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린 사슴이 철조망 고리에 앞발이 걸려
울타리에 매달려 있고, 사나운 농장 개들이
그리로 달려갈 때,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았어.
눈을 가리거나 달리는 것. 그래서 나는 달렸지.
세상에 태어나서 제일 빨리 달렸어.
사슴에게 몸을 던져 둘이 함께 철조망 울타리에
매달렸고, 개들은 이리저리 날뛰었어.
하지만 사슴은 내 마음을 모르고,
아니면 알긴 해도 내가 붙어 있는 걸
견딜 수 없었던 건지 염소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을 홱 빼더니 숲으로 돌진했어.
며칠 후, 나는 들판에서 그 사슴을 보았어.
울타리에는 사슴이 앞발을 뺄 때 흘린 핏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지만, 사슴은 멀쩡했어.
빠르고 민첩했으며 아름다웠지.
나는 생각했어. 그 일을 평생 기억하리라.
그 위험, 달음박질, 개들의 으르렁거림, 숨막힘.
그리고 행위와 도약 - 그 행복. 초록의 달콤한 거리감.
그리고 나무들. 주위를 둘러싼 나무의 무성함과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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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아직도 너무 어려운 시의 이해...
처음 접하는 메리 올리버 시집인데 내 수준에서도 이해가 가능하고
충분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산문시여서
작가의 다음 책을 기약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출판하기 전에 작가에게 신비주의가 있었나 보다.
30 년이 넘게 함께 살고 있는 연인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러니 나의 사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조금이나마 드러 내는 글을 써서 장차 나를 안다고 주장하게 될
사람들이 참작할 만한 실마리를 제공할 강력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추측으로 채우려는 성향이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 하여 거듭 말하는데. 나 자신이 이 책의 저자이며
다른 공식적인 화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내 시집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연대순의 초상이나 나의 직업적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 소중한 마음속 비밀은 기대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그저대화의 한 토막, 길고 천천히 도착하는 편지로 생각해주면 좋겠다.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자연스럽고, 기꺼이 미완성인." (서문 중에서)
날씨가 연일 너무 추워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수록되어 있는 시들에서 강력하고 따뜻할 것 같은 햇살의 느낌이 난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이 읽어도 작가가 숲과 바닷가 근처에 산다는 것을 알만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육지 가장자리 물의 궁전들, 해안, 해수 소택지, 무더운 여름, 거북이가 사는 연못,
6월의 끝자락, 흰 꽃들, 양귀비 빛깔 부리의 백조, 인동덩굴, 박새, 블랙베리, 이끼, 사슴...
느닷없이 이런 소재들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내가 연일 계속되는 추위에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서 어서 따뜻한 날이 왔으면 좋겠다.
우리집 마당에 푸른 잔디가, 푸릇하고 풍성한 텃밭 채소가그리워 죽겠다.
마음도 따뜻하고 몸도 따뜻했으면 좋겠다.
겨울이 싫어!!!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은 좋은데 쌓인 눈은 이제 너무 싫어!!!
시 <휘파람 부는 사람>은 읽을 수록 너무 마음이 달달해진다.
머릿 속으로 그 광경을 그려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소리를 내어 낭송을 해보았다.
아주 아름다운 시다.
휘파람 부는 사람
.
.
갑자기 그녀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
내가 갑자기라고 말하는 건 그녀가 30년 넘게 휘파람을 불지 않았기 때문이지.
짜릿한 일이었어. 난 처음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나 했어.
난 위층에서 책을 읽고 있었고, 그녀는 아래층에 있었지.
잡힌 게 아니라 스스로 날아든 새, 야생의 생기 넘치는 그 새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지저귀고 미끄러지고 되돌아오고 희롱하고 솟구치는 소리였어.
이윽고 내가 말했어, 당신이야? 당신이 휘파람 부는 거야? 응, 그녀가 대답했어.
나 아주 옛날에는 휘파람을 불었지. 지금 보니 아직 불 수 있었어.
그녀는 휘파람의 리듬에 맞추어 집 안을 돌아다녔어.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어.
팔꿈치며 발목이며, 기분이며 욕망이며, 고통이며 장난기며, 분노까지도, 헌신까지도.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기 시작하긴 한 걸까?
내가 30년간 함께 살아온 이 사람은 누굴까?
이 맑고 알 수 없고 사랑스러운, 휘파람 부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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