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서 내가 뽑혔는지 얘기해 줘, 마난."
"오, 다 알면서 그러는구나, 꼬맹아."
사실 전부 알고 있었다. 키 크고 목소리가 꼬장꼬장한 무녀 사르가 그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일러 주어서 이미 다 외울 정도였다.
"그래, 알고 있어. 아투안 무덤의 유일 무녀가 죽음을 맞이할때 장례와 정화의 의식은 태음력으로 한 달 안에 전부 마치게 되지. 그런 다음 묘역의 무녀들과 시종관들 몇몇이 사막을 가로질러 나아가 아투안의 마을과 성읍들을 두루 다니면서 찾고 수소문을 해. 유일 무녀가 죽은 밤에 태어난 여자애를 찾는 거지. 그런 애를 찾으면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거야. 그 아이는 심신이 모두 잘못된 곳 없이 건강해야 하고 자라나면서 뼈가 굽거나 마마를 앓거나 결함이 생겨나도 안 돼. 눈이 멀어도 안 되고, 그애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아무 흠 없이 크면 비로소 그 애의 몸 - P20

이 죽은 무녀의 새로운 몸이라는 게 밝혀지지. 그리고 그 사실이 아와바스의 신왕(神)께 알려지게 되고, 그 애는 이곳 사원으로 오게 되지. 와서는 1년동안 교육을 받아. 그렇게 해서 그해가 다할 무렵 그 애는 옥좌관으로 끌려가 주어졌던 이름을 자기 주인이신 이름 없는 존재들께 돌려 드리는 거야. 왜냐하면 그 애는 이름 없는 사람이며 영영 환생하는 무녀이니까." - P21

묘역. 이곳은 오로지 이렇게만 불렸고 그 외의 다른 명칭이 필요 없었다. 이곳이야말로 카르그제국의 네 땅을 통틀어 가장 오래되고 가장 신성한 장소인 것이다. 
묘역 경내에는 사람이200명쯤 살고 있었고 건물도 여러 채였다. 세 채의 사원, 대관과 소관, 거세남인 시종관들의 거처, 그리고 담 밖 가까운 곳에호위대 막사며 노예 오두막이 즐비하고 창고, 양 우리, 염소 우리, 농원 건물들이 있었다. 얼마만큼 떨어져서 보면, 그러니까 샐비어와 헝클어진 바랭이 덤불, 자잘한 잡초며 황무지에 나는 풀 이외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메마른 서쪽 구릉지에 올라서서 바라보면 그곳은 작은 마을처럼 보였다. 
그리고 동쪽 평원에서는 아주 멀리에서도 암반 속에 박혀 있는 운모 조각인 양산맥 아래 반짝이며 빛을 뿜는 쌍둥이 신 사원의 황금 지붕이 우러러보였다. - P28

동쪽에서 접근하는 여행자라면 우선 황금 지붕과 환히 빛나는 기둥들을 본 뒤에야 그 모든 것들 위로 묘역 언덕 좀 더 높은곳에 자리 잡은, 둘러싼 황무지처럼 쇠락한 채 갈색을 띤 민족최고(最古)의 사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하고 나지막한 옥좌관의 벽은 낡아 얼룩졌으며 둥근 지붕은 군데군데 푹푹꺼져 납작하게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 P29

육중한 돌담이 옥좌관 뒤켠에서 시작되어 언덕 전체를 둥글게 감싸며 달렸다. 이겨 붙이는 진흙을 쓰지 않고 쌓아 올린 담벼락은 곳곳에서 반쯤 무너진 채였다. 
이 담장이 둥글게 에워싼 안쪽으로 높이 열여덟 자에서 스무자에 이르는 검은 돌들이 몇개나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손가락들인 양 곧추서 있었다. 
일단 한번 그것을 본 사람은 다시 돌아보게 되고야 말았다. 그것들이 거기 서 있는 데에는 뚜렷한 의미가 있었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돌은 모두 아홉 개였다. 하나는 똑바로 서 있고 다른 것들은 약간씩 기울었으며 두 개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 - P29

