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문예출판사

<독일인의 사랑>과의 떨리는 재회~~
책 읽는 생활 중에 가장 취약한 게 읽은 책 다시 읽기이다. ‘읽을 책‘도 많은 데 ‘읽은 책‘ 다시 읽기라니 라는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가끔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없을 수가 없다는 것이 딜레마..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작품이 늘어난다는 것이 오늘 이 <독일인의 사랑>과의 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시 읽고 싶은 간절함이 ‘읽을 책‘의 유혹을 물리쳐 주었다.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이 책이 문예 출판사의 ‘문예 세계 문학선‘이었고 이 시리즈를 주욱 둘러보니 정말 놀랄 정도로 내가 어리고 파릇하던 젊은 시절에 읽었던 작품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게 아닌가! (다른 출판사의 시리즈도 물론 그렇겠지만 문예출판사의 판형이 나는 편하더라는... 뿐만 아니라 가격도 넘넘 착하다! 민음사 ㄴㄴ 넘 불편해!)
갑자기 가슴이 설레고 그러니 읽고 싶어져서 이 책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놓았고, 시리즈 앞쪽에서 읽지 않아 눈에 띈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뒤쪽에서는 포드 매덕스의 <훌륭한 군인>을 담았다.
아~~ 이렇게 나의 독서 생활에 ‘고전 다시 읽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카테고리가 들어오게 되었다.

<독일인의 사랑>은 1987년에 1판, 2022년에 6판4쇄까지 출판이 되었다. 87년이면 20대 중반이기는 하지만 내가 읽은 건 이 시리즈는 아니었던거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나? 아닌가? 이것도 아닌거 같고... 결혼 전에 분명히 소장하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독일인의 사랑>은 자세한 스토리는 기억이 안나지만 ˝사랑에 관한 불후의 명작˝이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다시 읽기의 첫 책으로 선택하기에 부담이 없다.

오늘은 바람도 거의 안불고 따뜻해서 썬룸에 나가 책을 읽었다.
어제 같이 수영 다니는 동생이랑 남사화훼단지 구경 갔다 왔다. 눈 둘 곳 없이 꽃들도 많고 냄새가 넘 달콤하고 향긋해서 기분이 진짜 금방 업업~~~
그냥 올 수는 없지.
해마다 꽃볼 생각에 들였던 시클라멘.
작은 꽃이 앙증맞은 제라늄.
그리고 지금 딱 꽃이 피어 향이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
썬룸 나가니 향이 이리 좋을 수가 없다^^
음~~~ 달콤해~~

어린 시절은 그 나름의 비밀과 경이로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누가 그것들을 이야기로 엮을 수 있으며, 누가 그것을 해석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이 고요한 경이의 숲을 방황하여 빠져나왔다. 우리는 모두 한때 모든 감각이 마비된 행복감에 젖어 눈을 떴으며, 삶의 아름다운 현실이 우리의 영혼 위로 넘쳐흘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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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2-27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군인> 반갑습니다!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ㅎㅎ

은하수 2025-02-27 21:42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다면 완전 믿고 빨~~~리 읽어보겠습니다.
그러잖아도 너무 궁금했거든요^^

민선진 2025-02-28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속 꽃이 제라늄인가요? 봄이 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은하수 2025-02-28 10:24   좋아요 0 | URL
네~~
앞쪽 붉은 색은 시클라멘이고
뒤 왼쪽이 제라늄 종류입니다. 꽃이 작은 종이 요즘 꽃시장에 엄청나게 나와 있더라구요.
봄을 만끽하기 좋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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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사원 풍요의 바다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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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바다 시리즈 3권은 전편과 달리 매우 혼란스럽다. 혼다가 연구 중인 윤회환생과 대승불교의 유식론은 어이없게도 여성으로 환생한 잉 찬에 대한 에로티시즘적 관심으로 치닫는다. 몰아치듯 닥쳐온 결말에 감탄도 잠시 아무런 단서도 없이 허무한 죽음을 맞은 잉 찬. 왜그리 홀대한거지. 실망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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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이상문학상 작품집 우수상 수상작
<일렉트릭 픽션> 김기태

"미국에서 온.......?"
그는 조금씩 손가락들이 자유로워짐을 느꼈다. 기타와 건반,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으로 만난 머리가 하얗고 긴 사람의 목소리.
"......맛있는 초당옥수수."
얼떨결에 주 1회씩 3개월 치 레슨비로 24만 원을 계좌 이체했으므로 뭔가 당했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저렴한 비용이었고, 재니스는 학원을 떠나는 그의 손에 찐 옥수수도 쥐여줬다. 따끈했다. 어쩌다 24만 원을 내고 기타와 앰프와 찐 옥수수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을까. 거래는 크게 실패했다. 음악은 조금 성공했다. 비밀스럽게 내린 결론이었다. - P133

