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잔혹 행위의 오염된 열매˝를 더 귀하게 여긴 우리도 죄인이다.
마지막 단편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정말 마음에 콱콱 와서 박힌다. 소제목만 보고 동북아시아 역사라니 분명 일본도 연관 있을거란 생각에 읽지말고 패스할까 생각했는데 시작하는 순간, 숨도 안쉬고 몰입해서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 중에서 요즘 이슈는 위안부 할머니 문제지만 작가가 주목한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사실은 731부대에서 자행됐던 잔인한 인체 실험과 중국인들의 학살에 관한 것이었다.
‘뵘기리노 입자‘라고 불리는 시간여행 장치를 통해 731부대 내부로 가서 당시의 끔찍한 만행은 목격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역사의 진실을 규명해보려던 주인공들의 시도는 결국 실패하지만 작가가 차용한 역사적 문건들은 모두 사실에 기반한 것이다. 역사를 보는 상대주의적 관점이 부정되는 현실도 굉장히 씁쓸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개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개별 사건(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 731부대에서 실험대상으로 겪은 체험담 등)은 역시 개인이 겪은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접근하려는 우리나라와 마수를 뻗쳤던 일본의, 두루뭉실한 전체로만 뭉쳐서 보려는 일본의 입장차는 결코 합치점을 찾을 수 없겠지!
아무튼, 이 단편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참 한결같은 일본이구나였다. 어쩜 대응방식이 그리도 한결같은지... 머리로 스팀 올라온다. 일본새끼들 결코 안바뀔거야. 지진나서 바닷속으로 갈아앉아버려라 하고 말하고 싶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역사를 부정하고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어났던 ˝잔혹한 행위의 오염된 열매˝의 수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작가는 미국 하원 의원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 기억하겠다는 약속뿐입니다.˝
작가가 준비한 작품의 마지막 반전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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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다‘느니 ‘고통이 뒤따랐다‘느니 하는 식의 목적어 없는 자동사 구문 뒤에 숨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또한 저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의 수법인 부정과 회피라는 치졸한 화법을 제가 존경하는 미합중국 의회의 동료 의원님께서 몸소 사용하신 것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 P522
역대 일본 정부는 한결같이, 이 나라 역대정부의 격려와 공모에 힘입어서, 731부대의 활동을 사과하기는커녕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사실 731부대는 오랜 세월동안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동안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직시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부정하고 외면하는 행위는 전쟁 기록을 폄하하고 부정하는 정형화된 행태로 자리 잡아서, 이른바 ‘위안부‘ 문제, 난징 대학살, 한국과 중국의 강제징용 문제를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일본과 이웃한 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우호 관계를 손상시켰습니다. - P522
731부대 문제는 우리에게 특수한 난관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미국은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제삼자가 아닙니다. 일본의 동맹이자 우방으로서, 미국은 우방이 저지른 잘못을 지적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미국은 731부대의 전범들이 법의 심판을피하도록 적극 방조했습니다. 맥아더 장군이 731부대의 실험 자료를 입수하기 위해 부대원들의 사면을 허가했던 것입니다. 우리가부분적으로 부정과 은폐의 공범인 까닭은, 우리가 스스로의 양심보다 그러한 잔학 행위의 오염된 열매를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죄를 지었습니다. - P522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호가트 의원님께서 결의안을 오해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위원장님, 증인들과 저는 현재의 일본 정부나 일본 국민에게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유죄를 인정하라고 요청할 생각이 없습니다. 저희가 요청하는 바는 731부대의 희생자들은 마땅히 명예를 되찾고 기억되어야 하며, 극악무도한 범죄의 실행자들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는 것이 미합중국 의회의 믿음이라고 본 위원회가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는 재판 없이 특정인의 권리를 박탈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 특정인의 재산 행사 권리를 몰수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는 일본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 기억하겠다는 약속뿐입니다." - P523
홀로코스트 추모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선언의 가치는 오로지 우리가 희생자들과 인류애라는 공통된 유대관계를 지닌다는 것, 또 우리가 731부대 도살자들 및 그들에게 허락과 지시를 내린 일본 군국주의자 집단의 잔악성과 야만성에 한뜻으로 반대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일본‘이 단일한 집단이 아니며, 단지 일본 정부만을 가리키지도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말해 두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한 만행들을 세상에 밝히기 위해 오랫동안 용감히 투쟁해온 일본 국민 개개인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거의 언제나 정부의 저항에, 또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대중의 저항에 맞서 싸우셨습니다. 저는 그분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 P523
진실은 빗자루로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현 중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희생자 유족과 중국 국민에게 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고, 또 거대한 불의가 세상의 심판으로부터 가려지고 감춰져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희생자들이 미국의 우방국 국민이었다면 어떠한 구속력도 없는 이 결의안이, 심지어 이보다 더욱 엄중한 결의안이라 할지라도 통과되는 데에 과연 눈곱만큼의 문제라도 있었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전략적‘ 이유 때문에 단기적인 이익이 될 어떤 것을 얻으려고 진실을 희생시킨다면, 그러면 우리는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우리 선배들이 저지른 과오를 단순히 되풀이할 뿐입니다. - P524
그것은 우리의 정신이 아닙니다. 웨이 박사는 우리에게 과거의진실을 이야기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본 정부와우리 정부를 향해 역사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당당히 다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과연 미국의 정신은 그런 것이 아닐까? - P524
웨이 박사가 품은 신념의 핵심은 진정한 기억 없이는 진정한 화해도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양국의 국민 개개인은 희생자의 고통을 공감하지도, 기억하지도, 체험하지도 못했습니다.
