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한강/난다/2016년
분명 읽었던 책인데 유독 이 책만 스토리가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이유는.....?
소설을 표방했는데 너무 짧은 챕터로 이루어진 에세이. 혹은 시로 읽혀서......?
<달떡>의 감성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하지만 이 단편이 이리도 짤막하다!
이번엔 별점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
달떡
지난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이 어릴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고.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던 중이었다. 그 순간 불현듯 떠오른 것이 이 죽음이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나는 자랐다.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 - P22
달떡같이 희다는 게 뭘까, 궁금해하다가 일곱 살 무렵 송편을 빚으며 문득 알았었다. 새하얀 쌀반죽을 반죽해 제각각 반달 모양으로 빚어놓은, 아직 찌지 않은 달떡들이 이 세상 것 같지 않게 곱다는 것을. 하지만 정작 얼기설기 솔잎들을 매달고 접시에 담겨 나온 떡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고소한 참기름에 반들거리는, 찜솥의 열과 김으로 색깔과 질감이 변형된 그것들은 물론 맛이 있었지만, 눈부시게 곱던 쌀반죽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 P22
엄마가 말한 달떡은 찌기 전의 달떡인 거야, 그 순간 생각했었다. 그렇게 깨끗한 얼굴이었던 거야. 그러자 쇠에 눌린 것같이 명치가 답답해졌다. - P23
지난봄 그 녹음실에서 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어릴 때 기르던 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여섯 살이 되던 겨울 죽은 백구는 진돗개의 피가 절반 섞여 유난히 영리한 개였다고 했다. 다정하게 함께찍은 흑백사진 한 장이 남아 있지만, 살아 있었던 때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없다. 선명한 건 오직 죽던 날 아침의 기억뿐이다. 하얀 털, 까만 눈, 아직 축축한 코.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손을 뻗어 개의 목과 등을 쓰다듬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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