그렇게 그의 기타는 작은 거실로 복귀했다. 목소리 큰 상인들이 만둣국을 시켜 먹고 슬리퍼를 신은 주민들이 치킨에 맥주를 마시는 상가로 주 1회씩 그와 함께 외출하게 되었다. 재니스는 기분에 따라 노래를 불렀다. 어떤 날에는 ‘눈물‘이나 ‘인생‘
같은, 어떤 날에는 ‘미숫가루 수박화채‘ 같은 노랫말이 들렸다.
로저는 베이스 기타를, 무라카미는 드럼을 쳤다. 군밤이나 쑥떡이나 말린 살구를 얻어먹었다. 연습실에서 뭘 먹으면 안 되는거 아니냐고 묻자, 재니스는 "로커가 그딴 걸 신경 쓸 것 같냐?"
하고 타박했지만 "근데 음료는 안 돼요."라고 덧붙였다. 납득이되는 듯도 앞뒤가 안 맞는 듯도 했지만 그딴 걸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 P133

저는 전기 기타를 좋아합니다. 가끔만 집에서 연주합니다.9시 이후에는 안 하겠습니다. 불편함이 
있으시면 505호에 메시지를 남겨주세요. 죄송합니다.

이것이 내가 다 쓴 건전지의 기분으로 엘리베이터에 탔을때 본 메모이다. 나는 이른 저녁에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희미한 전기 기타 소리를 들은 적이 있을 뿐, 505호의 문 안쪽에 대하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이가 그인지 그녀인지, 젊었는지 늙었는지, 혹은 그중 무엇도 아닌지, 그 기타가 석양처럼 붉은지 파도처럼 푸른지도 알지 못한다.  - P134

익명이 되려고 서로 최선을 다하는 이곳에서 자신이 505호, ‘여기‘에 있다고 고백한 사람. 배려와 무례가 섞인 문장들이 아주 조금 열어놓은 문. 그 틈으로 나는 김수영처럼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느라 가구를 끌어 옮겼던 이, 자우림처럼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하는 기분으로 옷을 벗어 던지며 흥얼거린, 자신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믿었던 이를 돌아본다. 지난 8년동안 그런 식으로만 잠깐 존재를 알렸던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이 건물 어딘가에 있을, 작고 까만 눈을 
깜빡거리다 잠에 빠지는 아기도 상상한다. 예전에 붙었던 메모를 나도 봤다. 그러나 그 녀석의 안에도 전기가 있다. 나는 아기가 울고 싶을 때 우렁차게 울기를 바란다. 머지않아 두 다리로 일어서서, 뛰고 싶을때 쿵쾅쿵쾅 뛰기를 바란다. 낯선 세상과 마주해 부단히 전기신호를 생성할 녀석의 신경세포들이, 정적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소란일지도 모른다. - P135

알지 못할 전기장치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가 
나를 들어올리는 동안, 나는 가벼운 상승감 속에서 펜을 꺼냈다. 손대면 전기가 통할 듯한 종이의 여백에 이렇게 썼다.

저도 전기 기타를 좋아합니다.

501호, 내 몫의 문을 닫고 언제나의 집에 들어섰다. 창문을 열자 늦여름 밤의 선선한 바람이 작은 거실 안으로 불었다. 비냄새가 섞여 있었다. 오늘 밤에는 세차게 비가 내려도 좋을 듯했다. 거칠지만 모두를 뒤덮을 만큼 커다란 손이, 이 조용한 동네의 골목과 골목 사이로 조금은 엉켰지만 분명 이어진 전깃줄들을 벼락처럼 울린다면, 전부를 감저시킬 일렉트릭한 멜로디를 연주한다면, 나는 비밀스럽게 웅얼거렸던 몇 개의 문장을 큰 소리로 발음해볼 작정이다. Hei kaikki, 모두들 안녕하세요.
Kitty‘s, 감사합니다. Pidan sinusta, 저는 당신이 좋아요.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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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혁명》 작품집에 대한 평가는 잠정보류!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은 예소연 작가의 <그 개와 혁명>이다. 1960년대생 운동권 아버지의 장례를 주관하는 1990년대생 페미니스트 딸의 시선으로 그려진 우리 시대 ˝사회문화사˝이며, 딸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버지를 마지막 배웅하는 ˝가정사˝이기도 하다. 매우 짧은 단편 속에 참 많은 것을 담아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문학상 작품집을 여간해서 구입해서까지 읽지 않는데 대상 작가가 넘 생소한 작가라..
그리고 다산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 구입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대상을 받을 정도의 작품인가 싶어 살짝 갸웃! 오히려 작가의 자선 대표작으로 수록된 SF 단편인 <마음 깊은 숨>에 더 공감하게 된다. SF 소설을 즐겨 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서는 평소의 지론을 확증하게 된 셈인데...
대상을 읽고 나니 나머지 우수상을 받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반감되어 버렸다. 오히려 김기태 작가와 문지혁 작가는 익숙한 작가들인데도 불구하고.
우수상 작품들 읽고 나서 잠정적 별점이 늘어나길 기대해본다.

