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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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는 코로나 대확산 이전에도 있었고 작가도 누누이 말했듯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어져 왔으며 살아오는 내내 있었고, 인종주의가 전혀 새롭지도 않고 결코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뉴스로 접한 것은 아마도 코로나 대확산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하여 유럽에서 이미 인종주의와 아시아인 차별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고 곧 미국에서도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가 뉴스에서 빈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아시아계 노인과 여성을 표적으로 삼고 자행된 폭행 - 침 뱉기, 괴롭히기, 인종차별적 욕하기, 얼굴을 겨냥해 주먹으로 치기 -과 식당에서 서비스를 거부한다는 뉴스,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가게를 훼손하고 불을 지르는 등의 뉴스를 거의 매일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충격이었던 건 2021년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마사지숍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사망자 8명 중 4명이 한국계였다. 범인은 일부러 아시아계가 많은 마사지샵을 골라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너 필링스>는 코로나 확산 직전에 출판이 되었고 "이 불안하고 사나운 시기"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이 책을 읽고 책을 추천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종차별 급증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시의적절성 덕분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다. 물론 이 책 집필 이전에도 아시아인 혐오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는 배경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작가가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나름대로 솔직하게 성찰하고 따져본 결과물인 것이다. 

이 정도의 정보는 솔직히 약간의 관심만 가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도이지만 어차피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환경에 노출이 되어 살아왔고 나는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접하는 사람인지라 건조한 문체로 쓰여진 작가 소개의 글을 읽노라면 시인으로 작가로 대학 교수로 성공한, 정말 잘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이너 필링스'.... 

그런데 이 책의 첫 문장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내 우울증은 가상의 틱 장애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한 시간이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꺼풀에 경련이 일어나거나 입 한구석이 따끔거리기를 기다렸다.(19쪽)" 가상의 틱 장애, 한 시간이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눈꺼풀이 경련이 일어나길 기다리다니... 대체 어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기에 이러는 건지, 이어지는 과정들을 읽는다고 해서 작가의 상황에 대해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러한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면 정말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깊이 빠져들고 싶은데 이 사람들이 겪은 깊이 만큼 나도 그만큼 깊이... 그게 안돼서 안타깝다. 더 잘 알지 못해서 답답하다. 평생 조국을 떠나 살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인종주의와 유독 아시아인 차별을 당하고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정신적인 문제를 가질 정도의 경험을 한다는 게 흔히 일어나는 일일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계속 읽어나가면서 이 생각은 점차 바뀌고 있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유나이티드 항공기에서 '데이비드 다오(호치민 의대를 졸업한 내과 전문의이며 부인은 소아과 전문의이다)'라는 베트남계 미국인이 강제로 끌려나가는 영상에 대한 글을 읽을 땐 나도 같이 분노했고 다오 박사가 겪었을 '깊은 수치심'에 대해 공감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름만 검색해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아마 그 수치심이란 건 평생 씻기지 않을 거라는 걸... 그 수치와 굴욕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거다. 다오 박사와 가족은 명예훼손과 심리적, 육체적 피해보상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였고 막강 변호인단을 구성하였다.





성장하는 동안 작가를 비롯해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굴욕은 (흑인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근면한 한국인, 소득 수준이 높은 소수 인종 한국인은 흑인이나 남미 국가에 비해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에 주눅이 들어있다. 그와 같은 신화는 너무도 은근히 퍼져 있어서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남들에 비해 나쁜 처지가 아니었던 거 아닌가 하는 의심에 시달린다. 

인종주의의 특징은 아동을 성인처럼 취급하고 성인을 아동처럼 취급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아이처럼 굴욕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깊은 수치심" 을 유발한다. 우리 부모가 백인에게 무시당하거나 놀림 당하는 것을 수없이 보면서 성장한다. 그 일이 너무 관행처럼 발생해서 엄마가 어떤 백인과 상대할 때면 자신이 항상 끼어들거나 엄마를 옆으로 잡아 끌 준비를 한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이어야 할 부모의 굴욕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112쪽)." 

