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아름답다.
책 속에선 여자들이 모두 ‘그‘로 지칭된다.
다세대 주택에 모여 살던 여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엄마! 엄마에 대한 이야기, 엄마와 딸의 이야기, 엄마와 이웃들의 이야기들이 그려진다.
누구나 마음 속에 이런 장소가 있지 않을까?
나도 결혼하고 아파트 분양 받고 와서 살던 용인 수지의 복도식 작은 아파트 언니, 동생들...
지금도 보고싶고 생각나는 사람들, 아직 만나는 동생네도 있고... 그 시절이 그리운건 나뿐일까?
근데...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이라니..
어쩜 이런 표현 너무너무너무 멋지잖아.,ㅠ
놓쳐도 되는 문장이 하나도 없어
이 작품 여자 사람이 쓴거 맞죠?!
그 다세대 주택에서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살았다. 스무 채의 빌라가 있는 4층 건물이었고 내가기억하는 건 오직 여자들만 있었다는 점이다. 거기살던 남자는 단 한 명도 기억이 안 난다. 물론 그들은 어디에나 있었을 것이다. 남편이었고 아빠였고 아들이었을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 건물을 떠올릴 때마다 여자들만기억난다. 그곳 여자들 모두가 드러커 아줌마처럼 상스럽거나 우리 엄마처럼 외고집이었다. 그들은 자신이어떤 사람인지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법이 없었고넘어온 삶의 고개를 이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행동만 보면 세상사를 다 꿰고 있는 듯했다. 약삭빠르고, 즉흥적이고, 무식하고, 시어도어 드라이저 (19세기 미국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연주의 소설가로 이민자와 빈곤층의 삶에 주목했다)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이었다. 잠시 평화로워보이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러다 어느 순간 충격적이고야만스러운 사건들이 터졌고 그 와중에 두세 명의 삶은 상처로 얼룩지고(어쩌면 몰락해버리고) 다시금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또다시 울적한 고요함, 관능만 남은 무기력, 부정이 만들어내는 평정의 나날들이이어졌다. 나라는 여자애는 그들 한가운데서 자라고그들의 이미지 안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얼굴을 덮은천의 클로로포름을 빨아들이듯 나는 그 여자들을 빨아 들였다. 무려 30년이 흐른 후에야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이해했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 P7
세사는 참 예쁘장하고 젊은 새댁이었어. 결혼한 지2년도 안 되었다고 했나. 남편을 사랑하지는 않았어.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럭저럭 착실한남자였거든. 내가 아는 건, 남편을 안 사랑했고 매일 - P9
뻔질나게 외출을 했다는 거. 아마 따로 애인이 있었던모양이야. 엉덩이까지 찰랑찰랑 내려오는 검은 머리가눈에 확 띄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머릴 싹둑 자르고나타난 거야. 세련된 도시 여자가 되고 싶었나 봐. 남편은 아무 말 없었는데 친정아버지가 집에 오더니 깎은머리를 보고 냅다 뺨을 갈겨버린 거야. 너무 아프고어안이 벙벙해서 천국에 계신 할머니가 보일 정도였대. 그러곤 사위를 시켜 한 달 동안 집에 가둬버리라고했다나. 세사는 비상계단을 타고 우리 집으로 내려와서우리 현관으로 나갔지 뭐. 한 달 동안 매일매일 말이야. 한번은 우리 집 부엌에서 같이 커피를 마셨어. ‘세사, 친정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해. 우린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자유가 있다고 세사가 나를 빤히 보더니 그러더라. ‘네? 그게 무슨말이에요? 아버지한테 여긴 미국이라고 말하라고요?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양반이에요‘" - P10
내가 볼 때 이 아파트의 재미는 우리 집 부엌에도있었고 창문 밖의 다양한 삶에도 있었다. 그 재미란 진정 - P23
흥겹고 즐거운 것이었고 안과 밖의 대조되는 풍경 때문에더 고조되곤 했다. 이 부엌에서 나는 숙제를 한다. 옆에는 늘 엄마가 있고 나는 엄마가 하루를 준비하고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본다. 엄마는 살림을 쉽게 척척 해내는 기술이 있고 기운도 넘쳤지만 그걸 지긋지긋해하며 일체 언급하지않는다. 나에게도 집안일일랑 조금도 가르치지 않았다. 나는 요리, 청소, 다림질을 배운 적이 없다. 엄마는 지루할정도로 능숙한 요리사였고, 맹렬한 청소부였으며, 악령들린 세탁부였다. - P24
엄마와 나는 온종일 그 부엌을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는안뜰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사건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진 않았지만 놓치는 것도 없었다. 엄마는 모든 목소리를 들었고, 모든 움직임을 파악했으며, 침대보를 널고 걷는 소리를 들었고, 누가 누구를 부르고 무슨 대화를나누는지 재빨리 입력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엉터리 영어, 누군가의 경솔한 행동, 이쪽에서 나는 빽빽거리는 소리와 저쪽에서 나는 구성진 욕을 듣고 같이 웃곤 했다. 창문 바깥쪽 삶에 대한 엄마의 끊임없는 평가는 내가 처음으로 맛본 지성의 열매라 할 수 있었다. 엄마는 세간에 떠도는말을 정보로 변형시킬 줄 알았다. 한층 치솟은 목소리를들으면 이렇게 평가하곤 했다. "보나 마나 저 댁 오늘 - P24
아침에 남편하고 싸웠구먼." 한풀 잦아든 목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말한다. "저 집 애가 아프네." 엄마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눈치 싸움에 밝았고 누가 누구와 사이가 틀어졌는지도 대번에 파악했다. 엄마가 그 골목에서 일어나는 세상사를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걸 듣고 있으면 인생은 조금 더 풍부해지고, 다채로워지고, 더 흥미로워졌다. 나는 우리 모녀와 창문 밖의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곤 했다. - P25
그 부엌, 그 창문, 그 안뜰. 그것은 엄마가 뿌리를 내린대기였고 엄마가 서 있던 배경이었다. 이곳에서 엄마는똑똑하고, 웃기고, 활기 넘쳤고,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당신을 둘러싼 환경을 경멸했다. "여편네들이란, 으이구!" 입버릇처럼 말했다. "빨랫줄 앞에 모여가지고 이 집 저집 욕이나 하고." 엄마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 절실하게.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 P25
이것이 엄마가 처한 삶의 조건이었다. 여기 이 부엌에서당신이 누구인지 잘 안다는 것. 또한 이 부엌에서안절부절못하고 지리멸렬해한다는 것. 이 부엌에서엄마는 누구나 존경하고 감탄할 정도로 훌륭히 기능한다. 이 부엌에서 당신이 하는 일을 혐오스러워한다. 어쩌면 나중에 당신 입으로 말한 "여자로 산다는 것의 공허함"에대해 분노를 키우고 있다. - P28
그러다가도 골목에서 벌어지는 세상만사를 날카롭게 분석하면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명랑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침에는 수동적이고, 오후에는 반항적이던 엄마는 매일 새로 만들어졌다가 매일 풀어져버리는 사람이었다. 당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료를 굶주린 사람처럼 붙들고 스스로 창조한 세계에 애정을 보이다가도 일순간 어쩔 수 없이 이 생활로 끌려온 부역자처럼 느끼곤 했다. 어떻게 그처럼 처절하게 분열된 삶에 당신의 모든 감정을 쏟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니 나라고 무슨 수로 엄마의 감정에 감정을 쏟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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