 


태수 씨는 죽기 전가지 통 잠을 못잤다. 수면제를 먹고 진정제를 먹어도 한두 시간 노루잠만 잤다. 늘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서둘러 일어났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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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끼칠 정도의 자기혐오가 가장 달콤한 유혹과 하나가 되어, 자기 존재의 부정은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는 불사의 관념과 결합된다. 존재의 치유 불가능이야말로 불사라는 감각의 유일한 실질이었다. - P395

젊은 시절부터 혼다의 인식의 사냥개는 극히 기민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는 한도의, 보는 한도의 잉 찬은 거의 혼다의 인식 능력에 부합한다고 봐도 된다. 그 한도의 잉 찬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혼다가 가진 인식의 힘이다. - P402

그래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잉 찬의 알몸을 보고싶은 혼다의 욕망은 인식과 사랑의 모순에 양다리를 걸친 불가능한 욕망이었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이미 인식의 영역이고, 설령 잉 찬이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도 그때 책장 안쪽 빛의 구멍으로 엿본 순간부터 이미 잉 찬은 혼다의 인식이 만든 세계의 주민이 됐기 때문이다. 그의 눈이 보자마자 오염되는 잉찬의 세계에는 혼다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이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보지 않는다면 다시 사랑은 영원히 도달 불가능한 것이었다. - P402

비상하는 잉 찬을 보고 싶으나 혼다가 보는 한도의 잉 찬은 비상하지 않는다. 혼다의 인식 세계의 피조물에 머물러 있는 한 잉 찬이 이 세계의 물치 법칙에 반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꿈속을 제외하고) 잉 찬이 벌거벗고 공작새에 올라타 날아가는 세계는 그러기 일보 직전에 혼다의 인식 자체가 흐림이 되고 티끌이 되어 하나의 미미한 톱니바퀴에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에 바로 그 원인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고장을 수리하고 톱니바퀴를 교체하면 될까? 그것은 혼다를 잉 찬과 공유하는 세계에서 제거하는 것, 즉 혼다의 죽음을 뜻한다. - P403

이제 분명한 점은 혼다의 욕망이 바라는 궁극적인 것, 그가 정말로,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은 그가 없는 세계에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을 보려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엿보는 자가 언젠가 엿보기라는 행위의 근원을 말살해야만 광명이 비칠 수 있음을 인식할 때, 그것은 곧 엿보는 자의 죽음이다. - P403

현재의 이 세계는 혼다의 인식이 만든 세계이므로 잉 찬도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 
유식론에 따르면 그것은 혼다의 아뢰야식이 만든 세계였다. 그러나 혼다가 유식론에 완전히 무릎을 꿇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그 인식에 집착하고, 자기 인식의 근원을 저 영원한 곳에 순간순간 미련 없이 세계를 폐기하며 갱신하는 아뢰야식과 동일시하는 데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404

오히려 혼다는 마음속으로 장난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그 감미로움에 취하며, 인식이 부추기는 자살의 순간에 간절히 보기만을 바랐던,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잉 찬의 호박색으로 빛나는 순진무구한 나체가 찬란한 달이 떠오르듯 나타나는 행복을 꿈꿨다.
공작 성취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공작명왕화상의궤(王畵像儀軌)』에 따르면 그 본원을 나타낸 삼매야형에는 공작새 꼬리 위에 반달이, 또 그 위에 보름달이 있고, 반달이 보름달이 되듯 수법(修法)을 성취함을 나타낸다.
혼다가 원했던 것은 바로 이 공작 성취였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 세상의 사랑이 모두 반달로 끝난다면, 공작새 꼬리 위에 보름달이 뜨기를 누가 꿈꾸지 않겠는가?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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