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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백년보다 긴 하루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44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평점 :
친기즈 아이뜨마또프는 키르키즈 사람이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중위도 지방의 스텝 지대인 카자흐스탄이다. 중앙아시아의 대표적 스텝지역인 카자흐스탄의 아랄해 인근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곳은 여름엔 40도가 넘는 고온, 겨울엔 어마어마하게 내린 눈으로 뒤덮이는 지역이다. 나무도 없고 키 작은 풀로 뒤덮인 척박한 고원지대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철도가 지나는 스텝 고원의 벌판 보란리ㅡ부란니(까자흐어와 러시아어가 합쳐진 말/˝눈보라˝라는 뜻이다)마을에 있는 사리오제끼역의 역무원 가족의 몇몇 숙소가 있는, 이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전통과 전설로 전해져오는 카자흐 사람들의 신화적인 이야기, 주인공 예지게이, 전쟁의 기억으로 마음의 병을 앓던 예지게이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까잔갑,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아부딸리쁘 꾸찌바예프 가족. 이 세 사람이 진득하고 진지하지만 가슴 벅차게 나누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 보다 더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죽음과 이별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이루어낸다. 너무 많은 상징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읽는 동안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까잔갑의 장례를 치르는 하루 동안의 일이 이 작품의 주요한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예지게이와 까잔갑, 꾸찌바예프 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그리고 카자흐 사람들의 전설이 뒤얽힌다.
여기에 하나의 다른 큰 흐름이 있다. 바로 미국과 소련의 우주계획이 미•소 양측의 우주 비행사의 예기치못한 이탈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우주정거장에 머물던 두 비행사가 우주의 먼 행성으로부터 받은 신호를 따라 미지의 우주로 떠난다는 사실을 글로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지구에서는 외계 행성으로부터 아무런 신호를 받지 못한 ˝예전의 상태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미•소 양측의 비인간적인 결정에 따라 돌아오지 못하고 버려진다.
오랜 시간 멀리했던 러시아(슬라브) 문학을 아주 아주 오랜만에 접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나에게 익숙한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등의 작가들과는 다른 시대 ㅡ소련으로 불리웠던 ㅡ의 작품이라 느낌도 다르고 작가도 생소했지만(친기즈 아이뜨마또프는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피지배국이었던 키르기즈 사람이니까), 작품의 분위기나 전통은 오히려 동양적 정서에 더 가깝게 느껴져서 색다른 작품으로 남을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