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투안의 무덤 어스시 전집 2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지연, 최준영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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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시 전집 두번째 책이다. 전편에 이어 새매 게드가 등장하고 어둠의 주인에게 바쳐진 소녀 아르하의 무덤 속 세상, 미궁과 만난다. 새매와 아르하는 힘을 합쳐 그 어둠의 세상을 무너뜨린다. 책장이 넘어가는게 아쉬웠다. 생각해보면 단순한 영웅담일수도 있는데 알면서도 재밌다. 이래서 르귄인건가!
얼른 3권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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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5-1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쉽고 다 아는 내용인 것만 같은데 재미있고 마음에 남고 그렇지 않나요? 정말 르귄 여사 대단해요!!

은하수 2023-05-15 18:37   좋아요 1 | URL
정말 그래요.. 시리즈인데 심지어 갈수록 재밌어요
쉬운데 재밌다는게 딱 어울리는 말씀이세요^^
아예 내리읽고 싶어서 나머지 4권 한꺼번에 주문했지요~~~

그레이스 2023-05-18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스시 전집도 읽어야 하는데...^^*

은하수 2023-05-18 22:48   좋아요 1 | URL
전집을 읽게 될까 싶어 한 권씩 구매하다 2권 읽고나니 끝까지 읽고 싶어져서 나머지 4권 한꺼번에 구입해 버렸어요
구입하고 보니 후덜덜한데 책장보니 참으로 뿌듯합니다^^
 

1926년, 수도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 크렘스 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마을 클라인-라이플링의 우체국. 이곳의 교체할 수 있는 정부 ‘비품‘은 여성이다. 당국에서는 그냥 ‘우체국 여직원‘이라고 부른다. 이 우체국이 인구가 적은 시골에 있기 때문이다. 수수하지만 호감이 가는 한 젊은 여성의 옆 얼굴을 유리칸막이를 통해 볼 수 있다. 다소 얇은 입술에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 피곤한 탓인지 눈 밑이 검다. 

저녁 무렵 여자가 사무실 전깃불 스위치를 켜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은 흐릿한 조명 아래에서도 여자의 이마와 눈가의 주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나이의 이 여자는 창가에 놓인 접시꽃과 오늘 재미 삼아 철제 세면대 위에 놓아둔 양딱총나무 어린 가지와 함께 클라인-라이플링우체국에서는 가장 신선한 비품이다.  - P16

그녀는 적어도 15년 정도는 이 우체국에서 더 근무할 수 있을 것이다. 핏기 없는 손가락으로 덜커덕거리는 창구 유리 칸막이를 수천 번은 더 올렸다 내렸다 할 것이고, 수십만 아니 수백만 통의 편지를 똑같은 동작으로 소인 찍는 탁자로 던지고, 검은색 황동 소인기로 툭툭 소리를 내며 수십만 아니 수백만 장의 우표에 소인을 찍을 것이다. 
일에익숙해지면서 손놀림이 점점 더 빨라져 기계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작업하게 될 것이다. 수십만 통의 편지는 매번 다른 내용의 편지겠지만, 그녀에게는 언제나 똑같은 편지일 것이다. 우표 역시 각각 다른 우표지만, 그녀에겐 똑같은 우표일 뿐이다. 하루하루가 매일 다르지만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오후 2시부터 저녁 6시까지 반복되는 일과는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을 것이다. 언제나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 P17

조용한 여름날의 오전, 잿빛이 감도는 금발의 우체국 여직원은 창구 유리칸막이 뒤에 앉아 그런 자신의 미래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아니면 단지 나른한 공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의자에 앉은 여자는 마주 잡은 창백하고 가느다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다. 푸른 하늘에 숨 막힐 듯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는 7월, 클라인-라이플링 우체국에서 여자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오전 업무는 이미 끝났다.  - P17

이제 좀 선선해진 우체국 안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창문 사이 벽에 걸린 나무틀 벽시계뿐이다. 초마다 한방울씩 떨어지는 시간을 삼키고있는 듯 재깍재깍 가고 있다. 시계 소리는 희미하고 단조롭다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달래는 듯한 소리….….