차라리 영화에서"만" 보았으면 싶은 굴욕적인 일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성장하는 작가의 여러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이런 나라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아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어찌 보면 정말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동생이 아홉 살이고 내가 열세 살일 때였다. 쇼핑몰에 갔다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어느 백인 부부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유리문을 열었다. 나는 우리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줄 알고 남자가 마지못해 문을 붙잡고 있는 동안 재빨리 그리로 나왔다. 문이 닫히기 전에 그가 고함쳤다. "난 중국놈들한테는 문 안 열어줘!" 동생이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남자가 왜 그렇게 못되게 구는지 동생이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처음 당해봐." 동생이 울었다. 나는 쇼핑몰로 되돌아가 그를 죽이고 싶었다. 나는 어린 여동생을 보호하지 못했으며, 증오 때문에 우리를 아이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성인 남자에게 살인적인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116쪽)


선진국 국민이라고 해서 모두 선진 국민이라고 누가 그래. 너무 무식하고 혐오스러워서 말을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 순간에 나였대도 죽이고 싶었을 거다. 그 순간에 "난 중국인이 아니야!" 라고 쏘아붙이기라도 할 수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곱씹으며 자신을 좀 먹었을지 상상이 다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보다 더한 일도 있었다.




서울에 사시던 외할머니가 작가와 동생을 돌봐주기 위해 오셔서 같이 살고 있을 때였다. 작가의 아버지의 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 그 당시에 교외 백인 주거지역의 새 집에서 함께 살던 할머니는 외로워하셨다. 산책하러 나가시면 어떤 때는 남의 집 쓰레기통에 버려진 물건들을 들고 오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할머니의 산책길에 따라 나섰다가 생긴 일이다. 


할머니가 우리와 같이 살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캘리포니아 교외의 인도는 깨끗하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집집이 스프링클러가 잘그락거리며 잔디밭에 물 주는 소리를 빼면 우리 동네는 고요했다. 할머니는 어느 집 앞뜰에서 레몬이 달린 가지 하나를 꺾어 집으로 가져가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노닥거리던 한 무리의 백인 아이들을 만났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기로 마음먹었고, 나는 불안해졌다. 할머니는 아이들 속으로 무턱대고 걸어 들어가 악수를 하기 시작했다. 그게 미국식이니까. 아이들은 깜짝 놀랐지만 차례로 할머니와 악수를 했다. 걔들이 할머니의 손을 조금 지나치게 세게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헬로'라고 하자, 아이들이 '헤로'하고 응수했다. 그중 한 아이가 할머니 얼굴에다 대고 엉터리 수화 동작을 흉내 냈다. 그러더니 갈색 머리카락을 축 늘어뜨린 키 크고 마른 여자애가 슬그머니 할머니 뒤로 가서 온 힘을 다해 할머니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할머니가 땅에 넘어졌다. 애들이 전부 웃음을 터뜨렸다.(115쪽)



뭐 이 정도면 거의 악마지 악마! 나도 머리가 하얘지고 창피하고 너무도 굴욕적이어서 그 당시엔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었을 거다. 하물며 8살 어린 여자 아이와 나이 많으신 할머니의 조합이니 무슨 대응을 할 수 있었을까! 할머니는 그 일을 아버지에게 이야기했고 아버지는 차로 이동하면서 그 여자애가 보이는지 살피라고 강조했다. 정지 신호에 멈췄을 때 그 아이가 보였는데 아버지는 창문을 내리고 그 애에게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백인 아동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백인에게 그토록 격분하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아이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그 아이는 거부했고 우리를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차에서 내려 쫓아가자 잽싸게 도망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작가는 아버지가 "나대는 행동, 과민 반응"을 한다고 이웃들이 생각할까 봐, 그래서 아버지가 벌이라도 받게 될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잘못한 건 그 아이들을 비롯한 백인들인데 그 백인들의 국가는 아시아계 국민을 지켜주지는 않는다. 