단 하나만 빼고는 도료를 바른 듯 얼룩덜룩하게 회색과 주황색 돌이끼가 끼어 있었다. 유일하게 벌거벗은 기둥은 까맸고 둔한 광택을 띠었다. 그 기둥은 감촉이 매끄러웠지만, 다른 것들은 달라붙은 돌이끼 밑으로 알아보기 힘든 새김자국이 드러나 보이거나 뭔가 형체며 기호 같은 것들이 더듬는 손끝에 느껴졌다. - P30

이 아홉 돌기둥이 바로 ‘아투안의 무덤‘이었다. 전해지기로 그 돌들은 첫 인간들의 시대 이래, 어스시가 창조된 이래 내내 존재해 왔다고 했다. 땅들이 대양의 심연으로부터 솟아올랐던 그때 그 돌들은 암흑에 뿌리를 박았다. 카르그의 신왕들보다도 오래고 쌍둥이 신보다도 오래며 빛보다도 더 오랜 존재들이었다. 그것들은 인간 세상이 있기 전에 지배하던 자들의 무덤이었다. 그들은 이름 지어지지 않은 자들이며, 그들을 섬기는 그녀 역시 이름이 없었다. - P31

소녀는 창 없는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명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놓고 있던 터였다.
딱딱하고 둔감하게 굳어 있던 오만한 표정이 바뀌는 데엔 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긴 했어도 그녀의 표정은 확실히 변하여 영악한 흥미를 뚜렷이 비쳤다.
"미궁 말인가?"
"미궁에 들어가지 않아요. 하지만 지하 무덤은 가로질러야할 겁니다."
코실의 목소리엔 두려운 기색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르하를 겁주려고 짐짓 꾸며 보인 것일지도 몰랐다. 소녀는 서두름없이 일어서서 무감정하게 말했다.
"좋아, 그러지."
그러나 신왕 사원 무녀의 육중한 그림자를 따라 나설 때 그녀는 마음 깊숙이 기뻐 날뛰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제야 드디어 내 영토를 보게 되는구나! - P44

아르하는 열다섯 살이었다. 성인식을 치르고 아투안 무덤의유일 무녀로서 모든 권력을 갖게 된 지도 1년이 지났다. 카르그땅의 모든 고위 무녀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자이자 신왕조차도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는 모든 이들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절했다. 심지어는 엄격한 사르나 코실조차도 그랬다. 말을 할 때도 모두들 신경 써서 말투를 바꿨다.  - P44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성한 취임 의식이 끝나자 세월은 옛날과 다름없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흘러갔다. 털실을 잣고, 검은 천을 짜고, 곡식을 빻고, 의식을 집행했다. 밤마다 아홉 성가를 불러야 했으며 문마다 축성을 하고 1년에 두 번씩 돌들에 염소 피를 먹이고 빈 옥좌 앞에서 그믐의 춤을 추어야 했다. 그렇게 꼬박 한 해가 지나갔다. 이전의 해들과 똑같이 일생이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걸까?
지루함은 때때로 너무나도 강하게 솟구쳐 올라 거의 공포처럼 느껴졌다. 그 감정이 숨통을 죄었다. 얼마 전 아르하는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해야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미쳐 버릴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가 고른 말상대는 마난이었다. 다른 소녀들에게는 자존심 때문에 털어놓을 수 없고, 나이 든 여자들에게는 노파심 때문에 고백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충실한 늙은 숫양 마난,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에게 털어놓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난은 해결책을 갖고 있었다.
- P45

아르하는 며칠간 앓았다. 사람들은 열병에 듣는 치료를 베풀었다. 그녀는 침대에 갇혀 있든가, 따사로운 가을볕을 받으며 소관 현관에 앉아 서쪽의 언덕들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약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똑같은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까무러쳤던 것이 창피했다. 무덤 담장에는 보초가 세워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결코 코실에게 그 일을 다그칠 수 없게 되었다. 아르하는 코실을 아예 만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수치스럽게도기절을 했기 때문이다. - P65