그렇게 의자에 앉아 있자니 우체국 여직원은 스르르졸음이 밀려오면서 온몸이 나른하고 무기력해진다. 자수를 좀 해보려고 바늘과 가위를 사무실에 가져다 두었지만, 꺼내고 싶은 마음도 그럴 힘도 없다. 숨소리가 낮아지고 눈이 감기면서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댄다. 나른하고도 아늑한 기운이 몰려온다. - P18

그때 갑자기 탁! 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움찔한다.그리고 다시 한번 더 강한 금속성 소리가 긴박하게 들려온다. 탁, 탁, 탁, 전신기에서 활자쇠가 격렬하게 전보용지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드르륵드르륵 기계음이이어진다. 
클라인-라이플링 우체국에 전보가 오는 일은 드물다. 신경 써서 받아야 한다. 졸고 있던 우체국 여직원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재빨리 원형 테이블로 다가가, 기계에 종이 릴 테이프를 끼워 넣는다. 

그런데 종이테이프에 찍혀 나온 첫 단어를 보자마자 여자는 머리카락의 뿌리까지 화끈 달아오름을 느낀다. 난생 처음 전보에 자신이 이름이 찍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문이 모두 나오자, 여자는 전보를 읽고 또 읽는다. 그러나 전문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 - P19

크리스티네 호프레너, 클라인-라이플링, 오스트리아

너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지 날을 정해 와라.
오기 전에 미리 도착 시간을 알려다오.
클레르-안토니


여자는 골똘히 생각한다.
‘나를 기다린다고? 안토니가 누구야? 누가 못된 장난을 하고 있나?‘ - P19

그 순간, 이번 여름에 이모가 유럽에 올 거라고 몇 주전 어머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래, 맞아, 이모 이름이 클레르였지. 그리고 안토니는 어머니가 항상 안톤이라고 부르는 이모부일 거야‘
그제야 여자는 며칠 전 프랑스의 셸부르에서 어머니에게 온 편지를 직접 전해준 일이 생각났다. 편지에 무슨 중요한 비밀이라도 있는 듯 어머니는 편지 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 전보는 크리스티네 앞으로 왔다.
‘이모를 만나러 폰트레지나로 가야 한다는 뜻인가?
어머니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는데.‘

여자는 이곳 우체국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온 전보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꼼꼼히 들여다본다.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다. - P20

‘정오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곧바로 어머니에게가서 무슨 내용인지 물어봐야겠어.‘
여자는 열쇠를 집어 들고 사무실 문을 잠근 다음 집으로 뛰어간다. 흥분한 여자는 전신기의 손잡이를 잠그는 것도 잊었다. 텅 빈 사무실에서 전신기의 황동 활자쇠가 화라도 난 듯이 덜커덕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전보용지를 때리고 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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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래리모어
시뮬라크럼은 영원한 현재 속에 삽니다. 과거를 기억할 수도 있지만, 그 기억은 어렴풋할 뿐입니다. 오네이로파기다의 해상도가 피촬영자의 개별 기억 전체를 분류하고 포착할 만큼 높지는 않거든요. 어느 정도는 학습도 하지만, 피촬영자의 정신생활이 포착된 순간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컴퓨터의 추정 정확도는 점점 더 낮아집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최고의 카메라조차도 두 시간 이상은영사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오네이로파기다가 완벽하게 포착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애나의 기분, 애나의 생각에 배어 있는 감정의 종류, 애나만의 독특한 웃음 유발 코드, 재잘재잘 이야기할 때의 경쾌한 리듬,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 아무 연관성도 없이 뚝뚝 끊기는 말버릇 같은 것들이지요. - P222

그래서 약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애나는 리셋됩니다. 다시 체험 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다시 저한테 들려줄 이야기와 묻고 싶은 질문을 한 보따리 안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즐겁게 놉니다. 대화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상관없습니다. 똑같은대화를 두 번 나누는 일은 결코 없으니까요. 하지만 애나는 영원토록 아버지를 우러러보는 일곱 살짜리 여자애입니다. 아버지는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인 겁니다. - P222

- 아빠, 이야기 들려줄래요?
- 그래, 좋지.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은데?
- 사이버펑크 버전 피노키오 이야기 또 듣고 싶어요.
- 지난번에 한 얘기랑 똑같이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데.
ㅡ 괜찮아요,그냥 시작하세요. 제가 도와줄게요.