"언어적, 신체적 충동에 노출될 가능성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게 스트레스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주류 다수 백인 남성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다" 이러한 심정을 그 사회에 토로한들 들어주기나 할까. 우리는 작가가 느끼는 감정을 일정 부분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들이 느끼는 "소수적 감정(minor feelings)"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소수적 감정"은 "일상에서 겪는 인종적 체험의 앙금이 쌓이고 내가 인식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의심 받거나 무시 당하는 것에 자극 받아 생긴 부정적이고, 불쾌하고, 따라서 보기에도 안좋은 일련의 인종화된 감정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어떤 모욕을 듣고 그게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뻔히 알겠는데도 그건 전부 너의 망상일뿐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 소수적 감정이 발동한다.(84쪽)"



"소수적 감정"은 인종화된 현실을 부정하는 미국식 긍정성을 강요 당해 인지 부조화를 겪을 때, 나는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상황이 훨씬 좋아졌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실패자로 느껴지는데 "아시아계 미국인은 성취가 대단하다"라는 소리를 들을 때 발동한다. 또 '소수적 감정'은 어느 교사의 증언에서 "아이들이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를 자기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자기 회의와 행동 장애를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 우리가 까다롭게 굴려고 마음 먹을 때-다시 말해 솔직하려고 마음 먹을 떄-배어나오는 감정이라고 비난받는다. 소수적 감정이 촉발되면 적대, 배은망덕, 시샘, 우울, 공격의 감정으로 해석되며, 백인들이 도가 지나치다고 여기는 인종화된 행태가 그런 정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간주되고 그러한 아시아인의 감정은 한마디로 "과잉반응"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국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들 중 일부는 주류사회의 편입과 성공을 목표로 교육에 열을 올렸고 일부는 현실에 한탄하며 경쟁에서 밀려나기도 했지만 우리가 알기로 대다수는 근면과 노력으로 개인적 성취를 이루었다. 작가도 예외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성취와는 별개로 이 "소수적 감정"에서 해방되어 초연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성공한 아시아인으로 평가받는 한국계 미국인 사회가 개인적 성공의 한계를 앞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지, 어떻게 연대하고 변화해나갈지, 작가가 말하는 소수적 감정이 어떻게 변해갈지 그 무엇도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는 그저 작게나마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아차차... 그리고 절대 빼놓으면 안되는 부분이 바로 '예술가의 초상'에서 다룬,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이라 결코 잊고 싶지 않은...

"1982년 11월 5일, 그러니까 그해 가을 들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추워진 날에 31세의 미술가 겸 시인 테레사 학경 차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직물 부서에서 사직했다. 그는 하얀 앙고라 스웨터에 빨간 가죽 코트를 입고 적갈색 베레모를 썼다. 가죽 장갑도 끼고 양말도 두 겹으로 신었다(207쪽)" 바로 <딕테>의 저자 차학경에 대해 쓴 에세이이다. 차학경은 앞서의 문장에서 보이는대로 "하얀 앙고라 스웨터, 빨간 가죽 코트, 적갈색 베레모, 가죽 장갑과 양말"의 차마 언급하기도 힘든 끔찍한 모습으로 -후일 언론에서 불의의 사고라고만 언급되고 있는 -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딕테>를 읽고 나서 꼭 다시 읽어봐야 한다. <마이너 필링스>를 읽고 나면 <딕테>에 이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주문했다. 책은 내일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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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트럼프의 미국을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여기 있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내가 한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곳과 그곳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이다. 한때 운동가들이 쓰던 표현으로 바꿔말하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P258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조상의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두 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 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 P259

...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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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같은 식의 인종 문제에 대한 서사가 다소 지루하다.
하지만 ‘소수적 감정‘을 다룬 흑인 작가들의 글에 대한 고찰은 ˝우리의 시각에 균형을 잡아주는 매우 중요한 문헌˝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단 생각이 든다.

반납일이 다가오는데 다 읽을 수 있을까 의문... 서둘러 읽어보자!