우리가 역사라는 함정을 넘어 앞으로 나아가려면 먼저 우리 개개인이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스스로에게 들려줄 수있는, 개인화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웨이 박사의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그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 P531
에번은 역사 연구에 공감과 감정을 더 많이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학계의 기득권층이 에번을 호되게 비판했던 겁니다.
그러나 공감과 개인 서사의 극히 주관적인 관점을 역사에 덧붙인다고 해서 진실이 훼손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진실의 가치를 높입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약점과 주관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진실을 이야기할 도덕적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설령 그 ‘진실‘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공유 경험이자 공유 이해로서 다 함께 우리의 인간성을 구성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만약 이 가정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 P543
일본의 헤이안 시대를 전공한 젊은 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 에번 웨이와 일본계 미국인 실험 물리학자 아케미 기리노는 세계를 전쟁 직전으로 몰고 갈 혁명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의 기대를 비웃게 마련이다.
만약 증거 부족이 문제라면, 두 사람에게는 반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할 방법이 있었다. 역사를 일어난 그대로 목격할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마치 연극을 관람하는 것처럼. - P548
세계 각국의 정부는 광란 상태에 빠졌다. 웨이가 731부대 희생자의 유족들을 과거로 보내어 핑팡의 수술실과 감방에서 자행된 참상을 목격하게 하는 동안, 중국과 일본은 법정과 카메라 앞에서 상대국의 과거에 대한 주장을 비난하며 진흙탕 싸움을 이어갔다. - P548
미국은 마지못해 이 싸움에 끌려 들어갔고, 국가 안보라는 명분하에 결국은 웨이의 관측 장비를 폐쇄했다.
웨이가 한국 전쟁 중에 미군이(731부대의 연구를 통해 얻었을 공산이 큰) 생물학 무기를 사용했는지에 관한 진상 조사 계획을 발표했을 때의 일이었다. - P549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티베트인, 아메리카 원주민, 인도인, 케냐의 키쿠유족, 신대륙 노예의 후손들까지, 세계 곳곳의 희생자 집단이 길게 늘어서서 관측 장비를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개중에는 현재의 권력자들이 자기네 역사를 지워 버릴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현재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자기네 역사를 이용하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관측장비를 옹호하던 국가들도 그장치의 함의가 뚜렷해지면서 한 발 물러섰다. 프랑스인들이 2차 대전 당시 괴뢰정권이었던 비시 정부 치하에서 자기네 동포들이 보여준 타락상을 재현하려고 할까? 중국인들이 자기들 손으로 저지른 문화 대혁명의 참상을 다시 체험하려 할까? 영국인들은 자기네제국의 번영 뒤에 감춰졌던 인종 청소를 목격하고 싶을까? - P549
민주국가, 독재 국가 할 것 없이 세계 각국 정부는 놀랄 만큼 신속하게 ‘시간 여행 전면중지 협약‘에 서명하는 한편으로, 과거의 영유권을 어떻게 분점할지에 관한 규칙의 세부 사항을 놓고 씨름했다. 모든 나라가 아직은 과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하는 모양새였다. - P549
웨이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기록된 역사는 모두 한 가지 목표를 공유한다. 바로 일련의 역사적 사실에 일관된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사실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에 빠져있었다. 이제 우리는 시간 여행을 통해 마치 창밖을 내다보는 것처럼 손쉬게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P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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