저는 그 아이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 P223

에린 래리모어
우리 딸, 엄마는 네가 이걸 언제 볼지 모르겠어. 어쩌면 내가 죽은 후에야 보려나. 다음 부분으로 건너뛰지 말고 들어주렴. 이건 시뮬라크럼카메라로 녹화한 영상이야. 너한테 꼭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아빠는 너를 그리워한단다.
아빠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나쁜 짓도 나름 하면서 살았지, 다른남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하지만 너는 아빠가 가장 약했던 그때 그 한순간이 네 삶까지 덩달아 지배하도록 놔둬 버렸어. 아빠의 인생 전체를 정지된 그날 오후로 압축해 버린 거야. 아빠라는 사람의 가장 부족한단면 하나로, 너는 마음속에서 정지된 그때의 이미지를 덧그리고 또 덧그렸어. 이미지에 찍힌 사람이 흐릿해질 때까지. - P223

네가 아빠한테 마음을 닫아 버린 그 세월 동안, 아빠는 오래전의 네 시뮬라크럼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돌려봤어. 그러면서 웃고, 농담을 건네고, 일곱 살배기가 이해할 만한 수준으로 자신의 진심을 보여 줬단다. 너랑 전화하면서 엄마가 물어보곤 했잖아, 아빠 바꿔줄까 하고, 그러고 나서 전화를 끊을 때, 엄마는 차마 볼 수가 없었어. 시뮬라크럼을 또 재생하러 가는 아빠 모습을 말이야.
아빠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봐주렴.


ㅡ안녕하세요. 혹시 우리딸 애나를 보셨나요?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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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이후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는데
이 밤 갑자기 읽고 싶어졌다.
‘시뮬라크럼‘이라는 영상 기억 장치에 대한 스토리인데 촬영한 피사체의 특징과 몸짓, 목소리, 분위기 등이 기록되는 장치? 아무튼 설명은 어렵고 아주 짧은 이야기지만 마음이 좀 아파오는... 어긋나버린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이다.


폴 래리모어
시뮬라크럼은 영원한 현재 속에 삽니다. 과거를 기억할 수도 있지만, 그 기억은 어렴풋할 뿐입니다. 오네이로파기다의 해상도가피촬영자의 개별 기억 전체를 분류하고 포착할 만큼 높지는 않거든요. 어느 정도는 학습도 하지만, 피촬영자의 정신생활이 포착된 순간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컴퓨터의 추정 정확도는 점점 더 낮아집니다. 저희가 제공하는 최고의 카메라조차도 두 시간 이상은영사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오네이로파기다가 완벽하게 포착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애나의 기분, 애나의 생각에 배어 있는 감정의 종류, 애나만의 독특한 웃음 유발 코드, 재잘재잘 이야기할 때의 경쾌한 리듬,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때 아무 연관성도 없이 뚝뚝 끊기는 말버릇 같은 것들이지요.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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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나, 어떻게 할 참이오? 촛불이 다 타고 다시 어둠이 밀려오도록 여기서 서로 이야기를 해 주고 앉아 있을 수는 없소."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난 무서워요."
그녀는 돌궤짝 위에 몸을 꼿꼿이 펴고 앉아서 한 손으로 주먹 쥔 다른 손을 꼭 싸쥐었다. 그녀의 음성은 아픔을 느끼는 사람처럼 컸다.
"난 어둠이 무서워요."
그가 부드럽게 응답했다.
"당신은 선택을 해야 해요. 나를 여기 놔두고 떠날 수도 있소. 문을 잠그고 제단으로 올라가 당신 주인님들에게 나를 바치는거요. 그런 다음 무녀 코실에게 가서 화해를 하죠…………. 그러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요. 그러지 않으려면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야 해요. 나와 함께 말이오. 무덤을 떠나고 아투안을 떠나서 나와 함께 바다를 건너가는 겁니다. 그러면 그건 이야기의 시작일 거요. 당신은 아르하든지 아니면 테나여야 하오. 둘 다일 수는 없소." - P194