시인 프라기타 샤마가 말한 대로, 미국인은 죽음을 애도하는일도 기한을 정해놓고 하듯 인종에 관해서도 유효 기간을설정한다. 미국인들은 일정 기한이 지나면 우리가 인종 문제를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비록 나는 회의적이지만, 이 기회에 우리가 미국 문학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 P75

우리의 정체성을 자동으로 규정하는 낡은 인종 서사, 우리의 삶을 백인 청중의 구미에 맞추면서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다양한 현실을 삭제해버리는 낡은 인종 서사를 갈아치우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어진 공식에 따라 우리 자신을 설명하는 일을 그만두자는 것이다. - P75

프라이어의 온갖 흉내 연기 사이사이로 분노와 절망이 스친다. "내가 백인이 아니고 흑인이라서 다행이에요. 당신네 백인들은 달에도 가야 하잖아요"라고 말할 때 서리는 프라이어의 우수는 웃음이 그친 한참 후까지도 맴돈다. 그 우수는 그가 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  - P83

앙리 베르그송은 유머는 숭고함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신성이 배제되어 있고 온전하게 인간적이라고 적고 있다. 즉 우리는 유머를 통해 초월성보다는 우리의 피부를 통절히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라이어도 "끊임없이 어떤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지만, 키츠가 말한 정체성 없는 시인과는 달리 프라이어는 언제나 "흑인이면서" 다른 인물들을 연기한다. - P83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 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 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 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은 민족에 속한다.  - P95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 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 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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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부 왕조의 몰락


1
단기 4214년, 서기로는 1881년이었다. 수도 한양의 어느 봄날, 이제 막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계절이요, 화창한 날씨였다. - P11

김일한은 서재에 앉아 둘째 애가 태어났다는 전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한의 본관은 안동이었다. 그가 지금 앉아 있는 방은 온돌방으로서 이 집에서 제일 크고 안락했다. 남향집이어서 담 위로 솟아오른 햇살이 종이 창문을 통해 은은히 비쳐들었다. 그는 낮은 책상 옆에 공단 방석을 깔고 앉아 책상에 펴놓은 책에 정신을 집중해 보려고 애썼다.  - P11

아내가 친정 자매와 산파 그리고 몸종들과 함께 안방으로 들어간 지도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같이 들어간 여인들이 번갈아 세 번이나 나와 모든 게 순조롭다고 하며, 아직 애를 낳으려면 멀었으니 제발 뭐 좀 들라고 하더라는 아내의 말을 전해 주었다. - P11

그는 여성에 대해 조금은 무시하는 태도로 생각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내, 순희만 빼고는 다 마찬가지지! 그는 아내를 그토록 사랑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심지어 아내에게도 내색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결혼하기 전에는 얼굴도 못 본 사이였지만 다행히 중매쟁이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점쟁이들도 사주를 제대로 보아 주었던 것이다. 순희는 새댁으로서의 온갖 일을 빈틈없이 해냈다. 그녀는 결혼식 날 친척과 친구들이 끈덕지게 놀려대도 절대 웃지 않았다. 새색시가 혼인날 웃으면 딸만 낳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순희는 올해 세 살 나는 첫아들이 있는데, 점쟁이 말대로라면 오늘 또 아들을 낳을 것이다. 일한 일가는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에도 아늑한 보금자리를 이루고 있었다.  - P12

"현재 우리나라는 노서아, 중국, 일본의 세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우리를 이들의 탐욕으로부터 지키는 길은 세상에서 물러나 있는 것뿐이옵니다. 우린 은둔국이 돼야 하옵니다."
할아버지는 벌써 50년 전에 상감께 이렇게 아뢰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가끔 할아버지의 이 말씀을 인용하곤 했는데, 일한은 속으로 은근히 무시했다. 선조들의 어리석음이라니! 그는 대원군을 몰아내려는 첫 음모에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도 감추고 있었다. 일한은 당시 소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음모를 꾀하는 지도자들과 젊은 왕비 사이를 오가는 쓸 만한 전령이었다. 섭정인 대원군은그의 아들 고종을 너무 어린 나이에 민씨 문중의 한 규수와 결혼시켰는데. 그녀는 임금보다 나이가 많았다. 대원군은 후일 이 일에 대해 후회막급이었다. 그 아름답고 품위 있는 소녀가 그처럼 강인하고 영악하게 섭정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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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키스의 말 - 2024 제18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배수아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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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아 <바우키스의 말>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 바우키스와 그녀의 남편 필레몬은 변장한 신을 잘 대접한 보상으로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한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순간 서로의 몸에서 자라나는 잎사귀를 보는 순간 두 사람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배수아 작가의 <바우키스의 말>은 이 마지막 순간에 관한 아름다운 소설이다. 하지만 바우키스의 말이 무엇이었을지 알 수 없듯이 배수아 작가의 소설도 손에 잡힐 듯 선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붙잡으려는 생각에 문장을 여러번 자꾸 읽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리듬을 발견하게 된다. 