아무튼 과거에도 봤던 것들이 아닌가?
자신이 죽기 전에 본 것이며 말한 것에 대하여 사르나 코실이 언급할 때면 아르하는 아직까지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죽었던 것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나이 든 몸이 죽은 그때에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번뿐이 아니다. 15년 전의 그때뿐 아니라 50년 전에도 그랬고, 그 전에도 다시 더 전에도, 세월을 거슬러 그 수백 곱에 이르기까지 앞 세대의 앞 세대로 거슬러 올라 미궁이 파이고 돌들이 세워지고 이름 없는 존재들을 위한 최초의 대무녀가 묘역에 살며 빈 옥좌 앞에서 춤을 추었던 그 첫 시대로부터 줄곧 그래 왔다. 그 모든 삶과 자신의 삶은 하나였다. 자신이 바로 최초의 대무녀였다. 모든 인간은 영원히 환생하지만 오직 한 사람 아르하만이 영원히 자기 자신으로 환생한다. 그녀는 수백 번이나 거듭 미궁의 길과 모퉁이들을 배워 마침내 감춰진 방에 도달하곤 했던 것이다.
간혹 기억이 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언덕 아래 암흑의 성소들은 너무나도 친숙해서 그녀에게 영토일 뿐 아니라 고향 같았다. 그믐에 약초 연기를 들이 마시며 춤출 때면 머리가 가벼워지고 몸은 자기자신의 것이 아닌 듯했다. 여러 세기를 통해 검은 옷을 걸치고 맨 발로 추어 온 그녀의 춤은 결코 그치지 않을 터였다. - P82

처음에는 눈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완전한 칠흑의 어둠 속에서는 종종 그런 경우가 있었다. 눈을 감자 가물거리던 빛은사라졌다. 그러나 눈을 뜨자 다시 보였다.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암흑이 아니라 잿빛이었다. 아무것도 보일 리 없고 모든 것이 암흑이어야 할 이곳에 창백한 빛의 끝자락이 어려 있었다. 몇 발짝 앞으로 나아가 통로 벽 모서리로 손을 뻗자, 몹시 흐릿하게나마 움직이는 자신의 손이 보였다.
아르하는 더 나아갔다. 암흑의 핵심인 무덤굴 속, 이제껏 그어떤 빛도 비친 적이 없는 이곳에 희미하게 피어난 빛이란 너무나 괴이해 생각을 초월하고 두려움을 이겼다. 맨발에 검은 옷을 입은 아르하는 기척 없이 걸어갔다. 통로 끝의 꺾인 곳에서 그녀는 멈춰 섰다가 아주 천천히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고는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였다.
한번도 그렇게 많은 생을 살아왔어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바로 대공동이다.  - P100

그곳은 수정들로 총총히 수놓이고 새하얀 석회석으로 된 조그만 탑들이며 섬세한 조형물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하수가 여러 시대에 걸쳐 이루어 놓은 결과이다. 반짝이는 천장과 벽으로 이루어진 압도적으로 거대한 그 공간이 빛 속에 섬세하며 정교한 자태를 드러냈다. 해묵은 암흑이 찬란함 앞에 쫓겨나버린 그곳은 금강석의 궁전이며, 자수정과 수정으로 빛나는 집이었다.
이처럼 경이로운 광경을 드러낸 빛은 그다지 밝지 않았으나 어둠에 익은 눈에는 눈이 부셨다. 도깨비불처럼 부드러운 번득임이 동굴을 가로질러 천천히 움직여 가며, 보석 박힌 천장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반짝임을 이끌어 내는 동시에 동굴 벽면을따라 몽환적인 그림자들을 무수히 끌어올렸다. - P101

그 빛은 나무 지팡이 끝에서 타오르고 있었는데, 연기도 없고무엇인가를 태우고 있지도 않았다. 지팡이는 인간의 손에 들려있었다. 아르하는 그 빛 가까이 드러난 얼굴을 보았다. 검은 얼굴이었다. 
남자의 얼굴이었다.