그 깊숙한 음성은 다정하고도 확고했다. 그녀는 그림자들 너머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험하고 흉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잔인함이나 기만이 없었다.
"내가 암흑의 존재들을 섬기길 그만둔다면 그들이 날 죽일거예요. 이곳을 떠나면 난 죽어요."
"당신은 죽지 않아요. 아르하가 죽겠지요."
"난 못해요………….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는 거요, 테나 건너기 전에 보이는 것만큼 어려운 다리는 아니라오."
"그들이 우릴 나가게 두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마 그렇겠지요. 그래도 해볼 가치는 있소. 당신은 길을 알고 내겐 마법이 있소. 그리고 우리 사이엔 ・・・……."
그가 말을 끊었다.
- P195

"우리에겐 에레삭베의 고리가 있죠."
"그래요, 그게 있소. 하지만 난 우리 사이에 있는 또 다른 것을 생각했소. 신뢰라고 합시다, 신뢰도 그것의 이름이니까. 그것은 아주 위대한 것이오. 우리가 따로따로 혼자일 때는 약할지라도 우리 사이에 그것이 있는 이상 우리는 강해요. 암흑의 힘보다도 강하다오."
- P195

그의 두 눈이 흉터 있는 얼굴에서 맑고 환하게 빛났다.
"들어 봐요, 테나! 난 이곳에 도둑으로 왔소. 당신에 대항하여 무장한 적으로 온거요. 그런데 당신은 내게 자비를 베풀고 나를 신뢰해 주었소. 나 역시 당신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믿었다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아름다움을 본 그때, 무덤돌들 지하에서 한순간 마주보았던 그때부터 말이오. 당신은 나를 신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소. 나는 그에 답한 게 없지요. 당신께 드려 마땅할 것을 드리겠소. 내 진짜 이름은 게드요. 받아 간직해 주시오." - P196

그는 일어서서 구멍이 뚫리고 조각이 새겨진 반쪽짜리 고리를 내밀었다.
"고리를 맞춥시다."
그녀는 그의 손에서 그것을 건네받았다. 그러고는 목에 걸고있던 은사슬을 벗어 나머지 반쪽을 뺐다. 두 개의 조각을 손바닥에 올려놓자 쪼개진 가장자리가 서로 잇닿아 고리는 완전해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들지 않고 말했다.
"당신과 가겠어요." - P196

"당신이 걸고 있는 구속에 두고, 나와 함께 갈 것을 청하오, 테나."
그녀는 팔에 찬 은고리에 어린 별빛을 보았고, 거기 눈길을둔 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러곤 그에게 손을 맡기고 함께움직였다. 달릴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걸어서 언덕을 내려갔다. 등 뒤 바위틈에 벌어진 검은 아가리로부터 신음하듯 울부짖는 길고 긴 증오와 비탄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위로는 돌들이무너져 내렸다. 땅이 흔들렸다.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녀는 여전히 손목 위에 흐르는 별빛의 반짝임에 눈길을 못 박고있었다.
그들은 묘역 서쪽의 어둑신한 골짜기에 접어들었고, 이제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게드가 그녀를 돌려세웠다.
"봐요." - P211

그녀는 돌아섰고 보았다. 그들은 골짜기를 건너질러서 이제 무덤돌들과 같은 높이에 올라와 있었다. 금강석의 대공동과 무덤들 위로 서 있거나 누워 있는 아홉 개의 거대한 돌기둥들. 그중 곧추선 기둥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돌연 꿈틀하더니 배의 돛대처럼 서서히 기울었다. 그중 하나는 홱 뒤틀리며더 높이 솟구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경련이 기둥을 타고 흘렀고 그것은 쓰러져 내렸다. 또 하나가 쓰러지며 앞서 쓰러진 돌을 엇갈리게 덮쳤다. - P212