특별한 줄거리를 찾을 수 없는 소설이지만 그래도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음악가(이 작품에서는 등장 인물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며 '모형 비행기 수집가, 예술가, 음악가'라는 식으로 호명이 된다)'의 즉흥 퍼포먼스에 초대를 받았을 때의 일을 쓴 문장들이었다. 음악이 연주된 홀은 텅 비어 있고 초대를 받은 몇 사람만이 연주회장에 모여있었는데 음악가는 오래전부터 피아노 앞에 앉아 뚜렷한 음악의 시작도 알 수 없고 "최초의 음이 발현하기를 기다리는 행위"를 하는 것, 그것이 전부인, 그럼에도 계속해서 계속해서 듣고 있는 행위..., 그러면서 음악가는 여기에 없는 것들을 향해서 귀 기울임으로써 음악을 시작하고 있었다 말한다. 


"보리수 안의 바람, 강비탈에 핀 부처꽃들의 기울어짐, 언젠가 붉은 가을, 자갈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자국, 기차가 도착하는 신호음, 창으로 들어온 바람에 책상 위의 편지들이 흩어지는 소리, 서로 은밀하게 마주 잡는 두 손, 새들이 만들어내는 허공, 하나의 편지 위로 내려앉는 또 다른 편지, 그리고 붉은 가을, 오직 하나의 어휘가, 하나의 음이, 하나의 그림이 떠오를 때까지 마침내 모든 음들이 소리의 최소 성분으로 수렴될 때까지. 멜로디 없는 음악, 최소의 음악. 돌과 나모의 내부로부터, 저절로_중얼거림. 겨울 아침 서리의 속삭임. 지금 여기 없는 것들의 기억. 그 어휘가 무엇일까. 강물에 비친 하루.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음악가는 피아노 건반을 하나 누르고 소리의 울림이 사라질 때까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았다.(45쪽) 




이어서 연주회장의 몇몇 사람들이 돌을 하나 들고 음악가의 연주에 공명하여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순간, 음악의 일부가 되어 돌을 떨어뜨리면서 하나의 어휘를 발설하는 행위를 하게 되는 이 퍼포먼스, 이 연주가 아주 아주 느리게 느리게 천천히 이어져 나간다. 그 어휘가 무엇일까! 이 문장들은 자연스럽게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발화를 삼킨 바우키스를 연상하게 만들고, 돌과 돌이 떨어지는 사이, 음악가는 사람들이 아직 모르고 있는 것을 말해주는데 "이 곡의 이름은 '바우키스의 말'입니다.(51쪽)"   


"말을 꺼내려는 인간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는 이미지는 소설 전체를 장악하면서 여러 번 반복된다. 이를 테면 '나'는 언젠가 모형 비행기 수집가와 숲을 산책하다가 각각 나무를 깊이 껴안고 포옹한 적이 있다. 나무의 떨리는 내면이 느껴질 때까지. 그제야 마침내 입 없이도 하나의 어휘가 발설되고, 두 사람은 숲속 나무의 이미지와 포개진다. 그러니까 가장 결정적인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언어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이 영원히 발설되지 못할 것 같은 어휘가 언어의 차원에서 음악의 차원으로 변신하는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온다."(8~9쪽, 심사평 중에서) 


이 단편의 의미를 '나무'에서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최후의 순간 바우키스는 나무로 변하는 자신을 느끼고 지금 이 순간 나무로 변하고 있을 필레몬을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이 나무껍질로 변하기 직전, 바우키스는 사랑하는 필레몬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으리라. 마침내 도달한 최후의 순간, 하나의 어휘가 해방되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배수아 작가의 잡히지 않지만 아름다운 문장들을 되풀이해서 읽고 있었다.