아르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나이는 오랜 시간을 들여 널찍한 공동 안을 이리저리가로질렀다. 뭔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 돌의 레이스 너머 탐색을 하며 지하 무덤에서 나가는 몇몇 통로들을 살펴보았지만 어느 길로도 들어서지는 않았다. - P101

"가라! 가거라! 사라져라!"
아르하는 느닷없이 온 힘을 다해 고함질렀다. 커다란 반향음이 대공동을 쩌렁 울려 전율하며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깜짝놀라 이쪽을 돌아본 검은 얼굴을 흐려 놓는 것처럼 보였다. 윙윙 울리는 찬란한 공동 너머로 한순간 그가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빛은 꺼졌다. 모든 찬란함도 사라졌다. 눈이 먼 것 같은 캄캄함과 침묵이 뒤덮었다.
이제 아르하는 다시 생각을 할 수가 있었다. 빛의 마법에서 풀려난 것이다. - P103

그가 등을 대고 눕자 작고 동그란 도깨비불은 지팡이에서 두둥실 떠올라 머리 뒤쪽 몇 자 높이에서 어둑하니 빛을 발했다.
가슴에 올려 둔 왼손으로는 목에 건 묵직한 사슬에 매달린 뭔가를 쥐고 있다. 그는 두 다리를 발목에서 어긋맞긴 자세로 아주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그의 눈길이 엿보기구멍 근처를 떠돌다가 다른 데로 흘렀다. 그는 한숨을 쉬곤 눈을 감았다. 불빛이 서서히 침침해졌다. 그는 잠이 들었다.
가슴에 얹은 채 꽉 쥐고 있던 손이 느슨해지며 옆으로 흘러떨어졌다. 위에서 엿보던 사람은 그 사슬에 걸려 있는 호신부를보았다. 그것은 초승달 모양을 한 거친 금속 조각으로 보였다.
요술이 빚어낸 희미한 빛이 사그라졌다. 사내는 침묵과 어둠속에 누워 있었다. - P1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세계문학 44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기즈 아이뜨마또프는 키르키즈 사람이지만, 이 작품의 배경은 중위도 지방의 스텝 지대인 카자흐스탄이다. 중앙아시아의 대표적 스텝지역인 카자흐스탄의 아랄해 인근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곳은 여름엔 40도가 넘는 고온, 겨울엔 어마어마하게 내린 눈으로 뒤덮이는 지역이다. 나무도 없고 키 작은 풀로 뒤덮인 척박한 고원지대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철도가 지나는 스텝 고원의 벌판 보란리ㅡ부란니(까자흐어와 러시아어가 합쳐진 말/˝눈보라˝라는 뜻이다)마을에 있는 사리오제끼역의 역무원 가족의 몇몇 숙소가 있는, 이 척박한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전통과 전설로 전해져오는 카자흐 사람들의 신화적인 이야기, 주인공 예지게이, 전쟁의 기억으로 마음의 병을 앓던 예지게이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까잔갑,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아부딸리쁘 꾸찌바예프 가족. 이 세 사람이 진득하고 진지하지만 가슴 벅차게 나누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그 보다 더한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죽음과 이별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한 편의 대서사시를 이루어낸다. 너무 많은 상징과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서 한편으로는 읽는 동안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까잔갑의 장례를 치르는 하루 동안의 일이 이 작품의 주요한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에 예지게이와 까잔갑, 꾸찌바예프 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그리고 카자흐 사람들의 전설이 뒤얽힌다.



여기에 하나의 다른 큰 흐름이 있다. 바로 미국과 소련의 우주계획이 미•소 양측의 우주 비행사의 예기치못한 이탈로 인해 벌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다. 우주정거장에 머물던 두 비행사가 우주의 먼 행성으로부터 받은 신호를 따라 미지의 우주로 떠난다는 사실을 글로 남기고 사라진 것이다. 결국 이들은 지구에서는 외계 행성으로부터 아무런 신호를 받지 못한 ˝예전의 상태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미•소 양측의 비인간적인 결정에 따라 돌아오지 못하고 버려진다.



오랜 시간 멀리했던 러시아(슬라브) 문학을 아주 아주 오랜만에 접하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나에게 익숙한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등의 작가들과는 다른 시대 ㅡ소련으로 불리웠던 ㅡ의 작품이라 느낌도 다르고 작가도 생소했지만(친기즈 아이뜨마또프는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 피지배국이었던 키르기즈 사람이니까), 작품의 분위기나 전통은 오히려 동양적 정서에 더 가깝게 느껴져서 색다른 작품으로 남을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스시 전집 1권이었던 《어스시의 마법사》보다 재미있게 전개가 된다.
여긴 여자 무녀가 우월한 존재일뿐만 아니라 거세된 남자들이 시종이다. 신성한 장소엔 왕이라할지라도 감히 들어올수 없다. 1권과는 사뭇 다른 배경이다. 곧 마법사 새매 게드가 나오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스시 전집 제 2권 《아투안의 무덤》 오늘부터 읽기 시작했다.