"난 한번도 마난에게 상냥하게 대해 준 적이 없어요. 난 해브너로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가지 않을 거예요. 아무도 오지 않는 섬을 찾아 줘요, 그리고 날 내려 주고 떠나 버려요. 악은 보응을 받아야 해요. 난 자유롭지 못해요."
바다 안개로 흐릿해진 부드러운 불빛이 그들 사이에서 일렁이며 빛났다.

"들어요, 테나. 내말에 귀를 기울여 봐요. 당신은 악을 담은그릇이었소. 그 악은 쏟아버렸어요. 이제 된 거요. 그건 제 무덤에 파묻힌 거요. 당신은 결코 잔인함과 암흑을 위해 만들어지지않았어요. 당신은 빛을 품게끔 만들어진 그릇이오. 등잔이 그안에 빛을 품고 또 그 빛을 나누어 주는 것처럼 말이오. 난 불이당겨지지 않은 등잔을 발견했소. 그걸 어느 무인도에다 두고 가는 짓은 하지 않을 거요. 그렇게 한다면 뭔가를 찾아냈다가 그냥 내던져 버리는 꼴이오. 난 당신을 해브너로 데리고 가서 어스시의 공경들에게 말할 거요.
 ‘보십시오! 암흑 속에서 빛을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영혼이 그 빛입니다. 그녀로 인하여 해묵은악령이 무로 돌아갔지요. 그녀 덕분에 나는 무덤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녀로 인하여 깨어졌던 것이 온전해지고, 증오가 있던 곳에 평화가 있게 되었습니다.‘하고 말이오." - P249

그녀는 괴롭게 말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그럴 순 없어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그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 공경들과 부유한 귀인들로부터 떠나게 해주리다. 거기에 당신 자리가 없다는 말은 옳은 말이니까요. 당신은 너무도 젊고 또 너무나 현명하오. 난 당신을 내 고향, 내가태어난 곤트 땅으로 데려갈 거요. 나의 옛 스승 오지언께로 말이오. 그분은 이제 아주 나이가 드셨소. 진정 위대한 현자이시며 잔잔한 마음을 가진 분이지요. 사람들은 그분을 ‘조용한 사람‘이라 부르오. 그분은 르 알비의 ‘큰벼랑‘ 위에 있는 작은 집에 사시오. 바다 위로 높이 솟은 낭떠러지지요. 그분은 염소 몇마리와 텃밭을 돌보고 있소. 그리고 가을이 되면 혼자서 섬이곳저곳을 거닐며 숲속과 산비탈과 강물 흐르는 골짜기를 다니신다오. 나도 한때 거기서 그분과 살았더랬소. 내가 지금 당신보다 더 어렸을 때의 일이오. 오래 살진 않았지요, 그만 한 분별이 없었던 거요. 난 악을 찾아 나섰고 결국 충분할 만큼 찾아냈소・・・・……. 하지만 당신은 악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중이고, 당신만의 길을 발견할 때까지 한동안 조용히 있기를 원할 참이오.
그곳에서 친절과 고요를 찾게 될 거요. 테나. 그곳에서 등잔은한동안 바람을 피해 타오르게 될 거요. 그렇게 하겠소?" - P250

바다 안개가 그들의 얼굴 사이로 흐릿하게 흘렀다. 배는 긴물결 위를 가볍게 떠갔다. 주위에는 밤이, 아래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러겠어요."
그녀가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러고는 한참 있다가 다시말했다.
"아아, 더 일찍이라면 좋을걸………. 지금 그리로 갈 수 있다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꼬마 아가씨."
"당신도 그리로 올 건가요, 언젠가는?"
"갈 수 있는 날이 오면 갈 거요."
빛이 꺼져 갔다. 주위는 온통 어둠이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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