툼하고 부드럽게 그늘진 검은 눈은 몽환적이면서도 소심해 보였다..... 입과 턱 모양이 유난히 부드러웠다."(145)  


 <토니오 크뢰거>에서는 토니오가 바라는 시민적인 삶의 모습은 금발과 푸른 눈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토니오에게는 미지의 세계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결코 이룰 수 없는 욕망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스 한젠, 잉게보르크 홀름과의 사랑도 이루지 못한 채 토니오는 어머니의 피가 이끄는 대로 남쪽의 나라들과 대도시를 방황하며 작가로서의 삶을 모색하였고, "끈질기게 버티며 명예를 추구하는 보기 드문 근면성이 자신의 경험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끝까지 파헤치는 기질"로서 등단을 이루어냈을 때 문단에서는 찬사와 환호를 보낸다. 그럼에도 그는 이루지 못한 사랑과 꿈에 목마름을 느낀 채로 북쪽의 덴마크로 여행을 떠난다. 베네치아로 여행을 떠난 아셴바흐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아셴바흐는 어머니의 고향인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고 토니오는 남쪽 나라에서 북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하지 않는가.

  덴마크의 섬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던 토니오 앞에 불현듯 한스와 잉게보르크가 손을 잡고 다정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토니오는 그 둘을 보고 다시 그가 한없이 고민의 나날의 보냈던 문제에 직면한다. 그 두 사람은 여전히 토니오가 추구하는 시민적인 삶의 모습이었으며 그 둘의 이름을 가만히 속삭여보면서 그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그에게는 그 순수하고 북방적인 몇 마디 음절이 원래의 참된 사랑과 고뇌와 행복, 삶, 단순하고 내밀한 감정, 고향을 표현했다. 토니오 크뢰거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그동안 겪은 관능과 신경과 사유의 황량한 모험을 회상했다. 반어와 정신에 갉아 먹히고, 인식에 의해 황폐해져서 무감각해지고, 창작의 열기와 냉기로 반쯤 소진된 자신을 보았다.  대립되는 양극 사이에서, 신성과 욕정 사이에서 양심의 갈등에 시달리며 정처 없이 이리저리 내동댕이쳐지고, 차갑게 인위적으로 조성된 과도한 흥분 상태로 인해 정교해지고 빈한해지고 녹초가 되어서 방황하고 삭막해지고 병들어 번민하는 자신을 보았다. 그는 회한과 향수에 젖어 흐느꼈다."(245)


  하지만 토니오는 결국 이런 시민적인 소소한 행복, 살아있는 것, 평범한 것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시민적인 삶을 결코 체험할 수 없지만 작가로서 지극히 시민적인 것, 평범한 것, 살아있는 것을 누구보다 절묘한 필치로 살려내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랑하기에 이르는 과정은 읽고 있는 나로 하여금 환희에 젖어 들게 만든다. 


  "하지만 나의 가장 절절하고 은밀한 사랑은 금발과 푸른 눈의 사람들, 활기에 넘치는 밝은 사람들, 행복하고 사랑스럽고 평범한 사람들을 향합니다. 

리자베타, 나의 이 사랑을 나무라지 말아요. 이건 유익하고 풍요로운 사랑입니다. 이 사랑 속에는 갈망과 우울한 질투심, 약간의 경멸과 오롯이 순수한 환희가 담겨 있습니다."(249)


  이것이 토마스 만이 우리에게 들려 주고 싶은 자신의 세계관이 아닐까 싶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힌 갈망, 소박하고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 지성과 감성, 이성과 감각의 대립을 멋진 두 작품으로 승화한 토마스 만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어서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P.S. : 두 작품의 배치에 있어서 순서가 바뀐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젊은 작가의 삶, 초로의 작가의 삶이라는 상반된 경향을 보여주는 두 작품이니 젊은 작가의 삶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아셴바흐의 삶과 죽음의 여정이 워낙 강렬해서 <토니오 크뢰거>는 기대하지 않고 읽은 측면이 없잖아 있지만 읽고 나선 오히려 토니오 크뢰거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셴바흐의 아름답지만? 닫힌 결말, 토니오 크뢰거의 희망적인 열린 결말.... 어느 쪽으로 마음이 갈 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닐런지...  좋은 건 마지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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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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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행과 연을 쌓아가면서 보여주는 우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함축적으로 쓰여진 詩語들 속에 감춰진 인생을 탐구하는 일은 나에겐 너무 버겁고 딱히 다가가고 싶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이 책 덕분에 혼자라면 절대 돌아보지 못했을 인생의 역사를 두루 거친 기분이랄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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