문지혁의 <허리케인 나이트>는 마지막의 반전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이 단편의 줄거리는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을 거 같다. 문지혁의 단편과 더불어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은 《2025이상문학상작품집》에서 이미 읽었기 때문에 다시 여기서 새삼스레 리뷰를 쓰지는 않겠다. 예소연 작가의 단편은 이상문학상 대상수상작이었는데 아버지의 장례와 관련한 단편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사실 공감하기는 어렵고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작품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 과정도 왠지 모르게 거부감이 들면서 하나도 재미있지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재미있게 읽은 단편이 있는데 예소연 작가의 작품 외에 아버지의 장례와 관련한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박지영 작가의 <장례 세일>이었다. 이 세상 모든 물건들, 아니 인간 비인간 할 거 없이 모든 것들을 다 파는 세상인데 아버지의 장례를 세일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는 전제 하에 아버지 독고 씨의 장례 비용을 가늠하고 한편으로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최소한의 체면을 차려줄 수 없을 지도 모를 얼마되지 않을 조문객을 걱정하면서 공정한 죽음 비용에 대해 생각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과정이란 것이 아버지란 사람의 애도를 소비할 가능성이 있는 지인의 지인들까지 찾아낸, 최대한 많은 예비 조문객들에게 앞서서 "따뜻하고 육즙이 가득한 맛있는 동그랑땡의 맛을 보여주고 애도를 준비하게 하는 것"을 영업 목표로 하여 아버지의 영업일지와 수첩들을 토대로 감사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흥행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셔야 하지만 평생을 그러한 기회와는 등을 지고 산 아버지가 그럴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현수의 노력은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는데,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인연과 뜻밖의 대가 없는 순수한 애도를 받게 되면서 현수는 깨닫게 된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는데 애써 하는, 어떤 가격을 매겨도 공정하지 않은 완벽히 불공정한 선의"(143쪽)에 대해! 아무 관계 없는, 아무 이유 없는 완벽한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완전한 선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한 사람 몫의 공정. 

현수는 아들이면서도 아버지의 인생을 '그래도 싼' 인생으로 비하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나간다는 사실이 먹먹하게 다가왔다. 아버지의 인생을 '그래도 싼' 인생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자신에 대한 비하도 담겨 있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의 삶과 죽음에 가능한 애도란 없을 거라고...... 애써 자신을 다독이며 지금부터 천천히 공정가를 높이는 장례 세일을 준비해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그 늦은 밤, 뜻밖의 완전한 타인의 완벽한 선의에 의해 이루어진 애도의 몫을 보면서 오늘밤만큼은 "아버지 독고 씨의 죽음과 함께 세상의 모든 '그래도 싼' 죽음을 모르는 자의 선의로 다만 애도해보고 싶어지는 것"이었고, 내 애도의 값은 내가 결정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전춘화 작가의 <여기는 서울>은 조선족 청년인 '영화'가 한국의 서울에 있는 대학에 대학원생으로 유학을 오게 되고 연변에 있는 아버지의 소개로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라는 단체에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현실적으로 잘 보여주어 흥미로웠다. 여태는 우리 눈에 비친 조선족, 연변 동포(혹은 고려인, 새터민, 일본 교포 등으로 치환가능하다)를 우리의 시각으로 조명했다면 이 작품은 조선족 청년의 눈으로 본 현재의 한국과 청년세대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국말을 쓰니까 그저 적응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결코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물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다르고 우리와 달리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이라서 우리의 역사를 배울 기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원활하게 대화를 해 나간다는 것이 어려운 과정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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