-앞 이야기

"집에 오너라, 테나! 그만 돌아오렴!"
골짜기 깊숙한 곳, 어스름 무렵이었다. 사과나무들은 내일이면 꽃필 듯했다. 어둑어둑 그늘진 가지에는 일찍 벌어진 꽃 한송이가 장밋빛 어린 흰빛을 띠고 희미한 별처럼 빛났다. 비탈진 과수원길 저 아래쪽, 습기에 젖어 있는 빽빽한 새 풀 위를 어린여자아이 하나가 달음질에 취해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아이는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바로 돌아서지 않고 크게 반원을 그리며 달려서 집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어머니는 오두막집 문간에 화로 불빛을 등지고 서서 조그만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은 예지게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속으로 웃으며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저 늙은이가 자기 권리를 지키겠다고 오는군. 개 한 마리만 달랑 데리고 말이야!〉 졸바르스가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편이 더 나았다. 그래서 예지게이는 기다란 고삐 끈으로 개를 낙타의 마구에다 묶기로 했다. 떠나 있는 동안 개하고 낙타를 한 끈에 묶어 두자. 그는 개를 불렀다.
「졸바르스! 졸바르스, 이리 와!」그러고는 몸을 숙이고서 그 짐승의 목에 끈을 둘렀다. (984/1054)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점점 더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주선 발사 기지 내의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어딘가에서 무시무시한 불꽃이 거대한 폭발을 일으 (984/1054)

키며 기둥처럼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부란니 예지게이는 기겁을 해서 몸을 바짝 웅크렸고 낙타는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개는 겁에 질려 주인의 발치로 달려들었다.

지구 방위 시스템 후프를 위한 자동화된 작전 로켓들 중 첫 번째 로켓이 발사된 것이었다.
사로제끄 시각으로 정확히 오후 8시, 20시인 시간이었다. 그 첫 번째 로켓에 이어 두 번째 로켓이 솟아올랐고 그 뒤에는 세 번째, 그 다음에는 또 다른 로켓이 그러고도 또 다른 것들이....... 

그 로켓들은 "어느 누구도 지구를 변화시키지 못하도록," "모든 것이 현 상태를 유지하도록" 지구 주위로 연속적이고도 적극적인 장벽을 형성하기 위해 깊은 우주 속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985/1054)

하늘이 불꽃과 연기로 소용돌이치는 구름속에서 갈라지며 그들의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985/1051)

예지게이와 낙타 그리고개, 그 지극히 단순한 세 동물들은 겁에 질려 정신없이 도망쳤고, 공포에 사로잡힌 채 서로에게서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같이 뛰고 있었다.
스텝을 가로지르며 그들은 계속 달렸고 미친듯이 달리는 그들의 진로는 가차 없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불꽃들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무리 멀리 도망을 쳐도 그들은 마치 제자리에서 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새로운 폭발이 일 때마다 눈이 멀 듯한 꿰뚫는 빛이 그들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뒤덮었고 그들의 온 주위는 산산이 부서지는 불협화음이었다. (986/1054)

그렇게 그들은 달렸다사람과 낙타와 개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그런데 갑자기 예지게이에게는 그들 옆에서 불쑥, 옛날에 언젠가 나이만-아나가 만꾸르뜨로 변해 버린 아들이 쏜 화살에 맞아 안장에서 떨어졌을 때, 그녀의 하얀 스카프였던 흰 새가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986/1054)

 그 흰 새는 그들 옆을 빠르게 날면서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눈이 멀 듯한 불빛 속에서 그에게 외치고 있었다.
「네가 누구 아들인지 아니? 네 이름이 뭐지? 네 이름을 기억해 봐! 네 아버지는 도넨바이야,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도넨바이......!
그 목소리는 그들 주위로 어둠이 내려앉을때까지 한참이나 들렸다. (986/10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